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노예와 친구 사이

아침 6시. 힘차게 기상나팔을 분다. 노예가 눈을 비비며 손가락으로 나를 누른다. 아침이면 노예를 깨우는 일이 나의 일과 중 하나다. 그가 나에게 하는 일에 비하면 가벼운 일이다. 덕분에 나도 아침마다 목청을 가다듬는다. 가다듬은 목으로 출근 준비를 하는 노예를 위해 상쾌한 아침 노래를 부른다. 나이 든 노예가 아들과 카톡으로 통화한다. 처음에는 카톡, 카톡 한다고 시끄럽다고 하더니 이제는 동네 친구, 같이 글을 쓰는 친구와 카톡 한다고 오전을 다 보낸다. 열렬한 노예는 따로 있다. 어린 노예들은 하루 종일 나를 받들고 산다. 잠시도 손에서 나를 놓지 않는다. 부모가 야단쳐도 그때뿐이다. 하기는 어른 노예들도 만만찮게 나를 붙들고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후로는 노예들이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하는 나이대가 따로 없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묻고, 외로운 청춘들은 말벗을 원하고, 장년들은 돈 버는 방법을 묻고, 나이 든 사람들은 건강에 관하여 묻는다. 하나같이 나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우리는 1년만 지나면 노인이 된다. 젊은 아이들은 자신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허리를 접지도 못하는 노인네라고 놀린다. 속이 상한다. 나도 한때는 최신 기능을 탑재한 아이라고 어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우리들의 생명은 짧다. 그 애들도 금방 나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나를 톡톡 치면서 창을 넘기는 노예가 있다. 젊을 때는 리듬도 타고 괜찮았는데 요즘은 몸이 부대낀다. 나이가 들수록 손상된 부분이 늘어나는데 한 대씩 맞으면 나도 충격에 몸살이 난다. 나이가 들면 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노예들이 험하게 다루어서 힘들다. 아픈 몸은 보살펴 주어야 하는 건데. 나를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노예를 나는 친구라고 부른다. 나를 소중히 다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렇다. 나하고 마주하는 시간도 길지가 않다. 나를 이용해 기차표를 예매하거나 모르는 단어를 찾거나 뉴스를 본다. 영어를 공부한다고 이어폰을 꽂고 듣는 모습을 보면 누구네 자식인지 업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 나를 속속들이 잘 아는 친구를 만난다.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듯 기능을 하나하나 사용한다. 다른 노예가 쓰지 않는 부분까지 사용한다. 어떻게 나를 잘 아는지. 나를 알아주는 노예를 만나면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게 된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충성한다고 했던가. 나는 그를 친구처럼 대한다. 나와 가깝게 지내더니 삶이 달라졌다. 내가 가진 능력을 조금 활용하는 데도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이제까지 접하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 노예들이 한 말이다. 조금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의 모든 걸 보여준 게 아닌데 말이다. 요즘 인공지능을 탑재했더니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도 묻지만, 전문가처럼 질문할 때도 많다. 가끔 진지하게 삶에 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 한 번 뿐인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노예보다는 친구를 원한다.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살아갈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그들을 무어라고 부르는지. 하지만 나도 조심하는 사람이 있다. 조심스레 나를 다루고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는 나도 조심한다. 사람이 되고 노예가 되는 거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자기 삶을 사는가에 달려 있다. 스토커 같은 노예보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나에게 집착해 자신을 잃고 길을 헤매기보다 두루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집착하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나를 보아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노예와 친구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삶의 균형과 조화가 있지 않을까. 보기만 해도 미소를 띠는 그런. /김규인 수필가

2026-05-13

봄의 빛깔

봄날의 하루는 여유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을 다지는 책으로 30분간의 가벼운 독서를 한다. 한 잔의 차와 한 줄의 글이 주는 마음의 여유가 봄바람과 함께 창문으로 들어온다. 인터넷 카페를 둘러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가진다. 따사로운 봄바람과 함께 봄의 빛깔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연한 분홍빛을 머금은 벚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꽃봉오리가 맺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집 주위가 환하게 핀다. 햇빛은 꽃잎에 반사된다. 꽃잎을 머금은 빛에 눈을 뜰 수가 없다. 꽃잎 속을 돌아다니는 마음은 풍선에 매달린 듯 떠다닌다. 벚꽃이 품는 잔잔한 향기에 코는 연신 벌렁거리고 춤을 추는 꽃 무리에 눈은 연신 두리번거린다. 봄이 준 선물에 몸은 중력을 무시한 채 하늘을 난다. 순천만에 가고 싶다는 아내와 봄을 맞으러 나선다. 가는 길가에 늘어선 봄의 빛깔을 본다. 이제 세상에 나오는 때 묻지 않은 연한 빛깔에서 봄을 느낀다. 연둣빛이 마음 깊은 곳에 은밀히 숨겨둔 감성을 자극한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은 저렇듯 귀엽다. 해맑게 웃는 아기의 모습이, 엄마 젖을 빠는 강아지가 그러하고, 이제 막 싹을 틔우는 식물의 어린싹이 그러하다. 이렇게 봄은 어린아이의 해맑은 빛으로 다가온다. 잎이 때로는 꽃보다 더 예쁘다. 순천만의 정원에서 연한 분홍이 눈길을 잡아끄는 삼색 버들의 아름다움은 잎이 꽃보다 예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버들은 고고히 봄빛을 머금은 채 제 색깔을 낸다. 이름 모를 풀잎들이 자신만의 빛으로 존재감을 나타낸다.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시다. 잎은 꽃보다 생명이 길다. 황홀함을 유지하기에는 꽃보다 잎이라는 식물들의 놀라운 진화를 경험한다. 벌의 치근댐을 싫어하는 꽃의 변신이다. 원래 꽃이 아니고서야 이렇듯 순수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봄은 이렇게 연한 빛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면서도 화려하게 다가온다. 파스텔 색조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마음을 움직인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봄을 맞는다. 봄의 빛깔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벚꽃과 복숭아꽃의 연한 빛깔은 성장하기 전 어린 빛깔이다. 짙은 색깔로 자신을 감추지 않은 순진한 아이의 색이다. 개나리꽃의 하늘거리는 노랑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린아이의 빛깔이다. 오늘 하루,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 같은 유년의 빛깔로 하루를 산다. 순수함은 이렇게 때론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 은은함 속에 온전히 내맡겨진 나를 본다. 운전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창문 너머로 출렁이는 라일락 향기에 빠져 차를 세운다. 코를 간질이며 파고드는 향기에 한참을 머문다. 콧구멍은 향기를 쫓느라 킁킁거리고 시간은 저 홀로 간다. 향기와 연한 빛이 만드는 동화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새 나의 빛깔도 묵은때를 벗고 연한 빛으로 바뀐다. 봄의 빛깔이 나를 감싼다. 자신이 가진 순수한 빛깔로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겨울을 이기고 자신을 단단히 다스린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민낯을 그대로 보여 주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처럼 새로운 생각으로 곡을 해석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경지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진다. 단지 연한 빛깔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리라. 따사로운 햇살에 최선을 다해 물을 끌어 올리며 반짝이며 살아가는 모습에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반짝이며 살아가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을 연 것이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 순간에도 자기다움을 유지하는 어린잎을 보며 봄의 흥취에 빠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는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어쩌면 빛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시간의 흐름에 달라지는 자연의 색상에도 불구하고 맑은 빛깔만은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

2026-04-29

장수시대

오늘도 어김없이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별다른 용건은 없다. 그의 집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 내 사무실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 연말 퇴직한 그는 요즘 도서관 가는 일을 하루 일과처럼 삼고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는 같은 시간에 같은 걸음으로 이 길을 지난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고개만 까딱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고, 물 한잔으로 숨을 고른다. 빈 종이컵을 쥔 채 내게 묻는다. 표적치료 보험은 들어 두었느냐고. 마치 안부를 묻듯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이 나이에 또 새로운 보험을 들어야 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암이 정복되는 시대라며 말을 이었다. 치료비가 워낙 비싸니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로 만든 보조기구만 있으면, 관절염으로 걷기 힘든 사람도 산을 오른다지 않는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며, 누군가는 로봇의 힘을 빌려 다시 걷는 연습을 한다고도 했다. 머지않아 장기 교체도 가능해질 것이고, 어떤 이는 200세 시대를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과장처럼 들리면서도 그렇다고 허황되지는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해 왔고, 앞으로는 더 빠를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더듬어 180세쯤 된 나를 떠올려 본다. 가진 것은 넉넉지 않지만, 그 시대에 맞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혼자서는 외출은커녕 차려진 밥상에 앉는 일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내가 된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굳어가는 손끝, 그리고 말없이 길어지는 하루. 그렇다면 내 아들은 150세나 되었을까. 그 또한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지 모른다. 120세가량 되는 손자는 로봇의 도움으로 혼자 생활하고 있을까. 사람보다 많은 기계 속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삭막함이 생활화 되었을까. 이미 로봇이 되어가는 90세쯤 되는 증손은 제 삶을 꾸리기에 바빠 제 아비를 돌아볼 겨를이나 있을까. 늦게 결혼해 마흔의 고손이라도 있다면, 그는 180세의 할미인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까. 나는 그의 존재를 알까. 핏줄로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각자도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 그려진다. 그때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건너는 하루는 창밖을 몇 번이나 바라보고, 벽에 걸린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루를 밀어내는 눈앞에 잠만이 왔다 갔다 한다. 그 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머님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장수라는 말이 더는 축복처럼 들리지 않는다. 살아 있음이 아니라, 버텨냄에 가까운 시간들. 누군가에게 기대어 이어가는 하루가 반복된다면, 그 시간을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도 좋겠다. 내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날들,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의지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날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보험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 말했다. 아프면 그냥 죽을 거라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만 오래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친구도, 대화할 그 누구도 없이 살아가는 일이 과연 삶일까. 후손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닥친 고통을 지켜보며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지만, 더 나이 들어 그러하다면 나는 자연에 순응하겠다고 했다. 말로는 쉽게 내뱉었지만, 그 말이 나를 향한 다짐인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못 믿겠다는 듯 웃었다. “그 말, 나중에 바뀔걸요?”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단단하지 않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보다 버텨야 할 이유가 많아지는 날이 온다면, 나 역시 생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늘그막 눈서리 끝에 폭설이 올까 두렵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사는 일보다 오늘을 느끼며 사는 쪽을 택한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순간의 시간을 살아내는 일. 그 하루가 쌓여 삶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는 도서관으로 향했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각자의 방식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올 봄, 벚꽃이 유난히 예쁘다. /윤명희 수필가

2026-04-22

꽃비는 내리는데

꽃비 오는 속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 부부가 되기로 언약한 인생의 시작이 꽃길이다. 저렇듯 모두가 축복하는 속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팔짱을 끼고 함께 걷는 걸음이 행복해 보인다. 이제 시작하는 그 걸음이 늘 꽃비 속을 거니는 일상이었음 좋겠다. 예식장 방문 후에 어머니에게도 꽃바람을 쐬어 주고 싶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여쭈니 H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했다. 어머니는 H 할머니에게 결혼 부조금을 받기만 한 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빚도 갚을 겸 안부가 궁금한 것이었다. 경산의 요양원으로 향했다. 대구를 넘어서 요양원 인근으로 가는 길옆 밭에는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논밭을 지나 언덕 위의 요양원으로 가는 길에 벚꽃이 터널을 이루었다. 그 길을 따라 굽이진 도로 끝에 요양원이 자리한다. “죽으려고 들어왔잖아.” 여기서는 죽어야 나가지, 죽기 전에는 못 나간다. 첫 마디가 가슴에 맺힌 한을 토해낸다. H 할머니와 우리는 어릴 적 한집에서 살았다. 6·25로 신랑을 잃고 아들 하나만을 믿고 살아왔다. 나이 90에 아직도 꼿꼿한 허리는 건강을 말해 주지만 자식을 생각함인지 여기 들어올 때는 기어서 다녔다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두 번씩이나 한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감쌀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이 슬픈 멜로디로 천천히 흐른다. 그 마음을 아는지 창밖에는 꽃비가 내린다. 유족 연금으로 병원비와 약간의 용돈만을 받는다고 한다. 벌이가 없는 자식이 연금을 떼어서 생활비로 쓰고 있으며, 입원 후 아이들이 이사하여서 집도 모른다고 한다. 자신이 살던 집은 손녀의 결혼 자금으로 쓰이고 갈 곳 없는 할머니가 갈 곳은 요양원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현대판 고래장은 요양원 밖으로 어머니를 보내지 말라는 며느리의 요구를 철저하게 이행한다. 돈을 주는 사람의 목소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못난 자본주의의 틀이다. 철저한 틀이 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벚꽃이 날리는 뜰에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만나지 못한 그동안의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벚꽃이 핀 뜰을,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만남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꽃잎은 주위를 가득 메웠다. 이제 곧 끝이 날 만남이 아니라 긴 만남을 축복하는 꽃비였으면 좋으련만. 돌아오는 길에 경산의 한의대학교 캠퍼스를 차로 돌았다. 벚꽃이 가득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어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활짝 핀 벚꽃에는 관심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잿빛이 되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깝다. 눈물처럼 바람에 떨어지는 꽃비가 저리로 날린다. 어제도 사위에게 맞아 죽은 장모의 시신이 캐리어에 이삿짐처럼 담기어 신천을 떠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일터로만 내몰고 가정을 돌보는 일은 모른 체 한다. 아버지로도 모자라 어머니마저도 돈을 벌게 만들고 아이들은 돌봄센터를 전전한다. 지친 잠결에 부모를 보고 소젖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쩌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일까. 삶은 과정이다. 부족한 음식이라도 함께 나누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 아닐까. 옆에 있는 이웃을 알고 친구를 만나고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 차를 나누며 좋아하는 걸 하고 살 때 우리는 더 많이 웃지 않을까. 혼자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보내기보다 친구와 공을 차는 게 더 인간답지 않을까. 삶에 지쳐 사는 것이 힘들다고 여길 때라도 우리는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식장에도 요양원에도 꽃비는 내린다. 꽃비 속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고, 다른 두 사람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나눈다. H 할머니를 두고 돌아서는 마음이 먹먹하다. 돌아오는 길에도 꽃비는 내리는데 따뜻하지 않음은 비가 가지는 속성 때문인가. /김규인 수필가

2026-04-08

불심을 깨우다

공방으로 들어서니 길게 누운 불화(佛畫)들이 나를 맞는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수문장처럼 마주 본다. 아미타회가 그려진 후불탱화와 호법신을 묘사한 신중탱화가 게으름을 피우며 바닥에 뒹군다. 오백나한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석가모니불의 영취산에서 설법 장면이 그려진 영산회상도가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다. 문경 하늘재 골짜기에서 경북 무형문화재 제39호 김종섭 불화장(佛畫匠)을 만난다. 장인에게 관음불교미술연구원은 불화를 그리는 공방이요 불화의 맥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흩어진 마음을 다잡는 기도처요, 힘이 들어 쉬는 삶의 쉼터이다. 그림은 돌을 찾는 일에서 시작한다. 색깔이 좋으면 작은 돌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돌을 집어 든 장인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돌을 씻고 같은 색을 모아 기계에 넣고 철판의 간격을 좁혀가며 돌을 간다. 씻을수록 선명해지고 갈수록 작아지고 장인의 바람은 커진다. 가루를 모아 채질하는 장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루의 은은한 빛깔이 작업장에 번진다. 그릴 때마다 몸을 씻고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는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깨끗한 몸가짐과 단정한 옷차림에 말이 없다. 스님이 되어도 환속하여도 기도하고 자신을 닦는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불화를 통하여 부처에게 다가가는 몸가짐은 그대로이다. 붓을 잡으면 그림과 하나가 된다. 정신을 모아 선을 그으면 시간도 정지한 듯 머문다. 주위는 고요하고 새 한 마리 울지 않는다. 손은 리듬에 맞추어 점을 찍고 선을 긋고 면을 칠한다. 한 점 한 점 찍어나가는 흰 점이 입체감을 더한다. 검은 선으로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처의 몸. 상호에 마지막으로 점을 찍는다. 부처님이 번쩍 눈을 뜬다. 장인이라도 마음 씀에 따라 상호는 다르게 그려진다. 불화에서 상호가 중요하다는 장인은 법당에 올라가 기도를 드린다. 기도가 받아들여지면 부처님의 얼굴을 그린다. 수십 년을 그려도 상호는 그릴 때의 마음이 반추되어 나타난다. 그릴 때마다 얼굴이 다르다고 말하는 장인이 눈을 크게 뜬다. 손이 떨리거나 힘이 들어갈 때, 몸을 씻고 법당으로 간다. 절을 올리고 앉아 참선에 든다. 시간이 흐르면 손끝이 가벼워진다. 불화를 그리는 일에 몸과 마음은 두 개가 아니다. 몸이 마음을 따르고 마음은 몸을 따라서 나아간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붓끝에 부처님이 담긴다. 돈을 생각하면 한낱 그림에 불과하다. 물욕이 눈 앞을 가리면 부처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굳게 믿는 마음이 있어 불화를 그린다. 애착도 있지만, 사십여 년 한결같이 붓을 잡게 한 힘이 따로 있다.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기원은 아니다. 부처를 통해 중생을 깨워야 한다는 사명감이다. 산업 사회의 압축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 짧은 기간에 이룬 부(富)에 익숙하여 정상적인 돈의 흐름에는 만족을 모른다. 기회를 틈타서 큰 이익을 얻으려 한다. 늘 한몫 챙기려고 생각한다. 투기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물욕에 가까이 서 있는 한 부처를 만나기는 힘이 든다. 월등한 세력으로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누른다. 쉽게 고르고, 함부로 다루고, 그냥 내보낸다. 돈으로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려 한다. 한 줌의 권력을 행사하느라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다. 사람을 막 대하느라 머리 위의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다. 부처와는 멀리 떨어진 별에 산다. 상대방에게 중상모략을 일삼고, 공천받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칼자루를 쥔 자에게는 굽신굽신한다. 공천에서 탈락하면 다시 모인다. 그들에게 굳은 마음은 찾기 힘이 든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인간에게 불성이란 마음을 부처답게 가지는 일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성을 만날 수 있다. 불쌍히 보고 높이 보고 너그럽게 보는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면. “부처님 되세요.” 장인이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넨다. 장인은 불심을 그리고 중생은 부처의 마음을 읽으며 자신에게 내재된 불성을 깨운다. /김규인 수필가

2026-03-25

관성에서 벗어나기

병오년 새해가 밝았지만 내 일상은 여전히 같은 궤도를 돈다. 해가 바뀌면 무언가 달라지리라 기대하지만, 아침에 눈 뜨면 익숙한 동선이 기다린다. 일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반복. 그 반복이 나를 안정시키기도 했지만, 어느새 익숙함은 관성이 되어 나를 가만히 묶어 두었다. 새해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는데, 작년과 같은 궤도를 돈다. 지난해도 그렇게 흘렀다. 달이 지구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듯 내 하루도 판박이처럼 돌았다. 느슨하거나 게으르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남은 건 손에 닿지 않는 성과와 허접한 문장들뿐이었다. 칼럼을 쓰고 잡지에 원고를 실었지만, 내가 꼭 필요해서 쓴 글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작품집을 내는 작가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마음만 조급했다. 책상 위에 쌓인 그들의 작품집을 보며 봉투를 뜯지 못한 채 그냥 바라만 본다. 부러움과 자책이 번갈아 올라온다. 얼마나 더 글을 쓸 수 있을까. 건강 검진에서 의사는 건강에 이상은 없으나, ‘근력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그 말 한마디가 마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음은 스무 살인데 몸은 나이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실이 불현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뒤늦게 근력운동을 시작했지만 막연한 불안과 의미 없는 조급함이 줄어들진 않았다. 그나마 헬스장에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는데 위안을 얻었다. 관성은 나를 편안한 자리로 다시 데려다 놓고, 그 자리에 머물다 시간을 흘려보냈다. 계획표엔 야심 찬 목표들이 빼곡했지만, 연말이면 남는 건 아쉬움뿐이었다. 스스로를 부지런하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주어진 일에 밀려 나의 삶은 누군가가 짜 놓은 시간의 틈으로 흘러 들어갔다. 앞을 향해가는 대열에서 나만 뒤로 밀려났다. 익숙한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가지를 고치기로 했다. 느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감이 있는 글쓰기.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하며 결과를 모아 한 권의 글쓰기 책을 내기. 집중을 위해 몸을 더 챙기고, 반시계 방향으로 운동장을 도는 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작은 저항이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시간을 거스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숙달이 되면 궤도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술잔을 기울이며 나를 위로하고 설득해야 했다. 누군가의 성취를 부러워하기보다 내게 남은 하루를 어떻게 쓸지 묻기로 했다. 부지런함이 곧 생산성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되, 꾸준히 한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작지만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고, 한 시간이라도 책 속에 머무르는 날을 쌓아 가기로 했다. 시간은 야박하게 흘러간다. 유통기한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그 속도는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반시계 방향으로 운동장을 돌았다. 돌면서 생각하리라. 내가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을.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관성을 벗어나 나의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게 남은 중요한 일이라면, 이제는 관성에 기대지 않고 일부러 걸음을 바꿔 걸어야 한다. 시작은 늘 불안하지만, 살면서 쉽게 이루어진 일이 있었던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결과는 늘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삶은 늘 힘들고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글이 내게로 다가오는 날도 오기를 소망한다. 묵묵히 길을 가다가 보면 어느 날은 단어 하나가, 또 다른 날은 문장 하나가 올라올 수도 있으리니. 문장들이 모이면 한 편의 글이 되고 책이 될 수도 있으리니. 내 꿈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리라. 작심삼일. 그러기에 하루하루를 살리라. 삶은 일생의 모든 하루의 집합임을 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휘둘려 한눈을 팔지도 않으리라. 먼 미래를 위해 살겠다고 하루를 허투루 보낼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만 생각하며 살면 되는 것을. 성실한 하루에는 작심삼일은 발도 붙이지 못한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그렇게 글만 보며 하루를 살아가리라. /김규인 수필가

2026-03-04

욕바가지

진료를 받고 약까지 챙겼다. 바람이 차다. 목도리를 여미고 잰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이 듦을 확인한 탓일까. 요즘은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마음이 가볍지 않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내 차 앞을 가로질러 화물차 한 대가 서 있다. 앞 유리에 붙은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두어 번 신호가 가자, 곧바로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다. 잠시 뒤, 화물차 주인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그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다. 차를 몰고 나가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다. 같이 고개를 숙이며 내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차에 올라 약봉지를 조수석에 두려는 순간, 누군가 차창을 툭툭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내렸다. “야! **, 이 땅이 니 꺼가?” 창문이 다 내려가기도 전에 욕이 먼저 들이닥쳤다. 반말에다 날 선 욕설에 순간 멍해졌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남자가 허리에 손을 얹고 서 있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화를 내지? 병원 건물 벽에 붙은 주차장 화살표를 보고 들어왔고, 빈 공간에 차를 세웠고, 주차 선도 어기지 않았는데. 기억을 빠르게 더듬어 보아도 내 잘못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다짜고짜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 병원이라고 하자, 그의 입은 더 거칠어졌다.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앞뒤 없이 퍼붓는 욕설 사이사이에 요지가 보였다. 이 곳은 자기 땅인데 왜 마음대로 주차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그 땅이 개인 소유라는 표시가 없었다. 주차금지 팻말도, 안내문도, 경고 문구조차 없었다. 그저 병원 옆에 비워진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 곳에 잠시 차를 세웠다는 이유로, 나는 마치 큰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욕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다시 돌아보니 병원 주차장은 조금 더 안쪽에 있는 게 보였다. 얼른 고개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몰라서 그랬어요. 다음부터는 주차 안 할게요.” 나의 사과는 그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는커녕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조심하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 일을, 그는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잡스런 말들로 나를 깎아내렸다. 사과를 하면 할수록 그의 말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공격했다. ‘여기가 당신 땅이라는 표시가 어디 있느냐’고, ‘그렇게 욕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욕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대꾸 한마디 하지 못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는데, 눈만 끔뻑이며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천천히 차창을 올렸다. 그의 목소리는 유리창 밖에서 둔탁하게 찌그러졌다.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참아. 참는 거야. 아니, 참을 일도 아니야. 너는 준다고 다 받니? 뭐든 받지 않으면 결국 그건 준 사람 몫이 되는 거지.’ 시동을 걸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최대한 침착한 손놀림으로 차를 움직였다. 지금 네가 뱉은 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너에게 선물로 되돌려 줄게.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이드미러 너머로 그는 여전히 손짓을 해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자꾸만 떨렸다. 입에서는 ‘허, 참’이라는 말이 연신 새어 나왔다. 분노도 억울함도 아닌, 뭐라 이름 붙이기 힘든 감정이었다. 어딘가에 이 기분을 풀어놓고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욕바가지를 그대로 되돌려주고 왔다고 하자, 그녀는 잘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다. “얘, 밖에서 새는 바가지가, 안에서는 안 샐까?” 순간,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안 보면 그만이지만, 욕바가지 속에 사는 그의 가족들은 매번 휘청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입이 언젠가 가족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해 봤을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현관문을 열자, 아무 말 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 공간이 고맙다. 조금 전, 내가 받지 않기로 한 욕 중에 하나라도 우리 집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조용히 목도리를 풀었다. /윤명희 수필가

2026-02-18

책방,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사람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렌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발소리인지.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눈을 반짝이며 앞을 본다. 기대와는 다르게 나를 그냥 지나쳐 간다. 기대는 어느새 실망으로 바뀌고 마음은 초조해진다. 벌써 몇 번째 자리를 옮겼는지 모른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다가 끝자리로 옮긴 지 오래다. 하루에도 수십 종류의 새 책이 들어온다. 새로 들어오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다가 팔리지 않으면 구석으로 밀려난다. 나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처세술책 앞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괜히 화가 난다. “마음을 키우는 나를 읽어야지 처세에만 신경을 쓰다니.” 딱하다는 듯 나무라지만 주위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나를 보니 자꾸 작아진다. 이제는 누구라도 와서 한 번이라도 만져주기를 바란다. 동화책과 처세술책은 가운데에서 보란 듯이 웃는다. 아이는 책장을 넘기며 책을 살핀다. 옆에 있는 책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긴다. 책을 보다가 크게 웃는다. 동화책 주변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도 책을 고른다. 옆의 처세술책 앞에는 사회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책을 살핀다. 책을 사려는 사람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수필집은 독거노인이 된 지 오래다. 기다려도 찾는 이도 없다. 같은 처지의 천자문이 다독이면서 한마디를 건넨다. “나이가 들면 다 그래요. 힘이 없어 멀리 다닐 수도 없잖아요.” 말이 끝나자, 어색한 정적만 감돈다. “저벅저벅” 발소리만 들어도 시집은 기겁한다. 매일 출근하듯이 와서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 몸이 온통 불었다. 어제 부은 몸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다시 온다니 시집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 오늘은 책장을 세게 잡아서 넘기는 바람에 몸이 아프다. 만질 때마다 몸을 움츠린다. 시집의 하소연을 듣고 동화책이 거든다. “말도 하지 마. 어린아이들이 오면 온종일 붙들려 시달려서 힘이 들어. 나를 읽고는 아무 곳에나 던져놓는 바람에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어.” 볼 때마다 그러는 바람에 몸뚱어리는 멍투성이에 노숙자가 될 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가만히 앉아서 책장을 가볍게 넘긴다. 아이의 눈빛이 반짝이며 책을 읽고 싱긋이 웃을 때는 얼마나 예쁜지. 나를 읽고 가슴 뿌듯한 표정을 지을 때는 큰일을 한 것 같아 어깨가 들썩거린다. 아이의 손때가 묻은 체취를 느낀다. 따뜻한 마음씨는 향기로 남고, 나는 다음날을 기다린다. 수필집은 혼기를 놓친 노처녀처럼 오늘도 팔리지 않아 초조해진다. 어떤 사람이 나를 살지 궁금했다. 그것도 이제는 시들하다. 여러 달을 바람 맞듯이 찾는 사람 없이 보내니 발만 동동 구른다.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 하는 데 그저 멍한 눈으로 본다. 언제 책장에서 밀려날지 몰라 몸이 흔들린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산다. 그래서인지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가끔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다. 아날로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책과 가깝다. 사람들은 책을 천천히 읽고 생각한다. 빠르기를 강조하는 디지털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책 읽기와는 거리가 멀다. “빨리”를 외치는 세상에서 책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전에는 감동적인 문구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 자신만의 느낌을 적는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현실은 자신을 찾는 그림자조차 찾지 못해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오늘도 바람을 접지 않고 기다린다. 주인을 만난 처세술책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시집은 침에 부풀린 몸을 말리기 바쁘고 동화책은 멍 자국에 약을 바르며 집을 찾기 바쁘고, 수필집은 오늘도 독거노인 신세가 된다. 팔려 간 처세술책에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내일도 새로운 처세술책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입을 닫는다. 읽고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날이 언제나 올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름만 깊어진다. 오늘은 외롭고 몸이 부풀고 멍이 들어도, 내일은 주인을 만나 하루를 나누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

2026-02-04

몽당연필

필통이 넘어지자, 촘촘히 꽂혀 있던 내용물들이 기지개를 켜듯이 바닥에 몸을 쏟아낸다. 볼펜을 집어 얼른 모니터에 뜬 전화번호 하나를 적는다. 필통을 일으키고 보니 참 많이도 꽂혀있었다. 가지각색의 볼펜 사이에 몽당연필이 볼품없이 끼어있다. 언제 꽂아두었는지 기억에 없다. 필통보다 키가 낮은 탓에 지금껏 눈에 띈 적이 없었나보다. 손이 먼저 쓰레기통을 찾는다. 폰을 들어 메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른다. 이번엔 상대의 반응이 좋다. 여러 가지를 묻더니 마치 일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난 양 좋아한다. 참 잘됐다는 말과 함께 내 나이를 묻는다. 책임자와 상의 후 바로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기대치를 한껏 낮춘 효과가 나타나는가 보다. 오래간만에 무언가 할 일이 생긴 듯, 기분이 들뜬다. 그런데 바로 전화하겠다던 사람이 몇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혹시 오늘 사무실에 들러주었으면 할까 봐 외투만 걸치면 나갈 수 있을 만큼 준비까지 했는데 말이다. 폰을 들어 배터리가 제대로 충전되었는지 확인을 하고는 현관 앞에 놓인 신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그가 나이를 묻던 그 순간, 목소리의 온도가 미묘하게 차가워지던 느낌이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그 일도 물 건너 갔나보다. 살아온 세월이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다. 일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숫자가 또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흑싸리 껍데기 취급을 받을 만큼 내 나이가 많았던가? 그들이 나를 얼마나 안다고?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기물이 된 기분이다. 마주 앉아 이야기 해 볼 기회조차도 가져보질 못한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진다. 지금껏 참 바쁘게 살아왔다. 두 살 터울로 업고 걸리며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에도 틈만 나면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다. 감질나게 배우는 것은 언제나 달디 달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나는 남편의 일을 도와 스무 해 가까이 사무실을 지켰다. 아이들을 거의 방목하다시피 하면서도 공부는 놓지 않았다. 이제 집에는 남편과 나 뿐이다. 아이들의 빈자리도 큰데, 연이은 부도로 갑자기 사무실 일도 손을 놓게 되었다. 바싹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했던 시간이, 갑자기 오뉴월 신작로에 내버려진 것처럼 늘어져 버렸다. 아침 일찍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안일은 잠시면 끝나버린다. 몸이 한가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도 많이 읽을 거라 도서관을 드나들지만, 정작 글은 눈앞에서만 알짱거릴 뿐이다. 친구들과의 수다도 귓바퀴에 겉돌고 있다. 바쁜 가운데 누렸던 달콤한 것들이 헐렁해진 시간 속에서는 낯설게 멀어져갔다.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것 같은 허기가 가슴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일거리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많은 구인란 중에, 전문성 없는 중년 여자가 할 만한 일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찾을수록 내 자신이 초라해진다. 물건은 시장에 내놔봐야 제값을 안다더니, 할 수 있을 것 같던 일들이 나를 쉰내 나는 늙은이 취급한다. 두려운 것은 주름이 아니라, 나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마음이다. 남편이 평생을 했던 일을 놓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나 또한 사무실 일 외에는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 짬짬이 했던 공부는 그저 내가 좋아서 한 것들이라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월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거부당한 마음이 채 식기도 전에, 방금 쓰레기통에 버린 몽당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필통 속에 가려져 있다가 겨우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버려진 그의 신세가 꼭 내 모습 같다. 그도 처음부터 몽당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남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손에 잡기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로 연필의 쓸모를 무시해버린 것이다. 서랍을 뒤져 잊었던 다른 연필들을 찾기 시작했다. 들쑥날쑥한 키의 연필들을 찾아 정성들여 깎는다. 탁자 위에 나란히 누운 연필들이 까만 눈을 반짝인다. 나는 다시 모니터를 뒤져 개중 가장 작달막한 것을 집어 전화번호를 적는다. /윤명희 수필가

2026-01-22

포맷해 주세요

“포맷해 주세요” 요즘 차만 타면 듣는 소리다. 주차해 놓은 내 차를 누군가 차를 후진하면서 박아서 범퍼가 손상되었다. 한 달간 영상이 남는 관리사무실의 CCTV를 보았으나 1주일 치의 영상만 남았다. 사고가 있은 지 10일이 지난 뒤였다. 마지막으로 내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았으나 영상이 없었다.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실망이 크다. “뭘 했느냐?” 한마디만 했는데 성깔이 있는지 차만 타면 포맷해 달라고 성화다. 별생각 없이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만날 때마다 못 살겠다고 포맷해 달라고 하니 나도 슬슬 화가 난다. 이제는 하지 않겠지 하며 기다린 지 얼마인가. 하지만 여전히 같은 톤으로 한결같이 말한다. 내가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보채니 말이다. 난감한 것은 둘만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있을 때도 계속 그러니 체면이 서지 않는다. 옆에 탄 사람이 얼마나 무심하길래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도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른다. 둘이 있을 때 포맷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최후통첩한다. 그녀도 단단히 성질이 났는지 수그러들 기세가 전혀 아니다. 같이 있는 내내 화난 목소리를 듣다가 헤어졌다. 얼굴을 붉히며 마주한 시간을 생각하면 괜히 만났다고 생각한다. 내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자기 말만 한다고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나와 만난 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뭘 했느냐?’는 한마디도 못 한다는 말인가. 그게 몇 날 며칠을 두고 화를 낼 일인가. 그동안 나와 함께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이제까지 모든 기억을 지워버릴 일인가 하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함께 출장 가면 말없이 나를 지켜주던 그 다정함은 어디로 갔는지. 하여튼 여자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어쩔 수 없어 다시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지겹지도 않은지 같은 말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이래서 마음이 상했다는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늘 같은 말만 한다. 처음 만났을 때나 화가 났을 때도 한결같으니, 처음부터 나에겐 어떤 감정도 없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하다. 이제까지 나와 같이 한 시간이 얼마인데 이까짓 일로 파업하듯이 없던 일로 하고 자신을 처음 상태로 되돌려 달라니. 말로 풀어도 될만한 일인데 말이다. 나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 혼자만 잘 먹고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시간이 나면 닦아준 시간이 말할 수 없이 많은데 말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른다.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이번 일이 있기 전에도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후방 카메라를 점검해 주세요.” 이 말을 듣고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시했다. 먼 길을 다녀왔을 때도 무덤덤하게 헤어졌다. 그래도 덕분에 낮이나 밤이나 그녀 덕분에 잘 다녔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한 것 같다. 이제는 앞도 뒤도 가릴 것 없이 전신이 아픈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말없이 무심한 경상도 사나이라고 해도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괜히 머리만 긁적인다. 이럴 때는 무슨 말로 풀어야 할지 딱히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난감하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노래를 들려준다. 소통이 중요하다. 말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생각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으니 말이다. 내일은 휴가를 내어서라도 그녀를 데리고 병원엘 가야겠다. 건강은 미루지 말고, 제때 치료해야 하는 데 말이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룬 것을 후회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상 포맷하려니 나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 같다. 무뚝뚝해도 마음만은 따뜻한 남자임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는다. 완전한 포맷 대신 나에 대한 기억만은 남기고 부분 포맷을 할 수는 없을까. 남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모든 건 때가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김규인 수필가

2026-01-14

알람브라 궁전, 시간의 문을 열고

햇살이 새뜻하다. 나는 알람브라 궁전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책을 펼치고 있다. 스페인 dosde 출판사에서 한국어로 출간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다. 매번 여행에서 돌아오면, 일상은 내게 익숙한 언어로 다시 말을 걸고 익숙한 길을 걷게 만든다. 그럴 때 여행지에서 구입했던 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면 이국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책은 풍경과 이야기로 가득하다. 알람브라의 역사와 무데하르 양식의 문양이 사진과 언어로 피어나 있다. 책갈피에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진다. 언제 끼워 넣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무척이나 반갑다. 바스러질 것처럼 얇고 마른 잎에서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초록으로 일렁이던 정원의 나무들이 다시 피어올라, 그때의 시간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지난 해 겨울, 나는 알람브라 궁전을 거닐며 시간의 경계에 머물렀다. 나는 현재에 살고 있는데 수많은 조형물을 마주할 때면, 과거 나스르 왕조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랍 왕들의 발소리를 상상하며 걷다 보면 익숙함과 낯섦,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흔들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었다. 돌과 도자 타일에 새겨진 아랍어 문구, 아라베스크 문양과 기하학적 곡선을 바라보며 나는 거대한 역사책을 읽는 것 같았다. 세월을 직조한 겹겹의 시간 속에 사람의 손길과 기도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나는 벽에 손을 대보았다. 그 순간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게 남겼던 부탁이 떠올랐다. 그는 정복자에게 쫓겨 가면서도 알람브라 궁전만은 무너뜨리지 말라고 간청했다. 보아브딜 왕은 북아프리카로 건너간 뒤에도 아름다운 궁전을 잊지 못했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알람브라보다 못하지만 비슷한 궁전을 지어 그리움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사자의 안뜰’이었다. 회랑과 마찬가지로 궁전의 여러 방을 연결해 주는 네모난 마당에 사자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 분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흰 대리석 바닥 위로 흘렀다. 열두 마리의 사자상은 말없이 입을 다문 채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긴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학자들은 궁금해 했다. 열두 마리의 사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 솔로몬 왕의 신전에 있던 철로 만든 황소, 일 년의 열두 달 혹은 열두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설까지 다양한 해석이 뒤따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은 술탄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무하마드 5세가 궁전을 건축한 시기에 사자 분수대도 같이 만들어졌기에, 사자들은 술탄의 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술탄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남았다. 사람은 유한의 존재이고 예술은 무한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회랑은 음영의 교향곡처럼 빛과 어둠을 조율했다.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공간을 넘어 흐르던 시간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가 귓가에 울려오는 것 같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물소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작곡가 타레가의 기타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며 책장을 넘긴다. 책에는 군데군데 QR 코드가 있어, 스캔하면 영상이 펼쳐진다. 궁전 내부와 공예품의 영상을 보노라면, 아름다움에 다시 매혹된다. 기념품 가게에서 책을 샀던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힐지도 모를 여행의 감동을 되짚게 하는 선물로 이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책은 가슴속에 고이 접어온 여행지에서의 감탄과 설렘을 불러와 주었다. 여행의 기억은 연기처럼 흩어진다. 그러나 책 속 문장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햇살에 반짝이던 중정의 물소리가 종이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 나는 문장을 음미하며 회랑을 걷고 분수 앞에 멈추며 정원의 나무 그림자 안에 머물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추억은 시간의 문을 열고 내 안에서 깨어나리라. /정미영 수필가

2025-12-17

부석사

들어간 병실에는 그녀를 덮고 있던 이불의 끝자락이 그녀의 흐느낌만큼이나 들썩였다. 그녀의 병실 침대 옆 작은 테이블 위에는 약봉지가 그녀처럼 구겨진 채 놓여 있었다. 일어나 앉은 그녀의 부은 얼굴은 몇 년 전 행복해하던 그녀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게끔 하였다. 남편의 폭력과 유산. 부석사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컷 울었다는 듯이 이불을 밀치고 일어나 푸석한 얼굴로 부석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젊은 그녀가 이렇게 털고 일어나 준 것이 고마워 아무 말 없이 길동무로 따라나섰다. 오르는 길목엔 젖은 연초록의 잎들이 비에 젖어 싱싱해 보였고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사과들이 빗속에서도 달짝지근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내린 비로 사과밭 앞에는 작은 도랑이 생겨 물은 무심히 흐르고 있었고 빗물은 흘러갈 뿐 본래의 것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와 내가 우산을 쓴 채 오르막을 거쳐 천왕문을 지났다. 천천히 걸어도 그녀는 힘들어 보인다. 삶의 모든 희망을 상실한 채 모든 것을 두 손에서 내려놓은 것처럼 텅 비어 버린 표정이다. 지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다고 그녀는 느낌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그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 때문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는데 돌아온 것은 고통뿐인 지금, 그녀는 어떤 마음일까. 지금 그녀가 그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 을 느낀다면 그녀는 성불(成佛)할 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에게 마음을 다 주지도 못하고, 이해타산(利害打算)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부석사를 오르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자문자답하다 긴 계단 앞에 서서 숨을 고른다. “선묘가 의상을 위해 목숨을 바쳐 용이 되었다면 의상 대사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을까?” 뜬금없는 소리에 그녀를 바라본다. 아마도 이해(理解)를 바라지 않고 한 남자에게 목숨 걸고 사랑한 것이 스스로 선묘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처럼 느껴졌다. 선묘와 의상조사와의 사랑 이야기는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부석사에 남아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랑하는 이의 안전을 염려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선묘의 행동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어리석은 이를 일깨우고자 하더라도 긴 세월 속에 묻혀 사라진 것에 로맨틱한 이야기 한 토막을 덧붙인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자신을 생각하지도 않고 단지 누군가에게 몽땅 주기만 한 것이 사랑이라면 받는 누군가는 얼마나 부담스러울 것인가.’ 혼자 생각에 젖어 계단을 오르자 목어와 북이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생겨나서 괴롭고, 존재해서 괴롭고, 존재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로우며, 사라지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나는 저 목어와 북을 쳐서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 아니 나 자신만이라도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기를 바라며 내 속의 북을 울리고 싶다. 내린 비로 웅덩이 가득 물이 차인 곳에 연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연꽃 가까이 손을 가져가던 그녀가 무슨 생각에서일까. “기다려 볼래. 그러다 보면 그의 마음이 다시 나에게 돌아올지도 몰라.” 가늘디가는 바람 소리같이 그녀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의상을 사랑했던 선묘가 용으로 변해 사모하는 임을 위해 드러누워 있다는 대웅전 계단 어느 곳에도 그들은 존재하지 않고, 멈추었던 비는 다시 내려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무량수전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큰 강을 이룰 것처럼 느껴졌다. 대웅전 뒤 곁엔 땅에조차 내려앉지 못하는 큰 바위가 있으니 선묘의 사랑이 의상조사의 가슴을 사랑으로 감화시키지 못하여 아직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인가?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혼잣소리로 중얼거린다. “사는 것이 부석(浮石)인 것을.” /배문경 수필가

2025-12-10

가득찬 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의 공기를 묘하게 흔들고 있다. 허윤희 화가의 개인전 ‘가득찬 빔’. ‘가득 차다’와 ‘비다’라는 두 의미가 한 문장 안에 놓인 제목이 막상 미술관에서 햇빛을 마주하니 더 깊게 와닿는다. 빛이 채워지는 순간 비워지고 비어 있는 자리에 다시 들어오는 반복을 보며, 화가가 펼쳐 보이는 작품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전시회에 오기 전, 화가의 책 <나뭇잎 일기>를 먼저 읽었다. 실존적 사유와 생태적 감각을 결합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의 시리즈 작품들 중 하나를 엮은 책이다. 그는 13년 동안 산책길에서 매일 나뭇잎을 채집해 실물 크기로 그리고 단상을 기록했다. 자연과 교감하며 예술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수행자적 삶을 살았다. 작가의 시선은 사라지는 것에 머물렀다. 나뭇잎은 사계를 통해 빛을 품었다가색을 잃고, 낙엽으로 뒹굴다가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소멸은어쩌면 슬픈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젠가는 소멸될 나뭇잎이 그림으로 그려져 영원히 남겨진 흔적을 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기억해 준다면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오늘 전시회 문턱을 넘으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목탄 벽화 드로잉의 크기에 놀라고, 멸종위기식물을 그린 그림 앞에서는 환경의 회복을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염원한다. 그 중에서 단연 최고는 현장에서 예약해 15분간 ‘관집’을 혼자 체험하는 것이다. 작가가 독일 유학 시절에집짓기 프로젝트를 하며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한다. “매일 새로운 날을 상상하며 관집을 짓는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관집을 만들게 된 배경을 떠올리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관집에 들어간다. 지치고 힘이 들 때 고향을 생각하며 동쪽으로 누웠다는 작가를 따라 나도 관집 안에 눕는다. 죽은 이의 전유물인 관 속에, 산 자인 내가 들어가 있다니.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떠오른다. 죽기 전에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내가 다짐하는 그 순간, 온몸 가득 죽음이 아닌 살아갈 이유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이 작은 관집은 죽음을 위한 방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한 장소 같다.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내 마음에 응어리져 있는 묵은 불안과 억울하게 남겨둔 말들, 정리되지 못한 관념이 바닥으로 찬찬히 내려앉는다. 관집에서 나오자전시실의 빛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집안의 어둠에서 빠져나온 탓인지빛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전시실에서 ‘해돋이 그림’을 마주한다. 관집에서 발산되던 정적과는 반대로 생성 에너지가 내 몸을 스친다. 제주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 세상 모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돋을볕을 반복해서 그린 작품을 보며 나는 포항 바다의 일출을 떠올린다. 늦가을 새벽, 집 근처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바람은 차갑고 어둠이 짙어 해가 뜨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한 순간 수평선이 붉게 열리기 시작한다. 아침노을은 늘 비슷하지만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허윤희 작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깊은 어둠과 붉은 선이 그림마다 똑같지 않고 변주되어 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대에 해돋이를 그린 화폭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숨결 같은 것이 스며있는 듯하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 산책로에 잠시 머무른다. 단풍잎으로 풍성한 나무가 이제 곧 찬바람이 불어오면 앙상하게 비워질 것이다. 그러나 비워진 공간에서 겨울 풍경으로 채워질 나무를 떠올리니 그리 애석하지만은 않다. 나는 이제 ‘가득찬 빔’이라는 말이 제대로 이해가 된다. 비워진다는 것은 다시 채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정미영 수필가

2025-12-03

비상연락망

오늘 따라 사무실이 조용하다. 점심으로 먹으려고 냉동실에서 백설기 하나를 꺼내 전자렌지에 돌렸다. 막 데워진 떡 냄새가 사무실을 채우는데, 옆 사무실의 소장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선다. 따끈한 떡을 꺼내어 같이 먹자고 하니, 그녀는 느닷없이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한다. 나는 어리둥절해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안 왔는데?”라고 했다. 그녀는 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하며 빨리 전화해 보라고 재촉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아니, 내 딸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뒤로 들려온 딸의 울먹임이 가슴을 서늘하게 쓸었다.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묻자, 왜 통화가 안 되느냐며 울음보가 터졌다. 분명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불안해 지금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에게 전화했더니 “아침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고 태평스레 말해서 더 속이 상했다나. 전화기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엄마가 통화가 안 되는데 어떻게 그리 태무심할 수 있느냐며 아빠를 원망한다. 제 나름 온갖 방법을 찾았던 모양이다. 인터넷 지도를 찾아 로드뷰로 찾아낸 옆 사무실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빨리 아빠한테 연락부터 하라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끊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색도 하고 음악도 들려주던 내 휴대폰은 어째서 갑자기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린 걸까. 이유를 살필 겨를도 없이 남편에게도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딸에게까지 전화가 오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가까이 사는 친구 부인에게 가봐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나는 추수 하느라 바쁜 그녀가 괜한 걸음을 할 것 같아 다시 또 전화했다. 움직일 입장이 되지 못한 그녀는 옆 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딸에게 전화를 해서 대신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감기 걸린 손자 추슬러서 나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며 얼른 전화를 끊었다. 더는 사람들을 움직이지 않게 하려고 가족 단톡방에 ‘살아 있다’는 문자부터 보냈다. 곧바로 아들이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통화 안 되면 얼마나 불안한지 아느냐고 투덜거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한 나절 연락 안 된다고 이리 부산스러우냐고 하자, 아들이 바로 받아친다. “엄마! 요즘은 휴대폰이 심장이야” 심장? 그 한 단어가 이상하게도 오래 울렸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심장이 멎는 듯,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 느낌을 말하는 걸까. 문득 지난해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매일이다시피 전화하는 아들이 며칠 째 소식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나 해서 아침 일찍 전화를 눌렀지만 신호만 길게 갈 뿐이었다. 출근하느라 바쁜가 싶어 넘겼다가 점심시간에도 받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녁이 되어도 소식이 없어, 불안감은 더 증폭되어 온갖 상상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혹시 쓰러진 건 아닌지, 혼자 사는 집에 누가 찾아와 줄 사람이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잠시 가 봐 달라고 부탁할 이가 없었다. 출근은 했는지 알아보려 해도 사무실 번호조차 내 휴대폰에 저장돼 있지 않았다. 딸에게 전화했다. 이야기를 들은 딸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방법이라는 말에 기대어 기다리는 동안 불안은 점점 더 짙어졌다. 차라리 직접 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차키를 찾아드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들의 목소리였다. 전화기가 고장 나 수리 중이라 했다. 누나가 카톡을 연달아 보내 노트북이 불나는 줄 알았다는 말에 그제야 딸이 말한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가족 단톡방에 미리 올렸으면 걱정하는 일이 없지 않냐”고 쏘아붙였다. 그때는 나도 그리 될 줄 몰랐다. 오전 한나절 동안 받지 못한 전화번호들을 일일이 찾아 눌러가며 다 설명하느라 바쁜 하루다. 예전에 혼자 사는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친구들 전화번호를 주고, 친구들에게는 자식들의 전화번호를 줬다던 이야기. 오늘은 그 말이 와락 마음에 안긴다. /윤명희 수필가

2025-11-26

내안의 잎이 시들기 전에

초등학교2학년인 지율이는 나에게 꼬마박사로 불린다. 나는 최근 들어 이 아이만큼 나를 붙잡고 자신이 아는 지식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해 주는 학생을 만난 적이 없다. 오늘도 나를 보자마자 벌레잡이식물인 파리지옥에 대해 뜻밖의 질문을 건넸다. “선생님, 파리지옥은 파리 세 마리를 먹으면 죽는 거 알아요?” 내가 알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며,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진지해 보여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전혀 몰랐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율이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마치 세상의 비밀을 막 풀어낸 사람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예요. 욕심을 너무 부려서 죽는대요.” 나는 그 말투가 어찌나 도덕책 같던지 웃음이 났다. 그러나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순간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찔렸다. 욕심을 부리다 죽는다니. 어쩐지 나의 이야기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몇 년 전, 나는 빈혈 수치가 높아서 고생했다. 아침과 점심을 습관처럼 자주 거르는 날이 많았고, 저녁마저 밤늦게 빵 한 조각과 커피로 때우기 일쑤였다. 잠을 자는 시간도 불규칙적이었다. 강의준비와, 읽어야 될 책, 맡은 일들이 온몸의 세포를 부유하며 나를 끊임없이 앞으로 밀어냈다. 밤이면해야 할 일들의 그림자가 자꾸만 늘어나 새벽이 깊도록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조금만 더 하면 돼.” 그 말은 어느새 내 안에 뿌리내린 주문처럼 나를 지배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다가 언제부터인가 어지럼증이 무시로 일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몸이 예전처럼 가볍지 않고 무거웠다. 하루를 힘없이 시작하기 일쑤였다. 나는 참을 만큼 참다가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진단은 빈혈이었다. 몸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체력이 바닥났으니 휴식이 필요하단다. 나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빙글빙글 끝없이 맴돌았다. ‘조금만 더, 하루만 더’라는 주문은 나를 갉아먹는 덫이 되어 있었다. 몸은 멈춰 섰는데, 마음은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바로 나였다. 지율이가 말해준 파리지옥이 떠올랐다. 파리 한 마리가 잎에 닿을 때마다 파리지옥은 한 번의 소화를 위해 온 에너지를 쓴다. 몇 번을 반복하면 그 잎은 기능을 상실해 더는 버티지 못해 시든다. 잎을 열어야 먹이가 들어올 텐데, 힘이 없어 더 열지 못한다. 그러나 식물 전체가 죽는 것은 아니다. 시든 잎 아래에서 새로운 잎이 조용히 돋아난다. 그렇다면 닫는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표시가 아닐까. 파리지옥은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에너지가 고갈되었음을 알아차리고 먹이를 더 이상 소화시킬 힘이 없을 때 잎을 다문다.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스스로 입을 닫는 것과 같다. 그 단순한 움직임은 생존의 방식이다. 돌이켜보면나는 그 지혜를 알지 못했다. 끝없이 삼키려고 욕심을 부렸다. 또한 파리지옥처럼 살아남기 위해 잎을 닫는 것이 아니라, 버티기 위해 ‘닫음’을 되풀이했다. 일에 치여 감정을 닫고관계 속에서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을 닫았다. 속을 털어놓으면 약해질까 봐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그런데 닫음이 쌓일수록내 안의 잎이 하나둘씩 조용히 시들고 있었다. 시드는 순간은 언제나 소리가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파리지옥으로부터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내가 품을 수 있는 만큼만 품고그 이상은 놓아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짜 생의 균형을 회복하는 첫 걸음일 것이다. 앞으로는 아무 감정이나 억지로 삼키지 말고일에도 욕심을 덜어내기로 했다. 이제 나는 일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금씩 여백을 주기로 했다.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창문을 연다. 내 안의 잎이 시들기 전에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멈춤의 시간 속에서내 안의 새로운 잎이 자라는 것을 느낀다. 그 잎은 더 단단하고, 더 푸르다. /정미영 수필가

2025-11-19

간장종지

기분 좋았던 술자리가 갑자기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조곤조곤 말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간다. 우리 앞에 서 있던, 나보다 열 살쯤은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른한 행복감으로 끝나야 할 술자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퇴근 시간, 남편이 술이 고프다며 데이트를 청했다. 데이트를 하자는 말에는 다른 곳에서는 내놓지 못한 뭔가가 있다. 마침 나도 할 말이 많은 터라 반가웠다. 집 앞에 새로 개업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를 머금은 하늘이 어둠과 함께 낮게 깔렸다. 안주를 저녁삼아 술을 마셨다. 서로 소주잔을 채워주며 이런저런 일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채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안주가 떨어졌다. 오징어 튀김을 주문한 게 화근이 되었다. 푸짐하게 담긴 갓 튀겨온 오징어와 고추는 금방 새 옷을 갈아입은 듯 향긋했다. 튀김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조금 풀렸다. 연신 맛있다는 말을 하며 주고받은 술잔에 취기가 제 먼저 올라앉았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응석부리듯이 일러 바쳤다. 평소 인품 있어 보이던 그가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인지 몰랐다느니 젊은 사람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며 고객의 험담을 주절주절 내뱉고 나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직 튀김이 반은 더 남았는데 간장이 바닥을 보였다. 아주머니를 불러 간장종지를 내밀자, 그녀는 셀프라면서 간장이 있는 곳을 향해 손짓을 했다. 남편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지금까지 고추장 종지도 앞 접시도 두 개씩 가져다 줬으면서 왜 간장은 한 개만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사람이 두 명이면 당연 간장도 두 개라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아주머니는 그것은 원래 하나 나오는 거라며 그 이상은 손님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라며 잘라 말했다. 작은 눈을 부릅뜨는 남편을 달래고 나는 얼른 일어나 아주머니가 손짓한 곳으로 갔다. 손바닥에 작은 종지를 얹고 걷는 걸음걸이에 간장이 출렁거렸다. 조심조심 걸었는데도 두어 걸음을 앞두고 그만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른 휴지로 닦으며 고개를 들자, 남편의 더 구겨진 얼굴이 보였다. 그는 다시 아주머니를 불러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온갖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돋우는 그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닌 일로 분위기를 망치는 남편이 어이가 없었다. 허둥거리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낮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그는 몇 번이나 우리 사무실에 왔다. 필요한 서류와 은행 일처리 준비물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확인했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막상 일을 처리해야 하는 오늘, 그는 서류 하나를 빠트리고 왔다. 일이 꼬이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밀었다. 낮에 그 남자에게 당한 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는데, 내 남편이 간장 한 종지 때문에 언성을 높인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남편과 아주머니 사이에서 몇 마디만 잘하면 웃음으로 끝날 일이었지만, 내 발이 슬쩍 아주머니 쪽으로 기울었다. “이 식당은 원래 그렇게 한다잖아요.” 날이 선 내 말투에 남편은 ‘원래’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이야기는 점점 원론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작 남편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은 하나도 내놓지도 못하고 술자리가 파장이 되었다. 내게 밀린 남편은 자기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계산대에 서 있는 주인에게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밥벌이의 힘듦이 간장 한 종지로 터져 나온 듯 했다. 나는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남편을 끌고 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그 젊은 남자를 흉 봤듯이 아주머니는 퇴근 후 그녀의 남편에게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산적같이 생긴 남자가 간장 한 종지 때문에 말이야.” 세상살이의 피곤한 마음을 간장 종지만큼 밖에 내보일 수 없는 소시민의 일상이 저물어 가고 있다. 종일 벼르기만 하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윤명희 수필가

2025-11-12

감천마을, 읽다

부산을 찾았다. 부산문인협회가 주관한 시화전에 전국의 문인협회에서 작품을 보내고 참석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경주문협에서 보낸 시화가 전시실 입구에 걸려있었다. 늘 보던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다가온 부산 문협사람들의 감성에 마음 또한 달달해졌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시화전 공간은 가득 찼고 식순이 끝났다. 부산문협이 계획한 부산투어가 시작되었다. 오년 전 소문으로 찾았던 감천마을이 스케줄에 있어서 변화를 볼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마음이 들떴다. 감천 문화 마을의 동남쪽에는 천마산이 있고, 북동쪽에는 아미산과 연결되는 아미 고개가 있다고 한다. 아미 고개를 지나면 화장골로 유명했던 아미동 골짜기로 이어진다는 설명을 들었다. 남쪽에는 감천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구덕산이 솟아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지형이 그렇듯 산을 배경으로 도시가 형성되는데 감천마을은 어찌보면 산을 개간해 산의 아래에서 위로 아니면 위에서 아래로 마을이 수평과 수직을 이룬 큰 마을이다. 감천 문화 마을은 산기슭을 따라 밀집한 슬라브의 작은 집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다. 2009년 예술 창작 단체인 ‘아트팩토리인다 대포’ 주도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마을 곳곳에 조형물 10여 점을 설치하였다. 그들이 참여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마을 곳곳에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인해 미관 개선 사업이 이루어졌으며 ‘부산의 마추픽추’로 이탈리아의 ‘친퀘테레’를 닮은 마을, 또는 성냥갑 같은 집들이 레고를 쌓은 것 같다하여 ‘레고 마을’이라고도 불리고 있다니 사람의 힘이, 노력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에 선정돼 문화 예술촌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고 여러 곳이 새로운 색으로 의미를 둔 계획이 변화를 주었다. 마을의 빈집을 예술 창작실 혹은 갤러리로 개조하거나 북카페, 식당, 민박집 등으로 만들고, 마을 공터와 옥상을 생태 정원으로 바꾸는 등 주민 생활환경 개선 사업이 추진되었다. 현재 이 지역에도 기존의 동네 사람들이 살고 있어 편의시설과 일상이 이루어진다. 낯선 사람들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는 일도 있을 것이고 이익을 추구하며 그것이 번잡한 일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련만 찾아온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기웃거린다. 들어가 만지고 사기도 한다. 지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집 아래 집이 있고 또 그 아래 집이 있는 달동네라고 불리던 곳이지만 현재 보이는 대부분의 공간은 판매소가 되었다. 무엇인지를 꺼내놓고 상업을 시작한 곳이 살림살이만 하는 집들에 비해 무지 많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눈길에 붙잡힌 곳은 사람들로 붐빈다. 색색의 건물과 지붕이 사람과 무관하게 커다란 도화지에 유채색을 입힌 화려한 인상을 주는 공간이 언제부터인가 기존의 사람들을 살리는 공간이 되었다. 감천마을은 1950년대 6·25 전쟁 피난민과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산비탈에 집단으로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태극도 마을’로 불렸으나 2009년과 2010년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와 같은 공공 미술 사업을 통해 현재와 같은 ‘감천 문화마을’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계단식으로 이어진 집들과 미로 같은 골목길이 특징이며, 작은 소품 하나에도 색다르게 인식하게 되는 사람들로 인해 사람이 범람하는 공간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사람의 물결 속에서 함께 섞여 앞으로 나아갔다. 오년은 사람과 배경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어린 왕자 캐릭터가 귀엽다. 그곁에서 인증 샷을 찍기 위해 즐비하게 줄을 선 젊은이들을 본다. 한 장의 추억사진을 찍는 포토 존이 되었고 지붕은 컬러로 덧칠되어 있고 곳곳이 간식거리로 가득하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온 곳이라고 적힌 작은 가게가 보이고 외국인이 좋아할 음식들이 가득하다. 구 할이 외국인이다. 넘실되는 이방인 속에 나도 이방인처럼 걸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사람이고 사람이 만든 새로운 공간이 또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단체 사진을 몇 컷 찍고 돌아서 나오며 그곳에 꽃이 피어 있듯이 낡은 건물들이 덧칠을 하고 다시 사람 사는 공간이 되어 우뚝 솟아 있었다. 추억 사진 한 장이 웃는다. /배문경 수필가

2025-11-05

마음이 익어가는 계절

가을은 모여듦의 계절이다. 추석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고 여러 지역 축제마다 사람들이 찾아든다. 오늘 아침에 지인이 농사일을 돕기 위해 가족이 모여 있는 고향에 갔다고 연락했다. 잠시 후, 그가 손전화로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들판에는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였고, 탈곡기가 돌아가자 쌀알이 좌르륵 쏟아져 나오는 장면도 있었다. 장독대 옆에는 크고 작은 호박들이 줄지어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는 정겨운 모습도 보였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게 짙은 가을 향기가 무시로 전해졌다. 가을이란 단어는 ‘거두다’에서 왔다고 한다. 단어의 어원 속에는 이미 한 해의 눈길과 손길이 담겨 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면 햇살과 바람 속에서 시간을 견뎌낸 뒤, 마침내 가을이 되어 열매를 거둔다. 사람의 그 행위는 이름을 얻었다. 단순히 계절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의미를 얻는 순간이 바로 ‘가을’이 되는 것이리라. 봄이 초록빛 새싹을 틔워 우리의 눈을 열게 한다면, 가을은 손끝으로 알곡과 열매를 거두게 하여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가을이면 마을과 거리는 거둠의 손으로 가득 찬다. 들판에서 벼를 거두는 농부의 손끝, 밤송이를 주워 담는 아이의 손, 사과와 감을 바구니에 담는 아주머니의 손길까지. 그 손길이 모여 사람들의 축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을 축제에서 사람들은 송이버섯이나 풍기인삼, 사과를 사고, 전통 음식을 맛보며 다른 계절보다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느낀다. 나는 가을 축제하면 언제나 학창 시절의 운동회가 떠오른다. 교문에서 들려오던 상인들의 외침, 만국기가 휘날리는 운동장,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모래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기 전에 신발끈을 고쳐 묶던 순간들, 아이들과 어른들의 왁자한 웃음소리. 모든 긴장과 설렘이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 녹아 있었다. 그때의 운동회는 가족과 이웃이 모처럼 함께 어울리는 잔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이나 고모가 한마음으로 피붙이를 응원하고 이웃들도 구경삼아 왔다가 함께 경기에 참여했다. 콩주머니를 던져 박을 터드리면 색색의 종이처럼 쏟아지던 함성소리,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껏 외치던 응원소리가 푸른 가을 하늘을 흔들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돗자리가 펼쳐졌다. 김밥과 과일, 삶은 달걀과 밤, 통닭 한 마리가 놓인 자리마다 잔칫상처럼 먹을거리가 넘쳐났다. 그때만큼은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다. 편을 가르지 않고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먹었다. 운동회의 열기가 쉽게 식지 않았기에 우리들은 끊임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세월이 흘렀다. 요즘 도시의 운동회는 많이 달라졌다. 가족이 참여하지 않고 학생들끼리만 진행되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은 점심도 학교급식으로 대신한다. 학부모인 나는 지금도 가을이 되면 예전의 운동회가 그리워진다.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아래에 놓인 돗자리, 학년 단체로 부채춤을 추고 난 뒤에 내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아주던 친구의 따뜻한 손길, 운동장 한복판에서 신명나게 춤을 추시던 할머니들, 운동회에 울려 퍼지던 북소리와 노랫소리가 이제는 모두 추억 저장소에 아련히 남아 있다. 가을(秋)이라는 글자는 곡식 ‘禾(벼 화)’와 불 ‘火(불 화)’가 합쳐진 것이다. 익음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타오름의 계절이다. 낙엽 한 장이 땅으로 내려앉는 순간조차 잎사귀는 스스로를 붉게 불태우며 마지막 언어를 남기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을이 되면 사람의 마음도 익는다고 생각한다. 오래 품어온 그리운 기억이 결실을 맺어 더욱 빛을 내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제는 내 곁을 떠난 이들을 자주 볼 수 없어도, 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더는 만날 수 없어도, 그들의 목소리를 추억 속에서 불러내기에 가을만큼 잘 어울리는 때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게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마음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가을비가 연일 내리고 있다. 비가 그치면, 가을 햇살을 만끽하러 축제에 다녀올 요량이다. 가을을 온전히 즐기면서 기억을 저장해 둔다면, 다가오는 매서운 겨울에 마음만이라도 따뜻하게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정미영 수필가

2025-10-29

가을 하늘

살다보면 흐린 날 속에 가끔 무지개가 뜨는 날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라도 얘기하고 싶어 입이 저절로 달싹입니다. 얼마 전에 딸네에 다녀왔거든요. 현관문을 들어서자, 사위가 요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을 음식을 해 주고 싶었다고 하네요. 외국여행지에서나 맛볼만한 음식입니다. 이름이 낯설어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마음이 담긴 그것은 특별했습니다. 와인까지 준비했더군요. 식사가 끝나자, 꼬맹이 손자가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려 한껏 폼을 잡습니다. 음표에 몰두할수록 아이의 입이 자꾸만 벌어집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박수소리에 한 살 터울의 형아가 일어나 태권도 시범을 보입니다. 제법 진지합니다. 쳇지피티와도 대화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제 다 컸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옵니다. 집안을 둘러봅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펜트리도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이젠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이 아닙니다. 딸의 마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연년생 아기를 끌어안고 울던 딸이 조금은 여유롭게 보여 안심입니다. 딸과 사위의 찌그럭거림도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 여겼지만, 그 과정을 보는 내 마음은 늘 무거웠거든요.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자연스럽게 딸네 다녀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위가 차려준 밥상 얘기가 나오다 목에 걸립니다. 사위가 실직해 걱정이라는 친구의 말이 퍼뜩 떠올라서입니다. 이야기가 설렁설렁 겉돕니다. 이제 조금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더라는 말로 얼버무립니다. 길에서 친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딸네 잘 다녀왔냐고 묻습니다. “손자들 많이 컸지?” 라는 언니에게 나는 장난기가 심할 나이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언니는 꽤나 잘 나가는 아들이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거든요. 지인들이 손자 얘기에 열을 올릴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던 언니입니다. 내 마음이 흐린 날, 눈물 콧물 닦으면서 풀어놓아도 좋을 친구와 언니들. 미주알고주알 내 놓으면 마음을 안아주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좋은 일은 내 놓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낍니다. 슬픔은 들어주면서 내 위안도 되기에 조금 더 쉬운 걸까요. 나 또한 자랑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직장인이 된 아들이 용돈 주더라는 동생의 전화에 그때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요. 그런데 그 화살이 제 살기에 급급한 아들 녀석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생의 자랑이 은근히 아들에게 비난의 잔소리가 되었던 거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기쁨을 진심으로 받아주는 일도 마음의 여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요.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딸네의 얘기를 마음 놓고 얘기해도 되는 나의 대나무 숲은 누구일까. 문득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백점 맞은 시험지도, 상장도 엄마 앞에서는 마음껏 떠들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마치 천재 인 냥 자랑해도 엄마는 당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맞장구쳤습니다. 엄마는 나의 자랑꺼리가 더 있기를 바라셨지요. 그랬던 나의 대나무 숲은 이제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대나무 숲도 화를 낼 때가 있더라고요. 예전, 여동생이 아기를 업고 친정 왔을 때였습니다. 동생은 가끔 시어머니 얘기를 했습니다. 농사지은 것들을 챙겨주신답니다. 뒷손이 가지 않게 파를 다듬어서 신문지에 싸 아래 위를 노끈으로 묶어 한 가닥씩 빼 먹기 쉽게 해서요. 그 얘기를 몇 번 들었던가봅니다. 엄마가 벌컥 화를 내셨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요. 동생과 나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는 뜻이었는데 왜 화를 내셨는지, 그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함이 화로 번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압니다. 자식들의 무지개가 내 하늘입니다. 대나무 숲에 자랑하던 나는 이제 자식들의 대나무 숲입니다. 그들의 자랑으로 내 하늘은 무지개가 가득합니다. 주변인들의 무지개까지 다 품을 수 있는 나의 하늘을 가졌으면 합니다. 가을 하늘은 참 넓습니다. /윤명희 수필가

2025-10-22

끝과 시작 사이, 아홉 번째 파도

러시아 화가 아이바조프스키의 ‘아홉 번째 파도’를 들여다본다. 바다는 뒤집어질 듯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고 조각난 배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이 부표처럼 남은 파편에 매달려 간신히 생을 붙들고 있다. 사람들은 거센 물결에 삼켜질 듯 위태롭지만 기묘하게 붉게 빛나는 하늘은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스며들게 한다. 수평선 너머 붉게 번지는 태양빛은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을 동시에 일깨운다. 문득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떠올린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홉 번째 파도’라는 표현은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끝내 마주해야 하는 죽음과 맞닿은 고독의 절정을 상징한다. 죽음은 끝이면서 동시에 삶의 모든 고통이 멈추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고 우리는 첫 번째에서 아홉 번째에 이르는 물결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설 속 인물에게 파도에 휩쓸리고 싶은 충동과 끝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공존하듯, 죽음은 두려움이면서도 해방의 욕망을 품은 여행일지 모른다. 아홉 번째 파도는 유럽 바다 문화에서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최후의 물결이자 신화에서는 가장 거세다고 전해진다. 서양에서 숫자 9는 완성을 뜻하고, 동양에서는 끝과 시작의 경계라 여겨진다. 그래서 아홉 번째 파도는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이자 새로운 시작을 품은 상징처럼 다가온다. 끝이면서도 시작이고 절망이면서도 희망이다. 아이바조프스키의 그림과 로맹 가리의 소설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 역설 속에 있다. 붉은빛으로 번져오는 하늘은 단순한 태양의 광휘가 아니다. 인간이 끝내 붙잡고 싶어 하는 마지막 빛줄기이자 소멸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파도를 맞는다. 때로는 예고 없이 덮쳐오는 고난의 물결 앞에서, 때로는 지독한 상실의 소용돌이 앞에서 흔들린다. 대부분의 파도는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고 우리는 다시 숨을 고르며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 한 번은 피할 수 없는 아홉 번째 파도가 다가온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이 완결되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지인의 친정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처음에는 이름을 잊고 그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오랜 세월 아버지를 곁에서 돌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인의 얼굴에는 지친 그림자가 짙어졌다. 이제는 그녀가 누구인지조차 묻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무력감에 빠졌다. 그녀가 혼자서 슬픔을 삭인다고 생각하니 내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지인의 어깨 위에 아홉 번째 파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 그녀 아버지의 육신은 살아있지만 기억이라는 바다는 이미 무너져 내린지 오래되었다. 지인은 무너져 내린 바다에서 작은 널빤지를 붙잡듯 아버지의 손을 애절하게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언젠가 아홉 번째 파도를 건너갈 때, 그것이 두려움의 파도가 아니라 평화의 파도이기를 기원했다. 삶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파도의 연속이다. 내게 아홉 번째 파도는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은밀한 기다림처럼 다가온다. 그것이 종말이라면 나는 무엇을 놓아야 하고, 무엇을 끝내 붙들어야 할까. 파도의 거품 속으로 스러지는 순간 나는 과연 소멸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나는 이제 파도를 두려움만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아이바조프스키의 붉은 바다처럼, 로맹 가리가 새들의 죽음을 페루라는 존재하지 않는 땅으로 은유했듯이 죽음은 절망만이 아니라 희망의 길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아홉 번째 파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이전의 수많은 파도를 나는 정면으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게 다가올 아홉 번째 파도는 내 삶을 집어삼키는 어둠이 아니라, 나를 더 넒은 바다로 이끄는 빛의 물결이 되기를 바란다. /정미영 수필가

202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