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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라는 하산

등록일 2026-05-14 17:35 게재일 2026-05-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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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라 변호사

지난 겨울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가볍게 월포 용산으로 첫 등산을 했고, 내연산 선일대와 문수봉, 삼지봉을 차례로 등정했다. 새벽 등산으로 간 비학산의 가파른 코스 중간, 포항 시가지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암바위에 앉아 쉬며 시원한 생수를 마실 땐 사람이 자신의 육체와 자연만으로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얼마 전엔 내연산 향유봉에 다녀왔다. 아침 일곱 시 반에 등산을 시작했는데, 하산해 보경사에 도착한 시간이 다섯 시 반이었으니 장장 열 시간의 산행이었던 셈이다. 향유봉에 올랐다는 기쁨과 성취감도 컸지만, 가장 뿌듯했던 것은 열 시간의 산행을 무사히 끝내고 안전하게 하산한 것이었다. 등산한 지 8시간쯤 되자 발바닥이 아프고, 기계적으로 걷고 있는 다리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고비마다 눈앞에 펼쳐지던 내연산 곳곳의 절경은 이런 신체적 한계와 통증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등산을 하다 보면 정상까지 오르는 것보다 하산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큰 집중력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오를 때와 달리 내려올 땐 조금만 집중하지 않아도 미끄러지거나 낭떠러지 옆에서 휘청거리는 등 위험한 순간이 생긴다. 정상에 올랐을 뿐, 하산할 때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등산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등산을 하며 얻은 기쁨과 건강을 원동력으로 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또 다음 등산을 기약하기 위해서도 안전하게 하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결혼과 인생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인생이라는 등산의 일부에 불과하다. 부부가 불가피하게 헤어지게 되었다면 조금 힘들더라도 이혼이라는 결혼생활의 하산을 잘 해놓아야 한다. 조급하게 이혼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생활고까지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전 부인이 원하는 대로 재산분할을 해주고 자녀들에 대한 양육비도 고액으로 정해 이혼했던 분이 상담을 왔다. 당연히 전 부인은 순순히 이혼 도장을 찍어주었고, 몇 년간은 이분도 자유를 찾는 듯했다. 무리를 해서 양육비를 보내며 전처와 자녀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사업이 힘들어지자 양육비를 보내지 못하는 달이 생겨났다. 그동안 많은 돈을 받은 전처가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의 엄마는 바로 형사고소와 감치 신청, 운전면허 정지 등의 모든 조치를 취해왔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변호사 비용이 들더라도 이혼할 때 형편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재산분할과 양육비를 정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돈이 생기면 주겠다는 상대방의 말만 믿고 조급하게 양육비나 재산분할금을 적게 정해 이혼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다. 하지만 법원을 통해 한 번 정한 양육비 등을 변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혼이라는 매듭을 잘 짓고 헤어지는 것은 결혼이라는 등산의 실패가 아닌 완성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한 고비에서 무사히 하산한 이후에야 비로소 인생의 다음 단계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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