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황리단길 업그레이드, 태국 방람푸에서 배우다
-글 싣는 순서
1. 젊은 여행자들의 핫 스폿 태국 방람푸의 형성과 전성기
2. 오늘날, 방람푸와 카오산로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3. 세계가 주목한 황리단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4. 경주와 인근 관광지를 불법 약물 없는 ‘청정 여행지’로
5. 방람푸와 황리단길, 뭘 배우고 어떤 걸 경계해야 할까
8~9년 전쯤이다. 처음으로 경주 황리단길을 찾았다. 도로 정비와 상가 형성이 지금보다는 덜 완성된 형태였지만, 그때도 황리단길 일대는 한국 어느 관광지와 비교해도 외국인 여행자가 많은 지역으로 지목됐다.
당시 아내와 함께 경주를 여행 중이었던 40대 미국인은 “알다시피 미국은 역사가 짧다. 근데, 신라는 자그마치 1500여 년 전에 저렇듯 산처럼 거대한 왕의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정교하게 조각된 금관(金冠)까지 넣었다니 모든 게 신비하다”는 말로 경주가 지닌 유구한 역사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지난 6월 초순 주말. 꽤 긴 시간이 흐른 황리단길의 변화가 궁금했다. 예상처럼 ‘황리단길 권역’이라 부를 만한 곳은 더 확장됐고, 외국인 관광객 역시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보였다.
서울과 부산, 대구와 전주 등에서 왔다는 20~30대 한국 여행자들도 황리단길에 빼곡하게 들어선 식당과 카페를 메우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제 황리단길은 경주 최고의 핫 플레이스, 아니 경상북도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관광지가 된 듯했다. 그렇다면 황리단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일까?
▲외국 관광객과 한국 여행자 모두의 ‘핫 플레이스’ 황리단길
황리단길은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했다. 지척에 대릉원을 비롯한 신라의 유적과 유물이 가득한 곳이다. “땅만 파면 신라의 보물이 나온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가 떠돌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지사 보존과 보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진다. 잇따라 주변이 개발 제한구역으로 지정됐다. 새롭게 건물을 짓거나 증개축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는 이야기.
그런 이유로 지금의 황리단길 일대엔 1960~197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한옥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2014년 즈음이다. 과거의 향수와 분위기를 멋스럽게 여기는 ‘레트로(Retro) 바람’이 한국을 휩쓸었다. 황리단길의 낡은 한옥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당시만 해도 임대료가 현재처럼 높지 않았기에 소규모 창업을 계획하던 청년들의 개성 가득한 가게가 황리단길에 들어서는 게 가능했다.
독특한 인테리어의 찻집과 고풍스런 간판을 단 사진관, 공장에서 만든 게 아닌 수공 액세서리를 파는 상점 등이 연이어 생겨났다. ‘한옥 안에 펼쳐진 신세계’를 만나보려고 전국의 젊은이들이 황리단길을 찾기 시작했다.
경주시로서도 기존의 ‘역사 관광’에 더해 새로운 ‘21세기형 트렌드 여행’의 중심지가 도시 안에 생기는 것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 형성되던 초기에 비해 지나치게 인상된 임대료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고, 조용한 삶을 누리던 기존 주민들이 폭증한 관광객으로 인한 소음과 쓰레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6년 6월 현재 황리단길은 한국인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공간이 분명하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해본다. 향후 황리단길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까?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간만이 아닌 ‘천년왕국 신라’의 역사를 호흡하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개선돼야 할까?
티안친 탄야펀, 박송아, 이상홍이 함께 쓴 ‘경주의 역사 지역 도시재생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방콕 역사 지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논문의 하나로 읽힌다.
저자들은 “역사적인 장소는 역사, 정치, 문화 또는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는 공간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가 퇴색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복원과 보존이 필요하다”고 가장 먼저 지적한다.
이어 “한국은 역사 지역에 문화유산과 역사공간 보존에 관한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도시 쇠퇴의 문제, 삶의 질 저하, 제도적 부족함 등의 이유로 다양한 사회적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앞서 언급한 논문에 의하면 태국 역시 유사한 실패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경주와 황리단길의 도시 재생과 개발 관계자들은 다음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국 역사 지역은 과거의 무분별한 도시 확장으로 인해 역사적 공간의 많은 훼손이 있었다. 이에 태국 정부는 역사 지역의 종합적인 보존과 개발을 위해 구시가지 보존 계획을 수립했으며,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건물 통제를 통해 역사 지역의 보존에 중점을 두었다.”
▲불법 약물 근절 통해 ‘청정 관광도시 경주’ 만들어야
역사 유적의 보존과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적절한 통제라는 도시 재생의 기본 방침과 함께 경주 황리단길이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선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각종 불법 약물의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야 한다.
지난 5월 방문한 태국 방콕의 방람푸와 카오산로드 일대는 황리단길처럼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지난해부터 규제가 강화되고 있긴 하지만, 카오산로드에선 현재도 어렵지 않게 대마를 판매하는 상점과 대마초 흡연 카페를 볼 수 있었다.
한국에 비해 대마초 등 불법 약물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비교적 흐릿한 일부 유럽 국가와 미국 등에서 대마초 흡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경주로 여행을 올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지난달 방콕에서 만난 한 교민은 “지금은 줄어들었지만, 대마 합법화 직후인 2022년엔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이 대마초 흡연 카페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아직까진 신문과 방송 보도, 경찰의 발표를 통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대형 마약사건은 황리단길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대마초를 포함한 불법 약물의 대량 유통과 집단 투약 사례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경찰의 선제적인 예방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황리단길과 그 일대에 밀집한 대릉원, 첨성대, 동궁과월지 등의 경주 주요 관광지엔 1년이면 800만 명이 넘는 여행자가 찾아온다. 이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이 180만 명을 넘는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공간에선 각종 불법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경주경찰서는 행락객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봄과 가을 축제 시기에 맞춰 특별 점검과 순찰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마약류 사용과 불법 촬영, 성범죄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경주시 보건소와 시민단체 역시 주말마다 인파로 넘쳐나는 황리단길에서 관광객과 시민을 대상으로 ‘마약 근절을 통한 청정도시 경주 조성’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예방 조치와 캠페인만으로는 진화하는 불법 약물 거래 수법을 따라잡기 어려울 듯하다.
경북경찰청 마약 수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텔레그램과 다크 웹, SNS, 가상자산 등을 이용한 비대면 불법 약물 거래가 확산하고 있다”며 “판매자는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구매자를 찾고, 거래 대금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받는다”고 전언했다.
거래자들만 아는 특정 장소에 대마초 등의 불법 약물을 숨겨두고 위치만 전달하는 속칭 ‘던지기 수법’은 판매하는 사람과 구입하는 사람이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추적과 검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황리단길은 경주의 1천 년 역사가 만들어낸 귀중한 문화유산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소개하는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황리단길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불법 약물 근절’은 피해갈 수 없는 선결 과제가 분명하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