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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내마음의 십자가’란 이름으로 9번째 사진전 개최

사진작가 장영규씨는 수많은 사진물의 대상 가운데 십자가를 주제로 선택한 개성있는 작가다. 2009년 취미로 처음 시작한 사진 촬영이 시간이 흐르면서 공부가 되고, 어느덧 작가의 경지에 들어섰다. 어느 날 그는 사진작가로서 가야 할 길의 선택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사진작가들의 주제 선택은 단순히 무엇을 찍을지라는 생각보다 그 대상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주제 선택과정이 매우 신중하다. 작가의 작품에 따라 작가가 주 대상으로 삼는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는 고목나무를, 어떤 이는 산을 잘 찍는 작가라는 별도의 이름이 붙어 다니는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강 작가는 신앙인으로서 자연스레 신앙과 관련된 주제를 찾다가 ‘내 마음의 십자가’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십자가를 주제로 삼기로 한 날, 그는 한 골목길에서 온통 십자가가 가득 찬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장 작가는 “사물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의도한 것을 발견했을 때 발견한 그것을 사진기호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작품”이라며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장 작가는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 은혜 그리고 부활의 기쁨과 생명까지 그 느낌을 작품에 표현하려고 노력해 왔다”며 그의 마음의 십자가 작품은 내면의 소리를 사진 기호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그는 2015년 ‘안셀 아담스전-나도 안셀이야’에서 ‘반영의 미’를 시작으로 2016년 '부산국제사진페어’와 2018년 ‘평택포토페어’, 2022년 ‘대구사진페스티벌’, 2023년 ‘대구사진비엔날레’ 등 많은 무대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3월 24일부터 29일까지 범어대성당 드망즈갤러리에서 ‘내 마음의 십자가’ 전시회를 가졌다. 사진비평가 진동선은 “장 작가는 일상의 사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표현했다”며 “그것을 마음의 십자가라 이름하였다”고 말하고 그의 작품은 “사소한 것에서 큰 의미를 발생하는 매력적 요소가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31

아름다운 남쪽 바다 광양만서 현장체험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올해 봄 학기 첫 현장학습을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광양만을 다녀왔다. ‘신나고 행복한 시니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화창한 봄날을 맞이하여 남해로 향하는 노신사 학생들의 얼굴엔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번 현장학습은 광양만의 자연환경을 체험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먼저 사천휴게소에서 팬텀기를 관람했다. F-4D 팬텀기로 1969년 한국 공군이 처음으로 보유한 기종인데 2010년에 퇴역했다고 한다. 대구를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전남 광양에 도착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첫 번째 학습지 배알도다. 차에서 내려 바라다보는 배알도는 조그만 섬으로 탁 트인 바다 위에 펼쳐지는 풍경이 명성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별 헤는 다리를 건너니 아래쪽에 배알도라고 커다랗게 쓰인 입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알도란 이름은 해수욕장 건너편 망덕산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라 붙여졌다고 하는 설과 바닥에서 보면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하늘의 임금님 천제를 배알하는 모습에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배알도 양쪽에는 별 헤는 다리와 해맞이다리가 이어져 있는데, 다리 이름으로 보아 밤하늘의 별빛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장소이며, 연초에는 해맞이 장소가 된다는 뜻일 것으로 짐작이 갔다. 사방에 펼쳐지는 바다와 강은 어느 쪽이 남해인지 섬진강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였다. 해맞이다리 건너 수변공원 뒤쪽으로 멀리 광양제철의 모습도 보였다.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배알도 견학을 마치고 다음 학습 코스인 광양 매화마을로 향했다. 커다란 산비탈에 있는 마을은 엄청 넓었다. 언덕길을 오르기 전에 강변에 잘 가꿔진 공원에서 삼삼오오 반별로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다. 광양 매화마을은 30만평으로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위치하였으며 수십만 그루가 봄이 되면 일제히 하얗게 피어 마을 전체가 온통 꽃밭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길이 너무 가팔라서 그 옛날 이곳에서 산 주민들은 얼마나 어렵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2월부터 3월까지 매화 축제가 열려 올해로 26회째다. 전국에서 100만 명이 되는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하니 놀랍기도 했다. 이 마을의 대표적인 명소인 홍쌍리 명인의 청매실농원을 찾았다. 전망대를 오르니 매화마을 전체와 섬진강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하동군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영화 ‘취화선’, ‘천년 학’ 등의 촬영지라고 한다. 마을 전체가 매화꽃으로 뒤덮여 이곳이 무릉도원 같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신생 수요대 학생회장은 “남쪽 바다에 위치한 전라도 광양 지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이름조차 생소한 배알도의 아름다운 모습과 전래, 수십만 평의 광활한 꽃 천지인 아름다운 매화 마을을 직접 답사하여 큰 힐링이 되었고 지역의 역사를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31

(시민기자 단상) 삶의 가치, 인간의 존엄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존엄한 존재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과 사회의 성숙도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의 존엄사는 단순히 죽음을 앞당기거나 연장하지 않는 문제를 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다 인간답게 떠날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존엄은 젊고 건강할 때만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져야 할 가치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간은 때로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어도 삶의 의미와 품위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때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존엄사’다. 존엄사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키려는 성찰에서 출발한다.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오직 기계와 의료기술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의식과 삶의 의미가 사라진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당사자와 가족 모두에게 깊은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 따라서 존엄사는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라기보다 ‘어떻게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그 생명이 단지 시간의 연장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삶에는 품위와 의미가 있으며, 인간은 자신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성찰할 권리 또한 지닌다. 물론 존엄사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생명의 가치는 결코 가볍게 판단될 수 없으며, 의료적·법적·윤리적 기준이 분명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고, 가족과 의료진, 사회가 함께 깊이 고민하며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존엄사를 논의하는 이유도 결국 인간의 생명을 다시 생각하고 인간의 존엄을 더욱 깊이 존중하기 위함이다. 삶의 시작이 축복받아야 하듯이 삶의 마지막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마지막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존엄사는 생명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마지막 순간까지 존중받아야 한다는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사회적 약속이다. 우리 사회가 존엄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단지 죽음의 방식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우리가 서로의 마지막을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존엄은 삶의 시작에서 끝까지 온전히 이어질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3-31

화끈한 매운맛으로 스트레스 확~맵고수들 다 모여라

긴 여행의 후유증은 여러 개다. 갱년기 증상으로 불면증이 있는데 시차 적응까지 하려니 내내 잠을 설쳤다. 두 번째로 입이 짧은 탓에 여행 내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배가 고플 때마다 과자와 사탕으로 버텼다. 열흘이나 하얀 쌀밥 구경 못하니 위에 탈이 났다. 그럴수록 매운맛이 당겼다. 경주 안강읍에 불맛으로 20년 넘게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있다고 했다. 오전 일정을 함께 한 문숙씨에게 소개하니 좋아했다. 닭날개 먹으러 영양까지 다니러 갈 정도라고 오늘 당장 가보자며 웃었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안강제일초등학교 근처였다. 점심부터 화끈한 불향 생각에 침이 고였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찾아가니 이런, 문이 닫혔다. 다시 검색하니 영업시간이 오후 5시부터였다. 소식 듣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허겁지겁 달려오며 시간도 확인하지 않은 탓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바로 옆 가게에서 옹심이를 팔기에 무작정 들어가 시켰더니 나쁘지 않았다. 안강은 동네 장사라 대부분 어느 수준 이상의 맛을 자랑했다. 남편과 따로 주말 저녁에 다시 찾았다. 가게 바로 앞에 주차하니 문 열기까지 20분이 남아서 안강성당에 환하게 밝힌 목련도 보고, 가로수에 막 꽃문을 열기 시작한 벚꽃도 보다가 몇 걸음 가니 칠평도서관이 있었다. 형산강으로 흘러가는 지류의 이름이 칠평천이라 도서관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5시가 되어 가게로 가니 첫 손님이었다. 그런데 불날개 1인분과 뼈 없는 닭발 1인분을 주문 넣으니 30분 기다려야 음식이 나온다고 했다. 미리 전화로 우리보다 먼저 시킨 곳이 밀려있었다. 가게 안에 손님은 우리뿐이었지만 불판에 석쇠를 뒤집는 사장님은 전화기에 불부터 꺼야 할 정도로 주문이 많았다. 쉴 새 없이 벨이 울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며 양배추샐러드와 치킨 무와 수저를 내왔다. 남편은 그것만으로도 맥주 한 병을 해치웠다. 포장한 음식이 쌓이자 가지러 오는 퀵서비스 아저씨들이 들락거렸다. 오래 기다리는 우리가 안쓰러운지 계란탕 뚝배기를 서비스로 슬쩍 건넸다. 아, 5시에 문을 열지만 그 전에 미리 전화로 주문하고 와야 하는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이 길었다. 한참 후 닭날개와 닭발이 불향을 덧입고 우리 탁자에 놓였다. 손으로 들고 뜯으라고 비닐장갑도 함께 내려놓았다. 한 입 뜯자, 입술이 화끈거렸다. 저기요, 쿨피스 하나요! 자두와 파인애플 중에 무슨 맛으로 드릴까요? 자두맛 주세요. 불날개 한입에 쿨피스 한 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었다. 남편은 매운맛을 핑계로 혼자 세 병의 맥주를 들이켰다. 메뉴판에 있는 마늘닭도 맛볼까 하다가 집에 있는 아들 주려고 불날개와 닭발 1인분씩 따로 포장해 달라고 우리 음식이 나오기 전 부탁드렸다. 다 먹고 시키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몰라서다. 술을 안 먹는 나로서는 밥이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어쩌겠나 이 집은 밥집이 아니라 안주 맛집이니. 싱겁게 먹는 내 입맛에 닭발은 간이 세다. 밥반찬으로는 딱이었다. 안강 사람들은 주문해서 저녁 식사로 치밥을 먹는가 보다. 매운맛을 후후거리며 먹는 동안, 전화로 주문하고 직접 가지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따로 주문한 하얀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양배추샐러드와 치킨 무와 콜라가 서비스로 들어있었다. 아들과 2차를 했다. 최근 음식을 먹을 때마다 속이 약간씩 쓰려서 매운 불날개를 먹으면 더 아플까 봐 걱정하며 먹었다. 미리 나온 양배추샐러드를 한 접시 미리 먹고 나서 매운맛이 들어가니 속이 편했다. 두 음식이 궁합이 잘 맞았다. 쿨피스 한 통을 다 마신 건 비밀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6-03-30

400년 이어진 노오란 산수유꽃 향연

경북 봉화군 봉성면의 산골 마을 띠띠미는 매년 봄마다 노란 산수유꽃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흙냄새와 봄꽃 향기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산수유꽃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 마을 전체를 황홀한 노란 물결로 물들인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절정을 이루는 꽃향기는 400년 역사의 숨결과 함께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띠띠미마을은 조선 시대 병자호란의 굴욕적 화의에 반발해 청나라에 항거한 ‘대명절의’ 정신을 간직한 곳이다. 특히 태백오현 중 한 명인 두곡 홍우정(1595~1656)이 이 마을의 산수유 역사를 시작했다. 그는 경기도 이천에서 산수유 두 그루를 가져와 심었고, 이는 후손들에 의해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홍우정의 종택과 ‘옥류암’ 정자가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그의 뜻을 기리는 태백오현(홍우정, 심장세, 정양, 강흡, 홍석)과 관련된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문수산 자락 아래 자리한 원조 산수유 군락지는 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들이 고즈넉한 고택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토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돌담과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오며, 가을이면 빨간 열매로 변모하는 산수유는 영원한 사랑과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꽃잎은 차로, 열매와 뿌리는 약재로 활용되는 산수유는 겨울의 혹독함을 이겨내고 피어난 희망의 상징이다. 남양홍씨 집성촌인 이곳에는 두곡종택, 옥류암 정자, 홍가선가옥, 성경재고택 등 전통 한옥들이 산수유 군락과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특히 홍우정의 종택 옆에는 ‘옥류암’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맑고 깨끗한 물이 떨어지는 계곡 옆에 자리해 이름 그대로 청정함을 간직한 공간이다. 고택 담장과 계곡, 산비탈 언덕까지 사방이 노란 꽃그늘로 물드는 봄날, 마을 사람들은 순박한 모습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지난 28일에는 봉화문인협회가 주최한 산수유 시낭송회가 열려 노란 꽃망울 터지는 순간을 문학적으로 기념했다. 마을 초입에는 수십 그루의 춘양목 군락이 우뚝 서서 선비 같은 기품으로 길손을 맞이한다. 봉화의 어디를 가도 마주치는 늘씬한 춘양목은 띠띠미마을의 고택들과 산수유꽃이 빚어내는 황금빛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을 연출한다. 띠띠미마을의 산수유꽃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호젓한 고택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노란 꽃밭은 마치 시간을 거스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가족, 연인, 아이들이 함께 산책하며 봄을 만끽하는 모습은 마을의 평화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봉화의 8경 중 5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이곳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꽃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한다. 400년간 이어진 산수유의 향연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봄 햇살 아래 펼쳐지는 황금빛 꽃물결 속에서 방문객들은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선조들의 정신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향기 그윽한 세월의 흔적과 지천으로 핀 산수유꽃이 어우러진 띠띠미마을은, 봄의 전령으로서 우리에게 끝없는 영감을 선사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6-03-30

세계기록유산, 직지를 만나다

답사회원들과 세계기록유산인 직지(直指)를 만나러 갔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직지를 본다는 건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것 이상으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직지를 전시한 청주고인쇄박물관 입구에는 두 개 대학교 사학과 학생들이 수업차 방문해 조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보아하니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고인쇄박물관 관람이 필수코스인 것처럼 보였다. 고인쇄라면 내게는 목판인쇄본인 팔만대장경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평소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궁금해하면서 서둘러 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해설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이 지긋한 나태주 시인의 인상을 하고 계신 해설사의 손에는 직지의 복사본이 자랑스레 들려있다. 먼저 직지는 ‘책’이라는 걸 강조하며 눈빛마저 반짝였다. 직지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알려줄 태세다. 전시관이 시작되는 입구에서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직지를 복원해 놓았다. 펼쳐진 책은 우리에게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임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흥덕사지에서 인쇄된 직지는 원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줄여서 직지심체요절이나 그냥 편하게 직지라고 부른다. 직지는 상권과 하권이 있는데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 복사본이다. 순간 우리의 문화유산이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게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가 직지를 알게 된 건 민제 박병선 박사의 노력에 의해서다. 전시관 한쪽에는 박병선 박사의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와 사진, 정부에서 받은 훈장 등이 놓여있다.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동양서고에서 직지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노력 덕분에 직지는 2001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4년에는 직지상까지 제정하게 되었다. 외규장각 ‘의궤’도 마찬가지였다. ‘의궤’는 환수되어 영구대여 형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지만 직지는 그렇지 못해 아쉽다. 박병선 박사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우리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해설사는 직지의 내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고승들의 가르침과 참선에 대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팔만대장경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설명을 들으니 그 내용에 대해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역사를 학교 시험 문제로만 보고 무작정 외우기만 한 탓이 크다. 박물관에서는 직지의 이야기를 지나 목판인쇄와 금속활자에 대한 한국 인쇄문화발달 과정도 볼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한글의 보급으로 인쇄가 활발해 다양한 책들이 만들어졌고 일상생활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1800년대 말에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쏟아지는 정보를 감당하기 위해 근대인쇄술을 도입했다. 그때 ‘한성순보’라는 첫 신문을 탄생했고 민간에서도 인쇄소가 생겨났다. 늘 활자와 가까이하고 있지만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인쇄의 역사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관람을 마친 우리는 “아이들 어릴 때는 의무감으로 봤다. 오늘 다시 와서 보니 새롭다. 이런 체험학습이 살아있는 교육이다”라고 비슷한 소감을 말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3시간 무료 주차에 관람료도 무료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3-30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택호(宅號)

고향이 불러주는 또 다른 이름. 우리 할머니는 ‘산전댁’이셨다. 산전수전 다 겪으셔서가 아니라, 진짜 고향 이름이 산전이었다. 어머니는 ‘서동댁’. 뭐 서쪽 골짜기에서 오셨다 해서 그렇게 불렸지만, 듣자 하니 사연이 좀 쓰렸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 한글 띄엄띄엄 깨칠 무렵, 궁금증 폭발해서 할머니께 여쭸다. “할머니는, 왜 산전댁이에요?” “응? 그건 내가 산전서 자랐으니까 그렇지~” 순박하게 던지신 말씀한 줄에, 나는 ‘택호’라는 이름의 위엄을 깨달았다. 그날부로 ‘산전댁’은 우리 집안 전통 브랜드요, 동네 인증 마크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택호라는 게 묘하다. 한자로 쓰면 그럴싸한데, 실상은 푸근하고 툭 던져도 부드럽다. 그 옛날엔 지도보다 택호가 더 정확했다. “저 골목 들어가면 마산댁, 그 옆이 경산댁, 거기서 비탈 하나 넘으면 청도댁 집 나와예~” 내비게이션? 카카오맵? 그런 거 없어도 동네 어르신들 머릿속엔 택호 지도가 내장돼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안에 택호와는 인연이 먼 분이 계셨으니···. 바로 귀도 아제. 이분, 조실부모에다 성품이 어찌나 순하신지, 어린것들도 “귀도야~” 하며 뉘 집 개 부르듯 하는 것 같아 내가 다 민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감동했는지 정체불명의 여인이 마을에 흘러들어왔다. 성은 알 수 없고, 누군가 “성주에서 왔다 카더라~” 하자, 동네 어르신들 회의를 소집했다. 결론은? 합방! 우격다짐으로 신방을 차려주었으나 사흘 만에 여인이 짐을 싸 들고 떠났다. 놀라운 반전! 그날 이후, 귀도 아제는 ‘성주 양반’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귀도 아재가 택호를 얻으셨으니, 몽달귀신 딱지는 뗀 셈이었다. 우리 집안도 북적이기로는 전국 랭킹권. 조부님 4형제에 손자 열둘, 종반만 24명이었다. 대소사 한 번 치르면, 잔칫집인지 체육대회인지 구분이 안 갔다. 이름 불러가며 소리치긴 민망하고, “누구 아버지!” 하면 조카 이름 헷갈려 한참 뜸 들여야 하고. 결국 우리는 택호로 해결책을 찾았다. 부인들 고향을 기준으로 호칭을 정하자! 내 집사람은 경주 출신이었는데, 마침 우리 집안엔 경주댁이 없었다. 이 얼마나 명예로운 자리인가! 그리하여 나는 ‘경주 양반’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택호 때문에 마음고생 좀 하셨다. 같은 동네에서 먼저 시집온 5촌 당숙모가 ‘○○댁’ 타이틀을 가져가자, 어머니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쪽 동내서 왔다고 ‘서동댁’이 되셨다. 같은 동네인데, 늦게 들어왔다고 서쪽으로 밀려난 거다. 지금 생각하면, 고향 이름조차 빼앗긴 새색시의 조용한 분함이 가슴에 콕 박힌다. 그래서 집안 회의 결과, 새로운 룰을 만들었다. 같은 고향일 땐 형은 도시명, 아우는 마을명. 같은 동 출신이면 ‘한동댁’, ‘자동댁’, ‘내동댁’ 뭐, 창의력대로. 실제 ‘지산댁’도 있었다. 경상도말로 지 산 밑에 살아서, ‘지산댁’ 되신 거다. 택호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낯선 시댁살이에 뛰어든 새색시에게, 고향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 마음의 방석 하나 깔아주는 일이다. “○○댁~” 한 마디에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허리도 조금 펴진다. 게다가 택호엔 무게도 있다. “문경댁이 어디 가서 그런 꼴을 하고 다니노!” 한 마디에 온 동네 체면이 함께 묻힌다. 그러니 택호는 이름값 제대로 하게 만드는 무서운 도장이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29

(이사람) 이상기 전 지천면장

“등 굽은 소나무가 결국 선산을 지키듯, 부족한 저를 키워준 고향 지천을 위해 변치 않는 소나무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서 나고 자라 제35대 지천면장으로 공직을 마무리한 이상기 전 면장(63)의 삶은 ‘지천’ 그 자체다. 1987년 공직에 입문한 이래 36년간 칠곡군청 산업과, 농림과, 축산계장, 농업정책과장, 석적읍 부읍장 등 요직을 거치며 쌓은 행정 전문가로서의 역량은 고향 지천면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이 전 면장의 가장 독보적인 업적은 단연 ‘지천면지(枝川面誌)’ 발행이다. 지천면지 발행은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이후 50여 명의 면장이 거쳐 갔지만, 방대한 자료와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면민들의 숙원이었다. 이 전 면장은 퇴직을 불과 1년 6개월 앞둔 2021년, “고향의 역사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후손을 위한 도리”라는 생각으로 편찬 작업에 착수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군수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고, 72명의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23개 마을을 이 잡듯 뒤졌다. 2022년 정년퇴임 후에도 그는 쉬지 않고 10개월간 편찬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해 봉사 활동을 했다. 사비와 시간을 들여 원고를 교정하고 영상 촬영을 진두지휘한 결과, 2023년 5월 지천면 역사가 109년 만에 가장 품격 있고 방대한 자료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업적은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1990년대 말, 전국 최대 아카시아 군락지인 신동재를 주목해 ‘신동재 아카시아 벌꿀 축제’를 최초 기획한 이가 바로 그다. 이 축제는 칠곡군을 대표하는 문화 행사로 자리 잡으며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퇴임 후에도 지천면민 친선 골프 대회를 조직해 3년째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지천면 발전협의회 위원으로서 ‘신동역 대경선 정차’, ‘낙화담 둘레길 개발’ 등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주변에서는 그를 ‘지천의 효자’라 부른다. 99세 부친과 96세 모친을 고향 본가에서 삼 형제가 24시간 교대로 정성껏 봉양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수상 실적이나 효행이 알려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일 뿐이며, 공직에서의 성과는 동료와 면민들이 도와준 덕분”이라며 겸손해 한다. 그는 고향 홍보도 빼놓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양떼목장, 낙화담과 같은 명소가 많으며 학군도 좋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지천”이라고 자랑한다. 그는 요즘 ‘지천 소나무’라는 별칭으로 유튜브 활동을 하며 지천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3-29

대구향교, 병오년 석전대제 봉행

대구향교 대성전에서 지역유림과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석전대제(釋奠大祭)가 지난 24일 봉행됐다. 석전대제는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先聖)과 선현(先賢)께 제사를 지내는 유교의식이다. 이날 대구향교 석전대제는 도인석 대구향교 전교가 초헌관을 맡았으며, 아헌관에는 이규옥, 종헌관에는 김종규, 집례 박해율, 대축 유윤환 등이 의례에 따라 역할을 수행했다. 의식에 따라 초헌관이 먼저 향을 피우고 폐백을 올린 뒤 첫 술잔을 올렸으며 이어 축문을 읽어 제례의 의미를 알리는 독촉이 있었다. 축문 내용은 이렇다. “공기 2577년 세차 병오년 2월 6일 정유일(丁酉日)에 대구향교 전교 도인석은 대성지성문선왕께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데 오직 대성지성문선왕께서는 도가 백왕의 으뜸이시고 만세의 종사이시라. 2월 상정일을 맞이하여 청결하게 제사 올림이 마땅하나이다. 삼가 희생과 제물, 예제와 곡식 및 여러 제수를 공경히 차리어 밝게 드리오며, 안자, 증자, 자사, 맹자를 배향하고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을 종향하오니 흠향하옵소서“. 이어서 아헌관이 두 번째 술잔을 올리고, 종헌관이 마지막 술잔을 올렸다. 예가 끝나고 분헌관이 동서 종향 위에 향을 피우는 예가 이어졌다. 음복례와 축문과 폐백을 불살라 감소에 묻는 망료례로 제를 마쳤다. 도인석 전교는 인사말을 통해 “병오년을 맞아 대구향교에서 유림 여러분과 함께 선성선현의 덕을 기리고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는 석전대제를 봉행하게 된 것을 깊은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오랜 전통을 이어오는 석전대제를 잘 보전하고 계승해 나가자”고 말했다. 대구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교동에 창건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전부 소실된 것을 선조 32년(1599) 달성공원에 이건 하였으나, 선조 38년 다시 교동에 환건 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는 유림의 항일운동 집회를 일제가 봉쇄하기 위하여 1932년에 현 위치로 강제 이건 하였다. 대구에서는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진흥을 위하여 영남 각지에서 유림들이 모여 연 2회 춘추 중월(2·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대성전은 현재 대구시 문화재 자료 제1호로 지정돼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정위에 모시고 4성(안자, 증자, 자사, 맹자)을 배향하였으며 동종과 서종에는 송조 2현, 신라조 2현, 고려조 2현, 조선조 14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매월 삭망(朔望)에 유림들이 분향례를 올리고 있다. 명륜당은 대성전 건립연대인 조선 개국 직후인 1398년에 교동(校洞)에 창건하였으며 향교 건물 중 대성전과 함께 향교의 기본 건물로 대구지역 유림들이 모여 학문과 도의를 강마하던 곳이다. 양사재는 조선시대 영조 병술(1766년)에 판관 김노에 의해 설립되었다. 향시 때는 과거장으로 사용했다. 현 건물은 1991년 12월 28일 복원한 건물이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29

국제펜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 2026년 사업 확정

국제펜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회장 정삼일)는 지난 26일 대구 명덕로 소재 한정식 식당에서 2026년도 사업계획을 확정하는 제1차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올해 추진할 주요 사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참석 이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계획안을 공식 추인했다. 회의는 지역 문학 발전과 국제 교류 확대를 위한 실질적 방안 중심으로 진행됐다. 특히 각 사업의 실행 가능성과 지속성, 시민 참여 확대 방안까지 심도 있게 논의했다. 조직도 재정비했다. 업무진행위원장에는 방종현 수필가가 선임됐고 손동락·전영귀 시인이 신임 이사로 선임됐다. 위원회는 이번 인선으로 조직 운영의 안정성과 추진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매년 이어져 온 시화전을 올해도 계속한다. 회원들의 시화 작품을 범어역 아트거리 일대에 전시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시민과 문학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해 지역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할 예정이다. 특히 일상 속 공간을 문화예술의 장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시민 체감도가 높은 사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회원들이 자연 속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고, 일상에서 쌓인 정서를 해소하며 문학적 교류를 나누는 문학기행 프로그램도 지속 운영한다. 위원회는 이러한 활동이 문인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기행 결과물을 작품집이나 낭독회로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신진 문인 발굴을 위한 공모전, 시민 대상 문학 강좌, 청소년 문학 체험 프로그램 계획 등을 논의했으며 문학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생활 속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국제펜클럽은 시인, 수필가, 소설가 등 다양한 문인들이 참여하는 세계적 문학 단체로, 표현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결성된 국제 연대 조직이다. 문학을 매개로 국경과 이념을 넘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검열과 탄압에 맞서 억압받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본부도 이러한 정신 계승을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국내 문인들은 세계 각국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한국 문학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 문화와 정신의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역위원회 역시 국제적 흐름 속에서 지역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PEN’은 Poets(시인), Essayists(수필가), Novelists(소설가)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문학을 하는 모든 작가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이는 문학을 통한 자유와 평화의 가치 실현이라는 국제펜클럽의 근본 이념을 함축하고 있다. 대구지역위원회 손태균 부회장은 “앞으로도 지역 문학의 저변 확대와 국제 문학 교류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며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문학 활동을 통해 문화적 가치를 널리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29

2026년도 제43차 대구공군전우회 정기총회 개최

지난 27일 대구공군전우회(회장 남상석)는 회원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시내 한정식당에서 2026년도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공군 홍보영화 시청과 2025년 결산보고 및 2026년 사업계획 발표, 이어서 전우회 활동에 공로가 많은 회원들에 대한 시상을 했다. 대한민국 공군전우회 중앙회 이계훈 회장(예, 공군대장)이 주는 공로상은 신문식(고문), 하명태(고문), 정윤화(자문) 회원이 각각 받았다. 손목시계와 벽시계를 부상으로 받았다. 대구 공군전우회 회장의 감사장은 정만복(6,25 참전용사), 문재신, 이우경(특별이사) 3명 회원에게 주어졌다. 부상으로 부부 은수저 세트가 전달됐다. 또한 보라매 장학재단 권태정 이사장 (예, 공군대령)은 경북대 정보통신대학교 산업대학원 과정에 다니는 현역 장병 오승언 중사(11전투비행단)에게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회원 자녀지원 대상으로는 권정태 장학재단 복지이사의 손자 권은찬(경상공고 전자기계과)에게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달했다, 남상석 회장은 “우크라이나와 이란의 전쟁으로 대한민국도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으니. 우리 공군예비역도 전 국민과 함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국가발전에 힘쓰자”며 “전우회 회원 증원을 통해 공군의 위상을 드높이자”고 말했다. 원로회원 이옥주(병56기), 김종훈(예,준위), 송재순(사진작가) 등 3명을 선발하여 복지증서와 복지지원금을 지급했다. 대구공군전우회는 학업에 정진중인 현역에 대해서는 매년 장학금을 전달 격려하고 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29

운제산 대골 계곡에 핀 청노루귀, 봄을 알리는 작은 기적

춘분이 지나니 봄기운이 공기처럼 스며든다. 청노루귀를 만나기에 다소 늦은 시기지만, 아직 남아 있기를 기대하며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위치한 운제산 대골 계곡으로 향한다. 대골로 이어지는 오어지 둘레길은 이미 봄기운 가득하다. 잎보다 꽃을 먼저 내민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물 오른 버드나무는 가지마다 연둣빛 숨결이 드리운다. 대지가 기지개를 켜자 겨우내 갇혀 있던 색들이 한꺼번에 풀려난다. 계곡에 들어서니 꽃잎을 활짝 열고 나비와 벌을 기다리는 청노루귀가 눈에 들어온다. 군락을 이룬 모습이다. 청노루귀는 노루귀 가운데 청색을 띠는 개체를 일컫는 애칭으로, 흰색, 분홍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나기가 힘들다. 정식 명칭은 노루귀(청색)이다. 하늘거리는 청색 꽃잎은 낙엽이 쌓인 무채색 계곡과 대비를 이루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을 들이민다. 숨을 고른 뒤 셔터를 누르니 심장이 가볍게 뛴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이 아닌 잎에서 유래한다. 꽃이 진 뒤 올라오는 잎의 모양이 노루 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너무 아름다워 노루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소박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는 꽃이다. 봄꽃의 개화 기간은 짧다. 벌과 나비 등 곤충의 활동이 활발해 수분(受粉)이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가을에는 곤충의 수가 줄어들어 더 오랜 시간 꽃잎을 열어두고 수분을 기다린다. 같은 꽃이라도 계절에 따라 생존방식이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다. 이 밖에도 봄의 산과 들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식물들이 자란다. 원추리는 ‘노루서리’ 또는 ‘망우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노루가 서리하듯 싹을 뜯어 먹는 모습에서 유래되고, 근심을 잊게 할 만큼 꽃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는다. 민들레는 토종끼리만 교배하는 특징을 지녀 경주시 문무대왕면 감은사지 일대에서는 아이보리 빛 민들레를 만날 수 있다. 토종 노랑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가 자연 교배해 만들어 낸 색으로, 외래종과는 절대 교배하지 않는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노란 꽃이 비슷해 구분이 어렵다. 그러나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생하는 토종 나무이고, 산수유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민가 주변에서 약초를 위해 재배를 한다. 말하자면 산에서 만나는 노란 꽃은 생강나무이고 마을이나 밭 주변에서 만나는 노란 꽃은 산수유일 가능성이 높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은 봄날, 대골 계곡에서 만났던 청노루귀와 복수초, 꿩의 바람꽃 등은 자연이 전하는 작은 기적과도 같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아쉬움도 남는다. 계곡 곳곳에 무더기로 사라진 흔적이 보인다. 일부 방문객들이 사진 촬영 후 꽃을 훼손하거나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 꽃 한 송이를 꺾는 행동이 결국 그 지역의 봄 풍경 전체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야생초를 비롯해 산림 내 식물 채취는 법적으로 제한되며, 상황에 따라 처벌대상이 된다. 자연을 찾는 이들이 ‘눈으로만 즐기는’ 성숙한 관람 문화를 지킬 때, 비로소 앙증맞은 봄의 기적은 오래 이어질 수 있다. 봄이 한창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바라보면, 봄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운제산의 대골 계곡에서 마주한 청노루귀처럼, 우리가 지켜야 할 봄은 그렇게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3-25

어머님의 유턴

병실 문을 열자마자 어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심전도 센서를 단 손을 거칠게 휘저으며 눈을 감아버리신다. “어머님, 눈 좀 뜨고 말씀해 보세요. 손자도 왔어요.” 그제야 눈을 번쩍 뜨시지만, 이내 나가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내가 병원에 온 거냐, 죽으러 온 거냐. 나를 여기 버려두고 잠이 오더냐.” 잠시 숨을 고른 뒤, 낮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집에는 언제 갈꼬. 갈 수는 있을꼬.” 오늘도 일 마치고 씻지도 않고 달려온 우리는 어머님의 모습에 힘이 빠진다. 아흔셋의 시어머니는 열한 살에 돌림병으로 온 가족을 잃었다. 거죽데기에 싸여 나갔던 동생이 시신 더미 속에서 기어 나와 둘만 살아남았다. 자매는 친척 집 식모살이로 흩어졌다가 오십이 넘어서야 다시 만났다. 그 모진 풍파를 겪고도 어머니는 늘 웃는 낯이었다. 그렇게 버티며 살아온 분이었다. 입담 좋던 분이 코로나 시기 고립을 견디지 못해 시골로 오셨다. 시골에서 어머님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바깥출입은 우리 집을 오가는 정도였다. 재작년 여름, 사고가 터졌다. 다리가 불편해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는데 잠깐 순간에 콘크리트 바닥에 꼬꾸라졌다. 고관절이 부러졌다. 한창 과수원 일로 바쁠 때였지만 매일 병원에 오가야 했다. 자두밭에 응애가 퍼져 그해 농사를 망쳤다. 수습하느라 병문안이 뜸했을 때 “돈 많이 벌었나?”라며 서운함을 보이셨다. 그 말에 울컥해서 “농사 망쳐서 울고 싶은 거 참고 있다”라며 반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말은 어머니보다 나를 향한 하소연이었다. 이번에는 손목을 다쳤다. 화장실에서 발을 씻으려다가 삐끗해 손목에 금이 갔다. 사고 후 혼자서 해결하려다가 상처가 깊어진 듯하다. 혼자 병원을 찾아 응급조치를 받고 돌아오셨다. 결국 안동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을 나온 어머니는 마치 중환자처럼 변해버렸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고통을 호소하셨다. 퇴원 후 옮긴 요양병원에서도 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아프다는 소리만 반복하셨다. 정신을 놓은 듯 행동했다. 병실의 노인들은 비슷한 모습이었다. 누가 더 크게 아픈지 겨루는 듯했다. 가족들은 ‘이제 집으로 모시기는 힘들겠다’라는 체념 섞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자식들이 모두 불려 왔다. 어머님도 그 분위기를 감지하신 듯했다. 갑자기 집으로 가겠다고 하셨다. 마음 약한 아주버님께는 “안 데려가면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버리겠다.”라며 떼를 쓰셨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병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 왔다. 집에 돌아온 어머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방에 멀쩡히 앉아계셨다. 끓여 놓은 호박죽도 달게 비우셨다. “그곳에 있으면 나도 그 사람들처럼 실려 나갈 것만 같아 정신이 번쩍 들더라.” 열흘 사이 세 명의 환자가 떠났다고 했다. 코 줄과 소변 줄 없이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시 생기를 찾았다. 아흔세 해를 버텨온 그 질긴 생명력이 다시금 집이라는 안식처로 돌아오게 했다. 이제 더 조심하시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또 손을 내저으신다. “나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 가서 일 봐라.” 그 모습이 평소보다 밝아 보였다.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데다 팔목까지 수술한 상태라 당분간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한다. 나는 대답 대신 마당을 바라본다. 시선은 사과밭으로 향한다. 봄볕 아래, 아직 손도 못 댄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넓은 밭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3-25

악기로 그려내는 그림, 아토 앙상블 콘서트

지난 7일, 대구 비원뮤직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동심을 그리는 ‘아토 앙상블 콘서트’가 열렸다. 피아노와 관악기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에 더해 현악기 콘트라베이스까지 어우러지며 다채롭고도 웅장한 무대를 완성했다. 관악 공연을 좋아하는 시민기자에게 이번 공연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비원뮤직홀에서 여러 차례 연주회를 관람했지만 그동안 현악 중심의 공연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무대는 마치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관악부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던 경험이 있어, 플루트의 맑고 청아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공연은 해설과 함께 진행되어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소개하며 “프랑스로 떠나보자”는 이혜원 작곡가의 안내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총 1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에는 닭, 당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각 악장이 시작되기 전, 해당 동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악기의 소리를 먼저 들려주어 관객이 음악 속 동물의 이미지를 더욱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합주가 주는 풍성함은 물론, 무대에 오른 각각의 악기가 지닌 고유한 음색의 매력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함께 공연을 관람한 친구 시연이는 “오보에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는 감상을 전했고, 시민기자 역시 여기에 깊이 공감했다. 무대 뒤편 스크린에는 샌드아트가 펼쳐졌다. 모래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악장마다 등장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하여 음악과 어우러져 시각적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자극했다. 덕분에 곡의 흐름을 한층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부모님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어린 친구들 역시 눈을 반짝이며 끝까지 몰입해 감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2부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의 작품들이 연주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익숙한 작품의 OST가 연주되자 객석 곳곳에서 반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평소 귀에 익은 선율이었지만, 눈앞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악기 소리를 들으니 곡이 지닌 감정의 깊이가 한층더 깊어지며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어린시절 추억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다. 1부에서 샌드아트가 펼쳐졌던 스크린에는 각 애니메이션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대사 대신 음악으로 전하는 이야기에는 더 큰 마음의 울림이 존재했다. 앙코르 공연에서는 뜻밖에 깜찍한 공연이 이어졌다. 애니메이션 ‘타요’ OST와 동요 ‘고향의 봄’을 연주해 관객들은 다 함께 웃으며 손 박자를 맞춰 무대와 하나 되어 또 다른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이번 ‘아토 앙상블 콘서트’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설과 시각적 요소를 더해 관객이 음악을 ‘이해하고 상상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음악이 전하는 감동과 상상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비원뮤직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원뮤직홀은 지역주민들을 위해 수준 높은 다채로운 공연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따스한 계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비원뮤직홀을 찾아 새로운 추억을 쌓아보길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3-25

미 군사고문단 전몰장병 기념비를 찾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앞산 골(앞산 공원 버스 종점 맞은편)에 위치한 ‘미 군사고문단 전몰장병 기념비’는 6·25 전쟁 직후 지역민의 뜻을 모아 만들어진 보은의 기념비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기념비가 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전적기념비를 찾아 그날의 감동을 새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대구지역에서는 이 비를 보은의 상징으로 여긴다. 전쟁직후 어려운 사회 여건 속에서 민관이 합동으로 정성을 모아 만든 기념비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주도가 아닌,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과 지역 지도자들의 결단이 합쳐져 세워진 기념비란 점에서 역사성이 있다. 6·25 전쟁 직후 대구 시내 유지와 시민들은 미 군사고문단 전적비 건립위원회를 결성하고 당시 경상북도지사였던 최희송(崔熙松) 지사를 위원장으로 뽑았다. 최 위원장을 중심으로 위원회는 전쟁 직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대구 시민들의 성금을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외국인 군대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세워 그들의 공적을 역사적으로 기록해 보자는 취지였다. 비문에는 당시 한국군의 현대화를 돕고 전장에서 함께 피 흘린 미 군사고문단(KMAG)의 희생을 한글과 영어로 함께 적어 기록했다. “이 기념비는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한국전쟁에서 자유를 수호코자 한국의 전우와 나란히 싸우다 전몰한 주한 미 군사 고문단 장병의 영령 앞에 봉납한 것”이라고 기념비에 적혀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주한 미 군사 고문단 장병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그들의 빛나는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한 대구 시민의 뜻이 잘 담긴 비라 하겠다. 6·25 전쟁 당시 고문단이 수행했던 역할(한국군 훈련 및 작전 지도)과 건립 취지, 그리고 건립 연월일(1954년 6월 30일)도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는 단순히 ‘도움을 주었다’는 표현을 넘어, ‘한국군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다’는 동지애적 표현이 강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이 비석은 수성교 인근(현재의 대구 중구 삼덕동)에 세워졌으나, 도시가 확장되면서 1973년에 지금의 남구 대명동 앞산 골로 이전되었다. 비문의 훼손을 최소화해 지금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그밖에 기념비에는 “자유를 위해 함께 싸웠다”라는 취지의 문구와 함께 고문단의 창설 과정, 그리고 그들이 한국군과 맺었던 끈끈한 전우애도 기록돼 있다. “이들은 단순히 가르치는 스승을 넘어, 가장 어두운 시기에 곁을 지켜준 진정한 친구이자 전우였다.” 이곳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근을 지나실 기회가 있으면 잠시 들러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 뒤에 숨겨진 낯선 이들의 헌신을 느꼈으면 한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24

(시민기자 단상) 지방선거를 지켜보며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공천 경쟁이 뜨겁다. 특히 우리가 사는 대구·경북 지역에선 시장, 도지사, 군수 후보들이 우후죽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경상북도에선 기초의원만 하더라도 국민의힘에 지역구 381명, 비례대표 71명 총 452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 숫자가 많음에 놀랍다. 단체장의 경우도 많게는 6명에서 7명까지 출마 신청하는 곳도 많아 지역민의 정치적 수요가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공천장을 받아들면 바로 당선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정치인을 정치꾼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금권 선거와 상대방을 비방하는 잘못된 선거 관행이 지방 민심을 어지럽히지 않을까 하는 근심도 든다. 권력과 금전에 눈먼 정치꾼이 국민을 위한 봉사나 제대로 할지 걱정이 돼서다. 이들에게 어떻게 군정, 도정, 국정을 맡길 것인가. 의사와 간호사도 직무에 임하기 전에 생명을 다루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지 않는가. 팬데믹을 거치며 의료인들의 희생적인 활동을 보며 느낀 점이 많다. 목숨을 걸고 한 생명이라도 더 건지려는 그들의 행동에서 진정한 의료인의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하물며 백성을 다스리는 공직자들이 아무런 맹세나 준비 없이 직무에 임해서야 되겠나. 어떤 시군의 경우 군수가 온갖 물의를 일으켜 온 신문 지상과 방송에 보도되면서 그 지역을 욕 먹이고 있다. 군민들을 상대로 욕지거리나 하고 일반인도 하지 않는 불손한 자세를 보여 민망할 때도 있다. 대대손손 청정지역으로 내려오던 도불습유(道不拾遺)의 아름다운 고장을 먹칠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정약용 선생이 저술한 목민심서는, 수령이 지방을 통치할 때 필요한 도덕적 규율, 행정 지침, 통치 방안 및 통치 이념을 다루고 있다. 핵심 주제는 수령의 도덕적 규율인 청렴, 절검, 절용 등과 행정 지침인 세금, 호전, 예전, 병전, 형전 등을 제시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공정하게 다스리는 통치 이념을 강조하며, 부패·횡포를 척결하려는 정신이 담겨 있다 목민심서는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정치인을 꿈꾸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목민심서를 읽어보기 바란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되새기자. 실천 중심, 민생 중심 정치, 선물과 뇌물을 구분할 줄 아는 식견과 청렴과 공정, 백성 중심의 책임을 되새기게 하는 참된 목민관으로서 책임을 가슴 속에 되새기길 바란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24

행복의 솟대 높이 날아라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으로 전래돼 왔던 솟대를 주제로 한 작품 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대구경북솟대작가협회(회장 박영식)는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솟대작품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정회원 8명이 제출한 작품 100여 점이 출품됐다. 솟대는 농경시대, 민속신앙으로 마을 어귀에 풍농과 안녕을 기원하며 수호신의 상징으로 세워 둔 긴나무의 장대다. 이것이 현대적 디자인과 예술적 미를 가미하면서 예술계의 한 영역으로 어느덧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전통적 투박함을 벗어 던지고 ‘세련미’를 입힌 솟대 작품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잘 다듬어진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를 모으는가 하면 금속, 유리, 세라믹, 수석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만든 솟대는 주거 공간의 장식용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또 손바닥 크기의 미니 솟대는 책상 위나 선반, 창가 등에 배치하기 좋아 MZ세대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솟대 작품은 디자인뿐 아니라 복을 부른다는 전래적 의미 때문에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솟대 끝에 앉은 새(오리나 기러기)는 ‘희망’과 ‘행운’을 실어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솟대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도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는 이유다. 하늘을 향해 뻗은 기상, 마을을 지켜주던 수호의 의미, 새 집에 복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 등이 담겨 장식을 넘어 선물용으로도 수요가 늘고 있다. 박영식 대경솟대작가협회 회장은 “솟대 전시회가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솟대가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24

대구예총 첫 여성회장 취임식 열려

사단법인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는 지난 21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제12대 이창환 회장 이임식 및 제13대 강정선 회장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문화예술계 및 각계 인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새로 출발하는 대구예총과 지역예술계의 발전을 응원했다. 레조나 앙상블의 식전 공연을 시작으로 한 이·취임식에서는 제12대 이창환 회장에 대한 공로패와 감사패가 전달되었고, 제13대 대구예총을 이끌어 갈 김신효 대구예총 수석부회장(대구국악협회 지회장)과 이호규 부회장(대구사진협회 지회장), 안희철 부회장(대구연극협회)에 대한 임명장과 특별회원단체 인준서가 수여되었다. 이창환 제12대 회장은 이임사에서 “임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화합해 대구예술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예총 역사상 첫 여성회장으로 당선된 강정선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그동안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예총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며 “회원단체 상호 간의 소통과 화합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구예총을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강훈 한국예총 회장은 축사를 통해 “예술인들의 처우와 창작환경이 개선되는데 대구예총이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황보란 대구광역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을 비롯해 강은희 대구광역시 교육감과 박윤경 대구상공회의소 대표 등이 축사자로 무대에 올라와 “신임 회장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대구예총의 활약을 기대한다”며 축하했다. 이날 이·취임식은 단순한 직위 교체를 넘어, 지역예술문화와 함께하는 예술단체로서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로 의미를 더했다. 지역정치권에서는 주호영, 윤재옥, 추경호, 이인선, 김승수, 권영진, 유영하, 최은석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으며 이만규 대구시의회의장,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 박윤경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조재구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 이태훈 달서구청장, 류규하 중구청장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24

기계 유씨 대구 경북 종친회 정기총회 성료

기계유씨 대구 경북 종친회(회장 유성근)는 지난 21일 대구 그랜드관광호텔 5층 프라자 홀에서 70여 명의 대구 경북 시군지역 종친회 회원들이 참석 한 가운데 정기총회 및 회장 이·취임식을 가졌다. 정기총회는 매년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인 3월에 개최하고, 회장이·취임식은 3년마다 개최 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날 행사가 준비됐다.. 1980~90년대만 해도 시군 종친회에서 버스를 맞추어 200~300여 명의 회원이 참석, 성황을 이루었으나, 숭조 사상이 빛을 잃어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매년 참석 회원이 줄어드는 분위기다. 기계유씨 대구 경북종친회는 1956년 9월에 조직되었다. 유성근 회장이 27대 회장을 지냈고 28대 회장에 유춘근씨가 맡았다. 회의는 유병훈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유성근 회장이 환영사를 하였고, 유락 부운제 책임 유사가 축사하였다. 유진웅 대종회장의 공로상을 유락 부운제 책임 유사가 유성근 종친회장과 유병국 종친회 부회장에게 각각 전달했다. 유성근 회장은 유병덕 대구 경북 청장년 회장, 유병도 대구 경북 청장년 감사에게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유병윤 종친회관 건립기금 추진위원장이 종친회관 건립기금 경과 보고를 하였고, 유병오 감사가 감사 보고를 하였다. 유성근 기계유씨 우봉이씨 상덕사 종중회장이 상덕사 비각 이전 설치 경과 보고를 하였다. 유병훈 사무국장이 기계유씨 대구 경북 종친회 기금 결산보고를 하였다. 유춘근 신임 회장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조상님에 대한 공경과 뿌리에 대한 인식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때일수록 뜻을 함께하는 종인들이 적극으로 참여하여 이 시대에 걸맞은 소통과 화합 그리고 실천의 종친회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유춘근 신임회장은 전임 유성근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2부에는 종인간의 흥겨운 화합의 장을 가졌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24

오스트리아 슈니첼보다 맛있는 ‘그냥’의 돈가스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입국해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독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떠나기 바로 전, 개그맨 유재석이 하는 유튜브 ‘풍향고’에서 우리가 가려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먼저 다녀와서 정독했다. 풍향고팀은 패키지인 우리와 달리 자유여행이었고 핸드폰으로 검색 따위 안 하고 숙소도 식사도 기차도 무작정 닥치는 대로 해결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슈니첼은 꼭 먹어야 한다고, 유명한 맛집 앞에 줄을 섰다가 예약한 사람만 입장 가능하다고 하니 아쉬워하다가 근처 줄 없는 식당에서 맛보았다. 맛있다고 하면서 케첩과 잼을 뿌리거나 가져간 튜브 고추장을 곁들여 먹었다. 우리 패키지는 모차르트가 살았던 짤즈부르크를 둘러보고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할슈타트 호수 보러 가는 길, 산골 작은 읍내같은 곳에서 점심으로 먹었다. 풍향고 팀이 먹었던 그 슈니첼을 우리도 먹는다니 기대가 컸다. 화장실이 급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달려갔다. 손을 씻고 내 자리로 오니, 수프와 샐러드와 빵이 놓였다. 따뜻한 수프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한 것 같은 라면 스프 맛이 났다. 그래서 다들 맛있다며 먹었다. 샐러드도 경양식집의 그 샐러드였다. 빵도 달콤해서 금방 해치웠다. 그러자 본식 메뉴인 슈니첼을 들고 종업원이 들어왔다. 우와아~~, 크기가 얼마나 큰지 서울 남산에서 본 세숫대야 돈가스만 했다. 혼자 먹기엔 진짜 컸다. 우리나라 돈가스와 닮았는데 다른 점은 레몬 4분의 1조각과 감자 튀김이 사이드에 잔뜩 토핑으로 얹혔다는 것, 또 돈가스 소스가 없었다. 슈니첼 맛집이 아닌지, 칼로 썰어 한 입 먹었더니 짜다. 또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서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옆에 함께 나온 감자튀김에 캐첩을 뿌려 배를 채웠다. 옆에 일행들은 반 정도 먹고 남겼다. 워낙 크기가 한국인 여행객들이 다 먹기엔 컸다. 그 위에 돈가스 소스와 오뚜기 수프와 단무지나 깍두기가 있었다면 남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와 포항제일교회 근처 돈가스 맛집 ‘그냥’에 갔다. 이 집은 메뉴가 돈가스 하나뿐이다. 오르막길에 자리한 곳이라 모르는 사람은 간판도 못 보고 휙 지나쳐 간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니 봄이라고 사장님이 키우는 화분에 꽃이 만발했다. 수선화가 꽃대를 올렸고 연보랏빛 긴기아난이 향을 내뿜었다. 칼랑코에도 햇살을 향해 목을 길게 뽑고 곧 꽃을 피울 기세다. 창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따뜻한 물과 기본 반찬 세 가지가 나왔다. 쫑쫑 썬 고추장아찌와 부채를 편 듯 다소곳한 단무지, 잘 익은 깍두기였다. 뒤이어 돈가스 접시가 입장했다. 사각의 접시는 가장자리가 레이스 뜨기 무늬를 닮아 그 자체로 우아했다. 소스를 가득 부었고 그 위에 익은 양파를 토핑했다. 사이드에는 양배추샐러드에 참깨드레싱을 뿌려 고소한 향이 풍겼다. 샐러드 주위에 빨간 딸기와 초록 브로콜리를 둘러 꽃 같았다. 귤 반쪽에 달걀 반쪽과 파인애플 반쪽이 앙증맞게 입맛을 당겼다. 고기 냄새에 민감해서 어지간한 집의 돈가스는 입에 맞지 않는다. ‘그냥’의 돈가스는 어떨까 조심스럽게 썰었다. 소스와 함께 한 입 맛보았다. 오스트리아의 슈니첼과 달리 짜지도 비리지도 않았다. 양배추 채가 얌전하고 가지런해 기계로 썰었냐고 사장님께 여쭈니 손으로 해야 일정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소스도 직접 이것저것 넣고 빼보며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맛이라고 한다. 천연 재료만 넣었다고 자랑이 길었다. 나름 장인정신으로 만든 돈가스였다. 그냥 사장님이 할슈타트에 가서 오픈하시면 대박 날 집이 확실하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6-03-23

전쟁과 파병 반대 시민 성명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직후 유가 급등으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기름값이 2000원에 육박하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유소마다 차량 행렬이 이어지며 혼잡을 빚었다. 정부의 긴급 개입으로 기름값은 잠시 안정세를 보였으나, 석유 의존도가 높은 생활필수품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며 일부 품목의 품귀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용품까지 이미 우리는 하나의 세계로 묶여있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경주시청 앞에서는 이란 전쟁 및 파병 반대 시민성명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경주 지역 8 개 정당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는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황성동 시의원 출마 예정자 문연지 씨, 진보당 경주시위원회 여호수 위원장, 시민사회위원회 김성대 위원장 등이 발언자로 나섰다. 참가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파병을 거부한다”, “전쟁 공조 아닌 평화를 선택하라”는 구호를 세 차례 제창한 뒤, 문연지 씨가 첫 발언자로 나서 “전쟁 도구가 된 군대가 아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며 미국의 외교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자적 결정을 촉구했다. 이어 경주겨레하나 최성훈 대표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분명한 이번 전쟁에 동조한다면 청년들의 목숨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며 파병 반대를 호소했고, 환경단체 대표들은 “전쟁은 생태계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 건물 전광판에는 “경주시 초등학생 입학축하금·중고교 교복비 지원 안내” 광고가 반복 송출되었다. 한 참가자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학교 잔해 아래 깔린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이 광고를 보니 참담하다”며 전쟁의 비극성과 일상 속 평화의 소중함을 대비시켰다. 회견 말미에는 시민사회단체 공동명의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성명서는 “대한민국 헌법 제5조 1항(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파병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며 마무리되었다. 시민 김모(65) 씨는 “전쟁 소식만 들려도 숨이 턱 막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정치인들은 군인과 국민의 생명을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먼저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총칼이 아닌 희망 가득한 내일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6-03-23

그림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곳곳에 봄이 넘실대고 있다. 언제 떠나도 자연과 함께하기 좋은 때다. 한결 상큼해진 공기와 수줍게 얼굴을 내민 꽃을 마주하며 흥해어리골작은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림책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지난 금요일이 첫 시간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작은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강사님이 도서관 문을 열고 수업할 그림책을 가방 가득 챙겨오신 모습이 보였다. 강사님은 수업할 몇 권이 아니라 가방 가득 챙겨오신 그림책을 책상 위에 펼쳐놓는다. 오늘 여행을 떠날 그림책은 프랑스 작가 에릭 바튀의 책들이다. 그림책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펼치다 보니 작가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 강사님도 이 작가는 잘 모를 수도 있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에릭 바튀는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라고 하셨다.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책이라고 소개하면서 ‘공기처럼 자유롭게’를 먼저 읽어주신다. 책을 보니 파란색과 초록색 붉은색 등의 색이 잘 드러났고 다른 그림책에 비해서 사람들은 작게 그렸다. 이어진 책들도 색깔은 다양하게 그려졌고 군데군데 프랑스의 삼색기도 작가는 세심하게 그려 넣었다. 스무 권 가까이 펼쳐놓은 책들을 보니 그중 ‘새똥과 전쟁’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띈다. 지금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떠올랐다. 강사님이 읽어주신 책을 보며 전쟁이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전쟁은 왜 하는지, 피해자는 누구이고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스갱아저씨의 염소’는 작가의 첫 책이었는데 안전한 울타리 안을 택할 것인지 위험하지만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들을 강사님은 계속 읽어나갔다. 처음엔 이 책들을 다 읽어주실 줄 몰랐는데 2시간 동안 읽어 내려갔다. 이야기 할머니 앞에 모여든 유치원 아이들처럼 이야기에 집중했다. 작가는 책에서 답을 내리지 않았다. 독자들이 자신이 느끼는 대로 답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책 군데군데 프랑스 삼색기를 그려 넣었고 태양, 나무, 달, 동물도 많이 보였다. 작가의 자연에 대한 애착을 그림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에게 관심이 많지만 어릴 때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그림책이 이제는 자신이 좋아져서 책을 읽게 된다고 수업에 참여하신다는 분이 두 분 계셨다. 돌아보면 시민기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있어 도서관을 더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그때 그림책에도 처음 입문을 했다. 그림책을 읽던 중 아이들보다 스스로가 더 감명받은 적도 많았다.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과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그리고 지금 나의 삶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노 요코의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이나 ‘두 사람’, ‘알사탕’ 등의 책을 만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한 개라도 백 개인 사과’와 ‘내 이름은 자가주’도 다시 읽으니 저절로 마음이 반짝반짝한다. 그 덕에 문외한이던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림책 속에는 사람과 세계가 들어 있었다. 그림책에는 나이도 성별도 없다. 책을 읽다 보니 어린아이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이라는 게 맞는 말이다. 봄과 함께 그림책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허명화 시민기자

2026-03-23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수성못에서 ‘팔경’을 찾다

중국에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있고, 우리나라엔 ‘관동팔경(關東八景)’이 있다. 예부터 이름 좀 깨나 날린다는 동네는 너도나도 ‘팔경’을 내세웠다. 중국 동정호의 비경을 그린 ‘소상팔경도’가 고려 시대에 수입된 이후, 우리 선비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남의 나라 물가만 예쁘냐? 우리 집 앞마당도 끝내준다!” 하며 붓을 들기 시작한 것이 팔경 문화의 시작이다.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에서 ‘관동별곡’을 읊으며 총석정, 경포대 등 여덟 곳을 찍어 ‘관동팔경’이라 이름 붙였다. 그 시절 사대부들에게 팔경은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었다. “나 이 정도 경치 보며 노는 사람이야”라는 일종의 ‘플렉스(Flex)’였고, 정자 하나 지어놓고 시 한 수 읊는 시회(詩會)는 요즘으로 치면 힙스터들의 루프탑 파티나 다름없었다. 전주, 삼척, 안동, 남해, 군산···. 전국 방방곡곡이 ‘팔경 경쟁’에 뛰어들며 지역의 자부심을 세웠다. 우리 대구도 빠질 수 없다. 서거정 선생은 일찌감치 ‘대구 10경’을 선정했다. 그중 제2경이 ‘입암조어(笠巖釣魚)’, 즉 건들바위 앞에서 낚시하는 즐거움이다. 지금이야 건들바위 앞이 매연 가득한 도로지만, 옛날엔 신천 물줄기가 굽이쳐 들어와 커다란 웅덩이를 이뤘다니, 거기서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을 낚던 서거정 선생의 뒷모습이 자못 부럽기까지 하다. 제10경인 ‘침산낙조(砧山落照)’는 또 어떤가. 오봉산에 붉게 지는 해를 보며 감성에 젖었을 선조들의 모습은 요즘 인스타그램 ‘노을 맛집’ 인증샷을 찍는 청춘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자, 그런데 명색이 대구의 랜드마크인 ‘수성못’이 이 팔경 레이스에서 소외되어서야 되겠는가? 한국관광공사가 ‘야간관광 100선’으로 공인한 이곳을 위해, 필자가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이름하여 ‘수성 팔경’이다. 시인 묵객들이 산천을 유람하며 이름을 붙이던 그 호기를 담아, 필자가 새로 짠 ‘사언율시(四言律詩)’ 버전의 수성못 탐방기를 소개한다. 제1경 지중고도(池中孤島):둥지 섬에 학이 무리 지어 춤춘다. 고고한 학의 자태를 보노라면 “너희가 진정한 수성못의 주인이다” 싶어 고개가 숙여진다. 제2경 구압선유(龜鴨船遊):거북이 배와 오리배가 물 위를 유유히 노닌다. 연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는 모습은 가히 수성못의 백미다. 사랑은 역시 ‘노동’인 법이다. 제3경 화류춘앵(花柳春櫻):봄날 벚꽃 구경에 인산인해다. 꽃보다 사람이 많지만, 그 속에서 ‘건달꽃(벚꽃)’의 화사함을 즐기는 것이 봄의 도리다. 제4경 야경분수(夜景噴水):달빛 아래 뿜어지는 분수는 휘황찬란하다. 밤공기를 가르는 물줄기에 근심도 씻겨 내려간다. 제5경 연리지목(連理枝木):두 몸이 하나 된 부부 나무. 솔로들에겐 눈꼴시려울 수 있으나, 사랑의 오묘함을 증명하는 자연의 신비다. 제6경 난간시건(欄干施鍵):선남선녀의 자물통 맹세. “우리 사랑 영원히!”라고 걸어둔 자물쇠들이 난간의 무게를 위협한다. 부디 그 열쇠, 못 속에 던지진 마시라. 수질 오염된다. 제7경 상화시비(尙火詩碑):“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읊조리던 이상화 시인의 우국충정. 못가를 걷다 잠시 숙연해지는 포인트다. 제8경 왕양노수(王楊老樹):이 모든 풍경을 묵묵히 지켜봐 온 왕버들 노거수. 수성못의 산증인이자 가장 어른스러운 풍경이다. 시민기자가 선정한 이 ‘수성못 팔경’이 널리 알려져, 수성못을 찾는 이들에게 소소한 재미가 되길 바란다. 혹시 아는가? 훗날 어느 시인이 이 팔경을 따라 걷다가 “방종현이 참으로 장난스럽지만 예리하게 잘 뽑았구나!” 하며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켤지. 수성못이 단순히 걷는 곳을 넘어, 이야기가 흐르는 ‘진정한 명소’가 되기를 염원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22

수필사랑문학회, ‘600회 토론’금자탑 세웠다

척박한 문학의 토양 위에서 오직 ‘글쓰기’라는 일념 하나로 뭉친 이들이 600번째 뜨거운 담론의 장을 펼쳤다. 지역 수필 문학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수필사랑 문학회가 그 주인공이다. 수필사랑문학회(회장 정근식)는 지난 19일 대구 남구 소재 매일가든에서 회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 600회 토론 기념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 지난 2001년 창립 이후 사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온 문학적 열정을 되새기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오랜 시간 회원들의 창작 눈높이를 끌어올려 준 신현식 지도교수에 대한 감사의 순서였다. 회원들은 정성껏 준비한 꽃다발을 전달하며, 문학적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표했다. 신 교수는 그간 회원들의 작품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피며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헌신해 왔다.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세 시간 동안 이어진 본 행사에서는 기념식의 열기가 고스란히 토론회로 이어졌다. 이날 토론대 위에는 무철 양재완 수필가의 ‘직업 아닌 직업’을 포함해 총 14편의 신작 수필이 올랐다. 참석자들은 한 달간의 고뇌가 서린 작품들을 놓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담긴 함의를 분석하며 날 선 비평과 따뜻한 격려를 주고 받았다. 작품의 구성과 주제 의식은 물론 현대 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수필사랑문학회의 발자취는 곧 지역 수필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2001년 7월 첫발을 뗐을 당시,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 관장의 지도로 기틀을 잡았으며 2017년부터는 신현식 수필가가 그 맥을 이어 창작 지도의 전문성을 강화해 왔다. 그간의 성적표는 눈부시다. 600회에 이르는 토론 과정을 거쳐 간 작품은 약 4800여 편. 이를 수필집으로 환산하면 무려 11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동인지 ‘수필사랑’ 역시 37호까지 발간하며 꾸준한 기록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내공은 대외적인 성과로도 증명됐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 주요 일간지 공모전에서 다수의 당선자를 배출했음은 물론 권위있는 ‘평사리 토지문학상’에서만 2025년 기준 총 8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전국적인 위상을 공고히 했다. 현재 문학회는 매월 3·4주차 목요일마다 거르지 않고 정기 토론회를 운영 중이다. 특히 등단반과 심화연구반을 이원화해 예비 작가에게는 체계적인 기초를, 기성 작가에게는 치열한 자기 갱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수필 산책’과 정기적인 문학기행을 통해 현장에서 글감을 발굴하는 등 살아있는 문학 활동을 지향한다. 정근식 회장은 발언을 통해 “600회라는 숫자는 결코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기적 같은 기록이다. 매 순간 마감의 고통을 이겨내고 토론장에 발걸음을 해준 회원들의 숭고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수필사랑문학회가 지역 문학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수필가들의 영원한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맺어진 이들의 끈끈한 유대감은 기념식 이후 이어진 교류의 시간에서도 빛을 발했다. 글쓰기가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라면, 토론은 그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치유의 과정임을 증명한 뜻깊은 하루였다. 600번의 만남이 쌓아 올린 이들의 문학적 금자탑이 앞으로 또 어떤 향기로운 수필의 꽃을 피워낼지 지역 문단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22

(이사람) 고향 찾아 안경점 연 정지현 사장

대구 경제가 어렵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빈 점포가 즐비하고 인기 없는 빌딩은 경매로 넘어가는 곳도 종종 눈에 띈다. 지난주엔 시내를 벗어나 청도를 가보았다. 시골이어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시내가 무척 조용하다.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시 대구와 같이 여기도 경제가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대구 시내처럼 빈 점포는 보이지 않았다. 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 건물이 자기 소유라 점포세를 주지 않아 그나마 현상 유지는 된다고 한다. 옛날 이곳 역전 삼거리는 대구 반월당보다 땅값이 더 높았을 정도였다. 마침 점포 외부가 유난히 예쁜 장식을 해놓은 안경점이 눈 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더욱 밝고 예쁘게 꾸며 놓았다. ‘작지만 알찬 가게’라는 게 이 가게의 자랑이다. 마침 손님이 없어 혼자 점포를 지키고 있는 젊은 여사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안경학과 정규 학사과정을 나온, 올해로 20년째 안경사 경력을 갖춘 베테랑 안경나라 정지현(41) 사장이다. 정 사장은 대구 시내에서 안경점을 개업하여 일하던 중 농사짓는 부모님 건강 때문에 고향으로 온 게 벌써 7년째라 한다. 정 사장은 고향에 내려와 보니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많고 형편이 어려워 안경을 제 때에 바꾸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모두가 내 부모 같아 봉사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효성이 지극하고 노인들을 대하는 자세가 아름다워 마음이 흐뭇했다. 영업은 대구에 비하면 좀 저조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의 수입보다 내 고향 어른들께 양질의 안경을 직접 제공하여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나날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나도 안경 알을 갈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즐겨 다니던 단골 가게보다 훨씬 싼 가격이라 놀랐다. 정 사장은 “일부 지역주민이 청도에 있는 안경점을 믿지 못하고 대구로 나갈 때가 제일 섭섭하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를 해줘도 대구로 가면 더 나을 거란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대구의 상당수 고객이 입소문을 타고 거꾸로 청도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부는 일가친척까지 대동해 올 때는 자신의 진실을 알아주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고향 사람들의 눈 건강을 책임지고 지키기 위해 묵묵히 저렴한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로 꾸준히 봉사해 나가겠다고 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22

주민과 함께 여는 새로운 행정의 장

대구 수성의 중심, 만촌2동이 새로운 도약의 문을 열었다. 지난 2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2동 행정복지센터 신청사 개소식이 많은 주민과 내빈 등의 축하 속에 성대히 개최됐다. 이날 개소식은 전통의 흥과 공동체의 기원을 담은 고산농악단의 지신밟기를 시작으로 인칸토 솔리스트 앙상블의 품격 있는 공연과 내빈 소개, 테이프 커팅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에 준공된 만촌2동 행정복지센터는 작년 12월 건립됐으며, 총사업비 102억 원을 투입된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 건물이다. 연 면적 약 914평, 부지면적 약 322평에 달하는 이 건물은 기존 동 행정복지센터보다 약 3배 넓은 복합 주민시설이다. 1층은 민원실, 2층은 행정사무실, 3층은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4층은 예비군 동대와 다목적 강당·주민 행사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오후 4시부터는 청사 관람에 이어 김대권 구청장이 참여하는 ‘행복 수성 공감토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최진태 구의원과 조경구 시의원, 김중근 위원, 박영환 주민 자치위원장 등 지역 인사들이 함께해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했다. 이날 행사에서 주민들은 생활 속 불편과 지역 현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았고, 구청장 등은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공동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한해동 수성구 노인지회장은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설이 낙후된 노인지회 건물의 현실을 언급하며 노인들의 편의를 위한 개선을 건의했다. 또 다른 주민은 기존 행정복지센터 건물이 비어있는 상황과 관련해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시설의 개소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적 대화의 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은경 만촌2동장은 “앞으로 행정복지센터가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행정 서비스와 지역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다”고 밝혔다. 새롭게 문을 연 만촌2동 행정복지센터는 단순한 공공청사가 아니라, 주민이 주인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며 미래의 행복한 수성을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의 공간이다. 행정이 사람 속으로, 주민이 중심으로 다가서는 변화의 현장이 이제 만촌2동에서 시작되고 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3-22

단종의 비극 뒤에 가려진 이름, 경혜공주

최근 역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한 달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 영화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 이야기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린 왕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그를 지키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영화는 폐위된 어린 왕의 유배생활과 마지막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역사적 비극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의 긴장과 슬픔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특히 배우 유해진은 극적인 깊은 감정으로 역사 속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극장을 나선 뒤 비극의 중심에 서 있던 어린 왕 단종을 떠올리며 조선의 역사를 다시 들춘다. 그러다 단종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들을 만난다. 그 중 한 사람 경혜공주. 그녀는 세종의 손녀이자 문종의 딸이며, 세조의 조카다. 그리고 단종의 하나뿐인 누이이다. 경혜공주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동생 이홍위(훗날 단종)를 낳은 뒤 세상을 떠난다. 이어 자신을 아끼던 할아버지 세종이 승하하고, 아버지 문종마저 재위 2년 만에 요절한다. 열두 살의 어린 동생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실은 이미 권력을 둘러싼 긴장이 시작된다. 결국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 보낸다. 왕이었던 동생마저 그렇게 유배지에서 열일곱의 나이에 사사(賜死)를 당한다. 경혜공주는 정종(鄭悰)과 혼인했지만 왕좌를 둘러싼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왕실의 공주로 태어나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경혜공주. 미남으로 알려진 아버지 문종을 닮아 그녀 역시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어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보며, 숙부의 권력 장악 속에서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은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유배 길을 따라 나선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남편 역시 단종 복위를 도운 역적으로 몰려 처참한 형벌로 생을 마감한다. 역적의 집안이 된 가족에게 내려진 운명은 가혹했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그녀 역시 관노비로 전락한다. 왕의 손녀이자 공주였던 삶은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왕위에 오른 세조는 시간이 흐른 뒤 이들을 다시 궁궐로 불러들인다. 흔들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정종의 아들과 딸은 연좌하지 말라” 세조의 명이 내려졌다. 궁궐로 들어간 그녀는 아들과 딸을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에게 부탁한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궁궐 안의 불교 수행처인 정업원으로 들어간다. 비극이 연속이던 생을 서른아홉의 나이에 조용히 마감한다. 경혜공주는 조선 왕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인물이라 전해진다. 세조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을 강요했을까. 우리는 단종의 비극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주변에 더 많은 눈물과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혜공주의 아픈 삶은 그 가운데 하나다. 권력을 둘러싼 싸움은 왕 한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여파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처참히 무너뜨린다. 역사는 지나갔지만 권력과 욕망의 그림자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드리워져 있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3-18

사과나무 앞에서 다시 초보가 되다

지난 11일, 청송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친환경 사과반’ 첫 수업에 청강생으로 참여했다. 재작년 응애 피해로 자두 과원을 사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이 절실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교육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다. 실망하던 우리 부부에게 지인은 “청강생으로라도 한번 들어보라”라고 권유했다. 첫날 청강생으로 들어갔지만, 빠듯한 자리 사정에 괜히 눈치가 보여 다음 수업부터는 발길을 접었다. 아쉬움은 오래 남았다. 올해는 달랐다. 농업경영체 종목 추가 등 자격 요건을 꼼꼼히 갖춰 다시 도전해 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남편은 교육생으로, 나는 청강생으로 다시 나란히 책상에 앉았다. 작년에는 주눅 들었던 그 자리가, 올해는 왠지 조금 든든하게 느껴졌다. 교육은 3~12월까지 80시간 내외로 진행된다. 시기별 재배 기술부터 전정 원리와 실습, 사과 재배 선진지 및 관련 시설 현장학습까지 일정도 알차다. 작년 막 사과를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배움의 시간이다. 수업 시작 전에 권영문 부군수가 참석해 교육을 응원하며 올해 군의 중점 사업을 설명했다. 이어 함께할 40명의 교육생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 귀농 1년 차 청년부터 은퇴자, 고령의 귀농인까지 면면이 다양했다. 무엇보다 2~30대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어 반가웠다. 인구 소멸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 청송의 미래가 그 순간만큼은 조금 밝아 보였다. 내년에 귀농 예정인 아들의 앞날을 떠올리니 마음도 든든해졌다. 다만 사과 재배 기술이 뛰어난 현동·현서면에 비해 내가 사는 파천면의 인원이 적은 점은 못내 아쉬웠다. 첫 강의는 사과 재배의 기초였다. 핵심은 전정이었다. 햇빛과 통풍을 위해 실시하는 동계전정과 하계전정의 원리를 초보자도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꽃눈에 대한 설명이었다. 흔히 관리를 잘못하면 꽃눈이 잎눈으로 바뀐다고들 말하지만, 강사님은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내년에 필 꽃은 이미 올해 6월 20일경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멘토에게서 듣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믿었던 말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비로소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청송군은 지난 5일 ‘2026 청송군 농업인대학 입학식’을 열었다. 지역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전문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올해도 사과 사관학교, 친환경 사과반, 미래 농업반의 3개 과정이 운영된다. 특히 ‘미래 농업반’에는 올해부터 자두 과정이 신설되었다. 이는 지역 농업인의 수요와 변화하는 농업 환경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지난 1월 ‘자두GAP 사업단 총회’에서 윤경희 군수가 자두를 사과 못지않은 청송의 대표 품목으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데, 이번 과정 신설에서 그런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작년 교육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는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는 행정’이 불합리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며 수업을 들어보니, 현장 경험과 함께하는 공부가 얼마나 실효성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무를 모르고 듣는 수업과, 나무를 만져본 뒤 듣는 수업은 확실히 달랐다. 배움도 결국 손끝의 감각 위에서 단단해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강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방금 배운 내용이 휘발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며칠 전 적어둔 메모를 다시 들춰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귀농 15년 차인 남편도 사과 품목만큼은 막 시작한 초보다. 우리 부부는 아직 서툴고 배울 것도 많다. 하지만 꾸준히 배우고 익히다 보면, 머지않아 고수익을 올리는 어엿한 사과 농장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난해의 낙방이 올해의 배움을 더 단단하게 받쳐주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3-18

경상도 남자를 울린 연극 ‘춘분’

2월의 마지막 날인 2월 28일,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극단 헛짓의 연극 ‘춘분’이 관객들을 만났다. 함께 연극을 보았던 친구 시연이의 말을 빌리자면,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는 서사지만, 막이 내린 뒤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 여운은 결코 뻔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재개발 지역의 낡은 집에서 살아가는 노부부 춘분과 소무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그리고 노년의 현실적인 문제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우리 삶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소무와 동네 사람 정팔의 대화 속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대화 속에서 곧 등장하는 춘분의 말투와 행동은 관객들에게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묵묵히 돌보는 딸, 말순과 집을 떠난 아들, 동하가 대비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춘분은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말순보다도 집 나간 동하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춘분이 말순에게 “재수 없는 년”이라 소금을 뿌리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는 과거 춘분이 시어머니로부터 딸을 낳았단 이유로 학대받은 트라우마가 현재 말순에게 투영된 결과였다. 치매로 흐려진 기억 속에서도 과거의 상처를 재현하는 춘분의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아픔을 전달한다. 말순의 희생적 돌봄에도 오직 집을 떠난 아들 동하만을 기다리는 춘분의 모습은, 가족 관계의 균열과 노년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극 후반, 춘분은 소무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두 사람은 눈이 내리는 날 자전거를 타고 ‘소풍’을 떠나며, 이 비극적 결말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역설적으로 묘사된다. 한편 말순은 소무가 남긴 작은 구두를 애써 신어보지만 발에 맞지 않아 포기한다. 눈물 대신 미소를 띤 말순의 모습에서 관객은 체념과 받아들임의 복잡한 감정을 읽는다. 이처럼 인물들의 엇갈린 마음과 남겨진 자의 고통이 함축적으로 표현되며 여운을 남긴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경상도 남자였던 시연이도 눈물을 흘렸다. 공연 후 그의 눈물 자국을 보며 놀리자 여운이 더 깊어졌다. 연극 ‘춘분’의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사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도 그저 흘려보내기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장면이었다. 춘분과 소무의 자연스러운 분장과 연기, 그리고 극의 분위기를 적절히 풀어주는 정팔의 유쾌한 연기는 마치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직접 보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연극이 끝나고 주인공 ‘춘분’의 이름을 떠올리며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춘분은 24절기로 낮과 밤이 같은 날이며, 이후 낮이 길어진다. 춘분이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두 사람의 마지막 ‘소풍’은 절망의 밤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춘분과 소무가 소풍을 떠난 그날, 그들에게 밝은 낮의 기운이 많은 날들이 찾아왔을까?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 결말이지만, 어둠을 이기는 빛처럼 그들의 이야기가 밝게 빛나는 해피엔딩으로 연극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싶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