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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능뷰 미술관을 가진 경주

손님을 부르는 카페라면 커피 맛도 중요하지만, 뷰맛이 더 좋아야 한다. 경주라면 어디서나 능이 보인다. 특히나 능이 코앞에 있다면 최고의 뷰라고 할 수 있다. ‘어린왕자별’이라는 별명이 붙은 봉황대 부근에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등등 능 사이로 산책을 할 수 있게 고즈넉하다. 드라마 ‘아름다운 시절’이 이곳에서 촬영했다. 주말마다 이름난 가수의 공연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가장 경주스러운 동네에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노서동 고분군 공원 부지에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연면적 1594.06㎡ 규모로 지어진 오아르미술관은 일본에서 광고 사업을 하는 김문호 관장이 20여 년 동안 수집한 현대미술 600여 점을 바탕으로 건립되었다. 미술관은 유현준 건축가가 설계했다. 4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건축에 관한 강연을 왔을 때, 경주다운 미술관은 능과 비슷한 모양의 겉모습을 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올라 볼 수 있는 디자인의 건물이 들어서면 가장 경주다운 건축이라고 들려주었다. 공감 가는 이야기라 기대하며 미술관에 들어섰다.  ‘오아르’는 ‘오늘 만나는 아름다움’이란다. 이번 개관전은 일본 작가 에가미 에츠(Egami Etsu)의 신작과, 문경원 & 전준호 듀오 작품, 그리고 미술관 대표 소장품 컬렉션 으로 선보이고 있다. 세 가지 다른 주제를 가진 전시는 경주의 지역적 특성인 전통과 대비되는 다양한 글로벌 작품을 선보여 관람객들에게 참신한 경험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고 한다. 먼저 1층 제1전시실에서는 김문호 관장이 20년간 수집해 온 소장품을 선별한 ‘오아르 컬렉션(OAR Collection)’ 전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수집한 10여 점의 현대 미술 작품으로 구성, ‘열린 미술관’이라는 미술관의 미션에 따라 일반인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팝 아트와 스트리트 아트 위주의 작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너른 창으로 들어오는 능을 바라보며 앉아 그림 이야기 삼매경이다. 그 모습이 큰 화폭의 그림 같다. 카페이자 열린 전시 공간으로 만든 건축주의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표를 예매하고 2층으로 오르는 하얀 계단을 오르자 핑크빛 벽이 보인다. 벽에는 전시 소개 글이 붙었다. ‘지구의 울림(Echoes of the Earth)’의 주제로 떠오르는 글로벌 작가의 신작 17점을 국내 최초 공개했다. 에가미 에츠는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2020년과 2021년 ‘세상을 바꾸고 있는 30세 이하의 젊은 리더 30인’에 뽑힐 만큼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과거의 스타 - 마이클 잭슨, 비틀즈, K-POP 가수 등의 초상을 추상적인 화법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까이 가면 붓 터치만 보이나 몇 걸음 떨어져 보면 누가 봐도 마이클 잭슨이다. 그림과 2층 높이의 능이 성큼 창안으로 들어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미술관 뷰가 만들어진다. 3층으로 오르니 지붕이다. 계단이자 앉아서 경주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의자이기도 하다. 멀리 기와들이 붙은 동네, 낮게 엎드린 남산, 노서동 고분군까지 삼박자가 딱 맞았다.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 경치까지 미술관이 주는 선물이라 조용히 즐겼다. 지하의 제3전시실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팬텀 가든(Phantom Garden)’을 주제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문경원 & 전준호 듀오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관을 나오면 자연스럽게 고분군으로 길이 이어진다. 봄빛이 능과 나무에 물을 올려 연두연두하다. 능 주위를 한 바퀴 거닐며 능에서 미술관을 바라보았다. 비스듬한 모습이 능과 닮았다. 경주와 잘 어울렸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5-04-15

경주 외곽으로 봄 산책 나가볼까요

몇 년 전부터 오릉 앞 방앗간 앞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오래된 간판이 정돈된 문화재 경관 사이에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사람의 마음을 몽글몽글 부드럽게 만드는 시간의 힘. 이런 레트로 감성이 삶 속에 진하게 녹여진 곳이 경주에 있다. 외곽에 위치해 관광객들의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이곳 역시 문화재며 멋진 산책 코스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 무열왕릉이 있는 서악을 지나고 조금 더 들어가면 금척리 고분군이 나타난다. 해마다 성장하는 가로수는 곧 터널을 만들 기세다. 꽃을 보내고 잎만 남아도 그대로 멋진 풍경이다. 곧이어 건천읍이 나온다. 시내에서 차로 15~20분 정도 소요된다. 약 150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 옆 강변이 배수가 잘되어 물이 고이지 않고 항상 건조되어 건천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건천 초등학교 앞이 번화가다. 노랗고 빨간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파랑까지. 솔직하고 선명한 간판들로 가득 차 있다. 5일과 10일은 장날이라 구경거리가 추가된다. 이곳은 시내권에 비해 프랜차이즈 매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그중에 입소문 꽤 탄 로컬 맛집이 있다. 분식도 몸값 비싼 존재가 된 요즘 그 나름의 맛은 있지만 과거에 먹던 원래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곳 맛집의 장점은 추가되지 않은 옛 맛 그대로 남은 것이다. 쫄면과 어묵 두 가지. 단촐한 메뉴에 가격도 여전히 저렴한 상태다. 주인과 손님 몇몇이 자리 잡으면 복작거리는 좁은 공간. 한가득 배를 채우고 나와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입 베어 물면 더없이 행복하다. 옆으로 다른 종목을 파는 분식 몇이 모여있다. 괜히 이것저것 입맛이 당긴다. 그리고 또 하나 한우와 돼지 농장이 많다 보니 알려진 고기 맛집도 꽤 있다. 건천을 찾는 가장 잦은 이유기도 하다. 저녁 시간 즈음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차기 때문에 조금 이른 시간에 방문한다. 세월이 뭍은 다정한 풍경 속에서 식사와 여유를 즐겼다면 다음으로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숲길을 추천한다. 건천 편백나무 숲내음길은 500여 미터의 나무 데크 산책로에 빽빽이 들어선 편백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맑은 향을 느끼며 산책하기에 좋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문화재 찾기도 추천한다. 단석산에 위치한 신선사에는 국보 199호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이 있으며 용명리에는 대한민국 보물 제 908호인 통일 신라의 삼층석탑이 있다. 2005년 4월 13일에 건천초등학교 교정이 있던 받침돌인 노반석을 원위치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현재 용명리 856-7번지에 위치해 있다. 석탑이 있는 용명리는 경주 토종견 동경이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덕에 마을은 동경이 벽화로 가득하다. 꼬리가 없다시피 짧은 것이 동경이의 특징이며 토실한 뒤태가 매우 매력적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명성답게 마을마다 보물 하나쯤은 모두 품고 있는 경주다. 잦은 경주 방문으로 다른 구경거리를 찾는다면 외곽에서 숨은 매력 찾기를 추천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5-04-15

이 봄에 앞산 한 바퀴면 수목도감이듯 봄꽃을 만끽한다

올봄에는 폭설이 내리다가도 금세 고온이 되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등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이러한 건조한 부주의로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 청송, 영양을 거쳐 해안가의 영덕까지 번졌다. 결국 이 화재는 많은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인적 물적 피해는 물론 농어민들의 마음까지 상하게 하여, 보는 이도 무척 가슴 아팠다. 꽃피는 계절에 봄꽃이라도 보면서 마음을 추스르자. 꽃은 향기도 향기지만 색깔과 모양을 달리한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마음이 평온하기 때문이다. 전국 어디 없이 금수강산 아닌 산이 어디 있으랴마는 특히 대구 성불산(앞산)은 도심에 자리한 산치고는 보기 드문 목본류와 초본류(야생화)가 자생하고 군락을 이룬 식물도 많아 생태계가 뛰어나다. 식물마다 꽃 피우는 시기는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3월부터 오뉴월까지 부지런히 꽃을 피우면서 봉접들을 불러 모으려 향기를 날린다. 게다가 자생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악착같이 발뿌리 뻗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생의 애착에 대한 수범을 보이는 증표 같기도 하다. 앞산순환도로에서 산성산 항공무선표지소 가는 도로를 따르다가 수직절리를 만나게 되는 동쪽 산비탈에는 분꽃나무와 이스라지를 만날 수 있다. 분꽃나무는 길게 뻗은 나팔 모양에 분홍 꽃을, 이스라지는 벚꽃을 닮은 작은 분홍색 꽃을 피워 산천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앞산 최고봉에 경찰 통신탑이 자리한 북쪽 산비탈에는 군락으로 자생하는 산앵두나무를 볼 수 있다. 또 정상에서 동쪽 능선과 서쪽 능선에는 가침박달나무가 일렬로 줄을 이으면서 군락으로 자생한다. 남부도서관 뒤편 앞산 자락길에서는 ‘별목련’ 개화 모습을 볼 수 있고, 소능선에 자리한 체육공원에 계단과 철탑 주변으로는 하얀 꽃피우는 태백제비꽃과 자색 꽃을 피운 고깔제비꽃도 자생한다. 안일사에서 왕굴로 가다보면 올괴불나무가 분홍 꽃을 피워 아름답다. 꽃잎 끝부분은 어쩌면 여성들이 바르는 입술에 빨간 화장품을 연상케 한다. 거기서 오른쪽 계곡으로 올라가다가 상수리나무 숲속을 눈여겨 살펴보면 노루귀꽃이 목을 빼 올리듯 꽃을 피우고 있다. 꽃대에 송송한 하얀 솜털이 앙증맞다. 앞산 정상에서 능선부 양지바른 곳에는 이파리 꼬부라진 멱쇠채가 노랑꽃을 피운다. 꽃잎 하나하나가 어쩌면 조화 같기도 하여 다시금 보게 된다. 산자고도 하얀 꽃을 피우는데 옆으로 누운 듯 길게 뻗은 끝자리에 꽃을 피운다. 안일사를 내려와 앞산 자락길로 들어서면 산비탈에 온통 생강나무다. 개화기에는 산비탈 전체가 노랗게 물든 듯하며 꽃향기를 물씬 풍긴다. 진달래꽃 피우는 4월 파동에서 만난 나리꽃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계곡부의 거대한 자연석에 올라타고 일렬로 정을 박는 듯 그런 모습이 경이롭기 그지없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5-04-13

대구펜 회원 창작 열정 담은 ‘국제펜본부 대구위원회 글 그림전’

국제펜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대구P.E.N·회장 정삼일)는 지난 7일 오후 대구시 범어역 아트웨이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제8회 대구P.E.N. 대표문인 62인 글·그림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회에는 허정자 수필가의 ‘강물에 비친 얼굴’, 직전 회장 손수여 시인의 ‘백목련’, 류희옥 시인의 ‘내 안의 너’, 임향식 시인의 ‘각자도생’ 등 총 62명의 작품이 전시됐다. 정삼일 회장은 개막식에서 “대구P.E.N. 대표문인 62인 글·그림전은 대구펜 회원들의 창작 열정과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성숙한 참여정신이 이룬 결과”라고 인사말을 했다. 국제펜본부는 영국 런던에 위치하며, 1921년 5월에 창립되어 올해로 10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국제펜한국본부는 1954년 10월 23일에 창립되었으며, 이듬해 국제펜 비엔나 대회에서 가입 승인을 받았다. 작년에는 7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문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문인협회는 1961년 12월 31일에 창립되었으므로, 국제펜한국본부는 7년 앞서 설립되었다. 국제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한국문인협회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상호 협력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국제펜한국본부는 전국 광역시도별로 18개의 지역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중 대구지회는 가장 두드러진 단체로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언제 어디서 만나도 항상 반가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전시는 7일부터 오는 14일까지 범어역 아트웨이에서 열린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04-13

筆에 담긴 백세의 정신… ‘노당익장’ 서예로 빛나다

“글씨를 쓰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살아 있다는 게 느껴져요.” 대구노인종합복지관 서예실에는 매일 아침마다 정갈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석파 하재호 어르신과 호정 정경재 어르신이다. 두 백수(白壽) 어르신은 하루도 빠짐없이 복지관을 찾아 묵향이 가득한 붓글씨를 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듯, 두 어르신의 글씨에서는 단정함과 힘이 느껴진다. “글씨 한 자, 한 자에 제 마음을 담습니다”라고 말하는 하재호 어르신은 50세부터 서예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이 떨려 붓을 제대로 쥐기 어려웠지만, 꾸준한 연습 끝에 지금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유려한 글씨를 쓸 수 있게 됐다.“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라고 힐 만큼 서예에 대한 열정이 깊다. 정경재 어르신 역시 “서예는 나의 친구”라고 표현한다. 부모님을 따라 8세부터 18세까지 만주에서 생활했고, 해방 후에는 귀국하여 코오롱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에는 붓글씨를 전혀 몰랐으나, 은퇴 후 서예에 입문해 30여 년 동안 붓을 다루면서 진정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서예실 회원으로 함께하는 이상원(84) 어르신은 “두 백수 어르신은 서예실의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라며 존경을 표했다. 고령화 사회 속 ‘노당익장(老當益壯)’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이들의 일상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비록 백세를 눈앞에 두었지만, 그들의 삶은 오늘도 붓끝에서 새로이 피어난다. 곁에서 지켜본 교장을 역임한 만제 조주형(90) 어르신은 하재호 어르신에 대해 교육청 행정실에서 건축 설계사로 근무하며, 대구·경북 지역의 여러 초·증등학교 건물을 설계하신 분이라고 귀띔을 했다. 서예반 벽암 이종만(96) 어르신은 “육신은 노쇠할지라도 정신은 더욱 단단해진다”라며 “백세 어르신의 서예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살아있는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대구노인종합복지관 노인복지대학 차세희 총학생회장은 “백세를 앞둔 어르신들의 붓끝에서 우리는 나이는 경계가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것을 배운다”고 힘주어 말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4-13

침묵하시겠습니까?

“침묵은 금이고 말은 은이다”라는 속담은 동양에도 서양에도 있다. 대체로 침묵은 지혜와 안전과 신중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만, 침묵이 동조하거나 방조를 의미하는 때도 있다. 지금 한국 정치의 혼돈 속에서 과연 침묵은 금일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는 영역, 다시 말해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침묵이라는 것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단순하게 말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 또한 언어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그리하여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며 사회적, 예술적, 철학적으로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의 사전적 의미는 ‘말하지 않음’과 ‘환경의 고요함’을 뜻한다. 한국 대사전에서는‘말을 하지 않거나 소리를 내지 않음’으로 정의하는데 단순히 환경적으로 조용함뿐만 아니라 의식 있는 존재의 무언의 상태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적 행위에 있어서의 침묵, 묵언, 명상이나 수도원에서의 침묵은 그것을 통해 내면의 평화와 자기 수양 내지는 내공을 채우는 것은 매우 이로운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외교 관계에서 의사전달 도구로서의 말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데 때로는 침묵을 통한 매우 제한된 소통은 침묵을 유지하는 편이 갈등의 확산을 미리 막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문학과 영화, 연극 등의 과정에서 침묵은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유의미한 경우도 많다. 반면에 침묵해서는 안 되는 경우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미투(Me Too)운동과 같은 사례라 할 것이고, 부정과 부패에 대한 내부고발자 등이 침묵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참 정의의 파수꾼이 되는 경우다. 공정하지 못한 억압에 항거하거나 범죄사실을 알고 있거나 직접 목도 하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행동이다. 침묵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매우 강한 메시지 예로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적들의 말이 아니라 친구들의 침묵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 차별에 대한 침묵은 차별을 조장한다고 경고하면서 침묵을 깨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도 “침묵하면 폭력과 불의는 더욱 강해진다”면서 27년간의 수감 생활을 침묵하지 않고 남아공의 민주주의를 이끌었다. 우리가 부정과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에 가장 앞선 이유는 침묵은 억압을 정당화하며 가해자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되기 때문이다. 공익과 정의를 위해 부정을 방지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침묵할 것인가 침묵을 깰 것인가의 결과는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04-13

2025 한일미술작가교류회전… 오랜 인연들, 반가운 재회

좋은 친구는 오랜 시간 틈을 두고 다시 만나도 어색함이 없이 반갑고 편안하다. 일본 오바마시에서 온 그들은 그런 친구다. 1999년 시작된 한일미술작가 교류회는 경주시 자매 결연 도시인 일본 오바마시 작가들과 경주시 작가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1기라고 할 수 있는 올드멤버들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2005년 2기이자 영멤버들로 교체가 이루어졌다. 교류의 주축이 바뀌었을 뿐 1기 멤버들과의 교류도 함께 이루어졌다. 해를 걸러 서로의 도시를 오가며 전시와 교류를 이어나갔다. 때때로 개인 사정에 의해 멤버가 교체되기도 했지만 10년 이상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다 코로나 여파로 서로 오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올해 경주시 벚꽃마라톤대회에 맞춰 오바마 시장이 경주를 방문하게 되면서 작가들도 시민응원단으로 다시 경주를 찾게 되었다. 급하게 진행된 일정으로 전시장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갤러리 란 김정란 대표의 배려로 초대전시가 성사되었다. 푸른 하늘을 가득 채울만치 하얀 벚꽃이 만개했던 날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대로다. 여전히 밝은 미소가 바로 어제 헤어져 다시 만난 모습 같다. 새로운 멤버의 영입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구성원이 넷이다. 첫 방문 소리에 경주 작가들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보여주고 싶은 것 함께 하고 싶은 것 등 마음을 내기에 2박 3일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이번 ‘2025 한일미술작가교류회전’은 한국작가 최영달, 최용대, 한상태, 서무성, 박선영, 박수미, 최한규, 박선유, 최예지, 김민서, 일본작가 기시모토 잇피츠, 나카미치 요시히로, 켄조 코우킨, 마츠미 유카리, 야마기시 히로유키, 후쿠하라 잇떼키, 야마와키 케이고, 마츠미 사키 등 총 18명이 참여했다. 지난 4일 전시회 개막 행사에서 일본 측 응원단장인 아반포트 호텔 야마기시 사장은 전시를 축하하며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우정과 교류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며 소망을 밝혔다. 한일 양쪽은 물론 올드멤버와 영멤버 사이 견인차 역할을 꾸준히 해온 기시모토 작가도 같은 뜻을 표했다. 이어 경주시 측 회장인 최영달 작가의 환영 인사와 함께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오랜 멤버들을 떠올리며 추억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 촬영으로 행사를 마무리 했다. 다음 날은 마라톤이 예정되어 있어 교통 통제 시간을 피해 서둘러 움직였다. 불국사, 박물관에 이어 오릉 산책까지 틈 없이 움직였다. 오릉에서는 피리 연주가 후쿠하라 잇떼키씨의 아리랑 연주가 펼쳐졌다. 알영정에서 울려 나간 피리 소리에 지나던 관광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연이은 앙코르로 박수갈채를 받으며 3곡의 연주가 진행되었다. 오후에는 오바마시의 스기모토 가즈노리 시장의 갤러리 방문이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방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둘째 날은 월정교, 동궁과 월지를 산책한 후 늦은 밤이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다음날은 아쉽게도 비행 시간이 촉박해 잠깐의 만남을 끝으로 작별해야 했다. 인연이 만들어주는 길을 기대하며 내년 오바마에서 만남을 기약했다. ‘2025 한일미술작가교류회전’은 1일부터 30일까지 경주 황리단길 내 갤러리 란에서 진행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은 휴관이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10

민들레는 민들레로 노랗게 핀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외출을 했다. 한동안 따뜻하다가 추워지니 더 추운 느낌이었다. 뽀얀 꽃잎을 피웠던 매화는 매운바람에 그새 잎을 떨구었다.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생처럼 떨어진 꽃잎이 말라 가고 있었다. 골목을 걸어가는데 꼭 누가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샛노란 민들레였다. 노랑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노랑으로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보도블록과 담장 사이의 좁은 틈에서 핀 민들레. 세상에서 가장 밝은 노랑이 거기 있었다. 봄이 온 줄 알고 꽃을 피워내는 민들레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졌다. 문득 한 포기의 꽃이 피어나는 데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꽃이 피는데 무슨 사명감이 있어서 필 것인가. 민들레는 누군가에게 보아달라고 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에 병문안을 다녀오고 난 뒤 한동안 인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빠져 있었다. 온전치 못한 몸과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만 계신 어르신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르신들이 안쓰럽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 모두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이 꼭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삶인 걸까? 존재는 그저 존재만으로도 그 의미를 다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새순이 돋는 봄이 오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누군가가 있어 이 지구를 데워주고 있으니 이런 눈부신 봄이 오는 것 아닐까 하고. 그런 마음으로 쓴 시를 읽어본다. “저승의 어머니 이승의 아궁이에 불 지피시네 / 긴 치맛자락 펼치고 앉아 / 찬 잿더미 위에 낙엽을 모아 불 붙이시네 / 이승의 아궁이가 환해지네 / 나무들 몸 비틀어 타오르고 / 가물가물 더운 김 오르네 // 허공의 가마솥에 시간이 익었네 / 수만의 잎들이 돋아나네 / 후둑후둑 꽃들이 피어나네 / 꼬물거리는 벌레들 / 노래를 흩뿌리는 새들 /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주린 배를 채우네 / 긴 햇빛 부지깽이 종일 아궁이를 들쑤시네” - 엄다경 시 ‘봄’ 보이는 않는 어떤 큰 손이 있어 따뜻이 불을 지펴주기에 우리에게 봄이 오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비과학적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이 되면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세상에 꽃이 피고 잎이 돋고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은 다 보이지 않는 힘이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들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10

벚꽃 잎 화사하게 흩날리던 날

친구 딸 결혼식이 있어 경주 보문으로 가는 길. 가로수에 늘어선 벚나무가 하얀 꽃잎을 화사하게 터트리는 아우성을 들으며 간다. 화사한 봄날, 잔칫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이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일부는 한잔하자며 횟집으로 가고, 1년 365일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는 친구 몇몇은 술 대신 한잔하자며 카페로 간다. 이야기가 끝이 없다. 수십억 원을 상속받았다는 친구. 삶의 질이 달라 보이니 은근 부러움이 인다. 괜스레 상대적 빈곤감에 씁쓸해지는 맘을 다독인다. 저마다의 복 대로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며칠 후 뜬금없는 비보가 들려온다. 그 친구 남편이 운동 삼아 늘 다니던 산에 갔다가 발을 헛디뎠단다. 갑작스런 사고에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던지 발인을 하루 앞두고 부음을 전한다. 황망한 비보에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달려간다. 며칠 전 잔칫집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장례식장에서 또 만난다. 그렇게 할 말들이 많던 친구들이 침묵한다. 말이 의미를 잃었다. 어떤 위로의 말이 도움이 될까? 침묵으로 조문을 대신하고 돌아오는 길. 경주 수도산 밤 벚꽃이 너무나 화사하고 화사해서 차를 세운다. 하얀 벚꽃 잎이 색색의 조명 위로 흩날리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냥 텅 비우고 밤 벚꽃의 화사함을 즐기자 했다. 가슴이 아릴만큼 아름답다. 여전히 만개한 벚꽃이 화사하게 흩날리는 날 “새댁, 집에 있지 말고 쑥 캐러 와”라는 동네 형님 전화에 과도와 비닐봉지 챙겨들고 나선다. 동네 사람 몇몇이 여기저기서 쑥, 달래, 개망초 등 봄나물을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뜯는다. 문득, 폰을 들여다보던 누군가 “대통령 탄핵이라네요…. 만장일치로….”라며 말을 흐린다. 다들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놓고 침묵한다. 또 한 번 말이 의미를 잃는다. 같은 마음인지 다른 마음인지 봄나물 캐던 이들이 말을 아낀다. 섣부른 정치얘기는 서로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탄핵이 되어야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진다 하고 또 누군가는 탄핵이 되지 않아야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진단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탄핵이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거늘 작금의 상황에 일상도 버거운 민초들 마음이 편치 않다. 저 멀리 하얀 벚꽃 잎 화사하게 나리는 꽃비 아래서 어린이집에서 소풍 나온 듯 선생님과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 놀고 한 무리의 상춘객은 자리 펴고 둘러앉아 봄을 즐기고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흩날리는 하얀 벚꽃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어느 유튜버가 대만을 여행하던 중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는 현지인을 만난다. 왜 이민을 생각 하냐고 하니 불안해서란다. 어느 나라로 갈 거냐고 물으니 대한민국이란다. 대한민국을 택한 이유를 물으니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답한다. 유튜버는 그냥 선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친구의 기쁜 소식도 친구의 슬픈 소식도 대통령의 탄핵 소식도, 많은 소식을 하얀 벚꽃 잎 화사하게 흩날리는 이 봄에 듣는다. 삶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소중하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시인인 친구는 삶을 ‘동의도 조언도 불필요한 일들, 상황들.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미묘해서 가닥잡고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꽃잎 흩날리는 화사한 이 봄. 복잡 미묘한 마음 밀쳐두고 그냥, 맛있는 쑥국을 끓이는 데 정성 쏟아 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10

울산 반구대에 다녀간 기록을 남기다

포항수필사랑 회원들과 울산으로 봄 야유회를 갔다.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발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골짜기로 굽어 들어가니 외형부터 특이한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엎드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큰 고래가 몸을 휘며 동해에서 태화강으로 거슬러 올라 이곳 대곡천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뒷문에서 바라보면 고래의 꼬리가 퍼덕이며 유영하는 듯하다. 안으로 우리 일행이 들어가니, 해설사가 반갑게 맞았다. 책이나 자료에서 알려주지 않는 생생한 전설을 듣고 싶어 바싹 따라가며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암각화가 37개 발견됐다고 한다. 7000년 전의 바위 낙서와 3000년 전 문양이 이곳에 있다고 했다. 1970년 12월 24일 울주지역 불교 유적 조사를 진행 중이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반고사 터를 찾기 위해 반구대를 방문하였다. 이때 마을 주민의 제보로 천전리 각석을 발견하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암각화가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듬해 1971년 12월 25일 천전리 각석을 답사하다가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아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하였다. 쪼기, 갈기, 긋기, 돌려파기 방법으로 고래와 같은 바다 동물과 호랑이, 사슴 같은 육지 동물, 동물 사냥과 고래잡이 과정 등 선사시대 사냥과 해양 어로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특히 동물 그림은 생태적 특징을 매우 상세하게 표현하고 고래, 거북, 바다사자, 새, 상어, 물고기, 사슴, 멧돼지, 호랑이, 표범, 담비, 늑대 등 20여 종의 동물을 구분할 수 있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고래사냥 과정 중 고래를 자세히 관찰하는 탐색의 결과로 고래 종과 습성 등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래의 종류는 분기(分岐) 형태, 머리와 입의 모양, 몸통의 형태, 가슴지느러미와 꼬리 등의 특징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고래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들쇠고래, 범고래, 상괭이로 최소 7종이다. 대곡리 암각화 암면의 상단부는 2~3m 정도 처마처럼 튀어나와 자연적인 바위 그늘을 만들어 비바람으로부터 암각화를 보호한다. 암면은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 3~11월 오후 3~5시 사이 햇빛이 들어오면 그림이 더욱 뚜렷하고 입체적으로 보인다. 두 바위 면은 크고 판판하며, 자연적으로 절벽에 그늘이 생기는 구조와 소리 울림 현상이 있어 신성하게 여겨 그림을 새겼을 것이다. 남겨진 그림과 문자는 신석기 시대부터 제작이 시작되어 신라시대까지 암각 제작 전통이 이어진 유산의 증거이다. 암각화가 수천 년간 이어져 제작되는 동안 기존의 그림을 피해 남겨졌다는 점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앞 작품을 인지해가며 그들의 문화를 그림과 문자를 누적하여 새긴 결과 현재와 같은 구도를 갖추게 되었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끝이 뾰족한 금속 도구로 신라시대에 새겨진 문자가 총 127점 확인된다. 문자는 중국의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문자에서 10행이 넘는 장문의 문자까지 다양하게 확인된다. 문자의 구성 방식은 언제, 누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주로 기록하였다. 특히 신라 법흥왕 대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널따란 바위에 자리를 깔고 물고기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으며 계절을 보냈다하니 지금의 우리도 그 앞에 자리를 펴고 싸 온 간식을 펼쳤다. 새콤달콤한 딸기를, 호박시루떡을 돌리고, 폭신한 빵을 권하고, 쓴 커피 달디단 커피 골라 먹으며, 강구에서 사 온 타우린 달걀을 목 막히지 않고 먹었다. 그리고 그들이 여기 있었다는 기록을 바위에 새겼듯 우리도 우리 시대의 기록인 스마트 폰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8

일만 김상년 8번째 개인전 열려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일만(一晩) 김상년의 8번째 개인전 ‘달가루zip 전’이 열렸다. 지난 3월 27~4월 2일 서울 백악미술관을 시작으로 4월 3~8일 안동시립박물관 별관 전시실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古有一小兒 見星曰 “彼月屑也”, 예전에 한 어린아이가 하늘의 별을 보고 “저것은 달가루야”라고 하였다. ‘달가루’라는 제목은 조선시대 문장가로 알려진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의 한 구절을 모티브로 한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달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라 생각한 순수함을 읽고, 붓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 또한 꾸밈없는 순수에서 무르익음으로 끝없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간결한 글귀, 현대적 감각, 강건하나 온화한 성정이 드러나는 붓끝 그리고 여백의 미. 김상년 작가는 2018년 ‘오늘 전’을 시작으로 ‘좋은 일만 전’ 등 8번째 개인전을 선보이며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화가 덧칠의 미학이라면 서예는 일획의 미라고 할 수 있어요. 한번 끊으면 덧칠해서 고칠 수 없으니까요. 먹의 농담, 획의 흐름을 숨길 수가 없으니까 얼마나 열심히 작업했는지 단박에 알 수가 있죠. 개인전은 나의 실력을 오롯이 보여주는 장이라고 생각돼요.” 칭찬도 신랄한 비판도 기꺼이 받아들여 지금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 점검을 하다 보니 언제나 허투루 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품과 사물, 일상과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사뭇 단단하다. “붓으로 큰 뜻을 이루려는 건 아녜요. 글씨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를 끊임없이 만나서 종래에는 ‘참 나’를 찾으려는 아우성이죠. 오롯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탄탄한 마음으로 무장할 따름입니다.” 아득한 외길에 밝은 등불이 되어 줄 달가루, 그 순수함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김상년 작가는 국립안동대학교 한문학과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서예문화학과를 졸업하고 안동에 마련한 작업실 일만서소(一晩書巢)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에세이집 ‘좋은 일만’(2021), 작품집 ‘달가루zip’(2025)이 있다. 특히 순수하고 서정적인 ‘달가루집zip’의 표제는 작가의 어머니 김순남 여사의 첫 휘호로 그 의미를 더했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8

AI, 꼭 배워야 할까

AI, 꼭 배워야 하는 걸까. 최근 챗 GPT의 지브리(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스타일 이미지 생성 서비스 열기가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이미지 생성 기능이 출시된 지 일주일 만에 7억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그 열기를 짐작하게 했다.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지브리 스타일의 만화 이미지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며 그 분위기를 이어갔다. 인공지능(AI)이 더 이상 과거의 상상 속 기술을 넘어 자연스레 일상으로 스며들어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요즘 뜨고 있는 AI 관련 자격증 응시에도 2030 젊은 세대만이 아닌 50대 이상의 응시자도 늘어나고 있어 모두가 큰 관심을 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관심에도 아직 중장년층에게는 막상 써보려고 하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전문가만 쓰는 것 같아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때론 ‘AI를 꼭 배워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A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건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스마트폰과 같이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화와 문자만의 기능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영화도 보고 사진도 찍고 은행 일과 일정도 관리하는 다기능 도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AI와 마주하며 그 도움으로 대부분의 일이 수월해진 지금은 단순히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AI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70대의 어르신도 도서관에서 마련한 AI 수업을 듣게 만들었다. “지금은 AI를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앞으로의 세상이 재미있고 주변의 어린아이들과도 대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두렵기보다는 잘 즐겨야 하는 세상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금 낯설어도 이제 필수가 되어버린 AI를 배우는 일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부터 하나씩 하면 어렵지 않다. 첫걸음은 스마트폰으로 음성 비서를 이용하면 일정 관리가 가능하다. AI 번역기로 외국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AI를 잘 활용하면 자기 계발도 한 발 더 쉬워진다. 예를 들면 영어 공부하기가 그렇다. 챗 GPT와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게 가능해진다. 또 여행 계획을 짠다든지 건강을 잘 관리하기 위한 나만의 운동과 식단으로 맞출 수 있다. 직장인들에겐 업무 정리 등 여러 가지 일들이 5분 안에 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AI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도구지만, 이를 활용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천재가 되거나 세상을 바꿀 능력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학습하고 경험을 쌓아야만 가능했던 일들을 훨씬 더 빠르게,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쌓여 시간이 지날수록 이를 배우지 않는 사람과는 점점 더 능력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AI를 활용하는 사람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을 수행하고 업무의 효율성과 창의성에서 격차는 갈수록 커지게 된다. AI를 잘 쓰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다. 먼저, 스마트폰에 말을 걸어 AI에게 질문하고 답 받기, 구글 번역을 실행에 번역할 문장을 입력하거나 카메라로 문서를 찍으면 AI가 번역한다. 네이버 파파고 앱에서도 가능하다. 이렇게 쉬운 기능들로 천천히, 꾸준히 연습하면 어느새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8

수성구민 안녕과 나라 평안을 기원한 수성사직제

지난 1일 대구 수성사직제가 대구 노변동 사직제단에서 열렸다. 대구 수성구청이 후원하고 수성문화원이 주최한 사직제에는 경산유림연합회, 경산향교, 대구향교 등 유림단체와 기관단체장,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직제에 앞서 식전행사로 대구경북 전통음악보존회의 제례악 공연이 있었고 뒤이어 자료에 의한 고증을 거쳐 제례의식이 봉행됐다. 초헌관에는 김대권 수성구청장, 아헌관에는 반용석 수성문화원장, 종헌관에는 최진태 수성구의회 부의장이 맡았으며 수성구민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다. 수성구 사직제는 2010년부터 매년 봄 수성구 노변동 사직단에서 봉행되고 있다. 전통 의례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해설과 공연을 접목해 전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로 진행해 왔다. 사직단의 기원은 중국 전국시대 이전부터 토지와 농업을 관장하는 신을 존중하며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사단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원동 사직단은 1999년 시지지구 택지개발과정에서 발굴됐으며 사직단은 문헌을 기록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대구 노변동 사직단은 2006년 대구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됐다. 초헌관을 맡은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수성사직제 봉헌을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 기쁘다”고 말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4-06

외로움을 달래주는 반려식물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어쩌면 외로움 때문에 공동체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도 여전히 외로운 것은 물질만으로, 지식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고 어느 시인은 읊었다. ‘그대’를 사랑하지만 그대는 ‘나’를 구속하려하고, 외면하고, 잔소리를 한다. 세상에서 나를 온전하게 이해해 줄 대상은 없는 것일까. 오롯이 내 마음을 풀어놓고 싶은 대상은 없을까. ‘반려’, ‘함께’라는 뜻이다. 서로가 교감하고 반려자가 되어 가족구성원을 이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반려 대열에 동물이 끼어들었다. 예부터 사람과 동물은 공생관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사냥터에서 집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산업사회로 치달으면서 가족간, 이웃간의 소통과 대화의 부재가 생겼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람이 사람을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보면서 말을 걸고, 껴안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아무리 푸념을 늘어놓아도 동물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되레 꼬리치며 품에 안긴다. 자연스럽게 집 밖에서 기르던 동물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반려동물이 인간의 외로움을 해소해 준다. 매스컴의 영향인지 연예인을 모방하며 너도나도 반려동물을 곁에 두고 있다. 반려동물의 먹을거리며, 옷이며, 장난감이 어린아이 키우는 비용 못지 않다. 그뿐 아니다. 수족관의 물고기, 모르모트 흰쥐,청거북이,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부담스러운 일이 늘어났다. 게다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과정에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쁘거나 여행을 다니려면 반려견이 문제가 된다. 전문 시설에 맡겨놓으니 그 비용 또한 만만찮다. 경제적인 문제와 그들의 수명이 다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부담스럽다. 이런 문제로 동물 보다는 식물을 기르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반려식물이 부각되는 이유다. 반려식물은 마음에 드는 화초를 구입하여 적당한 장소에 두기만 하면 된다. 적당한 보살핌으로 가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며칠 여행을 다녀와도 큰 문제가 없다. 새순을 틔운다거나, 꽃망울을 달거나,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일은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반려식물 기르기는 애완동물 기르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장애인에게 반려식물 보내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홀몸 어르신들께도 반려식물은 상당한 위안을 준다. 말할 줄 모르는 식물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저 너머의 진리를 터득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세히 보면 예쁘지 않은 식물이 없고, 자세를 낮추면 낮은 꽃들이 대지를 환하게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나태주 시인의 시 구절이 향기롭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04-06

불굴의 의지로 노래하는 영혼, 월광수변공원을 울리다

지난달 23일 대구 월광수변공원. 기타 선율과 함께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따스한 봄바람을 가르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노래의 주인공은 대구 ‘원조 통기타 가수’ 엄덕수 씨(60)다. 생후 4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를 얻었지만 그는 36년간 음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1995년 KBS 전국 장애인 가요제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수성구 들안길 축제 금상 등 수많은 무대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의 이력을 보면 마치 한 편의 드라마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소년원, 장애인 단체, 복지원, 범죄 피해자 등을 위로하는 공연도 많이 했다. 그들을 위로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김범룡, 권인하, 송대관, 태진아, 이선희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과도 함께 위문공연을 많이 했다. 위문공연과 거리공연을 통한 재능기부를 인정받아 표창과 상장도 많이 받았다. 또 TBC, KBS, MBC, 라디오 휴먼 다큐에도 출연해 그의 봉사인생이 소개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영남서예대전 대상(대구시장상), 낙동미술대전 종합대상, 대한민국 서예대전 4회 입선을 하기도 했다. 어릴 때 소아마비로 지체장애를 얻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36년간 갈고 닦은 그의 노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손으로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그는 수성못, 월광수변공원 등 곳곳을 찾아 버스킹 공연을 하지만 때로는 까다로운 공연 조건 등으로 애로도 겪는다고 귀뜸 했다. 특히 제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제도는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법원 앞에서 덕인당 간판을 걸고 인장업을 하고 있다. 전국 장애인 기능경기대회에서 인장부 대상을 수상한 경력을 바탕으로 시작한 인장업에 대해서도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이날 버스킹 현장에는 한창실업(주)의 한대곤 회장도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내어 그와 함께 드럼연주를 해주어 봉사의 기쁨을 같이 했다. 또 문인협회 부회장인 방종현 씨와 시인 김윤숙 씨도 참석, 하모니카 연주로 관중에게 기쁨을 주었다. 공연장을 찾은 한 시민은 “엄씨의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얻었다”며 “장애를 극복하고 이렇게 멋진 공연을 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엄 씨의 이야기는 단순한 음악 공연을 넘어,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감동이다. 월광수변공원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연주되는 엄씨의 음악이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문성희 시민기자

2025-04-06

벽화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지난달 23일 일요일, 반(Van)벽화봉사단의 101번째 벽화봉사가 대구 안심 4동에서 진행됐다. 시민기자는 2023년 3월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안심사랑벽화봉사를 함께 해오고 있으며, 이번이 7번째 참여다. 반벽화봉사단의 벽화 활동은 2011년 6월부터 시작돼 올해로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봉사단은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과 공공시설을 대상으로 새로운 길거리 문화를 조성하며, 나눔과 소통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주부 모니터단 활동을 하던 주부 5명과 대학생 2명으로 시작된 반벽화봉사단은 14년의 세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미대 지망 고등학생들도 참여했고, 일부는 서울로 진학하면서 참석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또한, 경북대학교 동아리에서도 다수의 인원이 참여해 봉사단의 규모를 키웠다. 한때는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벽화 봉사활동은 11월, 12월, 1월을 제외한 매달 실시되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2023년부터 다시 매달 활동을 재개했다. 올해는 의뢰받은 곳이 많아 매월 일정이 꽉 찬 상태다. 벽화 봉사의 시작은 의뢰와 답사로 이뤄진다. 의뢰비는 면적과 벽면 상태에 따른 재료비만 받으며, 나머지 작업은 회원들의 재능 기부로 진행된다. 의뢰를 수락하면 회원들에게 공지해 날짜를 정하고, 특정 컨셉을 요청받는 경우 해당 컨셉에 맞는 도안을 찾아 논의한다. 벽화를 그리기 전에는 먼저 벽면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단순히 먼지를 제거하는 것을 넘어, 기존의 페인트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긁어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제대로 긁어내지 않으면 새로 칠한 페인트의 무게로 인해 더 많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염 방지를 위해 밑칠을 꼼꼼히 해야 한다. 밑칠 없이 그림만 그린 벽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매우 지저분해질 수 있다. 반벽화봉사단의 밑칠은 특히 밝은 색상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이로 인해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따뜻함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반벽화봉사단의 회원들 중 미술 전공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회장과 총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회장은 의뢰인 또는 의뢰 단체와의 미팅, 사전 답사, 재료 구입, 도안 결정, 그림의 위치 및 조색 등을 담당한다. 회원 중에는 화가가 없지만, 총무의 외사촌 오빠가 미술 교사이자 화가로서 자문을 맡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회원들을 지휘하며 그림 교육을 담당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벽화 현장에서는 각자의 역량에 맞게 봉사를 수행하며, 그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예를 들어, 객원들을 위해 스케치를 담당하는 회원, 사진을 책임지고 촬영하는 회원, 찍은 사진을 카페에 올리거나 편집하는 회원 등이 있다. 모든 회원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벽화가 완성된다. 이러한 헌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반벽화봉사단은 다른 봉사단과 달리 하루 종일, 혹은 이틀이나 벽화 작업에만 전념해야 한다. 이는 고상하게 그림을 그리는 봉사가 아니다. 온갖 힘든 일을 하며 시간과의 싸움 속에서 정해진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극한의 봉사다. 이러한 극한의 봉사를 짧게는 5년, 길게는 14년 동안 함께 해온 반벽화봉사단 회원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장혜숙 시민기자

2025-04-06

선비의 마을 봉화 ‘노루골’의 옛 향기

산불과 어지러운 정세, 무너진 생활경제로 삶이 고단한 시절이다. 그래도 또 다른 현실과 만남에서 좋은 생각을 얻기 위해 홀가분하게 집을 나서보는 건 어떨까? 학문과 풍류를 즐겼던 선현들의 행적을 더듬으며, 오래된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간 속을 흐르는 풍경을 마주해보는 것도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봉화 춘양을 지나 노루재를 넘기 전 노루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진성이씨 집성촌이 있고, 고택과 정자가 즐비한 풍경이 들어온다. 노루골 앞에는 영동선 녹동역이 숨은 듯 폐역이 된 채 자리를 지키고, 옆으로 문 닫은 대폿집과 서낭당이 철길 옆을 자리했다. 포근한 남향 마을 노루골은 진성이씨 집성촌이다. 난은 이동표(1644~1700)가 터를 잡은 300년 세거지로, 이동표가 삼척부사에 임명돼 부임길에 노루골 산천이 눈에 띄어 정착하게 됐다. 기품 있는 선비들이 많이 나와 영남의 손꼽히는 유림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동표는 홍문관 교리, 사헌부 집의, 호조참의, 전라도관찰사로 내정되었으나 모친 봉양을 위해 작은 고을 관리(광주목사)를 원했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 그의 관료 생활과 목민 생활의 행적을 살펴보면 불의를 용납하지 않은 깐깐한 선비로 국가의 대의를 위해 일했고, 워낙 청렴하게 살아온 터라 이동표가 사망하자 장례를 치르기 힘들 정도로 빈곤했다고 전한다. 2023년 이동표 선생 학문과 사상 학술발표회가 있었으며, 진성이씨 후손들은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 노루골 마을엔 이동표의 아들 두릉 이제겸(1683~1742)이 지은 두릉정이 있고, 소파정, 운고정, 귀은재 등 정자와 이정하 고택, 충간공 난은신도비도 있다. 입향조 이동표의 아들 이제겸은 노루골에 본격적으로 터전을 열었다. 이제겸은 영조 원년 문과급제해 참사관이 되었으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되었으나, 경사로 풀려나기도 했다. 이후 노루골에 은거하며 두릉정을 짓고 산천을 벗하며 여생을 보냈다. 두릉정 앞으로 네모난 연못에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는 두릉정을 주렴처럼 살며시 가리고, 화장산을 등진 두릉정은 위압적이지 않으면서 근엄하고, 절제된 짜임새와 중후한 품격으로 옛 멋을 느끼게 한다. 운고정은 운고재 이중경(1724~1754)을 기리기 위해 1906년 건립됐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이며, 전면에 4분합문을 설치해 마루방을 이루게 했다. 귀은 이교영(1823~1895)은 청송부사, 풍기군수, 영해부사 등 아홉 고을을 다스리며 여덟 고을에 선정비가 있으며, 만년에 귀은재를 짓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4월 초. 개울가로 늘어선 벚꽃이 필 때는 화사함이 정자를 감싼다. 이정하 고택은 참봉 이흥노(1849~1923)가 건립한 가옥으로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의 ㅁ자형 정침이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위압적이지 않으면서 근엄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이정하 고택에는 시집올 때 타고 온 가마가 잘 보관되고 있기도 하다. 창애정은 창애 이중광(1708~1778)이 건립한 정자로 운곡천이 내려다보이는 춘양구곡 5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이다. 토속 담장 사이에는 사주문을 세워져있다. 창랑정사는 두릉 이제겸을 추모하기 위해 1901년에 건립한 정자다. 창애정 맞은편 동쪽 언덕 위에 있으며 이제겸의 호가 말년에 ‘창랑’이었기에 창랑정사라 이름 지었다. 4월이 되면 속살을 드러낸 흙냄새와 꽃향기가 뒤섞인다. 산불과 국내외 혼란스런 정세 탓에 헝클어진 상념도 다스릴 겸 봄바람을 타고 향수와 옛사람의 흔적이 있는 길로 나서보자.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3

아이와 함께 찾은 단석도서관

출근 할 때 조금 피었던 벚꽃은 퇴근 무렵에 온전히 다 피어버렸다. 팝콘이 튀겨지듯 작은 꽃송이들은 금세 한 아름 나무를 다 채워 새하얗게 만들어버렸다. 주말을 앞둔 경주사람에겐 위험신호다. 벚꽃 풍경이 보여주는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교통지옥은 끔찍하다. 더욱이 이번엔 마라톤까지 추가다. 주말이 되기 전 해치워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어지간히 급한 일을 마무리한 다음에야 잠시 벚꽃을 눈에 담았다. 봄은 담아야 하니까. 그래야 한 해를 버티고 다음 봄까지 견뎌낼 것이다. 올해는 개나리까지 유난히 풍성하게 피었다. 드디어 주말이 되자 우리 가족은 관광객과 반대 코스를 살폈다. 갑자기 소설가가 꿈이 된 아이는 요즘 책이 더 좋아진 듯하다. 덕분에 최근 들어 도서관에 가자고 조르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하여 이번 외출은 건천에 위치한 단석도서관으로 정했다. 1996년 11월 22일에 개관한 공립 도서관이다. 건천초등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첫 방문에도 찾기가 쉬웠다. 3대 정도의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황성동에 위치한 중앙도서관이나 충효에 있는 송화도서관 등에 비해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정감가는 외관이다. 1층에는 일반 도서 자료실, 2층에는 열람실과 어린이 도서 자료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 일반 도서 자료실엔 직원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엔 한 가족인 듯 보이는 일행이 책을 읽고 있었다. 읽을 책을 얼른 고른 후 자리를 잡았다. 입식 형태의 좌석도 있었지만 어린이 도서 자료실이라 그런지 좌식으로 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입식 공간과 달리 어느 정도 분리된 느낌이라 좌식을 택했다. 바닥에 앉자 따듯한 온기가 올라왔다. 아이가 고른 책 한 권, 내가 고른 책 두 권. 엄마가 고른 책은 경북독서친구에서 선정한 책 중 일부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책들을 읽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머지 두 권도 싫은 내색 없이 읽어나갔다. 시내 쪽 시립도서관들보다 사람이 없어 조용하니 책에 더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책 3권을 읽는 동안 먼저 있던 가족 일행은 돌아간 듯했다. 3권째 책을 완독한 아이는 조바심이 나보였다. 부쩍 어린이 자료실에 비치된 책보다 일반 도서 열람실에 비치 된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던 터라 1층 상황이 궁금한 듯했다. 밖으로 나오니 대신 똑똑하게 생긴 아이 한명이 스스로 책을 대여하는 중이었다. 다 읽은 책은 제자리에 정리하고 빌려 갈 책만 따로 챙겼다. 키오스크 방식으로 책을 빌린 후 1층으로 내려갔다. 검색용 컴퓨터로 아이가 원하는 책을 검색했다. 이곳에 보유 중인 6만2239권 중에 그 책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려 유리문 앞에 섰는데 귀여운 문구가 보였다. 고양이가 들어오니 문을 꼭 닫고 다니라 적혀있다. 누굴까? 분명 근처에 있을 듯 했다. 차에 몸을 싣는 순간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 생활 탓인지 털은 꼬질꼬질해 보였지만 끼니는 잘 챙기는지 토실토실한 외형이었다. 작은 도서관과 고양이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덕분에 아이에게 이곳 인상이 한층 더 좋아졌다. 귀여운 고양이가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단석도서관은 여느 시립 도서관과 같은 운영시간을 갖고 있다. 자료실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주말은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며 열람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은 휴관일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3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다

지난 3월 27일, 봄비가 흩날리자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어떤 이는 울기까지 한다. 이는 단비가 아니라 생명수다. 28일 새벽까지 내린 강수량이 겨우 1~3mm에 불과했지만 그 적은 양으로도, 일주일째 의성을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내달리며 속수무책 미친 듯 날뛰던 화마를 진정시킨다. 흩날리듯 내린 봄비의 도움으로 그렇게 주불을 잡았다. 그러나 그 피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처참하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80여km(직선거리)나 떨어진 영덕 바다 끝 석리마을을 전소 시킬 것이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명 따개비 마을을 폐허로 만들고도 성에 차지 않는 듯 포효하며 바다위에 떠 있는 배까지 태워버린 성난 화마는 그렇게 바다도 태워버릴 기세였다.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 길안까지 확산된 25일, 낮 기온이 28도까지 오르며 더 건조해진 나뭇잎에 때마침 불어 온 강풍을 타고 불길은 영덕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비화(飛火)되어 내달린다. 시급히 내린 대피령보다 화마가 먼저 들이닥친다. 시뻘건 솔방울이 날아다니는 불구덩이 속에서 극한 공포와 함께 지옥을 보았노라 그들은 말한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 집도 추억도 일상도 남김없이 타 버렸다. 영덕 국민체육센터 이재민 대피소를 찾았다. 재난 기부 물품들이 쌓여가고 많은 봉사자가 분주히 오간다. 강구 여성의용소방대원들, 행정안전부 재난심리회복 지원센터, 대한적십자사 외에도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봉사단체 단원들이 힘들어하는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산불 피해 지원 성금도 줄을 잇는다. 심각한 산불피해를 본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5개 지역은 경북도에서 ‘긴급재난지원금’도 지급 계획이다. 강구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은 영덕에 불길이 닿은 25일 그날부터 봉사중이다. 삶의 터전이 전소된 피해자들이 임시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봉사는 계속된다. 피해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크다보니 복구가 쉽지 않아 장기간이 될 것 같다며 김성호 영덕군의회 의장이 찾아와 수고를 부탁한다.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이들에게 지나가던 많은 사람이 엄지 척을 한다. 힘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자기들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고맙고 든든하다. 행정안전부 재난심리회복 지원센터 김지태님은 부산에서 왔다. 재난을 당한 피해자들은 물론 구조요원, 봉사자, 산불을 경험한 누구라도 원하면 현장에서 초기상담으로 심리적 응급처치를 한다. 피해자들의 힘든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위로한다. 설마 했던 집이 전소된 것을 보고 온 피해자가 대피소를 방문한 정치인에게 욕을 하고 고함지르는 것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 또한 마음을 푸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심하면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분자분 희망을 상담하면서도 가슴은 먹먹하단다. 그 어떤 물건도 인연이 다하면 떠난다지만 평생을 살아 온 거처가 한순간에 사라진 이 엄청난 현실 앞에서 그들은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또 내일을 희망한다. 절망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보듬고자 많은 사람이 불길보다 더 뜨거운 온정 담아 봉사로, 물품으로, 심리상담으로, 성금으로 희망을 전한다. 희망은 절망을 치유한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3

LP와 함께한 집들이

오랜만에 집에서 하는 집들이에 초대받았다. 귀찮고 불편해서 대부분 사람은 맛집을 골라 배달한 음식을 내놓거나 식당에서 먹고 새집을 소개하고 티타임을 갖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런 과정도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번 초대는 아주 융숭한 상차림이었다. 아침부터 전복을 솔로 문질러 손질해 솥밥을 하고, 향긋한 달래장을 곁들여 냈다.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도 놓였다. 이렇게 안주인이 준비하는 사이 바깥주인은 손님들을 데리고 안방에서 두 아이의 방과 팬트리까지 소소한 사연까지 덤으로 올려 들려주었다.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의 장점을 살린 어여쁜 집이었다. 감성파인 남주인이 준비한 하이라이트는 티타임에 나왔다. 밀크티부터 시원한 녹차 물 건너온 커피까지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에 차 맛을 깊게 해주는 음악을 추가했는데, 턴테이블이 거실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릴 적 우리 집 안방에 젤 좋은 자리 차지했던 전축이 떠올랐다. LP판을 올리고 바늘을 올려주면 낮게 ‘지직’ 소리를 내며 좋아하던 임병수의 ‘약속’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었다. 집주인이 준비한 LP는 여러 장이었다. 제일 먼저 들려준 것은 1984년 강변가요제 앨범이었다. J에게, 오랜만에 듣는다. 잘 들으면 아는 목소리 나올 거라고 귀띔한다. 중간쯤 한석규의 목소리다. 장려상, 동국대학교 덧마루 팀의 한 사람이었다. 노래 제목도 ‘길 잃은 친구에게’이다. 직설적인 요즘 제목과 다르게 다정하다. 그다음 음반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였다. 열 번은 돌려보며 대사와 장면을 외울 정도인 최애 드라마이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어떤 장면에 깔리던 곡인지 알아 더 좋았다. 마시던 차가 떨어져 리필 받아 마셨다. 아파트 입주까지 바닥과 냉장고 같은 것을 골라야 하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즐거운 고민이었을 거라는 것을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알려준다. 또 다른 LP가 돌아가고 그동안 창고에 있다가 앞으로 나와 손님을 맞이하는 군자란의 전설까지 들었다. 그 사이 음악은 우리를 노래가 태어난 시대로 데려가 주었다. 주말에 새로 들어선 도서관을 방문했다. 집들이는 이미 지난 후였고, 많은 사람이 책장 사이, 빛 좋은 창가 자리, 또 조용한 구석에 노란 조명을 켜 둔 자리까지 거의 빈자리가 없었다. 그중에 2층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남자 한 분이 작은 턴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아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책장에 꽂힌 앨범 중에 듣고 싶은 것을 골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CD와 DVD 보는 자리도 따로 있었다. 벽면이 피아노 건반으로 구성된 하모니스텝의 경우 평소에는 책을 읽는 공간으로 쓰이다가 필요하면 소규모 음악 공연장으로 변신하는 오픈 스튜디오로 구성됐고, 경상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흥해 농요 등을 감상할 수 있는 향토음악 전시 및 감상 코너도 마련돼 이곳이 영남권 최초의 음악 특성화 도서관임을 실감케 했다. 레트로 열풍과 더불어 최근 가요 업계가 LP 앨범 발매에 나서자 젊은이들이 구매에 나섰다. 구매자의 연령별 비율을 살펴보면 10대(0.9%) 20대(16.5%) 30대(19.8) 40대(35%) 50대(21.2%) 60대 이상(6.6%) 순이었다. 이 중 30대 이하의 MZ세대 비율만 합치면 37.2%로 50대보다 많다. LP를 거의 접해보지 않은 세대인데 놀랍다. 그들에게 LP는 오래된 것이라기보다 처음 보는 새로운 문화다. LP 발매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진 장르는 가요다. 새 노래를 발표할 때 CD앨범과 LP앨범을 같이 발매하기도 한다. 깊숙이 넣어 두었던 ‘화양연화’ LP를 꺼내 닦아야겠다. 두 번째 화양연화를 즐기려면.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1

에코백, 정말 친환경적이 되려면

21세기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에코백. 요즘 길거리에서 이를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아마도 친환경적인 소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에코백은 세계적인 연예인들이 ‘나는 비닐백이 아니다 (l’m not a plastic bag)’라고 적힌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유명해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움직임 속에서 친환경을 내세우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이게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에코백’은 ecology(생태학)에서 유래한 말로 친환경 가방을 말한다. 플라스틱 봉투 대신 사용하는 천연소재의 에코백이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가볍고 예쁜 디자인, 비교적 저렴한 가격, 친환경 소비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구매를 유도했다. 특히 친환경임을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죄책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에코백을 선택하도록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에코백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면서 필요에 의한 구입이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을 소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각종 행사는 물론이고 유명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무료 에코백까지 더해져 어느새 집집마다 사용하지 않는 에코백이 쌓여가고 있다. 포항시민 A(47)씨는 “여러 행사에 참여해서 받은 에코백이 많다. 지난해에도 아이들이 받은 것과 합쳐 여러 개가 생겼다. 에코백을 받으면 처음에는 예쁘다 싶어도 집에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친환경이라는 관심도 덜 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에코백을 만드는 데도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는 사실이다. 친환경이 아닌 합성 원단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본래의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는 부분이다. 생산과 폐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오히려 비닐봉지 한 장이 더 친환경적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천연소재가 아닌 합성 원단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은 이렇게 만들어진 가방은 모양새만 그럴듯하고 판매가 목적인 듯, 물건을 담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구입 시에 잘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에코백이 원래의 취지대로 친환경적이 되려면 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비닐봉지를 대체한 에코백을 131회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완전한 효과가 있으려면 7100번까지도 사용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에코백도 오랫동안 사용해야 그 가치가 드러난다. 반면 비닐봉지는 37회만 재사용하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상쇄한다고 한다. 이는 에코백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게 되면 비닐봉지보다 더 환경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에코백이 친환경이 되려면 중요한 건 재사용을 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를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인데 이미 가지고 있는 에코백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불필요한 구매나 수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함께 나눠 쓰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기존 제품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새로 구입하는 것보다 더 현명한 선택이다. 에코백을 오래 사용하기 위한 세탁 방법도 잘 알 필요가 있다. 천 소재이기 때문에 쉽게 더러워질 수 있어서 세탁기보다 손빨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모양이 뒤틀리지 않고 구김이 없고 프린팅도 손상이 덜 하다. 이처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에코백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정말 친환경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허명화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1

전통시장에 봄소식이 도착했어요

봄은 어디에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도착 소식을 알려줄까? 그 궁금증에 관한 대답을 들려주는 풍경이 있다.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자리한 의성전통시장은 1946년 정기시장으로 출발한 역사 깊은 시장이다. 마늘전, 곡물전이 있고 주요 판매 상품은 양파, 홍화, 고추, 참깨 등이 많이 거래되는 곳이다. 지역민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아는 사람은 이미 아는’ 공간이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은 연탄구이 무뼈닭발이다. 불향 가득한 닭발집에는 막걸리 한 잔에 벌겋게 양념한 닭발 안주와 묵밥이며 잔치국수 손님으로 북적인다. 2일, 7일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떡볶이, 어묵, 핫도그, 호떡 노점에도 인파로 북적이고 오징어며 고등어를 파는 어물전 앞도 흥정으로 시끌벅적하다. 정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장터의 봄소식을 전해주는 노점 꽃집이 가장 인기다. 봄을 맞은 장터에는 각종 꽃모종과 꽃화분이 가득하다. 다육이부터 천리향, 아젤리아, 퀸로즈, 노블, 장미, 목마가렛, 비올라, 미니수선화, 왕수선화, 은방울수선화 등 빨갛고 노랗고 알록달록한 꽃이 상자 안에 정렬해 주인을 기다린다. 주인장은 물 주는 법,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느라 바쁘고 손님들은 팻말에 적힌 꽃이름을 외우고 꽃내음을 맡느라 바쁘다. 화분갈이를 할 계획을 세우고 화분 받침대가 필요한지도 따져보고 색깔별로 한 종류를 여러 개 구입해 가기도 한다. 가격도 저렴해 단돈 몇천 원에 봄을 산 손님들은 즐거운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도동리에 거주하는 김씨 할머니는 “꽃구경하는 재미에 장날이면 자주 나온다”고 한다. “즐거울 일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꽃이 예쁘게 핀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며 활짝 웃었다. 바쁜 발걸음도 멈추게 하는 노점 꽃집 앞엔 얼굴 찌푸리는 사람 하나 없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봄꽃 가득한 시장에서부터 어느새 우리 앞에 성큼 봄이 다가와 있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4-01

고녕가야 답사기

역사 유적지를 직접 방문하는 고적답사는 책으로 공부하는 것과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학습의 심화효과는 물론이거니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느낌이 마치 역사와 마주치는듯한 감정으로 신비롭다. 고녕가야가 존재했던 경북 상주시 함창읍 일대를 답사했다. 고녕가야는 경북 상주시 함창읍과 예천읍 지역에 존재한 6가야 중 하나다. 다른 가야에 비해 역사가 짧다. 위치가 북쪽에 떨어져 있어 존재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학계에서는 건국 당시 위치에 대한 이론과 존재가 자주 논란을 빚는다. 하지만 역사란 기록에 의해 전승되고 유물과 유적으로 그 실체를 증명하기에 그런 논란 따위에는 개의치 않는다. 고녕가야의 역사는 42년 즉위한 1세 고로왕에 이어 2세 마종왕, 3세 이현왕으로 이어졌으나 서기 254년 7월 신라 이사금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내가 방문한 고녕가야의 옛 성터는 남산고성이다. 일명 오봉산성으로 부르고 있다. 성의 둘레가 4530척이고 우물이 한 개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개 고대국가들은 도읍에 성을 쌓고 기초를 튼튼히 해 나라를 유지하고 접경지역에는 방어를 목적으로 성을 지었다. 내가 찾은 남산고성도 영남의 길목과 낙동강 중류연안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신라와 백제의 각축장이 된 듯하다. 고성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오봉산 봉화봉이 나오고 그 밑으로 성벽이 무너진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성터의 다른 곳에도 석축이 무너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성터로 짐작할 수 있는 돌무더기들도 볼 수 있다. 또 돌무더기를 따라 약 200m 정도 더 올라가면 고녕가야 병사들과 신라군이 만나 전투를 벌였을만한 장소와도 마주친다. 창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고녕가야의 큰 저수지는 공검지다. 다른 이름으로 공갈못이라 한다. 이는 제천의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와 가야시대에 축제된 농업용 저수지이다. 공검지는 서기 1997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됐다. 공검지의 축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재 신채호는 함창의 고녕가야를 ‘고링가야’로 표기했다. 이 ‘고링가야’가 와전되어 ‘공갈’이 되었고, 현재의 ‘공갈못’이 그 유허라고 했다. 공검면이라는 이름도 이 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예부터 공검지는 연꽃이 풍성하여 꽃이 만발하면 중국의 전당호와 견줄 만하다고 하였고, 이로 인해 ‘공갈못 노래’가 만들어져 전파되기도 했다. 유적지 현장에서 보고 듣는 역사 이야기가 고적답사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03-30

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인 ‘금강유람가’

일제시대 금강산을 여행하고 ‘금강유람가’를 쓴 장일상 선생의 손자 장세민씨(칠곡군 거주)를 만나 ‘금강유람가’의 전승 내력과 내용을 들어 보았다. ‘금강유람가’는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한문의 진본이 보관 중이다. ‘금강유람가’는 담재 장일상 선생(1897-1963)이 1930년 30대 나이로 금강산을 둘러보고 적은 기행문이다. 본래는 한문으로 글을 썼으나 부모님이 볼 수 있게 한글로도 작성했다고 한다. 그는 “진서 한불 꾸려놓고 언문으로 가사지어 부모님께 드린다”고 별도 주석을 붙였다. 효심을 느끼게 한 대목이라 하겠다. 장 선생은 1919년 파리장서운동 때 독립청원서 초안을 작성하는 등 독립운동을 한 장석영 선생의 손자다. 손자 장세민씨에 의하면 집안에 언문으로 필사한 ‘금강유람가’가 전해져 오는데, 조부의 형수인 풍양 조씨와 학성 이씨, 맏며느리 여강 이씨 등이 필사했고, 현재 본인은 맏며느리 여강 이씨가 필사한 것을 보관 중이라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장일상 선생은 1930년 음력 6월 15일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친구들과 칠곡 약목을 출발하여 석달 간의 금강산을 유람했다. 이후 경원선을 타고 철원을 거쳐 서울로 돌아와 총독부 건물과 동물원으로 변한 창덕궁을 둘러보고 “주권 잃은 백성의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내용 중에 금강산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석벽에 이름을 남기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당시만 해도 금강산 구경이 쉽지 않은 여행길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또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말 방언이 많이 수록돼 있다는 것이다. 당시 칠곡을 중심으로 영남지역 방언을 연구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돌뿔딱’(돌뿌리) 우케덕석(벼를 말리는 멍석), 산만당이(산꼭대기), 까끔끼다(팔짱끼다), 틔들다(끼어들다), 홑바락이(홑옷바람) 십전구도(엎어지고 자빠지며), 수괴지심(부끄러움), 모력(힘을 다해), 괘영하다(영정을 걸다), 소두방(솥뚜껑) 등의 표현이다. 장세연씨는 내방가사 작가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내방가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역 목록을 넘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3-30

문화재 가치로서 최치원 둔세시

현재 가야산 홍류동 계곡 농산정 건너편 바위에는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의 둔세시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선비들이 그의 글을 보러 찾아왔다고 소문난 시다.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란 제목의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돌 사이 흐르는 세찬 물에 온 산에 울리니/ 곁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 분간하기 어려워라/ 옳으니 그르니 시비소리 귀에 들릴까 늘 두려웠으나/흐르는 물로 온 산을 에워쌌다네” 최치원이 조정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가야산으로 은퇴한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평화로운 심경을 노래한 시다. 조선시대 한강 정구(1543-1620)가 쓴‘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는 “최 고운(崔孤雲)의 시 한 수가 폭포 곁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장마철이면 물이 불어나 소용돌이치며 바위를 깎아 내는 바람에 지금은 더 이상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1725년 정식이 쓴 ‘가야산록(伽耶山錄)’에는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승려가 “돌에 최치원의 친필이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글자가 마모되었다. 그래서 그가 이곳에 옮겨와 다시 새긴 것”이라 했다. 선비들의 유람록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최치원의 시는 처음 홍류동 계곡 바위에 새겨져 있던 것이 오랜 장마와 폭우로 글씨 대부분이 마모된 것을 우암 송시열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농산정 맞은편 바위에다 자신의 글씨로 다시 새겨 넣은 것이다. 최치원은 신라시대에 살았던 학자이자 문장가이며 사상가다. 말년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와 해인사와 관련한 많은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해인사와 최치원의 인연은 해인사에 친형인 현준스님이 있었던 것과 불교 관련 책들을 그가 많이 썼던 것 때문이다. 가야산에 은거하며 쓴 최고의 작품으로 ‘법장화상전’이 있으며, 해인사 창건과 중창에 힘쓴 스님들의 기록인 ‘순응화상찬’, ‘이정화상찬’ 등 수도 없이 많은 최치원의 기록이 남아 있다. 최치원과 가야산의 인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계곡 바위에는 시대를 떠나 많은 조정의 인물들이 찾아와 크고 작은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새긴 석문을 살펴보면 당시 조정 인물의 반은 홍류동 계곡에 다녀갔다고 해도 거짓이 아닐 듯하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에는 그의 은둔 생활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면서 친형인 현준 스님과 도우를 맺고 한가히 은거하다 노년을 마쳤다.” 가야산과 해인사는 최치원과 뗄 수 없는 인연의 장소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석벽은 홍류동 계곡의 노상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다. 바위에 새긴 글씨는 풍랑으로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최치원 둔세시의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를 잘 살펴 지금이라도 이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절차를 밟았으면 좋겠다. 문화재의 훼손도 막고 후손으로서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두 시민기자

2025-03-30

구구삼삼 행복대학

“구구삼삼을 아세요? 인생은 60부터입니다.” 구구삼삼(9933)은 30살의 인지로 3번을 산다는 개념으로 100세 시대에 노년기를 보다 활기차게 살아가자는 뜻으로 붙여진 조어다. 대구 서구 비원노인복지관(관장 권덕환)에서는 지난 3월 14일 비원노인복지관 강당에서 9933 행복대학 4기 입학식 및 제3기 졸업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장에는 류한국 서구청장, 정영수 서구의회의장,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지역기관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늦깍이 공부를 하는 노인들의 학습 의욕을 격려했다. 9933 행복대학은 노년기를 맞은 어르신을 대상으로 각종 강연과 취미활동, 여행, 문화 체험 등을 통한 수업을 하고 있다. 특히 노년기에 빠지기 쉬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노년기 학생들 간 상호교류로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 배움을 통해 두뇌를 자극해 치매 예방 등 건강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이 과정은 2022년 구구삼삼 행복대학이 처음 문을 연후 올해로 3년째를 맞고 있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9933 행복대학을 통해 젊고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이 너무 좋고 늘 건강하길 기원하고 졸업과 입학을 축하한다”고 축사를 했다. 행복대학 졸업생 박구정 씨는 “2년 동안 행복대학을 다니면서 정말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다른 졸업생 한성주 씨는 “봉사활동과 지역행사 참여 등을 통해 노년기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발표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3-30

꽃피는 봄날의 모꼬지 행사

톡 톡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춘삼월. 옆집 담장 넘어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온 동네를 그윽한 향으로 채우는가 싶더니 벌써 4월의 벚꽃축제 소식이 여기저기서 난무하다. 여자들의 바깥출입이 쉽지 않던 시절에도 봄이 오면 진달래 꽃잎 따다 찹쌀전에 곱게 얹어 화전의 풍미를 음미하며 봄을 즐겼다. 화사한 봄꽃 소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모꼬지 행사를 부추긴다. ‘모꼬지’는 순 우리말이다.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뜻한다. 모내기의 다른 표현인 ‘모 꽂이’가 ‘모꼬지’로 변모했다는 것이 민간어원설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일인 농사를 시작하는 봄철이면 품앗이가 생활이던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볍씨로 싹을 틔워 둔 모를 쪄서 두레질한 논에 옮겨 심었던 모내기가 모 꽂이라는 설이다. 모꼬지는‘MT(Membership Training)’를 대신해 쓰기도 한다. 하지만 모꼬지는 사사로운 모임을 뜻하고 MT는 공식적인 수련모임을 뜻한다 해서 다소 의미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꼬지로 대신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봄날의 많은 모꼬지 행사 중 화수회(花樹會)라는 것이 있다.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이다. 종친회와 유사한 친족 모임이지만 본관이 달라도 성이 같으면 함께 한다. 산업화에 따라 고향을 떠난 이들이 타향에서 만난 같은 성을 가진 친족들을 집안사람들이라는 유대로 덕담을 나누고 조상에 대한 은덕을 기리며 뿌리를 알아가는 소중한 모꼬지인 것이다. 화수회 개념의 집안 모꼬지 행사도 있다. 1년에 한 번, 꽃피는 3월에 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집안의 삼촌, 사촌, 오촌, 육촌이 고향에 모여 먼저가신 선조를 기리고 촌수의 개념도 알리며 친족끼리 친목을 다진다. 그러나 화수회나 집안 모꼬지 행사는 기성세대들에 한하는 경향이 있고, 젊은 친구들의 참석 유도가 쉽지 않다. 집안모임이나 제사에 대한 개념이 예전과 사뭇 다른데다 이미 우리나라 법은 조건이 합당하면 친모 성(姓)으로 성본 변경이 가능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에는 가문대대로 잘 정리되어 내려오는 족보(族譜)가 있어 자신의 혈통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족보는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 집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서양학자는 이를 두고 국가·사회·가정의 질서를 잡아주고 자손을 도덕적으로 바른길로 인도하는 족보의 기능을 높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족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견해 차이가 있어 일부는 기득권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봄꽃들의 향연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한다. 진달래 꽃잎 따다 화전을 부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상춘객이 되어 이 봄을 즐긴다. 달라진 세월 속에서 가까운 사촌끼리도 서먹서먹한 지금, 춘삼월 꽃 필 때의 친족 모꼬지행사가 계속 대(代)를 이을지는 모를 일이다.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던 퇴계 이황은 ‘시류를 따르라’ 했다. 지금은 AI 시대. 봄날 집안 모꼬지 행사를 다녀와 500여 년 전 다른 시대를 살다간 퇴계 선생의 이 말을 깊이 되새겨 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3-27

마음이 아플 때는 詩라는 약을 복용하라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날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 막막한 그런 날 말이다. 이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내팽개쳐진 것 같은 절망이 밀려온다. 얼마 전 그런 일을 겪었다. 우주의 미아가 된 듯 누구 하나 손잡아 줄 이가 없어 보였다. 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친정 식구들은 모두 멀리서 제각각 살기 바쁘다. 허물없이 찾아갈 친구도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 쓸쓸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또각또각 내 구두 소리만이 밤거리에 울렸다. 이렇게 답답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걸으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꾸 부정적으로 빠져드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데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함을 깨달았다. 문병란 시인의 시 ‘희망가’를 한 줄씩 암송했다. “얼음장 밑에서도 / 고기는 헤엄을 치고 / 눈보라 속에서도 /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 절망 속에서도 /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 보리는 뿌리를 뻗고 / 마늘은 빙점에서도 /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 고통은 행복의 스승 /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 인생항로 / 파도는 높고 /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 한 고비 지나면 /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문병란 시 ‘희망가’ 전문 시인이 IMF 시절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쓴 시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어떤 어려움 앞에서 다시는 희망이 없을 것처럼 절망하고는 한다. 그래서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 어두운 감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감정에 깊이 몰입되어 자꾸 절망 쪽으로 빠졌었다.‘희망가’를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읊조리다 보니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씩 희석되었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시낭송이 주는 치유 효과를 새삼 느꼈다. 시가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짐도 절실히 느꼈다. 사람은 우울하면 말을 하기 싫어진다. 그럴 때 일부러라도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시를 낭송해 보기 바란다. 사람의 말소리는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어서 긍정적이고 좋은 문장을 말하면 그 소리에 스스로 용기를 얻게 된다. 자꾸 반복해서 소리를 내면 어느 사이엔가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온갖 생각으로 복잡하고 괴로울 때면 다 덮어두고 시를 암송해 보길 권한다. 입 속으로 말고 꼭 소리를 내서 시를 읽어보기 바란다. 마음이 아플 때 시만큼 큰 치유의 약도 없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3-27

불국사 목련

찬바람 불던 계절에도 관음전에 오르면 습관처럼 목련나무를 쳐다봤다. 언제쯤 피려나. 이번엔 때를 놓치지 않겠다 벼르고 있었다. 봄 강아지 꼬리 같은 보송한 모습을 한 꽃봉오리는 겨우 내내, 그리고 완연한 봄이 임박했을 때도 꿈적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를 등교 시킨 후 불국사로 향했다. 평일 오전이라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다. 오늘은 대규모 단체 관광팀도 보이지 않는다. 달라진 날씨 탓인지 겹벚꽃이 벌써 꽃을 틔울 태세다. 철을 기다리느라 애써 붙잡고 있는 봉오리 사이로 진분홍 꽃잎이 제법 삐져나와 있다. 늘 조금 긴장하며 들어서는 사천왕문을 지나자 성급한 매화는 벌써 꽃잎을 떨구고 있다. 대웅전으로 올라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목적지로 향했다. 가파른 낙가교가 언제나 부담스러운 관음전이다. 관음전은 불국사 내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조선 초기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수고스러움은 뒤에 만날 관음전 뒷마당의 매력과 비교할 수 없는 까닭에 열심히 오른다. 계단을 다 오르자 새하얀 목련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께 먼저 예를 표하는 것이 맞다 싶어 처마 아래에 섰다. 합장하며 올려다본 관음보살상 얼굴에 미소가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그날그날 찾아간 마음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인사를 마친 후 뒷마당으로 넘어갔다. 햇볕에 바싹 말라 하얘져 버린 모래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위로 드려진 기와 그림자가 선명하게 내려 앉아있다. 목련 나무가 있는 곳엔 이미 관광객 몇과 커다란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뒷 마당을 구경하며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경내에서도 조용한 편인데다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까닭에 조용함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멀리서 들려오는 염불 소리와 새 소리,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보통 10시쯤이면 염불이 시작된다. 사바세계, 극락세계에서 중생들의 고뇌를 해소해 주는 대자대비 보살로 알려진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공간이어서일까.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시 후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 목련 나무 앞에 섰다. 짙은 무채색 기와 담장 옆에 자리 잡은 하얀 꽃들이 파란 하늘을 만나 더 환해 보인다. 세월과 자연이 만나 만든 색들은 조금의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합장하듯 모아진 덜 여문 꽃봉오리는 좀 더 노란 빛을 완전히 펼쳐진 꽃잎들은 더 하얗게 조금씩 다른 얼굴들이다. 이쪽저쪽 아쉬울 것 없이 한참을 들여다 보고 나서야 마당을 떠났다. 가장 아래로 내려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입구에 있는 매점에 들러 습관처럼 콘아이스크림을 샀다. 따뜻한 날만큼 부드럽고 달콤하다. 봄은 봄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