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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경북산불 1년] “산불 대응, 이제는 ‘기구 일원화’와 ‘장비 현대화’가 생존의 문제”

지난 4주간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경북 산불 피해 현장은 ‘특별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처참했다. 7평 컨테이너에서 청심환으로 버티는 노인, 5년의 소득 공백 앞에 10만 원의 보상금을 쥔 농민, 그리고 70년 송이밭을 잃고 ‘한 달 치 생계비’를 손에 든 농부까지. 화마(火魔)와 맞섰던 현장 대원들의 사투는 우리 방재 시스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산불 특별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본지는 소방·방재 전문가인 전우현 대구보건대 교수와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를 통해 한국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모순과 대안을 짚어봤다. ◇ “이원화된 지휘권, 국가 재난급 대응의 걸림돌” 전우현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당시 산불이 단시간에 초대형으로 확산한 원인으로 우리나라 지형 특유의 강풍인 ‘양간지풍’과 소나무 및 잡목이 밀집된 산림 특성을 지목했다. 전 교수는 “기후 변화로 산이 극도로 건조해진 상태에서 강풍이 불면 산림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약고가 된다”며 “봄철 지형적 특성인 강풍이 불고 소나무와 잡목이 밀집해 있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우리 산림은 연료 역할을 하는 침엽수 비중이 너무 높고 낙엽과 고사목이 쌓여 ‘불쏘시개’ 층이 두꺼워진 상태”라며 “가파른 산악 지형은 소방차 접근이 어렵고 방수용 자원 확보도 힘들기 때문에 초기 진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원화된 지휘 체계의 개선이다. 산림 관리는 지자체, 대응은 산림청 중심, 지원은 소방청이 맡는 현 시스템은 초기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제 산불은 단순한 산림 화재가 아니라 민가와 도로를 덮치는 ‘국가 재난’이다”라고 강조하며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 지휘 체계를 일원화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불 관련 법적 지원에 대해서는 시기적절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보완을 주문했다. 그는 “송이 농가처럼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 다시 임산물을 채취할 수 있을 때까지의 기간을 고려한 현실적인 지원 방식이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목 제거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긴급 상황은 소유자 동의 없이 가능하나 일상의 예방적 차원에서는 소유자와의 협의와 사후 보상이 전제돼야 재산권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항공 진화 체계의 현대화 역시 늦출 수 없는 대목이다. 전 교수는 “현재의 소·중형 헬기는 담수량이 적고 강풍이나 야간에는 뜨지 못한다”며 “성능이 좋은 대형 진화 헬기로 과감히 교체해야 하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위해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진화 인력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처우 개선을 통한 젊고 유능한 인력이 투입되는 상설 전문 조직을 강화하고 위성·드론·AI를 활용한 첨단 조기 탐지 시스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 “예방 패러다임 전환과 실화자 강력 처벌 절실”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발생의 핵심 요인을 실화에 의한 작은 불씨가 건조한 날씨, 강풍과 만난 것으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불이 잘 붙고 바닥에 마른 솔잎이 쌓여 연소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바람이 불면 불씨가 2㎞ 이상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무력화되기 쉽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진화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예방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산불은 발생 후 30~60분 안에 잡아야 하는데 지휘 체계가 분산돼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실정”이라며 “진화 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하고 헬기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기상 조건이 나쁘면 헬기는 무용지물이 되는 만큼 지상 진화 역량과 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 구조 개선을 위한 수종 전환에 대해서는 ‘어려운 딜레마’를 언급하면서도 변화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침엽수 중심에서 활엽수나 혼효림(섞임숲)으로 정책의 변화가 절실하다”며 “10~20년 단위의 장기 계획을 세워 내화성 수종을 심고 주민들의 소득 감소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어 “위험목 제거는 국가적 사업으로서 적절한 조치지만, 정당한 손실 보상을 전제로 풀어가야 한다”며 “특히 송이 농가 지원이 현실적 소득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 중에서는 미국의 ‘연료 관리’와 호주의 ‘주민 참여형 시스템’을 주목했다. 특히 미국의 ‘연료 관리’에 대해 “일부러 작은 불을 태워 대형 산불의 길목이 될 낙엽과 고사목을 미리 없애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IT 강점을 살려 “민가 밀집 지역 등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건조기에 가연물의 수분 함량을 15% 이상으로 유지하는 과학적 예방 시설 도입이 시급하며 이는 사후 진화 비용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장치로서 강력한 처벌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상당한 경우 실화자라도 15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도록 산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재난 권위자 페탁(Petak)의 말을 빌려 “이제 우리도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6

[경북산불 1년] 70년 ‘송이 황금산’ 잃은 노인에게 특별법은 ‘남의 나라 이야기’

지난 22일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 산자락.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지 1년이 지났지만, 산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었다. 수십 년 수령의 소나무들은 밑동부터 가지 끝까지 숯덩이가 된 채 죽은 듯 서 있었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매캐한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 검은 숲 한가운데 백발의 이위복 씨(86)가 서 있었다. 그는 시꺼멓게 변해버린 산등성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 산을 누비며 송이를 땄어요.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려고 70년 넘게 공들여 가꿔온 산인데… 이제는 송이 하나 보이지 않네요. 싹 다 타버렸어요” ◇ 70년 일궈온 ‘연 매출 3억’ 일터, 1시간 만에 잿더미로 영덕은 전국 최대의 송이버섯 생산지다. 이 씨에게 이 산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황금 창고’였다. 산불 이전까지만 해도 10만 평이 넘는 재배지에서 거둬들이는 연 매출은 3억 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의성에서 시작된 불길이 강풍을 타고 영덕으로 넘어오던 날 70년의 세월은 단 한 시간 만에 무너져 내렸다. “안동에서 불이 넘어온다고 하길래 집에서 짐을 싸고 있었죠. 그런데 연락받고 한 시간도 안 돼서 불길이 옆집 마당까지 들이닥치더라고요” 당시 대피령을 받은 군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영덕 국민체육관 안에는 들어갈 자리조차 없었다. 사투 끝에 돌아온 고향은 검은 재뿐이었다. 소나무와 공생하는 송이는 나무가 죽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특히 송이 균사가 다시 형성돼 수확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최소 30년에서 5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상 한 세대의 생업이 통째로 증발한 셈이다. 이 씨는 “송이는 소나무가 있어야 나는데 소나무가 다 죽었으니 제 평생에는 이제 송이 구경 못 한다고 봐야죠. 제 인생에서 송이는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라며 허탈해했다. ◇ 시행된 ‘산불특별법’, 현장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부는 지난 1월 29일부터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했다. 법안 제1조는 ‘피해지역의 안정과 회복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17조(농·임업 피해복구 지원)와 제31조(산림소득사업 우선 지원)는 임산물을 채취하는 농가에 생계비를 지원하고 산림 경영 기반을 복구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법의 온도는 차갑다 못해 시리다. 특별법 제31조 2항에 따라 송이 채취 농가도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수령액은 고작 1개월 치 241만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공식 실적 증명이 가능한 농가에 한해 ‘한 달 치’ 생계비 명목으로 나간 돈이다. 개인 거래가 많은 송이 농가의 특성상 실적 확인이 안 돼 이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연간 3억 원의 소득을 올리던 농가에 한 달 치 기초 생계비를 던져주는 것이 과연 국가가 말하는 ‘구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씨는 “특별법이니 뭐니 해서 지원금이 조금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별 볼 일 없습니다. 송이로 벌던 수입을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밤나무, 잣나무, 감나무 등 ‘대체 작물’ 카드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 70년간 송이만 바라본 숙련 농민들에게 감나무 재배는 생계 대안이 아닌 ‘전업 포기 권고’나 다름없다. 이 씨는 “나라에서는 산에 감나무나 밤나무를 심으라고 하는데 그 나무들이 자라 수익이 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리겠습니까? 송이 따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감이나 따라는 건 대책이 안 돼요. 그 소득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 재건이라는 이름의 개발, “기대도 안한다” 특별법은 관광단지 개발(제39조)과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제41조) 등 거창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피해 산지를 민간 투자를 통해 관광·레저 시설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원주민의 삶을 보듬기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땅 갈아엎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 씨의 마음도 복잡하다. 마을 주변에 풍력 발전기나 원자력 관련 시설이 들어온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작 산 주인들에게 돌아올 혜택은 안갯속인 탓이다. 이 씨는 “앞으로 산에서 나올 소득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든 넘어 송이밭을 잃은 노인에게 첨단 산업단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경상북도청 산불피해재창조 사업단 관계자는 “기존 재난관리기본법 체계에는 송이 농가 지원 기준이 아예 없었으나 경북도의 강력한 건의로 한 달 치 생계비인 241만 원을 우선 지급하며 사각지대를 보완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별법은 피해자가 산불과의 인과관계만 증명하면 신체·정신·재산상 피해를 폭넓게 신청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구체성은 다소 떨어져 보일 수 있어도 오히려 포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선도지구 역시 시·도 조례를 통해 난개발 우려를 차단하고 실질적인 지역 재건으로 이어지도록 세부 지침을 마련 중”이라며 “단순한 개발이 아닌 피해 지역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5

[경북산불 1년] 현장이 말하는 ‘방재의 구멍’

경북 산불 현장에서 1조 8000억원의 복구 예산보다 간절했던 것은 ‘물 한 바가지’와 ‘일원화된 지휘’였다. 68개 조항의 산불특별법은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 및 인허가 의제 등 지역 재건 사업에는 촘촘한 그물망을 짰지만, 정작 화마(火魔)와 맞섰던 대원들의 안전 장비 보강이나 꼬인 통제 체계 개선안은 담아내지 못했다. 본지는 지상·도로·공중에서 법보다 앞서 몸을 던진 베테랑 3인의 목소리를 통해 현장 방재 시스템의 실상을 정밀하게 짚어본다. ◇ “800ℓ 진화차, 불길 앞에선 도망 나오기 바빴다” 지난 17일 포항남부소방서에서 만난 황병률(52) 현장대응팀장은 당시 의성, 영양, 울진 현장을 7일간 돌며 사투를 벌였다. 황 팀장은 “도착 직후 목격한 연기는 의성 읍내 전체를 덮어 구역 구별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며 “좁은 산길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소방서 산불 진화차의 물 용량은 고작 800ℓ인데 바람을 탄 화염이 사람 주먹처럼 확 덮치면 우리가 가진 수량으론 감당이 안 돼 차를 빼고 대피하기 바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인 ‘지중화(地中火)’를 경고했다. 황 팀장은 “표면은 꺼진 듯해도 삽으로 파보면 낙엽 아래 화기가 살아 움직이는 현상이 심각했다”며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이라는 무력감이 들었다. 기상 조건이 안 맞으면 어떤 장비도 무용지물”이라고 토로했다. 지휘 체계에 대해서도 황 팀장은 “현재 산불 주도권은 산림청이, 인명 구조는 소방으로 분산돼 있어 대응 효율이 떨어진다”며 “누구든 좋으니 재난 현장의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술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팀장은 “산은 타더라도 인명과 민가를 최우선으로 지키는 방향으로 전술이 보완돼야 한다”며 “산림 보호에 치중된 현재의 산불 대응 시스템은 민가 방어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 “일반 마스크 한 장의 사투⋯부모 구하겠다는 절규 앞 딜레마” 23일 포항북부경찰서에서 만난 권도정(50) 교통관리계 팀장은 당시 영덕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인 포항시 북구 청하 삼거리에서 24시간 넘게 통제 업무를 수행했다. 권 팀장은 “가만히 서 있어도 강한 돌풍에 사람 몸이 비틀거리고 잿가루가 시야를 가린 암흑천지였다”며 “현장에서 지급 받은 마스크는 일반 마스크라 연기 한 모금에도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견디며 도로를 지켜야 했다”고 토로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권 팀장은 “차량 타이어에 불이 붙어 도로 위에 차를 버려둔 채 대피하는 상황이 속출했다”며 “그런 와중에 ‘집안에 어머니가 계셔서 꼭 가야 한다’고 울부짖으며 통제 구간으로 차를 밀고 들어오는 자식들 앞에서는 지시 위반을 따질 겨를도 없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통제 구간을 막아서면 일부 주민들은 갓길로 무작정 진입하려 해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다. 그 많은 인원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며 “그렇다고 보내주자니 혹여 발생할 사고 책임은 고스란히 현장 경찰의 몫이 되는 딜레마가 반복됐다”고 전했다. 겹겹이 차단막을 쳐야 겨우 통제가 됐던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긴급 통제권의 범위나 공무원 면책 조항 같은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이번 특별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 “연기 뚫고 마주한 불의 띠⋯엇박자 공조에 피 말린 상공” 24일 울진산림항공관리소에서 만난 최근홍(56) 운항관제팀장은 당시 강릉에서 의성으로 급파됐다. 최 팀장은 “전날 산청 소집령을 받고 이동 중 의성 상황이 더 시급하다는 지시에 헬기를 돌려 ‘빽도(회군)’를 했다”며 “현장은 안동까지 연기가 밀려와 시정(視程)이 완전히 차단됐고 고도를 6000피트(약 1800m)까지 높여 숨구멍을 찾기 위해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상공에서 목격한 화마의 기세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최 팀장은 “연기가 누워 있으면 나무 사이로 ‘불의 띠’가 선명하게 보인다. 불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길을 내듯 정상을 넘은 뒤 다시 타고 내려간다”며 “이 띠를 조준해 물을 뿌리지만 침엽수는 송진 성분 탓에 한 번에 제압하지 못하면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기관 간 공조의 한계는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다. 최 팀장은 “산림청, 군, 경찰, 임차 헬기가 한꺼번에 몰렸으나 속도와 기동성이 달라 손발이 맞지 않았다”며 “산불 진화가 주 임무가 아닌 기종들이 대열에 섞이다 보니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면 뒤따르던 기체들은 공중에 줄줄이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처우 문제에 대해서도 최 팀장은 “조종사는 전문 임기제라 수당 체계에서 소외감이 크다. 또 헬기 대당 조종사 정원이 모자라 야간 진화 헬기가 도입돼도 운용 인력이 즉각 충원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4

[경북산불 1년] 누구를 위한 ‘재건’인가

지난해 봄철 경북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휩쓴 초대형 산불 지원을 위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이 올해 1월 29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정부는 기존 재난지원법의 한계를 넘는 포괄적 지원과 지역 재건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68개 조항의 법문을 정밀 분석한 결과, 피해 주민을 위한 실질적 지원 기준은 여전히 모호한 반면 피해 지역 산림을 활용한 민간 투자 특례는 파격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구제라는 선의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입법의 비정한 민낯을 해부한다. ◇ 주민 지원은 ‘심의’ 첩첩산중⋯‘보상 갈라치기’에 멍든 민심 특별법 제5조에 따르면, 피해 주민 지원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 소속의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시행령 발효 이후 이달 12일까지 3300여 건의 추가 지원 신청이 접수됐으나 지원 여부와 규모는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줄곧 요구해 온 ‘구체화된 보상 기준’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지원의 원칙(제9조)을 천명하면서도 정작 ‘얼마를, 어떻게’ 줄 것인지는 위원회의 재량 뒤로 숨겨버렸다. 법의 사각지대는 평온하던 마을 공동체 내부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 제2조(정의)에서 피해자를 거주자, 사업자, 소유자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복구비 배분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 16일 의성군 단촌면에서 만난 김모 씨(70)는 “10년 동안 주소를 두고 터전을 일군 세입자 가족은 소외되고 실거주하지 않는 집주인에게 보상이 돌아갔다”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린피스 등 3개 단체가 주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주민의 52%가 산불 이후 보상 기준의 불공정함 등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재난의 고통은 세입자가 겪고 국가의 시혜는 자산가가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법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별법이 표방한 ‘공동체 회복(제34조)’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 업자 인허가는 ‘완료 간주’⋯45일이면 환경평가 통과 주민 지원 조항들이 위원회의 심의와 조사라는 절차적 문턱을 둔 것과 달리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한 조항들은 유례없는 행정 편의를 보장하고 있다. 제5장 ‘산림투자선도지구’ 관련 조항들이 그 결정판이다. 제60조(환경영향평가법 특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요청받은 행정기관이 45일 이내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협의가 완료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산림 회복에 최소 30년이 걸리는 생태적 특수성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 대신 행정 절차를 ‘하이패스’로 통과시키는 간주 조항이다. 또 제55조는 사업시행자가 산림투자선도사업의 실시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익사업법’ 제3조에 따른 토지·물건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제55조 제2항에 따라 실시계획의 승인·고시가 있는 때에는 이를 ‘사업인정 및 그 고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민간 시행자가 산불 피해지를 개발할 때 필요에 따라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주민들에게 6개월치 생계비(제31조)를 지원하며 기다리라던 국가가 업자에게는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한 강력한 권한인 ‘칼자루’를 쥐여준 셈이다. ◇ 산림청 권한 지자체 위임⋯‘개발 프로젝트’의 현실화 법은 환경 보호를 위한 중앙정부의 규제 빗장까지 풀었다. 제32조와 제59조에 따라 산림청장의 고유 권한인 ‘보전산지의 변경·해제’와 ‘산지전용허가’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대폭 위임됐다. 지자체장이 직접 산림보호구역을 해제해 자연휴양림, 산림욕장, 치유의 숲, 산림레포츠시설(제56조) 용지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법이 공포된 직후 경북도는 청송·영덕 지역에 리조트 유치를 포함한 ‘산불극복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산불 발생 직후 “산은 돈이 안 된다”, “산을 깎아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특별법은 기후 위기 시대의 산불을 예방과 회복의 관점이 아닌 ‘단기적인 개발 사업의 기회’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사람’이 빠진 재건은 누구를 위한 풍요인가 산불특별법 제1조가 명시한 목적은 피해구제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낙후된 산간 지역에 민간 자원을 유치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개발’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딛고 지역 경제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투자 유치와 인프라 구축도 분명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후(先後)’에 있다. 68개 조항 속에 박힌 파격적인 투자 특례들이 정작 피해 주민의 일상 회복을 위한 구체적 보상안보다 앞서 나가는 현실은 본말전도(本末顚倒)에 가깝다. 잿더미 위에 시설물을 올리는 토목의 속도보다 묘목 한 그루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의 시계(時計)를 먼저 읽어야 한다. 재난을 단순히 복구 사업의 기회로만 접근하는 단기 경제 논리는 자칫 재난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진정한 지역의 재건은 화려한 청사진이 아니라 피해 주민들의 삶을 온전히 되돌려 놓는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안’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산불의 비극을 딛고 선 이 법이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이재민들은 여전히 묻고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3

[경북산불 1년] 잿더미 위 청심환 한 갑⋯23㎡ 컨테이너에 갇힌 봄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은 한반도 관측 사상 전례 없는 상흔을 남겼다. 축구장 수만 개 면적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수십 년간 일궈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단 며칠 만에 형체를 잃었다. 화마(火魔)가 떠난 지 1년, 정부는 피해 구제와 지역 재건을 내걸고 ‘산불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현장의 현실은 참담했다. 주민 10명 중 6명은 여전히 23㎡(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기약 없는 ‘시한부 일상’을 견디고 있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는 이는 90%에 육박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특별법의 이면이다. 정작 피해 이재민을 위한 실질적 생계 보상은 외면한 채 산림 규제를 완화해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는 ‘개발 특혜’ 조항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본지는 잿더미 위에 멈춰 선 주민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개발 논리에 매몰된 특별법의 실체를 파헤친다. 나아가 진화 중심의 사후 처리를 넘어 ‘예방’과 ‘존엄한 회복’을 위한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됩디다” 2. 재난 복구인가 개발 특례인가, 선(善)의 가면 3. 기후 괴물 앞에 처참히 무너진 ‘K-방재’ 4. 사라진 ‘송이’와 뺏겨버린 ‘안전’ 5. “개발에 매몰된 입법, 재난 대응의 본령은 없었다” ◇ 청심환으로 견디는 ‘23㎡의 삶’⋯2년 뒤엔 이마저 비워줘야 지난 16일 찾아간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 75세 김외선 씨의 하루는 낡은 청심환 갑을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1년 전 산불로 가게와 살림집을 모두 잃은 그는 현재 마을회관 앞 공터, 24㎡(약 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55년 세월을 일궈온 터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고 남은 것은 시한부 일상의 고단함뿐이다.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지만, 2년 뒤면 이마저도 비워줘야 해” 김 씨가 힘없이 내뱉은 말엔 막막함이 배어 있었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었다지만 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작은 아파트 하나 겨우 얻을 지원금으로는 내 추억이 깃든 이 땅에 다시 집을 짓기엔 턱없이 역부족이야” 15년 넘게 부녀회장을 맡으며 마을을 누비던 여장부였던 그는 이제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 아침 산책이 일과의 전부다. 멀리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아 약에 의존한다는 그는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된다.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3300㎡ 탔는데 보상은 4000만 원뿐”⋯멈춰버린 산업 현장 18일 방문한 안동 남후농공단지의 재건 시계도 멈춰 있었다. 전소된 12개 공장 중 현재 가동 중인 곳은 5곳뿐이다. 김치공장주 김영일 씨(68)는 정부의 기계적인 보상 체계를 보며 가슴을 쳤다. “3300㎡(1000평)이 타도 최대 지원금은 4000여만 원이 끝입니다. 지금 미친 듯이 오른 건축비에 기곗값, 자재비를 이 돈으로 어떻게 감당합니까?” 금융 지원 역시 생색내기에 그쳤다. 1년 무이자 기간이 끝나자마자 벌이가 끊긴 기업들의 신용도는 추락했다. 김 씨는 “당장 소득이 없는데 1년 지원으로 그 큰돈을 어떻게 갚으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10년 정도 길게 보고 분할 상환할 수 있는 장기 대책이 절실하다”고 일갈했다. ◇ 5년 소득 공백인데 보상금은 ‘나무 1주당 10만 원’ 20일 마주한 영덕군 9900㎡(3000평) 사과 농장의 박현식 씨(71)는 불에 탄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텅 빈 과수원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나무 1주당 1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묘목을 다시 심고 수확하기까지 걸릴 5년 이상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엔 턱도 없다. 수입이 끊겨 생계가 막막한 그에게 특별법은 아무런 희소식이 되지 못했다. 천년고찰 고운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종무실장(53)은 “스님들 생활 공간조차 없다. 1차 복구 시점을 2030년으로 보고 있다”며 “문화재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항도,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도 특별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덤덤히 전했다. ◇ 최저시급 산불 감시원의 한숨⋯주민 87% PTSD 의심 사투의 현장을 지켰던 이들의 헌신도 인색한 처우로 돌아왔다. 영양군 산불 감시원 김기현 씨(65)는 1년 전 그날 산에서 솟구치는 불덩이를 보고 주민 대피부터 시켰던 아찔한 기억을 회상했다. 지금도 단속과 초동 진화를 수행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최저시급 받고 여기저기 다니면 기름값도 안 나와요. 특별법에 현장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논의가 빠진 게 가장 아쉽습니다” 최근 발표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불 피해 주민의 8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의심 수준을 보이고 있다.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컨테이너를 전전하며 주택 전소 피해자의 42.1%는 재건축을 포기했다. 마을 뒤편 산등성이는 여전히 검게 그을려 있다. 봄바람은 다시 불어오지만, 잿더미 위 주민들에게 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