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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에서 힐링 산책로로···경주 선덕여왕길을 걷다

등록일 2026-04-16 15:54 게재일 2026-04-1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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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홍석 수필가·여행칼럼니스트

요즘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건 무엇일까. 항간에 떠도는 우스개를 빌리자면 꽃의 절정 시기를 맞추는 일이다. 워낙 변화무쌍한 날씨가 반복되다 보니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는 열흘이나 빨랐는데, 진달래와 벚꽃은 예전과 비슷하다. 도대체 어느 장단과 계획에 맞춰 축제의 일정을 잡아야 하는 걸까. 지자체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 괜한 허풍은 아닌 것도 같다.

해마다 4월이면 경주에는 꽃 잔치가 벌어진다. 벚꽃이 지고 나면 열흘과 보름 사이로 겹벚꽃이 만개한다. 순수 우리나라 꽃으로 일컬어지는 겹벚꽃의 성지인 불국사가 화려함의 극치라면, ‘선덕여왕길’은 요즘 가장 뜨고 있는 핫플이라고 보면 된다. 두 군데 장소가 풍기는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300여 그루의 겹벚꽃이 밀집된 불국사가 화려함의 극치라면, 선덕여왕길은 조금은 천천히 쉬어가면서 몸과 마을 충전할 수 있는 담백한 힐링의 길이다.

올해 겹벚꽃은 유난히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근래에 자주 내린 비에다 꽃샘추위가 더는 위력을 떨치지 못하는 기후 조건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음이다. 굳이 걱정을 미리 해보자면, 예고 없이 찾아드는 불청객 황사와 미세먼지가 푸른 하늘에 흠결을 남길 수도 있다는 우려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진분홍색 겹벚꽃과 하얀 겹벚꽃을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참맛을 느끼기에 더없는 장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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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길을 따라 만나는 진평왕릉. 신라 제26대 국왕의 능으로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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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벚꽃 만개한 선덕여왕길을 걷고있는 탐방객들.

‘선덕여왕 길’은 이름이 다양하다. ‘숲머리 둑방길’ 또는 ‘진평왕릉 가는 길’ 등이다. 보문호 바로 밑 명활성 입구에 위치하며 불국사와의 거리는 차량으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다. 몇 해 전 경주시에서 ‘선덕여왕 둘레길’로 명명하였는데, 보문호에서 흘러내린 실개천이 수로를 따라 명활성에서 진평왕릉까지 약 1.8㎞에 걸쳐 이어지는 산책로다. 그동안 경주의 숨겨진 겹벚꽃 명소로 알음알음 알려졌었는데, 내게는 아직도 애증의 길로 기억되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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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개한 선덕여왕길 옆으로 숲머리 음식촌이 형성되어 있다.

오롯이 흙길을 여유 있게 걸을 수 있었던 이 길은 몇 해 전에 큰 변곡점을 맞았다. 짧은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단번에 대체할 수 있고, 소수(疏水)가 흐르는 작은 수로를 끼고 호젓한 둑방길을 걸으면 저절로 사색이 되던 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찔레꽃과 오동나무 등과 어울린 500여 그루의 겹벚꽃이 자지러져서일까. 누군가는 일본 교토에는 사색을 요구하는 ‘철학의 길’이 있다면 한국에는 경주 ‘숲머리 둑방길’이 있다고도 했었다.

일본 교토의 ‘철학의 길’은 비와코(琵琶湖) 호수에서 끌어온 소수가 길을 따라 흐르는 수로 옆의 산책로다. 봄이면 수령 100년의 500그루 벚나무 꽃이 양측으로 만발하는 벚꽃 구경의 명소인데, 그 길을 일찍이 일본 최고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하면서 거닐었다고 해서 ‘철학의 길’이라고 명명되었다. 선덕여왕 길은 ‘철학의 길’보다 무려 500여 미터나 더 길고 아름다운 산책로다. 거기다 사적지로 지정된 명활성과 진평왕릉이 시작점이자 끝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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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길 시작점이자 입구에는 사적지 명활성이 새롭게 정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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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길 일대가 철학의 길에서 맨발체험로로 탈바꿈하고 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4년여 전부터 산책로 주변에 크고 작은 공사가 있었다. 오솔길처럼 작고 예쁘게 흐르던 수로가, 작은 임도처럼 너른 수로가 되었고, 산책로도 두 배가량 더 넓혀지고 말았다. 불과 몇 해 전의 운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평범한 길이 되고 보니, 실망했다는 후기 글이 계속 이어졌다. 오죽했으면 경주는 친환경적으로 조성하는 것에는 빵점이라는 혹평까지 올라왔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이 알 수 없는 오기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어떻게 가꾸는지 끝까지 지켜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그 기대가 어느 정도 적중되는 듯도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무언가 조금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콘셉트를 새롭게 바꾼 것이었다. ‘선덕여왕길 벚꽃 맨발 걷기’ 행사가 개최되었던 걸 보니, 이제는 철학과 사색의 길에서 건강의 길, 힐링 산책로로 거듭나고 있음이다.

선덕여왕길은 어떤 이미지로 계속 기억되었으면 좋을까. 사색의 길일까. 철학의 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맨발 걷기 산책로와 힐링의 길일까. 처음 그 길을 걸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나 강렬하고 좋아서였을까. 지금도 나는 그 진한 향수가 아쉬움으로 남아 뇌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좋은 문화재와 자원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이미지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길의 시작점은 명활성 또는 진평왕릉이다. 어느 곳을 선택하던 무료 주차장과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최근에는 명활성이 재정비되면서 화장실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졌다. 명활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선덕여왕 때는 비담(毗曇)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해로 쳐들어오는 왜구에 대항하여 경주를 지키는데 큰 몫을 한 성이다. 진평왕릉은 신라 26대 진평왕의 무덤으로, 높이 7.9m, 지름 36.4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분이다. 산이 아닌 평야 가운데 자리한 게 특징이다.

겹벚꽃의 감상과 짧은 트레킹(trekking)이 목적이라면, 천천히 걸으면서 왕복하면 된다. 사진을 찍으며 여유 있게 걸어도 1시간 30분 이내다. 탐방로 주변에는 분위기 있는 카페와 숲머리 음식촌이 생성되어, 편한 복장 외에 아무런 준비 없이 방문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 조금 더 긴 트레킹을 원한다면 명활성 입구 숲머리와 진평왕릉에서 시작해 명활산성과 연계하면 된다.

선덕여왕길과 불국사 겹벚꽃을 연이어 묶어도 된다. 단 주말이라면 아침 일찍 불국사 겹벚꽃을 탐방하고, 선덕여왕길은 나중에 돌아볼 것을 권한다. 선덕여왕길은 아직도 크게 붐비지 않는 호젓한 산책로다.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문화재 관람료가 무료로 전환되는 바람에, 신라 천 년의 문화재 불국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더없는 축복이자 은혜다. 국내 여행객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재를 묶어서 돌아볼 수 있다면, 선덕여왕길은 더욱더 우리 가슴에 각인되는 명품 힐링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지홍석 수필가·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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