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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암흑기 작가의 심층세계·한국문학 재조명

방민호 서울대 교수 `일제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 출간 방민호(47)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펴낸 `일제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예옥출판사 펴냄)는 그가 일제 말기 문학에 관해 10년간 집중해온 과정의 산물이다. 총 16편의 논문, 원고지 2천400매로 구성된 이 책은 일제 말기를 둘러싼 역사철학의 인식을 바탕으로 방대한 역사자료들이 동원돼 있다. 당시 제국 권력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문학인들이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던 것,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위장`과 `연기`와 `수사`로 피력한 것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저자는 이광수, 박태원, 이상, 이태준, 김기림, 김남천, 임화, 오장환, 조지훈의 문학세계 분석을 통해, 일제 말기 문학의 새로운 미래적 가치를 발견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즉 `대일 협력`이 강요된 현실에서 문학활동을 해야 했던 당대 작가들의 의식의 `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이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위장의 방식을 선택했는지를 통찰하고 있다.이로써 일제 말기 문학에는 친일문학밖에 없었다는, 그래서 이 시대의 문학을 `암흑기 문학`이라고 인식하는 통념을 깨고 한국문학사를 위한 훌륭한 문학 자산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필자가 이 책에서 뭔가 다르게 벌인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일제 말기 작가, 시인, 비평가들의 담론과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읽어 그들이 말하지 않으면서도 말하려 했던 것을 발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문학이 근본적으로 수사학적이라는 사실이 일제말기 한국문학 앞에서는 더욱 더 깊이 음미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의 문학을 독해하는 데 있어 `연기`나 `위장`에 대한 고려 없이 `있는 그대로` 담론과 텍스트를 읽는 것은 문학 연구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일이나 다름없다.(11쪽)”저자는 현해탄 콤플렉스로 대표되는 이 시대 문학에 대한 식민주의적 시각에 맞서, 일본문학의 메커니즘에 속박되지 않는 한국문학의 보편성과 창조성을 발견하고 있다. 특히 이상, 김기림, 이효석 등의 연구에서 이와 같은 시각이 강조돼 있다. `한복을 입은 이상`에서는 소설 `실화`와 `날개`의 비교분석을 통해 이상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의 의식의 궤적을 살핌으로써 그가 얼마나 보편적인 문학의 경지를 추구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문명비평론의 행방-김기림의 경우`에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도로써 펼쳐온 김기림 비평의 전개과정을 통해 그가 민족의 원리를 찾아나가는 행로를 분석하고 있다. `이효석과 하얼빈`에서는 1940년 전후에 발표된 이효석 소설의 내면적 분석을 통해 그가 국민문학론이라는 정치주의적 담론과 일본적 오리엔탈리즘론과 엄격한 거리를 두었으며 독자적인 예술주의적 이상을 추구하였음을 확인하고 있다.그는 일제 말기 작가들의 `친일적` 작품들의 분석을 통해 엄혹한 시대에 작가들이 어떠한 `내성(耐性)`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광수, 김남천, 채만식, 박태원 등의 작품들에 대해 매우 신중하고 섬세한 분석으로써 `전향`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작가들의 심층 세계를 파악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26

대한민국 안방을 열광시킨 16인의 드라마 작가

`올 댓 드라마티스트` 아시아 펴냄, 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지음, 272쪽, 1만2천원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오늘도 수서에서 여의도까지 새벽 버스를 타고 달려야 했다. 울고 보채는 아이는 동생에게 맡기고 왔다. 다행히 대본 연습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도착했다. 원고를 읽어 보던 PD는 그녀에게 다시 수정을 요구했다. 이미 수도 없이 고친 원고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최선이라면, 다시 고치리라. 지쳐 쓰러져 펜조차 들 수 없게 될 때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다리가 풀려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온기가 다가왔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건넨 따뜻한 보리차 한잔이었다. 그녀는 종이컵을 보며 `사람의 온기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쑥부쟁이`를 쓴 김정수 작가의 이야기다. 그녀가 쓴 드라마에 담긴 온기는 몇 년 후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담겼다.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하기까지 드라마 작가에게는 시청자가 흘리는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하다.”`서울의 달`을 집필하면서 김운경은 극중에서 제비로 등장할 인물을 찾기 위해 영등포로 갔다. 사교댄스계의 종결자로 꼽히는 일명 `대머리 박` 선생을 찾아가 입문을 간청했다. 삼고초려 끝에 그는 마침내 `대머리 박`의 제자가 되어 사교댄스를 배우고, 카바레 세계를 알아 갔다. 당대 최고의 유행어가 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터닝”은 책상머리에서 얻어질 수 있는 대사가 아니었다. … 거지들의 세계를 다룬`형`을 집필할 때는 거지들의 소굴 한복판으로 기어들어 갔다. 작품에 등장하는 전후의 거지들은 음성의 꽃동네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김운경은 걸신(乞神)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거지는 그냥 가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거지 귀신이 들려야 한다. 잘 차려진 깔끔한 음식보다 얻어먹는 더러운 음식이 훨씬 더 맛있는 사람이 진짜 거지다. `거지왕` 김춘삼은 어느 날 손님들과 함께 식당 뒷문으로 들어가다가 음식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 생선 등뼈를 보았다. 식당에서 시킨 비싼 음식이 나왔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부글부글 끓는 음식 쓰레기 속에 거꾸로 처박힌 생선 등뼈가 눈앞에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김춘삼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몰래 나와 잔반통에 박혀 있는 생선뼈를 집어 단숨에 핥아먹었다. 혓바닥은 짜릿했고, 목구멍은 전율했다. 걸신이 들린 사람은 상한 것을 먹고도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 걸신이 몸을 떠난 거지는 상한 음식을 견디지 못한다. 거지는 한 번 병에 걸리면 세상을 뜬다. 육체를 지탱하던 걸신이 이미 육체를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김재영(소설가,`코끼리``폭식`), 김종광(소설가,`경찰서여 안녕``71년생 다인이`), 박영란(소설가, `나의 고독한 두리안 나무`), 서성란(소설가,`특별한 손님``파프리카`) 등 한국 문단을 이끄는 소설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한`올 댓 드라마티스트`(아시아펴냄)는 드라마 작가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이들은 드라마 작가의 직업적 특성과 드라마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성실히 조명했다. 그리고 모든 필진은 드라마 작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서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느꼈다고 한다. 이들이 드라마 작가들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면서 느낀 삶에 대한 어떤 긴장감은 취재 기간 내내 필진들을 따라다녔다. 독자들도 글을 통해 그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책은 김수현, 김정수, 김운경. 주찬옥, 최순식, 이선희, 박지현, 최완규, 권인찬, 홍진아, 노희경, 박계옥, 김도우, 정성희, 정형수, 이기원 등 드라마 작가 16명의 이야기가 구성지게 펼쳐진다.“드라마 작가가 끝까지 붙들고 매달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조나 시류를 신경 쓰지 마세요. 좋은 대본이면 됩니다. 엉성하게 작업하지 마십시오. 드라마는 세공(細工)으로 여겨야 합니다.”- 김수현 편이 책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에 관한 책이다. 그들은 늘 성공한 드라마의 뒤편에 묵묵히 서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인생을 통해 드라마를 썼다. 그들이 만난 사람이 드라마 속 인물이 되고, 경험한 바가 사건이 되고, 아껴 둔 소중한 것들이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는 토씨 하나도, 대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19

맛 지도 따라 맛 여행 떠나면 인생이 맛있다

`칼과 황홀` 문학동네 펴냄, 성석제 지음, 356쪽, 1만3천800원 무엇을 쓰든 단번에 읽는 이의 심금을 찌르는 절대 무공의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51)가 돌아왔다. 그가 오랫동안 벼린 칼을 뽑아들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껏 각별한 관심으로 나름의 미학을 구축해온 `음식`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음식이란 “그 무엇보다 우리의 존재에 맞닿아 있기에”, 소설로도 잘 안 되고, 시도 못 된다며 `이야기`의 방식으로밖에 풀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 상주에서부터 한국에서 비행시간으로만 26시간이 걸리는 칠레에 이르기까지―작가 성석제가 천하를 유람하며 맛본 궁극의 음식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숙수들과 그 음식을 나누어 먹은 정겨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성석제의 음식 이야기`칼과 황홀`"(문학동네 펴냄)은 문학동네 온라인 카페(http://cafe.naver.com/mhdn)에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일일연재된 작품이다. 매일 오후 다섯시, 저녁시간을 앞두고 위를 후벼파는 `맛고문`이라는 독자들의 행복한(?) 원성 속에,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를 읽기 전에는 반드시 `턱받이`를 둘러야만 흘러내리는 침을 감당할 수 있다는 등의 재기발랄한 독자 댓글이 달리며 인기리에 연재됐다.책으로 엮으면서 연재분 외에 국수, 두부과자, 포도 등 그의 생을 푸근하게 해준 주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졌고,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한 영화전문지에 꾸준히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정훈이`의 위트 넘치는 삽화도 실렸다. 만화가 정훈이의 전매특허 캐릭터인, 목도 허리도 없는 `인간적인` 몸매의 소유자 `남기남`과 함께 성석제의 맛 기행을 따라가다보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도 모르게 웃음 한 사발을 쏟아내게 된다. 또한 책을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맛집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독자들을 위해 말미에는 `성석제의 맛 지도`를 수록했다. 각 글에 등장하는 맛집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밖에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영향을 준 전국의 음식점과 찻집, 술집”을 총정리했다.이 책의 1부는 그가 `하루 세 번의 여행`이라고 표현한 끼니, `밥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먹는 즉시 전투력이 상승하는 어머니표 쇠고기라면, 고양이도 울고 갈 부뚜막 무쇠솥 김치볶음밥 같은 가정식에서부터 껍데기째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뽀얀 물이 나오는 맛이 `겁나게` 진한 벚굴, 울릉도의 약소와 명이나물과 같은 국내식을 뛰어넘어, 독일의 `할매 포차`에서 먹은 독일식 소시지 `부어스트`, 중국에서 혼자 3인분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는 동파육에 이르기까지 세월과 타향의 수만 가지 맛을 넘어 단숨에 뇌리를 강습하는 압도적인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2부에서는 마음의 노독을 눅지근하게 풀어주는 술상을 받아볼 수 있다. 성석제의 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막걸리다. 수많은 술을 섭렵한 만만치 않은 주당(酒黨)이지만, 그가 `삶의 계단을 넘어설 때 함께하는 술`로 꼽는 것은 단연 막걸리다.그가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걸출한 술꾼들의 연대기에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열일곱 살 때부터 술을 마셔서 한 끼에 소주 한 병씩, 하루 평균 소주 세 병을 일흔 살까지 꾸준히 마셔왔다는 절세의 술꾼 이확재 어른. 성석제는 그에게 “무릇 술을 마시면 그냥 마시는 것이지 잘 마시는 것은 무엇이며 많이 처먹기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어른은 이렇게 답한다.“술은 음식이다. 생명 가진 사람에게는 그저 고마운 것이다.”책장을 덮으면서 독자들은 `작가의 말`에 그가 남긴 한 문장에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리고 그의 음식 이야기에서 끝끝내 발견하게 되는 것은, 희귀하고 별난 음식이 아닌 지극히 평범해서 아름다운 인간, 그리고 맛있는 인생이므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19

축구의 육체언어는 솔직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최영미 시인 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예민한 자의식이 세계와 대결하는 팽팽한 긴장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해온 시인 최영미(50)는 에세이스트로서도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빼어난 산문가다. 그가`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이후 2년 만에 신작 산문집`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들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축구에 대한 그의 열렬한 사랑과 분석적 비평을 담은 축구 에세이집. 매번 `위험스런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스포츠 에세이라는 장르로 또다시 신선한 도전을 감행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시집과 소설 출간을 무한정 미루게 할 정도로 최영미 시인의 축구앓이는 유명하고 또 지독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시작된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십여 년이라는 기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국내에서 발행된 축구 관련서들을 훑고 그것도 모자라 영국에서 발행되는 `월드 사커(World Soccer)`를 구독하면서 축구 정보를 탐식한 것은 기본. 기회가 되면 게임의 규칙을 배우고, 자리가 만들어지면 축구를 화제로 삼고, 열 일 제쳐두고 경기를 관람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는 신문과 잡지 등에 축구에 관한 글을 본격적으로 발표하면서 축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철학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한일 월드컵 공식보고서 편집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2005년에 출간된 시집 `돼지들에게`에는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영혼`을 주제로 9편의 시를 발표했고, 2011년 초에는`중앙일보`에 `시인 최영미의 유럽 축구 기행`을 연재하기도 했다.그렇게 축구에 빠져 밤을 낮 삼아 보낸 지 십여 년. 축구 해설가 못지않은 전문지식과 통찰력을 갖춘 그가 축구 경기에 빗대어 예측 불허의 삶을 읽는다. “월드컵이 아니었다면” 좀 더 일찍 소설을 완성하고, 더 많은 시를 썼을 거라고 자책하는 그에게 축구는 “삶의 이유이자 덫”이기도 했다.왜 그는 축구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물론 “재미있어서”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위선이 일상화된 사회”, “친교가 없고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에게 절대로 공을 넘겨주지 않는” 사회와 대조적으로 축구장 안에서 벌어지는 “육체의 언어는 구체적이며 솔직”하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곳으로부터만 공이 날아오는 한국 사회와 달리, 운동장에서 공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른다. 예측 불가능성, 그것이 게임의 본질이다. 하여, 그를 지배해온 열정을 풀어낸 산문 27편에는 육체의 언어에 대한 환희의 기록뿐 아니라 불합리한 삶과 벌여온 치열한 고투의 기록까지 담겨 있다.이 책에는 일간지에 연재하면서 호평을 받았던 유럽 축구 기행, 지난 10년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온 월드컵 이야기와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K리그 관전기가 담겨 있다. 축구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경기 전체를 읽어내는 통찰력, 지적인 분석이 돋보이는 인물비평, 그리고 현장감 넘치는 취재기 등 축구 입문자부터 축구에 대해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에세이들이다.규칙이나 룰이 아닌 역사와 철학을 통해 축구를 읽어내는 능력은 남다르며, 흥미롭다. 특히 그가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역사는 카탈루냐의 비극과 겹쳐지면서 묘한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일찌기 저자는 호나우지뉴 선수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해왔다. “어느 선수를 왜 좋아하는지, 딱 부러지게 분석할 능력”이 없다고 그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선수 개개인의 역할을 정확히 간파해내는 글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내공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1부는 2011년 초 맨체스터-볼턴-바르셀로나-함부르크-보훔-로마를 잇는 여정을 통과하면서 저자가 만나고 보고 느낀 기록이다. 그는 유럽에서 박지성, 이청용, 손흥민, 백승호, 정대세 선수를 만나,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선수들 개개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포착해 전해준다.유럽 축구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2011년 챔피언스리그 관전기다. 아스널 홈구장에서 직접 관전한 아스널과 FC 바르셀로나의 16강전,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복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4강전, 맨유와 FC 바르셀로나의 세기의 결승전, 축구장 밖에서 벌어지는 감독들의 치열한 수사학 대결, 여성팬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외모와 언변, 축구 철학의 대결로 귀결되는 경기 내용까지, 축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수많은 매력이 서술된 부분이다.저자가 K리그를 관전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식기 전부터다. 그러나 경기장 접근이 어려운 점, 열악한 시설,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 등 유럽 축구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분위기의 K리그 관전기는 당시 한국 축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듯,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없으면, 한국 축구는 변할 수 없다.” 2011년 한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은 K리그 승부 조작 사건이 바로 그 무관심의 증거일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12

후배들에게 전하는 회한과 시행착오 기록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리더스북 펴냄, 박경철 지음, 400쪽, 1만6천원시골의사 박경철씨(47)가 청년들에게 자아찾기, 세상을 읽고 소통하는 법을 조언하는 에세이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리더스북 펴냄)을 펴냈다.외과전문의. 시골의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저자 박씨는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등 베스트셀러를 펴낸 투자 분석가이며, 라디오 진행자로도 활동했다.현재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면서 10년 동안 MBN 등 방송에 출연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이끌며 대중과 친숙하다. 또 (재)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이 주최하는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과 대담 등을 통해 이 시대 청년들에게 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이 책은 6년 동안 안 교수와 전국의 중·고교, 대학가를 돌며 열었던 `청춘 콘서트`의 총정리판이랄 수 있다. 강연에 참여한 한 학생이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지만 좋은 대학과 직장을 얻을 수 없는 걸 안다”고 말한 사건 때문에 박씨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이 책은 최근 출간 일주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저자는 “내 회한을 담은 시행착오의 기록이다. 내 실패를 족보처럼 정리해 후배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저자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청년들에게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머릿속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좋아 보이는 것, 기발하고 멋져 보이는 목표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허울 좋은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세뇌된 채, 진정한 자기 꿈과 목표가 무엇인지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에 휘둘린 결과다.이 책은 저자가 삶의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이들을 통해 깨닫고 배운 것들, 방대한 독서를 통해 축적한 지혜로 가득하다. `세상은 스승의 바다`라고 한 저자의 말 그대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개인적 차원의 체험에서 끝내지 않고 사회 시스템으로까지 확대시키며 구조 전체를 보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박경철 특유의 단호한 문체 역시 독자를 매료시키는 요소다.박경철의 말처럼 인생은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늘 정직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12

풀꽃에게서 배운 싱그러운 삶의 지혜

`효재처럼 풀꽃처럼` 문학동네 펴냄, 이효재 지음, 280쪽, 1만3천800원이번에 출간하는 2년 반 만의 신간 `효재처럼 풀꽃처럼`(문학동네 펴냄)은 패션디자이너 이효재가 풀꽃에게 배운 싱그러운 삶의 지혜를 담았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꽃이네` 싶은 작은 풀꽃, 꽃의 배경이 되는 넝쿨식물, 콩나물처럼 가느다란 1년짜리 아기 나무…… 식물들에서 길어 올린 담백하고 여운 깊은 삶의 지혜가 책 갈피 갈피 담겨 있다. 아름다운 사진과 더불어 간결한 문장에서 이효재의 싱그러운 내면의 향기가 느껴진다. “식물을 키우며 배웠다.시간의 힘을 믿을 것. 사랑으로 기다려줄 것.나는 그냥 기다려주는 것.나는 참새네 방앗간이고,동네 아낙들 쉬어가는 정자나무이고,새들이 둥지 트는 고목나무이고,열심히 일하다 막혔을 때 찾아와 퍼먹는 우물이고…….가르치려 하면 갑갑해져 어찌 계속 오고 싶을까.다만 조용히 들어주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뿐.”-`효재처럼 풀꽃처럼` 중에서어느 나이쯤인가, 우리는 작은 풀꽃, 순한 식물들에 마음이 끌린다. `효재처럼 풀꽃처럼`은 이효재가 꽃을 키우고 뜰을 가꾸며 깨닫게 된 지혜, 꽃으로 맺은 인연, 꽃처럼 향기롭게 살고 싶은 소망을 잔잔하게 말한다. `효재처럼 풀꽃처럼`을 읽다 보면 어느덧 우리 마음도 순해지면서 작은 풀꽃 하나에서 큰 격려를 받을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핸드폰 문자 하랴 카카오톡 하랴 다들 뭔가에 바쁘니 봄이 훌쩍 오는 줄 알지만 나같이 집안퉁수 아날로그는 안다. 봄이 슬로로 서서히 온다는 것을.촉을 올리고, 꽃망울을 맺고, 꽃을 피워내는 것은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 어떤 꽃도 쉽게 피어나는 꽃은 없음을, 봄눈 속에서부터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를 하는지 찬찬히 지켜보는 나는 알고 있다-`효재처럼 풀꽃처럼` 중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12

조선시대 부부는 어떻게 살았을까

인문학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인문학의 중심은 범상한 개인의 사생활보다는 국가나 민족 같은 거대담론에 있었다. 그 때문에 실생활과 인문학 사이에 상당한 괴리감이 생겨났다. 이성과 감성, 서로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인간사와 인문학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이종묵(50) 서울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부부`라는 주제를 선택한다.옛사람의 삶과 현대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옛사람의 삶과 글을 통해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이종묵 교수는 이렇게 옛사람의 일을 현재의 나를 위한 것으로 삼는 것이 전통시대 학문에서 그토록 강조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이며, 이것이야말로 인문학의 본령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부가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현상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라는 인식의 문제를 대주제로 놓고 부부라는 가장 지근한 문제를 다루는 `부부`(문학동네 펴냄)에는 다양한 부부가 등장한다.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지내는 부부도 있고, 오해와 갈등 때문에 반목하는 부부도 있다. 한편으로는 서로 존경하며 문우(文友)처럼 지내는 부부도 있다. 우리의 다양한 삶만큼이나 다양한 옛 부부의 모습. 그 모습을 통해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부부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부부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이종묵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다양한 부부의 모습을 펼쳐보인다. 각종 문헌과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부부가 어떻게 살았고,부부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치밀하게 살폈다.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부부란, 일곱 살이 되면 자리도 함께하지 않고 서로 내외하며 지내다 얼굴 한 번 못 보고 중매에 의해 결혼해 평생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종묵 교수는 조선시대 남녀 간을 이야기할 때 드는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상열` `남녀유별`과 같은 말이 당시 자유연애가 적지 않았음의 반증이라고 본다. 아무리 금기가 많은 시대라 해도 현실적으로 청춘 남녀의 사랑을 막기 힘들었다. 제도적으로는 용인되지 않았지만 `남녀상열`하여 `야합`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혼인하는 `불고이취`는 성행했다. 마음 가는 대로 거처를 옮겨 아내를 다섯 명이나 둔 박의훤 같은 평민은 물론이거니와 과부와 사사로이 혼인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게 된 이지 같은 양반도 있었다. 인습에 얽매인 혼인이 아니라 서로 좋아 함께 살면 그뿐이지 중매나 혼례식 같은 절차는 큰 의미가 없었다.오늘날에는 혼인을 개인의 소중한 권리로 생각해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혼인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었다.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돌보는 입장에서 혼인은 국가의 장래와 연결된 대사(大事)였다. 그렇기에 정조는 노총각과 노처녀의 혼인을 서두르도록 하라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고, 혹 가난 때문에 혼기를 놓친 남녀가 있으면 이들에게 혼인 비용 등을 대주기도 했다. 이렇게 국가가 개인의 혼인을 책임진 것은 남녀의 혼인은 천지의 조화이며, 인간의 음양이 조화를 이뤄야 하늘의 음양 또한 조화를 이뤄 가뭄이나 흙비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뜨거운 사랑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부부간의 지근한 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법과 체통을 중시한 시대였지만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은 아내와 함께 소풍을 가기도 했고, 혼인한 지 60년이 되면 회혼례를 올려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겪어온 세월을 돌아보기도 했다.평생을 함께 살아가다보면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불화의 원인은 다양했다.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자존심 싸움, 가난, 서로의 약점이나 잘못 등을 부부간의 갈등의 원인으로 들었다. 이외에도 처가와 친가, 남편의 외도 등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조선시대 부부는 다퉜다. 이런 부부간의 갈등에 대해 선비들은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아내와 금슬이 좋지 못했던 이황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제자에게 “그 가운데 성품이 악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부인이 실로 스스로 소박을 당하게 된 죄를 제외한다면, 그 나머지는 모두 남편에게 책임이 달려 있다고 하겠소”라며 부부 불화의 책임이 기본적으로 남편에게 있다고 했다. 상대의 잘못을 비난하고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의 행실부터 돌아보아 끊임없이 반성하고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학문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0-05

일상 모티프로 상상의 나래 펴다

`개그맨!` 문학과지성사 펴냄, 김성중 지음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졸업한 후에도 한동안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 서른두 살이 된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구립도서관을 찾아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2년 후인 2008년, 그의 말을 빌리자면 “도서관 생활을 수기처럼 옮긴” 첫 소설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로 그는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데뷔 3년 만인 올해, 첫 소설집`개그맨`을 낸 김성중의 이야기이다.그가 작가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문인은 그의 등단 소식을 전하며, “갖지는 못해도 잊지는 말자”는 영화`동사서독`의 대사를 인용했다. 김성중은 그 이야기처럼 살았고, 결국 등단할 줄 알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성중은 “작가는 특수한 다른 종족이라고만 생각했다”면서 자신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신기한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그의 첫 소설집`개그맨`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소설을 늘 생각하는, 천생 소설가인지 확인할 수 있다.`그림자` `개그맨` `게발선인장` `간` `순환선` 등 일상적인 단어로 된 작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소설의 모티프를 삶의 도처에서 얻는 듯하다.앞서 언급했지만 등단작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도 “도서관 생활을 수기처럼 옮겼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어느 날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의자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도서관의 의자`라는 사물을 서사에 대한 작가의 사유 안에 녹인 활발한 상상력으로 경쾌하게 풀어냈다.이 등단작 이후 김성중은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하며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이 세계에 대한 그의 사유의 도저함을 반영하며, 진정한 소통에의 욕망을 향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사를 나타낸다./윤희정기자

2011-10-05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한다 뇌과학의 베일을 벗기다

`선택의과학` 사이언스북스 펴냄, 리드 몬터규 지음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한다. `몇 시에 일어날까?` `무엇을 먹을까?`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와 같은 단순한 선택은 물론, `어디에 취직할까?` `저 차를 사기 위해 매달 얼마씩 저축해야 할까?`와 같은 복잡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위해 잠시 또는 오랫동안 고민한다. `선택`은 수많은 가치가 연결된 결정체로, 기계, 식물, 동물, 인간 모두 선택을 한다. 기계는 프로그램된 대로 선택하고, 식물은 새의 신경계의 능력에 맞춰 자신을 숨기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으로써 번식한다. 애완용 토끼는 언젠가 도주하기 위해 도주 경로를 익히는 선택을 한다. 인간은 잃을 것을 알면서도 도박이라는 선택을 하고, 테러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한다.그런데 그 `선택`을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심지어 예측할 수 있다. 의사 결정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드 몬터규는 fMRI(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 장치) 연구의 최전선에서 그 선택 과정을 보여 줘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한 리드 몬터규의`선택의 과학`은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선택 과정을 뇌과학으로 설명한 책이다. 저자인 리드 몬터규가 독자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이 책의 원제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이다.리드 몬터규는 계산과 신경 생물학을 기초로 인간의 사회적 인지, 의사 결정, 목표가 있는 선택에 관해 연구한다. 현재 버지니아 공과 대학 물리학과 교수이다. 고등 과학원, 소크 연구소, 미국 국립 과학 학술원에서 연구했으며, 사회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뇌에 대한 동시 연구를 실현시킨 최초의 뇌 스캔 스프트웨어 개발 연구를 이끌었다. `네이처`, `사이언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포브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미국 국립 학술원지` 등에서 그의 연구를 종종 기사함으로써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고, 신경 과학 전문지인 `뉴런`에 사람들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왜 선택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써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다.이 책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선택의 보편적인 원리`에 대한 신경 과학적 실험 결과를 엿볼 수 있으며, 인지 과학의 오랜 숙제 중 하나인 `선택은 과연 계산 가능한 과정일까?`에 대해 흥미로운 통찰력을 듣게 된다.특히 합리성과 효율, 후회와 실망, 신뢰와 배신 등 최근 지성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행동 경제학의 여러 주제를 신경 과학의 최신 이론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펩시 챌린지`라고 불리는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 사례와 `의식의 생물학적 토대` 같은 신경 철학적인 담론은 이 책에서 얻는 행복한 덤이다.`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에 150가지 이상 선택을 한다. `아침에 언제 일어날까?`에서 `점심은 뭘 먹을까?` `잠은 언제 잘까?`에 이르기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일상의 순간에서 끊임없이 선택은 벌어진다. 이 책은 인간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바로 이 `선택`이 뇌에서 어떻게 벌어지는가에 대해 `최전선`의 목소리를 전한다.이 책은 의사 결정의 과학에 관한 새로우면서도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시각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있어 중대한 사건들, 바로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에 관해 최신의 뇌과학이 밝혀낸 비밀들을 보여 준다.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는 `지적 혁명`의 출발점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29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문학동네 펴냄, 성미정 지음, 104쪽, 1만원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우리 시단에 또 하나의 새로움으로 자리해온 성미정(44), 그녀의 신작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문학동네 펴냄)가 출간됐다. 올해로 데뷔 17년차인 그녀는 그사이 네 권의 시집을 펴낸 것이니 근 4년 만에 한 권씩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온 참이다. 그리 과할 것도 그리 부족할 것도 없다 싶다. 이번 새 시집에 담긴 시가 52편이니 어림잡아 지금껏 이백 편에 가까운 시를 썼겠구나, 싶은 계산이 나오는데 따지고 보면 한 달에 한 편쯤은 된다. 한 달에 한 번쯤은 “머리 속 언어의 알에 뭔가 수상한 낌새가 감지되”었을 터, “이게 그냥 곤계란인지 아님 뭔가 톡 튀어나올 건지 밤새도록 지켜”봤을 터, 그러다가 “여보세요 그 안에 누가 있나요 노란 솜털의 비약비약 울기 좋아하는 시인 혹시 거기 있나요” 두드려보기도 했었을 터(`나는 비약을 사랑하는 시인의 알에 불과할 뿐`), 품고 있는 알에 실금조차 안 갔다 해도 어쩌랴, 사실 이렇게 관심으로 두드리고 듣고 느끼려하는 과정이 죄다 시인걸. 그렇다. 어찌 보면 이 시집은 올해로 `마흔 다섯`이 아니라 `마음 다섯`이 된 시인 성미정의 여전한 성장일기이며 관찰일기라 할 수 있겠다. 나이는 먹는 대로 자라는 게 아니지만 마음은 먹는 대로 자라는 거니까.성미정이 펴낸 시집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시집마다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모아보니 오롯이 한 여자의 역사다. 첫 시집`대머리와의 사랑`에서 소녀였고 처녀였던 그녀가 두번째 시집`사랑은 야채 같은 것`에서 연애와 결혼을 경험하며 살림하는 아내가 되더니 세번째 시집 `상상 한 상자`에서 `재경`이라는 아들의 엄마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네번째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에서 그녀는 포지션을 어떻게 취했을까. 물론 아내이며 엄마의 직함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앞선 시편들 때와 같으나 추가된 위치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이가 들어 쓴 김치를 담글 수밖에 없는 예순일곱의 엄마, 이명클리닉에 다니는 일흔넷의 아빠, 이 두 분의 `둘째 딸년`이란 자리다.엄마가 담근 새콤한 김장 김치 김장독에서 막 꺼내 살짝 살얼음이 낀 김치 한 보시기에 따뜻한 밥만 있으면 겨우내 반찬 걱정 없던 기억들은 친정집 뒤란의 장독대와 함께 사라져버렸는데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매년 김치를 담고 있다 육십칠 년 성상(星霜) 엄마의 인생이 쓰디써 엄마 손에 남은 건 쓴맛뿐인 듯한데 그래서 김치 담그는 날이면 행여 어린 새끼들 눈 매울까봐 애태우며 김치 속 버무리느라 더 새빨개지던 그 손으로 거둔 딸년 둘도 외면해버린 김치를 엄마는 매년 쓰고 있다-`엄마의 김치가 오래도 썼다` 중에서아이가 제법 자라고 보니 그제야 늙은 부모가 눈에 밟히더라는 우리 모두의 때늦은 후회를 시인도 아마 요즈음 겪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인의 재주는 슬픔을 눈물 대신 일종의 농담이나 펀(fun)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다. 꽤나 심각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주위를 환기시키고 짐짓 딴청을 부리듯 농을 칠 줄 안다. 뭔가를 툭, 하니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더 쓸쓸해지지 않도록, 더 절망하지 않도록.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시인인 남편과 함께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며 사는 시인에게 동화는 상상 그 너머의 무지갯빛 신세계라기보다 생활 그 자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1-09-29

`어른스런 입맞춤` 문학동네 펴냄, 정한아 지음, 148쪽, 1만원

여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에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호랑이가 떡으로만 살 수 있는가, 먹어서 배부른 것이 사랑인가”(`회의적인 육식동물의 연애`) 하고 대답하는 시인이 있다. 그녀에게 `사랑`은 `지옥`이며 “믿음은 열어도 나갈 수 없는 바깥”(`이웃 사랑의 위생 관`) 이다. 허나 이 `지옥`에는 “모든 가련한 것들”을 애도하는 “때로 한 찰나가 영원을 잡아먹는 그런 사랑” (`어떤 기도`) 을 하는 그녀가 있다. 2006년`현대시`로 등단한 시인 정한아(37)다. 그녀가 데뷔 6년 만에 첫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문학동네 펴냄)을 들고 왔다. 첫 시집의 뜨거움이라 하면, 날것, 죽기 전에 아가미를 펄떡이는 물고기의 그것일 텐데, 정한아의 첫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덜 익었다거나 여물었다는 비유보다 어쩌면 오래 익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녀의 첫을 열매 맺기를 거부하는 시들이라 일컫음은 어떨까. 중요한 것은 시간을 거스르는 거부가 아닌, 이미 그것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거대한 감옥`이거나 `타인의 침대`인 이 세계에서 정한아가 살아가는 방법은 “하필, 사랑”이다. 죄짓지 않고 사는 이 없지만 그 죄 다음이 하필 사랑이라니. 타인에게 침대는 휴식의 공간이고 시간이다. 허나 그것은 곧 나의 불편한 세계로 귀결된다. 시인은 “춥고 캄캄하고 척척한 곳”에서 “못생긴 심장의 나지막한 허밍”을 들으며 “마주치자마자 내 골수에 자기의 촉수를 담그는 얼굴들과” “차일수록 자욱해지는 지랄 같은 외로움을 몰고”(`이상한 가투(街鬪)`) 가며 살아간다. 삶은 `영원히 붙박인 폭우 속 캠프의 밤`(`눈을 가리운 노래`)이며 `진흙투성이`의 `끝나지 않는 축제`(`눈을 가리운 노래`) 다.“이곳에 바닥도 천장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있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공상태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고, 아틀란티스인처럼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언제나 그래왔다고, 우주인이 화성에 가도 출구 따위는 없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완전히 체념했을 때, 썩은 동아줄, 잭의 시퍼런 콩나무, 팔다리 없는 무지개 너머 에도 바깥은 없고 발바닥은 아등바등 두 팔은 지푸라기처럼 꺾인 너의 목을 끌어안고 어푸 어푸 (사랑해 사랑해) ((살려줘 살려줘))-`타인의 침대`에서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나한 사람을 낳고 모두 사라지는말할 수 없이 폭력적인 생리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나한 사람을 죽이고 손을 씻는말할 수 없이 공공연한 심리이 거리의 이정표는 이제아는 것들만 알려준다 이미와 있는 것들의 끔찍한 소용돌이-`죽은 예언자의 거리`이 부정의 세계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한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앵무새`는 그 질문을 들고 온다. 그녀에게 `앵무새`는 고독의 증거 그 자체다. `앵무새`는 자신의 언어가 없다.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정한아에게 타자, 타인은 `앵무새로 하여금 대신 말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내게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도 `앵무새`와 떠나버렸고 세계는 앵무새의 정체성과 다름없다. 고독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앵무새`의 목소리로 다시 한번 들려오고 그것은 한 존재의 고독으로 다시 그녀 자신에게 돌아온다. 고독은 그녀로 하여금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휘발되는 언어는 앵무새로 하여금 하나의 세계로 다시 들려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앵무새는 시인의 `거울` 이자 `자화상`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29

한편의 詩 처럼 살게 하소서 암과 싸우며 희망을 노래

`작은기도` 열림원 펴냄, 이해인 지음, 200쪽, 9천500원 시인은 작고 사소한 것에 사랑의 눈길을 보내는 존재이다. 시인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숙명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동시대의 시인 중 작고 사소한 것을 가장 일관되게 눈여겨보고 그것의 소중한 소여(所與)를 섬세한 언어로 헤아린 대표적인 시인은 누구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해인 수녀를 가장 먼저 꼽을 것이다.이해인 수녀는 `작은 위로`와 `작은 기쁨`에 이어 이번에 다시 작은 것을 애정 어린 눈으로 보살핀 새 시집 `작은 기도`(열림원 펴냄)를 펴냈다. 새 시집에서 이 수녀는 크고 빠른 것에 붙들린 나머지, 자신의 삶의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작은 것의 고르고 느린 숨소리를 들려준다. 그를 통해 언제나 새롭게 순환하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삶의 본래 자리를 일깨운다.어떤 시든 그것이 지극하고 간곡하게 갈망하는 희망을 향하고 있을 때 그것은 기도가 된다. 다시 말하면 시는 노래가 된 기도의 언어이고, 기도는 발원으로 뻗어나간 시다. 이해인 수녀의 새 시집 `작은 기도`에는 시와 기도가 갖는 순정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찬미, 삶에 대한 긍정을 소박하지만 호소력 짙은 언어로 노래한다. 1976년 발표한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이후 사랑과 따뜻한 위로의 언어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해왔던 이해인 수녀의 이번 시집은 올해 이해인 수녀가 수도 생활 중인 성베네딕도 수녀회의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또한 오랜 수도생활 동안 여일하게 작고 사소한 것들에 애정과 관심을 쏟았던 이 수녀의 진심 어린 사랑의 언어가 담겨진, 세상의 모든 것을 품에 그러안고 희망을 노래하는 한 수도자의 기도의 시집이다. 그동안 틈틈이 써두었던 50여 편의 미발표작에 1999년 초판을 냈던 시집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중 몇 편을 덧붙어 출간한`작은 기도`는 시인으로서, 수도자로서 신을 향한 기도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길 바라는 이해인 수녀의 문학의 뿌리를 총체적으로 포괄한 시집으로 볼 수 있다. 암 투병과 사랑하는 지인들의 잇단 죽음을 목도하는 아픔의 시간을 견뎌내왔던 이 수녀는 이번 시집에서 지난날을 겸허히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시인의 깊은 깨달음을 담아냈다.“신을 위한 나의 기도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 숨 쉬는 나의 매일이 읽을수록 맛 드는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때로는 아까운 말도 용기 있게 버려서 더욱 빛나는 한 편의 시처럼 살게 하소서./시는 저에게 꿈을 꾸게 만드는 하나의 놀이이고 노래였습니다./전쟁의 폐허 속에 다들 우울하고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 언니 오빠가 낭송하는 김소월·한용운·윤동주의 시들은 저를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해주었습니다.”―`내 문학의 뿌리`(이해인) 중에서`작은 기도`에는 총 88편의 시가 수록돼 있는데, 이 “88”이라는 숫자는 수도원에 입회 당시 주어지는 이해인 수녀의 고유 번호(이를 수도원에서는 편의상 “빨래번호”라고 부른다)인 88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기도의 시를 쓰게 해준 수도공동체에 이 시집을 헌정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해인 수녀는 시를 쓸 때 한 수도자가 순례의 길 위에서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표현한 상징 언어의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항상 이웃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는 아름다운 러브레터가 되기를 바라고, 자신의 시를 읽고 마음이 정화됐다거나 아름답고 선하게 살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됐다는 고백을 들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고 한다. 자신의 시가 날개를 달고 치유와 위로의 천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하고, 맑은 삶을 살겠다는 생각으로 수녀가 되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면서 시 안에 자신의 변함없는 그 뜻을 알알이 새겨 넣은 시인의 마음을 `작인 기도`속 신작시들에서 더욱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사연을 보내오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일일이 답장을 보낸다는 이해인 수녀의 시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이자,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22

말과 글이 억압 당하던 암흑기에 전짓불 공포로 시대를 고발하다

`소문의 벽` 문학과 지성사 펴냄, 이청준 지음, 412쪽, 1만1천원지난 2008년 7월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문학을 보전하고 재조명하고자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운 구성과 장정으로 준비한`이청준 전집`시리즈 가운데 4권 중단편집 `소문의 벽`(2011)이 출간됐다. 중단편집 `소문의 벽`은 이청준 문학 세계에 두텁게 드리운 상징성으로 말해지는 저 유명한 `전짓불의 공포`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알린 중편 `소문의 벽`을 비롯해 총 9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이 작품집에서 작가 이청준의 고향 혹은 유년의 근원적 이미지를 둘러싼 소설 쓰기의 가능성을 엿봄과 동시에, 이청준 초기 문학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각 작품들을 통해, 이청준 문학의 필생의 질문들이 날카롭고도 집요한 방식으로 드러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이청준 문학의 넓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깊이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이청준 문학이 다양성과 다원성을 확보하는 이유는 그것의 양적인 집적 때문이 아니다. 이청준은 자기 시대와 자기 세대의 가장 뜨거운 질문법을 만들어낸 작가이고, 그 질문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그 질문의 내부와 배후를 탐문한 작가이다.`소문의 벽`은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둘러싼 지향성과 그 반성적 성찰을 동시에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소설은 `박준`이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진행된다. `나`는 잡지사 일을 하고 있다. `나`와 박준은 모두 `언어`에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 즉 `자기진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 모종의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박준`에 대한 나의 관심도 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소설은 시종일관 `광인`처럼 행동하는 박준을 그렇게 만든 상황에 관한 질문법을 던지고 있다. 그 탐색의 과정에서 박준이 쓴 세 편의 이야기 즉, `죽은 사람 시늉을 하는 남자 이야기` `사장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그에 따른 신경과민 증세와 주의력 결핍으로 회사에서 퇴출당하는 자의 이야기` `말할 수 없는 것을 둘러싼 시대의 요구`로 요약되는 세 편의 소설이 액자소설의 구성을 띠며 주요하게 언급된다.`가학성 훈련`은 자가용 운전수로 일하는 `현수`는 셋집의 주인집 계집아이가 자신의 딸의 머리끄덩이를 꺼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한 놀이를 묵인한다. `굴레`를 둘러싼 가학성과 피학성의 내적 윤리를 질문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작품`퇴원` 이후 초기작에서 보여주던 자아회복, 자기 얼굴, 자기 정체성 찾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전쟁과 악기`는 이전 작품 `마기의 죽음`처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용인되지 않던 시대에 대한 작가의식의 투영으로 알레고리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후 발표될 장편`조율사`의 핵심 단초가 되는 이 작품은 슬픈 노래에 대한 배타적 선호와 즐거운 노래에 대한 금기시 현상처럼 너무도 뻔한 이분법적 선악관과 그에 따른 사물 인식의 획일적 단면성을 꼬집는 한편, 글다운 글을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자조감이 짙게 밴 소설이기도 하다.`그림자`는 1966년 5월 `산업경제신문`에 발표된 `복사와 똥개`를 다시 쓴 작품이다. 원제 `복사와 똥개`가 말해주듯, 힘과 권력을 지닌 복서종 개와 그 그늘에서 억압받는 존재로 그려지는 똥개를 통해 삶의 대면 관계, 즉 삶과 죽음, 앞뒤 얼굴, 삶의 연장에 같은 무게로 얹히는 피곤과 외로움, 도시와 시골(고향)이 대비되고 있다.`미친 사과나무`는 `전쟁과 악기`처럼 이청준의 우화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진짜 배와 가짜 배, 진짜 사과와 가짜 사과처럼, 진짜와 가짜는 이 작품에서 실명과 가명, 생화와 조화, 맨얼굴과 가면, 나와 분신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 이름과 실체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실체가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야기는 연결된다.`들어보면 아시겠지만`은 일종의 진술의 방법으로 배신을 택하고, 그 `권력이란는 것의 속성과 그것의 파국`에 관한 글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22

사랑 욕망 절망 그리고 엽기적인 상상

`뱀` 문학과 지성사 펴냄, 윤보인 지음, 288쪽, 1만1천원2007년 데뷔 후 독특한 감각의 경신과 꾸준한 자기 세계의 확장으로 주목을 받아온 작가 윤보인의 첫 소설집 `뱀`(문학과지성사, 2011)이 출간됐다.이번 소설집에서는 길들여지지 않는 인간 본연의 충동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소리 없이 젖어드는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발현되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처음 윤보인의 작품을 접한 독자는 그녀의 낯선 감각과 그로테스크한 표현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외부 세계로부터 가해지는 위협과 폭력 속에서의 생에 대해, 특히 어린 여성의 삶에 집중한 윤보인은 본인 특유의 감성으로 일면 익숙한 이야기를 전혀 새롭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내고 있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이러한 그녀의 폭로에 대해 “경계에서 세상의 온갖 거짓과 위선을 추문화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이 소설집의 표제작 `뱀`에서는 사회적으로 상징화된 사랑에 수렴되지 않는 개인의 충동과 욕망에 대해 말한다.이 소설에서 뱀은 노점의 노인에게 우연히 사게 된 애완동물로, 일종의 사회에 포획되지 않은 날것의 인간 충동을 상징한다. 헌책방을 운영하는 주인공 여자는 어느 날 팔려온 책 속에 끼인 반지를 발견하게 되고 얼마 후 그 반지를 찾기 위해 한 남자가 그녀를 방문한다. 그녀는 그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반지를 내어주지 않는다.그가 돌아간 뒤 그녀의 뱀이 반지를 삼킨다는 점에 반지라는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사랑에 대한 부정과 거부를 눈치챌 수 있다. 허물만을 남겨둔 채 사라졌던 뱀은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그녀의 질 속에서 발견된다. 윤보인은 표제작이자 등단작인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충동과 한 몸이 된 인간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악취`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후각을 통해 감각의 전면성에 도전한다. 망집에 가까울 정도로 악취 환각에 집착하는 여성이 있다. 향수를 지독히 혐오하고 썩은 악취에 매료된다.독특한 악취로 그녀를 매료시켰던 남성 피터가 떠나간 다음 악취 환각은 심화되고 악취에의 욕망은 증폭된다. 그럴수록 주인공의 일탈 행동도 더욱 그로테스크해진다.다채로운 향기가 추앙받는 이 세계에서 악취는 진실의 위악적 상징과 같은 것이다. 하여 진실의 심연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깊은 욕망이 독특한 악취 환각을 자아낸 것이다.단편 다섯 편, 중편 두 편을 묶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22

두 갈래 길에서 희망 절망 반복하며 시를 통해 문학 본연의 지향점 모색

평론집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 창비 펴냄, 김수이 지음, 320쪽, 1만9천원 시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차분하고 꼼꼼한 분석으로 우리 문단에서 가장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치고 있는 평론가 김수이(43)의 네번째 평론집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창비 펴냄)이 출간됐다. 쓸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설렘, 쓸 수 없는 것을 쓰고자 하는 패기와 비전, 이 모두를 한데 아우르고자 하는 저자의 글은, 화려하거나 논쟁적이진 않다. 하지만 우리 시를 통해 문학 본연의 지향점을 모색하고 아울러 동시대에 던지는 발언의 지점을 확보하고자 하는 야심찬 행보이자 텍스트와 시인, 독자 모두에게 나긋하게 다가오는 따스한 고백이기도 하다.이 책의 제1부는 여러 문예지에 실은 특집 및 기획글을, 제2부는 개별 시인의 시세계를 조망하는 글을, 제3부는 시집에 수록된 해설을 묶어 꾸렸다.제1부의 첫 장을 여는`자체제작 소리를 내는 상자들, 그리고`는 2000년대 새롭게 등장한 시의 경향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간 발견된 가능성들을 바탕으로 진전될 2010년대의 시를 기약하는, 이 평론집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담은 글이다.특히 김기택 유홍준 황규관 등의 시들이 종래의 노동시, 민중시의 개념을 어떻게 해체-재구성하는가, 그리고 현시기 자본주의에서 양상을 달리하는 노동의 제 현상들을 어떻게 형상화하는가를 추적한 `얼굴 없는 노동, 자본주의의 역습`, `노동과 삶의 노역`은 시라는 장르를 넘어서까지 읽힐 만한 분석적 텍스트이다.제2부는 좀더 구체적으로 개별 시인의 시세계를 조망하는 글들을 모았다.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중견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송재학 장석남에서부터 자신만의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한 백무산 홍신선, 그리고 박연준 김지녀 이덕규 등의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심도있게 다룬 글들이다.조정인 천수호 문동만 윤성택 이사라 이규리 등의 신작시집을 해설한 3부의 글들은 이에 대한 작지만 뚜렷한 증거인바, 그녀가 앞으로도 시(문학)의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거대한` 기획뿐 아니라 묵묵히 시를 써가는 시인들과 한데 어울리는 현장비평가로서 활약하길 기대하게 한다.김수이는 서두에서 “평론을 쓰면서 늘 쓸 수 있는 가능성과 쓸 수 없는 불가능성이라는 두 갈래의 길 앞에서 희망과 절망을 반복했다”고 말한다.두 갈래 길의 존재와 그 사이에서의 갈등은 비단 저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는 가능성과 불가능성, 희망과 절망, 도전과 좌절, 성취와 표류 등 속에서 계속되는 부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 불확실한 시대에 현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문학 또한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닐까. 불확정성이 강요하는 고뇌와 암담함을 외면하거나 그에 짓눌리지 않고 평론가로서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늘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가는 김수이의 존재는 그래서 그 자신의 겸손한 고백처럼 “때로 허황되”거나 “무기력”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15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예담 펴냄, 문은희 지음, 1만3천원 심리학자이자 한국 알트루사 상담소 소장인 문은희 박사는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서양 어머니들의 우울증을 비교·연구하는 과정에서 `포함 단위`라는,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구조를 찾아내 `포함` 이론을 정립했다. 이 포함 이론은 그가 최근 펴낸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예담 펴냄)에서 말하는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원인을 성찰하는 실마리가 된다. 일례로 자녀의 행복과 불행이 자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자녀를 포함하고 사는 어머니의 것으로 간주되는 걸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 문화의 맥락을 밝혀주는 심리학 이론이다.지금,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다 얼마나 지쳐가고 있는지, 그 속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엄마는 모른다. 아이는 엄마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느낌을 공유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나의 아픔과 슬픔을 지금 내 아이가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자녀가 느끼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알아주고 거기에 맞게 대응하는 길을 제시한다.엄마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문은희 박사는 그것이 엄마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 문화 습속 안에서 생긴 `포함`이라는 심리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문은희 박사가 알트루사 심리 상담소를 거쳐 간 수많은 엄마들과 함께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엄마가 되는 과정, 즉 엄마들이 자녀를 포함하고 살 수밖에 없는 심리 구조를 알아보고, 그렇게 만든 사회 문화 습속에 대해서도 파헤치고, 엄마 역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포함`된 환경에서 자라오며 상처받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치유한 후, 자녀와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을 담았다. 문 박사는 엄마들에게 자녀교육을 위해 책을 읽고 인터넷 자료를 보고,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자녀의 마음을 보기 위해 노력하자고 권한다. 아이의 눈이 슬픔을 이야기하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아이의 눈이 비어 있으면 눈물을 가득 담고 꼭 안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분노에 차 있으면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기쁨에 넘치면 있으면 같이 기뻐하자. 엄마의 사랑의 힘을 가진 아이는 그 어떤 힘을 가진 이보다 강하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1-09-15

실제와 상상 경계를 가없이 넘나들며 샌프란시스코서 봄 여름 보낸 체류기

`어떤 작위의 세계` 문학과 지성사 펴냄, 정영문 지음, 294쪽, 1만1천원 1996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실제와 상상의 경계를 가없이 넘나들며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정영문(46)이 신작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작가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봄여름 두 계절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며 쓴 일종의 체류기다.`어떤 작위의 세계`는 과거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의 기억과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의 단절이 그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작가 자신인 동시에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인`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과거 여자 친구 그리고 그녀의 현재 남자 친구와 잠시 함께했던 때를 떠올린다.당시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함께 데킬라를 마셨고, 황량한 벌판에 있는 그녀의 별장에서 용설란을 쏘거나 집 안에 들어온 전갈들 내보내기도 하고, 언덕에 올라 들판을 내려다보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냈다.그러던 중 `나`는 불쑥 떠난 짧은 여행에서 안개가 좋다는 이유로 그들과 헤어져 샌프란시스코에 며칠 더 머물며 워싱턴 광장 공원에서 호보를 만나기도 하고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상상 등을 하며 짧은 시간을 보낸다.5년 후 다시 샌프란시스코를 찾은`나`는 워싱턴 광장 공원에서 예전에 만났던 호보와는 다른 호보를 만나 다시 예전에 했던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상상을 만든다.같은 공원에서 체리에게 무겁고도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늙은 아시아계 남자가 조용히 체리만 바라보며 그것을 먹는 것을 의아해하기도 하고, 무수히 많은 “완전히 맛이 간 자들”이 왜 샌프란시스코의 관광 안내 책자에 등장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과일들을 금문교 밑으로 떨어뜨리려다가도 도무지 의욕이 없어 상상만 하고,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역시 늙은 히피의 일상을 그와 한 번도 대화해보지 않았음에도 태연하게 글로 펼쳐 보이는 등 소설 도처에서 우리는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하기 어려운 작가의 생각 혹은 상상의 산물들과 마주하게 된다.`어떤 작위의 세계`에는 뚜렷한 플롯이 없다.작가는 책 앞머리에서 “이 소설은 표류기에 가까운 체류기인 동시에, `나`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지 않고 경험한 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관념과 실재가, 사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정영문식 상상의 박물지이기도 한 것이다. 내면과 세계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문제도 아니고 모험이 함께할 여정의 출발점 또한 아니다. 모든 것은 `나`의 상상의 원천이자 `어떤 작위의 세계` 그 자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15

중국의 신화와 문학 그리고 베이징 특집

계간 문예지 `아시아` 가을호, 아시아 펴냄, 384쪽, 1만3천원 계간 문예지 `아시아` (아시아 펴냄)가을호가 영미 문학과 일본 문학에 이어 국내 출판 시장에 불고 있는 중국 문학의 경향과 영향을 진단하기 위해 중국 문학 전문가들의 좌담과 중국 당대 소설가들의 단편을 실었다. 이번 호는 재일 한국인으로 도쿄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국제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의 글을 특별 기고로 싣는다. 강상중 교수는 지난 3월 일본을 절망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이후 일본인들의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국가에 대한 `불신`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 현 상태의 절망과 불안을 과거 `패전`의 그것과 비교하며 원전 사고가 물리적, 정신적 피해만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조명한다.한국 독자에게도 친숙한 모옌과 옌렌커와 더불어 젊은 여성 작가 츠즈젠과 주원잉의 작품을 비평과 함께 국내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또한 작가들의 단편과 함께 관록 있는 비평가 류짜이푸와 신진 비평가 우이친의 비평을 실어 작품과 함께 중국 문학 감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아시아의 도시와 문학`은 계간`아시아`가 이번 호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연재물이다.아시아의 한 도시에 오래 살았거나 머물고 있는 작가들이 집필을 맡게 될 이 기획은 한 도시가 간직한 이야기와 함께 여행자의 눈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도시의 매력을 듬뿍 맛보게 해 줄 것이다. 이번 호는 특집과 연계하여 베이징을 소개한다. 중국 대표 시인 시촨은 그의 흥미로운 산문 `내가 사는 도시를 상상하다`에서 중국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중축선`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천이백 만의 고정인구와 칠백 만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베이징의 중심 지대가 실은 텅 비어 있다는 그의 글에서 실재하는 땅 위의 베이징과 상상의 산물인 베이징은 기묘한 대비를 이룬다. 왕퉁의 `베이징의 가을을 찾아서`는 지금과 같이 거대 도시가 되기 전의 베이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소설가 김인숙의 산문 `중심, 이야기, 북경`은 서울 토박이 작가가 베이징에 체류하며 겪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없는 게 없는” 도시, 베이징이 그려져 있다. 베이징을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의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으로부터 하나의 도시, 천의 얼굴을 가진 베이징을 만난다.다채로운 그림과 함께 아시아의 다양한 신화와 전설, 민담을 통해 아시아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이야기로 읽는 아시아―신화, 전설, 민담`에서는 중국의 신화와 민담을 실었다.신화 `황제와 치우`는 중국 건국 신화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황제와 치우의 다이내믹한 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이징의 민담 `주선교의 전설`은 주선교가 세워지고 처음 다리를 건넌 수염이 희끗한 노인과 그 이후 강가에서 술에 물을 섞어 파는 검은 수염의 늙은이 이야기로 그 후 주선교 일대에서 술을 파는 사람들이 감히 술에 물을 섞지 못했고 왜 물에 술을 섞는 짓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연원을 들려준다.이번 호 시는 몽골과 한국 스리랑카와 캄보디아 작가의 시를 싣는다. 스리랑카와 캄보디아의 시는`아시아`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특히 사리스 피우의 시에는 캄보디아인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시련과 그것이 남긴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시인은 태국의 난민촌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최근 신작 시집을 낸 심보선 시인의 시 두 편도 실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1-09-08

길고양이가 밉다고요? 읽고나면 생각 달라져요

`도둑괭이 공주` 문학동네 펴냄, 황인숙 지음, 1만2천원소설가 황인숙데뷔 때부터 고양이의 영혼과 공명하며, 고양이를 동반자로 삼아온 고양이 시인 황인숙(52)이 길고양이를 다룬 장편소설 `도둑괭이 공주`(문학동네 펴냄)를 출간했다.`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등의 알려진 시집이나 `해방촌 고양이` 같은 산문집에서 고양이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소설의 형태로 단단하게 가다듬어진 이번 작품은 본격적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마음 안에 돌아다니던 조각 스케치 형태의 고양이들이 정교한 붓 터치를 입어 알록달록한 채색화로 완성된 것이다.“허무해 내 나이,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주인공 화열이는 스무 살이지만, 앳된 느낌이 나지 않는 조숙한 아가씨다. 고양이들의 엄마라는 책임감도 한몫했을지 모르나 사실은 버려지고 또 버려진 경험 때문이다. 사업 실패 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아버지,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결혼한 후 마음의 빈 곳을 채우지 못해 떠나버린 소녀 같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 번도 제대로 아이일 수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화열이가 혼자 살고 있는 재개발 직전 낡은 시장 건물의 2층 방은, 비가 오면 망가지는 길고양이들의 스티로폼 집을 연상시키고 만다. 이기적인 주인들에게 버려진 후, 상처를 입어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길고양이들과 화열이는 닮아 있다.그런데 화열이도 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화열이의 곁을 파고든 사람들이 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인터넷 카페 `고양이웃네`의 회원들이다.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며 유학을 준비중인 혜조 언니, 반지하방에서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도 활기를 잃지 않은 바리이모님, 인터넷 쇼핑몰을 하는 양야옹 언니, 친절한 회계사 그럭저럭 오빠, 소설가를 꿈꾸는 튕클 언니, 바람둥이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은 전설 아저씨…. 거기에다 화열이 이모 식구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 사람들, 베베치킨 배달원이자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친구 필용이가 더해져 어느새 왁자지껄해져버렸다. 화열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사람들로,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하다.가방 안에 사료와 때때로 간식 캔, 고양이 혀가 베이지 않도록 음식을 옮겨 담을 햇반 그릇을 들고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를 찾는 화열이처럼 작가도 실제로 고양이 밥을 주고 있다. 벌써 5년째이며, 2년 전부터는 하루에 두 번씩이다. 소설에도 나오듯이, 골목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고양이들에게도 고양이 밥 주는 사람에게도 사람들은 쉽게 적대적이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시인이 사람들의 적의에 매일 받았을 상처, 그럼에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을 헤아리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08

`아시아`가 실은 중국 당대 소설가들의 단편 4편

중국 소설가 모옌, 중국 소설가 옌렌커, 중국 소설가 츠즈젠, 중국 소설가 주원잉△모옌의 `하늘을 나는 신부`모옌의 작품답게 환상성이 가미된 작품이다.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홍시는 옌옌이라는 예쁜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자신의 여동생을 벙어리에게 시집보내는 대가로 벙어리의 여동생, 옌옌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지만 혼례식 날 옌옌이 도망을 간다.뒤쫓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던 옌옌이 갑자기 하늘을 날게 되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우왕좌왕하다 경찰을 부른다.경찰은 창과 활로 위협을 하지만 옌옌은 나뭇가지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옌렌커의 `류향장`바이수 향에 위치한 춘수촌 향장 류향장은 일을 할 수 있는 만 열여덟 살 이상, 마흔 살 이하의 남자와 여자들을 모아 트럭에 태우고 지우뚜 시로 데려간다. 거기서 류향장은 향의 관인이 찍힌 백지 소개서를 한 장씩 나눠 주며 도시로 들어가 어떤 일이라도 하라고 당부한다. 류향장은 반년도 채 안 돼 돌아오는 사람에게 4,000위안의 벌금을 내게 하고 한 달이 안 돼 돌아오는 사람에게는 5,000위안의 벌금을 내게 할 만큼 단호했다. 그런 류향장의 노력으로 마침내 춘수촌에서도 한 명의 `자수성가`한 인물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화이화`이다. 화이화의 성공을 기리기 위해 화이화 기념비를 제작하는 데 온 힘을 쏟는 류향장은 화이화와 조우하게 되고 화이화의 한 제안에 눈앞이 흐려진다.△츠즈젠의 `돼지기름 한 항아리`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인간미 있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능한 츠즈젠은 그의 소설 `돼지기름 한 항아리`에서 세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있는 동북 지방으로 떠나는 여인의 여정을 그려 낸다.주인공은 자신이 살던 집을 돼지기름 한 항아리와 바꾸고는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남편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하지만 그녀는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돼지기름 항아리를 깨뜨리고 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 돼지기름 한 항아리 안에 그녀가 알지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주원잉의 `덧없는 인생`신생대 여류 작가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주원잉의 `덧없는 인생`은 남자 주인공 싼바이가 새집을 구하기 위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겪는 이야기이다.복잡한 구도나 갈등은 없지만 익숙한 곳에서 길을 잃으며 낯선 사물과 인물을 만나는 싼바이의 꿈같은 하루 여정이 묘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윤희정기자

2011-09-08

터키 오스만 제국 사람들의 삶과 사랑

`사랑의 여신 이난나` 민음사 펴냄, 무라트 툰젤 지음, 484쪽, 1만3천500원 아시아의 서쪽 끝에 자리한 터키는 아나톨리아와 비잔틴, 오스만 등 거대한 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땅이다. 15세기경 십자군을 물리치고 동로마 제국을 점령하며 중앙유럽과 북아프리카로 영역을 확장한 오스만 제국은 그 넓은 영토만큼이나 다채롭고 화려한 문화를 뽐냈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계속된 전쟁과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오스만 제국은 쇠퇴기에 접어든다. 터키의 대표적인 문학상 오르한 케말 소설상 수상 작가 무라트 툰젤의 소설 `이난나`(아시아 펴냄)는 바로 이 시기, 제국의 끝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난나`는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이다. 신화 속 이난나는 자신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는 누이 때문에 일 년 중 절반만을 지상에 머무르기로 한다. 목숨을 걸고 저승길에 나선 수메르 여신 이난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프로디테의 전신이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는 비너스로 불렸다. 이난나 이야기는 수메르 신화가 전승된 경로를 따라 메소포타미아와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전해졌고 사랑과 전쟁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로 태어났다.`이난나`를 쓴 무라트 툰젤은 번성한 문명을 가진 오스만 왕조에 대한 호기심과 존경심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그리하여 수메르족의 신화에서 가장 강열한 힘을 가진 전쟁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의 이름이며 터키인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 말하는 소설 `이난나`를 완성하게 된다. 사랑의 여신을 제목으로 쓴 만큼 이 소설에서 인물, 즉 인간은 끊임없이 사랑을 함으로써 존재를 확인하고 존엄을 이어간다.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터키 작가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 터키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야샤르 케말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터키 소설 중에 오스만 제국을 소재로 삼은 소설은 많지 않다. 오스만 제국은 그 영토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와 삶을 지니고 있어 터키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취재나 고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설 `이난나`는 오스만 제국 말기의 내밀한 사회변화와 인간적 투쟁을 세밀하게 포착해 그 안에 생동하는 투쟁과 사랑의 모습들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난나`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두 남자의 여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제밀은 야르오스만(Yarosman)의 시파히(Sipahi)이다. 시파히는 봉건 기사와 유사한 지방 영주를 말한다. 이들은 전장에서 공훈을 세운 대가로 봉토를 받았다. 그리고 그 땅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여 세입에 따라 일정 수의 군사를 양성할 수 있었다. 비록 봉토 안의 소작인들을 마음대로 추방하지 못하고, 술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 즉시 출병해야 했음에도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오스만 제국의 지방 호족이었다. 궁성학교 출신들이 술탄의 노예라고 불린 것에 비해 이들 시파히는 자유인에 속했던 것이다. 기혼남인 제밀은 이교도인 아르메니아 호족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교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가문의 전통과 자신의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두 부인과 수하를 거느리고 아버지의 영토를 떠난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과 매서운 눈바람이 몰아치는 산과 강을 건너면서 제도와 개인의 문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이 소설에 나오는 많은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 살아가며 둘째 부인, 혹은 첩의 신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자신의 지위 때문에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남자를 보살피고 그들이 내적 성장을 겪을 때 묵묵히 곁을 지켜 준다. 이러한 여성들의 모습은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불안했던 시기에 그녀들이 보여 준 그러한 모습들은 오래 전 여신 이난나가 자신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가던 모습을 상상하게끔 한다. 그녀들의 초인적인 인내와 지혜는 사랑의 여신 이난나의 재현이다./윤희정기자

2011-09-01

신의궤도는 모든 것 갖춘 종합선물세트

`신의 궤도` 문학동네 펴냄, 배명훈 지음, 328쪽, 1만2천원2009년 연작소설집 `타워`를 선보이며,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소설가 배명훈의 글쓰기는, 지금까지 그 어떤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었고, 생생하고 산뜻했으며, 그만큼 그동안 우리에게 매우 절실하고 아쉬웠던 어떤 것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기발한 상상력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문체는 발랄하고 흡입력 있으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 사이사이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이 (유머러스하게) 던져지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숨기지 않는다.“그게 뭔데요?”“신이요. 이건 신이 될 겁니다.”“신을 만들겠다는 겁니까?”“물론 아무나 만질 수 있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올려둘 거거든요. 쉽게 올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간절히 원한다면 결국은 닿을 수 있게 해야겠죠.” -`신의 궤도`중에서“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신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은 늘 가까이에서 행성 주위를 공전하시지만, 그 크기가 너무나 작으셔서 세상 어떤 성전에 설치된 망원경으로도 감히 그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 신앙이 신앙으로 남아 있는 것은 신께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기 때문이었다. 신은 그렇게 언제나 모습을 감추고 계셨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목표는 언제나 신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었다.”배신 믿음 화해 사랑 혁명 낭만 형이상학 그리고 빨간색 삼엽기가 가로지르는 하늘까지 `신의 궤도`는 정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입니다. 한국의 진정한 SF작가 배명훈은 이른바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수만 광년 떨어진 두 행성의 오랜 적대와 몰이해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행성연합을 이룩해 낼 우주문학의 유능한 외교관입니다. 배명훈 소설이 앞으로도 두 행성 간의 실시간 번역과 소통을 훌륭히 담당하길 바랄 뿐입니다. -복도훈(문학평론가)인공위성 재벌의 서녀인 은경은 배다른 언니인 경라에게 늘 미움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생활하려 노력한다.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서 비행예술과 궤도비행까지 배우며 점차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깨달아가는 은경. 하지만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아빠에 대한 미움은 끝내 가시지 않는다. 타국에서도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은경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코스모마피아` 바클라바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그는 은경의 아빠인 킴에 대해서는 증오를 품고 있지만, 유일하게 은경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를 눈치챈 경라 언니는 은경을 제거할 술책을 꾸미고, 꼼짝없이 말려든 은경은 바클라바도 잃고 아빠를 죽이려 했다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은경의 결백을 아는 아빠는 그녀의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은경은 겨우 사형만 면한 채 냉동되어 아주 먼 미래에서나 다시 깨어나야 하는 신세가 된다.약 십오만 년 뒤, 아빠가 창조한 휴양행성 나니예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된 은경. 영문도 모른 채 미래에 던져진 그녀의 앞에는 지구에서 아빠에게 선물받았던 빨간색 삼엽기가 우뚝 서 있다. 아빠가 만든 이 역겨운 낙원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방법은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나니예를 탈출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이는 분명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클라바가 아닌가! 낯설지만 아름다운 행성 나니예에서 은경은 과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9-01

전통 서정시 외형 허물고 색다른 시적 공감 불러…

이장욱 시집 `생년월일` 창작과 비평 펴냄, 144쪽, 8천원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일궈온 이장욱(43)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생년월일`(창작과비평 펴냄)이 출간됐다.시집 `정오의 희망곡`으로 잘 알려진 이 시인은 현재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 중 한 사람이자 소설가, 비평가이면서 러시아 미학을 전공한 학자다.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더욱 세련된 특유의 감수성을 선보이며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실재를 서늘한 눈빛으로 꿰뚫어본다. 전통 서정시의 외형을 허물고 재래의 익숙한 서정과 정형화된 시의 문법을 비트는 파격이 색다른 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미묘한 서정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이장욱의 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사뭇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감각적인 이미지 묘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시인은 “근육질의 눈송이들”이 “꿈틀거리는 소리”를 듣고, “점 점 점 떨어”지는 “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나”는 것을 예감한다.“넌 누구냐?/가까워서 안 보여//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나네/바위를 부수는 계란과 같이/사자를 뒤쫓는 사슴과 같이//근육질의 눈송이들/허공은 꿈틀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네/너는 너무 가까워서/너에 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을 수는 없겠지만//드디어 최초의 눈송이가 된다는 것/점 점 점 떨어질수록/유일한 핵심에 가까워진다는 것/우리의 머리 위에 정교하게 도착한다는 것”(`겨울의 원근법`부분)시인의 예감은 현실이 되어 “사슴의 뿔과 같이 질주”하다가 “계란의 속도로 부서”진 후 “뜨거운 이야기”(`겨울의 원근법`)로 번져간다. `정교하게 정렬해 있는 고요한 세상`의 해체(`내 잠 속의 모래산`)와 `자아의 실종`(`정오의 희망곡`)에 골몰했던 시인이 이제 “입을 벌리는 순간/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솟아”나고 “곰곰 생각하고 생각한 후 간신히/생일 다음에 오는 불안에 대해/긴 이야기를 시작한다”(`당신이 말하는 순서`).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내가 태어난 건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는데,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쾅!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에/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더군./수평선은 생후 십이년 뒤 내 눈앞에 나타났다. 태어난 지 만 하루였다가, 십이년 전의 그날이 먼 후일의 그날이다가,/수평선이다가,/저 바다 너머에서 해일이 마을을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생일이 찾아오고, 죽어가는 노인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연인들은 처음으로 입을 맞추고,/케이크를 자르듯이 수평선을 잘랐다. 자동차의 절반이 절벽 밖으로 빠져 나온 채 바퀴가 헛돌았다.(`생년월일` 전문)축복받아 마땅한 `생일`을 `불안`으로 경험하는 시인에게 세계는 “오래 살아온 도시가 재가 되”고 “자꾸 무너지면서 또/발생하는” “등뒤의 세계”(`뒤`)이다. “신호등이 지배하는”(`세계의 끝`) 이 세계에서 시인은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동사무소에 가자`)나 “모퉁이를 돌면 남자의 성기가 나타나고/아무리 걸어가도 큰길은 나오지 않”고 “운구차가 영영 들어오지 못하는”(`재크의 골목`) 골목, “지진에만 반응”(`특성 없는 남자`)하는 횡단보도 등과 같은 일상의 후미진 구석을 떠다닌다.일상이란 결국 우리가 어떻게 `생일`을 지속하고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함돈균 `해설`)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생일`은 태어남에 관한 것인 동시에, 일상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생년월일`에 관한 “모든 것이 있는 곳”, “시작과 끝이 명료”하고 “간결한 곳”,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는 더이상 예측 불가능한 일이 남아 있지 않은 일상의 공간이다. 이 빈틈없는 일상에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질문. “질문이 없는” 세계, “의심”하지 않는 이곳은 세계의 끝이다. 그리고 일체의 질문이 소거된 세계의 끝에서 문득 “동사무소란/무엇인가”라는 세계 형식 자체를 문제 삼는 최후의 질문이 출현하는 순간, 세계의 모순은 드러나고야 만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개체들의 `탄생`과 개체들이 모여 이룬 세계의 `지속`과 그것이 곧 `끝`이 되는 세계 풍경의 묵시적 묘사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25

사기꾼들의 본성과 진정한 가족의미 그려

`까마귀의 엄지` 문학동네 펴냄, 미치오 슈스케 지음, 380쪽, 1만1천원스릴 넘치는 미스터리 구조와 심도있는 세계관으로 일본문단계에서 `제 2의 무라카미 하루키`로 평가받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올해 나오키 상을 수상한 그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작품세계로 국내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까마귀의 엄지`(문학동네 펴냄)는 그런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나오키 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최근에는 영화화가 결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젊은 시절 사채조직의 덫에 걸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공통점을 지닌 중년 남자 다케자와와 데쓰. 달리 의지할 곳 없는 둘은 각자의 기술을 이용해 함께 크고 작은 사기를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 앞에 예쁘장한 외모를 이용해 상습적으로 소매치기를 하는 소녀 마히로가 나타난다. 역시 사채업자에 시달리다 엄마가 자살한 과거가 있는 마히로와 언니 야히로, 그리고 그녀의 애인 간타로까지 엮이면서 다섯 명의 좌충우돌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나 어느새 가족처럼 가까워진 이들의 안락한 생활도 잠시, 다케자와를 쫓는 사채조직의 위협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져만 간다. 불공평한 세상을 언제나 인내하며 살아왔던 이들은 지금껏 뒷골목에서 쌓아온 모든 노하우를 끌어모아 공동의 적 사채업자 히구치에게 복수를 꾀하는 대규모 사기극, 일명 `앨버트로스 작전`을 계획하는데….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사회부적응자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빈곤한 삶이나 범죄의 어둠이 자아내는 칙칙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문체, 범죄자이긴 하지만 결코 `악인`이 아니며 은근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재치 있는 대화, 그리고 군데군데 등장하는 기발한 말장난 덕분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까마귀` 역시 `검다`라는 뜻의 일본어와 발음이 비슷한 `프로 사기꾼`을 뜻하는 은어로, 작중 다케자와와 데쓰의 대화에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는 말장난들에서 상징적인 의미와 복선을 찾아내는 것은 `까마귀의 엄지`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이다. `까마귀의 엄지`는 치밀하게 짜여진 대규모 사기극을 중심에 두고 쓰여진 대중소설이지만, 그에 앞서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을 묘사하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2011-08-25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산문집 `울지 말고 꽃을 보라` 해남 펴냄, 382쪽, 1만3천800원 “우리의 인생에서 사랑 이외의 모든 관심은 예비적 관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을 빼고 나면 신이 설 자리를 잃듯이 인간에게도 사랑을 빼고 나면 삶의 자리를 잃고 맙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계신지요. 혹시 지금 사랑의 문제 때문에 울고 계신다면 울지 말고 꽃을 보십시오. 꽃이 피어나는 것도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정호승 `울지말고 꽃을 보라``작가의 말`중에서)사람살이의 슬픔, 상처, 고통을 이야기하는데도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은 온기와 희망으로 차오르게 하는 작가 정호승(61). 작가생활 4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시와 산문을 발표하며 사람들에게 삶의 상처마저도 희망의 씨앗으로 키우는 지혜를 선물해 온 그가 우리가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하는 화두는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답한다.정호승의 인생동화 `울지 말고 꽃을 보라`(해냄 펴냄)가 출간됐다.책은`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드립니다`(1998), `스무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1·2`(2003),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2004) 등 3종 4권의 작품집에서 희망을 잃고 지쳐만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102편을 선별해 새롭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개정완결판이다. 이번 작품집은 오랫동안 작가와 교감하며 동행해온 박항률 화백의 특유의 고요하면서도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펜화와 채색화가 더해져 그림의 여백만큼이나 글의 울림을 더한다.인생을 이루는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나와 우리를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동화와 우화의 그릇에 담아 선보이는 이 책은, 1장 `기다림 없는 사랑은 없다`, 2장 `뼈저린 후회`, 3장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4장 `완벽하면 무너진다`, 5장 `겨울의 의미` 등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우리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혹독한 겨울의 눈보라를 견딘 다음에야 열매를 맺는 가을보리가 고통의 의미를 일깨우는가 하면, 서로 다른 견해로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해와 달의 모습에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을 때 아집에 빠지고 마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되비춘다. 바위라고 우기는 모래를 비웃다 모래가 된 뒤에야 뉘우치는 바위의 이야기에서 누구의 인생에 주어진 고통과 인내이든 그 크기는 결코 다르지 않다는 엄연한 진실과 심한 바람에도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는 제주 돌담의 허술함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운다. 한 편 한 편의 동화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타인과 세상과의 관계를 돌이켜보게 한다. 나무와 풀, 돌과 짐승 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풀어낸 이야기들은 간결하지만 압축미 넘치는 문장에 인생을 꿰뚫는 통찰을 잃지 않았으며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는 마음을 울린다. 작가는 단순히 삶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이 모든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사랑`임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사는 일이 힘들어 울고 있다면, 울지 말고 우리를 사랑해서 피어나는 꽃을 보라고. 그래서 `울지 말고 꽃을 보라`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인생을 더 단단하고 성숙하게 키우는 씨앗이 돼 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25

쉽고 재미있는 몸의 심리학 이야기

`몸에 갇힌 사람들` 창비 펴냄,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고(故) 다이애나비의 폭식증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정신분석가 수지 오바크가 펴낸 책 `몸에 갇힌 사람들`(원제 `Bodies`)은 몸의 불안을 야기하는 현대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몸과의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한다. 수지 오바크는 다이애나비를 상담했던 정신분석가로,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라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그동안 몸의 문제를 천착해온 저자의 연구주제들을 총집결한 것으로, 저자가 상담했던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몸의 심리학`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나간다.여기서 몸의 심리학이란, 신체적 고통의 원인을 심리적 문제에서 찾았던 전통적인 정신분석 이론과는 달리, 몸의 문제를 몸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체적 증상은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그 자체의 욕구와 고통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신호다. 예컨대 요즘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뚱뚱한 몸은 태만과 자기무시의 결과가 아니라, 몸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쏟아붓는 대중문화에 대한 거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마음이 몸을 장악한다는 기존 정신분석 이론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시대 몸들을 재고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그 새로운 사고방식 중의 하나는 바로 몸의 문제들을 다룰 때 신체발달 이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몸을 둘러싼 광란의 분위기가 가족을 통해 흡수, 전달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최초로 신체적 감각을 습득하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몸은 부모와의 접촉을 통해 올바로 형성되거나 잘못 형성된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아기가 우유를 토하는 것을 보고 과도하게 걱정한 엄마의 영향으로 반사적인 구토습관과 대장염에 시달리게 된 헤르타, 자기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어머니로 인해 정상적인 섹스를 하지 못하게 된 루비 등―들이 이를 뒷받침한다.부모가 자기 몸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엄마가 늘 다이어트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몸에 대한 인식이 어려서부터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신체경험에 부모의 괴로운 몸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며, 예비부모와 초보부모에게 올바른 몸 인식을 심어주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18

타고르의 고향서 쓴 1초 1초의 의미와 성찰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문학동네 펴냄, 곽재구 지음, 352쪽, 1만3천8백원 `사평역에서` `포구기행` 등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과 따뜻하고 위로를 줬던 곽재구(57) 시인이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문학동네 펴냄)을 펴냈다. 이번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시인이 인도 시성(詩聖) 타고르의 고향 산티니케탄에서 540일을 사는 동안, 우리 생의 수많은 1초들, 찰나의 시간들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한 영혼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언제나 지상이 천국이고 삶이 축복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2009년 7월, 시인 곽재구는 순천대 문예창작과에서의 시 강의를 잠시 멈추고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으로 떠난다. 그리고 2010년 12월28일까지 540일 동안, 그는 산티니케탄에 체류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2000년대 최고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포구기행`이후 시인은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앤솔로지에 한 편씩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동화를 쓰거나 신문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하는`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어느 지면에도 발표한 적이 없는 `전작`이며, 책의 출간에 대한 의식도 없이 `필연적으로 쓰여진`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산문집의 배경은 비슈와바라티 대학교가 자리한 한적인 시골 마을인 산티니케탄이지만, 그것은 여느 여행기나 인도에 관한 잠언집들과는 출발점부터 차이가 있다. 시인에게 그것은 “오래 묵힌 마음의 여행”이었다.시인이 인도의 유명한 성지도 장엄한 풍광이 사람을 압도하는 여행지도 아닌 산티니케탄으로 떠난 것은 바로 40년 동안 꿈꿔왔던 `만남`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산티니케탄은 타고르가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다.△1장-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사람이 하나의 별이라면시인이 묘사하는 산티니케탄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농촌과 비슷한 풍경이다. 초가집들, 뙤약볕 아래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 우물 긷는 아낙네, 흙먼지 이는 시골길 위로 자전거 타고 가는 아가씨, 소와 개와 염소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저녁마다 전깃불이 나가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반딧불들…. 신을 섬기며 농사짓고 아이를 기르고 정을 나누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산티 사람들은 욕심도 경쟁도 고통도 절망도 알지 못한다. 시인은 이들을 `별`이라 일컫는다. 1부에서는 그 별과 같은 사람들과 얽힌 `인연`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2장-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릭샤 스탠드| 행복을 찾는 가장 빠른 길산티니케탄에 체류하는 동안 시인의 일상을 늘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릭샤`라 불리는 자전거 택시를 모는 `릭샤왈라`들이다. 길가의 꽃과 나무 등 모든 생명에게 `발로 아첸`(안녕) 인사를 건네고 시인에게 산티의 수많은 꽃이름들을 벵골어로 가르쳐준 인력거꾼 수보르는 그에게 `꽃 선생님`이자 시인보다 더 시인의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영혼이었다.△3장-마시 이야기| 일상 속 소중한 1초들마시는 `가정부`를 뜻하는 벵골어다. 산티에서의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마시 이야기`에는 마시에 대한 여러 풍경들이 세세하게 묘사돼 있다. `만만한 주인`과 `만만치 않은 마시들`의 줄다리기는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가슴 졸이게 하고 때론 안타깝거나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감동적인 소통에 이른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에는 행복과 기쁨은 물론이고 갈등과 반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또한 포함된다는 평범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글편들이다.△4장- 가난한 신과 행복한 사진 찍기| 지상이 극락인 시간이 여기에벵골어를 공부해 타고르의 시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 시인이 1년 6개월 산티니케탄 체류의 중심 과제였지만, 산티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작가로서 그곳의 사정을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이 장에서는 이 정주의 기간 동안 터득하게 된 삶의 지혜들에 관한 글이 주를 이룬다.시인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티의 노천카페 거리인 `라딴빨리`에 나간다. 반얀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그늘 아래 앉아 짜이를 마시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가 이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데는 까닭이 있다. 맞은편에 `달빛의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에게 종이배를 산 날 말을 걸어온 암리타라는 아가씨가 알려준 꽃나무였다. 그는 1년 동안 조전건다 나무를 지켜보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2010년 5월, 마침내 찬란한 빛의 축제와도 같은 광경을 목도한다. (`조전건다 꽃이 필 때` 1, 2)/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