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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 흐름을 담다···미디어아티스트 임창민 ‘Homage to 박동준’展, 대구 갤러리분도서 개막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4-15 14:49 게재일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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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민作

고요한 방 안, 창 너머의 풍경이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물결이 흔들리고, 빛이 흐르며, 바람이 스친다. 정지된 사진 속에 삽입된 영상은 익숙한 장면을 낯선 감각으로 되돌린다. 오는 4월 23일부터 대구 중구 갤러리분도에서 열리는 ‘Homage to 박동준 2026_임창민’전은 이렇게 ‘멈춤과 흐름’ 사이에서 감각을 일깨운다.

(사)박동준기념사업회와 대구 갤러리분도가 공동 기획한 ‘Homage to 박동준’은 고(故) 박동준 선생의 뜻을 기리며 매년 한 작가를 초청해 이어오는 헌정 전시다. 올해는 미디어 아티스트 임창민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갤러리분도와 깊은 인연을 이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신작을 중심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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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민作

임창민의 작업은 사진과 영상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한 화면 안에 중첩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실내 공간은 사진으로 정지돼 있고, 창밖 풍경은 영상으로 살아 움직인다. 이 이중 구조는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해온 ‘이미지’의 개념을 미묘하게 흔든다. 보는 이는 하나의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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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민作

 

이번 전시는 미디어아트 10점과 사진 7점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핵심 키워드는 ‘정중동(靜中動)’이다. 고요함 속에 깃든 미세한 움직임,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임창민의 화면 속 실내는 적막에 가깝지만, 그 너머 풍경은 끊임없이 흐른다. 이 대비는 관람자의 시선을 붙잡고, 감각을 서서히 확장시킨다.


특히 ‘창’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다. 창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이면서 동시에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다. 작가는 이 창을 통해 풍경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람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전통 건축의 ‘차경(借景)’ 개념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시도이기도 하다. 외부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공간을 확장하는 차경의 원리가, 디지털 이미지 안에서 새롭게 작동하는 셈이다.


전시는 동양 회화와의 미학적 연결점도 짚는다.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의 ‘소림명월도’가 보여주는 시선의 흐름과 정적 긴장 구조는 임창민의 작업과 묘하게 겹친다. 나뭇가지 사이로 배치된 달과 미세한 물의 흐름처럼, 그의 작품 역시 고요한 화면 속에 작은 움직임을 배치해 감상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작품 속 풍경은 실제 자연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수집된 장면들이 재구성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화면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관람자는 그 낯익은 이질감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호출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괴석을 주제로 한 사진 작업도 함께 소개된다. 기이한 형태의 돌을 재구성한 이 작업은 전통 회화의 ‘괴석도’를 연상시키며, 자연을 바라보는 동양적 시선을 현대적으로 확장한다. 촬영 이후의 편집과 개입을 통해 완성된 이미지는, 미디어아트 작업과 동일한 창작 원리를 공유한다.
빠른 속도와 과잉된 이미지에 둘러싸인 오늘날, 임창민의 작업은 정반대의 방향을 제시한다. 소리를 제거한 채 느리게 흐르는 영상, 움직임을 최소화한 화면은 관람자의 호흡을 낮추고 감각을 환기시킨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사유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Homage to 박동준 2026_임창민 전’은 결국 ‘본다’는 행위를 다시 묻는 자리다. 창을 통해 펼쳐지는 풍경은 바깥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관람자는 그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고, 잊고 있던 감각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 이어지며, 개막식은 4월 23일 오후 5시에 열린다. 느림과 고요, 그리고 미세한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이번 전시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을 건넬 것으로 기대된다.

임창민은 계명대 미술대학과 뉴욕대·뉴욕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제비엔날레 심사위원, 광주비엔날레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고, 포틀랜드 주립대 교환교수로도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전시됐으며, 국내외에서 개인전 25회를 개최했다. 최근에는 기업 및 공공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작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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