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유고슬라브 민족 간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발칸반도 각국 망명정부가 속속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그리고 슬로베니아가 바쁘게 움직였다. 발칸반도에서 주도권을 잡거나 먹이사슬에서 여차하면 약자로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이처럼 발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세르비아 대표단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크로아티아 대표단은 하나의 통합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카라조르지예의 왕가의 지도 아래 한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며 발표했다.
블랙조지 카라조르지예가 누군가? 19세기 오스만제국 에니체리 폭정에 맞선 농민 출신 지도자가 졸지에 발칸반도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진골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한 지붕 아래에 여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세계만방에 힘을 과시하면서 스스로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원대한 꿈을 꾼다.
슬라브민족 최초의 통일국가, 즉 민족적 이질성만 두드러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등 조각보 나라 집합체 ‘유고슬라비아’란 나라가 탄생한다. 이제 발칸반도에는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그리고 유고란 국가로 정착된다.
유고슬라비아 왕을 비롯해 총리까지 세르비아인이 차지하면서 겨우 부총리와 외무장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몫으로 돌아가자 무게의 중심 추는 시작하기도 전에 기울었다. 더구나 왕권과 군권까지 장악한 알렉산다르는 무소불위의 힘을 구축했다. 민주정인 이상 견제세력인 야당도 존재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크로아티아 농민당이 링에 오르기도 전에 알렉산다르는 농민당을 해산해버린다. 한발 더 나아가 당수인 라디치에게 자객을 보내 저승행 열차에 태워버리면서 주변정리를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 라디치가 볼셰비키의 불순한 사상에 물들었다는 여론을 조작하면서 암살사건은 유야무야 된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유고슬라브민족 통일국가 꿈이 워낙 장밋빛이다 보니 대세르비아주의 욕망은 아지랑이에 가려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힘 있는 자리에는 세르비아인의 관료로 채워지는 것을 세르비아는 당연시 했다. 누가 보더라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자연스럽게 세르비아에 흡수합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크로아티아인 입장에서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반란의 기운이 소물소물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때마침 라디치가 불의의 객이 되면서 본격화된다.
그러나 이는 대세르비아주의 실현이라는 목표가 눈앞에 왔다고 판단한 알렉산다르가 기다리던 바였다. 거칠 것이 없었던 왕으로서는 소요진압에 목검이 아니라 핏빛을 머금은 광휘의 진검을 뽑았다. 1929년 1월 새해, 신년벽두가 밝아오자 알렉산다르는 헌법을 폐지하면서 독재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세 나라의 통치권자, 군 통수권자, 고위관리 임명권자인 알렉산다르는 정당까지 모조리 해산시켜버렸다.
이처럼 불합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지방 자치권은커녕 새롭게 헌법을 개정하고, 누가 보더라도 엄명한 독재정을 확정지으면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인 왕국’에서 처음으로 ‘유고슬라비아’라는 국명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인 양 반정부인사에 대한 탄압이 막이 올랐다. 세르비아인 식민백성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탄압을 피해 망명의 길을 올랐고, 서러운 눈물을 빨면서 복수의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를 갈아야 했다.
1933년 농민당을 암암리에 이끌던 블라드코 마체크가 그해 4월 반역죄로 체포되어 구금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구금과 통제는 통일왕국 최초 부총리와 외무장관을 지낸 인사들조차 예외일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유고슬라비아 땅에 살아가는 소수민족에 대한 비극적 사건은 일일이 거론할 수조차 없었다.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인은 그야말로 하층민으로 추락했다. 더구나 크로아티아에서 유고슬라비즘의 주역 ‘프레차니’의 대표자격인 세르비아인 프리비세치마저도 투옥된다.(전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알렉산다르 밀명을 받은 시모비치 중령에게 설득당해 세르비아 왕을 위해 자중지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훗날 체코로 도망치다 시피 해서 살다가 1936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타국에서 세르비아인으로 살아가는 프레차니들은 늘 살해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그럴수록 자신들끼리 더욱 똘똘 뭉쳐 베오그라드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때 알렉산다르의 폭정을 피해 이탈리아로 망명길에 오른 인물 중 파벨리치가 있었다. 그는 크로아티아 극우보수정당 민권당의 당수로서 대크로아티아민족주의를 주창한 안테 스타르췌비치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망명지인 이탈리아에서 극우민족주의 단체인(세르비아의 시각에서는 반란단체지만) ‘우스타샤’를 조직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