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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터키의 근현대 역사 3代 100년의 이야기

`고요한 집` 민음사 펴냄,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번역, 280쪽, 1만2천원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60)의 장편소설`고요한 집(Sessiz Ev)`(전 2권, 민음사)이 출간됐다. 이 소설은 파묵이 발표한 두 번째 소설(1983년)로 그 스스로 “내 젊은 날의 영혼이 반영된 소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스탄불 근교 소도시에 살고 있는 아흔 살 된 할머니의 집에서 세 남매가 보낸 일주일을 그린 이 작품은 터키에서 `마다라르 소설상`, 프랑스에서 `유럽 발견상`을 수상하면서 파묵이 처음으로 전 세계 문학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첫 소설`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토마스 만을 연상케 하는 전통적 사실주의 기법을 보였다면, 이 소설은 포크너나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모더니즘적 서술을 보여 준다. 다섯 명의 인물을 화자로 등장시키는 `다층적 서술 방식`이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할머니의 회상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흐름 수법 등 파묵 문학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역사의 의미를 회의하는 역사학자,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혁명주의자 여대생, 미국에 가서 부자가 되는 것이 꿈인 고등학생, 약 한 세기 동안 급변해 온 터키 역사를 목격한 할머니, 그녀와 40년 동안 기묘한 동거를 해 온 하인, 급진적 민족주의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려 하는 십대 소년을 통해, 터키 근현대 약 100년간의 정치, 사회, 문화의 변화와 그 속에서 개인들이 겪게 된 비극을 파묵만의 스타일로 풀어냈다.오르한 파묵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로 `밀리예트`신문 소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1985년 발표한`하얀 성`으로는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 동양에서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사이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 바로`고요한 집`이다.`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소설이었다면, `고요한 집`은 다층적 서술 기법이나 의식의 흐름 기법 등을 사용해 그의 문학 세계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이 소설은 파묵 특유의 문학이 무르익는`검은 책`, `내 이름은 빨강` 등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단초를 보이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1980년 9월에 터키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데, 이 소설은 그 두 달 전인 7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작품 전체에 정치적 긴장감이 깔려 있다. 또한 전체 32장을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해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함으로써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표현되고, 지식인에서부터 하인, 90여 년 전과 현재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 다섯 명의 화자는 아흔이 된 할머니 파트마, 그녀의 두 손자 파룩과 메틴, 하인 레젭, 레젭의 조카 하산이다. 이들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터키의 정치, 사회, 문화가 변화해 온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된다.바랜 종이 더미를 읽어 나갈수록 그런 기분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한다. 긴 항해를 하다가, 항해 내내 당신을 답답하게 했던 안개가 걷히고, 나무와 돌, 새 들을 품은 육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감탄하듯, 읽어 갈수록 펼쳐지는 종이들 사이에 서로 맞물려 있는 수백 만 개의 삶과 이야기가 갑자기 내 머리에 떠오른다.파묵은 `고요한 집`에서 약 100년에 걸친 삼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트마와 셀라하틴, 도안과 레젭, 세 손주들과 하산이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셀라하틴은 루소나 볼테르 등 서양 철학자들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니는 맹목적인 서양 추종자였으며, 파트마는 남편의 뜻을 묵묵히 따르기는 하지만 “나는 동양에서 나온 첫 번째 서양인이야, 서양이 된 첫 번째 동양!”이라고 하는 그의 사상과 행동은 이해하지 않고 냉담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서양에 비해 발전하지 못한 동양을 구제하려 하는데, 이를 위해서 그는 40년 가까이 백과사전을 집필한다. 그러나 이 기획은 완성되지 못하고, 그는 동양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실행하지는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오히려 하녀에게서 두 아들을 낳음으로써 아내와 아들에게 평생 자기 대신 짊어져야 할 짐을 남기고 떠난다. 파트마는 이러한 남편 옆에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더욱 냉담해지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과거 속으로 침잠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아픈 청춘과 소시민을 위한 희망찬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창비 펴냄, 김미월 지음, 260쪽, 1만1천원지난해 제29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서의 저력을 확인한 김미월(35)이 신작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창비)을 펴냈다. 소설집`서울 동굴 가이드`와 장편소설`여덟번째 방`에서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과 고민을 보듬어온 작가는 두번째 소설집`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에서 한층 물오른 필력과 젊은 감각, 더욱 깊어진 통찰로 독자들의 기대를 모은다. 김미월의 소설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남몰래 펼쳐보는` 이 작가의 섬세한 눈길은 남다른 온기를 머금고 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이라고 해서 섣불리 보잘것없는 삶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제는 무시당하기 일쑤인 이 작은 진리를 작가는 차분하고도 곡진한 목소리로 전한다. 표제작에서, 번번이 꿈을 포기하고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편집자 `진수`는 다니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할뿐더러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만난 유명 시인과의 술자리에서 행패를 당한다. 하지만 동갑내기면서도 자신보다 훨씬 유능한 팀장에게 거리감을 느끼던 진수가 자신의 득실은 따지지 않고 위험에 처한 팀장을 구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얼뜨기처럼 보이던 진수의 도덕적인 면모와 순수한 용기에 마음이 끌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정전(停電)의 시간`에서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공원에서 일하는 `병태`는 공기업에 다니고, 치과를 개업하고, 대형 외식업체를 경영하는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가진 것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세면장에 갇힌 귀뚜라미를 딱하게 여기는 마음결과, “동백꽃 한 송이가 제 그림자를 조준하며 천천히 떨어지”(187면)는 순간을 응시할 줄 아는 눈썰미는 김미월만이 찾아낼 수 있는 병태의 귀한 본모습이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의 등장인물들은 어딘지 볼품없는 겉모습이지만 작가는 끈기있게 그들을 지켜보고 지지한다. 소설 속 상황과 별 다르지 않은 처지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작가의 이러한 태도에, 언젠가 나타날 누군가도 자신을 알아보고 `펼쳐봐`주리라 희망하며 안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詩로 풀어가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대상

`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 한겨레아이들 펴냄, 정지원 글, 임소희 그림어린이를 위한 인물 평전 시리즈 `한겨레 인물탐구`일곱 번째 책`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한겨레아이들)이 출간됐다. 앞서`김구``간디``다윈``마틴 루터 킹``전태일``제인 구달`을 펴낸 `한겨레 인물탐구` 시리즈는 출시 이래 독자들의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 쉽고 균형 있는 서술과 다양한 시각 자료, 여기에 인물과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 독창적인 어린이 평전으로 자리매김했다.윤동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짧은 생애를 보내고 1945년 일본에서 옥사했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어의 절정을 보여주는 윤동주의 시들은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 20편이 넘게 수록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이 책에서는 `서시` `별 헤는 밤``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같은 대표작을 포함해 총 28편의 시를 본문에 직접 인용했다.작가는 시를 한 편씩 놓고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에 나타난 시대상과 인물상을 찾아본다. 시로 시인의 생애를 풀어 가는 방식이다. 책을 쓴 정지원 작가 역시 시인으로 특유의 감성과 표현을 잘 살려 윤동주 시를 해설하고 정감 어린 시선으로 시인의 삶을 탐색했다.`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맑은 마음을 닮아 가길,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을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길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당부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미래사회 모순 비판하는 청소년 성장소설

`메멘토 노라` 한겨레틴틴 펴냄, 앤지 스미버트 지음, 강효원 옮김 미국에서 살아가는 십대들의 일상을 다룬 청소년 소설`메멘토 노라`(한겨레틴틴)는 `알약 하나로 손쉽게 잊고 싶은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첨단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메멘토 노라`가 보여 주는 가정 폭력, 계급에 따른 분리, 정보로부터의 소외, 끔찍한 현실에 눈감고 고통과 공포 속에서 소비에만 더욱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까운 미래 사회라기보다 현대 미국 사회, 아니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인 현대 사회의 알레고리로 읽힌다.사회가 사람들, 특히 `약자`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에 눈감고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문 뒤로` 들어갈 수 있었던 노라가,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보이지 않았던 세계에 눈떠가는 모습은 아주 흥미롭다.`메멘토`를 만드는 노라와 미카, 윈터의 `위험한 시도`는 어느 모험 소설에서도 맛보기 힘든 긴장감을 선사하며, `기억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고통스럽지만 사회의 본 모습에 눈떠가는 십대 청소년들의 모습은 훌륭한 성장소설의 면모를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순을 맹렬히 비판하는 사회 비판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미카가 노라를 잘 알고 있었던 데 반해, 노라가 TFC를 찾기 전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미카와 윈터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세상과 약자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치부하는 기득권의 상징으로까지 읽힌다.버지니아 공대와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앤지 스미버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메멘토 노라`는 `2011 청소년도서관협회 선정 도서`로 뽑혔으며, 청소년문학협회(YALSA) 선정 `2012 최고의 청소년 소설` 후보에 올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1-06

일상에 지친 우리를 위한 금과옥조 같은 삶의 지혜

`지금 이순간 그대로 행복하라` 더난 펴냄, 틱낫한 지음, 272쪽, 1만4천원`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더난)는 베트남 출신 고승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사진 스님이 삶의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짧은 명상의 글을 통해 한 주 한 주 새로운 생명의 에너지를 심어준다. 참여불교의 주창자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이들의 고통을 목도하면서 “아픔을 통해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는 틱낫한 스님의 이런 삶의 깨달음을 담아낸 책으로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위로한다.1년을 53주로 나눠 주 단위로 성찰에 도움이 되는 말을 실었다. 365일 한 주 한 주 담긴 그의 글 속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감사와 여유, 그리고 잔잔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스쳐 지나가기 쉬운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은 사진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며,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등산을 할 때는 아래를 보아서는 안 된다. 위를 보아서도 안 된다. 두렵기 때문이다. 삶도 등산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된다. 세상을 호령하던 권력자도 결코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대전제 앞에 마주하게 된다. 그냥 지금 머물러 있는 그 자리만 보자. 죽음도, 삶의 끝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지나온 세월도 많이는 돌아보지 말고.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너무 많이 걱정하지 말자. 그저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하루를 깊이 호흡하며 보내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한 나머지 지금 이 순간의 행복들을 놓치고 살고 있다. 밥을 지으면서도 숲길을 걸으면서도 잠든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지금 느끼는 소소한 기쁨의 감정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틱낫한 스님의 금과옥조 같은 삶의 지혜와 아름다운 사진이 함께하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지금 눈앞의 행복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 사진을 통해 1년 365일 새로운 한주를 여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틱낫한 스님은 부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좀 더 쉽게 행할 수 있도록 명상을 구체적인 연습과 방법으로 전환시켰고, 그런 연습과 방법은 온 세상이 겪고 있는 고난과 시련을 우리가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으로 바꾸어 놓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8

빵과 포도주, 예수와 십자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열림원)는 지난 2007년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에 귀의한 이어령(77) 전 문화부장관이 펴낸, 텍스트로서의 성경읽기의 새로운 독법을 제시하는 책이다.이어령 전 장관은 문학을 가르친 교수로서, 그리고 기호학자로서의 호기심으로 틈틈이 성경을 연구해, 성경도 얼마든지 문학작품처럼 쉽게 읽고 재미있게 음미할 수 있는 텍스트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성경 읽는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이어령 전 장관이 택한 방식은 성경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키워드 삼아서 문화사적 맥락과 컨텍스트를 추적해나가는 것이다. 마치 문학작품처럼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그리고 플롯 등을 하나하나 풀어서 해석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성경 속에 숨겨진 놀라운 매혹과 조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경읽기의 한 방편으로 시학적인 독서법을 주문하면서 성경에는 시학에서 주로 쓰이는 수사법이 가득하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만 성경이 감춰둔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수사적 표현의 가장 비근한 예로 `빵`의 다양한 용례를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 원서에 있는 빵을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떡이라고 번역했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이 `제유법`이라는 수사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오류임을 밝힌다. 주기도문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영어원문을 보면 양식이 일용할 빵(daily bread)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 빵은 양식 전체, 더 확장해서 의식주의 모든 물질적 생활을 상징하는 제유적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유목을 기초로 했던 유대문화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빵처럼 식탁 위에 매일 오르는 음식물을 어쩌다가 명절 같은 잔칫날에나 먹는 떡으로 옮긴다면 제유적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오류는 단어 하나의 잘못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곧 성경의 수사 구조 전체가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제유법이라는 수사학적 대칭물로 쓰인 빵을 통해서 성경 전체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수사학적 세계의 세밀한 구조와 상징 코드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책의 표제를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고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적 상징성을 설명하기 위해 `빵`이 가지고 있는 의미 분석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빵을 떡으로 번역할 경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사학적 오류를 범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인 `최후의 만찬`의 의미 역시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는 빵과 포도주는 어울리는 조합인데, 떡과 포도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빵과 포도주를 우리에게 익숙한 떡과 막걸리로 번역한다면 최후의 만찬의 장면에서 성체의 비유 코드와 상징은 없어지고 말 거라는 것이다. 막걸리는 적색이 아니기 때문에 포도주가 가지고 있는 피의 상징성을 잃고 아울러 고유한 메시지도 희석된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수사학적 독법과 함께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것으로 저자는 문화와 생활양식에 대한 이해를 꼽는다. 예를 들면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전날에 열렸는데 유월절에는 희생양을 바치는 유대인의 풍습을 알지 못하고서는 최후의 만찬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월절을 추석이나 단오로 번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빵에 이어 눈물, 새와 꽃, 아버지, 탕자, 양, 집, 목수, 접속, 낙타, 포도, 제비, 비둘기, 까마귀, 독수리, 지팡이, 사막과 광야, 예수, 십자가 등 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을 프리즘 삼아서, 성경 읽기와 해석의 새로운 각도를 제공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8

신비한 성가곡과 스릴러 소설의 절묘한 만남

`미세레레` 문학동네 펴냄,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번역, 388쪽, 1만3천원`미세레레`(문학동네)는 프랑스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의 `황제`로 불리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50)의 일곱번째 장편소설이다.`검은 선`이후 3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이 소설은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출발해 음악과 종교, 건축 등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서구의 과거 어두운 역사로 뻗어나간다. 그랑제 소설의 특징인 저널리즘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듯한 생생한 묘사가 작품 곳곳에 배치돼 있다.`미세레레`는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프랑스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고 한 달 동안에만 28만 부가 판매됐다. 제목 `미세레레`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성가곡`미세레레`(`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랑제는 스릴러 소설 속에 클래식 음악을 절묘하게 녹여냈다.소설은 그랑제가`시네 라이브`라는 프랑스의 한 영화 잡지사의 청탁을 받고 쓴 시놉시스에서 출발했다. 유명 작가들이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골라 속편의 시놉시스를 써보는 기획을 위해 그랑제는`마라톤 맨`의 속편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원고를 잡지사 외에 그의 책을 출간하는 알뱅 미셸 출판사의 사장에게도 전달했다. 그런데 원고를 읽은 사장은 이런 대단한 구상은 반드시 소설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책으로 출판할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이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7백여 쪽 분량의 소설로 탄생한`미세레레`는`범죄 소설`로 유명한 이탈리아 국민 배우이자 영화감독 미켈레 플라치도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천사의 음성으로 착각할 만큼 맑은 목소리가 부르는 신비한 성악곡`미세레레`는 소설 내내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사건의 중심에 등장한다. `다이아몬드의 순수성`을 지닌 이 목소리들이 악의 근원을 향한 결정적 키워드이자 범죄의 핵심인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8

`인생 멘토` 聖人 17명에 대한 한 사제의 묵상서

`나의멘토 나의성인`가톨릭출판사 펴냄, 제인스 마틴 지음, 600쪽, 1만8천원 미국 예수회 사제인 제임스 마틴이 펴낸 `나의 멘토 나의 성인`(가톨릭출판사)은 한 사제가 자신의 일생을 살아오면서 성스러운 인물(聖人)들이 어떻게 하여 자신의 삶에 동행하는 멘토가 되어 주었는지에 대한 묵상서다.저자 자신이 미지근한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다가 직장 생활을 한 뒤 수도회에 입회해 부대끼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성인 17명을 친근하고 가깝게 소개한다.저자는 성인의 생애를 단순히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성인으로부터 얻은 교훈, 느낌, 영감 등을 진솔하게 전한다. 잔 다르크, 마더 데레사, 교황 요한 23세, 요셉, 토머스 아퀴나스 등이 다뤄진다.“나는 또한 그들의 우정도 감지한다. 나는 성인들을 알면 알수록 하느님과의 삶을 즐기는 이들이 나를 돕고 있고, 그들은 나의 편이고, 그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훌륭히 살아내기 바라고 있으며, 그들은 내가 훌륭한 예수회원이요 사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느낀다.”(576쪽)저자 제임스 마틴은 철저히 현대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그는 어렸을 적, 집에서 종교 서적을 한 권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신앙생활에 미지근했던 가정에서 자라, 가장 취업이 잘된다고 알려진 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영대학원인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대기업 GE에서 빠른 승진가도를 달리다가 예수회에 입회하여 여러 사도직을 경험한 후 사제가 되어, 지금은 뉴욕 맨해튼에서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미디어 관련 일을 하고 있다.그런 그가 이러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놀라운 친구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그 친구들이 바로 가톨릭교회의 성인들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성스러운 사람들이 단지 역사적 인물일 뿐이지만, 저자에게 그들은 절친한 벗이었고, 평생토록 함께해 준 소중한 멘토였다.이 책에서 저자는 특히 우리가 성인들과 맺는 관계가 `수호자`형과 `동반자`형이 있다며, 우리 교회가 성인을 수호자로만 모시는 데 대해 안타까워한다.그러고는 성인들이 우리의 동반자, 우리의 멘토가 되는 분들임을 역설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성인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상기시키며,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희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성인이 되기를 갈망하기만 하면 된다고 격려한다. 아울러 성인이 된다는 것 또한 다른 위대한 사람을 닮아야 한다는 식으로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되는 것이라 역설한다.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성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저자는 예수회 수련자가 되면서 독서를 통해서 혹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성인들을 한 분 한 분 알아갔다. 그리고 성인들의 생애나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신과 공통점을 확인하며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성인들이 자신과 늘 함께하면서 의견과 조언과 도움을 주는 형이나 누나 같은 멘토가 되었던 것이다.저자는 우리가 성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이 `수호자`형과 `동반자`형이 있음을 예리하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인을 수호자로만 여기지 동반자로 여기지 못한다고 지적한다.저자는 초대교회에서는 성인들이 `수호자`라기보다는 `동반자`에 더 가까움을 일깨워 준다. 그러니까 성화와 성인의 지위가 보다 평등했고, 친구 같은 관계였다. 그러한 예로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를 `성인`이라 지칭했음을 들 수 있다.(우리말 성경에서 `성도`라 옮겨서 책의 본문에도 `성도`라고 옮겼지만, 그리스어 원문은 `성인`이라는 뜻의 하기오스 a`gioj를 썼다.-편집자 주) 즉 성인들은 우리보다 앞서 가며 우리를 격려하는 친구이자 신앙 공동체의 형제자매이며 동시에 거대한 `증거자 집단`인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2

상처받은 삶, 따뜻한 유머로 그려

`웃는동안` 문학과지성사 펴냄, 윤성희 지음, 312쪽, 1만1천원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설 세계를 구축해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더욱 탄탄하게 형성해온 작가 윤성희의 신작 소설집`웃는 동안`(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올해 펴낸 첫 장편소설`구경꾼들`에서 그간 단편에서 보여줬던 소설 세계를 훌륭하게 확장해 선보인 바 있는 작가이기에 장편 이후 찾아올 소설집에 대한 기대 역시 컸다. 소설집으로는 2007년 펴낸`감기` 이후 4년 만이어서 그 반가움이 더한 이번 소설집에는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부메랑`을 비롯해 총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세부적인 전후 상황 설명을 배제하고 철저한 단문 위주의 글쓰기를 고수하는 윤성희의 소설은 짧은 이야기소들을 풍성하게 활용하면서 상처받고 빈곤한 이들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유머로 그려내어 특유의 힘을 발휘한다. 그 안에는 우연한 불행이 늘 농담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하여, 우연이 만들어낸 희극적 상황 앞에서 울어야 하는데 웃거나 웃어야 하는데 눈물이 나는 독특한 경험을 하며, 독자들은 종종 인간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혹독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어쩌면 잔인해 보일 정도로 혹독한 이 우연성을 불가피하게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일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현재만을 보며 살아가는 지금의 `웃는 동안`과 내 손에서 빠져나간 부메랑이 다시 돌아와 거짓으로 포장된 자서전을 처음부터 고치게 하는 그 순간까지, 삶의 시간을 폭넓게 아우르는 깊이를 윤성희의 네 번째 소설집 `웃는 동안`에서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2

로트만 사상 전과정 다룬 본격 연구서

`사유하는 구조-유리 로트만의 기호학 연구` 문학과지성사 펴냄, 김수환 지음현대 러시아 지성계의 대표적 학자 유리 로트만. 모스크바-타르투 학파로 지칭되는 소비에트-러시아 기호학파의 수장이며 흔히 `문화기호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미하일 바흐친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표적인 현대 러시아 사상가이다. 생전에 10여 권의 단행본과 5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20세기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위대한 학자임에도 한국에서는 고작 몇 권의 번역서만이 소개됐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트만 사상의 전 과정을 다루는 최초의 본격 연구서가 출간됐다. 촉망받는 젊은 소장학자이자 국내 유일한 로트만 전공자인 김수환(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의`사유하는 구조―유리 로트만의 기호학 연구`(문학과 지성사)가 그것.저자 김수환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술원) 문학 연구소에서 로트만의 문화기호학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유일의 로트만 전공자로, 2003년 모스크바에서 단행본 연구서인`유리 로트만의 이론적 진화의 근본 문제들`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연구·저술·번역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학자이다.`사유하는 구조`는 로트만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10년간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결정본이자 오랜 시간 공들여 쓴 노작이면서 저자 자신의 첫번째 저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30여 년에 걸친 로트만 사유의 흐름을 살피고 그 과정의 주요 국면들을 분석함으로써, 로트만 이론의 전모를 드러내고자 했다.이렇듯 로트만 사상의 `총체적 전유`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책의 목표로 삼은 저자는 그러나 놀랍게도 날카로운 통찰과 전공자다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로트만 사상 특유의 `다면적 성격`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해나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2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절대강자다”

`절대강자` “새는 조그만 벌레 한 마리를 잡아먹는 일에도 철저한 집중력으로 온 몸을 투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소득이 신통치 않을 때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가부터 반성해 볼 일입니다. 어떤 단점을 지적받았을 때, 자신의 단점에 열심히 변명이나 이유를 갖다 붙이는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쉽게 쓰레기통 속에 내던져버릴 위인이 못 됩니다. 개인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디딤돌은 이유나 변명이 아니라 후회나 반성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트랙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물 중, 가장 뛰어넘기 힘든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의 장애물입니다. 명심하세요. 이 장애물은 변명에 의해서 더욱 견고해지고 반성에 의해서 더욱 허술해집니다”―`반성이 그대를 진보케 하고 변명이 그대를 퇴보케 하리라`, `1장 뇌에서 마음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 중좋은 학교, 훌륭한 집안, 멋진 이성친구 등 남 부러워할 만한 이유들 하나 갖지 못해 보이는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면, 취업이나 승진 등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친구들 옆에서 주눅 들어 있다면, 어쨌든 뭐든 되겠지 같은 막연한 기대에 자신이 지쳐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그것이 내 안으로 움츠러들고 있는 자신감 때문이라는 생각, 해본 적 있는가?베스트셀러 `하악하악``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아불류 시불류`를 탄생시킨 이외수(65) 작가와 정태련 화백이 이번에는 `인생 정면 대결법`이라는 부제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신작 에세이`절대강자`(해냄 펴냄)를 출간했다.70만 부 판매를 기록한`하악하악`을 포함, 에세이로만 통산 110만 이상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두 작가의 네 번째 책으로, 세상에 대한 예리한 시각이 돋보이는 이외수 작가의 글 149편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해 온 우리 유물들의 혼을 담아낸 정태련 화백의 세밀화 37점이 담겨 있다. 이와 더불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글과 그림의 장중한 무게감을 완화시키는 박경진 작가의 깜찍한 아이콘은 위트와 유머를 선사하며, 책의 말미에 수록된 문화재평론가 김대환의 유물해설은 우리 역사와 전통,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30년 가까이 지기(知己)로 인연을 맺어온 두 작가들의 마음 속을 관통하는 것은 누가 뭐라든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대는 절대강자”라는 사실이다. 수천 년을 버티어내며 세상 풍파와 싸워온 유물들이 그 자체로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듯, 우리들 모두는 스러지지 않는 정신력을 품어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절대강자`인 것이다.1장 `뇌에서 마음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 2장 `육안과 뇌안을 감고 심안과 영안을 떠라`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경계를 담고, 3장`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합시다, 4장`마른 가슴에 물 주기, 5장 `손금 속으로 강이 흐르리`에서는 삶에서 놓치고 있는 감성을 북돋워주는 글로 채워져 있다. 이어 6장`배만 채우지 말고 뇌도 채웁시다`, 7장 `엉덩이로 버티기`, 8장 `먼 길을 가려거든 발이 편한 신발부터 장만하라`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과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마지막으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고백과 살아갈 시간들에 대한 다짐은 9장 `머리 닿는 부분이 하늘이고 발 닿는 부분이 땅입니다`와 10장 `마음에서 마음으로`로 이어지며 `꽃 피는 그날까지` 그대 살아 있으라고, 버티어내라고 당부한다./윤희정기자해냄 펴냄, 이외수 지음, 정태련 화백 그림, 268쪽, 1만3천8백원

2011-12-14

운명을 바꾼 만남, 정약용과 제자 황상

`삶을 바꾼만남` 200년 전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그의 제자 황상(1788~1870) 사이에 이어진 도탑고 신실한 사제 간의 정리(情理)가 한 권의 책을 통해 커다란 의미로 되살아난다. 신간`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은 고전 대중서 분야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이끌고 있는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다산과 황상이 시로 나눈 교유의 흔적을 44꼭지의 이야기로 정리했다.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인 다산 정약용은 많은 제자와 후학을 거느린 조선 최고의 석학이었다.그런 그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제자가 있었다. 신유박해 와중에 멀리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와 변변히 머물 곳도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던 정약용은 당시 머물던 동문 밖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었고, 1802년 그곳에서 열다섯 소년 황상을 만난다.시골 아전의 아들이던 황상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1818년 스승이 해배돼 서울로 돌아간 뒤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던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백적동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초서와 시 짓기 등의 공부를 놓지 않았으며, 늘그막에는“일속산방(一粟山房, 좁쌀 한 톨만 한 작은 집)”을 지어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모두가 출세를 위해 공부할 때, 오직 황상은 스승이 입버릇처럼 일러주신 “유인(幽人,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숨어사는 사람)의 삶”을 실천했던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 펴냄, 정민 지음, 148쪽, 2만3천8백원

2011-12-14

격동의 시대 희비 진솔 담백한 노래

`시간은 무겁다`1983년`광주일보`신춘문예와 무크지`시인`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고광헌 시인의 두번째 시집`시간은 무겁다`(창비)가 출간됐다. 첫 시집`신중산층교실에서`(청사 1985) 이후 26년 만에 선보이는 이 시집에는 촉망받던 농구선수에서 해직교사, 사회운동가, 언론사 대표 등의 이력을 거치며 격동의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시인의 신산한 삶과 올곧은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나온 “삶의 짠한 곳을 콕 집어내어 환하게 하고 아득하게 하는 아름다운 시들”이 잔잔한 울림을 던지며 가슴을 “울컥, 하게 만드는”(안도현, 추천사)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지난 세월, 암울한 시대에 맞서 온몸으로 “최루탄 산발하던 시간 속”(`즐거운 추억`)으로 달려왔던 시인은 잠시 가쁜 숨을 가다듬고 “유일하게 평화로 남은/유년의 시간”(`나무들은 반듯하다`)을 거슬러 올라간다.“씀바귀 같던 그 시절”(`오누이`), “식민지 하늘, 어두운 들판”에서 “저당잡힌 생”(`가을 내소사에서 아버지를 보았다`)을 살았던 아버지와, “우물 속으로/무심한 별들이 쏟아지던 밤” “교복이 입고 싶”어 흐느끼던 누님과, 누님의 “얇게 여윈 잔등 쓸어주며/목젖 아래로 우시던”(`누님의 우물`) 어머니가 아련한 추억 속에서 떠오른다.돌이켜보면 “위로받고 싶은 슬픔이 너무 컸”(`회기동 한 시절`)던 시절, “산에 간 큰성/살릴라고 십삼년간/감악소 담벼락에” “몇동이나 되는”(`다시, 어머니가 쓴 시`) 눈물을 뿌렸던 어머니는 특히나 시인에게 특별한 존재로 되살아난다. 통한의 세월을 살면서도 “죽음에 맞불을 놓으”며 “생의 품격”을 잃지 않고 “기품이 넘치던”(`시간처럼 무거운 물건 보지 못했네`) 어머니의 삶은 “거친 발길에 제 몸 맡”기며 “밟히면서 강해”(`차전초`)지는 민중의 삶, 그 자체이다.상처로 얼룩진 쓰라린 시대를 견뎌온 `어머니`의 기품을 가슴에 새기며 가파른 삶의 현장을 숨가쁘게 달려온 시인은 이제 “섣부르게 이기려는 흉내 내면서”(`마흔`) “백미터 달리기로 살아온 세월”(`나무들은 반듯하다`)을 되돌아보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이제 겨우 용서를 말”하는 “쓸쓸한 후회”와 “한없이 나약했”던 “죄책감”을 “돌릴 수 없는 나이테 앞에서 고백”(`이제 용서를 말하겠네`)하면서, “몸속 어디쯤에 숨겨둔 눈물”(`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을 터뜨려 “근심/가득한 몸”으로 운다.몸이 운다/아프다고, 슬프다고/고함지른다/마음보다 먼저 울어버린다//근심/가득한 몸//더이상/상처를 안고는 살 수 없다고/오늘밤/조용히 관절 일으켜세우고/울어댄다(`몸에 대하여`전문)그러나 지난 세월에 회한만 남는 것은 아니다. “누구 앞에 선다는 것은/배우는 일이라는 걸”(`즐거운 추억`) 깨달은 시인은 “뻔히 질 줄 알면서/앞질러 달리던 시절”(`그대, 다시 박수 받지 못하리`)을 새삼 그리워하며 “스스로를 던져/누군가의/생을 거룩하게 하고//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가슴에 품어/희망을 이어간 사람들”(`겨울 등고선`)을 위하여 “정직한 슬픔의 노래”(고명섭, 해설)를 부른다.비우지 않고/소리 채울 수 없다지만/버리지 않고/크게 울 수 없다지만//나, 저무는 5월/미처 채우지 못한/노랠 불러야겠네//다들 이제 끝났다고/발길 돌릴 때/혼자 기어코 울어버린 사내를 위해/노랠 불러야겠네/저 넘쳐나는 눈물 불러온 경계 위에서/오늘, 기어코 노랠 불러야겠네//너를 위해/처음부터 비우고/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울어버린/한 사내를 위해//기다리다 홀로/노래가 되어버린 사내를 위해/차마 소리가 되지 않는 노랠 불러야겠네(`노래` 부분)시인은 이번 시집을 펴내며 “시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킨 시간이 멀고 무겁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하지만 “삶의 현장의 부름에 응답하느라 시를 쓰지 못하는 동안에도 그는 시인이었”고, “저 세월 몰래 쓴 시들”이 보여주듯이 “날마다 시인으로 사는 시인이었다.”(해설) 그는 여전히 “빈집에/홀로 피어/발길 붙드는 꽃들”(`빈집`)에게서 애정어린 눈길을 거두지 않고, “하찮게 보이는 것에”도 “희망을 품는”(`큐레이터는 혼자였네`) 다감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시대의 부름에 따르느라 오랜 시간 침묵했던 한 서정시인을 다시 맞이하게 된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창비 펴냄, 고광헌 지음, 124쪽, 8천원

2011-12-14

정갈한 언어로 일군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정 세계

한국 서정시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서 시단의 큰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는 박성우(40) 시인의 세번째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펴냄)이 출간됐다.첫시집`거미`와 두번째 시집`가뜬한 잠`을 통해 서정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시인은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직접 몸 부대끼며 겪은 체험 속에서 가식 없는 정갈한 언어를 일구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그린다. 행간에서 출렁거리는 곰삭은 시어와 감각적이고 정밀한 묘사가 곳곳에서 은은한 빛을 반짝이며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나는 자주자주자두나무 정류장에 간다비가 와도 가고눈이 와도 가고달이 와도 가고별이 와도 간다덜커덩덜커덩 왔는데두근두근 바짝 왔는데암도 없으면 서운하니까비가 오면 비마중눈이 오면 눈마중달이 오면 달마중별이 오면 별마중 간다"공동체적 삶의 회복을 지향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농경문화적 전통이 살아 숨쉬는 “외딴 강마을”(`자두나무 정류장`)을 주요 시적 공간으로 삼는다. “발 동동거릴 일 없이 느긋”(`나흘 폭설)한 그곳에서는 `나`와 `너`의 경계도 없고, 손익을 따지는 약삭빠른 계산도 무의미하다. 한 사람이 먼저 베풀면 자연히 그에 대한 보답이 이어지는 순박한 마음이 있을 뿐이다.시인이 그려내는 이곳의 삶의 풍경은 무척이나 정감있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병원에 모셔다드린 보답으로 “지팡이 앞세우고 물어물어,” “족히 일년이 넘게” 집을 수소문하여 “참깨 한 봉지”(`참깨 차비`)를 들고 찾아오신 할머니, “닭서리”를 하다 들키자 닭 주인집 “논두렁과 밭두렁 우거진 풀”과 “동네 진입로며 마을 안길 가녘의 수북한 풀”까지 “시원시원” 베어내는 것으로 닭값을 대신하는 “한동네 환갑어른”(`닭값`). 이런 이웃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시인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아, “윗집 할매”가 “내 텃밭에 요소비료를 넘치게 뿌려” “상추며 배추 잎이 누렇게 타들어”가도 원망은커녕 “비울 때가 더 많은 내 집을 일없이 봐주”시는 할머니에게 “콩기름 한 통 사다가 저녁 마루에 두고”(`별말 없이`) 오는 선한 마음을 베풀며 살아간다.“외딴 강마을/자두나무 정류장에//비가 와서 내린다/눈이 와서 내린다/달이 와서 내린다/별이 와서 내린다//나는 자주자주/자두나무 정류장에 간다//비가 와도 가고/눈이 와도 가고/달이 와도 가고/별이 와도 간다//덜커덩덜커덩 왔는데/두근두근 바짝 왔는데/암도 없으면 서운하니까//비가 오면 비마중/눈이 오면 눈마중/달이 오면 달마중/별이 오면 별마중 간다”(`자두나무 정류장`부분)남달리 따뜻한 시인의 시선은 이웃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성찰하며 생명의 근원을 파고든다. 강변을 걷다 발견한 고라니뼈에서 “물 한 모금과 목숨이 아무렇게나 뒤엉킨 시간”(`고라니뼈`)을 보며 자연과 생명의 섭리를 일깨우는 시인은, “씨앗 묻은 일도 모종한 일도 없는”데 “소나무에 호박넝쿨이 올”라온 “뜬금없는” 일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생명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깨닫는다.시인은 또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상징으로서`배꼽`을 통해 생명의 본성을 재발견한다. “우리가 밥 배불리 먹고/배를 문지르는 버릇이 생긴 것”이나, “고플 때도 입이 아닌/배를(아니, 정확히 배꼽을) 만져보는 것”이 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입이었던 배꼽”(`배꼽 2`)을 기억하려는 무의식적인 몸짓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지금은 “입에게 입의 일을 맡기고/입을 꼭 다문 입”에 불과한 배꼽을 만지면서 “엄마와 조곤조곤 애기하던 입”의 기억을 되살린다.박성우의 시는 낯설고 인공적인 언어로 가득한 최근 시들의 한 경향에서 한 발 비켜서서 “일상의 진실과 생명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하상일`해설`)에서 현재의 우리 시단에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첨단의 감각에 기울기보다는 순박하고 투명하며, 때로는 “서른일곱 먹도록” “서울엔 종점 같은 건 없는 줄 알았”(`종점`)다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중심에서 외떨어진 삶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그의 시는, 언뜻 보기에 낡고 오래된 듯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더욱 생생한 서정시의 환한 미래를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07

20세기 중국 역사의 격변기

`펑유란자서전`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펑유란 지음, 3만원 삶에서 막다른 골목을 만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처음 몸담고 있었던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며 서구적인 정신과 가치에 젖어 있던 사람도, 인생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하면 그간 알게 모르게 내 정신을 구성하고 있던 동양적 정신의 힘을 느끼게 된다. 인생의 험로를 어느 정도 더듬어본 중장년층이 동양 철학에 관심을 느껴 노자나 장자의 고전을 읽기 시작한다거나, 최근 도올 김용옥이나 강신주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철학자들이 풀어내는 동양 철학 방송 및 서적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듯 동양 철학이 관심 받는 가운데, 동양 특히 중국 철학에 관한 한 놓쳐서는 안 될 거장을 새롭게 소개한다. 그 삶 자체가`20세기 중국 철학사`라고 평가받는 펑유란(馮友蘭·1894~199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20세기 중국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철학사가인 펑유란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국 철학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이다. 세계 최초로 중국 철학의 방대한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펑유란의 저서 `중국철학사`는 식민지 시절부터 우리나라 학자들에게 읽혔을 뿐만 아니라 영어로 저술돼 서양 철학자들이 가장 포괄적이며 체계적으로 중국철학을 접할 수 있게 했다.펑유란이 1934년 중국인 최초로 중국 철학을 집대성한 이 책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100권의 책`에 오를 만큼 20세기 지성사에 획을 그은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말하자면 현대인이 중국철학을 이해하는 기틀을 마련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근대를 거치며 서양과 동양 양쪽에서 중국 철학, 나아가 동양의 철학 정신을 되돌아보고 지킬 수 있게 한 거장이었다.`평유란 자서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펑유란이 아흔 살을 앞둔 노년기에 접어들어 자기 일생을 막내딸 앞에서 구술한 내용을 엮은 자서전이다. 자서전엔 그의 삶 자체가 `20세기 중국의 철학사`로 불릴 정도로 중국 역사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철학자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담겼다.“21세기에는 중국 철학이 새롭게 빛날 것이다”라고 예언한 펑유란의 유일한 자서전인 이 책에서 역사와 철학과 인생의 의미를 만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07

20년간 12편 출간된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첫 작품

`탐정은 바에 있다` 포레 펴냄, 아즈마 나오미 지음, 376쪽, 1만2천원아즈마 나오미(55)의 장편소설`탐정은 바에 있다`(포레 펴냄)는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약 20년간 12편이 출간된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아즈마 나오미는 개성 넘치는 시리즈의 잇따른 성공으로 기예의 미스터리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여류 작가다.지난 9월 개봉한 영화`탐정은 바에 있다`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바에 걸려온 전화`의 내용으로 만들어졌다.홋카이도 삿포로에 사는 탐정이 대도시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비정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나가는 내용의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는 영화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고, 개봉 이후 이 시리즈 전체가 서점 진열대를 도배하다시피 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팬들의 성원에 영화 역시 후속편이 제작될 예정이어서 당분간 이 열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탐정 `나`는 뛰어난 관찰력과 예리한 판단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나가기 보다 수상하다 싶은 일에 앞뒤 안 가리고 일단 고개부터 들이밀고 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표적이 돼 난데없이 두들겨 맞거나 쫓기거나 한다. 티격태격 난투극을 벌인 뒤, 탐정은 집으로 돌아와 아프고 쑤시는 몸을 달래가며 사건의 고리를 이어 맞춘다. 그래서 그의 밤은 언제나 고달프다. 가끔은 깜빡 정신을 잃고 차가운 땅바닥에 쓰러져 주위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기도 한다.왁자하고 독특한 번화가의 뒷골목에 있는 한적한 바에서 자신을 찾는 전화를 기다리며 위스키를 홀짝이는 탐정 `나`와 비정한 거리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사건들의 조합. `스스키노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차가운 하드보일드의 냄새를 풍기면서도 흘러간 시대의 향수, 유머와 수다스러운 요설이 넘치는 내레이션으로 독자를 웃음 짓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1992년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행간에는 요즘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유머가 반짝이고 캐릭터 조형도 세련됨을 갖췄다. 출간 당시 유례없던 이 유머러스한 하드보일드 문학에 평단에서도 당황했으나 2011년 유머 미스터리의 붐과 영화 개봉이라는 호조에 재조명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07

“아시아문학 동력은 구전 설화 전승 발전”

계간 문학잡지 `아시아` 통권 제23호 아시아 지역 지식인들의 문화예술적 소통과 연대를 진중하게 모색하는 계간 문학잡지 `아시아`(발행인 이대환·작가) 통권 제23호가 나왔다. 이야기가 아시아를 이해하는 귀중한 통로의 하나라는 데 뜻을 함께하는 아시아 각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번 특집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신화, 전설, 민담, 민요, 민속극 등 보편적 형식의 이야기에서부터 인도네시아의 와양, 베트남의 수상인형극, 한국의 판소리 등 각국의 고유한 이야기 양식이 가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이번 호 권두 에세이는 고은 시인의 `아시아 서사 시대를 위하여`를 실었다. 그는 이미지와 영상 과잉의 시대에서도 인류의 오랜 표현 행위로써의 `서사`, `이야기`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잃은 아시아`, 아시아 여러 지역이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그들의 구전 설화 유산을 전승 발전시킬 문화 동력이 척박한 상황에 대한 숙고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인은 지난 10일 서울에서 열린`아시아 스토리 국제 워크숍`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바 있다.조현설 교수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그동안 신화와 옛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지역의 신화와 민담 연구에 힘을 쏟아 왔다. 이번 호 특별 기고에서 조현설 교수는 옛 이야기의 보편성과 특별성을 `민담적 복수와 신화적 화해` 안에서 고찰한다.이번 특집과 관련해 조현설 교수의 특별기고와 더불어 지난 10일 열린 아시아 스토리 국제숍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김남일 소설가의 취재기를 준비했다. 아시아 10개국이 참가한 이번 국제 워크숍의 취지와 한계, 아시아 각국의 이야기 유산을 통해 앞으로 더욱 공고한 연대를 기대하는 바람을 들어본다.`마나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키르기스스탄의 구비영웅 서사시이다. 총 50만 행이 넘는 방대한 양으로 `일리아드`와`오딧세이`를 합친 것보다 스무 배나 길며 “키르기스 정신의 정점”이라고 불린다. `마나스`는 3대에 걸친 영웅들, 즉 마나스와 그의 아들 세메테이, 그리고 손자 세이테크의 전기 삼부작이다. `아시아`에는`마나스` 영역을 시도한 최초의 키르기스인, 엘미라 쾨춤쿨로바의 제1부 `마나스` 편에서 `마나스의 첫 번째 영웅적 업적`의 일부를 싣는다. 더불어 엘미라 쾨춤쿨로바의 해설`키르기스의 구전전통과 서사시 마나스`에서는 서사시 `마나스`의 구성과 음송자 `마나스치`의 역할과 중요성을 살펴본다.키르기스 영웅 서사시`마나스`를 암송하는 사람들을 `마나스치`라 일컫는다. 총 50만 행이 넘는 서사시를 몇 날 며칠 밤 암송하는 이들은 경이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방대한 서사시는 마나스치의 입과 입에서 전해온 구전문학의 최고봉이다. `자밀리야`, `백 년보다 긴 하루` 등을 써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소련 및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친기스 아이트마토프는 키르기스 출신이다. 최고의 마나스치로 인정받는 사야크바이 카랄라예프와 이웃이었던 친기스 아이트마토프는 작은 마을에서 이루어진 그의`마나스` 암송을 들으며 `천국`과 `말`의 신비로운 이중창을 목격하게 된다.이번 `아시아`제23호에는 네팔과 버마 그리고 한국 시를 싣는다. 특히 네팔 시는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젊은 세대 네팔 시인들 가운데서도 독특한 성향의 아비나쉬 쉬레쉬타의 시는 신비주의적 분위기가 강하다. 버마 시인 띳싸 니의 시는 `시란 항상 반시(反詩)`여야 한다는 자신의 믿음처럼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한국 시는 곽재구 시인과 최영미 시인의 신작시를 싣는다. 특히 곽재구 시인의 `나무`는 곽재구 시인만의 섬세함과 서정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단편소설 코너에 실린 독특한 상상력과 마술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이평재 소설가의 `가름의 멤스티치아`는 계속 되는 무더위에 전기가 간헐적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세기말의 풍경이라고 할 만한 시점의 이야기다. 게임 중독에 빠진 아들의 광기를 지켜보며 주인공은 흉흉한 민심 가운데 떠도는 괴담 속 기이한 짐승의 울음소리에 듣게 된다. 표명희의 `소품`은 한 겨울 보일러가 고장 나면서 주인공이 겪게 되는 우여곡절을 경쾌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감각적이고 톡톡 튀는 문체를 자랑하는 하재영의 단편 `피팅 모델`은 몇 가지의 징후로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주인공의 불안을 서늘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북한 소설가 김혜영의 `답`은 바람직한 교사상에 관한 교훈적, 교육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뒤떨어진 듯 보이는 `영성`이라는 학생을 두고 친구 사이인 두 교사 옥희와 경미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은 `좋은 교사`의 자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시리아가 낳은 탁월한 소설가 하나 미나의 `부대 자루 위에서`는 부두 노동자, 이발사, 기자 등을 거친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작품이다. 여린 하나는 일을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공사장으로 가 돈을 벌 각오를 하는데, 그곳에서 야지를리라는 감독관을 만나 하나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거친 노동자의 일상을 경험하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1-30

유머의 생산과 유통 이색 소재 미스터리소설

웃음`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0)가 신작 장편소설 `웃음`(전2권, 열린책들 펴냄)을 펴냈다. 이번 소설은 범죄 스릴러, 유머집, 역사 패러디의 속성을 혼합적으로 갖고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작품의 중심 소재는 유머의 생산과 유통이다. 유머는 그러나 이 작품에서 단순한 소재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유머는 이 작품의 배경이자 화두인 동시에 작품의 결을 만드는 화법이며 형식 그 자체다. 작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을 지향하듯 발랄하고 유쾌하게 달려간다.작가의 상상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수없이 접하는 우스갯소리들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편씩 절묘한 유머와 조크를 접한다. 더없이 완벽한 구성을 갖고 있는 `작품`들이지만 작가는 없다. 혹시 누군가, 또는 어떤 조직이 그런 조크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비밀리에 퍼뜨리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인간은 왜 웃는가?`라는 하나의 근원적 질문에 맞닿아 있고,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한 문학적 탐구가 바로 이 작품이다./윤희정기자`웃음` 열린책들 펴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440·464쪽, 각권 1만1천8백원

2011-11-30

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 문학이 있어 나는 설렌다

`모르는 여인들` 소설가 신경숙이 `종소리` 이후 8년 만에 여섯번째 단편집을 냈다. 지난 팔 년 동안 그는 장편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쓰는 데 집중했다. 그 사이사이에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쓴 셈이다.개인적으로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들이 씌어진 시간들은 특별하다. 청탁을 받아서 썼다기보다 그가 쓰고 싶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쓴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여기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들은 지난 팔 년 중에 작가가 가장 침울했을 때나 내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씌어졌다는 뜻이다. 동시대로부터 혹은 그가 맺고 있는 관계로부터 마음이 훼손되거나 쓰라림으로 얼룩지려고 할 때마다 묵묵히 책상 앞으로 가서 작품들을 썼던 것이다.“누구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마다 이 작품들을 쓰지 않으면 다른 시간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이 불완전한 세계가 발화시키는 슬픔과 분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어쩌든지 완성을 하고 나면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들 속엔 익명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성화(聖畵)가 있을 것이다. 주요인물로 등장하든 바람처럼 스쳐가든 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모르는 사람들을 나는 나의 동시대인들이라고 느낀다. 이 세계의 중심부에 있지 않고 주변부를 떠도는 잘나지도 독특하지도 않은 사람들. 군중 속에 섞여 있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사람들. 하지만 우리가 현대인이 되는 동안 상실해버린 인간적인 체온과 연민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나의 내적 요구에 의해 이러한 사람들을 비밀스럽게 하나씩 낳아서 세상에 섞어놓은 것은, 이 별스럽지도 않은 사람들의 인생이 한쪽으로 치우친 이 세계의 한 끝을 끌어올려 균형을 이루어주길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지난 팔 년 동안 써놓은 작품들을 모아 읽으며 내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따금 나를 행복하게 했던 나의 문장들도 사실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는 나의 동시대인들로부터 선물받은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것에 나는 아직도 설렌다./윤희정기자문학동네 펴냄, 신경숙 지음, 1만2천원

2011-11-30

詩가 어렵다고요? 마음이 通하면 쉬워요!

`시심전심` 문학동네 펴냄, 정끝별 지음, 260쪽, 1만6천원 시를 어려워하고 시를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여기 한 사람이 나섰다.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시를 가르치며 사는, 시인임과 동시에 명지대 국문과 교수인 정끝별, 그가 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의 `이심전심`에서 제목을 딴 이번 책 `시심전심(문학동네 펴냄)`은 입시를 앞둔 중고등학생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시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 마땅한 책이기도 하다. 시를 어려워하고 시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비단 청소년들만은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청소년문학문화잡지 계간`풋`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원고를 전면적으로 수정, 보완하여 내용을 보다 탄탄하게 구성한데다 감각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게 편집 방식에도 묘미를 둔 새로운 방식의 시 읽기 참고서다.이 책은 시를 읽는 능력, 시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어 하나하나를 꿈꿀 수 있는 섬세한 감각과 열린 상상력, 그것들을 엮어 한 편의 시로 종합해낼 수 있는 논리적인 사유야말로 시를 읽는 데 필수적인 능력임에 틀림없음으로 이를 키워주고자 시 한 편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본격적인 시 읽기의 해부 과정을 거쳤다.이 책은 총 5부로 나누어 시인 마흔 명의 시 마흔 편을 다루고 있다.김소월 시인에서부터 가장 젊은 장석남 시인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시사를 총망라해 국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들을 텍스트로 삼은 것이다. 또한 시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자주 실렸을뿐더러 그동안 잘못 읽어왔거나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이 많은 시들, 그러니까 해석의 여지가 많은 시들을 골랐다. 사실, 우리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시를 나름의 감각과 논리로 풀어낼 수 있는 내공이 쌓였을 때, 쉽고 좋은 시의 매력은 보너스처럼 거저 찾아오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그간 쉽게 접했던 시 해설서 그 이상을 넘어선다.시를 말하는 방식은 둘씩 짝을 지어 `수능(언어) 지문의 세트 형식`으로 구성했다.예를 들어 `사랑`을 주제로 한 1부에서 김소월의`진달래꽃`과 이성복의`꽃피는 시절`을, `청춘`을 주제로 한 5부에서 이상화의`나의 침실로`와 박두진의 `청산도`를 나란히 놓고 비교 분석 하는 식으로 말이다. 요즘 대입 수학능력시험은 두 편 이상의 시를 제시한 후 그 시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시를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에 표현 능력까지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매 편의 말미에 “그리고 여기”를 덧붙인 까닭은 제시된 시를 꼼꼼하게 촘촘하게 해석해보는 일로 말미암아, 제시된 시 이외의 시들을 자발적으로 찾아 읽게 이끌어 보다 심화된 학습 능력을 유도해보기 위해서였다.이 책에 있어 `읽는 책`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보는 책`의 기능이 추가된다면 머릿속에 시 한 편을 `그림`처럼 정리하게 할 수 있을 터, 하단 부분을 메모패드로 구성했다. 그래서 시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필자의 각주는 기호 대신 선을 활용해 해당 부분 본문과 연계, 한층 보기 쉽게 했다. 어려운 시어들은 표준국어대사전으로부터 뜻을 풀어놓았고, 헷갈리기 쉬운 한자들은 음과 뜻을 정리해 본문 속 문장들을 읽어나가면서 숙지하도록 정리했다. 또한 해설에 사용된 어려운 용어들의 사전적 뜻을 편집자주로 달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1-23

위기의 시대 문학을 다시 묻다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창비 펴냄, 한기욱 지음, 392쪽, 2만원평론가 한기욱계간 `창작과비평`편집위원으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치고 있는 평론가 한기욱의 첫 평론집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창비 펴냄)가 출간됐다. 1998년 이래 지금까지 발표해온 평문을 모은 이 평론집은 문학에 대한 신실함과 작품에 대한 섬세한 분별력, 외국문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식견이 조화를 이룬 성과이자 우리 평단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평론집 가운데 주로 시대론과 문학 쟁점을 다룬 1부의 평문들은 문학비평에 관한 저자의 주된 문제의식을 갈무리한 글들로, 특히 2000년대 이후 `창작과비평`을 중심으로 논의돼온 주요한 문학 쟁점들―2000년대 문학론, 근대문학 종언론, 리얼리즘론, 문학과 정치 논의, 장편소설론 등―을 망라하며 창비의 비평적 입장을 주도적으로 가다듬어온 자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과정에서 이 시대 한국문학과 비평의 향방을 놓고 동료 평론가들과 벌인 여러 날카로운 논쟁을 관전하는 것도 흥미롭다.저자에 따르면 문학비평의 주된 임무란 `문학의 진정한 새로움을 가려내는 일`이며, 그것은 곧 어떤 삶과 사회가 더 나은지를 분별하고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를 사유하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 새로운 것과 새로움을 참칭하는 것을 분별하는 작업이 불가결한바, 저자는 그를 위해 무엇보다 이론에 앞서 작품의 문양과 결을 세심하게 읽되 역사적 현실에 열린 비평의 자세를 강조한다.“문학에서 무엇이 새것다운 새것인지를 가리는 문제는 결국 `오늘을 사는` 행위와,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귀기울이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 작품의 문양과 결을 세심하게 읽되 역사적 현실에 열려 있는 비평은 정교한 이론의 적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평가가 맨몸으로 작품과 시대적 현실을 대면하는 과정이 요구되며, 이럴 때 이론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생기기도 한다. 하여 문학의 새로움은 창조적인 작품에서 발원하되 비평의 분투를 거쳐 우리에게 온다.”(`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윤희정기자

2011-11-23

벼랑 끝 곡예의 삶 그들을 어루만지다

`나비, 살랑거리다` 실천문학사 펴냄, 홍양순 지음, 280쪽, 1만1천원 이효석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가인 홍양순(53·사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나비, 살랑거리다`(실천문학사 펴냄)가 출간됐다.현대 사회에서 날로 황폐해져가는 가족의 운명을 그린 첫 소설집 `자두`에서 작가가 보여줬던 진실성 짙은 묘사는 이번 소설집에 들어와 더욱 핍진해졌고, 문장과 플롯은 한층 간결하고 탄탄해졌다.`나비, 살랑거리다`에서 홍양순 작가는 삶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이 소설의 운명이라 여긴다. 그리고 곧 삶의 상처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소설가 오정희는 “홍양순 소설에는 겨우겨우 숨쉬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가득하다. 단순히 소외된 자, 깊이 상처받은 자, 사회적 부적응자라고 명명하는 것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가녀린 인물들은 어느 먼 별에서부터 이 세상에 불시착한 사람들처럼 낯설고 불안하고 위태롭다.”라고 평하며 홍양순 작가가 불러내는 인간군상들의 면면을 환기시킨다.“순식간의 일이었다. 개가 염소를 낭떠러지 쪽으로 밀어붙였다. 염소는 여자가 숨을 멈춘 사이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절묘하고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틀었다. 검둥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유유히 걸어서 여자에게로 돌아왔다. 잠시 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자는 이번엔 많이 놀라지 않았다. 유심히 보니 염소는 개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개에게 접근해 뒷발로 툭툭 장난을 걸기도 했다. 개에게도 적의라고 할 것은 손톱 끝만큼도 없어 보였다. 염소가 다가오면 주위를 겅중겅중 뛰며 도리어 상대를 즐기는 것 같았다. 삶이라는 것이 어쩌면 저렇듯 벼랑 끝에서 벌이는 곡예와 같은 놀음은 아닐까. 여자는 검둥개와 염소의 무심한 장난을 보며 왠지 그럴 거라 믿고 싶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서 여행객들의 떠도는 소리와 함께 경운기 소리가 털털털 들려왔다. 섬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그의 말대로 아무 짓도 저지를 수 없는 섬이었다.” (-`마라도`中)다채로운 여덟 편의 이야기들 속에서 주요하게 반복되는 모티프는 바로 `상실`이다.`가족`과 `노동`의 주체되기를 상실한 소설 속 인물들은 매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교편생활 사직과 전자제품 대리점 사업에 실패한 후 낯선 공단 내 학교의 영어 주임을 맡은 남편, 그마저도 공장 노동자들의 활동을 도와 사측과 갈등을 빚는 남편 곁에서 현실에 대한 무기력감으로 자신을 “황량한 사막”과 동일시하며 “서서히 소멸되고 있”는 아내의 삶은 바로 `벼랑 끝 곡예`와 다를 바 없다(`미망(迷妄)의 집`).이렇듯 `나비, 살랑거리다`에 등장하는 작중인물들은 구체적 양상이 다를 뿐 삶의 빈곤과 무기력, 그리고 허무의 모습들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그들은 삶의 난경(難境)을 벗어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 쏟지만, 현실을 벗어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들은 차라리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젖어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이 삶을 포기하는 것도 결코 녹록지 않다. 온전히 살지도, 온전히 죽지도 못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고통스럽고 비루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억척스레 이것들을 살아내는 `곡예`를 보여준다. 작가는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존재들이 갖는 `생명력`에 주목한다. 작품 속에서 `생명력`은 때로 삶의 비루함에 굴복하지 않는 초월적 의지로 그려지기도 하고, 혹은 현실에 대한 아집과 만용으로 똘똘 뭉친 무모함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깊게 패인 상흔과 연루된 작은 것들의 `사이`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삶의 상처와 마주하고 아파한다. 알 수 없는 통점들이 곳곳에서 아우성을 쳐온다. 하지만 결국 고통들의 존재들이 서로 유대하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우리 삶의 어느 순간은 상흔들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작가가 우리에게 그 많은 인물군상을 소개시켜 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1-23

맛깔스런 사투리와 사람이야기

`그르이 우에니껴?` 푸른사상 펴냄, 권서각 지음, 304쪽, 1만3천800원 권서각(61) 시인의 산문집 `그르이 우에니껴`(푸른사상 펴냄)는 자전적인 에세이와 허구적인 픽션의 사이에서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문장을 통해 우리 시대의 현실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문화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경북 북부지역의 언어와 생활문화를 통해 우리 문화의 폭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소백산 아래서 생산된 무공해 문장과 감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산문집`그르이 우에니껴?`는 `그러니까 어찌하겠습니까?`라는 의미의 경북 북부 지역의 방언이다.저자는 경북 북부지역의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인이다. 시인의 변방 체험이 유머와 위트로 이루어진 맛깔스런 서사를 탄생시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재미있게 읽는 가운데 우리는 또 다른 문화를 체험하고 이웃의 삶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진다.제1부는 주로 소백산 아래 지역의 방언이 함의하고 있는 이 지역 사람들의 독특한 정서와 의식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실존하지 않는 상위개념의 방언이 소개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어느 곳에도 없는 방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생생한 경상도 방언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제2부는 학교와 교육에 관한 서사다. 조금은 엉뚱한 교사의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교육적 현실을 유쾌하게 풍자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아니라 구체적인 체험을 통한 서사라는 데 의미가 있다. 시골 학교에서 일어나는 맛깔스런 에피소드는 중장년 세대에게 유년의 추억을 덤으로 선물한다.제3부는 변방에 사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보통사람과는 다른 괴짜, 물질에 대한 욕심 없는 소박한 사람들, 수염을 기르거나 꽁지머리를 하거나 모자를 쓴 가난한 예술가, 서울 쪽을 바라보지 않고 소백산 아래 삶의 터전을 잡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지역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퇴계 선생의 일대기를 서사적으로 구성한`퇴계가 도산으로 간 까닭`은 인간 퇴계와 그의 사상을 감동적으로 들려준다.“권서각 선생의 글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 웃음소리가 창을 넘어 아랫집 웃집에까지 들리도록 크게 웃을 때가 많았다. 글은 모름지기 이렇게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웃음 뒤에 남는 게 있다.“그르이 우에니껴?”와 같이 말끝을 흐리는 어법, 무뚝뚝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말속에 함축되어 있는 경상북도 북부지역 사람들의 질박한 정서, 풋굿을 하며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긍정, 과묵함과 촌철살인이 공존하는 말과 태도에 대한 폭넓은 애정이 찐득찐득하게 묻어 있다. `맞다, 이런 서사가 바로 사람 사는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그런가 하면 김봉두 선생의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돌출행동과 저돌성은 읽는 이들의 속을 후련하게 한다. 가식과 허위와 출세주의를 향한 그의 공격적 행동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그가 진실하고 올곧은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무지막지해 보이고, 꼴통 소리를 듣는 이들의 내면에 자리한 진정성 그게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그들은 현실에선 비주류로 분류되겠지만, 그들의 생각이야말로 `주류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걸 독자들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변방에서 변방의 삶을 꿋굿하게 지켜나가며 경지에 이른 김봉두, 강시위의 자아야말로 권서각의 분신이 아닐까?” - 도종환 (시인)권서각 시인은 1951년 경북 순흥에서 출생했다.본명은 권석창. 안동교육대와 대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문학박사.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벌판에서`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시집 `눈물 반응` `쥐뿔의 노래` 등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을 맡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1-11-16

도시 재난과 허약한 현대인에 대한 고발

`아령 하는 밤` 창비 펴냄, 강영숙 지음, 244쪽, 1만1천원 김유정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문단의 걸출한 여성작가로 자리매김한 강영숙(44)의 신작소설집 `아령하는 밤`(창비 펴냄)이 출간됐다.`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이후 2년여 만에 펴내는 네번째 소설집 `아령 하는 밤`은 201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문래에서`가 수록돼 더욱 눈길을 끈다. 일상 속 불안과 악몽을 과감한 무늬로 직조해온 강영숙은 새 소설집에서 기존의 작품세계에서 몰두했던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에 대한 탐구를 한층 강하게 밀고 나가 완숙한 경지를 선보이는 동시에, 연대와 희망에 대한 모색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변곡점을 제시한다.이번 소설집의 테마는 `도시`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름아닌 `재해`로 가득한 도시이다. 재해로 뒤덮인 도시의 순례자로 나선 강영숙은 들끓는 욕망으로 번쩍이는 도시의 전면을 전복시키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문래, 강변북로, 광화문광장, 옥인동, 황학동 등 구체적인 지명들의 언급은 공포에 뚜렷한 원근감과 실감을 입힌다. 일찍이 그로테스크한 도시풍경을 소설의 주요한 장치로 활용했던 작가의 공간설정 능력은 이번 소설집에서 한결 무르익은 솜씨를 보여준다.가령`죽음의 도로`에서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여성이 강변북로에서 자살을 감행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강박적으로 그려낸다. 강변북로를 배경으로 시시각각 세밀하게 변해가는 화자의 위태로운 심리묘사는 현대인의 히스테리컬한 일상을 소름끼치도록 완벽히 재현한다.한편, `문래에서`는 구제역을 소재로 삼아 문명의 진보가 자초한 재앙을 건조하고 서늘한 문장으로 경고한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단편은 도시를 파고드는 재해의 기미를 예민하게 포착해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묵직한 작품이다.이밖에도 이혼한 전 부인의 실종 후 그녀를 찾기 위해 도시를 배회하는 사내가 등장하는`불안한 도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불행이 재해 이상으로 파괴적일 수 있음을 설득력있게 전개하며, 악취가 끊이지 않는 오염된 공단지대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짓궂은 유머로 버무린`아령 하는 밤`은 강영숙 특유의 기이한 환상이 돋보인다. 표제작이기도 한 `아령 하는 밤`에서는 특히 범죄의 가해자임이 암시되는 노인을 향한 화자의 선망과 두려움의 초조한 혼재 속에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그러나 이번 소설집에서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재해 자체보다 재해 그 이후이다.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아이오와가 배경인 `라디오와 강`과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뉴올리언즈에서 펼쳐지는 `재해지역투어버스`는 탈국경적인 도시의 재앙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소설에서 무게를 싣는 쪽은 머나먼 이국의 재해현장 보고가 아닌, 재해 이후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치유의 여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1-16

고독한 예술가의 유목민적 초상

`리투아니아 여인` 민음사 펴냄, 이문열 지음, 276쪽, 1만1천500원 소설가 이문열(63)이 신작 장편소설 `리투아니아 여인`(민음사 펴냄)을 펴냈다.`불멸` 이후 1년 9개월 만에 펴낸 이 소설은 이문열이 오랫동안 천착해 온 주제이기도 한 `들소`, `시인` 등의 계보를 잇는 예술가소설이다.이 작품의 주인공 `김혜련`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뮤지컬 음악 감독이다. `다국적 정체성`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녀의 타오르는 예술혼과 다문화적 사랑,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맞서 피와 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시대의 유목민적 생애가 슬프도록 아름답게 펼쳐지며,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진한 감동의 울림을 전한다.한국인이자 미국인이며 리투아니아인이기도 한 그녀, 뮤지컬 음악 감독 `김혜련`. 코카서스 인종의 용모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국적인 외모, 그리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지닌 그녀는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서, 또한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시대의 명사가 되어 각종 광고와 매스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부상한다. 소설은 그녀의 불꽃같은 사랑과 3년 만의 파경, 그리고 눈부신 성공 이면의 좌절을, 또다시 이 땅을 떠나고야 마는 고독한 유목민적 예술가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1993년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떠난 뮤지컬 관람 여행 중 소설의 모델격인 인물을 처음 만나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유년시절 한국에서 자랐던 그 여인의 추억담과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의 이모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가는 소설화에 대해 마음을 굳혔고, 결국 18년 만에 `리투아니아 여인`이란 작품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작가 이문열은 `리투아니아 여인`을 통해 “피와 땅이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21세기적 현실”을 지적하며, 태생과 인종, 지역이나 국경을 넘어선 다국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21세기적 정체성의 혼란상 및 그렇게 성장한 고독한 예술가의 유목민적 모습을 오롯이 보여 준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1-11-16

1%가 아닌 99%의 나와 우리들의 욕망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김경욱(40)의 신작소설집`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창비 펴냄)가 출간됐다. 등단 이래 놀라운 성실함으로 간단없는 자기갱신을 거듭하며 늘 주목을 받아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한층 정련되고 절제된 스타일과 능란한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며 인간과 이야기의 심연을 날렵하게 부각해내는 빼어난 경지를 선보인다.취업 성폭력 비틀린 욕망 등 출구가 없는 시대현대사회와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 아프게 꼬집어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잘 쓰는` 소설가이다. 20대 초반에 작품활동을 시작해 거의 스무 해 가까운 시간 동안 이번 소설집을 포함해 무려 열한 권의 책을 펴냈으며, 늘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며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를 던지는 소설들을 선보여왔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작품활동 내내 흔들림 없이 매번 스스로를 넘어서는 발전된 면모를 보여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한눈에 드러나는바, 단정하고 유려하기로 정평이 높은 문장은 한층 더 정련되고 절제되었으며, 플롯과 디테일도 더 정교하고 생생하다.그는 어쩌면 `소설을 잘 쓰는 법`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은 김경욱에 대한 기대를 갱신하지 않을 수 없다.“스스로 빛나지 않는 존재인 인간에게 어둠은 언제 찾아오고 언제 물러나는가. 스스로 빛나지 않는 사내에게 어둠은 찾아왔다 물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은 늘 있었다. 찾아왔다 물러갔다 다시 찾아오는 것은 빛이었다. 사내는 이제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무처럼, 한그루 나무처럼. 말을 잃은 계집애를 등에 업은 채.”(`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에는 전작들에 비해 훨씬 건조하고 묵직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소설집의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하드보일드한 색채가 강렬한 작품이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후유증으로 말을 잃은 초등학생 손녀와 재개발지역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사내가 있다. 이미 가스가 끊기고 곧 전기와 수도마저 끊길 막막한 상황이지만, 그는 보상금을 거부하고 가해자 아이들의 집을 찾아 치밀한 복수를 준비한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복수는 그를 둘러싼 완강한 현실에 어떤 의미있는 타격도 가하지 못한 채로 막을 내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한가닥 희망은 언뜻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미할 뿐이다. “이 도시에서만 수백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 암울하고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복수를 준비하는 사내의 행동이 냉정하고 담담하게 그려지는 가운데, 사내가 처한 상황의 암담함과 사내가 뿜어내는 의지의 박력이 서로 맞부딪치며 둔중한 울림을 전한다.`하인리히의 심장`은 두 남녀의 불가사의한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건조하게 나열한다.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황량한 내면과, 끝내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죽음 앞에서 망연히 서 있는 형사의 모습이 아득한 궁금증을 남기는 작품이다.출구 없는 가난에 짓눌린 남자들 삼대의 생활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또한 이들의 일상이 어떤 전망도 기대할 수 없이 무한히 반복될 것임을 보여주며 시종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한편 사회적 계층의 문제가 이야기의 핵심을 구성하는 작품들도 눈길을 모은다. 취업 사수생 과외교사 주인공과 압구정동 고등학생 커플의 한강변 데이트를 그린 `러닝 맨`은 한강변에서 수차례 마주치는 `뱀 문신을 한 사내`와 누렁개를 쇠줄에 묶어 끌고 가는 오토바이 등이 부녀자 납치강도사건에 대한 소문과 병치되면서 막연한 불안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우선 사로잡는다.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99%`는 1퍼센트의 상류층을 향한 우리의 속물적 욕망을 되비춘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최대리는 어느날 스카우트되어온 미국 유학파 스티브 킴에게 위기감과 열등감을 느끼는데, 그럴수록 스티브 킴이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전학간 학교에서 2등의 자리로 끌어내렸던 김태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힌다.소설은 그럴듯한 증거를 조금씩 흘리며 독자로 하여금 스티브 킴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지만, 종국에는 스티브 킴이 김태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도록 열려 있다. 그로써 소설은 스티브 킴에 대한 최대리의 의심이 어쩌면 그를 향한 질투와 선망이 낳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마저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열린 구조와 미스터리한 장치를 활용해 소설 속 인물의 시선을 이중 삼중으로 뒤집어 보이며 독자의 허를 찌르고 나아가 독자 자신의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수법이야말로 그의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기이며, 이것이 소설의 중핵에 있는 현실의 문제를 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주는 것임은 물론이다.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아버지의 부엌`에서, 어린시절 `미미의 부엌`을 갖고 싶어한 자신의 꿈을 용납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내내 타인의 선택에 이끌리기만 하는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 남자는 오랜만의 귀향길에서 비좁고 더러운 아버지의 부엌을 마주한다.소설의 말미에 부자가 함께 찾은 미술관에서, 핑크색 `미미의 부엌`을 확대해놓은 설치미술작품에 기대앉아 있는 아버지의 늙고 지친 모습을 주인공이 바라보는 장면은 이들 부자의 어긋난 욕망과 삶을 선명한 이미지와 상징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한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부엌`을 매개로 아버지와 주인공의 인생이 서로 통할 가능성이 희미하게 제시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이처럼 김경욱의 소설은 능란한 수법으로 독자를 이끌어 손에서 책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이윽고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인간의 심연, 또는 이야기의 심연이라 할 공간을 독자에게 열어 보인다. 곱씹을수록 더 크고 깊어지는 이 심연 앞에서 다만 독자들은 그 여운을 음미하고, 나아가 찬찬히 스스로 그 심연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김경욱 소설이 지닌 힘이자 그만의 매력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창비 펴냄, 김경욱 지음, 300쪽, 1만1천원

2011-11-09

창의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림역사책

`역사의 미술관` 역사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시대의 흐름을 통찰해내는 가장 교훈적인 텍스트이다. 역사는 사유하는 자의 시각에 따라, 그의 시대정신에 따라, 그의 창의력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되고 또한 기록된다. 이주헌의 `역사의 미술관`(문학동네 펴냄)은 그림을 통해 보다 생생하고 창의적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그림 역사책이다. 그림 속의 역사 뿐 아니라 그림이 그려진 시대 상황까지 아우르며 또한 두 시대의 연관성까지 파고드는 깊은 성찰과 탐색의 기록이다. 이 책의 그림은 예술 자체로서 해석되기보다 하나의 도구가 되어 다른 분야로의 확장을 꾀한다. 예술적 가치를 넘어 역사와 인문으로 확장하는 매개의 역할을 해냄으로써 대중에게 새로운 교양을 선사한다.이 책은 주요 인물과 사건, 개념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역사의 큰 맥락을 놓치지 않도록 “한눈에 읽는 역사”를 부속 페이지로 만들어 본문에서 다루는 인물과 사건의 앞뒤 흐름을 파악하며 통시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1장 산은 높고 골은 깊다에서는 시대를 품에 안았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여기에는 알렉산드로스, 아우구스투스,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도 있지만 루이 14세, 이반 뇌제, 스탈린과 같은 문제적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른 세 살의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제왕 알렉산드로스는 재위기간 12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이는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성과였다. 그는 당대의 석학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가 제국을 이끈 리더십의 비결은 포용과 배려였다. 정복한 곳의 왕을 왕으로 대우했고 포로들을 욕보이지 않았으며 스스로 정복지의 왕녀들과 수차례 결혼을 함으로써 경계를 허물고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했다.2장 History 속의 Herstory에서는 남성중심의 역사 속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빛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 클레오파트라와 퐁파두르 부인의 이야기와 여성이 대상 또는 도구가 되었던 매춘, 오달리스크의 이야기가 있다. 그림으로 가장 많이 표현된 여성 중 한명인 클레오파트라, 이 책에서는 연애의 달인이 아닌 이집트 마지막 파라오인 정치가로의 그녀가 그려져 있다. 사랑의 전략으로 일어선 권력의 화신이 여러 화가의 작품을 통해 여러 개의 얼굴로 표현돼 있다. 루이 14세의 정부로 그 시대의 문화를 지배했던 퐁파두르 부인, 그녀의 초상화는 하나의 장르가 될 만큼 발달했는데, 이는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집을 올 때 그녀의 어머니가 파리의 스타일을 지배하라고 당부를 할 만큼 퐁파두르 부인의 문화 권력을 두려워한 일화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3장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또는 역사의 흐름상 불가피했던 인간의 피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염병에서는 인류가 농업시대로 진입하면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죽음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하던 사람들이 이제 죽음을 신이 내린 형벌로, 불쾌하고 두려운 공포의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왕들의 처형에서는 중세 유럽의 절대왕정이 붕괴되는 원인과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권력의 희생양으로, 시민들의 심판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왕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세계대전에서는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발발했고 진행됐고 끝이 났는지 흐름을 훑으면서 참혹한 전쟁을 겪어낸 인간이 존엄에 눈뜨고 인간다운 삶을 호소하는 작품을 통해 전쟁을 바라보는 인간 의식의 변화를 보여준다.4장 정신의 역사, 역사의 정신에서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을 통과해내면서 인간이 이성과 정신의 영역에서 어떻게 변화, 성장, 진보하였는지를 카리스마, 종교개혁, 그리스의 지성 등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보여준다. 카리스마에서는 사도 바울에서 시작된 이 단어가 처음에는 신의 은혜를 베푸는 종교적 영적 능력을 의미하던 것이 막스 베버와 히틀러를 통과해 J. F. 케네디로 오면서 대중적 매력도와 호감도의 지표로 성격이 바뀌어 정치사회 지도자의 필수항목처럼 된 지점을 이야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 펴냄, 이주헌 지음, 368쪽, 1만6천원

2011-11-09

깊어가는 가을 詩가 된 사랑을 이야기하다

`사랑의 미래` 문학과 지성사 펴냄, 이광호 지음, 240쪽, 1만1천원 `사랑`처럼 흔한 말이 또 있을까? 그리고 동시에, `사랑`처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말이 또 있을까? 여기, `사랑`을 이야기하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너무 달콤하거나 너무 애달프지 않아서,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사는` 이야기라서, 익숙하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새로운 한 권의 책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 진부하고 상투적인 `사랑`에 대해 아직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고 고백하는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사랑을 둘러싼 40편의 공허와 1편의 기이한 위로”가 담긴`사랑의 미래`(문학과 지성사 펴냄)가 깊어가는 가을, 독자들과 만난다.이광호는 현장 비평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비평문에서도 그의 미문은 단연 돋보인다. 꾸며서 만든 문장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유와 애정 어린 통찰로 빚어낸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문장은,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비평문에 이광호만의 색을 입힌다. 이런 그의 언어가 이번 책에서 `사랑`을 만난다. 더없이 아름다워서 강력한 `사랑의 언어`가 과장되지 않은 몸짓으로 독자들을 부른다. 그 언어 속으로 가만가만 들어가는 `미래`로의 여정은,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넘어서서 “어떤 느낌을 공유한 이름 없는 공동체”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지난해 7월부터 그해 11월까지`웹진문지`에 연재됐던 이 글들은 연재 당시에도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편 한 편 읽는 느낌과 그 흐름을 한 권의 책에서 쉼 없이 따라갈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를 것이다. 연재 5개월에 걸쳐 이어졌던 고른 호흡은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이 책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다른 방법에 대한 작은 탐색이다.”41편의 글은 각각 시의 한 구절에서부터 출발하여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들을 그려낸다. 마치 한 편의 긴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사랑의 매혹이 아니라 무기력감에 가까운 그 문장들은 두 개의 시간으로 나뉘어 흐른다. 하나는 `그`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의 시간으로 흘러가지 않고,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 보거나 교차하면서 그 선후를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의 사건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글은 하나의 픽션일까? 하지만 마침내 독자들이 이 이미지들의 사건들에서 발생한 장면들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광호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유의 궤적이다.“시적인 이미지와 간명한 서사와 에세이적인 사유”의 교차. 이 한 권의 책에서 이광호는 이 새로운 글쓰기를 완성시켰다. 이 글을 `허구적인 에세이` 혹은 `픽션 에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주인공과 글쓰기 주체의 얼굴과 이름이 모두 지워진다. “`그`와 `그녀`는 복수의 `그들`이거나 혹은 `당신들`이거나 `내` 안의 사람들이”라는 이광호의 고백은 이 글을 `익명의 에세이`로 명명하는 쪽에 무게를 싣게 한다. 사랑을 익명성으로 이행으로 바라본 이광호의 시각은 2009년 펴낸 그의 비평집 『익명의 사랑』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 책의 머리말에서 “사랑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 속에 머무는 사건이”라고 말한 이광호는 “갈망의 지겨움과 공허 속에서 문득 명랑해진 사랑”이 “익명적인 힘들과 만”나는 모습을 이번 책에서 비로소 그려보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집단적 주체화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비밀스런 2인 공동체를 생성”하는 사랑은 “사랑의 정체성과 동일성을 지우는 데까지, 자기의 파괴와 혼돈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그의 오래된 사유가 전혀 새로운 형식의 에세이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1인칭의 고백과 2인칭의 대화와 3인칭의 묘사”의 공존 속에서, `그/그녀`였던 자신을 보았다가, 언젠가의 `그/그녀`를 만났다가, `그/그녀`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게 되는 특별한 독서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가을에 더없이 어울리는 선물이 될 것이다.“사랑하는 자는 하나의 장소를 만나고, 다른 계절로 떠나야 한다. 그 사람의 계절은 보다 더 짧거나 더 강렬하거나 더 느릴 수도 있다. 우리가 같은 문장에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생을 통해 하나의 계절을 지킬 수는 없다. 계절이란 기억과 시간에 대한 단념의 이름이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건 그들이 통과한 계절들의 이미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계절들의 돌이킬 수 없는 순환에 관한 것이다.“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 사랑이, 그렇게 지나갔다. 서로 엇갈리는 긴 시간보다 분명한 것은 그 기억조차 흐려지는 날이 온다는 것. 언어만이 그 계절들을 봉인한다. 어떤 사랑의 이야기는 망각의 힘으로, 망각하려는 힘으로, 다시 쓰인다. 기억보다 더 오래된 세월을 향해.”_`프롤로그-한때 새들을 날려 보냈던 계절들`에서“사랑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미래를 향해 떠날 수 있다. 어떤 희망도, 어떤 목적도, 어떤 대가도, 어떤 이름도 없이.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가 어딘가에 남아 있고, 그 하늘의 늙은 그림자 아래서 `당신`이 늦은 아침밥을 먹고 있다면, `나`도 한 숟가락의 밥을 뜨고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다.나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지만,내 걸음이 당신의 미래에 이르게 된다 해도당신 놀라지 말아요.”_`에필로그-이제는 그대 흔적을 찾지 않고`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1-02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인디언의 삶

`인디언의 지혜` 판미동 펴냄, 베어 하트 지음, 324쪽, 1만3천원“마음에서 우러나는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과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전문적인 지식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증명`할 수 없는 자연이 가진 힘은 종종 믿지 못할 것으로 치부돼 왔다. 또한 자연을 섬기는 옛사람들의 지혜는 원시 신앙이나 미신 등으로 가치 폄하되는 일이 잦았다.그러나 물질적 풍요 이면에서 정신적 공항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 그와 하나 돼 살아가는 삶은 필수불가결하다. 사방이 막힌 듯한 괴로운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이 산을 찾고 바다로 향하는 것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정화하려 하는 우리의 본능이 발현된 행동일 것이다. 대지를 어머니로, 모든 생명의 모태가 되는 태양을 아버지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형제자매로 여기며 존중하는 인디언의 지혜가 새삼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인디언의 지혜`(판미동 펴냄)의 저자 베어 하트는 전통적인 훈련을 받은 마지막 세대의 인디언 주술사인 동시에 정규교육을 받은 인디언으로, 인디언에 대해 현대인들이 가지는 오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주술사가 되기 위해 자신이 겪은 과정과 주술사로서 사람들을 치유한 경험을 통해 자연의 신성한 힘을 믿고 받들어 온 인디언들의 삶이 결코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한번은 조너스 베어 삼촌이 나를 연못으로 데려갔다. 삼촌은 연못을 들여다보라고 하더니 나에게 물었다.“무엇이 보이니?”“내 모습이 보여요.”“물속에 이 막대기를 넣고 휘저어 보거라.”삼촌 말대로 물을 휘저었더니, 다시 물어 왔다.“이번엔 뭐가 보이니?”“제 얼굴이 일그러져 보여요.”“그 얼굴이 좋니?”“이런 얼굴은 싫어요.”“사람을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이 못마땅할 때가 있단다. 사실 그건 너의 모습을 그 사람에게서 보고 있는 것이란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느 부분을 그 사람을 통해 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너의 일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그 점을 늘 명심해라.”-본문 39쪽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사는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다. 때문에 인디언들의 삶과 철학은 어머니 대지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그럼에도 과거 백인의 입장에서 제작된 서부 영화 속에서 인디언들은 주로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 일쑤였고, 그것이 여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디언의 이미지로 굳었다. 그러나 베어 하트가 책에서도 서술했듯 정작 인디언 자신들은 스스로를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살아 온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인디언들은 적을 위해서도 기도를 할 줄 알고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형제자매로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묘사되는데, 현대인들이 오해해 온 미개하거나 잔혹한 모습과는 반대다.주목할 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 인디언들의 지혜를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베어 하트는 나무나 강물, 우리를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에서도, 작은 벌이나 곰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다양한 일화를 통해 독자들을 인디언의 지혜 속으로 이끈다. 풍성한 체험과 지혜가 녹아든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자연과 조화된 삶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인디언의 전통 속에서 자란 저자는 스승이나 부족 어른들의 가르침을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영혼의 굶주림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진짜 배움이라는 것을 피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1-02

예술·기술 결합으로 21세기 창조한 잡스의 사랑 미움 꿈을 담은 자서전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 창업주 공식 자서전 `스티브 잡스` 민음사 펴냄,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944쪽, 2만5천원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IT 영웅` 고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 창업주의 공식 자서전`스티브 잡스`(민음사 펴냄)가 지난 24일 세계 동시 출간되면서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이 책의 말미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쩌면 평생을 신비주의로 일관하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유일한 공식 전기`스티브 잡스`를 써 달라고 요청한 것은 평생 살아오면서 쌓은 “약간의 지혜”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 약간의 지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내 열정의 대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좋았다. 그래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 부여였다.”요컨대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것은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온 위대한 제품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제품을 만들었던 위대한 조직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조직을 이끌었던 위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이 위대한 인간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은 이미 시중에 넘쳐난다. 하지만 잡스는 그 책들에 대해 늘 극도의 불만을 표시했다. 잡스가 자신의 허락 없이 출간된 전기를 두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 나머지 해당 출판사의 다른 책들까지도 애플 스토어에서 모두 치워 버리라고 지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평생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완벽한 제품을 추구해 왔던 그는 이번에 자신의 생애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평소 절친하던 `타임`의 전 편집장이자 CNN의 전 최고 경영자 월터 아이작슨을 불러서 전기를 써 달라고 의뢰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결심한다.“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직접 내 얘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싶었지요.”그러니까 이 책은 스티브 잡스가 유일하게 자신의 입을 열어 자기 삶의 모든 것을 밝힌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며, 그가 프레젠테이션 말미에 늘 입을 열어 사람들을 기대에 차게 했듯이 그의 생애 최후의 “And One More Thing”에 해당한다.이 책에는 21세기를 새롭게 그려 나간 창조자 스티브 잡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부모 집의 조그마한 차고에서부터 시작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 애플의 놀라운 성장 비밀, 애플 I에서 시작해 매킨토시와 토이 스토리를 거쳐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는 혁신적 제품들의 탄생 비화, 그리고 애플의 CEO 사임 이후 두 달여에 걸친 그 마지막 순간까지 처음 공개되는 온갖 이야기들과 함께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전설의 프레젠테이션 준비 과정에서 극도의 절제와 완벽주의로 상징되는 경영 비법까지,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혜안이 빛나는 명언으로 가득 차 있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꿈꾸고 아껴 왔던 것들을 충격적으로 고백한 이 책의 내용은 그동안 잡스를 다루었던 유사한 도서를 모두 넘어선다. 그 모든 책들은 예고편에 불과했으며, 이 책은 그에 관한 온갖 낭설과 추측을 한 번에 정리해 버린 최종 버전인 셈이다. 혹자는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애플도, IT도, 창조성도, 혁신도, 경영도,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도 말하기 힘들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저자 아이작슨은 2009년부터 2년간 잡스와 함께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거나 함께 산책을 하며 그를 40여 차례 집중 인터뷰했고, 그의 친구, 가족, 동료뿐만 아니라 그에게 반감을 가진 인물이나 라이벌까지 포함해 100여 명의 인물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빌 게이츠를 비롯해,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핵심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그리고 애플의 후계자 팀 쿡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IT의 영웅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잡스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개인적인 일화부터 공식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까지, 그의 괴팍한 채식주의 믿음과 선불교로부터 받은 영향, 디자인 스튜디오에서의 일, 픽사에서의 비전, 애플의 혁신 정신 등 잡스의 개인사 전체가 담겨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