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MBC 라디오 ‘김씨아재’ 종방한 방송인 겸 연극배우 이정대 씨 2004년 첫 방송 이후 6000여 일···단 한 번의 방송 펑크 없이 청취자 곁 지켜 “애정 어린 비판이 모토··· 이제 다시 연극 무대서 사람을 위로할 것”
매일 저녁, 구수한 포항 사투리로 지역민들의 희로애락을 전하며 포항MBC 라디오의 상징적인 목소리로 자리매김했던 방송인 이정대(61) 씨가 오랜 여정을 마무리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포항MBC 라디오 ‘라디오 열린세상’의 간판 코너 ‘김씨아재’를 21년 넘게 지켜온 그였다. 6월 11일 마지막 방송을 마친 그에게 제작진은 “매일 저녁 퇴근길, 청취자들의 따뜻한 동무였다”는 문구가 새겨진 감사패로 석별의 정을 전했다.
△6000여 일 동안 이어온 생방송, 철저함이 만든 ‘약속’
이정대 씨와 포항MBC 라디오의 인연은 지난 2004년 11월 4일 시작됐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스튜디오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후 ‘김씨아재’라는 독창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며 21년 7개월 동안 주 4회(월~목요일)씩 청취자들을 만나왔다.
‘김씨아재’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정겨운 아저씨의 시선으로 정치·경제·사회 등 다소 무거운 시사 문제를 쉽고 재치 있게 풀어내 큰 사랑을 받았다. 5분 남짓한 생방송을 위해 매일 3시간씩 사전 연습을 거듭했던 그의 철저함은 방송가에서도 유명했다. 작가가 고심해 쓴 원고를 존중하는 마음에 언제나 손을 깨끗이 씻고 두 손으로 대본을 맞이했던 일화는 그가 방송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긴장과 진땀의 연속인 생방송의 역사였다. 형님과 친구의 장례 기간 중에도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튜디오로 향해야 했고, 감기라도 걸려 목소리가 변할까 늘 건강관리에 노심초사했다. 포항MBC 파업 기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방송 펑크를 내지 않았던 그의 꾸준함은 라디오를 향한 강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원하게 긁어줘 고맙다” 청취자 격려가 가장 큰 보람
마지막 생방송을 마친 이 씨는 담담하면서도 깊은 소회를 전했다. 그는 “21년 7개월 동안 잡았던 마이크를 내려놓으니 여러 감정이 스며들지만, 특별한 실수 없이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하심에 감사드린다”며 “청취자들이 계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큰 보람 역시 청취자들의 따뜻한 반응이었다. 지인들을 통해 “속 시원한 곳을 긁어줘서 고맙다”, “구수하게 이야기 잘하더라”는 격려를 들을 때마다 마이크 앞에 선 보람을 느꼈다. 10여 년 전 죽도시장에 회를 사러 갔을 때, 그를 알아본 상인이 5만 원어치 주문에 10만 원어치에 가까운 횟감을 덤으로 얹어주던 정겨운 일화는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특히 퇴근길 라디오를 매일 지켜 듣던 버스나 택시 운전기사들의 격려는 그가 매일 방송을 이어 나가는 원동력이었다.
이 씨는 “‘김씨아재’의 모토는 언제나 지역 사회를 향한 ‘애정 있는 비판’이었다”며 “비난하듯 거칠게 비판하기보다, 지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하고자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칭찬과 덕담을 더 많이 나누지 못하고 비판해야 했던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고 전했다.
“세상사 소비되고 소모되는 모든 것들이 그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 다시 마음을 정리해 봅니다. 옆에서 지켜보시고 응원해 주신 청취자들과 많은 작가, PD, 엔지니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이크 내려놓고 다시 서는 연극 무대···삶의 울림은 계속된다
라디오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정대 씨는 1994년부터 무대를 지켜온 베테랑 연극배우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악대부에서 트럼펫을 불고 기타를 즐기던 활달한 소년은, 청년 시절 노동운동으로 인한 해고 등 삶의 깊은 굴곡을 거쳤다. 그리고 연극과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의 상처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 씨는 “앞으로 특별한 계획은 없다. 그동안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올곧고 바른 소리를 해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라며 “그동안 그래왔듯 가끔 연극 무대에 서며 삶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비록 ‘김씨아재’로서의 마이크는 내려놓았지만, 그가 매일 저녁 퇴근길에 흘려보낸 정겨운 사투리와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위로는 지역민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막을 내린 그의 여정은 끝이 아닌, 무대 위에서 인간을 위로할 또 다른 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