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하루는 여유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을 다지는 책으로 30분간의 가벼운 독서를 한다. 한 잔의 차와 한 줄의 글이 주는 마음의 여유가 봄바람과 함께 창문으로 들어온다. 인터넷 카페를 둘러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가진다. 따사로운 봄바람과 함께 봄의 빛깔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연한 분홍빛을 머금은 벚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꽃봉오리가 맺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집 주위가 환하게 핀다. 햇빛은 꽃잎에 반사된다. 꽃잎을 머금은 빛에 눈을 뜰 수가 없다. 꽃잎 속을 돌아다니는 마음은 풍선에 매달린 듯 떠다닌다. 벚꽃이 품는 잔잔한 향기에 코는 연신 벌렁거리고 춤을 추는 꽃 무리에 눈은 연신 두리번거린다. 봄이 준 선물에 몸은 중력을 무시한 채 하늘을 난다.
순천만에 가고 싶다는 아내와 봄을 맞으러 나선다. 가는 길가에 늘어선 봄의 빛깔을 본다. 이제 세상에 나오는 때 묻지 않은 연한 빛깔에서 봄을 느낀다. 연둣빛이 마음 깊은 곳에 은밀히 숨겨둔 감성을 자극한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은 저렇듯 귀엽다. 해맑게 웃는 아기의 모습이, 엄마 젖을 빠는 강아지가 그러하고, 이제 막 싹을 틔우는 식물의 어린싹이 그러하다. 이렇게 봄은 어린아이의 해맑은 빛으로 다가온다.
잎이 때로는 꽃보다 더 예쁘다. 순천만의 정원에서 연한 분홍이 눈길을 잡아끄는 삼색 버들의 아름다움은 잎이 꽃보다 예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버들은 고고히 봄빛을 머금은 채 제 색깔을 낸다. 이름 모를 풀잎들이 자신만의 빛으로 존재감을 나타낸다.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시다. 잎은 꽃보다 생명이 길다. 황홀함을 유지하기에는 꽃보다 잎이라는 식물들의 놀라운 진화를 경험한다.
벌의 치근댐을 싫어하는 꽃의 변신이다. 원래 꽃이 아니고서야 이렇듯 순수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봄은 이렇게 연한 빛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면서도 화려하게 다가온다. 파스텔 색조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마음을 움직인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봄을 맞는다.
봄의 빛깔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벚꽃과 복숭아꽃의 연한 빛깔은 성장하기 전 어린 빛깔이다. 짙은 색깔로 자신을 감추지 않은 순진한 아이의 색이다. 개나리꽃의 하늘거리는 노랑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린아이의 빛깔이다. 오늘 하루,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 같은 유년의 빛깔로 하루를 산다.
순수함은 이렇게 때론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 은은함 속에 온전히 내맡겨진 나를 본다. 운전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창문 너머로 출렁이는 라일락 향기에 빠져 차를 세운다. 코를 간질이며 파고드는 향기에 한참을 머문다. 콧구멍은 향기를 쫓느라 킁킁거리고 시간은 저 홀로 간다. 향기와 연한 빛이 만드는 동화 속으로 빠져든다. 어느새 나의 빛깔도 묵은때를 벗고 연한 빛으로 바뀐다. 봄의 빛깔이 나를 감싼다.
자신이 가진 순수한 빛깔로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겨울을 이기고 자신을 단단히 다스린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민낯을 그대로 보여 주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처럼 새로운 생각으로 곡을 해석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경지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진다. 단지 연한 빛깔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리라. 따사로운 햇살에 최선을 다해 물을 끌어 올리며 반짝이며 살아가는 모습에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반짝이며 살아가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을 연 것이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 순간에도 자기다움을 유지하는 어린잎을 보며 봄의 흥취에 빠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는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어쩌면 빛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시간의 흐름에 달라지는 자연의 색상에도 불구하고 맑은 빛깔만은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