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TK) 행정통합이 재정과 인구 규모 확대를 통한 ‘생존론’과 경북북부권 소외등을 우려하는 ‘신중론’ 사이에서 거듭 좌절을 겪고 있다. 행정통합이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할 유일한 해법이라는 당위성과 함께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간 격차심화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들어 4년간 20조 원 규모의 재정지원과 공공기관 우선배정이라는 파격적인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경북 북부권의 불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규모의 경제로 생존”⋯25조 예산과 지방분권의 청사진 행정통합 당위성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는 ‘규모의 확대’를 통한 자생력 확보와 획기적인 지방분권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구와 경북이 하나로 합쳐지면 인구 약 500만 명, 예산 규모 25조 원에 달하는 거대 광역경제권이 탄생한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연구단은 이러한 체급 확대가 지방사무 수행 능력을 증대시켜 국가 사무 이양을 용이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기회있을 때마다 TK지역의 인구 감소와 뒤처지고 있는 지역내 총생산을 언급하며 한탄했다. “대구경북이 이대로 가면 주저 앉는다”고도 했다. 대구·경북의 인구는 1980년 495만명에서 2026년 2월 기준 485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수도권 인구는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늘었다. 지역 내 총생산(GRDP)은 대구는 항상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인구, 경제 모든 부분에서 TK지역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재정지원과 자치권 확대 없이는 돌파구가 없다는 것이 이 지사를 포함한 통합 측의 지론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번에 이재명 정부가 통합특별시에 제시한 20조 원 규모(4년간)의 재정 인센티브는 지방 경제가 살아나기 위한 마중물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4년간 총 20조 원의 특별교부세가 지원되면 로봇, 반도체,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기반이 획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대구시의 가용 재원은 연간 2000억~3000억 원 수준에 불과, 굵직한 사업들은 손도 못대고 있다. 이는 경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8년 동안 경북도를 이끌어 온 이 지사는 지난 1월 “통합은 단순한 구역 합치기를 넘어 TK공항 조기 건설 등 지역의 판을 바꿀 대전환의 기회”라며 도민들의 협조를 당부한 바 있다. 이는 현재 구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심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증되지 않은 경쟁력”⋯지역 내 격차 우려 TK행정통합이 한창 추진 중일 때 예천읍에 사는 한 주민은 ‘경북·대구 행정통합 결사 반대’라는 현수막을 걸었었다, 그는 “통합이 되면 대도시인 대구로 의료, 교육 등 모든 것들이 빨려갈 게 뻔하기에 스스로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SNS 모임 등을 통해 단체 행동에 돌입하자는 목소리가 순식간에 커졌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대구경북 통합이 북부권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까?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찬성론이 메인스트림이긴 하지만, 경북 북부권 주민들이 반대 쪽에 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지역 불균형 우려는 핵심 요소다. 인구 밀집도에 따라 행정권과 경제력이 대구로 쏠리는 ‘역류 효과’가 발생할 경우, 안동·예천 등 경북 북부 지역의 도청 신도시는 발전 동력을 잃고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것. 실제, 북부권 도민들은 마산·창원·진해 통합 이후 창원 중심으로 발전이 되면서 마산 지역이 낙후된 사례를 대구경북 통합 시 나타날 우려로 보고있기도 하다. 또 일각이긴 하지만 학계 등에서도 대도시와 농촌이라는 이질적인 특성을 가진 지역을 하나로 묶을 경우, 행정의 방향 설정에 혼란이 생기고 상생보다는 갈등과 반목의 여지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와 북부권 주민들의 불안을 키웠다. 번대 측에서는 통합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한다. 인구 규모가 커진다고 자치권이 강화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인구 1000만이 넘는 서울과 경기가 타 시도보다 더 큰 자치권을 갖고 있지 않고, 반면 인구 60만의 제주도는 특별자치권을 가지고 있는데 왜 수도권 인구는 계속 늘고 제주도는 쪼그라드느냐는 것이다. ‘인구수=자치권’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와함께 대구(41.6%)와 경북(29.8%)의 재정자립도를 합치면 평균 39.1%로 전국 평균(48.6%)보다 낮아져, 오히려 건실했던 대구의 재정마저 부실해지는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행정통합은 “갈등해소 순기능” vs “거버넌스 시대의 역행” TK행정통합이 지역간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순기능에 대해서도 찬·반 시각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지난 1991년 구미공단 페놀 유출 사건 발생 이후 계속되고 있는 대구 취수원 이전문제를 예로들면서, 행정통합이 되면 지역간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지만 갈등의 원인을 줄이거나 갈등이 확산되기 전 조정 협의로 완화할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측은 대구경북이 합친다고 해서 자치단체간 갈등이 해소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또 오늘날 행정 이론이 계층제적 지배보다 네트워크 중심의 ‘협치(Governance)’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거대 관료제를 만드는 행정 통합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한다. 지역 정치권도 이 사안에 대해 갈팡질팡, 혼란을 초래했다. 지난 1월 TK행정통합 특별법을 발의한 국민의힘 경북도당 구자근(구미갑) 위원장은 “지방소멸 위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며 “대구·경북 행정 통합이 지자체 행정을 합치는 문제가 아니라 자치권, 재정 자율성 강화를 통해 지방 정부가 국가 균형 발전에 앞장서는 대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부권 국회의원들은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 주민들이 저항하자 “통합하면 오히려 지역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높다”며 반대했고, 이는 결국은 민주당에서 대구경북 통합을 좌초시키는 결정적 빌미가 됐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25
편집자주=“대구·경북(TK)이 하나로 합치면 정말 살기 좋아집니까?” 25년 전 ‘경제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이 질문은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설 유일한 병기(兵器)로 꼽히는 ‘TK 행정통합’은 왜 번번이 멈춰 서는가. 경북매일신문은 4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TK통합 논의의 과거 25년과 행정통합의 걸림돌, 해외의 성공·실패 사례, 행정통합을 위한 마지막 퍼즐 등을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1.TK행정통합은 왜 번번이 멈췄나 2.이슈가 된 행정통합 당위성과 걸림돌 3.해외 사례에서 본 성패의 교훈 4.성공적 행정 통합을 위한 ‘마지막 퍼즐’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이 또다시 국회 입법 문턱에서 멈춰 섰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할 거대 광역경제권 구축을 목표로 추진했지만 정파적 계산과 실무적 난제라는 파고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들자마자 시작된 TK통합 논의가 결정적 순간마다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배경에는 ‘불분명한 통합 효과’와 ‘관(官) 주도 방식’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추진됐던 TK 행정통합 특별법은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7월 1일 출범계획이었던 대구경북 통합특별시도 사실상 무산됐다. 4월 초가 특별법 처리 마감 시한이라고는 하지만 국회 일정상 본회의에 회부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TK통합 논의의 시작은 2000년대 들어 제기된 ‘경제통합’이었다. 산업과 생활권이 겹치는 두 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자는 취지였다. 이후 메가시티 정책이 부상하며 행정구역 통합으로 확대됐고, 2020년 9월에는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 로드맵을 제시했다. 당시 공론화위는 대구시를 해체하고 8개 자치구·군만 남기는 ‘특별광역시(오사카 모델)’와 대구시 지위를 유지하되 행정 계층을 조정하는 ‘특별광역도’ 안을 놓고 고심했다. 하지만 2021년 4월 공론화위는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했다. 3년 만에 재점화된 2024년의 추진 과정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제안과 이철우 경북지사의 화답,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가 맞물리며 탄력을 받았다. 중앙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과거와는 달랐지만, 시도민의 의사가 아닌 관이 주도한 ‘톱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한계가 반복됐다. 통합 효과에 대한 객관적 근거 미비도 장애요소가 됐다. 통합론자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 확보를 주장하지만 광역시와 경북도의 통합이 가져올 실질적 이득은 불분명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통합 시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 지방의원 수 감소, 공무원 인사체계 변화 등 복잡한 이해관계 충돌도 문제였다.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외 가능성과 청사 위치를 둘러싼 이견도 숙제였다. 정치권의 셈법도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주호영(대구 수성갑) 의원은 지난 1월 “행정통합은 TK가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시작했는데 정작 밥상은 남들이 먼저 받게 생겼다”며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윤재옥(대구 달서을) 의원도 “정부가 득표에 유리한 지역을 우선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주도권 확보를 강조했다. 반면 홍석준 전 의원은 정부의 재정 인센티브 제시를 두고 “사실상 포퓰리즘”이라며 “인구와 면적이 압도적인 TK를 다른 지역과 동일 기준으로 취급하는 것은 홀대”라고 비판했다. 의원들마다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상에 따라 행정통합에 대한 견해를 달리한 것이다. 국내 기초자치단체 행정통합 선례들은 TK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8년 출범한 통합 여수시는 전국 최초로 시민단체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이뤄내며 엑스포 개최 등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 마산·창원·진해는 정부의 자율통합 기조에 맞춰 입법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통합 창원시를 탄생시켰다. 반면 TK지역은 이러한 주민 주도의 숙의 과정보다는 관 주도의 속도전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TK통합 특별법 민주당 안을 발의한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 임미애(비례) 의원은 “통합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작 단계인 만큼, 필요한 보완은 시행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해 나가면 된다”며 “지금은 지역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