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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건강하고 부드러운 ‘생각날 때 생강 라떼’

한 달 넘게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병원을 다녀와 2주 넘게 약을 먹어도 그때뿐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기침이 나면 만나는 사람마다 꿀이 좋으니 한 숟가락씩 입에 물어라, 유자차를 끓여라, 아니다 귤피청이 더 좋다더라, 오래전부터 감기에 걸렸을 때 할머니, 어머니가 약 대신 끓여주는 차 종류는 다 권했다. 오래된 기침이라 이것저것 다 해보기로 했다. 카페에 가도 커피 대신 생강차를 마셨다. 그날 밤은 기침이 덜했다. 겨울이면 생강 라떼가 계절 메뉴로 나오는 맛집이 생각났다. 경주 불국사 근처 후식 맛집인 누마루이다. 입구부터 한옥이라 전통차를 파는 곳일 거라는 생각은 문을 열자마자 깨진다. 높은 층고의 실내는 주인장의 감각이 남달라 보인다. 누마루를 처음 소개한 지인은 블루베리 빙수가 최고라고 알려주었다. 빙수는 4월부터 10월까지 하는 메뉴다. 신선한 블루베리를 담뿍 올린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빙수를 처음 보고는 ‘이게 찐 블루베리 빙수라고 하는 거지’ 하며 함께 간 친구들이 1인 1 빙수 할 만큼의 비주얼이었다. 생블루베리를 산처럼 소복하게 쌓고 사이사이 꿀을 뿌려서 건강한 맛이라 더 맛있게 먹었다. 체리 빙수도 체리가 그득하다. 단맛의 빙수와 잘 어울리는 이 집 커피 맛도 일품이다. 차가운 빙수 한 숟가락 먹고 뜨거운 커피로 리셋하다 보면 한 그릇 뚝딱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빙수는 주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목감기에 좋은 생강 라떼가 우리 몸을 따뜻하게 데운다. 메뉴판에 이름도 ‘생각날때 생강라떼’다. 생강의 매운맛을 그대로 섭취하면 자극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위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이럴 때는 라떼가 제격이다. 우유의 부드러움이 더해져 겨울 음료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면역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라떼 잔 둘레에 계피·설탕을 발라서 한 입 할 때마다 입안에 풍미가 번져 그 맛이 배가 된다. 기침이 잦아든다. 생강 자체가 감기에 효능이 있어서 감기에 걸려 입맛이 없을 때 마시면 좋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자꾸만 오한이 들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생강차를 마시니 몸이 후끈해졌다. 평균 체온이 1도 오르면 면역력이 약 60% 활성화된다고 하니 체온을 높여서 감기에 걸릴 확률을 떨어뜨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생강 맛을 좋아한다면 차를 만들기 전에 생강청을 빵에 발라 먹거나 빵과 생강차를 함께 곁들여 먹어도 은근히 먹을만하다. 실제로 시중의 몇몇 제품은 상품 설명서에 빵에 발라먹어도 맛있다고 썼다. 누마루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위험해 노키즈 공간이다. 지금은 마루를 없애고 특색있는 의자와 탁자로 변신했지만 처음 누마루의 2층 공간은 진짜 마루였다. 바닥에 불이 들어와 뜨듯한 아랫목 같아서 손님들에게 사랑방을 추억하게 했다. 사방에 창이 있어서 멀리 호수 뷰와 논의 벼가 연두에서 초록으로 또 황금빛 들판으로 바뀌는 사계절의 모습을 담아낸다. 또 다른 창으로는 기와가 바로 곁에 있어서 한옥의 매력을 최대로 느낄 수 있다. 누마루의 또 다른 매력은 화장실이다. 묵직한 나무문에 달린 동그란 손잡이는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이 생각난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면대에 뽀얀 도자기로 된 꽃병에 시절 따라 생화를 꽂아 놓았다. 오늘은 보라색 스타티스가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가도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주인장의 센스가 메뉴판에 적히지 않은 또 하나의 디저트이다. 부드러운 생강 라떼가 기침감기에 특효약인지 오랜만에 깨지 않고 푹 잤다. 주인장의 미소만큼 주차장도 넓어 편하다. 경북 경주시 보불로 267 누마루, (054)745-3538. /김순희 시민기자

2026-02-02

입춘(立春), 봄을 맞이할 결심

입춘(立春)이다. 열흘 넘게 날씨가 추웠던 탓에 봄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온몸으로 따스함이 전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반가운 입춘이다. 주변의 지인들의 ‘날씨가 추우니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입춘을 기점으로 날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 ‘한편으로 다시 새로운 절기가 시작되니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라고 하는 말에서도 입춘을 기다리는 마음을 읽는다. 입춘은 일 년을 24절기로 나눈 그 첫 번째 절기다. 절기로 다시 새해를 맞이하는 셈이다. 봄이 선다는 입춘을 시작으로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의 봄과 관련된 절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도시에 살다 보니 지금까지 계절이 오고 가는 것에 둔감해졌고 이런 절기(節氣)에도 거의 무관심하게 지냈다. 어렸을 때, 농사 달력에 표시되었던 것을 의미도 모르면서 어렴풋이 본 것과 중학교 한자 시간에 선생님이 잠깐 설명해 주신 희미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절기에 다시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은 최근이다. 즐겨듣는 라디오 북카페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라는 책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작가는 절기(節氣)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사람들이 이 계절에, 절기에 딱 맞는 자신만의 연례행사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일 년 치의 계획을 한꺼번에 세우는 것보다 절기에 따라 나누면 실천하기도 어렵지 않고 그만큼의 기쁨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서 계절마다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난가을에 책을 잠깐 책을 펼쳤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책을 펼쳐보았다. 나만의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입춘은 봄이 일어선다는 첫 번째 절기이다. 입춘(立春)은 항상 설립(立)자를 쓰는데 기억하기로는 그 의미를 봄에 들어선다는 들입(入) 자로 기억되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봄이 일어선다는 뜻이다. 겨울 동안 멈췄던 기운이 다시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걸 조금 더 강조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지 추웠던 날씨도 조금 잠잠해진 것 같다. 입춘에는 입춘첩(立春帖)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걸 만들어 보겠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일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입춘이 되면 입춘첩을 직접 붓으로 써서 큰 방 입구에다 붙여 놓으셨다. 그 기억에선지 봄 맞을 결심으로 입춘첩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아이들 책상 서랍에 흩어져 있는 종이들 사이로 한지를 찾아 붓펜으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한자를 적었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다‘는 뜻이다. 글자를 적으며 무엇보다도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빌었고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입춘첩에 담았다. 현관에 붙이고 보니 벌써 봄기운과 좋은 일이 집안에 들어온 것 같다. 입춘에는 챙겨 먹는 음식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때 먹는 음식이 오신채인데 파, 마늘, 부추, 달래, 미나리를 말한다. 이때쯤 나오는 봄나물이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녁에 달래 넣은 된장찌개라도 끓여야 할까보다. 입춘이어도 날씨는 아직 찬 기운이 가득하니 마음에서 먼저 봄을 맞이할 결심이다. 그리고 올해 입춘 시간은 2월 4일 오전 5시 2분이라고 하니 참고하시길. /허명화 시민기자

2026-02-02

추억의 공중전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안동 원도심을 거닐다 뜻밖의 풍경과 마주했다. 한때는 누구나 이용했지만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한 것이다.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며 걷느라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뿐, 공중전화 부스는 여전히 거리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안동역전지구대 앞과 안동모디684 건너편, 삼성생명 앞까지. 구안동역 인근의 짧은 구간에서만 세 개의 공중전화 부스를 마주쳤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밝힌 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에 따르면 2025년 11월 기준 휴대전화 가입 건수는 5765만 건에 달한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사실상 거의 100% 수준이다. 휴대전화는 생활필수품이 되었고, 연락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해졌다. 길거리에서 공중전화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전을 꺼내 들거나 전화카드를 넣고, 줄어드는 통화 시간을 바라보며 초조해하던 모습도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럼에도 공중전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국 곳곳, 특히 지하철역이나 터미널, 관광지와 같은 공공장소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에는 낡은 이미지를 벗고 깔끔하게 정비된 모습으로 시민들과 다시 마주하고 있다. 공중전화가 유지되는 이유는 단순히 추억 때문이 아니다. 휴대전화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나 경제적 부담으로 개인 휴대전화를 갖기 어려운 이들에게 공중전화는 여전히 필요한 공공시설이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기기를 분실했을 때,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마지막 통로가 되기도 한다. 통신 환경이 발달한 시대일수록, 이런 예외의 순간을 대비한 공공성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공중전화 부스에 새로운 역할도 부여하고 있다. 긴급 호출 기능을 강화하거나, 위급할 때 구조 요청이 가능한 안심부스로 전환되는 사례도 있다. 와이파이나 휴대전화 충전 기능을 갖춘 부스도 등장했다. 공중전화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무는 시설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맞춰 모습을 바꾸며 살아남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공중전화가 지닌 가장 큰 의미는 기능을 넘어선 감정에 있다. 동전을 하나씩 넣으며 통화 시간을 아껴 쓰던 기억, 부스 안에서 다정하게 나누던 통화,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고 남겨둔 잔액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있다. 짧은 통화에도 마음을 다해 말을 고르던 그 시절의 풍경은, 빠르고 편리한 지금의 통신 방식과는 또 다른 낭만을 품고 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모든 것이 손안의 화면으로 해결되는 시대에도, 공중전화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더 이상 주인공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묵묵히 자리를 내어주는 조연처럼, 많은 이들의 소소한 추억과 도시의 시간을 품고서 말이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6-02-02

한국각자협회 제15회 각자(刻字) 대전 · 초대작가전 열려

사단법인 한국각자협회(이사장 박영달)는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제15회 각자대전 전시회 및 초대작가전을 개최했다. 올해로 15회를 맞는 각자대전 전시회에는 모두 416점의 작품이 접수돼 19명의 작가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대상에는 권종순씨의 ‘저수량(褚遂良)의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가 차지했다. 또 초대 작가전에는 54명의 초대작가와 25명의 추천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초대작가 출품작 중 김영기(경북), 권희경(경기), 조영숙(대구) 작가의 작품이 초대 작가상을 받았다. 김영란 심사위원장은 “성실한 준비 과정의 성과가 잘 드러난 작품이 많았으며 특히 대상 작품은 중국 당나라 초기의 명필 저수량의 대표적인 해서(楷書)명문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원문 서체의 필의와 구조미를 충실하고 안정감 있게 표현해 전통서각의 정수를 잘 보여주었다” 고 평가했다. 이날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대상 1명(권종순), 최우수상 2명(변태석,허수자), 우수상 4명(박승환, 안나겸, 채영철, 한민식), 삼각상 3명(김옥경·신종호·한영운),장려상 5명(박돈헌, 배재호, 윤종우, 이학렬, 황보웅), 각자상 4명(김병근·김용연·박명애·윤을영)이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2-02

대경시민언론위, 지역언론 환경개선에 힘 보태기로

대경시민언론위원회가 2026년 새 집행부를 구성하고, 지역 언론 환경 개선과 시민 언론 주권 수호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대경시민언론위원회(위원장 방종현)는 지난 28일 대구 중구 삼덕동 진석타워에서 ‘2026년 정기총회 및 위원장 취임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문종규 (사)대경언론인회 회장, 이수만 (사)대경언론인회 사무총장, 윤석준 대구유림회 회장, 안윤하 대구문인협회 회장, 한대곤 전 대구문화예술대학 학장, 김성문 가야문화연구소 이사장, 리홍재 서예가 등 지역 주요 인사와 회원 7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방종현 신임 위원장은 “지역 언론 살리기가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길”이라며 취임사를 통해 밝히고 “시민의 시각에서 감시 기능을 대폭 강화해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편향된 옹호가 아닌, 정의와 공공성을 기준으로 따뜻한 격려와 날카로운 비판을 병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방 위원장은 수도권 중심의 미디어 구조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권력과 자본, 여론 형성 기능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지역의 목소리가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지역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지역 언론을 지켜내는 것이 곧 지역 민주주의를 사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총회에서 위원들은 중앙 언론의 독과점 현상을 견제하고, 지방 언론의 기능 회복을 위한 범시민운동을 단계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향후 위원회는 △기사 모니터링 △언론 윤리 토론회 △시민 기자 양성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 참여형 언론 감시 기구’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별히 이번 총회에서는 행정 효율성 제고와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구·경북 통합’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채택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대경시민언론위원회는 (사)대구·경북언론인회의 ‘언론 아카데미’ 수료생들을 주축으로 설립됐으며, 현재 7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이날 확정된 새 집행부는 다음과 같다. 수석부위원장 구자술, 부위원장 설준원·배이희, 감사 김종선 김석성, 사무국장 박성근, 재무국장 김윤숙, 편집국장 최종식 /김윤숙 시민기자

2026-02-01

“시는 절제된 표현속에 큰 울림있어”

지난 29일 저녁. 정호승문학관(대구시 수성구 들안로 403-1)은 시와 철학이 어우러진 향기로운 시간으로 물들었다. 이날 열린 ‘손수여 문학박사 초청 토크쇼’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인이 걸어온 길과 그의 시 세계가 품은 깊은 사유를 함께 나누었다. 내빈으로 죽순문학회장 문성희 시인, 영남문학예술인협회이사장 장사현 평론가, 도동문학회 김용주 회장, 전 예술대학장 한대곤씨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재능낭송회 정지홍 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손 시인의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언어가 청중의 마음을 오랫동안 울렸다. 손수여 시인은 시를 “짧고 쉽게, 그러나 삶의 결을 고운 언어로 직조하는 예술”로 정의한다. 그는 “시의 본질은 압축과 함축에 있으며, 절제된 표현 속에 가장 큰 울림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시론은 최근 복잡한 언어 구조나 형이상학적 난해함에 치우친 현대 시 흐름에 대한 반성과도 맞닿아 있다. 손 시인은 “시란 꽈배기처럼 꼬인 사유의 장식이 아니라, 맑은 결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작품들에는 삶을 향한 겸허함과 존재에 대한 성찰이 짙게 배어 있다. 시인은 문학을 “삶의 소산이며 투영”이라고 정의하며, 인간의 고독과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 그가 말하듯 “삶은 사람의 합성어이며, 생(生)은 외줄 위의 소(牛)가 선 형상”이다. 이 철학은 그가 언어를 다루는 태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위태롭되 포기하지 않고, 아프되 버리지 않는 인간의 존엄이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정조다. 대표작 ‘암각화 2 – 고래의 항변’은 이러한 시인의 철학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오래된 암각화 속 고래의 형상을 통해 그는 인간의 탐욕이 훼손한 자연의 목소리를 전한다. “고래가 인간을 향해 절규한다”는 역설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흔들며, 생명 전체에 대한 연민과 생태적 윤리의식을 일깨운다. 손 시인에게 시란 언어의 미학을 넘어, 존재를 향한 도덕적 응시이자 실천의 한 방식이다. 또한 ‘아내 같은 아, 내 같은 시’에서는 시와 자신의 관계를 부부의 삶에 빗대어 그려낸다. 그는 시를 일상의 반려자이자 자신을 비추는 또 다른 자아로 바라보며, “남은 빈칸을 채워가는 주체”로서 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언어의 점 하나, 쉼표 하나조차 생명처럼 다루는 그의 태도는 시를 통해 삶을 완성해가는 시인의 철학적 자세를 잘 보여준다. 이번 정호승문학관 초청 토크쇼는, 시를 삶의 본질로 삼아온 손수여 시인의 내적 여정을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그의 시는 장식적 수사나 감정의 과시 대신, 절제된 언어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하게 한다. 짧지만 깊은 시, 쉬우나 사유가 깃든 언어, 그것이 손수여 시학의 핵심이다. 오늘날 속도와 소비의 시대 속에서, 그의 시는 여전히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은 얼마나 고요하게 빛나고 있는가.” 그 물음이야말로 손수여 시인이 시를 통해 우리에게 남기고자 한 존재의 철학적 울림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2-01

국제PEN 대구위원회, 제26차 정기총회 및 신년교례회 개최

국제PEN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회장 정삼일·이하 대구PEN)가 2026년 새해를 맞아 지역 문학의 도약을 다짐하는 소통의 장을 열었다. 대구PEN은 지난 29일 대구 남구 명덕역 인근 물베기식당에서 ‘2026년 신년교례회 및 제26차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현장에는 장호병, 도광의, 권대자 시인 등 대구 문단을 이끌어온 원로 문인들과 활동 중인 중견 작가 6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정삼일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신 회원 한 분 한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2026년은 대구PEN이 내실을 다져 한 단계 더 도약하고, 문학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회원 간의 유대가 더욱 깊어지는 뜻깊은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도광의 자문위원은 축사를 통해 지역 문학의 정체성 확립과 문인들의 역할을 당부하며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공식 행사 이후 진행된 오찬과 친교 시간에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이어졌다. 원로 문인들은 후배 작가들의 손을 잡으며 창작 활동을 격려했고, 회원들은 새해 덕담과 함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문학적 영감을 공유했다. 특히 2026년도 사업 계획안이 만장일치로 승인될 때는 회원들의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오며, 올 한 해 펼쳐질 대구PEN의 활동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 회장의 주관으로 확정된 2026년 사업 계획에 따라 대구지역위원회는 앞으로 지역민과 소통하는 문학 행사와 국제 교류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2-01

(시민기자 단상) 위자상성(爲者常成), 행자상지(行者常之)

안자는 춘추시대 제나라 상대부로 영공, 장공, 경공까지 세 왕을 모신 탁월한 정치가다. 어느 날 양구거가 “저는 죽을 때까지 하여도 선생에게 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위자상성(爲者常成), 행자상지(行者常之)다.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뜻을 이루기 마련이고 걷는 사람은 끝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말로 꾸준히 전진하면 결국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이다. 다사다난했던 을사년을 뒤로 하고 대망의 병오년이 밝았다. 국제정세가 어렵고 국내정세가 국제정세보다 더 혼란스럽다. 국회나 정부가 야당과 협치없이 다수결의 횡포를 저지르며 무소불위의 총칼을 휘두르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새해에는 여야가 대화를 통해 국회를 운영하고 삼권분립이 잘 지켜지길 소망한다. 서로 과거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자신은 어땠는지 뒤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반성 없는 사람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개인이나 집단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지구는 돈다.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과거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상황이 다른 두 나라의 관계지만 서로 회담하고 노력하면 각자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다며 안자의 ‘위자상성, 행자상지’를 언급한 것을 상기해 보면 좋겠다. 오늘날 우리 정치의 현실을 냉정하게 한번 들여다보자. 나라 안에서 여야가 국제사회 미중보다 더 불통이라면 과연 올바른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말로만 민주주의 타령이고 실제로는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다. 여야 협치 없는 정치가 어찌 민주주의인가. 십 수 년을 암과 투병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는, 올해 한 해 덕담을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자.’라고 정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따뜻한 마음, 밝은 마음, 넓은 마음, 성실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자고 한다.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더 넓고 순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자고 주장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보이는 행동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의 행동거지가 국민에게 본을 보이지 못하고 심한 욕설과 과격한 행동은 자라나는 2세들에게 민망하기 짝이 없다. 국회를 참관하러 온 어린 학생들은 국회의원들의 몰상식한 행동들을 보고 무엇을 배울까. 국민들은 진심으로 바란다. 병오년 새해에는 적토마 정신으로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 국민 모두가 이기적인 행동에서 벗어나 애국하는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최선을 다해 ‘위자상성(爲者常成), 행자상지(行者常之)’하길 바란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2-01

춤추는 지휘자 백윤학에게 반하다

지난 24일,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서울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브리 & 디즈니’ 콘서트를 관람했다. 이날 공연은 영화 음악을 넘어,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하나의 축제였다. 공연장을 찾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본 영상 한 편이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기보다 음악과 함께 춤을 추듯 몸을 맡기는 지휘자의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주인공은 ‘춤추는 지휘자’로 알려진 백윤학 지휘자였다. 화면 너머로도 전해지던 에너지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공연장으로 이어졌다. 공연 당일, 콘서트하우스 로비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디즈니 영화 음악 공연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 관객, 특히 아이들과 함께한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공연 전 사진 촬영 금지 안내가 반복되었고, 이는 오히려 무대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백윤학 지휘자의 존재감은 단숨에 무대를 장악했다. 그는 온몸으로 리듬을 타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그 지휘는 음악을 ‘듣는 행위’에서 ‘보는 경험’으로 확장시켰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흐르는 동안 관객석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끝과 몸짓을 따라 움직였다. 클래식이나 영화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무대였다. 곡이 끝날 때마다 무대 뒤로 사라지는 연출은 공연의 긴장을 조율하는 장치처럼 작용했다. 본격적인 연주가 이어질수록 이러한 퍼포먼스는 음악적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솔로가 특히 인상 깊었다. 묵직한 첼로의 선율은 가슴을 천천히 파고들며 깊은 울림을 남겼고, 그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대 뒤편에서 1인 다역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연주를 이어가던 연주자들의 모습 또한 눈길을 끌었다. 실로폰을 현란하게 두드리며 이어진 ‘이웃집 토토로’의 선율은 음악이 가진 순수한 즐거움을 떠올리게 했다. 공연의 정점은 앙코르 무대에서 찾아왔다. 디즈니의 수많은 공주를 노래해 왔다는 이희주 뮤지컬 배우의 목소리는 맑고 단단했다. ‘디즈니 12공주 메들리’가 시작되자, 공연장은 어느새 동화 속의 성처럼 느껴졌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각자의 기억 속 장면을 하나씩 꺼내어 가슴에 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곡 ‘레잇고’를 부를 때는 관객과 배우와 오케스트라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지휘자의 관객에 대한 배려였다. 본 공연 동안 촬영이 금지된 대신, 2부 종료 후 사진과 영상 촬영을 허용하며 풍성한 앙코르 무대를 선사했다. ‘이웃집 토토로’의 ‘산책’, 히사이시 조의 ‘Summer’, 그리고 이어진 이희주 배우의 디즈니 공주 메들리는 공연의 여운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백윤학 지휘자는 관객들이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여유 있는 제스처와 포즈로 무대를 함께 즐겼고,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서울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름 그대로 ‘페스타(Festa)’, 즉 축제의 의미를 무대 위에 구현해냈다. 엄숙함 대신 즐거움을, 거리감 대신 소통을 선택한 공연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연히 찾은 연주회였지만, 음악이 남긴 감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날의 공연은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고, 음악이 일상이 되는 순간을 관객에게 선물했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1-29

엄동설한에 피어난 할미꽃 한 송이

겨울을 앞둔 11월 중순. 때아닌 할미꽃 한 송이가 뜬금없이 꽃봉오리를 안고 고개를 내민다. 지금 올라와서 어쩌려는 걸까. 나고 자라고 거두고 감추는 자연의 순리를 무시하고 불쑥 모습 드러낸 이 작은 생명을 두고 그저 지켜보는 거 말고는 달리 해줄 게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 혹독한 겨울을 어찌 버티려는지 걱정스러우면서도 겁도 없이 올라온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다. 마당 양지바른 곳에 할미꽃이 터를 잡은 지 벌써 18년째다. 한 송이로 시작했던 것이 해마다 봄이면 식구를 늘리더니 이제는 뿌리를 길게 뻗어 제법 군락을 이룬다. 얼어붙은 대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3월이면 봄의 전령사가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봉오리 밀어 올리는 그 자태는 참으로 곱고 우아하다. 꽃샘추위가 매섭게 기승을 부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물꼬물 피어나는 모습은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매서운 꽃샘추위를 견딘다 해도 겨울 한복판의 강추위에 어찌 비하랴. 이 작은 마당에서 이런 ‘반칙’은 처음이다. 겨우내 포근한 대지의 품에서 힘을 길러 봄볕이 따스해질 즈음 양껏 기지개를 켜며 올라오는 것이 순리다. 그 질서 속에서 준비한 꽃망울을 품고 3월 초 세상 밖으로 나오면 벌과 나비를 만나 수정을 하고 4월이 채 오기도 전에 머리를 풀어 헤쳤을 터다. 그러나 계절을 착각한 이 친구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씨앗을 품지 못한다. 벌도 나비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끝내 붉은 잎조차 떨구지 못한 채 말라가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왜 순리를 거슬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인간의 욕심으로 달궈진 지구온난화 탓일 수도 있다. 편리함과 성장을 위해 자연의 순리를 무시한 결과는 기후 위기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점점 잦아지는 이상기온과 계절의 붕괴는 한 송이 꽃이 제 계절을 잃어 온전한 삶을 힘들게 한다. 순리를 벗어난 대가의 가혹함을 이 작은 꽃이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는 자연을 넘어 인간사회로 이어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는 쥐를 상대로 한 흥미로운 실험이 등장한다. 쥐들 사이에서도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은 쪽은 지배를 당하는 쥐가 아니라 지배를 하는 쥐였다.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끊임없는 긴장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서를 거스른 자가 가장 먼저 무너진다는 사실을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순간의 이익을 좇아 그릇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 무게는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순리를 저버린다는 것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계절을 인식하지 못한 할미꽃도, 남을 속이는 그릇된 삶도, 힘으로 다른 존재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존재도 상황은 다르지만 결말은 닮아있다. 모두 제 자리를 벗어났기에 온전하기가 힘들다. 겨울의 시린 햇살조차 버거운 듯, 꼿꼿이 서서 말라가는 할미꽃을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본다. 이 작은 어긋남이 불러 온 혹독한 시간을 자연은 말없이 보여준다. 윤리를 지키고 자연과 더불어 제 자리를 지키는 삶이야말로 가장 어렵고도 가장 정직한 삶의 방식임을 이 작은 꽃이 조용히 일러주는 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1-29

서구문화회관 ‘리마인드 명화산책’, 지역민 대상 ‘위대한 개츠비’ 상영

1월의 마지막 월요일인 26일,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상영됐다. 서구문화회관은 매달 마지막 월요일마다 ‘리마인드 명화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명작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2013년 개봉한 작품으로, 대한민국에서만 누적 관객 수 145만 명을 기록한 흥행작이다. 기록적인 관객 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을 만큼 깊은 여운과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개츠비는 마치 환상의 인물처럼 베일에 싸여 등장한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끼며, 과연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게 된다. 그러던 중 호화로운 파티 속에서 어딘가 고독함이 묻어나는 개츠비가 모습을 드러내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개츠비가 만든 화려한 저택과 파티는 모두 과거의 연인 데이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다시 만난 데이지와 함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그녀에게 집착한다.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해 준비된 것이며, 완벽해진 자신을 데이지가 인정해주고 예전처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개츠비의 사랑은 ‘데이지를 향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데이지를 통해 완성하려 했던 ‘자신의 이상’이었을까. 또한 그는 왜 그토록 과거에 집착했을까. 개츠비는 결핍된 욕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채우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되찾은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한 집착과 더 깊은 관계를 맺으려는 욕망은 결국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데이지다. 데이지는 초반에는 개츠비의 계획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지만, 그의 집착과 폭력적인 성향 앞에서 침묵을 선택한다. 선택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한 채,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마지막까지 ‘고민’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데이지의 모습은 침묵 또한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개츠비가 오랜 시간 갈망해 온 데이지는 결국 그를 떠난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데이지는 그를 돌아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개츠비는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고, 그의 파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정작 그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데이지의 떠남으로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이지만, 사실 그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던 셈이다.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인물을 ‘위대한 개츠비’라 부르는 제목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서구문화회관을 통해 만난 ‘위대한 개츠비’는 수많은 질문과 생각을 남기며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다. 올해 서구문화회관에서는 ‘인턴’, ‘인터스텔라’, ‘트루먼 쇼’, ‘러브레터’ 등 다양한 명작들의 상영을 예고하고 있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매달 마지막 월요일 오후 7시에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소중한 사람과 월말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보기를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1-29

엄마밥이 그립나요?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집밥 맛집으로 가요

학창 시절부터 살아온 친정 동네가 죽도동이다. 다니던 교회도 그 동네였고, 목욕탕도 지금껏 그 언저리에 있는 신일탕이다. 친정엄마와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때를 밀고 나면 딱 점심때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막창집 지호네가 있다. 예약하고 젖은 머리가 미처 마르기 전에 도착하면 돌판이 데워져 먹기 딱 좋을 시간이다. 지호네 가장 큰 장점은 깔끔하다는 것, 보통의 고기 구이집에 가면 구울 때 튄 기름으로 바닥이 미끌거리기 마련인데 이 집은 늘 깨끗하다. 예약하고 갔더니 상차림이 준비된 상태라 바로 굽기 시작했다. 상차림에 나온 반찬은 시절 반찬이다. 오늘은 상큼한 진저리 나물 무침으로 나와서 입맛을 돋웠다. 고기가 익기 전 맛보다가 한 접시 해치웠다. 봄이면 냉이, 달래를 비롯한 나물 반찬이, 여름엔 취나물이나 고구마 줄기가, 가을엔 방풍나물이나 고춧잎이 상에 오른다. 사이드 메뉴지만 주인공처럼 젓가락을 유혹한다. 삼겹살과 막창 반반 주문했다. 함께 구우라고 고구마, 양파, 마늘, 양송이를 따로 내왔다. 돌판에 고기를 얹고 사이사이 이것들을 끼워 넣었다. 고기 기름이 빠지는 아래쪽에 잘 익은 김장 김치를 올리면 완벽한 세팅, 지금 미나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함께 구우라고 또 주신다. 미나리 삼겹살 먹으러 가면 미나리 값을 따로 받는데 이렇게 주셔도 남느냐고 여쭈니 그냥 웃으신다. 그러고선 새로 무친 굴김치를 맛보라며 또 주셨다. 상에 빈틈이 없어서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었다. 깻잎 위에 상추, 상추 위에 쑥갓, 그 위에 막창과 파 재래기, 익은 김치, 장아찌 등을 올리니 쌈이 커서 크게 입을 열어도 씹기 힘들 정도다. 명이나물에도 싸 먹고 익은 미나리와 함께 한 입, 동치미에도 한 입 하다 보니 배가 찼다. 사장님~ 밥 주세요. 후식 타임이다. 드뎌 이 집에 진짜 맛있는 밥이 나왔다. 소주를 마신 남편은 밥이랑 열량이 같다며 주문하지 않고 내 밥을 반 나눠 달라고 했다. 싫어! 지호네 밥은 여느 밥집의 밥과 결이 다르다. 쌀값이 제일 비싼 향쌀이다. 한번 사 볼까 싶어 검색하니 20킬로에 8만 원이 넘었다. 허걱 하며 포기 했다. 윤기가 도는 밥에 옥수수가 별처럼 박혀 토독 씹는 맛을 보탰다. 다른 식당에서는 밥을 미리 해서 공기에 담아 따뜻하게 보관하다가 손님상에 나오지만, ‘지호네’는 고기를 굽기 시작할 때 압력솥을 불에 앉힌다. 고기가 쌈으로 싸져 판 위에서 거의 사라질 즈음 쉭쉭 압력추가 돌아간다. 금방 한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법이다. 이 집 밥을 더 맛나게 거드는 메뉴, 된장찌개를 함께 주문해야 한다. 열 가지 넘는 재료를 넣어 우린 물에 미더덕과 꽃게가 합작해서 감칠맛을 극대화 시켰다. 아들은 된장찌개만 팔아도 먹으러 오고 싶은 맛이라고 했다. 밥을 아껴먹으려 해도 된장찌개 한 숟가락에 밥 한 숟갈 이렇게 하다 보면 금방 바닥이 보인다. 밥 한 그릇 추가! 우리가 단골이라 주시는 것인지, 제철 과일을 매번 주신다. 오늘은 주근깨 콕콕 박힌 빨간 딸기였다. 상큼하다. 참외, 수박, 사과 등등 반찬처럼 그 계절에 많이 나오는 과일이다. 정수기 위에 믹스커피랑 사탕은 덤이다. 생수 말고 여러 약초를 큰 주전자에 끓여서 상차림 전에 마시라고 권한다. ‘지호네’ 밥은 보약이다. 겨울에만 하는 굴국밥도 제대로 맛을 낸다. 다른 곳에서 장사 하다가 이 자리로 옮긴 지 6년째라고 했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동네 맛집이다. 주차장은 따로 없어서 길가에 눈치껏 해야 한다. 경북 포항시 북구 칠성천길 28-2, 옛 동해정비공장 뒤편이다. 연락처:010-6222-0654. /김순희 시민기자

2026-01-27

겨울, 간서치(看書癡)가 되기 좋은 시간

차가운 겨울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드문드문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도 시장 안의 상인과 차들도 모두가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추운 겨울이 반가운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바깥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 겨울에 빠져들기 좋은 것을 딱하나 꼽으라면 ‘책 읽기’일 것이다. 도서관에서, 열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이와 부모 할 것 없이 포근한 책 속의 문장을 따라가는 눈빛들이 열정적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어느새 도서관 주차장을 꽉 채웠다.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이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손길로 바쁘다. 독서회 회원들도 만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읽은 책을 공유한다. 누군가는 신문에서 만난 한 줄을 나누고 또 시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추천한 책을 소개한다. 모두가 책으로 행복해진다. ‘책만 보는 바보’라 칭하던 조선의 대표적인 독서가인 이덕무도 찬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겨울날, 허름한 초가집에서도 책을 읽으면 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아무래도 겨울은 이덕무처럼 간서치(看書癡)가 되기에 좋은 시간이다. 초등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겨울방학이 되면 아침이나 저녁을 먹고서 이불 속에서 맛난 겨울 간식을 먹으며 소년잡지 속의 ‘꺼벙이’ 만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물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역사책이나 동화책도 있었다. 다음에 읽을 사람은 연락망으로 서로 얘기를 해서 책을 돌려보았던 것 같다. 지금 우리를 간서치로 만들어줄 책은 많지만 그중 고전이 최고다. 물론 아이와 함께라면 그림책도 좋다. 지난 목요일 커뮤니티센터에서 영어 수업하기 전, 도서관에 들러 오래전 보았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요즘 다시 읽기 하는 양귀자의 ‘모순’을 빌리기로 했다. 고전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책이 영미 소설인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고민하다가 ‘폭풍의 언덕’을 고른 건 다음 달에 개봉하는 영화를 궁금해하면서 다시 읽고 싶기도 해서였다. 소설을 떠올리면 황량한 겨울의 이미지가 영국 요크셔 지방의 강한 바람과도 어울릴 것 같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바람이 느껴지니 지도에서 요크셔 지방을 찾아보았다. 런던보다 한참 위쪽에 위치해 있다. 소설 속의 지역을 생각하니 확실히 바람과 잘 어울린다.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생각하면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에게 다시 읽은 소설 이야기를 했다. 브론테 자매들도 추운 겨울날 모여서 책과 자신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긴 겨울을 보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양귀자의 모순도 요즘 필독서가 된 책이다. 덕분에 독서 모임에서도 읽었다. 책 속의 주인공이 결혼하기 전에 두 남자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 새롭다. 주인공 이름에서부터 모순이 느껴지지만 마지막 안 진진의 선택처럼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이 모순투성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독서회의 한 회원은 처음과 다르게 나이 들어서 다시 보니 안 진진처럼 선택하지 않았을까 말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지금까지 그 인기가 멈출 줄 모르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해리포터와 관련한 물건이 있으면 사 모으기 바쁘다. 여전한 해리포터 사랑이다. 밤이 깊고 조용한 겨울, 간서치(看書癡)의 즐거움을 누려보시길. /허명화 시민기자

2026-01-27

봉화 산골, 짜장면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

짜장면 한 그릇 주문하여 나눠 드시던 노부부의 옛 기억을 지울 수 없어 시작한 산골 마을 짜장면 봉사활동. 벌써 9년째 하고 있는 엄춘석, 손영빈씨 부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봉화군 오지마을을 누비고 있다. 엄씨 부부의 선한 영향으로 함께 칼갈이 봉사를 하고 있는 이상섭씨와 더불어 마술과 이미용 재능기부를 함께 하겠다는 분들도 동참해 산골 어르신들께 환한 웃음을 전달하고 있다. 부부는 본업을 쉬어가는 1월부터 시작하여 한 달 반 동안 봉화군 36개 오지마을을 돌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짜장면 한 그릇 드시기 어려운 산골로 짜장면을 요리할 수 있는 손수 제작한 트럭을 운전해 다닌다. 엄춘석씨는 1990년대 봉화군 춘양에서 중식당을 몇 년 운영하였고 현재는 토목건설 사업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식당을 운영할 때 노부부들의 짜장면 한 그릇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돈을 아끼려고 할아버지 혼자 짜장면을 시켜 드리는 할머니도 있었고, 할아버지 혼자 식당에 들어와 짜장면을 드시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다 드시고 나올 때까지 식당 밖에서 서성거리고 계시는 모습도 봤다. 한 그릇을 시켜 두 분이 나누어 드시는 분들의 모습이 세월이 흐른 뒤에도 가슴 한쪽에 아린 기억으로 남아 짜장면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8년부터 시작한 나눔활동은 올해도 춘양면 소로리, 도심3리, 물야면 두문리 등 영하의 날씨에도 매일 진행 중이다. 얼마 전 봉화군 춘양면 황터마을에서도 엄씨는 조리를 하고 부인 손씨는 환한 미소로 어르신들께 정성스럽게 짜장면 대접을 하고 있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해 마을회관에 나오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각 가정으로 배달까지 하는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산간마을 어르신들은 드시고 싶어도 읍내로 나오지 못한 분들이 많다. 몸이 불편해서도 그렇고 짜장면 드시겠다고 시내로 나가기란 추운 겨울날 어렵다 그것 때문에 엄씨가 36개 마을을 다니고 있는 것. 특히 도심3리 황터마을에서는 칼과 가위 등을 갈아주는 재능 나눔에 오래전부터 동참하고 있는 이상섭씨와 새롭게 동참한 마술사 이준용씨, 미용사 최옥순씨가 재능기부 활동을 함께 하였다.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께 마술을 보여 드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이·미용 봉사를 했다. 고된 농사일로 병이 든 노인들은 경로당에 모여 겨울을 보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배우자 없는 독거노인들은 홀로 외롭게 사는 분들이 많다. 이분들에게 따뜻한 짜장면 한 그릇의 온기가 추운 겨울을 이길 힘을 주고 있다. 어른 공경에서 나오는 나눔 활동으로 봉화 산골마을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는 엄춘석, 손영빈 부부의 짜장면 한 그릇은 단순한 짜장면 한 그릇이 아니다. 노부부, 홀로 사는 어르신들의 우울증과 외로움을 해소해 정서적 도움을 주는 데도 기여를 하고 있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6-01-27

달구벌 수필문학회 달구벌 골목길 탐사대

달구벌수필문학회(회장 최해량)가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자체 프로그램인 ‘달구벌 골목길 연구소’ 운영에 있다. 이 연구소는 대구의 잘 알려진 골목과 숨은 골목을 주제로 회원들이 직접 현장을 탐방하고 기록하도록 기획된 활동으로, 창작의 소재를 발굴하는 동시에 회원 간 교류와 친목을 다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한 답사를 넘어 지역의 역사와 삶의 흔적을 문학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대구 문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골목탐사대는 참여 회원들을 4개 조로 나눠 운영된다. 탐방은 오전 10시 경상감영공원을 출발점으로 삼아 조별로 서로 다른 지역을 맡아 진행된다. 각 조에는 ‘골목길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탐사는 단순한 산책이 아닌 현장 중심의 인문학 탐방으로 이어진다. 회원들은 골목을 걸으며 그곳에 얽힌 역사와 사람들의 삶, 그리고 세월이 남긴 흔적을 듣는다. 무심히 지나쳤던 좁은 골목 하나에도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는 과정이다. 이렇게 발굴된 골목의 이야기들은 사진과 수필로 기록돼 다시 문학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나아가 회원들은 골목탐사를 바탕으로 포토에세이전을 열어 지역 문학과 골목 문화의 의미를 시와 산문으로 풀어내고 있다. 시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문학을 보다 친근하게 나누며, 문학과 생활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달구벌수필문학회는 앞으로도 지역과 호흡하는 문학,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수필을 통해 대구 문학의 저변을 넓혀갈 계획이다. 22년의 시간을 넘어 골목처럼 오래되고 따뜻한 문학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달구벌수필문학회의 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 한편 지난 19일에는 달구벌수필문학회 금년도 정기총회 및 연간집 출판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올해 달구벌수필문학회 문학상으로 김절희 회원의 작품 ‘바지랑대’가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수상작은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통해 인간 내면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홍억선 심사위원 등은 “수필 본연의 미덕을 충실히 구현한 수작”이라는 평가를 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1-25

(시민기자 단상) 내가 본받고 싶은 인물 류성룡 선생

조선시대를 빛낸 수많은 인물 가운데, 내가 가장 본받고 싶은 인물은 류성룡(柳成龍) 선생이다. 그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명재상이자,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이끌며 우리 역사에 깊은 치적을 남긴 인물이다. 단순히 정치가이자 문신이 아니라,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올곧은 신념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켜낸 인물이다. 류성룡을 닮고 싶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지위나 명성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그의 인품과 삶의 태도, 그리고 시대를 넘어선 지혜와 용기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다. 역사 속에서 류성룡 선생은 단순히 높은 관직에 오른 인물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섰던 진정한 리더였다. 그의 삶과 업적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 1566년 과거에 급제한 뒤, 수많은 요직을 거치며 조정의 신뢰를 얻었다. 붕당정치로 갈등이 깊어 가던 시기에도 그는 중재자의 길을 택해 정치의 균형과 화합을 모색했다. 이러한 품격 있는 절제와 포용의 지도력은 오늘날에도 본보기가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그는 이미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군비 확충과 인재 등용에 힘썼다. 이순신·권율·신충원 등 나라를 구한 명장들이 그의 천거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류성룡의 통찰과 선견지명이 얼마나 빛났는지를 보여준다. 전란 중에도 그는 혼란스러운 조정을 수습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고심하며, 진정한 ‘국가의 버팀목’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전쟁 후, 그는 정치적 시기와 모함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럼에도 원망보다 반성과 깨달음을 택했다. 고향 안동으로 돌아간 그는 ‘징비록’을 집필하며, 자신의 지나온 행보와 조선의 위기를 냉정히 기록했다. 지난 일을 징계하고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의 ‘징비(懲毖)’는 후세를 향한 그의 간절한 유산이었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훈이다. 권력의 중심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고, 위기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냉철한 판단력에 따뜻한 마음을 더한 그의 통솔력은 오늘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진정한 지도자는 권력보다 책임을, 명예보다 진심을 택한다는 사실을 류성룡 선생은 평생의 행보로 증명해 보였다. 기록은 개인의 변명이 아닌 국가에 대한 성찰이었다. 준비하지 못한 나라의 책임, 분열된 정치의 폐해, 그리고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담담한 문장으로 전했다. 류성룡의 진정한 품격은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인재를 아끼되 독점하지 않고, 갈등을 조정하되 상대를 배척하지 않았다. 권위로 사람을 누르기보다 신뢰로 이끌었고, 냉철한 판단 위에 따뜻한 마음을 놓을 줄 알았다. 그의 지도력은 강함이 아니라 균형에서 나왔다. 오늘의 사회 역시 복합적인 위기와 분열 속에 놓여 있다. 이럴 때 류성룡의 삶은 하나의 기준이 된다. 위기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던 태도, 권력에서 물러난 뒤에도 기록으로 경고를 남겼던 겸허함, 그리고 끝까지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던 자세. 그것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의 참 모습이 아닐까? /김윤숙 시민기자

2026-01-25

대구반월당 관덕정순교기념관을 찾아

대구의 지하철 반월당역은 출구가 23개로 대한민국에서 출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이다. 반월당역 21번 출구로 나와 옛 적십자병원 쪽 언덕을 오르면 화강암의 벽 위에 단청의 집이 보인다. 이 집이 관덕정순교기념관이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순교자의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아직도 관덕정순교기념관을 모르는 시민들도 많다. 아미산 관덕정은 조선 영조 때 경상관찰사가 군사훈련을 감독하고 무과 시험을 보던 곳으로 대구 읍성 남문 밖 서남쪽에 있었다. 현재의 순교기념관은 중죄인들을 처형하던 곳으로 1815년부터 1868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이 경상감영에서 옥고를 치른 후 순교하였던 장소다. 지금의 관덕정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대구대교구의 신자들이 정성을 모아 기념관의 대지를 마련한 후 1985년 9월 20일 기공하여 1991년 1월 20일 완공했다. 건물 완공 후 경당을 축성할 때 1867년 1월 21일 이곳에서 순교하신 이윤일 요한 성인(대구대교구 제2주보)의 유해를 이곳에 모셨다. 또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관덕정 참수순교자들과 경상감영의 옥사자들의 영정도 함께 모셨다. 본관 위의 단청 모양의 누각에는 가톨릭의 여러 상징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화강석 벽은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 정신을 기리고, 외벽의 부조는 하느님을 향한 순교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본관 안 경당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롯하여, 여러 성인의 유해를 모셨으며, 더불어 순교자들과 관련된 다양한 사료들을 전시해 둔 기념관이다. 우리지방 가톨릭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과 그들의 순교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와 미래의 후손들이 순교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계승하는데 도움을 준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1-25

토성마을 육필시 43인전

육필시 사랑모임(대표 김동원)은 지난 21일 대구 서구 토성마을 다락방에서 '제1회 토성마을 육필시 43인전’과 백천 서상언 화백의 ‘한글 매화전’을 열고, 손글씨와 한글 예술이 어우러진 시화의 향연을 선보였다. 이번 행사는 디지털 문명이 일상화된 시대 속에서 육필 시와 한글 회화의 본질적 가치를 되짚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정지홍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박수관 서구문화원장을 비롯해 달성토성마을 골목정원 추진위원회 관계자, 비산2·3동 주민자치위원회, 토성마을 협동조합장과 지역 문인 등 5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주민과 예술인이 한자리에 모인 이날 행사는 토성마을이 지닌 공동체적 정서와 예술적 감수성을 함께 나누는 문화 교류의 장이 됐다. 행사의 막은 기타리스트 김창권의 연주곡 ‘사랑’으로 열렸다. 이어 김상환 문학평론가는 육필시의 미학과 의미를 주제로 강평에 나서, 손으로 쓴 시가 지닌 물성과 시간성, 그리고 시인의 체온이 고스란히 담긴 육필시만의 힘을 짚어 주목을 받았다. 본격적인 시 낭송도 이어졌다. 이난희 시인의 ‘엄마의 상자’, 김형범 시인의 ‘꽃’, 전화정 시인의 ‘그녀를 펴다’, 정숙 시인의 ‘능소화 폭포’가 차례로 낭송되며 각기 다른 삶의 결과 감정이 육필의 결로 관객에게 전해졌다. 이어진 육필시 낭독에서는 배상근 시인이 중후한 목소리로 ‘나이를 접는 방식’을 낭송해 깊은 공감을 자아냈으며 서하 시인의 ‘사문진 일몰’, 이정하 시인의 ‘지나가는 것’이 연이어 소개됐다. 소프라노 이은경은 ‘꽃구름 속에서’와 국악 버전의 ‘아름다운 나라’를 열창하며 행사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마지막으로 정지홍 시인은 닫는 시 ‘쪼비’를 낭송하며 시화전의 대미를 장식했다. 육필시 사랑모임 김동원 대표는 인사말에서 “시인이 끝내 돌아갈 자리는 토성마을처럼 원형을 지닌 순수함”이라며 “무지한 인간이 세운 도시의 빌딩이 아니라, 늙은 할머니의 굽은 잔등처럼 정겨운 골목길이 시의 자리”라고 강조했다. 함께 열린 백천 서상언 화백의 ‘한글 매화전’ 역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매화도에서는 시도된 바 없는 한글 자모를 붉은 화점으로 표현한 점이다. 서상언 화백은 자음과 모음을 번갈아 매화가지 위에 점 찍듯 배치함으로써, 한글 문자가 지닌 조형성과 회화적 가능성을 새롭게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1-25

AI 이후의 인류, 정신 혁명으로 길을 찾다

기술의 폭풍이 인간의 일상과 정신을 휩쓸고 있는 오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난 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청도 신화랑풍류마을과 대구한의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열린 제2회 세계 정신문화올림픽 ‘K-MEDI & K-Culture’ 국제학술세미나는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장이었다. 청도는 예로부터 신라 화랑도의 풍류 정신이 깃든 고장으로, 인간과 자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터전이다. 이곳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단순한 학술대회를 넘어, ‘AI 이후의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를 묻는 정신 혁명의 선언과도 같았다. 8차례의 기조 강연과 119개의 세부 발제, 420여 명의 발표자와 토론자가 참여한 초대형 행사에서 학계·정계·종교계의 석학들과 문화인들이 ‘기술을 넘어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색했다.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기술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성 회복이 먼저”라 역설했고, 이달곤 동반성장위원장은 “AI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도덕 감성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디지털 문명이 잠식해가는 인간의 내면과 공동체적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행사를 주관한 세계정신문화올림픽 학술포럼 조덕호 운영위원장은 “AI 시대 인간성 회복과 지속 가능한 인류 모델 구축을 위한 국제 담론의 장으로서 이 세미나는 그 첫 단추를 꿰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학술, 명상, 문화, 의료, 디지털콘텐츠가 융합된 통합적 모델을 통해 ‘세계정신문화올림픽’이라는 새로운 국제적 서사를 대한민국이 주도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이번 세미나는 신체의 경쟁이 아닌 정신의 조화와 성숙을 겨루는 ‘정신올림픽’이라는 독창적 발상으로 세계 속에 한국적 정신문화의 위상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펼쳐진 공연예술은 학문과 예술, 지역과 세계를 잇는 축제의 장이 되어 청도 군민과 인접 지역 시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존엄과 정신의 향기가 더욱 소중하다. 청도의 산수 아래에서 울려 퍼진 이 정신문화의 외침은, 인류가 다시 ‘사람다움’으로 돌아가는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6-01-25

일일문학회, 2026년 신년교례회 및 정기총회 개최

일일문학회(회장 공영구)는 지난 22일 대구 명덕네거리 물베기한정식에서 2026년 신년교례회 및 정기총회를 열고 새해 힘찬 출발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는 이채 시인의 작품 「아버지의 눈물」을 정지홍 시인이 낭송하며 문학적 울림 속에 시작됐다. 이어 본회 고문인 송영목 평론가는 신년 덕담을 통해 “회원 간 동행과 소통을 바탕으로 한층 더 성장하는 문학회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공영구 회장은 인사말에서 문예지 『일일문학』 제11호를 전국 각 도서관과 문학관에 발송했음을 전하며, “문학회 발족 11주년을 맞아 일일문학상 제정 등 모든 기반이 제자리를 잡았다”며 “이제 도약의 시기인 만큼 회원 모두가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총회에서는 회칙 일부 수정과 함께 2026년도 예산 및 사업계획을 의결했으며, 신입회원으로 강가애, 오해일 씨를 새로 맞이했다. 또한 향후 젊은 아동문학 분과 회원 확충에도 적극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아울러 ‘일신우일신’의 각오로 회장단 일부가 새롭게 구성됐다. 부회장에 정지홍 시인, 수석부회장에 여영희 시인, 자문위원에 한선향 시인, 사무국장에 이경호 시인이 각각 선임됐다. 이날 참석한 회원들은 “언제나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공부하는 문학회로 성장·발전하자”는 공감대를 나누며, 새해의 밝은 기운 속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행사를 마무리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1-25

예절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개원 21주년을 맞는 (사)우리예절원은 21일 그랜드호텔 5층 프라자홀에서 남주현 원장, 최희탁 연구회장, 박영순 부원장, 총동창회 한기열 회장, 방종현 고문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박우범 사무국장의 사회로 남주현 원장의 신년사에서 우리예절원은 전통의 계승과 시대적 책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의 기본이 되는 예절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과 효율이 앞서는 시대일수록 사람과 사람을 잇는 최소한의 질서와 존중, 배려의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예절원의 지난 21년은 단순한 교육 활동을 넘어, 공동체의 품격을 지켜온 시간임을 강조했다. 2005년 개원한 우리예절원은 전통 예절의 본질을 현대 사회에 맞게 풀어내며, 인사 예절과 생활 예절을 중심으로 한 실천적 교육을 꾸준히 이어왔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바른 인성을, 성인에게는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의 자세를, 어르신에게는 존중과 소통의 가치를 되새기는 교육을 통해 세대를 잇는 소임을 수행해 왔다. 이번 정기총회는 이러한 21년의 성과를 되짚는 자리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뜻깊은 계기가 됐다. 참석자들은 예절이 단순한 형식이나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공동체 회복을 이끄는 핵심 가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지역사회와 연계한 예절교육의 확대,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예절 문화 정착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예절교육은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쌓일수록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깊고 넓다. 우리예절원이 21년간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지속성과 진정성을 중시해 온 점이 오늘의 신뢰로 이어진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역시 분명하다. 전통의 가치를 지키되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형식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예절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나아가 예절교육이 개인의 덕목을 넘어 지역사회 전체의 공공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예절원의 지난 21년은 예절이 결코 낡은 가치가 아님을 증명해 왔다. 예절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며, 사회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전통의 깊이와 시대의 요구를 함께 품은 예절교육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잔잔하지만 단단한 울림을 전해주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회원들의 최희탁(시조창), 정권수(시낭송), 방종현, 김윤숙(하모니카 연주), 장정혜(색소폰 연주)와 더불어 경품추첨으로 이어져 참석자들의 재미와 흥을 고조시켰다. 김윤숙 시민기자 예절교육원은 2026년 22기 예절 지도자 과정 남, 여 30명을 모집한다. 모집 기간 1/5~2/20까지이며 교육비는 무료이다. 입교식 3/7(토) 14:00 교육내용 : 우리 예절(관혼상제) 현대 예절(인성, 교양, 심방. 현장학습 등). 특혜 예절 지도사 자격증 취득(자격평가시험 통과자). 교육 시간:매주 토요일 2시~5시이다. 문의) e-메일:pwb0227@hanmail,net. pvs4607@hanmail.net 장소:대구시 중구 명륜로 118(대봉동) 3층 우리예절원. 또한 문화답사지도자 2급 과정, 고전강독, 문화강좌도 함께 모집하고 있다. 문의처: 053-524-9700 모바일: 010-3823-7322, 010-9663-4607

2026-01-25

빙벽 뒤에 숨은 함성을 기다리며

청송의 겨울은 얼음골에서 깊어간다. 지난 1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그 차가운 골짜기에서 ‘2026 UIAA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렸다. 청송에 15년간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일상의 무게로 대구를 오가며 살다 보니, 세계적인 축제가 안마당에서 열려도 관람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올해는 기필코 가보리라 벼르다 겨우 개막식에야 닿을 수 있었다. 나의 첫 관람은 2015년이었다. 남편 친구들과 어울려 찾았던 그곳에서 나는 생경한 풍경을 마주했다. 아이스클라이밍 경기라기에 깎아지른 자연 빙벽을 오르는 줄로만 알았는데, 선수들은 빙벽을 닮은 거대한 인공 구조물에 매달려 있었다. 경기장 뒤편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거대한 빙벽은 그저 장엄한 배경일 뿐이었다. 아시아 최초의 개최지라는 명성이 실제 빙벽이 아닌, 섬세하게 설계된 경기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기대와 다른 상황에 실망했지만 인명 사고의 위험과 스릴 넘치는 고난도의 경기를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두 번째 기억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한창이던 그해 겨울, 카페 ‘키카보니’에서 보았던 붉은 동백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꽉 찬 손님들 사이로 내 눈에 들어온 그 꽃은 차가운 빙벽 아래 꽁꽁 언 개울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겹쳐지며, 겨울 청송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낭만으로 각인되었다. 올해로 세 번째 마주한 대회장. 하지만 주민으로서 마주한 풍경은 반가움보다 아쉬움이 컸다. 2011년부터 14년간 이어온 이 대회는 언론으로부터 ‘동계 스포츠의 메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가려진 실상은 어떤가. 대회장은 진행요원과 선수단, 그리고 그 가족들과 정치인과 공무원들로 북적였지만, 정작 순수하게 경기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나 우리 이웃인 청송군민들의 모습은 얼마나 될까 싶었다. 좀 심하게 표현해서 잔칫집에 상을 차리는 사람과 귀빈만 있고, 정작 잔치를 즐길 손님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었다. 청송군과 후원사가 투여하는 막대한 자금과 노력이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년 치러지는 행사라는 타성에 젖어,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청송이 2030년까지 5년 더 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대회를 코앞에 두고 내는 홍보가 아니라, 1차, 2차에 걸친 단계적이고 입체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주최 측인 국제산악연맹과 대한산악연맹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청송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켜야 한다. 청송의 사과만큼이나 달콤하고 빙벽만큼이나 짜릿한 이 대회의 매력을 전 국민이 알게 해야 한다. 개막식 단상 위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얼굴 너머로, 내년에는 구름처럼 몰려든 관광객들의 환호성을 보고 싶다. 14년 동안 겨우 세 번 발걸음 한 나 자신부터 깊이 반성한다. 내년부터는 나부터 빠짐없이 대회장을 찾아 손님을 맞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진짜 주인’이 되려 한다. 부디 내년 얼음골에서는 차가운 얼음 위로 뜨거운 함성이 파도치길 바란다. 청송의 자존심인 빙벽이 단순히 배경으로 머물지 않고, 세계인의 가슴 속에 청송의 열정으로 기억되는 그 날을 꿈꿔본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1-22

빙어 낚시 아쉬움을 썰매로, 취소된 얼음축제에서

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2026 안동암산얼음축제’를 보기 위해 안동으로 향했다. 이모네 식구들과의 동행이었다. 지난해 축제에서 아쉽게 즐기지 못했던 빙어 잡기를 이번만큼은 꼭 해보겠다는 다짐을 안고 떠난 길이었다. 특히 물고기 잡는 체험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촌 조카들을 생각하면 기대감은 더 컸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해 마주한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축제의 대표 체험이라 할 수 있는 빙어 잡기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가 궁금해 안내를 살펴본 끝에, 2026 안동암산얼음축제가 전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축제는 본래 1월 17일부터 1월 2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예년에 비해 크게 포근해진 날씨로 인해 얼음 결빙 상태가 충분하지 않아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기에 안전상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것이다. 다행히도 아무런 안내를 받지 못한 채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헛걸음을 막기 위해, 썰매와 스케이트, 얼음 깡통 열차는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비록 기대하던 빙어 낚시는 할 수 없었지만, 꽁꽁 언 얼음 위에서 타는 썰매는 사촌 조카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우리는 썰매를 타고 얼음판 위를 이리저리 오가며 얼음판에 그림을 그리듯 놀았고, 그 사이 사촌 조카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썰매를 끌어주느라 점점 지치고, 어느새 배고픔이 몰려올 즈음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썰매의 재미에 푹 빠져 좀처럼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고 계속 타겠다는 조카들을 달래고 또 달래서 “밥 먹고 다시 오자”는 약속으로 겨우 자리를 떠났다. 안동에 왔다면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바로 안동 간고등어와 안동찜닭이다. 지난해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월영교 근방의 식당으로 향했다. 얼음판 위에서 마음껏 뛰고 밀며 놀았던 덕분인지 많은 양을 주문했음에도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식사를 마치자 식당에서는 바로 옆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커피 쿠폰을 건네주었고, 덕분에 후식까지 든든하게 즐길 수 있었다. 배를 채운 뒤, 소화를 시킬 겸 월영교를 천천히 걸었다. 월영교는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잔잔한 물결 위를 가로지르며 걷다 보면 자연과 어우러진 고요함에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곳이다. 밤이 되면 조명이 더해져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낮의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다리를 오가며 사진을 찍고, 이날의 추억을 한 장 한 장 기록으로 남겼다. 비록 축제가 취소되어 빙어 낚시를 즐기지 못했지만, 가족과 함께한 하루는 충분히 풍성했다. 아이들의 웃음과 따뜻한 식사, 그리고 월영교에서의 여유로운 산책까지.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여행이었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안동에서의 주말이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1-22

현지인도 반한 경주 옹심이·메밀전 맛집

어릴 적부터 옹심이를 좋아한다. 쫄깃한 식감이 좋아 먹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는다. 맛집 중에 최고 맛집은 태백 황지시장 안에 자리한 부산옹심이다. 음식이 사람을 줄 세우는 것을 이해 못 하는데 태백에서 1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보았다. 최근 지인 두 명이 추천한 옹심이 가게가 있어서 찾아갔다. 경주는 2025년 APEC 이후 언제나 붐빈다. 특히 주말이라 길게 줄을 설 거라고 해서 오픈런했다. 오전 11시부터 영업 시작이라 아침부터 준비해서 가는 길에 친정엄마까지 모시고 가도 오픈이 20분 남았다. 바로 근처에 석탈해왕릉과 백률사가 있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높이 올라갈 시간은 안되어 입구 석상만 보고 돌아왔다. 경주메밀촌옹심이마을 주차장은 겨우 한 대만 주차 가능이라 동네 골목길에 적당히 대야 한다. 다행히 가까이 어린이 공원이 있고 주변에 주차할 수 있었다. 주택가 골목길에 이층, 우리가 1등인가 했더니 앞에 한 팀이 있었다. 앉고 싶은 자리에 앉자마자 차를 내왔다. 옹심이칼국수, 옹심이만, 메밀전 세 가지를 주문했다. 들기름막국수 맛이 궁금했는데 다음에 오면 맛보리라 뒤로 미뤘다. 에피타이저로 보리밥이 애교스럽게 담겨 김치 두 종류와 함께 먼저 나왔다. 자리마다 놓인 설명을 읽으니, 양념장과 김치를 넣고 비벼 먹으라고 했다. 우리 테이블에 양념장이 보이지 않았고 보리밥의 맛을 느껴보려고 비비지 않고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들기름 향이 확 돌았다. 아마 밥을 푸기 전에 들기름 한 방울 넣고 담았나 보다. 뒤따라 메밀전이 나왔다. 이렇게 얇게 부치다니, 그래서인지 바싹한 식감이 먼저 느껴졌다. 메밀 향도 구수해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게 먹었다. 가격이 특히 착했다. 전이 다 끝나기 전에 옹심이와 옹심이칼국수도 나왔다. 겨울 날씨에 딱 어울리는 뜨끈한 국물 요리다. 말랑말랑하면서도 탱글한 식감이 맘에 들었다.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아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심심한 국물 간에 딱 어울리는 자박김치가 이 집의 매력이었다. 시골 할머니가 숭덩숭덩 별 신경 안 쓰고 해주시던 겉절이 같은 느낌이라 자꾸 손이 갔다. 옹심이는 쌀이 부족한 시절 국에 넣어 먹었는데, ‘새알심’의 방언으로, 쌀로 만든 새알심이나 감자로 만든 새알심을 모두 ‘옹심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팥죽의 새알심처럼 작고 동그랗게 만들었으나, 시간이 오래 걸려 수제비처럼 크게 떼어 넣는 방식으로 변했다. 감자로 만들어 저렴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국물 요리에 고명으로 넣어 먹는다. 보통 3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앙금 없는 감자떡처럼 속이 꽉 찬 옹심이가 있고, 만두 소를 채워 만든 옹심이가 있다. 최근에는 감자를 거칠게 갈아 다른 첨가물 등을 섞어 감자의 서걱이는 식감을 주는 방식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사실상 감자수제비나 다름없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옛 선조들이 겨우내 삭힌 감자에서 나온 녹말을 활용하여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었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 항아리에 넣어두었던 씨감자 중 상하여 사용하지 못하는 감자를 골라내어 완전히 삭히면 그 감자녹말을 얻을 수 있다. 겨우내 통째로 삭힌 감자에서 얻어낸 녹말을 반죽한 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채소 국물에 끓여 먹던 것이 감자옹심이의 유래이다. 이처럼 다른 첨가물 없이 산골에서 삭힌 감자 자체에서 받아낸 녹말 100%를 활용한 쫄깃한 식감의 감자옹심이가 전통적인 방식이다. 가게 앞에 손님들이 겨울이라 기다리는 것이 불편할까 싶어 비닐로 막을 쳐 놓았다. 6년 동안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단골들이 찾아온다. 오래 그 맛을 유지하길 바란다. 경북 경주시 초당길155번길 11, 054-777-6162. /김순희 시민기자

2026-01-20

사라지는 우리 동네 가게들

늘 지나치는 곳이었다.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아주 가끔 카페에 앉아 나만의 은신처를 누리며 책을 읽다 가기도 했다. 번화가가 아닌 아파트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지만 갤러리를 겸한 3층의 제법 규모가 있는 카페였다. 언제라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것 같은 당당한 모습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학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길에는 입구에 주차금지라는 표시와 함께 주차장이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카페 앞으로 다가서니 출입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21년 5월에 시작한 저희 카페가 2025년 12월 31일 자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카페에 보내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내문에는 그동안 감사하다는 주인장의 마지막 인사가 진심으로 느껴졌지만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카페가 예스 키즈존이라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도 눈치 보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카페를 자주 이용했던 김정미(37·포항시 북구 창포동)씨는 “집 가까이라 아기띠 해서 편하게 마음 놓고 다니던 곳이었다. 근처에 새로운 카페가 생겨도 노 키즈존이라 가지 않는다. 여기가 공간도 넓고 아이들을 위한 좌식 테이블도 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데 정말 아쉽다”라고 말했다. 동네를 지나다니다 보면 가게 앞에 ‘영업종료’, ‘상가임대’, ‘임대문의’라고 붙은 안내문을 자주 본다. 포항 시내도 물론이고 동네 상가 밀집 지역도 마찬가지다. 슬프지만 빈 가게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다. 지난주 동네 산책에서도 그랬다. 방학이라 학원 차량이 운행하지 않아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다. 아파트 안 작은 도서관에서 학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점심시간이라 밖으로 나왔다. 한 시간 남은 시간 동안 어슬렁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학원가와 주택가를 지나 식당이 즐비한 도로로 걸었다. 점심시간 오가는 사람들로 붐벼야 할 시간인데 식당 앞의 주차장은 텅 비었다. 혹시 휴무인가 싶어 가게 앞을 들여다보니 그렇지도 않다. 가게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아기 의자도 잘 비치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종업원인 듯한 분이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연신 들여다보고 계신다. 주인장 얼굴과 이름을 내건 가성비 좋은 고깃집이든 엄마 손맛의 밥집이든 가볍게 먹기 좋은 분식집도 똑같이 오가는 사람이 없다. 팬데믹 이후, 최근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경기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용한 식당가가 걱정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도로 반대쪽의 샤브샤브 집이나, 프랜차이즈 햄버거와 카페 집은 주차하고 막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이 여럿이다. 가게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여기서도 양극화의 냄새가 풍겼다. 동네 가게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고향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자주 가는 수선집이나 세탁소, 미용실, 정육점은 시민기자에겐 그런 곳이다. 돌아보니 함께한 시간이 많이 쌓였다. 가게를 찾는 사람과 가게를 지키는 주인장은 딱딱한 느낌의 프랜차이즈보다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정겨움이 있다. 사람들 간의 정이 얇아진 지금에도 정을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함께한 가족들의 눈물과 실패의 이야기도 스며있을 것이다. 자주 가던 우리 동네의 가게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슬픔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1-20

복주머니에 담은 ‘붉은 말’의 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는 쪽찐 머리에 비녀를 꽂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생활하셨다. 한복에는 주머니가 있지 않으니 허리춤에는 항상 복주머니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색은 바래 있었고 매듭은 단단하여 그 주머니는 쉬 열리지 않았다. 마치 열리지 않게 묶어둔 것처럼. 복주머니는 할머니의 하루를 따라다녔다. 텃밭에 갈 때도, 장에 나설 때도, 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할 때도, 곰방대에 담뱃재를 담을 때도 말이다. 드물게 그 주머니가 열렸던 날은 첫째 손주가 상장을 받아오거나 우리들이 설날 세배를 드리거나 제사상에 오를 청주를 살 때 정도였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복주머니는 물건을 넣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주로 정초나 특별한 날에 선물하여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라고 했으며 새해맞이 선물로 복주머니를 차면 “일 년 내내 좋지 않은 기운을 쫓고 만복이 온다고 하여 친척이나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이 성행하였다”라고 한다. 부적과 같은 의미의 이 장신구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머니의 허리춤에서 그 시절을 함께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붉은 말’의 해 병오년 새해를 맞았다. 우리 지역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흔히 하지만 더불어 “무탈하시라.”라는 말도 많이 건넨다. 수다스럽지 않은 경상도 사람 특유의 덕담이자 복을 기원하는 방식이다. 안동은 오래도록 유교적 생활 질서와 공동체 문화가 이어져 온 곳이다. 이곳에서 복은 개인의 행운이라기보다 집안과 마을의 안녕을 뜻한다. 그래서 복을 드러내기보다 감추었고, 앞세우기보다 곁에 두었다. 경박스럽게 다리를 떨면 복 날아간다고 하고, 깨작거리며 먹으면 복 없다고 하고, 불행이 거듭되면 박복하다고 했다. 허리춤 안쪽에 매달려 야무지게 매듭을 지었다가 정말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였던 복주머니처럼 복을 귀하고 조심스레 다뤘다. 복은 소유하거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함께 지켜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작은 주머니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복주머니처럼 필요할 때 힘이 되어 주는 한 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경북매일 독자분들, 올 한 해도 무탈하시기를.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백소애 시민기자

2026-01-20

겨울에는 시래기 된장국이 최고

대구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무를 수확하고 난 다음 무청과 김장을 하기 위하여 배추를 다듬고, 겉잎을 다듬어 시래기를 만들어 두었다가 채소가 부족한 겨울에 많이 먹는다. 말린 시래기를 푹 삶아 물에 며칠 우려낸 다음 껍질을 벗긴 무시래기와 배추 시래기를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으면 얼음이 꽁꽁 언 겨울에도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도시에서는 시래기를 만들기도, 보관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겨울철 별미로 시래기 된장국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무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지방에서는 무청을 잘라 이를 모아 다듬어서 말린다. 우리나라 강원도 양구 펀치볼 마을에서는 시래기를 전문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명태를 말리는 덕장같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널려진 무청이 영하의 매서운 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부드러운 시래기가 된다고 한다. 양구에서는 시래기가 효자다. 지난해 농가 262곳에서 2025t의 시래기를 생산해 250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곳에서는 시래기를 만드는 무씨까지 개발해서 심는다고 한다. 시래기 무씨는 무는 작지만 잎이 잘 자라며, 무는 모두 버린다고 한다. 양구에서는 우리나라 전 지역으로 시래기를 택배로 보내는데 지난해부터는 미국 일본 등으로 수출도 시작했다고 한다. 무와 배추 시래기에는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풍부해서 겨울철 채소가 부족할 때 우리 조상들은 영양소로 섭취했다. 요즘은 영양은 높고 칼로리는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을 받는다. 강원도 양구에서는 시래기를 이용한 추어탕, 시래기 밥, 시래기 만두, 시래기 콩비지 탕 등의 음식을 개발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를 양구 음식이라 자랑한다. 대구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멸치 육수를 우려낸 물에 된장을 조금 넣고 끓여 먹는 시래기 국과 시래기 밥을 잘해 먹는다. 겨울의 진미 시래기 국을 한번 끓여 겨울의 입맛을 살려 보면 어떨까. /안영선 시민기자

2026-01-18

(인터뷰)봉사의 여왕 유가형 시인

유가형(劉家兄) 시인은 쉰여섯의 늦깎이로 시단에 등단했다. 대구작가콜로퀴엄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작가콜로퀴엄 도서관이 세워지자 관장을 맡아 사람과 책, 그리고 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시를 하는 사람이면 그가 봉사 활동가로서 살아온 삶을 잘 안다. 그는 그의 이름처럼 집안의 맏형같이 남을 돕거나 굳은 일에는 언제나 앞장섰다. 경남 거창 출신으로 올해 만 80세의 나이지만 열심히 살아온 탓인지 나이 든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유가형 시인은 봉사활동을 많이 하게 된 배경이 있나요. △1950~60년대 산골에 살던 고향을 빨리 떠나고 싶어 대구에서 공장에 다닌다는 총각의 선이 들어오자 산골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결혼을 했습니다. 공장을 일구는데 함께 노력했는데 고생도 많이 했죠. 다행히 공장이 잘 돌아가 다른 공장도 인수하고 돈을 벌게 되자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했던 것입니다. -생명의전화 봉사는 언제부터 하셨는지. △1985년부터 40년을 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밤 근무할 사람이 없어 밤 근무를 거의 혼자 했죠. 30년은 밤 근무 10년 정도 낮 근무했어요. 처음 하면서 세상의 물정을 몰라 어려운 일도 많이 당했지만 보람도 많았어요. 생명의전화를 붙들고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으며 깨우친 바도 큽니다. 감사하다는 전화도 많이 받았어요. 그것이 바로 보람된 일이라 할 수 있죠. -음성 꽃동네 봉사활동도 오래 하셨죠. △약 30년 전에 음성 꽃동네 입구 돌에 새겨진 “얻어먹을 힘만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그 말이 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지금까지 음성 꽃동네와 인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 편도 4시간이 걸리는 소록도를 작은 티코를 끌고 20여 년을 다녔으며, 나중에는 봉고차를 빌려서 갔다가 자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 후 ‘나무를 찾아 나를 찾아서’란 모임에서 소록도 중앙공원 갔을 때 교회 장로님을 통해 그곳 사람들의 어려운 사연을 듣고 많이 울었어요. 2016년 이불 10채를 보내준 뒤로는 내 몸도 아팠고, 지금은 약간 소원해진 셈이죠. 유가형 시인은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의 소식에 마음이 아파 친구 세 명과 함께 적지 않은 금액을 두 아이에게 10년간 후원했다. 대구 생명의전화 30주년 기념 ‘유가형 청실홍실민화전’을 열고, 그 수익금 전액을 생명의 전화에 기부하기도 했다. 정무장관 및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대구시민상 수상, 고려대 청야봉사상, 코오롱그룹 오운문화재단 우정 선행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받을 때마다 자비를 보태어 복지 기관이나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그의 왕성한 문학 활동과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으로 그의 시비도 곳곳에 많이 세워졌다. 도동 시비 동산과 거창 중앙공원, 대구 북구 운암지, 칠곡 석적 호국 망정마을 평화 광장에 가면 그의 시비를 구경할 수 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1-18

동화사 부속암자 염불암을 찾아

새해 11일 일기예보에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는 학원출판사 임종복 대표와 함께 좋은 작품을 기대하며 아침 일찍 동화사로 출발했다. 눈이 올 때쯤이면 사진작가들은 눈 풍경을 담기 위하여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간밤에 눈은 잠시 뿌리고 말았다. 눈이 오지 않아 동화사 경내에 들린 우리는 염불암으로 가보자며 무작정 올라갔다. 동화사는 6개의 산내 암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145개의 말사를 운영한다. 염불암(念佛庵)은 동화사의 부속 암자 중에서 이름이 난 대한불교 조계종의 산내 암자이다. 동화사에서 약 3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염불이라 함은 부처님 이름을 외우며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이고 암(庵)은 작은 절을 뜻한다. 928년 경순왕 2년에 영조 선사가 염불암을 창건했다. 이후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중창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 재건이 이루어졌다, 1438년 세종 때, 1621년 광해군 때도 중수되었다. 근대에는 1936년. 1962년 등에도 중건하면서 현재의 전각들이 자리 잡았다. 염불암에는 현철 스님(81 도감)과 김우년 거사께서 계셨고 공양간에는 2명의 공양주가 있었다. 현철 노스님께서는 작년 11월 중순 동화사 제31대 주지 선광 스님 취임 후 오셨다. 노스님은 우리를 데리고 법당 앞에까지 나오셔서 염불암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염불암은 전면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뒤편 산봉우리의 이름은 염불봉이며 바로 아래에는 옛 광석대 절터가 남아 있다고 했다. 염불암 좌측 옆길로 들어가면 일인석 (一人石) 오인석 (五人石)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꼭 가봐야지만 이곳에 온 또 하나의 추억이 된다는 설명을 했다. 927년 공산전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재위 10년째 전투인데, 공식 표기는 태조 10년(927)이다. 견휜이 신라 경주를 함락하고 오던 길에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우다가 고려군이 크게 패했다. 장수 신숭겸, 김락 등 많은 병사들이 전사하고 왕건은 목숨을 가까스로 부지했다. 염불암 뒷 길에 현재 보존되어 있는 오인석은 이들 장수들이 앉아 궁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바위다. 그리고 50m 정도 더 위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일인석 바위는 넓은 면적 덕분에 적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바위다. 삼국사기나 고려사에는 지묘동, 파군재, 독좌암, 안심, 반야월로 피했다는 내용이 있다. 염불암은 전해져오는 말로 한 승려가 바위에 불상을 새기려 발원했는데, 7일간 안개가 끼었다가 사라진 뒤 바위에 불상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지금의 법당 뒤에 있는 큰 바위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 이곳에 암자를 짓고 염불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통일신라 시대의 마애불과 보살상으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지정되어 있다. 법당 앞마당에는 고려시대 보조국사가 세운 13층 청석 돌탑이 있다. 현재는 원래 모형 중 일부인 4층까지만 남아 있고 나머지 부분은 모형을 얹어놓았다고 한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19호) 조선 후기인 1841년의 불화도 남아있다. 극락전 오른쪽 뒤에는 염불바위가 있다. 염불바위의 남면에는 문수보살, 서면에는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문수보살이 조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염불암 상좌 성천스님은 출타 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동화사 눈 구경을 목적으로 왔으나 눈구경은 못했지만 염불암에 대한 소중한 지식을 얻은 것은 그나마 행운이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