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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에너지 위기 이후, 자립도시가 필요하다

등록일 2026-04-07 15:28 게재일 2026-04-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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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필 한동대 교수

요즘 주유소 앞 가격 전광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철렁한다. 일반 가정도, 골목의 자영업자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전쟁이 우리 밥상물가와 골목 상권까지 흔드는 일이 이제는 낯선 일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세계의 불안정한 연결망 위에 일상을 얹어 놓고 살고 있다.

팬데믹 기간 영국에서 그 불안함을 직접 마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대형마트에 갔는데 신선한 채소가 가득했어야 할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오직 말라비틀어진 콩깍지 한 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풍요롭고 견고해 보이던 시스템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연결이 곧 경쟁력이라고 믿어왔다. 값싼 에너지와 자유로운 물자 이동, 촘촘한 공급망은 번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팬데믹과 전쟁은 그 믿음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지금 우리는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공급망은 흔들리고, 에너지 가격은 치솟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이제 도시는 얼마나 빠르게 연결돼 있는가 보다, 연결이 흔들릴 때도 스스로 설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자립도시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도시는 외부와 단절된 자급자족 도시를 뜻하지 않는다. 외부와 연결돼 있으면서도, 흔들릴 때 지역의 삶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갖춘 도시를 말한다. 적어도 먹고, 저장하고, 돌보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은 지역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외부 충격이 와도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 힘, 그리고 지역의 앞날을 남에게만 맡기지 않는 힘. 그 두 가지가 자립도시의 핵심이다.

자립도시는 단지 버티기 위한 장치로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위기에 대비하려고 만든 구조가 시간이 지나면 그 지역의 운영 방식이 되고 생활의 리듬이 되어, 결국은 도시의 정체성이 된다. 식량의 주권도 마찬가지다. 단지 비상시를 위한 대비책만이 아니라, 한 지역의 생산 방식과 시장, 문화와 삶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자립은 살아남기 위한 준비이면서, 동시에 그 지역이 자기 색을 잃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립은 연결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자립 기반이 있을 때 외부와의 연결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스스로 설 수 없는 도시는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니게 된다. 반대로 최소한의 자립 기반을 가진 도시는 외부와 더 대등하고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좋은 연결은 늘 버틸 힘 위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이런 구조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제로 느껴지고 쓰여야 오래간다. 보이지도 않고 쓰이지도 않는 시스템은 금방 힘을 잃는다. 그래서 자립도시는 결국 공간과 건축, 시장과 거리, 공공시설 같은 일상의 장면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이제 도시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넓게 연결돼 있느냐가 아니다. 연결이 흔들릴 때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어떤 질서와 풍경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다. 앞으로 도시의 생존은 거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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