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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단상)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

등록일 2026-05-05 15:21 게재일 2026-05-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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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문 시민기자

신라사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인물이 많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은 사서 속에 이름과 삶의 자취가 남겨진 인물이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보희, 문희, 정희 세 자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 조에 나오는 보희와 문희 자매의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선도산에 올라 소변을 보았더니 온 서라벌이 가득 찼다는 꿈이다. 왕후가 될 길몽으로 해석되었음에도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를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한 번의 교환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얼마 뒤 정월 오기일, 김유신은 김춘추와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그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 여동생에게 꿰매게 했다. 처음에는 보희를 부르려 했으나 그녀가 사양하자, 문희가 나섰다. 단정히 차려입은 문희는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맸고,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후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잉태한다.

김유신은 이 일을 빌미로 동생을 벌하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덕만공주가 남산으로 행차하는 때를 맞춰 뜰에 장작을 쌓고 불을 피우자, 공주는 연기의 까닭을 물었다. 곁에 있던 김춘추는 그 일이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고 급히 달려가 문희를 구했다. 마침내 문희는 김춘추와 혼례를 올렸다. 훗날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후, 문명왕후가 되어 7남 1녀를 두었다. 

화랑세기에는 그 뒷이야기도 전한다. 꿈을 팔았던 보희는 문희가 왕후가 된 뒤 후회했으나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고 있다가 훗날 김춘추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으면서 ‘영창부인’이 된다. 보희도 두 아들을 두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또 다른 여동생 정희도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녀는 김달복과 혼인해 흠신, 흠운, 흠돌을 두었다. 딸 흠신은 보로전군에게 시집가 두 딸을 낳았고, 흠운은 요석공주의 첫 남편으로, 655년 백제 조천성을 공격하다 전사했다. 흠돌은 문무왕 때 장군으로 활약했으나 훗날 반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정희의 자녀들 역시 신라 정치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세 여동생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다. 문희는 왕후가 되었고, 보희는 후궁이 되었으며, 정희는 자녀를 통해 신라 왕실과 혈연을 이었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운명을 넘어 신라 왕실과 국가사의 흐름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심각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가정과 후손, 그리고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가문과 나라를 생각하며 역사를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라가 천년 왕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기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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