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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 등 3건 문화재에

대구시가 3건의 유형문화재를 지정하고, 1명의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인정했다. 대구시는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대구 광덕사 신중도’를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전연호(66)씨를 무형문화재 단청장 보유자로 인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신규 문화재 지정과 보유자 인정은 대구시 문화재위원회 분과위원회의 심의 통과 후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지난달 31일 문화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됐다. 대구시에 따르면, 이번에 지정된 유형문화재 제90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는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가운데 권22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이다. 10개의 연화문으로 이루어진 표지화는 매우 드물고, 정확한 기록이 없어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종이의 질이나 그림과 글씨의 솜씨 등으로 미뤄 14세기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유형문화재 제91호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현세의 죄업을 모두 소멸시키고 장수(長壽)의 법을 설법한 밀교 계통의 경전이다. 이 책은 권말제(卷末題)와 시주명단으로 보아 15세기 후반(세조∼성종초기)에 간행된 목판본이다.유형문화재 제92호 ‘대구 광덕사 신중도’는 해외에 유출됐다가 경매를 통해 환수된 경우다. 제작 기록(畵記)에 의하면 1812년(가경17) 11월에 순천부 영취산 흥국사 보현전에 봉안했던 것이다.무형문화재 제14호 단청장 보유자로 인정된 전연호(66)씨는 무형문화재 단청장의 전수교육조교로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으며 단청 기능을 전승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20-02-09

신라 거점 유적 ‘의성 금성면 고분군’ 사적 지정예고

5∼6세기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374기가 밀집한 고분군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문화재청은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학미리·탑리리에 있는 고분들을 묶은 경상북도기념물 ‘의성 금성면 고분군’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의성 금성면은 삼한시대에 조문국이라는 부족 국가가 있던 곳이다. 이후 신라에 편입된 뒤 정치·경제·문화 측면에서 북방 진출의 거점으로 발전했다. 이곳은 1960년 의성 탑리리 고분군 발굴 이후 매장문화재 조사 17회, 학술조사 9회가 진행돼 신라 무덤 양식인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덜넛무덤)를 변형한 묘제(墓制)가 확인됐다.무덤 내부에서는 머리에 착용하는 관, 귀걸이, 허리띠 장식, 고리자루칼 등 신라 수도 경주와 관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위세품이 발견됐다. 또 지역적 특색이 돋보이는 이른바 ‘의성양식 토기’가 출토됐다. 의성양식 토기 특징은 고배(高杯·굽다리접시), 항아리, 뚜껑 등에서 잘 나타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토기 양식은 이후 생산과 유통이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의성군은 금성면 고분군에 대해 신라 거점 역할을 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와 유물이 경주와 유사하면서도 독특한 점이 있다고 강조했다.문화재청 관계자는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경주와 경북 북부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고 고분 형성 시점을 분석하면 국읍(國邑, 중심 읍락) 지배계층 분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의성/김현묵기자 muk4569@kbmaeil.com

2020-01-20

포항서 5세기 신라 금귀걸이 3쌍 출토

포항에서 고구려 귀걸이와 유사한 금귀걸이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은 포항 흥해읍 대련리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 후반 고구려 귀걸이 제작 기법을 모방해 신라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제굵은고리귀걸이 1쌍을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굵은고리귀걸이는 길이가 5cm 무게는 18.5g으로 통통한 고리 아래에 원을 연결해 만든 듯한 구형(球形) 장식이 있다.이른바 ‘태환이식’(太環耳飾)이라고도 하는 굵은고리귀걸이는 돌방 길이가 5.3m 너비가 1.8m인 횡혈식 석실묘(橫穴式石室墓·굴식돌방무덤)에서 나왔다.연구원은 이번에 횡혈식 석실묘 6기와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 1기를 조사했는데, 무덤 대부분은 도굴됐으나 4호 횡혈식 석실묘는 무너진 뚜껑돌이 부장품을 덮어 귀걸이 등이 발굴됐다.이 고분은 유적에서 가장 큰 것으로 시신을 두는 받침인 시상(屍床)이 상하 두 겹으로 겹쳐진 상태였다. 아래쪽 시상에서는 금제굵은고리귀걸이 1쌍, 금제가는고리귀걸이 1쌍, 은제 팔찌 1쌍이 나왔고, 위쪽 시상에서는 또 다른 금제가는고리귀걸이 1쌍이 출토됐다. 유물 제작 시기는 모두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됐다.굵은고리귀걸이는 길이가 5㎝, 무게는 18.5g이다. 통통한 고리 아래에 원을 연결해 만든 듯한 구형 장식이 있다. 다만 고구려 귀걸이와는 달리 장식 중간에 눈금을 새긴 굵은 선 형태의 각목대(刻目帶)가 있다. 구형 장식 아래에는 원뿔형 장식이 존재한다.화랑문화재연구원 측은 “충북 청원 상봉리, 서울 능동, 강릉 병산동 등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귀걸이가 출토된 바 있다. 다만 대련리 유적에서 출토된 귀걸이는 샛장식에 새김눈금선대(각목대)가 존재하고 샛장식 아래쪽의 원반상 장식이 생략되는 등 전형적인 고구려산 귀걸이와 차이를 보이고 있어 고구려의 제작 기법을 모방해 신라에서 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세환이식’(細環耳飾)이라고도 불리는 금제가는고리귀걸이는 중심 고리 아래에 원통형 중간 장식, 나뭇잎 형태 장식이 차례로 달렸다. 원통형 장식에는 줄무늬와 뚫어서 새긴 무늬가 있고, 넓적한 나뭇잎 형태 장식에는 작고 오목한 다른 나뭇잎 장식 2개를 추가했다.가는고리귀걸이 중 1쌍은 형태가 비교적 완전하나, 나머지 한 쌍은 나뭇잎 장식이 사라졌다. 온전히 보존된 귀걸이는 길이가 4.9㎝, 무게가 7g이다.이러한 귀걸이는 경주 천마총·서봉총·보문리 부부총과 창녕 송현동 고분에서 나왔다고 알려졌다.조사단은 이외에도 4호 석실묘 돌방 남쪽 부장품 공간에서 기대(器臺·그릇받침), 장경호(長頸壺·긴목항아리), 고배(高杯·굽다리접시) 등 형태가 다양한 토기 수십 점을 찾았다.화랑문화재연구원 측은 “이번에 나온 유물들은 경주 외곽에 해당하는 포항 일대의 횡혈식 석실묘 수용 시기와 경로, 신라와 고구려 교류 관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2-18

포항서 5세기 신라 금귀걸이 발견…"고구려산 모방 제작"

굵은 고리 아래에 동그란 구형(球形) 장식, 원뿔 장식을 매단 고구려 귀걸이와 유사한 금귀걸이가 경북 포항에서 발견됐다.매장문화재 조사기관 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은 포항 흥해읍 대련리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 후반에 고구려 귀걸이 제작 기법을 모방해 신라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제굵은고리귀걸이 한 쌍을 수습했다고 18일 밝혔다.이른바 '태환이식'(太環耳飾)이라고도 하는 굵은고리귀걸이는 돌방 길이가 5.3m, 너비가 1.8m인 횡혈식 석실묘(橫穴式石室墓·굴식돌방무덤)에서 나왔다.연구원은 이번에 횡혈식 석실묘 6기와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 1기를 조사했는데, 무덤 대부분은 도굴됐으나 4호 횡혈식 석실묘는 무너진 뚜껑돌이 부장품을 덮어 귀걸이 등이 발굴됐다.이 고분은 시신을 두는 받침인 시상(屍床)이 상하 두 겹으로 겹쳐진 상태였다. 아래쪽 시상에서는 금제굵은고리귀걸이 1쌍, 금제가는고리귀걸이 1쌍, 은제 팔찌 1쌍이 나왔고, 위쪽 시상에서는 또 다른 금제가는고리귀걸이 1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물 제작 시기는 모두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됐다.조헌철 화랑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은 "주검받침이 두 번에 걸쳐 만들어졌고, 귀걸이가 여러 점인 사실로 미뤄 시차를 두고 주검 3구 이상을 묻은 듯하다"고 설명했다.굵은고리귀걸이는 길이가 5㎝, 무게는 18.5g이다. 통통한 고리 아래에 원을 연결해 만든 듯한 구형 장식이 있다. 다만 고구려 귀걸이와는 달리 장식 중간에 눈금을 새긴 굵은 선 형태의 각목대(刻目帶)가 있다. 구형 장식 아래에는 원뿔형 장식이 존재한다.조 연구원은 "이 같은 귀걸이는 충북 청원 상봉리, 서울 능동, 강릉 병산동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며 "고구려 귀걸이에는 구형 장식과 원뿔형 장식 사이에 원반 장식이 있지만, 대련리 유적 귀걸이에는 없다"며 고 말했다.이어 "신라 유적인 황남대총 북분에서 고구려산 귀걸이가 나오기는 했지만, 대련리 유물은 전형적인 고구려 귀걸이와는 차이가 있어 고구려 제작 기법을 본뜬 신라산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학계에서는 귀걸이가 나온 무덤 구조에도 주목했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횡혈식 석실묘는 고구려 영향으로 신라에 유입됐다고 본다"며 "그 시기를 수도인 경주는 6세기 전반, 지방은 5세기로 추측해 왔다"고 강조했다.최 교수는 "신라 지역 5세기 횡혈식 석실묘는 지금까지 알려진 유적이 매우 드문데, 대련리에서는 6기나 나왔다"며 "일부 학자는 무덤 조성 시기를 5세기 초중반으로 올려 보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세환이식'(細環耳飾)이라고도 불리는 가는고리귀걸이는 중심 고리 아래에 원통형 중간 장식, 나뭇잎 형태 장식이 차례로 달렸다. 원통형 장식에는 줄무늬와 뚫어서 새긴 무늬가 있고, 넓적한 나뭇잎 형태 장식에는 작고 오목한 다른 나뭇잎 장식 2개를 추가했다.가는고리귀걸이 중 한 쌍은 형태가 비교적 완전하나, 나머지 한 쌍은 나뭇잎 장식이 사라졌다. 온전히 보존된 귀걸이는 길이가 4.9㎝, 무게가 7g이다.이러한 귀걸이는 경주 천마총·서봉총·보문리 부부총과 창녕 송현동 고분에서 나왔다고 알려졌다.조사단은 이외에도 4호 석실묘 돌방 남쪽 부장품 공간에서 기대(器臺·그릇받침), 장경호(長頸壺·긴목항아리), 고배(高杯·굽다리접시) 등 형태가 다양한 토기 수십 점을 찾았다.조 연구원은 "이번에 나온 유물들은 경주 외곽에 해당하는 포항 일대의 횡혈식 석실묘 수용 시기와 경로, 신라와 고구려 교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2019-12-18

신라 호국사찰 경주 사천왕사 정비·활용 모색

통일신라시대 으뜸가는 호국사찰이던 사천왕사(四天王寺)가 어떻게 정비되고 관리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23일 오전 경주 드림센터에서 신라 문무왕 19년(679) 경주 낭산 기슭 신유림(神遊林)에 세운 호국사찰 사천왕사터 정비와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2006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한 사천왕사터 발굴 성과를 돌아보고 절터 보존 정비와 문화 콘텐츠 개발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삼국유사에 따르면 670∼676년 벌어진 나당전쟁 때 명랑법사가 낭산 남쪽에 임시로 절을 만들었는데, 싸움을 하기도 전에 당나라 배가 침몰하자 이곳에 정식으로 건설한 사찰이 사천왕사다.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사가 이뤄져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 조각이 나왔고, 1922년에는 금당터와 탑터 실측조사가 시행됐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년 70여 년 만에 사천왕사터를 재발굴해 금당 하나에 탑이 두 개인 일금당이탑(一金堂二塔) 양식이라는 건물 배치와 규모를 확인하고, 유물 4천여 점을 찾아냈다.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중국과 한국 절터 보존정비 현황과 사례를 고찰한 발표에 이어 사천왕사터 발굴조사 현황과 주요 성과, 사천왕사터 출토 유물의 과학적 분석과 복원, 사천왕사 불교문화 원형 발굴과 활용 방안, 경주 낭산 유적 스토리텔링과 대중 문화콘텐츠 개발 전략에 관한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주제발표가 끝나면 발표자와 토론자 간의 질의응답을 포함한 종합토론이 있을 예정이다.한편, 사천왕사터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06∼2012년 발굴조사를 마친 뒤 동해남부선 철도와 국도 7호선으로 인해 사역(寺域)의 범위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적 정비도 임시방편으로 이뤄져 사실상 방치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추가 발굴조사로 사역을 확인하고 주변 낭산, 선덕여왕릉, 망덕사터와 연관성을 찾아 성격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08-20

촌주 이름 새긴 청동접시 첫 출토

▲ `달온심촌주(達溫心村主)`글자 . /문화재청 제공(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조사 중인 경주 황룡사 남쪽 담장 외곽 정비사업 부지에서 `달온심촌주(達溫心村主)`라는 촌주(村主) 이름이 새겨진 청동접시가 출토됐다. 촌주는 지방의 유력자에게 부여한 신라의 말단 행정관직으로,`촌주`(村主)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접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조성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팀장은 “촌주 앞에 있는 달온심은 인명 혹은 지명으로 짐작된다”며 “청동접시의 정확한 용처는 알 수 없으나 함께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뤄 의례 행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그는 “청동접시는 상류층이 사용한 물품으로, 왕궁과 붙어 있는 황룡사에서 지방 관직의 명칭이 새겨진 유물이 나온 것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청동접시가 발견된 우물에서는 편평하고 납작한 토기인 편병(扁甁), 중국 백자 조각, 평기와, 청동제 손칼이 함께 출토됐고, 밤과 복숭아의 씨앗 껍질과 생선뼈 등도 나왔다.이번 조사에서는 황룡사와 동궁을 연결하는 동서축 도로와 황룡사와 분황사를 잇는 남북축 도로 유적도 발굴됐다.도로는 길이 20~30㎝의 돌덩이를 깔아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작은 자갈을 덮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도로 한쪽에 너비 100㎝, 깊이 40~100㎝의 배수로를 설치했다가 길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배수로를 메운 사실도 확인됐다.또 황룡사가 늪지를 매립해 세운 사찰이라는 점도 밝혀졌다. 늪에 굵은 돌을 깔고 흙을 다져 올리는 기법으로 대지를 다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이번 조사의 성과를 17일 오후 2시에 발굴 현장에서 공개한다./윤희정기자

2016-06-17

`유교책판` 세계유산 등재 기념식

경북도는 16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지난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유교책판`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기념행사에 앞서 국학진흥원 앞 마당에 입석을 마련하고 제막식을 거행했다.이번 기념행사에는 유교책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책판을 기탁한 전체 305개 기탁 문중 가운데 90여 문중대표와 개인 소장자를 비롯한 문화재청 관계관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행사는 세계기록유산등재 입석 제막식, 샌드아트 공연, 세계기록유산 등재경과보고 영상상영,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동판·표창패·공로패 전달, 경북대 남권희 교수 특강 순으로 진행됐다.유교책판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02년부터 국내 문중과 개인을 대상으로 목판 기탁운동을 전개해 718종 6만4천226장을 기탁받았다.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10월 `KBS이산가족을 찾습니다`와 함께 우리나라 12번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유교책판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문집(文集), 성리서(性理書), 족보(族譜)·연보(年譜), 예학서(禮學書), 역사서(歷史書), 훈몽서(訓蒙書), 지리지(지도) 등 저작물을 인쇄·발간하고자 제작됐다.경북도 김현기 행정부지사는 “유교책판은 세계의 문화 자산으로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국학자료를 기꺼이 기탁한 문중과 개인 소장가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며 “선조가 물려주신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후대에 전승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서인교기자

2015-12-17

예천 삼강리서 구석기 석기 대거 발견

예천 삼강리 유적에서 8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시대와 4만~8만년 전의 중기 구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 160여 점이 발견됐다.문화재청은 동국문화재연구원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산8-1, 낙동강과 내성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삼강리 유적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을 출토했다고 18일 밝혔다.동국문화재연구원은 지난 6월부터 삼강나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삼강리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조사를 해왔다.이번 발굴조사에서 내성천 인근의 계단식 지형인 하안단구에서 높이 4~4.5m에 이르는 퇴적층을 확인했다. 이곳 유적의 지층은 시대가 확연히 나뉘는 5개 문화층으로 구성됐다.조사단은 그중 하층부인 4~5문화층이 전기 구석기시대, 상층부인 1~3문화층이 중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중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에서 강돌을 활용해 만든 몸돌, 찍개, 여러면석기, 격지(몸돌에서 분리한 돌조각) 등이 출토됐고 특히 1~2문화층에서는 직사각형 석재를 얇은 조각으로 떼어낸 석기가 발견됐다.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화산암의 일종인 안산암으로 제작한 사냥용 주먹도끼와 찌르개가 출토됐다. 차순철 동국문화재연구원 책임조사원은 “삼강리 유적은 지층의 연대 측정이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상층부와 하층부 유물이 뚜렷하게 구분된다”면서 “영남 지역에는 드문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주변의 구석기시대 유적인 상주 신상리 유적과 안동 마애리 유적은 지층이 한두 개에 불과한데 비해 삼강리 유적은 문화층과 유물 구성이 다양해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동국문화재연구원은 19일 오후 2시 출토 현장에서 설명회를 갖고 발굴 성과를 보고한다.예천/정안진기자ajjung@kbmaeil.com

2015-11-19

유교책판,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유교책판(사진)`이 지난 9일(아랍에미레이트 현지시각)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2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IAC)에서 `등재권고`판정을 받은 뒤 9일 이리나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를 최종 추인했다.따라서 `유교책판`은 한국의 12번째,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13번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유교책판`은 305개 문중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718종 6만 4천226장의 목판으로,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인쇄·발간하고자 만든 것이다.이러한 자료들은 최근까지 주로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에서 보관해 오던 것으로 경북도의 지원과 한국국학진흥원의 수집·보관 등 10여 년간에 걸친 노력과 등재 신청 준비를 통해 이번에 최종적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유교책판`은 1460년 청도의 선암서원에서 판각된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부터 1955년에 제작된 책판까지, 시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종류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이 가운데에는 `퇴계선생문집`책판과 같은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책판으로부터 근대 출판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판각한 책판도 있다.특히 출처와 시대가 다른 기록물을 한 곳에 모아 신청한 것은 한국에서 처음 시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이는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컬렉션`을 중시하는 현 시책에 부합된다는 점도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큰 요인이 됐다는 후문이다.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세계유산을 최다 보유한 광역지자체의 위상에 걸맞은 체계적인 보존관리 시스템도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5-10-12

最古 신라비 추정 포항 중성리비 보물서 국보 승격

속보=본지가 발견 과정부터 취재해 `포항에서 국보급 추정 신라비 발견`본지 2009년 5월 14일자 1면의 제목으로 최초 보도한 포항 중성리비가 모습을 드러낸지 6년여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으로 추정되는 포항 중성리 신라비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하고, 황룡사 구층목탑을 신라 때 대대적으로 수리하면서 그 내력을 적은 찰주본기(刹柱本記)를 비롯한 11건은 보물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2009년 5월, 공사 과정에서 흥해 주민 김헌도(52)씨에 의해 발견된 중성리 신라비는 1면 12행에 걸쳐 모두 203자를 새긴 것으로, 신라 관등제의 성립 과정, 신라 6부의 내부 구조와 지방 통치, 분쟁 해결 절차, 궁(宮)의 의미, 사건 판결 후 재발방지 조치 등 신라의 정치·경제·문화상을 알려주는 내용을 담아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이런 점을 고려해 문화재청은 2012년 보물로 지정한 데 이어 이번에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했다.중성리비는 판독과 해석에 논란이 있어 정확한 제작 건립 시점을 둘러싸고 논란이 없지 않지만 이미 국보로 지정된 지증왕 4년(503) 작성 포항 냉수리 신라비, 법흥왕 11년(524) 작성 울진 봉평리 신라비보다 앞선 지증왕 2년(501)에 세운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이창형기자 chlee@kbmaeil.com/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2015-04-23

보경사 적광전 보물 지정

포항 보경사(寶鏡寺)의 금당인 적광전(寂光殿·사진)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868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적광전의 신방목에 새긴 사자상은 국내에서는 유례가 드문데다 조각이 정교한 점을 들어 보물 가치가 있다고 판단,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적광전은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창(重創)된 것으로 추정되며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건물이다.기둥 받침돌인 초석(礎石)과 기둥 하부를 가로로 연결하는 부재인 고막이 등이 전형적 통일신라기 건축 기법을 보여주는데다 전면에 남은 신방석(信防石)이라는 문기둥 밑에 놓는 부재 받침돌 또한 신라시대 옛 부재를 사용해 쌓았다고 판단된다. 신방목은 보통 둥글게 만들고 태극문양 등을 새기는 데 비해 이곳에서는 사자를 조각했다. 공포를 기둥 위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도 다수 만들어 넣는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측면 공포가 있으며, 다포계 건물에서 흔히 보이는`井`자 모양 천장인 우물반자는 설치하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낸 연배천장(緣背天障)으로 처리한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 진(陳)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智明) 법사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있다. 1588년 사명대사 유정이 지은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鏡寺金堂塔記)라는 기록을 보면 신라 경덕왕 4년(745)에 승려 철민 화상(哲敏和尙)이 중창(重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정철화기자chhjeong@kbmaeil.com

2015-03-31

문화재청 대형불화 정밀조사

문화재청과 성보문화재연구원(원장 지현스님)이 대형불화 유물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인다. 10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올해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전국 중요 대형불화인 괘불탱(掛佛幀) 54점과 관련 유물 207건 431점을 대상으로 하는 정밀조사를 추진한다는 것.대형불화는 사찰의 중요 전각에 봉안하거나 야외 의식에서 쓸 목적으로 제작한 크기 3m 이상의 그림이다.대형 불화는 재료적 취약성과 유지관리 허술, 각종 재해 등으로 인한 훼손 위험이 높다. 특히 괘불탱은 무게나 크기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아 다른 문화재에 비해 재해를 당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데다 일반인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조사·연구는 물론 보존관리에도 어려움이 많다.이번 조사는 심층 조사를 통해 훼손으로 원형을 잃을 경우를 대비한 기록화 작업과 더불어 복원·보수에 필요한 정보와 예방적 문화재 보존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종합적인 자료의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번 사업은 인문학적 조사·디지털 정보구축 조사·보존과학적 조사로 진행된다.이번 조사는 올해 보물 제1350호 양산 통도사 석가여래괘불탱를 비롯한 경남·경북 지역 중요 괘불탱 4점과 괘불탱 관련 유물 112건 336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

2015-02-11

`대구 서봉사 지장시왕도` 등 지역문화재 4건 보물 예고

대구·경북 지역 문화재 4건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 됐다.문화재청은 5일 `김천 고방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대구 서봉사 지장시왕도` 등 대구·경북 지역 조선 후기 불교 문화재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예고 한다고 5일 밝혔다.`김천 고방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1688년에 조성된 고방사의 후불화로서 민원을 수화승으로 해 죽총, 경찬, 각림 등 총 4명의 화승이 그렸다. 수화승 민원의 유일한 작품으로 본존의 키형 광배와 높은 육계의 표현, 천공 바탕에 표현된 화문 등 세부표현과 기법에서 17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대구 서봉사 지장시왕도`는 18세기에 직지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화승 세관이 1741년에 삼옥, 월륜, 서징, 순간, 존혜, 우평, 응잠 등과 함께 조성한 불화다. 이 불화는 세련되고 우아한 표현 형태와 필선으로 이 시기 지장시왕도의 대표작이다.`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중생들을 반야용선에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장면과 이를 맞이하는 아미타불 일행, 극락연지에서 연화화생하는 왕생자, 보수와 극락조등 극락의 장엄한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불화다.`김천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은 1651년 묵서기가 확인돼 이를 바탕으로로 대웅전의 중건과 함께 17세 중반에 제작된 불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불단은 조선 후기 불전 건축의 내부 장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예이다.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유물 4건에 대해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을 거쳐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2015-01-06

의성 대곡사 대웅전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3일 의성군 다인면에 있는`의성 대곡사 대웅전`사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831호로 지정했다.대곡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양식 건물로, 조선 숙종 13년(1687) 태전선사(太顚禪師)가 중건(重建)했다.문화재청은 건축 부재의 하나인 공포의 형태라든가 창호 중간에 기둥을 두어 창문이 두 개처럼 보이는 창인 영쌍창(靈雙窓), 외부 마루 흔적 등에서 중건기 건축 특징과 변화 양상을 볼 수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대웅전 정면과 양 측면 기둥 아래에는 마루가 설치됐던 것으로 보이는 큰 구멍이 있는데, 이처럼 불전 정면에 마루를 둔 구조나 영쌍창 등은 18세기 이전 건물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고식(古式)으로 평가된다.의성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 지공(指空)이 원나라와 고려를 다니면서 불법을 펼친 것을 기념하려고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건 시기는 이규보가 남긴 시에`대곡사 탐방시구(探訪詩句)`등의 자료를 근거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보지만 유구 등이 확인되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김용석 의성군 문화예술계장은“지난해 12월 국가문화재로 지정 신청해 문화재청의 현지조사, 지정예고를 거쳐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의성 대곡사 대웅전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문화재청, 경북도, 소유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의성/김현묵기자muk4569@kbmaeil.com

2014-07-04

보물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 해체과정 이달부터 일반공개

철저한 비공개로 진행됐던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사진의 해체수리 현장이 이달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문화재 공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돼 보물 57호로 지정된 안동시 조탑동 오층 전탑은 기존 석탑과 달리 벽돌로 쌓아 만든 전탑이다. 특히 안동과 여주 등 국내 5기뿐인 이 전탑은 1층 탑신부 전체에 화강석을 사용해 만든 유일한 전탑으로, 붕괴 우려가 있어 1년 전부터 해체·보수작업중이다. 현재 99단 가운데 절반 가까이 해체 작업이 진행됐으며, 최근 탑 중앙을 관통하는 나무기둥인 심주가 모습을 드러냈다.안동 전탑 보수현장은 이달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데, 해체 과정은 현장 관람로를 따라 볼 수 있으며, 문화재 수리전문가와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해설도 한다.안동시 문화예술과 이상일 문화재 담당은 “그동안 문화재 수리현장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 문화재 수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한편, 문화재청은 올해 영주 소수서원 강학당 등 전국 10곳의 중요 문화재 수리현장을 추가로 공개하고, 내년부터 대상을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안동/권광순기자

2014-06-03

의성 다인 대곡사 대웅전 문화재청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은 15일 의성군 다인면에 있는 의성 대곡사 대웅전사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의성 대곡사 대웅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숙종 13년 1687년에 태전선사가 다시 중건했다.대곡사 대웅전 중건 당시의 시기적 경향을 읽을 수 있는 특징으로 공포의 형태, 배면의 영쌍창(靈雙窓·창호 중간에 기둥을 두어 창문이 두 개처럼 보이는 창), 외부 마루 흔적 등을 들 수 있다.이는 의성 지역 불교사찰이 부흥하기 시작한 시대의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써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대웅전의 정면과 양 측면의 기둥 아래에는 마루가 설치됐던 것으로 보이는 큰 구멍이 있는데, 이러한 불전 정면에 마루를 둔 구조나 배면의 영쌍창 등은 18세기 이전 건물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고식(古式)이다.의성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 지공이 원나라와 고려를 다니면서 불법을 펼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절이라 전해진다.창건 시기는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시구(探訪詩句)` 등의 자료를 근거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유구 등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문화재청은 의성 대곡사 대웅전에 대해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 중에 수렴된 의견을 검토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