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경북의 한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 가공 공장. 야간 근무를 마친 정비팀장이 모니터 앞에서 커피잔을 든다. 수십 개의 설비 그래프가 잔잔히 흐르던 화면 한 귀퉁이가 노란색으로 바뀐다. 사흘 뒤 이상이 예상되는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컴퓨터 수치 제어) 장비의 주축 모터다. AI가 사람 귀로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미세한 진동의 변화를 잡아내는 것이다. 이때, 정비팀이 출동하고 야간 점검 시간을 활용해 베어링을 교체한다. 따라서 제품생산 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과거라면 갑작스런 설비 정지로 수천만 원의 손실이 났을 상황이 조용히 지나간다. 요즘 한국 제조업 현장에서 한창 회자되는 ‘AX(AI Transformation·인공지능 전환)’의 한 장면이다.
DX는 ‘내비게이션’, AX는 ‘자율주행’
지난 몇 년간 우리는 ‘DX(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종이 서류를 디지털화하고, 공장에 센서를 달아 데이터를 모으고, MES(생산관리시스템)로 공정을 관리하는 일들이 모두 DX였다. DX가 “데이터를 모으고 자동화하는” 단계였다면, AX는 “그 데이터로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단계로의 도약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DX는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을 단 것이고, AX는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길을 찾아가는 것에 가깝다.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에서 운전을 ‘대신’하는 수준으로 진화하듯, 공장도 그 길을 가고 있다.
예지 정비···고장 나기 전에 AI가 알려준다
제조업 AX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예지 정비(Predictive Maintenance)’다. 기존 정비는 두 갈래 방식이었다. ‘고장 나면 고치는 사후정비’, ‘일정 주기로 점검하는 예방정비’가 그것이다. 사후정비는 갑작스런 제품생산 라인 정지로 손실이 크고, 예방정비는 멀쩡한 부품도 미리 교체해야 하는 낭비가 있다.
예지 정비는 두 단점을 모두 해결한다. 설비에 부착된 진동·온도·소음·전류 센서가 24시간 데이터를 보내면, AI가 학습한 ‘정상 패턴’과 비교해 미묘한 어긋남을 포착한다. “이 패턴이 3주 후 베어링 마모로 이어진다”고 예측해 정비 시점까지 알려준다. 그 효과는 이미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Deloitte)의 예지 정비 연구에 따르면, AI 기반 예지 정비 도입 기업은 설비 다운타임을 20~50% 줄이고, 전체 유지보수 비용을 최대 25%까지 절감하며, 설비 가동시간(uptime)을 10~20% 끌어올리고 있다. 부품 수명 역시 20~25% 연장된다는 보고가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선다. 국내 제조업은 숙련 기술자의 고령화와 은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30년 경력의 정비 명장이 퇴직하면 ‘소리만 듣고도 어느 부품이 이상한지 아는’ 그의 머릿속 경험지식인 노하우가 함께 사라진다. AI 예지 정비 시스템은 바로 이 암묵지(暗默知)를 데이터로 변환해 저장한다. 숙련공의 경험을 다음 세대가 이어 쓸 수 있는 자산으로 바꾸는 셈이다.
AI의 ‘눈’이 사람의 눈을 대체한다
품질관리 영역의 변화도 거대하다. 핵심은 ‘머신비전(Machine Vision)’ 기술이다. 카메라로 제품을 촬영하고 AI가 이미지를 분석해 불량을 판별한다.
사람 검사원은 8시간 일하면 피로해진다. 야간엔 집중력이 떨어지고, 작은 흠집은 놓치기 쉽다. 그러나 AI 비전 시스템은 24시간 같은 정확도를 유지한다. 1초에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 1마이크로미터 단위 결함까지 잡아낸다. 이 기술의 도입은 빠르게 글로벌 표준이 되고 있다. 산업용 머신비전 분야 글로벌기업 코그넥스(Cognex)가 북미·유럽·아시아 제조업체와 시스템 통합업체 500여 곳을 대상으로 2026년 발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7%가 이미 머신비전 운영 환경에 AI를 도입했고, 30%가 단기간 내 도입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국내 머신비전 검사 시스템 시장 역시 2021년 1조2000억 원에서 2026년 1조6000억 원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프로스트앤드설리번 인용). 이차전지가 성장의 견인차다. 배터리 안정성 요구가 엄격해지면서 셀 업체뿐 아니라 부품 협력사까지 AI 비전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중소 제조기업의 현실은 다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기업의 AI 도입률은 1% 안팎에 머문다.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5년 10월 스마트공장을 구축한 중소제조업체 502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47.4%가 “제조 공정에 AI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보통’ 응답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이 78.5%에 달했다. 필요한 분야로는 품질관리(33.9%), 생산 최적화(32.3%), 공정 자동화(31.9%)가 꼽혔다. 인식과 현실의 간극의 차이, 이것이 바로 한국 제조업 AX의 숙제다.
정부도 움직였다··· ‘M.AX 얼라이언스’ 출범
정부 차원의 행보도 본격화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9월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제조업 앵커 기업과 AI 벤처·로봇기업·연구기관을 연결하는 협력 플랫폼으로, 출범 당시 1000곳이던 참여기관이 3개월 만에 1300곳으로 늘었다(산업부, 2025년 12월). 2026년 M.AX 얼라이언스 예산은 7000억 원 규모다. 여기에 더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3개 부처가 2026년 3월 합동 공고한 AX 통합사업 예산이 4230억 원이다. △AI 응용 제품 신속 상용화 1300억 원 △제조업 특화 스마트공장 구축 800억 원 △AI 통합 바우처 718억 원 등이다. 중소·중견기업이 핵심 수혜 대상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2026년 AI 바우처는 기업당 최대 2억 원까지 지원되며, 중기부의 ICT 융합 스마트공장 보급·확산 예산도 전년 대비 크게 늘어 1695억 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AI를 도입했는데 왜 그대로일까?”
화려한 통계 뒤에는 그늘도 있다. 현장 관리자들 사이에는 “AI를 도입했는데 수율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엔지니어 업무량도 줄지 않는다”는 푸념이 적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AI 모델은 학습 시점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작동한다. 장비를 교체하거나 원자재가 바뀌면 환경이 변하고, AI의 정확도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떨어진다. 이를 ‘모델 드리프트(Model Drift)’라 부른다. 도입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AI 모델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데이터가 달라지면 자동으로 재학습시키는 운영 체계, 즉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가 주목받고 있다. 제조업의 AX는 기술 도입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직과 일하는 방식의 변혁이다.
경북, 중견 제조업의 ‘AX 골든 타임’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을 살펴보자. 구미의 전자·부품, 경주의 자동차 부품, 영천·영주의 기계금속, 안동·예천의 식품 가공, 그리고 포항·경산의 철강·금속 산업, 경북은 한국 제조업의 핵심 거점이지만, 인구 감소와 숙련공 고령화라는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중견기업의 민첩성이 AI 시대에 오히려 강점이 된다는 점이다. 2025년 8월 발표된 MIT NANDA 연구소의 ‘The GenAI Divide: State of AI in Business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 공급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AI를 도입한 기업의 성공률은 67%로, 자체 구축을 시도한 기업(성공률 약 3분의 1)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자원이 한정되어 오히려 ‘가장 아픈 한 곳’에 집중하기 좋은 중견기업일수록 이 모델에 적합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시스템을 한 번에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픈 공정 한 곳에서 작은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를 다음 공정으로 확장해가는 것’이다. 정부 지원사업도 이러한 단계적 접근을 염두에 두고 설계돼 있다. ‘AI를 활용하고 지배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이 연재 첫 회의 메시지는 이제 우리 지역 공장 현장에서 가장 절실한 화두가 되고 있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