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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봉학의 인문학 이야기..서양 철학은 붓다의 각주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5-18 18:01 게재일 2026-05-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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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봉학 변호사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는 말이 있다. 플라톤(고대 그리스철학자·기원전 428년~348년.)은 소위 ‘이데아론’으로 유명하다. ‘감각세계 뒤에는 영원하고 완전한 본질이 존재 한다’라는 것이다. 세계는 이데아를 복사한 것에 불과하며, 이데아에 충실한 복사본일수록 그 가치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 순위를 나열하자면, 최고는 이데아, 다음은 이데아를 복사한 복사본, 다음은 복사본의 복사본 순서이다.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Idea-Copy-Copy of Copy이다. 이데아가 ‘체리 따봉’이다. 이데아와 멀어질수록 그 가치는 떨어진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복사본의 복사본은 단순한 복사본조차도 흐리멍텅하게 만드는 거의 쓰레기 수준의 그 무엇인 셈이다. 플라톤은, ‘시를 쓰는 시인은 복사본의 복사본의 역할을 하는 자’이므로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하여 반기를 든 철학자가 있다. 플라톤에 있어 가장 비천한 것인 최후의 복사본은 복사본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진짜라고 주장하는 들뢰즈(프랑스 철학자·1925년~1995년.)가 그다. 들뢰즈는 플라톤을 비판하는 것에 평생을 바쳤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최후의 복사본은 영어로는 simulacrum, 불어로는 simulacre(시뮬라크르)이다. 들뢰즈의 철학적 핵심 개념인 최후의 복사본인 ‘시뮬라크르’라는 불어식 발음이 일반적이다. 플라톤에게 노비 신분 취급을 받던 시뮬라크르는 들뢰즈에 이르러 왕으로 신분이 상승된다. 들뢰즈는 복사본의 전제로서의 원본인 이데아를 부정한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복사본은 스스로 생성된 것일 뿐, 원본으로부터의 복사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플라톤의 시뮬라크르는 원본에서 복사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르게 생성되는 것으로 ‘차이’를 본질로 한다. 원본의 부정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중세 교부철학의 밑거름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화된 것이다. 이데아론은 진리 체계와 현상계를 나누어 서열화함으로써, 이데아와 복사본들에 대한 ‘권력의 서열화’를 초래하였다. 이데아를 장악한 자들은 권력의 정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린다. 진리 체계가 서열화되어 있으므로, 그 체계 사이에는 억압과 폭력의 개입은 당연하다. 들뢰즈는 플라톤의 타락한 가짜 시뮬라크르를 복권하여 새로운 차이를 생성하는 존재로 파악하므로써 권력의 서열화와 서열화된 권력 간의 폭력을 비판하였다.
 

지중해 연안에서 플라톤이 이데아를 외치고 있을 때, 동양의 인도에서는 모든 것은 변하며, 고정된 실체는 없다고 선언한 자가 있었다. 그가 붓다이다. 그는 이 세상을 아닌 저 세계에 원본 같은 불변의 그 무엇은 존재 하지 않으며, 우주를 주재하는 신 브라흐마의 속성인 아트만은 없다고 선언하였다. 세계는 원본에서 복사된 그 무엇이 아니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을 뿐이라는 연기론을 주장하였다. 절대를 부정하고, 오직 현실이 실재이며, 나머지(이데아조차도)는 모두 환.망.공.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들뢰즈와 붓다의 교설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들뢰즈가 붓다를 읽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붓다를 웃긴 남자 플라톤. 그의 철학이야말로 붓다의 각주일지도 모른다.

/공봉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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