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부터 네이단 콜리 아시아 첫 개인전···‘텍스트 조명 조각’ 등 대표작 18점 엄선 안효찬 ‘친근하면서도, 낯선’전··· 자본주의 모순 날카롭게 해부
영국 미술계 최고 권위의 ‘터너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올랐던 세계적 거장 네이단 콜리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그는 철제 구조물과 아날로그 백열전구를 결합한 ‘텍스트 조명 조각’을 통해 장소와 문명의 본질을 탐구해 온 작가다.
오는 6월 4일부터 9월 6일까지 포항시립미술관의 2026년 중반기 현대미술 기획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그의 30여 년 예술 여정을 망라하는 대표 조각과 영상 등 총 18점의 작품이 관객을 만난다. 이와 함께 올해 장두건미술상을 수상한 주목받는 지역 작가 안효찬이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대형 설치 및 조각 작품 20여 점을 ‘친근하면서도, 낯선’ 전을 통해 동시에 선보인다.
△네이단 콜리: 마음이 그려낸 풍경···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
미술관 1, 3, 4전시실에서 펼쳐지는 ‘네이단 콜리: 마음이 그려낸 풍경’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거장 네이단 콜리(58)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 모은 뜻깊은 자리다. 콜리는 지난 2007년 터너 프라이즈 최종 후보로 선정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굳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대 초반의 초기 영상 작업에서부터,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이미지와 조우하는 최신작까지 고루 소개된다.
네이단 콜리의 시그니처 작업은 이른바 ‘텍스트 조명 조각’이다. 축제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제 비계 구조물에 아날로그식 백열전구를 결합해 특정한 문장을 시각화한다. 그가 사용하는 문장들은 소설, 라디오 프로그램, 혹은 평범한 일상 대화 속에서 섬세하게 수집된 것들이다. 이 문장들은 본래 담고 있던 맥락과 원문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 전혀 상관없는 제3의 장소에 놓인다. 음악을 들으며 바라보는 풍경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듯, 콜리의 조명 조각은 그것이 위치한 물리적 배경을 새로운 서정과 깊은 사유가 깃든 시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세 점의 텍스트 조명 작품 역시 문호 조지 버나드 쇼의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들로 구성됐다. 이 작품들은 포항에 상륙하기 전, 영국 서식스 주의 오래된 교회 앞, 그리고 근대 감옥과 산업 유산을 마주하고 있는 호주의 외딴섬에 설치돼 장소 특정적 맥락을 획득해 왔다. 이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은 의도적으로 암시적이고 논쟁을 촉발하는 단어를 품은 채, 가시적 세상 이면에 존재하는 상충하는 의견과 믿음의 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해석의 몫을 온전히 관객에게 양도한다.
콜리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현대 도시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 즉 시민적 영장류입니다. 서로를 완전히 믿거나 좋아하진 않더라도, 함께 있기 위해 복잡한 규칙과 예의를 만드는 종족이죠. 진정한 도시는 다양성이 존재할 때만 가능합니다. 여러 신념, 양식, 배경, 부와 빈곤이 공존할 때 말이죠. 낯선 이들이 모여 함께하는 이방인들의 모임이 있을 때 비로소 도시는 태어납니다.”
그가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변주해 온 ‘땅(Earth)’, ‘엘도라도(Eldorado)’, ‘정원(Garden)’ 등의 단어는 관객의 배경에 따라 무한하게 해석되지만, 결국 그 해석의 주체는 ‘우리’라는 공동체로 귀결된다. 도덕적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상상하고 가꾸고 믿어야 할 대상은 결국 ‘함께 서 있는 우리’라는 사실을, 콜리는 내일에 거는 작은 희망과 같은 전구의 빛을 통해 고요히 상정한다.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이번 전시를 맞아 방한하는 네이단 콜리는 6월 6일 오후 2시 포항시립미술관 로비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통해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작품에 얽힌 다채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줄 예정이다.
△안효찬: 친근하면서도, 낯선··· 초헌 장두건 화백의 예술정신을 잇다
미술관 2전시실과 초헌 장두건관에서는 제21회 장두건미술상 수상작가 안효찬의 개인전 ‘친근하면서도, 낯선’이 열린다. 장두건미술상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목이자 포항미술의 뿌리인 초헌 장두건(1918~2015) 화백의 숭고한 예술정신을 기리고 대구·경북 지역의 미술 진흥을 도모하고자 지난 2005년 제정됐다.
포항 출생의 안효찬(36)은 조각과 설치 미술을 주무대로 삼아,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쉼 없이 작동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와 그 메커니즘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폭력성을 끈질기게 탐구해 온 작가다. 그의 작업 세계는 근대 이후 가속화된 문명화 과정에 대한 날카롭고 비판적인 성찰에서 출발한다. 작가에게 문명의 발전이란 단순한 유토피아적 진보가 아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듯, 문명의 비약은 언제나 자연의 소멸과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이뤄지는 이중적 사건이다.
이번 전시에서 안효찬은 축소 모형으로 특정한 장면을 정밀하게 구성하는 ‘디오라마(Diorama)’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현실과 허구가 정교하게 교차하는 디스토피아적 도시 풍경이다. 하늘을 향해 위태롭게 뻗은 녹슨 철근, 거친 시멘트 덩어리, 중심축이 기울어진 채 미완의 상태로 방치된 건축물들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도시의 단면을 환기하는 동시에 기묘한 비현실적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미학적 감각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언캐니(Uncanny)’, 즉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대상이 순간적으로 가장 낯설고 두렵게 뒤틀릴 때 발생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맥을 같이 한다. 관객들은 이것이 정교하게 연출된 가상의 장면임을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의 일부처럼 강렬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불안정한 디오라마 도시 한가운데 배치된 ‘돼지’ 형상은 이러한 언캐니한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핵심 매개체다. 건설 구조물의 차가운 기초로 깔려 있거나, 처참하게 절단된 몸으로 공사 현장 곳곳에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는 돼지의 모습은 현대 문명이 비인간 및 자연계의 잔인한 희생 위에 서 있음을 직설적으로 폭로한다. 화면과 공간에 반복적으로 배치된 고층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돼지는 문명이 이룩한 화려한 성취와 그 깊은 음지의 이면을 동시에 노출하며, 생성과 붕괴가 동시에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역사를 가시화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거대한 물리적 장치를 통해 전시장 전체로 확장된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공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관람차'(작품 명‘회전하는 그림자-monument of silence‘)다. 전시장 내부에서 실제로 육중하게 회전하는 이 관람차는 사방에 흩어진 개별 조각 작품들을 하나의 거대한 서사적 흐름으로 묶어내며,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디오라마로 작동시킨다.
과거 도시의 낭만과 유희, 축제의 상징이었던 관람차는 안효찬의 손을 거쳐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냉혹한 은유로 전도된다. 핏빛 어린 새끼 돼지들이 매달린 채 궤도를 따라 반복적으로 회전하는 이 기괴한 구조는 유희를 폭력으로, 쾌락을 희생으로 순식간에 뒤집으며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거대한 구조물 속 작은 세계를 위에서 아래로 굽어보는 순간, 관람객은 단순한 방관자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이 모순적인 시스템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일원이자 방조자였음을 서늘하게 마주하게 된다.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현대 미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해외 거장의 거시적 사유와 지역 청년 작가의 성찰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예술적 장”이라며 "두 작가가 던지는 미학적 화두를 통해 현대 문명의 이면을 성찰하고 따뜻한 위로를 얻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