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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풍 100년 도깨비시장, 색소폰 선율로 하나 되다

대구 달성군 현풍읍의 전통시장인 현풍 100년 도깨비시장이 음악으로 물들며 장날의 열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지난 25일 장날을 맞아 색소폰 마운틴 앙상블과 소담회 회원들이 펼친 이날 공연은 시장을 찾은 주민과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으며 화합의 장을 연출했다. 색소폰 마운틴 앙상블(회장 서정구)은 달성군 현풍읍에서 창단된 지 20년의 전통을 지닌 시니어 음악 동호회다. 최상국 전 달성군의회의장을 비롯해 음악을 사랑하는 60~70대 회원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달성군의 대표 행사인 참꽃축제와 벚꽃축제, 군민체육대회 등 각종 지역 행사에서 활발한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정기적인 봉사 공연과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소담회 회원들과 함께해 공연의 깊이를 더했다. 1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소담회는 현풍 출신의 한대곤 가수 겸 드러머와 박순우 아코디언 연주자, 이철호 기타리스트 등이 참여해 ‘청춘의 봄’, ‘청춘 등대’ 등 추억의 가요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펼쳐진 색소폰 마운틴 앙상블 전원의 ‘색소폰 메들리 퍼레이드’는 시장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만들었다. 관객들은 연주에 맞춰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화합의 시간을 만끽했다. 이번 공연은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28

아름다운가게 대구 수성점 22주년 기념행사

비영리 공익법인 여성과 도시와 함께하는 아름다운가게 대구 경북본부 대구 수성점(매니저. 박성주)은 지난 25일 개점 22주년 기념식을 지역 주민과 회원들의 참여로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이번 22주년 행사에는 여성과 도시 회원들이 의류, 가전, 잡화, 도서 등 총 342점을 기부해 자원순환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행사에는 지역 주민 등 229여 명이 찾아와 구매가 곧 나눔이 되는 아름다운가게에서 판매 중인 의류, 생필품, 도서 등을 다양한 가격으로 구매하며 착한 소비에 함께했다. 여성과 도시는 이날 행사 판매수익금 전액을 아름다운가게로 전달, 수익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에 지원할 예정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자원 재순환을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더불어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돕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물품 기부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에는 기부 천사, 구매 천사, 활동 천사, 등 3대 천사가 활동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는 2002년부터 전국 지역단위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해 얻은 수익금을 각 해당 지역의 소외계층을 돕고 환경을 보호하는데 지원하고 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28

어떤 만두를 좋아하나요

고기만두 김치만두도 고르기 힘든데, 군만두를 시키면 찜만두를 빼놓긴 아쉽다. 짜장면을 먹으려면 얼큰한 짬뽕 국물이 아쉽고, 찍먹이냐 부먹이냐 다툴 시간에 탕수육 한 점 더 먹자는 실속파도 있다. 그렇게 늘 선택해야 할 때면 어떤 선택이 가장 옳은 일일지 고민하게 된다. 메뉴는 열 가지도 넘는데 두세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오늘은 늘 배달시켜 먹다가 직접 가서 보글보글 끓여 먹는 전골이 땡겨서 가게로 갔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갈 거리에 있다. 오래전부터 장사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자세히 살피니 벽에 1996년부터라고 적혔다. 와아···. 30년을 손만두를 빚으셨구나. 가게 안쪽에서 열심히 빚는 모습이 보였다. 대식가인 남편과 아들이 함께라 먹고 싶은 메뉴 다 시켜도 되니 좋았다. 자리에 앉아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계산까지 한다. 일단 만두전골(전골은 기본 2인분이다.)을 누르고 난 후 손가락이 멈췄다. 나에게 어떤 만두가 제일 맛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군만두이다. 특히 코끼리만두의 군만두는 피가 얇아 기름에 구워도 딱딱하기보다 포삭한 느낌이라 입천장이 긁히진 않는다. 군만두도 시키고 싶지만, 비빔만두에 채소 무침이 함께 나오니까 칼칼한 쫄면도 빼고 비빔만두 하나만 시켰다. 이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중에 어떤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봅시다 딩동댕동! 김치만두로 정했다. 더 시키려는 남편을 만류하며 전골에 공기밥도 먹어야 하고, 마지막에 후식으로 볶음밥도 먹으려면 참아야 한다고 아들이 강조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시키자며 씨익 웃었다. 계산을 내가 한다고 하니 이참에 더 시키고픈 얼굴이다. 남편만 매장 방문이 처음이다. 가까운 곳에 이런 맛집이 있었느냐고 놀란다. 코끼리만두의 한 가지 단점은 주차장이 없다는 것. 그래서 멀리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포항 북부 바닷가 영일대해수욕장에 자리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고 걸어오면 된다. 걸어오기에 멀다 싶으면 근처 골목길에 눈치껏 대야한다. 들어가며 간판을 보니 빛이 바랬다. 붓글씨로 쓴 듯한 ‘코끼리만두’는 만두에 진심이라는 듯 점잖다. 밑에 ‘직접 빚은 만두전문점’이라고 작게 설명이 붙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가게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전골이 끓기 기다리는 동안 배달주문이 끊임없이 울렸다. 고기와 버섯을 먼저 먹고 만두 하나씩 앞접시에 덜어와 후후 불어서 맛보았다. 속도 알차다. 원산지 표시를 보니 만두소에 들어간 돼지고기와 배추와 고춧가루까지 모두 국내산이다. 사이드로 나오는 반찬까지 모두 국산이다. 전골의 맨 위 소고기도 한우였다. 십여 년 전 시댁에서 어머님을 위한 만두를 만들었다. 고기는 닭도 돼지도 오리도 못 드시고 소고기만 드셔서 소고기를 구워 먹을 만큼 샀다. 부추만 넣는 간단한 만두 레시피였다. 만두소에 두부, 신김치 같은 채소를 잔뜩 넣으면 고기가 기본만 들어가도 양이 그득하지만, 부재료가 부추가 다였으니 고깃값이 많이 들었다. 만두피를 반죽해서 얇게 밀어야 하는데 홍두깨가 없어 보온병으로 밀고, 동그랗게 찍어낼 때는 주전자 뚜껑으로 눌렀다. 만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소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잘게 썰고 뒤섞느라 어깨가 아프지만 피를 얇게 밀면 빚다가, 또 국물 속에서 익다가 터지기 일쑤라 적당히 두꺼워야 한다. 작게 빚어야 하니 빚는 시간도 만만찮아 가족이 다 모여서 큰일 치르듯 해야 한다. 그러니 자주 해 먹기 힘들어 맛집 리스트를 작성한다. 리스트 중에 우리 집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코끼리만두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7

십이령 봉화 상무사 유적 ‘조령성황사의 가치와 보존’

봉화 상무사는 조선시대 봉화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보부상단을 일컫는 명칭이다. 조선의 보부상은 전국적으로 존재했던 행상인 집단으로, 각 지역 오일장을 기반으로 상권을 형성하고 유통 질서를 일정 부분 관리해 왔다. 보부상 조직은 시대에 따라 제도적으로 변화했다. 1866년 보부청을 비롯해 1883년 혜상공국, 상리국 등으로 명칭과 운영 체계가 바뀌며 중앙의 관리 아래 조직화됐다. 이후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에는 상무사가 설립되면서 봉화 지역 행상단은 봉화상무사로 명칭이 바뀌어 활동하게 된다. 상무사는 중앙에 사장을 두고, 각 도 관찰사가 분사장을 맡았으며, 군·현 단위에서는 군수와 현감이 분사무장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였다. 그 아래 공사원, 장무원 등이 임명됐고, 각 지역 임방에는 반수와 접장을 두는 등 비교적 체계적인 조직 운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04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보부상단과 상무사는 점차 해체되었고, 시장 유통 구조에서도 배제되며 기능을 상실했다. 1920년 이후 일부 잔존 조직들이 조선총독부에 탄원하면서 충청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명맥만 유지됐고, 현재는 문서, 인장, 현판, 비석 등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봉화상무사의 활동 흔적은 십이령(울진 두천리)과 봉화·울진을 잇는 고갯길 일대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특히 울진 두천리의 내성행상불망비 2기와 십이령 샛재의 조령성황사는 대표적 유적이다. 그리고 보부상합동위령비, 차정서, 토지 이관문서, 토지대장 등과 함께 16개의 현판이 남아 봉화상무사의 조직과 활동을 보여주는 핵심 사료로 평가된다. 내성행상단이 관할하던 시장 권역은 봉화군과 울진군 두 지역으로, 울진의 현내장·매야장·흥부장과 봉화의 내성장·장평장·춘양장·소천장·후평장 등을 포함했다. 이들은 울진의 해산물과 봉화의 곡물·특산물을 교환하는 상호 교역 구조를 형성했다. 십이령 열두 고개를 넘나들던 보부상 길목 중 하나인 샛재 조령성황사는 보부상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선대 제사를 지내던 제소였다. 제단에는 ‘조령성황신위’ 위패가 모셔졌으며, 보부상들이 전용으로 사용한 성황당이었다. 조령성황사 내부에는 1868년 ‘중수기’를 비롯해 1878년 ‘개와시’ 등 현판이 남아 있으며, 반수·접장·공원 등 직책과 인명이 기록돼 조직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현판들은 봉화 보부상의 역사와 활동 시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조령성황사에 남아 있는 16개 현판은 186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기록으로, 봉화 보부상단의 활동과 조직 변화를 보여주는 희귀 자료다. 그러나 상당수는 노후화가 진행돼 보존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십이령 고갯길은 외씨버선길과 동서트레일, 울진 금강송 숲길과 연결되며 탐방객이 찾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조령성황사 역시 개방되어 있으나, 출입과 이용 방식에서 본래 성격이 훼손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보부상은 한때 전국 8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평민 상인 조직으로 독자적인 규율과 윤리, 의례를 갖춘 상업 공동체였다. 그러나 현재는 그 문화와 풍속이 역사 기록 속에만 남아 점차 잊혀지고 있다. 십이령 보부상의 핵심 유산인 조령성황사와 관련 유물은 조선 후기 상업사와 민중 경제사의 중요한 증거로, 체계적인 보존과 문화재적 관리가 요구되며 관계 기관의 관심이 필요하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7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만난 필사의 힘

필사는 베껴 쓰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좋은 문장을 만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문장 안에 오래 머물고 싶어 감탄이 옅어지기 전에 하는 게 바로 필사다. 누군가는 필사를 통해 작가를 꿈꾸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가 일어나기 쉽지 않아서다. 작가를 꿈꾸는 한 지인이 도서관 수업에서 지난 일 년간 필사한 노트를 가지고 와서 자랑삼아 보여 주었다.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필사를 꾸준히 해온 그 시간에 박수를 보냈다. 얼마 전, 문학기행으로 간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도 필사의 힘을 마주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소설 ‘태백산맥’을 읽지 못하고 문학관을 다녀온 게 아쉬웠다. 핑계지만,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읽으려고 미루어둔 것이기도 했다.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 정도다. 문학관 일대는 작은 동네였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문학관은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그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우리 현대사를 말하기 위해 제석산의 흙을 깊숙이 파내 지어서였다. 대신 날개처럼 보이는 유리 모양 탑은 새 희망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한다. 문학관 앞에 서니 정면에는 조정래 소설가의 사인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은 옹벽이 보였다. 이 옹벽은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의 역사를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자는 염원을 고구려벽화로 표현했다. 문학관은 건축에서조차 소설의 내용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마 다른 문학관이었으면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관 근처에서는 소설 속에 나온 현 부자네 집과 소화네 집이 있었다. 현 부자네 집은 겉모습은 한옥이지만 마당 가운데 길을 막고 꽃과 나무가 심겨 있어 일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전시실은 소설가 조정래의 커다란 힘이 저절로 느껴졌다. 문학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문학이 된 힘이었다. ‘태백산맥’이라는 책 표지 모형부터 4년간의 취재, 6년간의 집필에 쏟은 정성이 한눈에 보였다. 그중 시작을 알리는 1, 2, 3권은 6년 중 3년에 걸쳐 집필해 서두에 많은 시간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속 무대인 벌교,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전시실 한쪽에 우뚝 솟은 작가의 육필 원고였다. 빛바랜 갈색의 원고지는 사람 키를 훌쩍 넘겼다. 무려 1만6500매라 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생각해 보면 이만큼의 완성본이 되기까지 버려진 원고지는 이보다 더 많았겠다 싶다. 2층으로 올라가면 이보다 더 놀랍다. 아들과 며느리의 필사본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태백산맥’의 독자들이 보내온 필사본들이 엄청나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라는 문구 아래 독자들이 보내온 필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필사본 전시실이 하나였는데 하나가 더 늘어났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독자가 보내온 필사본을 보니 일흔이 넘은 고령의 독자가 보내온 필사본이 있었다. 필사를 매일 3~4시간씩 20개월에 걸쳐서 했다고 한다. 작가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태백산맥’의 진정한 독자임을 스스로 증명한 거였다. 순간, 이런 행운을 누리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싶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필사본 전시실엔 두 칸이 빈걸 보니 저 안에 직접 필사한 ‘태백산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7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이팝나무

여인의 마음을 한껏 달뜨게 하던 벚꽃이, 소리도 없이 떠나버리고 이제 다른 풍경이 들어섰다. 가로수마다 하얀 것이 수북이 매달려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막 지은 쌀밥이 가지마다 봉긋하게 얹힌 듯하다. 바라만 보아도 어쩐지 속이 든든해지는 착각이 든다. 이팝나무는 참으로 솔직한 나무다. 이름부터가 숨김이 없다. 배고픈 시절 사람들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꽃이 피면 스스로를 감추지 않는다. “나는 쌀밥이다” 하고, 가지마다 대놓고 밝힌다. “이밥에 고깃국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에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입하에 피는 나무라 하여 ‘입하목’이 ‘이팝’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들어 쌀밥을 먹게 된다는 믿음에서 ‘이밥나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꽃이 피면 나무 전체가 하얀 쌀밥처럼 보여 그렇게 불렸다는 설명이다. 자연이 지어낸 한 그릇의 밥, 그것이 바로 이팝나무다. 그러나 이 꽃이 피는 시절은 공교롭게도 보릿고개다. 일 년 중 가장 허기진 계절, 뒤주는 비고 아직 수확할 것이 없다. 그런 때 산과 들에는 쌀밥 같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 풍경이 과연 아름답기만 했을까. 어떤 이에게는 꽃구경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으로는 배부르고, 속은 더욱 비어가는 시간. 사람들은 그 꽃을 바라보며 허기를 달래고, 또 허기를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팝나무는 어쩌면, 배고픔이 만들어낸 집단의 환영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이밥에 고깃국”은 삶의 가장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소망이었다. 지금은 넘쳐나는 음식 속에서 칼로리를 따지고, 쌀밥을 멀리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 쌀밥 한 공기는 곧 삶의 품격이었고, 부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하여, 쌀밥을 ‘이(李)왕조의 밥’, 곧 이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밥 한 그릇에도 신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시대였다.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길은 길고도 고되다. 볍씨를 뿌리고, 모를 키우고, 물을 대고 빼고, 다시 논으로 옮겨 심는다. 그리고 김을 매고 또 맨다. 초벌, 두벌, 세벌···. 풀과의 끝없는 싸움이다. 그렇게 자란 벼를 베고, 타작하고, 정미소에서 껍질을 벗겨야 비로소 하얀 쌀이 된다. 그 수많은 손길을 ‘여든여덟 번’이라 하여, 쌀 미(米) 자에 팔(八)이 겹겹이 들어갔다고도 한다. 한 숟갈의 밥에는 그만큼의 땀과 시간이 스며 있다. 그래서일까, 이팝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은 유난히 애잔하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아이의 무덤에, 살아생전 먹지 못한 쌀을 함께 묻었더니 이듬해 그 자리에서 하얀 꽃이 피어났다는 전설. 꽃은 눈부시게 희지만, 그 속에 담긴 사연은 먹먹하다. 배부름을 향한 간절함이 결국 꽃으로 피어난 셈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더 아프다. 제사를 준비하던 며느리가 밥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려다 밥알 몇 알을 입에 넣는다. 그것을 본 시어머니는 크게 노하여 며느리를 쫓아낸다. 제삿밥은 어떤 경우에도 손대지 말아야 할 신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풀 길 없던 며느리는 끝내 뒷산에서 생을 마감하고, 이듬해 그 무덤가에 하얀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팝나무의 흰빛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사연과 눈물까지 품고 있는 색이다. 세월은 흘러, 이팝나무의 의미도 조금씩 변해갔다. 배고픔의 상징이던 쌀밥은 더 이상 귀한 음식이 아니게 되었고, 사람들은 꽃을 보며 침을 삼키기보다 청소를 걱정한다. “꽃이 너무 많이 떨어져 지저분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한때는 풍년을 기원하며 바라보던 꽃이, 이제는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무도 시대를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팝나무 앞에 서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한 끼의 밥, 그 속에 담긴 수고와 시간, 그리고 오래전 사람들의 허기와 소망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 그것이 단순한 꽃비가 아니라 기억의 낱알이라면,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배부른 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 말을 웃으며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따뜻한 세상이 아닐까?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26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복원은 언제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매년 문화유산 20~30건을 중점 관리 대상으로 정해 구조 안전, 보존과학, 생물 피해 상황을 확인한 뒤 ‘양호’ ‘경미 보수’ 등 등급을 나눠 평가한다. 최근 2025년 중점관리 대상 문화유산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하면서 국보 13건, 보물 11건 등 24건을 점검한 결과 ‘경주 불국사 대웅전(보물)’, ‘안동 법흥사지 7층전탑(국보)’,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보물)’ 3건의 문화유산이 수리가 필요한 등급을 받았다고 했다. 불국사 대웅전은 작년 2월 천장 일부에 문제가 발견됐고, 2023년 점검에서도 건물 부재 일부에서 파손·간격 벌어짐·처짐 등이 확인됐다. 올해 연말쯤 가설 덧집을 먼저 짓고 기와부터 걷어가면서 내부 상태를 보고 해체 수리 범위를 결정할 것이라며 공사 기간은 2~3년 걸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함께 같은 등급을 받은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도 이참에 제대로 수리 및 복원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탑은 경북 안동에 여러 기가 현존한다. 안동시 법흥동에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운흥동에 보물 ‘안동 법림사지 오층전탑’, 일직면 조탑리에 보물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이 자리하고 있고,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 사찰에도 보물 ‘송림사 오층전탑’이 자리한다. 안동시 일직면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은 사과나무를 베어내고 말끔하게 수리했으며,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도 수리해 팔공산 자락 송림사 대웅전 앞에 의젓한 자태를 돋보이고 있다. ‘법흥사지 7층전탑’은 1단의 기단 위로 7층으로 쌓은 높이 17m, 기단 너비 7.75m로 우리나라 최고 전탑이다. 기단 각 면엔 화강암으로 조각된 팔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붙였고, 동쪽 면에는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을 만들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계단을 만들어 누가 봐도 으뜸을 보인다. 그런데 감실을 향하는 계단은 시멘트 구조물에, 기단의 각면에 조각된 팔부중상과 사천왕상 위로 1층 몸돌까지 사방 전체가 경사진 시멘트 구조물이다. 그간 중앙선 철길 영향으로 탑신과 시멘트 틈에 쇳물이 누렇게 베여 현존하는 전탑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전탑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보존돼 왔다. 원래 시멘트 바른 자리에는 화강석과 감실 계단석이 있었으나 주변 건축의 부재로 썼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아직 행방이 묘연해 70년 넘게 지금 모습이다. 게다가 서쪽 면의 기단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조각상에 시멘트를 바른 석축이 흉하다. 정밀 추적 조사를 통해 원형 복원이 아쉽다. 덧붙여 문화재당국에 바람이 있다면 안동읍지 ‘영가지’에 나오는 법림사 전탑은 법흥사지 전탑과 함께 7층으로 탑 위에 금동장식이 있는 유서 깊은 전탑이다. 명나라 군에 의해 철거돼 지금은 5층만 남아 있다. 일제가 중앙선 철로 부설 때 절터 일대를 성토해 ‘법림사지 오층전탑’과 ‘당간지주’만 남긴 남쪽은 콘크리트 옹벽, 서쪽은 흙으로 둑을 쌓았다. 전탑은 또 지표보다 40cm 정도 더 푹 꺼진 자리에 현존한다. 구 안동역사 주변에 법림사지를 되찾아 오층전탑 일대를 원래대로 복원해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아우른 통일신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싶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6-04-26

대구 서구 비산노인복지관 개관

대구 서구 비산노인복지관이 1년여 공사 끝에 지난 23일 개관식을 가졌다. 총사업비 163억원이 투입돼 5층 규모로 건립된 비산노인복지관은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보듬을 배움과 쉼터로서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이날 개관식은 시설 개소식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의미 있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장에는 류한국 대구 서구청장과 정영수 대구 서구의회 의장을 비롯해 지역 정치·행정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 대한노인회 서구지회 윤진 회장, 대구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강영신 이사장, 대구노인복지관협회 김진홍 회장 등 사회복지계 주요 인사와 지역 주민 200여 명이 함께해 개관을 축하했다. 행사의 시작은 비원노인복지관 어르신들로 구성된 ‘더조은소리 하모니카팀’의 연주였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선율이 강당을 채우자, 마치 지나온 세월의 이야기가 음악이 되어 흐르는 듯했다. 개관식은 개회선언과 내빈 소개, 경과보고, 인사말과 축사 순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다섯 개의 바람개비 퍼포먼스가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는 대구 서구 곳곳에 자리한 다섯 곳의 노인복지관들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로 권역별 복지 인프라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서구 비산노인복지관은 2025년 1월 첫 삽을 뜬 이후 약 1년 여의 시간을 거쳐 올 3월 완공되었다. 총 16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이 공간은 연면적 2021㎡ 규모로,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삶의 쉼터’이자 ‘배움의 터전’으로 설계되었다. 1층에는 누구나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북카페와 정보화 교육장이 자리하고, 2층에는 사무실과 강의실이 들어섰다. 3층은 따뜻한 식사가 오가는 식당과 다양한 프로그램실로 꾸며졌으며, 4층에는 강당과 탁구장, 건강증진실이 마련되어 활기찬 노년을 지원한다. 5층의 다목적 공간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처럼 층마다 담긴 기능은 어르신들의 하루와 삶의 흐름을 세심하게 배려한 결과물이다. 쉬고, 배우고, 움직이며, 서로를 만나는 모든 순간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축사를 통해 “권역별 노인복지관 조성의 결실로 다섯 번째 복지관이 문을 열게 되어 매우 뜻깊다”며 “접근성이 뛰어난 이 공간에서 어르신들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구 비산노인복지관 운영을 맡은 사회복지법인 금화복지재단 신경용 대표도 깊은 책임감을 전했다. 그는 “이곳이 어르신들이 편히 쉬고, 배우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공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개관식의 마지막은 테이프 커팅과 시설 라운딩으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새로 문을 연 공간을 둘러보며,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수많은 이야기들을 조용히 그려보았다. 웃음이 머무는 자리, 배움이 이어지는 교실, 건강한 움직임이 흐르는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만남의 장면들이 그려졌다. 서구 비산노인복지관의 개관은 단순한 건물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사회가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봄날에 문을 연 이 공간이 계절을 거듭할수록 더 깊은 온기를 품고, 많은 이들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26

천년의 뿌리를 잇는 품격의 결집, 종친회

최근 대구 시내 한 식당에서는 경주 손씨 대구종친회 제61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70여 명의 종친이 참석해 선조의 유훈을 되새기고, 문중의 정체성과 문중의 사회적 기여와 미래를 함께 모색했다. 대구종친회 손수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종헌(宗憲)의 깊은 의미를 환기시키며 숭조정신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서기 32년, 육부촌 6성의 득성조이자 문의왕으로 추봉된 시조 구례마 할아버님의 후손으로서, 단순한 혈연적 연대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사명에도 충실해야 함을 역설했다. 아울러 경주·밀양·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손씨가 동일한 시조와 중시조 효자공 손순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 뿌리임을 상기시키며, 종친 모두가 자긍심과 책임의식을 함께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천년고도 경주와 양동마을이 지닌 역사적 가치 또한 깊이 조명됐다.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들 지역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경주 손씨를 비롯한 명문가 집성촌의 정신과 전통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징적 유산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대종손 손성훈은 격려사를 통해 경주 육부전 상량문에 기록된 구례마 시조의 위업을 인용하며, 그 역사적 위상을 다시금 일깨웠다. 무산대수촌장으로서 손씨 성을 하사받고, 구미산신인으로서 충렬공의 시호를 받았으며, 개기좌명공신으로서 문의왕에 봉해진 사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후손들이 지켜야 할 정신적 유산임을 강조했다. 그는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경주 손씨 후손으로서 긍지와 책임을 함께 지니고, 전통을 계승하는 구심점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동음회를 비롯해 경주·부산·울산·포항 종친회 회장단이 참석해 덕담이 이어졌으며, 지역을 넘어선 종친 간의 연대와 화합을 공고히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총회는 단순한 모임을 넘어, 선조의 얼을 계승하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정신적 결집의 장이었다. 경주 손씨 대구종친회는 앞으로도 전통의 계승과 시대적 책임을 조화롭게 실천하며, 문중의 품격과 위상을 더욱 높여갈 것을 약속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4-26

작은 마당, 사계절을 품은 소우주

열 평 남짓 작은 마당이 사계절을 품는다. 매일 같은 자리 같은 풍경인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요란하지 않지만 작은 생명들이 꼬물꼬물 쉼 없이 움직인다. 4월이 깊어 봄 한복판에 이르면 작은 이별들이 보인다. 연보랏빛의 고운 자태로 봄을 알리던 깽깽이풀은 금세 꽃잎을 떨어뜨리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할미꽃도 미련 없이 머리를 풀어 헤친다. 화려함은 잠시뿐, 그제야 잎을 내며 생명은 또 다른 시간을 이어간다. 꽃들뿐만이 아니다. 이슬 맺힌 거미줄, 깽깽이 씨앗을 나르는 개미, 배양토를 빚는 지렁이 그리고 바삐 날아다니는 벌 나비까지 작은 마당에서 꼬물거리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서두름도 머뭇거림도 없다. 도심 속 작은 공간에서도 자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겨울 끝자락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20여 년 전 양지바른 곳에 할미꽃이, 반그늘 자리에는 깽깽이풀이 각 한 포기로 터를 잡았는데 지금은 제법 군락을 이룬다. 스스로 번식하며 자리를 넓혀가는 모습이 때로는 대견하다. 마당 한편을 차지한 수사해당이 벚꽃 못지않은 화려함으로 마당을 환히 밝히는 이 봄, 번식력 강한 국화는 이미 부지런히 잎을 키우며 가을을 준비한다. 긴 여정이 봄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오월이 오면 찔레꽃이 피어난다. 그 은은한 향은 언제나 유년시절을 주저 없이 소환하고, 작약의 단단한 꽃봉오리가 갑자기 툭! 터지듯 피어나는 그 순간은 마주할 때마다 놀랍다. 유월이 되면 마당의 중심은 수국이 차지한다. 토질과 햇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수국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렇게 계절은 꽃을 바꾸어 가며 마당을 채운다. 제한된 공간에서도 사계절은 분명하게 흐른다. 춘하추동, 나고 자라고 거두고 감추는 순서를 어기지 않는다. 게으르지도 조급하지도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햇살이 닿는 자리와 그늘진 자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경쟁이 벌어지고,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터를 잡으면 원래 있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하얀민들레, 초롱꽃, 사랑초, 꿀꽃, 백리향, 기린초까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생명들이 비좁은 마당에서 영역 다툼을 한다. 식물의 삶에서도 약육강식은 존재하고, 그 또한 자연의 질서 속에 스며 있다. 봄꽃과 가을꽃은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 봄꽃은 겨우내 포근한 대지의 품속에서 준비한 꽃봉오리를 아직 찬 기운이 남은 세상 밖으로 밀어 올린다. 그렇게 올라온 꽃이 이내 씨앗을 품기 시작하면 그제야 잎을 낸다. 그래서 봄꽃의 개화는 짧고 강렬하다. 반면 가을꽃은 봄부터 잎을 내고 여름 내내 뜨거운 햇빛을 즐기며 천천히 준비한다. 긴 시간을 들여 꽃봉오리를 키운 뒤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잎을 낸다. 그래서인지 개화 기간이 봄꽃보다 길다. 충분히 준비한 만큼 오래 머문다. 작은 마당에 터 잡은 생명들은 조용하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다. 꽃이 피고 지는 때를 알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삶. 어쩌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단단한 삶일지도 모른다. 작고 소박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마당을 ‘소우주’라 부른다. 그리고 오늘도 그 안에서 세상의 시간을 배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2

봄날, 재즈로 물든 무대···'카리나 네뷸라 공연'

지난 11일 대구 서구문화예술회관에서 따스한 봄의 기운과 함께 카리나 네뷸라의 공연 ‘JAZZ CIVAS’이 서구 구민들을 찾아왔다. 이번 공연은 각기 다른 음색을 지닌 네 명의 여성 아티스트가 한 무대에 올라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과 어우러지며 다채로운 재즈의 매력을 선보였다. 재즈를 접해본 적 없던 시민기자에게 이번 공연은 새로운 음악적 관심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첫 무대를 장식한 카리나 네뷸라의 신입 멤버 임채희를 시작으로 김민희, 박라온, 그리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말로까지,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무대가 이어졌다. 임채희의 무대는 재즈의 첫 경험을 신선하게 열어주기에 충분했다. 맑고 깊은 음색으로 곡의 감정을 섬세하게 끌어올리며, 자신만의 색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히 멜로디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곡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정서를 입체적으로 표현해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이어진 김민희의 무대는 한층 더 성숙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A Weaver of Dreams’와 ‘Spring Can Really Hang You Up the Most’ 두 곡을 통해 잔잔하고 편안한 음색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감쌌다. 특히 두 번째 곡에 앞서 봄에 싹을 틔우는 새싹을 응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계절의 따뜻한 기운을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또한 그는 “함께 술자리를 즐기던 친구지만 같은 무대는 처음”이라며 임채희를 다시 소개해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어 두 사람은 ‘Just in Time’을 함께 부르며 비슷한 음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듀엣 무대를 선보였다. 악기와 목소리가 하나처럼 어우러지는 순간, 두 사람의 목소리 또한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졌다. 김민희의 소개로 이어진 박라온의 무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천사의 목소리’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맑고 청아한 음색은 가볍고 투명하게 공간을 채우며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마지막 무대는 ‘스캣의 여왕’이라 불리는 말로가 장식했다. 김민희는 그녀를 소개하며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 부문 수상 이력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식어보다도, 실제 무대 위에서 마주한 그녀의 존재감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힘 있는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몸짓, 그리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채워진 무대는 단숨에 공연장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말로와 박라온의 듀엣 무대 이후, 네 명의 아티스트는 다시 한 무대에 올라 ‘Danny Boy’, ‘Happy’, ‘Spain’을 함께 그리고 번갈아 부르며 서로의 색을 드러내는 동시에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무대는 이번 공연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관객들 역시 단순히 공연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박수와 몸짓, 그리고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재즈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이번 카리나 네뷸라의 공연은 봄날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재즈가 가진 매력을 한껏 전해준 무대였다. 서로 다른 색을 지닌 목소리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이 밤의 기억은,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2

자두밭 소나무 아래

비 내리는 새벽, 자두밭을 둘러보았다. 과수원 안쪽, 지난해 산불을 이겨내고 늠름하게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곁에 어머니의 유해를 모셨다. 셋째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언제든 지켜보실 수 있는 자리, 어머님이 기꺼이 마음 두셨을 법한 그곳이 이제 어머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다. 요양원에서 조심스럽게 며칠을 보내신 뒤, 4월 8일. 어머님은 체온이 38.5도를 넘어서며 119구급차를 타고 안동병원으로 옮겨지셨다. 응급실에서 어머님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을 이어가고 계셨다. “어머님.”하고 불러보니, 알아보신 듯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치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병실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뇌혈관은 혈전에 막혀 온몸으로 온기를 보내지 못했고, 신장과 폐마저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우리를 불러 위급 상황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와 연명치료에 관해 설명했다. 어머님은 영양공급을 위해 목 아래에 튜브를 삽입한 채 그날 저녁 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그때부터 면회는 하루 두 사람, 각 5분으로 제한되었다. 그날 밤늦게, 아주버님에게 혈액투석이 시작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4월 10일, 짧은 5분의 면회 시간. 투석 덕분인지 어머님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손을 잡으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다른 한 손으로 얼굴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어머님은 힘겹게 눈을 뜨고 나를 찬찬히 바라보며 무언가 말씀하셨다. 그러나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작은 소리는 끝내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머님,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셨다. 그것이 어머님과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이어 남편이 5분간 어머님을 만났다.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머님께서 웃는 얼굴로 따뜻하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눈을 조금 더 떠보시라 하며 사진도 몇 장 남겼다. 11일에는 큰아가씨가, 12일에는 남편이, 월요일 낮에는 남편과 아주버님이 차례로 면회했다. 비닐 방역복을 입고 손을 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머님은 끝까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셨다.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남편은 며칠 사이 달라진 어머님의 모습을 다시 사진으로 남겼다. 낮에 면회를 다녀온 그 날 저녁,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사이 어머님은 이미 숨을 거두셨다. 우리는 마지막 모습을 함께하지 못했다. 4월 8일 입원하여 4월 13일 저녁 8시, 어머님은 끝내 말을 멈추셨다. 마지막은 길지 않았으나, 그 안에는 한 생의 시간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었다. 열한 살에 가족을 잃고도 살아낸 시간, 타인의 집에서 견뎌낸 세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워낸 날들.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셨던 마음까지, 어머님은 마지막까지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계셨다. 어디에 머물 것인지, 누구 곁에 있을 것인지, 병원이 아닌 집, 낯선 침대가 아닌 익숙한 방, 그리고 따뜻한 가족의 손. 그 모든 선택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삶이란 어디에서 끝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봄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사과밭은 여전히 손길을 기다리고, 마당의 진달래는 조금씩 꽃잎을 떨군다. 그러나 나의 봄은 이전과 같지 않다. 어머님은 유언대로 화장되어 자두밭이 내려다보이는 산, 큰 소나무 곁에 모셔졌다. 남편이 과수원에서 일할 때면 언제든 아들을 내려다보실 수 있는 자리다. 이제 밤마다 이어지던 모자의 이야기는, 자두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 섞여 흐를 것이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2

유머로 삶을 어루만지는 문학의 힘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19일, 교보문고에서 수필가이자 본지 시민기자인 방종현씨의 문집 ‘유머산책’ 출간 기념 사인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한 권의 신간을 알리는 자리를 넘어, 오늘날 문학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으로 마련됐다. ‘유머산책’은 ‘유머’라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길을 제시한다. 날카로운 비판과 빠른 속도,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된 시대 속에서, 이 책은 한 발 물러선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여유와 따뜻한 공감의 가치를 일깨운다. 방종현 작가는 기존의 긴장감 있는 문체에서 벗어나 한층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독자와 마주한다. 이는 단순한 표현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성숙을 의미한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 위에 인간적 온기를 더하고, 비판보다는 이해를 선택하는 그의 글쓰기는 문학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날 행사에는 많은 문단인사들이 찾아와 축하와 격려를 하며 다양한 평가도 했다. 김정길 전 대구문화예술진흥원장은 “한 가지 탤런트만 지니고 가꿔 나가기 어려운 숨가쁜 세태에 이모년(二毛年)을 훌쩍 넘긴 장(壯)청년이 문·악·주·극·논(文樂奏劇論)을 섭렵하는 도전과 열정이 놀라움을 넘어 경외와 큰 박수를 보낼 만한 백방미인이다“고 극찬했다. 문무학 문학박사는 “방종현의 삶을 담은 이 책은 노년의 삶을 고민하는 시니어들에게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어 고즈녁한 빛을 뿜고 있다”고 했다. 한국 문인협회 장호병 부이사장은 ”방 작가는 요즘시대에 보기 드문 풍류가객으로서 기자·시조창·가요·연극 등을 하는 팔방미인“이라고 했다. 그의 글이 단순한 유머를 넘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의 막역지우인 황인동 시인은 “방 작가는 늘 새로운 배움을 향해 나아가는 기발한 발상과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를 사로 잡는다”고 평가했다. ‘유머산책’은 단순히 웃음을 유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된 문장은 어느 순간 삶의 본질을 되묻게 하고, 일상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확장된다. 이처럼 유머를 통해 성찰에 이르는 구조는 문학이 지닌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사회적 의미에서도 주목된다. 피로와 긴장이 일상이 된 현대인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날선 비판 대신 따뜻한 공감을 건네는 문장은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남기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한편 ‘유머산책’은 전국 교보문고에서 판매 중이며, 북랜드에서 출간됐다. 총 256쪽, 정가 2만 원. 앞으로 방종현 작가가 펼쳐갈 유머와 통찰의 세계가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4-21

(이사람) 아코디언으로 봉사하는 즐거운 인생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 사무실을 둔 소담하모니라는 음악동호인 단체가 있다. 이곳에서는 매달 둘째 수요일에 20여 명의 음악인이 모인다. 이들은 평생을 음악으로 관계를 맺어온 생활속 예술인이다. 평균 나이 75세 이상의 노익장을 자랑하는 분들이다. 제각기 악기 하나는 기본으로 다룰 줄 알며 트로트로 다져진 야무진 목소리에 힘이 언제나 넘친다. 음악 속에 항상 젊음을 유지하며 생활한다. 이들이 다루는 악기는 드럼, 피아노, 트럼펫, 색소폰, 일렉기타 그리고 아코디언이다. 박순우씨(77)는 아코디언 연주자다. 대구에서 아코디언 연주자로서는 아주 귀한(?) 인물로 소문나 있다. 그는 영덕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대구시내 음반가에서 흘러나오는 아코디언 음색에 매료돼 아버지를 졸라 당시 거금인 5만 원으로 아코디언을 구입했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배우다가 1년 뒤 학업 때문에 잠시 접었다.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아코디언 전문인에게 교습을 받기 시작했고,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도 아코디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아코디언과 반세기를 함께 한 셈이다. 1960~70년대 카바레 악단에선 옛 가요를 연주할 때는 아코디언이 필수다. 다른 악기 연주자보다 아코디언 연주자의 급여는 더 많았다. 60년대 중반만 해도 이탈리아 아코디언 한 대 값이 외곽지 주택값만 했다. 정년을 앞두고 박 연주자는 지역봉사활동에 나섰다. 영덕, 울진, 봉화 등 지역축제마다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면서 이름난 연주자로 소문났다. 지금도 대구 시내 여러 악단에서 봉사한다. 상록봉사단(공무원 연금공단 중심의 재능기부봉사단), 굿밴드, 밀라노악단에서 활동을 한다. 요즘은 대구 인근의 버스킹 음악회에 나가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코디언은 추억의 악기다. 연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특히 악기의 독특한 음색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애조어린 음악, 구슬프고 애절한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그래서 어르신들로부터 인기가 폭발적이다. 그는 아코디언은 “10년을 배워야만 대중가요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워 애정이 가는 악기”라며 “긴 세월 동안 배워 익힌 재능을 인생후반에 이웃에게 좋은 음악으로 선사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며 함빡 웃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4-21

(시민기자 단상) 헌법 전문에 새겨야 할 시작의 이름 2.28

근래 정치권에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 핵심은 헌법 전문에 특정 민주화운동을 명시하자는 데 있다. 헌법 전문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을 압축하여 선언하는 공간이다. 무엇을 넣고, 넣지 않느냐는 곧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뿌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이름이 있다. 바로 대구에서 시작된 2·28 민주운동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권력의 부당한 선거 개입에 맞서 거리로 나섰다. 오직 부정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 하나로 시작된 자발적 항거였다. 이 작은 불씨는 곧 전국으로 번져나가 3·15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대한민국 현대 민주주의의 물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새긴다면, 그 출발점은 과연 어디인가. 민주주의의 역사는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과정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다. 2·28은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이후 모든 민주화운동을 가능하게 한 ‘기원’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사건을 추가하는 것이 현실적 절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은 절충의 산물이 아니라 원칙의 선언이어야 한다. 특정 사건 하나를 택하는 순간, 그 밖의 수많은 민주화의 희생과 기억은 상대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반영하려 한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포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포괄은 반드시 역사적 순서와 인과관계를 존중해야 한다. 그 첫머리에 놓여야 할 이름이 바로 2·28이다. 더 나아가 2·28의 헌법적 의미는 단순히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맞서 시민, 그것도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저항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국민주권’의 원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원포인트 개헌이 진정으로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민주화운동 전체를 포괄하는 원칙적 문구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사건을 명시하되 그 출발점부터 역사적 연속성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후자를 택한다면 2·28의 배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헌법은 기억의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의 선언이다. 정치적 합의에 따라 일부만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는 그 권위를 얻을 수 없다. 오히려 국민을 나누고 지역의 감정을 자극할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를 아우르는 지혜다. 2·28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 이름을 헌법에 새기는 일은 특정 지역의 자부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시작을 지우고 미래를 말할 수 없다. 헌법이 대한민국의 민주정신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첫 문장은 마땅히 ‘2·28’에서 출발해야 한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4-21

벼농사 준비로 바쁜 삼백의 고장 상주

상주시 외서농협(농협장 김광출)은 올해 농협 사업계획 중 벼 육묘 사업을 확대키로 하고 모 농사가 반농사라는 벼 종자 침종, 최아, 상자 파종, 출아, 못자리 설치, 치상, 못자리 관리 등의 일손 돕기에 나서기로 했다. 외서농협의 벼 육묘장은 상주에서 제일 큰 육묘장이다. 조합원 170여 명이 미소진품 4만4000상자, 동진찰벼 7000상자를 이미 신청했다. 올해 못자리 육묘 계획 상자는 5만1000여 상자(170여ha)다. 작년 3만3000상자(110여ha)보다 51% 증가했다. 1차로 지난 7일 침종 최아 2500상자를 파종, 12~15cm 크기로 출아시켜 외서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앞 육묘장에 상자를 펴놓고 물을 넣어 관리하고 있다. 18~19일에는 부직포를 제거 푸른 못자리를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주었고, 19일에는 7500상자가 육묘장에 나왔다. 12~17일간 묘를 튼튼하게 하는 경화 훈련을 시켜 5월 상순부터 본격 모내기를 시작할 계획이다. 상자당 판매 금액은 4500원이다. 2차로 17일에 침종 파종한 1만여 상자는 현재 출아실에 있고, 3차로 22일에 1만 상자분의 종자를 침종 파종할 계획이다. 외서농협은 못자리 상자를 펴놓는 육묘장 면적의 한계로 농협자체 육묘 2만9000여 상자 외 나머지 2만2000여 상자는 5개 농가에 위탁 육묘하여 모내기 때 농협에서 농가에 운반하여 모내기에 차질 없도록 할 계획이다. 농가 개인 못자리도 불이 붙어서 한창이다. 봉강리 김한숙씨, 길윤균씨는 일주일 전에 부직포를 덮어 못자리를 설치하였고, 정재명씨는 지난 18일 아들, 사위, 손자 손녀까지 참여 상자 파종을 하였다. 파종한 상자를 10~15단 높이로 쌓고 비닐을 덮어 출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벼농사는 통일벼 보급으로 획기적 발전을 했다. 1972년 통일벼가 처음 보급되면서 묘를 빨리 키워 일찍 모내기를 할 수 있었고, 묘판 위에 비닐을 덮는 보온절충 못자리가 보급되면서 눈부신 발전을 했다. 비닐피복은 야간 저온시 냉해 피해, 고온시 환기를 하지 않으면 고온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다. 1990년대부터 부직포가 보급되면서 냉해, 고온 피해가 없어 부직포를 덮는 못자리가 전면적으로 확대되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21

낮에 만나는 별···포항 죽천 바닷가로 오세요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적재의 목소리도 좋지만, 박보검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냥 바로 “어!”하면서 따라나서게 만든다. 노래 속의 별은 밤에 보지만, 오늘은 낮에 별을 보러 갔다. 포항 죽천 바닷가로. 카페 ‘빈땅’이다. 이곳은 포항 해변에서 푸른 바다를 보며 맛있는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니, 별 보러 가자고 했는데 왜 카페냐고 물으신다면 인도네시아 말로 ‘빈땅’은 별이란 뜻이다. 가게 앞에 주차장이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만차여서 동네 골목에 차를 세웠다. 평일 오후 1시인데 빈자리가 두 개뿐이었다. 그나마 좀 전에 단체 손님이 떠나서 그렇다고 했다. 멀리서 관광버스를 타고 포항에 여행 와서 무얼 먹을까 ‘제미나이’에게 물으니 빈땅카페를 추천하더란다. 카페라 다양한 음료가 맛있어서 자주 찾았지만, 오늘은 얼마 전에 화덕을 새로 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피자를 맛보러 갔다. 둘이 가니 여러 메뉴를 다 맛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피자 하나면 배부르니 말이다. 다섯 가지 피자 중에서도 하나만 먹어야 하니 선택 장애가 올 지경이다. 우리의 선택은 다양한 버섯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머쉬룸 피자와 흑임자라떼. 사실 흑임자는 내 선택이 아니라 이곳을 추천한 하원 선생님의 픽이다. 다른 곳에서 곡식 종류 음료를 마시면 꺼슬한 느낌의 목 넘김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선택하지 않는데 이 집 흑임자 한 모금만 마셔보라고 강추해서 마셨더니 깔끔했다. 다음에 오면 이걸로 시켜야겠다. 청으로 만든 차는 대체로 내 입맛에는 달았다. 그래서 따뜻한 물을 더 달라고 해서 섞어 마셨다. 드디어 피자가 나왔다. 버섯 향이 진하게 풍겼다. 한 조각 떼어내니 치즈가 길게 늘어난다. 안주인이 치즈 가루랑 핫소스를 들고 와서 뿌려 먹으라고 주면서 덧붙이기를, 소스를 드리긴 하는데 뿌리지 말고 그냥 먼저 먹어보라고 했다. 순수 우유로 만든 치즈만 쓰고, 올리브오일은 엑스트라버진만 쓴다고. 잠시만요, 치즈는 원래 우유로 만드는 거 아닌가요? 다시 물으니까, 보통의 피자에 올리는 치즈는 다른 게 섞였다고 한다. 순수하게 우유만 넣은 게 재료 값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구나, 당연히 모든 치즈가 우유로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가게를 차린 것이라 좋은 재료만 찾아서 만든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함께 간 하원 선생님은 여러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지만, 이 집 피자와 파스타는 밀가루도 골라 써서 배탈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치즈가 식기 전이 맛있으니 열심히 먹는 중인데 피자 하나만 시킨 것이 안타까웠는지 바질파스타를 서비스로 내왔다. 잣 호두 생바질 엑스타라버진오일로 주방장이 직접 만든 수제 바질페스토를 쓴다고 했다. 파는 바질페스토로 만들어보니 해외를 여행하며 맛보았던 그 맛이 안 나더라고 했다. 연둣빛의 소스에 타이거새우가 어우러져 고소했다. 가게를 들어서며 눈에 뜨이는 장식이 조명이다. 천장에 달린 등이 여기가 동남아 어디쯤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풍긴다. 이런 건 어디서 파냐고 혹시 이것도 직접 만들었나 싶었더니, 인도네시아에서 하나씩 손에 들고 왔다고 한다. 부피가 있어서 하나 이상 가져올 수 없으니, 그것도 비행기에 타면서 승무원에게 따로 보관을 맡겼다가 내릴 때 받아오는 정성이 필요했다. 뭐든 대충은 없구나 싶었다. 처음 가게를 열 때 이곳은 빈 땅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하나하나 주인 내외의 정성이 들어가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한다. 남자 사장님이 서핑을 가르치기도 해서 서퍼들에게는 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니 ‘빈땅’이 분명하다. 나랑 빈땅카페에 빈땅(별)보러 가지 않을래···.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0

일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 플라스틱 줄이기

일상생활 속에서 플라스틱 줄이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최근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플라스틱의 원료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이는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플라스틱과 가까이 살고 있는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 일상생활을 보면 식품 용기부터 생수병, 일회용 컵, 포장재, 의료 현장 등 플라스틱은 많은 곳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택배 상자 속의 완충재라던가 이중 삼중으로 된 비닐 포장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아파트의 리사이클 센터는 배달 음식으로 인한 플라스틱 용기가 넘쳐난다.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용기에 수거 자루는 금방 가득해진다. 길거리에 플라스틱이 마구 버려진 걸 보는 것도 흔한 일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면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건 우리가 이미 플라스틱 세상에 둘러싸여 있다는 증거다. 마트를 가서도 ‘플라스틱이 정말 많구나’를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값싸고 편리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지난주 도서관 수업에서도 사서는 첫 시간, 수업 내용에 앞서 강조한 건 수강생들이 일회용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음료 컵 대신 텀블러 챙겨오기였다. 시민기자도 평소 생활 습관을 살펴봤다. 일단 평소에 커피나 음료를 즐겨 마시지 않으니, 카페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커피 컵이나 빨대는 줄이고 있다. 하지만 도서관을 갈 때는 자주 텀블러 챙겨가는 걸 깜빡하고 잊어버려 일회용 컵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필요할 때 쓴다며 자동차 트렁크에도 따로 일회용품을 챙겨 놓았다. 형제들이 많은 걸 핑계 삼아 시골집에도 설거지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플라스틱 숟가락과 용기들을 쟁였다. 생수병도 마찬가지다. 지퍼백이나 위생 비닐백도 같은 이유로 쟁여 놓았다. 마트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살 때, 물건을 비닐에 아무 생각 없이 담는다. 집에 와서 보면 비닐이 수북하다. 집안에서는 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이 주방이다. 수세미부터 랩, 냉장고의 냉동실 음식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겨 꽁꽁 싸여 있다. 생활 습관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는 게 첫 번째였다. 머릿속에서는 플라스틱 줄이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편리함을 앞세우며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거다. 그래서 실천이 더 어렵다고 핑계를 댄다. 그렇다면 이 플라스틱을 어떻게 해야 잘 줄일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건 일회용 컵을 줄이는 거다. 한 사람이 매일 일회용 컵 하나를 덜 쓰면 한 해 동안 발생하는 플라스틱의 양 10%가 줄어든다고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보통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실 때 텀블러를 사용하면 된다. 앞으로 텀블러 사용은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배달 음식을 한 번이라도 줄이는 거다. 가끔 음식을 배달시키면 따라오는 플라스틱 용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또 하나는 제대로 버리기다. 플라스틱 제품은 재활용을 위해 반드시 세척하고 버려야 한다. 세척이 깨끗하게 안 되면 재활용이 어렵다. 특히 배달 용기를 버릴 때가 그렇다. 또 플라스틱 용기에 붙은 라벨지를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플라스틱은 무조건 재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 재질 때 재활용된다. 복합 재질인 경우는 일반쓰레기로 배출한다는 걸 다시 알았다. 플라스틱 줄이기는 이처럼 자신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하면 된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0

경주 봄꽃 절정···첨성대 튤립·불국사 겹벚꽃관광객 줄이어

매년 벚꽃을 필두로 봄꽃 릴레이가 시작된다. 벚꽃이 한차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면 뒤이어 불국사 겹벚꽃과 튤립이 또 한 번 발길을 사로잡는다. 겹벚꽃이 한창인 불국사는 이른 새벽부터 주차장이 만석일 정도로 인기다. 또한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동부사적지 일대 꽃밭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관람은 무료이며 주차는 천마총 노상 공영주차장, 혹은 쪽샘 구역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주말에는 황리단길을 찾는 인파까지 겹쳐 주차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최근에 조성된 황리단길 공영주차장 이용이 권장된다. 도보 이동 거리가 다소 있지만 혼잡 시간대에는 차량 이동보다 보행 이동 속도가 더 빠른 편이다. 벚꽃에 이어 봄꽃의 흐름은 튤립으로 이어진다. 첨성대를 기준으로 7만 송이 이상의 튤립으로 조성된 꽃밭은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과거에는 졸업식 등 특정 시기에 주로 접하던 튤립을 이제는 일상 속에서도 볼 수 있게 되면서 계절 경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꽃밭의 인기에 맞춰 인스타그램 및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연일 튤립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올해는 다양한 색의 튤립이 각각의 구역으로 나눠 심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색이 분리돼 있어 원하는 색을 골라 사진을 촬영하는 재미도 있다. 빨강과 노랑 등 익숙한 색상의 튤립뿐 아니라 줄무늬를 띠는 연분홍 튤립, 여러 겹의 꽃잎을 가진 노란 튤립 등 평소 보기 어려운 품종도 다양하다. 일부 구역은 색 대비를 강조해 구성됐고, 다른 구역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러데이션 형태로 연출됐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대형 꽃밭 경관을 제공하며 시민과 관광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장에서는 첨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특히 많으며, 문화재와 자연경관을 함께 활용한 사례로도 주목된다. APEC 영향으로 관광객 국적도 이전보다 다양해진 모습이다. 꽃밭 일대에서는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촬영하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꽃 가까이에서 촬영을 시도하는 모습도 눈에 띄며, 촬영 과정에서 웃음이 이어지는 장면도 자주 관찰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즐기는 방문객들도 많다. 튤립은 햇빛에 반응하는 특성이 있어 오전부터 오후 3시 이전에 방문하면 보다 화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꽃밭을 둘러보는 사이 관광형 이동수단인 ‘비단벌레차’가 운행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용객이 많아 온라인 예매는 빠르게 마감되는 경우가 많으며, 오프라인 티켓은 오전 9시부터 구매 가능하지만 잔여 좌석 상황에 따라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 탑승 시간은 회차당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운행 코스는 계림과 향교, 교촌마을, 월정교를 거쳐 출발지로 돌아오는 순환형이다. 도보 이동이 어려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유용하다. 이용 요금은 성인 4000원, 군·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0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모델 선발대회 성료

대구예술대학교(총장 허용) 평생교육원은 지난 15일 효목동 본 교육원 1층 석암미술관에서 ‘패션 모델 과정’ 홍보를 위한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는 ‘모리모델협회’ 이원호 회장 등 50여 명이 참관해 시니어들의 모델 도전 과정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는 패션쇼로 유명한 모리텍스가 주관하고 인비 인어공주비, 풀리가 후원했다.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은 2026년부터 모리텍스 모델협회와 함께 하군자교수, 김선옥교수가 참여하는 패션모델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은 특별한 제한 없이 누구나 수강할 수 있는 모델 강좌로 자세 교정, 워킹, 포토 포즈, 패션쇼 콘티, 패션쇼 모델 참가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교육과정을 마치면 직접 패션쇼 모델로 활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번 대구예술대 평생교육원 시니어모델 선발대회에서는 20명이 참가했으며 각종 경연을 통해 영광의 대상은 권소희씨가 차지했다. 최우수상에 전인수씨, 우수상에 천순이씨가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대상을 차지한 권소희씨는 “훌륭한 출전자들이 많았는데 부족한 제가 대상으로 선발되어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하며 응원해 준 가족과 지인들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또한, 이번 행사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에게 제품을 후원하고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 ‘풀리’의 대표인 김도연씨는 “단순한 외모가 아닌 인생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내면의 멋과 당당한 자신감을 핵심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며 “참가자들의 연륜에서 나오는 깊은 매력과 당당한 워킹, 개성미 넘치는 스타일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심사소감을 밝혔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4-20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장원급제’

세상에 상(賞)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하물며 내 실력을 인정해 주는 상이라니요. 그중에서도 ‘장원급제(壯元及第)’네 글자는 듣기만 해도 콧구멍이 벌렁거릴 만큼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사실 상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모두가 받을 수 없어서 더 안달이 나죠. 학창 시절 성적표를 기다리던 그 ‘심멎’의 순간들, 0.01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비정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평생을 ‘줄 세우기’의 희생양(혹은 주인공)으로 살아왔습니다. 상의 끝판왕을 꼽으라면 단연 조선 시대 ‘알성급제’입니다. 요새 오디션 프로그램은 저리 가라입니다. 초시, 복시 등 총 8번의 지옥 서바이벌을 뚫고 올라온 33인이 마지막으로 임금님 앞에서 파이널 라운드, 즉 전시(殿試)를 치릅니다. 거기서 딱 1등을 찍어야 ‘장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죠. 조선시대 과거 제도는 꽤나 복잡했습니다. 칼 좀 휘두르는 무과(武科), 외국어와 의술에 능한 전문직 잡과(雜科), 그리고 뼈대 있는 집안의 자존심 문과(文科)가 있었죠. 특히 문과는 예선 격인 소과(小科)에 붙어 ‘생원’이나 ‘진사’ 타이틀을 따야 성균관 입학증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던 ‘박 초시’, ‘윤 초시’ 할 때 그 초시(初試)합격자도 전국에 700명뿐이었다니, 사실 이분들도 동네에서는 “우리 집안에 천재 났다!”며 잔치를 벌였을 ‘능력자’들이었습니다. 왕의 질문, “너는 세상에 대책이 있느냐?” 대망의 마지막 시험, 임금님이 직접 문제를 내는 책문(策文)은 요즘의 논술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스케일이 다릅니다. “나라의 위기를 어찌 구할 것인가?” 같은 심오한 질문에 응시생은 대책(對策)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글 솜씨가 좋다고 뽑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했으니 장원급제자는 그야말로 조선의 브레인이었던 셈입니다. 장원이 되면 종6품의 벼슬을 제수받고 보너스도 화끈했습니다. 임금이 하사한 꽃, 어사화를 귀 뒤에 꽂고 3일 동안 동네를 휘젓는 ‘유가행렬(遊街行列)’이 허락됐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오픈카 타고 시내 퍼레이드를 하는 격인데, 이때 장원급제자의 기분은 아마 “우주 정복도 가능하겠는데?” 싶은 ‘근자감(근거 있는 자신감)’의 정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1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세상에 반전의 묘미가 있습니다. 바로 상의 이름입니다. 요즘은 경제 논리에 따라 금상, 은상, 동상으로 줄을 세웁니다. 1등은 금(Gold)이라 비싸 보이고, 3등은 구리(Bronze)라니 왠지 좀 억울합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쓰셨던 ‘수·우·미·양·가’를 보십시오. 이 얼마나 낭만적인 ‘정신 승리’입니까? 수(秀):빼어나게 잘했다. (말해 뭐해, 최고!) 우(優):우수하다. (넉넉하게 잘했다.) 미(美):아름답다. (비록 3등이지만 네 실력은 예쁘다.) 양(良):양호하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가(可):가능하다. (옳다! 너도 할 수 있다.) 낙제나 실패의 단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꽃이고 모두가 가능성입니다. 0.1점에 벌벌 떠는 지금의 점수제보다, “너는 참 아름답고 가능성이 있구나”라고 추켜 세워주던 그 시절의 성적표가 훨씬 인간적이지 않나요? 장원급제면 어떻고 ‘가(可)’면 어떻습니까. 장원이 나라를 이끄는 머리라면, ‘수우미양가’를 골고루 갖춘 우리 모두는 나라를 지탱하는 든든한 몸통입니다. 1등만이 선(善)은 아닙니다. 오늘 내 삶에 ‘수’가 아니라 ‘미’나 ‘양’을 받았더라도, 조상님들의 지혜를 빌려 스스로에게 말해줍시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아름답고(美), 가능성이(可) 있어!“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19

대구 달서구 선사시대 역사현장을 찾아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선사시대 공원과 유물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길가 전신주에 험상궂은 원시인이 돌도끼를 들고 작업하고 있는 광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지나니 지하철 1호선 진천역 부근에는 ‘이만옹’이란 원시인이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사자처럼 누워 있다. 이곳을 지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뜬금없이 나타나는 선사시대 사람의 모습에 당황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유물들이 많이 출토돼 그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 자료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아직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고 한다. 지난 2006년 월성동 한 아파트 개발지역에서 1만3184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의 기초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5000년 대구 역사가 2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계기다. 이 거대한 선사시대 역사 자료가 달서구 지역에 있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대구 전역으로 또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 고대 역사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고, 자라나는 2세들에게는 중요한 학습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진천동 입석’은 국가지정 유산(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1997년 발견 당시 제단, 동심원, 석관묘 등이 한 자리에 있어 청동기 원시신앙 흔적을 한눈에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달서구 명예 홍보대사로 지정된 원시인 이만옹은 2018년 2월 27일 설치되었는데 총 길이 20m, 높이 6m로 그 웅장함이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선돌공원을 거쳐 ‘한샘청동공원’에 가보았다. 선사시대 집의 구조, 원시인들의 사냥 모습 구조물, 선돌, 돌 널 무덤, 선사시대 학습 안내 입간판 등이 갖춰져 있었으나 한눈에 봐도 다소 방치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아파트개발로 인해 출토된 선사시대 유물과 역사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달서구 전역에 학습장을 설치한 것은 훌륭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보존을 위해서는 유지 보수 등 개선 조치가 지속 뒤따라야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이곳을 다녀간 참관 실적을 살펴보니 이 또한 아쉬운 게 많다. 이 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대부분이고 초중고 학생들과 이 지역 학교조차 다녀간 자료가 보이지 않아 좀 더 많은 홍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공원에 설치된 유물과 구조물 등이 20년이 넘어 낡은데다 야외에 노출된 탓에 훼손된 것도 적지 않아 보수가 시급해 보였다. 대구 달서구는 대구시교육청과 연계하여 공동으로 이 귀중한 교육 자산을 더욱 다듬고 널리 활용하는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4-19

(이사람) 반세기 성실로 일군 삶

대구 서문시장과 칠성시장을 오가며 반세기 넘게 ‘주방기구’ 외길을 걸어온 이우현 대표.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초등학교 졸업 후 1974년, 어린 나이에 고향 경북 고령을 떠나 대구로 올라온 그는 자취와 친인척 집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사회 첫발인 주방기구와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연탄불 마개를 사러 들른 가게에서 사장의 권유로 일을 배우며 이 길에 들어섰다. 이후 52년, 단 한 번도 업종을 바꾸지 않고 한 우물을 팠다. 그러나 그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 거래처의 연쇄 부도로 타격을 입었고, 설상가상으로 서문시장 화재까지 겹치며 모든 것을 잃었다. 한때 하루 매출 수천만 원을 올리던 사업가는 결국 부도를 맞고 자동차에서 노숙 생활하는 신세가 됐다. 절망의 끝에서 그는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학업에 도전, 중·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한다. 늦깎이 배움은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다시 장사를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800만 원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신뢰를 무기로 다시 일어섰다. 처음 7평 점포에서 출발해 350평 규모 매장 두 곳을 운영하며 업계 선두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이 대표의 경영 철학은 단순하다. “성실과 신뢰” 그는 물건을 팔기 전에 “나를 먼저 판다”고 말한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는 자세로 고객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을 남기는 장사’라는 것이다. 거래처가 부도를 내고 도망간 상황에서도 빚을 독촉하기보다 “잔액은 받은 것으로 정리할 테니 힘들면 밥 한끼하고 차한잔 마시고 가라”며 관계를 이어갔다. 오히려 이들을 협력자로 끌어들여 함께 재기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지만, 사람은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철학은 수많은 인연을 귀인으로 바꾸는 힘이 됐다. 지금 업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온라인 유통 확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오프라인 상권이 전례 없는 불황을 맞고 있다. 그는 “손님이 크게 줄어 상인 모두가 힘든 시기”라며 철저한 품질 확인과 사후 책임으로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고 바쁜 생업 속에서도 요즘은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문학에 입문해 수필가로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4-19

봄나물의 제왕 두릅

봄이 오면 식탁 위에도 계절의 변화가 찾아온다. 많은 봄나물 중에 두릅을 빼놓고 설명을 할 수는 없다. 두릅은 4월부터 5월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우리가 먹는 두릅은 줄기의 끝에 있는 순이다. 한 가지에서 한 송이 만 수확할 수 있는 봄나물이다. 두릅은 땅 두릅과 나무 두릅이 있다. 땅 두릅은 다년생 초본 식물로 땅에서 새순이 나오고, 나무 두릅은 나무의 끝 성장점에 새순이 나온다. 두릅은 독특한 향과 맛 그리고 풍부한 영양 때문에 ‘봄나물의 제왕’이라 부른다. 두릅을 먹으며 느끼는 쌉싸래한 맛은 사포닌이다. 인삼의 대표 성분인 사포닌은 입맛을 돋우고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성분이다.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 주고 봄철 몸의 기운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또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 항암 및 항염증 작용, 항산화 작용도 하고 혈관 내 노폐물을 배설해 줌으로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에도 이롭다고 전해진다. 두릅의 독특한 향은 신경 안정과 집중력 향상, 숙면에 도움을 준다. 두릅에는 비타민 B, C, K와 엽산, 미네랄이 골고루 함유돼 있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우리가 흔히 보는 두릅은 나무 두릅이다. 두릅은 흔히 먹는 숙회 외에도 무침, 전, 튀김, 김치, 장아찌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잘 데친 두릅은 고기를 씹는 것처럼 쫄깃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쌉싸래한 맛과 특유의 향은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한다. 두릅요리는 숙회가 대표적이나 전이나 삶아 무쳐서 먹을 수도 있는데 더 오래 먹으려면 장아찌가 좋고 소금에 절이거나 데쳐서 얼려도 된다. 두릅을 보관할 때는 두릅에 물을 살짝 뿌려 신문지나 키친타월에 싸서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향을 즐기는 산채라 수확 후 빨리 요리해 먹는 것이 좋다. 두릅 숙회를 만들 때는 채취하여 가시가 있는 끝부분을 잘라내고 다듬은 다음, 소금을 조금 넣어 끓는 물에 20초 정도 데친 후에 찬물로 헹궈 물기를 짜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삶은 두릅을 상온에 오래 두면 색깔이 변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19

어머니의 텃밭에서 시작된 봄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들어서던 세 여인이 동시에 환호한다. “어머! 싹이 올라오고 있어!”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지만 작업복만큼은 제대로 챙겨 입는다. 곡괭이와 삽, 호미를 동원해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렸더니 대지가 마술을 부리듯 싹을 밀어 올린다. 마치 처음 보는 듯 그 흔한 기적 앞에서 그녀들의 가슴이 가볍게 뛴다. 김은희 씨의 친정엄마는 경북 포항 월포 인근의 집 앞 작은 텃밭을 평생 일구셨다. 사계절 내내 밭일을 놓지 않았던 흙 묻은 손을 털 듯, 지난해 11월 그렇게 삶을 내려놓으셨다. 봄이 오니 주인 잃은 텃밭에도 다시 숨이 돈다. 겨우내 굳어 있던 땅이 풀리고, 사람 손길 닿지 않은 곳에 보약 같은 봄비가 내리니 풀들이 좋다고 아우성이다. 어머니의 밭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 직접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그녀에게 오랜 지기 두 친구가 함께하자고 나선다. 서로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침묵조차 편안히 나눌 수 있는 묵은 친구들이다. 세 사람 모두 농사는 처음이다. 그래서 오히려 시작할 수 있었다. 모른다는 것이 때로는 용기가 된다. 일주일에 두 번 시간 맞추어 텃밭에 모인다. 풀을 뽑고, 흙을 뒤집고, 거름을 섞고, 고랑을 만든다. 작은 텃밭이라지만 곡괭이와 삽, 호미를 번갈아 들고 허리를 굽히다 보면 금세 숨이 찬다. 그래도 웃음이 난다. 힘든데도 재미있다. 흙이 고르게 정리되고 고랑이 생기니 ‘텃밭’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기 시작한다. 상추, 시금치, 당귀, 엄마가 쓰던 얼갈이배추 씨앗까지 뿌리고 씨감자도 심는다. 누군가는 텃밭에 들인 1년 씨앗 값만 수십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많이 거두는 것 보다 제대로 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마음을 모은다. 귀농한 젊은 부부가 텃밭 가장자리에 작은 평상 하나를 놓아준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쉬엄쉬엄 하세요” 격려도 던진다. 평상에 앉으니 가까이 월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친다. 땀에 젖은 몸을 바닷바람에 맡긴 채 나누는 소박한 새참 시간이 밭일보다 더 소중한 순간이다. 친정엄마는 힘든 밭일을 평생 하시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계절을 따라 씨를 뿌리고 거두셨다. 지금 와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챙겨주시면 무심히 받아가던 그 푸성귀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 끝에 얻어진 것인지. 그 노동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호미를 들고 흙을 다듬다 보면 “문득 엄마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좋다”는 그의 말처럼, 이곳은 단순한 밭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여전히 서툴다. 그 서툼이 서로를 웃게 하며 하루를 채운다. 텃밭은 채소만 기르는 곳이 아니다. 박경리 작가는 말년에 “미련 없다”고 말하며 텃밭에 정성을 쏟았다. 무엇을 더 가지기보다, 지금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 텃밭에서는 그 연습이 절로 된다. 그녀들의 봄은 그렇게 텃밭에서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맞춰가며 함께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고 말하는 김은희 씨. 월포 인근 작은 텃밭에서 시작된 이들의 농사는 올봄 또 하나의 작은 풍경이다. 돋아난 새싹처럼, 또 다른 삶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라원 개장···신라 정원과 AI 전시 결합한 복합문화공간

지난 3일 개장한 라원은 ‘신라의 정원’을 뜻하는 이름이다. 야외 정원과 디지털 실내 정원을 포함해 총 6만8810㎡ 규모로 조성된 복합문화정원으로, 신라 8괴를 모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실내 정원은 제1 전시관과 제2 전시관으로 나뉘어 총 8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가까운 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 ‘라원, 플라뇌르의 정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플라뇌르는 ‘산책자’ 또는 ‘열정적인 구경꾼’을 의미하며, 현대 사회의 관찰자로서 목적지 없이 걷고 경험하며 풍경을 이해하는 존재로 설명되어 있다. 프롤로그 공간에서는 찌르레기의 초대 영상이 상영된다. 전시 스토리를 담은 일러스트 영상으로, 이를 감상한 뒤 ‘하이, 에브리버디!’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벽면 터치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벽면 속 새 이미지를 터치하면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형식이다. 대형 공작새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으며, 함께 동행한 아이는 모든 새를 찾아다니며 손을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보였다. 공간 내 거울이 함께 비치되어 있어 공간이 확장되어 보이고, 사진 촬영 시 이색적인 재미도 더한다. 다음 공간 ‘소리 없는 노랫소리’에서는 바닥에 표시된 위치에 서면 꽃이 피어나고 해당 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토치진저, 무쎌라, 캐리안드라, 아칸서스 에브락테리아투스, 알칸타레아 임페리얼리스 등 익숙하지 않은 식물들이 흥미를 더한다. 이어지는 ‘숨, 쉬는 숲’은 풍선으로 만들어진 나무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빛을 머금은 대형 풍선 나무들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1 전시관의 마지막 공간 ‘불빛에 이끌려’에서는 오두막에 들어선 듯한 느낌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가 공간을 채운다. 자연 풍경과 춤추는 악기 등 변화하는 이미지들이 이어지며 색다른 공간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제2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공간 또한 유리창에 색을 입혀 또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다. 무지개빛 길을 지나듯 이동하면 제2 전시관에 이르게 된다. 이 구간에는 유아용 실내 카페가 마련돼 있으며, 인원 제한이 있어 이용 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또한 제2 전시관 안내데스크에서는 돗자리와 바구니가 포함된 피크닉 세트를 무료로 대여하고 있어 날씨가 좋을 경우 야외 정원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제2 전시관은 AI 아트 특별관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나만의 식물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으며, 별도의 그림 실력이 없어도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완성된 이미지는 QR코드를 통해 휴대폰에 저장하거나 전시장 내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미지의 화원’은 국내 최초 360도 생성형 AI로 제작된 실감형 콘텐츠 공간이다. 약 7분간 상영되는 영상은 높은 화질로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며, 대형 고래와 바다거북 장면은 어린 아이들의 인기를 얻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매표는 오후 6시에 마감된다. 입장료는 성인 1만6000원, 청소년 및 군인 1만3000원, 어린이(7~12세) 8000원이다. 다만 4월 한 달간은 개장 기념으로 지역민과 동일하게 7000원에 입장할 수 있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청송의 맛과 멋을 담다, 전통 고추장 만들기 체험기

지난 4월 8일, 청송군 부남면 남관문화센터에서 열린 전통 고추장 만들기 수업에 참여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여러 번 실패했던 찹쌀고추장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청송문화관광재단이 기획한 ‘2026 구석구석 문화가 있는 날’ 4월 행사로, ‘전통음식-청송의 맛과 멋을 잇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전통 발효음식의 가치와 지역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수업은 한국 맥꾸룸 성명례 명인과 따님인 권혜나 전수자가 함께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명인의 설명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했다. 명인은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음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전해주고자 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 진심이 전해져 수업 분위기는 더욱 진지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참가자들은 명인의 설명에 따라 전통 방식으로 고추장 2kg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된 찹쌀 발효액을 사용해 메줏가루를 넣고, 조청과 고춧가루를 더해가며 고추장을 완성했다. 고추장을 청송 옹기에 담고, 청송 한지를 이용해 포장하는 과정까지 이어졌는데,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넘어 지역 전통문화를 온전히 체험한 좋은 기회였다. 고추장을 활용한 요리 체험도 함께 진행되었다. 고추장닭불고기와 고추장찌개를 회차별로 나뉘어 운영했는데, 우리가 참여한 날에는 고추장찌개를 만들었다. 제한된 시간이라 육수를 내지 않고 맥꾸룸의 맥간장과 어간장을 사용했다. 간편하게 고추장과 간장, 어간장을 이용한 고추장찌개 맛도 신선했다. 참가자들의 구성도 다양했다. 젊은 새댁부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주부, 그리고 남성 참가자까지 여러 연령층이 함께했다. 평소 요리에 익숙한 주부들도 명인의 설명 앞에서는 초심자의 자세로 진지하게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고추장 담그기의 핵심이 ‘염도’라는 사실이었다. 찹쌀 발효액의 염도를 18%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실패의 원인이라 생각했던 검은 물이 사실은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간장이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소중한 배움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수업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찹쌀 발효액은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는데, 발효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들을 수 있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수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각자 만든 2kg의 고추장을 용기에 담아 가져가고, 함께 만든 고추장찌개도 준비해온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모두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이 전통 발효음식인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뿐만 아니라, 청송옹기와 청송한지의 활용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군민들이 청송의 가치를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통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깊은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체험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청송문화관광재단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노당익장(老當益壯) 문인을 찾아서> 금태남 수필가

금태남 수필가는 팔순을 넘긴 노익장으로.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과 활발한 사회 참여를 이어가며 ‘노당익장’의 표본으로 꼽힌다. 금 수필가는 대구 수성구청 총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수성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행정과 의정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는 수성구 행정동우회를 수년간 이끌어오면서 지역 환경개선에도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그는 또 선친의 업적을 기리는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 관장을 맡아 지역 문화예술 계승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자유대한민국 희망연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 공헌상을 받았고, 대구시 행복진흥원에서 주관한 ‘사랑의 편지 쓰기’ 공모전에서 ‘팔순에 쓴 어머님 전상서’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 금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 근대미술의 중요한 인물인 금경연 화백의 예술혼이 깃든 공간이다. 금 화백은 서양미술 도입기의 선구자로, 일본이나 서구 유학없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 1회와 입선 5회를 기록한 보기 드문 작가다. 그는 하양·안동·경주 등지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이후 고향인 영양 수비초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하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금 화백의 작품 세계는 탄탄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인상파의 빛의 표현을 거쳐 후기 인상파, 야수파, 표현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현재 남아 있는 도록과 유작들은 그의 예술적 궤적과 잠재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는 젊은 시절 월남전에 참전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경험도 겪었다. 그는 ‘팔순기념 출판기념회’ 인사말에서 부친을 회상하며 “서양화를 우리나라에 알리는 데 앞장섰던 천재 화가이자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깊이 존경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가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한 채 33세에 요절한 것이 통한스럽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예술적 DNA가 후손들에게 이어져 손자·손녀 가운데 다수가 정규 미술대학을 졸업했다”며 “저승에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경연 화백의 예술적 유산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차남인 금태남 수필가의 장녀 금영숙씨는 프랑스 국립대학에서 예술조형학 박사학위를 받고 화단에서 활동 중이며, 외손녀 박진주씨 역시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수학했다. 또한 금 화백의 장녀 금계영씨는 시인으로 등단해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의 두 딸 이원순·이원희씨도 미술을 전공해 가문의 예술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장남 고(故) 금도춘씨의 손자 금재성씨 또한 국민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증조부의 뒤를 잇고 있다. 한 가문의 예술적 유산이 세대를 넘어 계승되고 있는 가운데, 금경연 화백의 정신은 오늘도 후손들의 창작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의 왕성한 활동 역시 이러한 문화적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증거다. 앞으로 이들 가문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의 인물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14

겹벚꽃이 활짝 핀 월곡역사공원에서 호국정신을 배운다

대구시 상인동에 있는 월곡역사공원은 역사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시민의 안식처이자 월곡역사박물관과 낙동서원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도시철도 월촌역에 내려서 고층아파트 숲을 따라 걸어 월곡역사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마침 만개한 겹벚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활짝 핀 겹벚꽃 나무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곳은 4월 중순이면 겹벚꽃이 만개하는 대구지역 겹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연못 둑에 두 줄로 핀 겹벚꽃과 길옆, 낙동서원 앞에 흐드러지게 핀 겹벚꽃은 화사함을 더해 이곳을 찾은 많은 시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월곡역사박물관은 단양 우씨 월촌 종중에서 2002년 5월에 개관한 사립 박물관이다. 외관부터 전통의 멋을 물씬 풍긴다. 이곳의 핵심은 단연 보물 제1334호로 지정된 ‘화원 우배선 의병장 관련 자료’다. 우배선 의병장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1등 선무원종공신에 봉해진 인물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 보고서인 ‘성주화원의병군공책’은 당시 의병 활동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농기구, 생활 도구, 고문서 등 8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낙동서원은 1708년(숙종 34년) ‘덕동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1965년 후손들에 의해 지금의 낙동서원으로 재건되었다. 이곳에서는 우배선 장군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의 대학자 우현보, 우탁선생 등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매년 향사를 통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주변에는 월곡 우배선장군상, 덕양재, 열락당, 우종식 공적비, 의마비, 하늘 높이 솟은 민족 정기탑이 있다. 박물관 맞은편 장지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공원 내 조성된 울창한 대나무 숲길은 도심 속에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곳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우리 고장을 지켰던 조상들의 호국 정신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말했다. 도심 속에서 임진왜란 의병의 호국 정신을 되새기고,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 하겠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14

봉사하며 공부하는 수성시니어클럽

대구수성시니어클럽(관장 전태수) 소속 일하는노인회자원봉사단(회장 겸 단장 신현구) 회원 68명은 지난 10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수성못 상화동산 일대에서 문화유산을 배우고 자연보호 활동을 병행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 자원봉사단은 총 136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평소 월 1회 50~100명이 참여한다. 이날은 68명이 함께했다. 이날 행사는 신현구 회장의 인사로 시작해 수성못에 대한 개요 설명과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감상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수성못(약 2㎞)을 한 바퀴 돌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이어 단군국조성전과 수성못을 건립한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 상동 지석묘를 둘러본 뒤 수성그림책도서관에 다시 모여 일정을 마무리했다. 수성못 관광안내소 모퉁이에서 서쪽으로 약 10여 m 지점에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긴 시비와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상화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 작품을 발표해 민족혼을 일깨운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대구시 수성구는 그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과 문학적 가치를 기리기 위해 2017년 9월 23일 이곳에 시비와 흉상을 건립했다. 단군국조성전 내 천진전에 대해서는 황승민(수성시니어클럽) 복지사가 설명을 맡았다. 현재의 천진전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달성공원 내 일본 신사 터에 있던 것을 1966년 대구시 수성구 용학로 116-34로 옮겨와 단군 영정을 모시며 ‘천진전’이라 이름 붙였다. 수성못 남쪽에 위치한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에 대해서는 서예가 신동호(78) 씨가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개척농민으로 대구에 온 미즈사키 린타로는 1924년 9월 수성못 공사에 착수해 1927년 4월 24일 완공했다. 이후 1939년 12월까지 수성못의 수량을 관리하다 임종을 앞두고 “장례는 조선의 전통 방식으로 치르고, 수성못이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안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회원들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봉사까지 할 수 있어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정모(75) 씨는 “쓰레기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면 줍기 쉬운데, 구석에 숨겨 놓은 경우가 많아 더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