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찾아온다.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지인이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선물을 하자면서 돈을 거둔다고 해서 냈단다. 지인은 교단에 있다 정년퇴직한 분이라 씁쓰레 웃는다. 하고 싶으면 혼자 하면 되는 것을 꼭 선동하는 사람이 있단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그날 하루 선물로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태도에서 마음 자세가 갖춰져야 하는데 특정한 날에만 저렇게 요란을 떠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돈 거둔 사람이 선생님에게 가장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며 웃음을 짓는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과 같은 날이다.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스승 상을 기리자는 상징적 의미가 덧붙여졌지만, 그 출발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은사를 찾아뵙던 작은 실천이었다. 강경 여고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5월 8일을 맞아 스승을 찾아간 것이 시초였다. 이 날이 어버이날과 겹쳐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취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때 스승의 날은 학생들이 돈을 걷어 선물을 마련하는 날이 되었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촌지와 선물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키기도 했다.
스승의 존엄은 교육적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봉투의 두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잘나가는 부모를 둔 친구들이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때가 가정방문 이후와 스승의 날 이후라는 것은 아무리 철부지 어린 나이라고 해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폐단이 사회문제로 번지자 스승의 날 행사는 위축되었고, 아예 행사를 없애거나 휴업하는 학교까지 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사의 권위는 과거의 절대적 위치에서 벗어났고, 오늘날 교사는 법적 책임과 민원에 시달리는 노동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생과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 교육활동에 대한 불신, 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돌리는 풍토는 교실을 위축시키고 있다. 물론 과거의 권위주의적 교사상을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체벌과 차별이 묵인되던 시대를 미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사를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나 감정노동자로만 보는 시선 또한 교육을 황폐하게 만든다. 교육은 계약관계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이의 책임감과 배우는 이의 존중이 함께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스승의 은혜’ 노랫말처럼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다. 그렇다고 교사를 무조건 신격화하자는 뜻은 절대 아니다. 스승은 스승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며, 학부모는 교육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존경은 선물로 살 수 없고, 권위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 교실 안에 상호 신뢰와 책임의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스승의 날은 형식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되새기는 날이 될 것이다. 스승의 날이 진정으로 회복되어야 할 것은 선물 문화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다. 교사의 권위와 학생의 인권이 조화를 이루는 학교, 학부모의 협력과 국가의 책임 있는 교육 정책이 뒷받침되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진정한 교육의 모습이다.
/노병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