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남고북저다. 군의 북쪽 경계선을 따라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서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 가면서 고도가 높아져서다. 이러한 지형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세인 북쪽으로는 산, 남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평야가 펼쳐져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오죽했으면 물이 왕이 있는 북쪽으로 향해 거슬러 흐른다고 하여 예로부터 ‘역수의 고장’이라고 홀대까지 받았을까.
그러나 모든 것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세가 낮아 낙동강과 남강의 빈번한 범람으로 오랜 세월 홍수의 피해를 겪었으나, 홍수를 막기 위해 쌓은 둑이 많아 지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나 할까. 남강을 낀 군북면·법수면·대산면과 낙동강을 낀 칠서면·칠북면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넓게 펼쳐져 농경지로 이용되고, 그 언저리 땅에서는 해마다 봄이면 꽃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이번 주에는 5월을 대표하는 꽃들을 탐방하는 코스로 그 역할을 해보고자 한다. 다양한 색상의 탐스러운 꽃 작약을 원 없이 볼 수 있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며 가슴속에 내재 된 순백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샤스타데이지(Shasta daisy)’도 절정인 곳이다. 선홍빛 꽃양귀비와 눈꽃처럼 섬세한 흰 안개꽃, 수레국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꽃단지도 포함된다. 계절의 여왕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구성인 셈이다.
제일 먼저 소개할 곳은, 함안군 칠서면의 ‘강나루 생태공원’이다. 그곳에는 해마다 청보리 작약 축제가 열리는 장소다. 가장 큰 매력이라면 초록빛 청보리와 분홍빛 작약꽃을 동시에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약 42만㎡ 규모의 청보리밭과 작약꽃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청보리의 싱그러움과 작약의 화사함이 함께 어우러져 다른 지역 축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누군가는 축제가 끝났다고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축제 기간이 지났다고 작약이 전부 지는 것은 아니다. 5월의 중순까지는 작약꽃을 충분히 제대로 감상할 수가 있다.
두 번째 꽃 탐방지는 악양 생태공원이다. 샤스타데이지와 수레국화가 만발하는 곳으로,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과는 차량으로 약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오전이나 오후에 강나루 생태공원과 일정을 나눈다면, 그 공백기에 점심시간까지 곁들이면 그리 먼 거리도 긴 시간도 아니다. 남강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전국 최장 길이의 둑방과 주변의 수변 및 습지와 연계하여 자연 친화적인 문화공간으로 조성된 장소다. 사계절 내내 볼거리가 풍부하다. 어린이 놀이시설, 야외공연장, 방문자센터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로 찾을만하다. 4월의 꽃잔디를 시작으로 샤스타데이지와 금계국이 차례로 장관을 이루고, 다양한 야생화 및 핑크뮬리를 식재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자연 속에서 힐링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일 수 있는 장소다.
악양 생태공원에는 지금 샤스타데이지가 절정이다. 샤스타데이지는 일명 “샤스타 국화”라고도 불리는데, 국화과의 여러해살이의 초본 식물로 알려져 있다. 1890년대 미국의 원예가이자 식물학자인 루서 버뱅크(Luther Burbank)가 여러 종의 데이지를 교배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샤스타데이지란 이름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쪽에 있는 샤스타 산(Mt. Shasta)에서 따온 것이다. 샤스타 산은 만년설이 있는 화산으로 늘 눈이 쌓여있어 흰 산(White Mountain)이란 별명이 있다. 샤스타데이지의 깨끗한 흰색 꽃잎이 눈을 연상시켜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 걸로 여겨진다.
지난해보다 식재 면적이 훨씬 더 넓어졌다. 약 3000평 규모의 샤스타데이지 꽃밭을 조성하여 더욱 풍성한 경관을 선보인다. 꽃밭이 펼쳐진 주변 남강의 둑방에는 푸른빛이 매력적인 수레국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새하얀 샤스타데이지와 파란 수레국화가 어우러져 악양 생태공원만의 청량하고 다채로운 봄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샤스타데이지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는 노란 금계국도 만개할 것으로 예상되어, 악양 생태공원의 봄꽃 풍경은 한층 더 풍성해질 게 분명하다.
조금 더 걸어보는 트레킹을 원한다면 바위 절벽에 매달린 함안 악양루를 왕복할 수도 있다.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정자로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옛날에는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岳陽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생태공원 둑방에서 남강 주변으로 데크 로드가 설치되어 있어, 발 아래의 남강과 건너편 악양둑방길의 꽃양귀비 물결을 원경으로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다.
남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곳이 바로 함안의 악양 둑방길이다. 생태공원에서는 도보로 20분, 차량으로 약 3분 정도의 거리다. 왕복 7.2㎞에 이르는 탁 트인 둑길과 13㏊ 규모의 광활한 둔치에는 지금 ‘악양둑방 봄꽃 경관단지’가 운영되고 있다. 붉은 양귀비와 수레국화, 안개꽃이 어울려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는데, 그 끝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오는 25일까지 이어지는 운영 기간에는 함안군과 법수면 악양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특산물 직거래 장터’도 함께 열린다.
싱그러우면서도 화려한 봄의 색깔은 어쩌면 각 지자체의 축제에서 정점을 찍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하는 추세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있다고 해도 환경이 받쳐주지 못하면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경남 함안은 이제 축복받는 지역일지도 모른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칠서에는 강나루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남강의 물결이 지나는 곳에서는 ‘악양 생태공원’과 ‘악양 둑방길’이 조성되어 많은 탐방객을 불러 모을 수 있으니 말이다.
5월의 함안은 온통 꽃 잔치다. 광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이유가 되었다. 하루 만에 다양한 꽃들을 즐기고 섭렵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보잘것없는 글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여행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글·사진/지홍석 수필가·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