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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그림인가, 새로운 도약인가”…반도체 '전공정 팹' 구미에 올 수 있는지 묻는다

피현진 기자
등록일 2026-06-15 20:01 게재일 2026-06-1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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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반도체 청사진에 쏠린 도민의 시선
경북도청 전경./경북도 제공

이철우 지사가 지난 14일 “‘TK 패싱’우려는 기우”라며 “대한민국 반도체 영토의 비수도권 확장을 적극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경북도의 반도체 전략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 지사는 “최근 반도체 산업의 전·후공정 밸류체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특정 지역의 투자가 지역 간 경쟁 구도로 해석되기도 한다”며 “이번 투자는 경기 용인 클러스터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가 마침내 비수도권 등 지방으로 확장되는 거대한 신호탄이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기업들의 용단이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이 해외가 아닌 대한민국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결단해 준 것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 고마운 일”이라며 “이러한 비수도권으로의 생태계 확장은 대구·경북에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의 발언처럼 경북도가 내놓은 반도체 청사진은 웅장하다. 구미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전공정과 소재·부품 공급망을 책임지고, 호남은 첨단 패키징 거점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면서 이 지사가 직접 정부와 글로벌 기업을 찾아다니며 경북의 인프라와 경쟁력을 설명하고 설득해 수도권에 집중된 투자 흐름을 지방으로 돌리기 위해 최전선에서 뛰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울러 기업 투자 전담 지원 기관을 신설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해 기업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행정적 걸림돌을 제거해 ‘투자 친화적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철우 지사는 전력·용수·부지 등 인프라 경쟁력, 소부장 집적지, 그리고 AI 반도체 혁신 플랫폼까지, 경북이 가진 강점을 나열하며 “기업하기 가장 좋은 곳”을 자신 있게 선언했다. “특혜가 아니라 준비된 인프라로 기업의 선택을 받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곧 질문으로 이어진다. 도민들은 “정말 가능한 일인지, 정말 전공정 팹이 경북으로 올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반도체 등 IT 관련 생산부품 시설이 밀집한 구미국가산업단지./경북매일신문DB

경북도의 선택은 결국 구미시다. 구미시는 전국 최고 수준의 전력 자립도를 자랑한다. 228%라는 수치는 대규모 반도체 팹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기반이다. 낙동강 수계의 풍부한 용수와 폐수처리 시설, 신공항 인접 200만 평 부지는 글로벌 물류 접근성에서도 강점이다. 여기에 SK실트론, LG이노텍 등 370여 개 소부장 기업이 집적된 생태계는 이미 검증된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공급 연구개발 생태계 부족 △기업의 위험 회피 성향 △정부의 정책방향 △글로벌 전략과의 불일치 등을 이유로 전공정 팹 유치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인력 공급의 제약의 경우 전공정 팹은 수천 명 이상의 고급 엔지니어와 연구 인력이 필요하다. 수도권은 이미 반도체 관련 인재가 집중돼 있고, 대학·연구소·기업이 밀집해 있어 인력 수급이 용이하다. 반면 지방은 인력 확보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장기적으로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교육·정주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둘째, 연구개발 생태계의 부족이다. 반도체 전공정은 단순 제조가 아니라 R&D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수도권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KAIST 등 연구기관과 기업이 협력하는 생태계가 이미 구축돼 있다. 구미가 인프라 경쟁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연구개발 네트워크의 밀도와 규모에서 수도권을 따라잡기 어렵다.

셋째, 기업의 위험 회피 성향이다. 글로벌 앵커기업들은 ‘위험 최소화’를 최우선으로 한다. 이미 검증된 수도권 클러스터에 투자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선택이다. 지방에 전공정 팹을 두는 것은 물류·인력·기술 협력 등에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높다.

넷째, 정부 정책 방향의 차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상은 호남의 첨단 패키징, 부산의 전력반도체, 구미의 소부장 공급망을 축으로 한다. 후공정과 전력반도체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지역 상생 구조를 전제로 하지만, 전공정 직접 유치까지는 정책적 우선순위가 낮다.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지 않는다면 지방 전공정 팹 유치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섯째, 글로벌 전략과의 불일치다.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과 전략적 거점을 고려해 투자한다. 수도권은 이미 세계적 반도체 허브로 자리 잡았고,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와 연결성이 강하다. 지방에 전공정 팹을 두는 것은 기업의 글로벌 전략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연합뉴스

이처럼 정부와 기업은 후공정과 전력반도체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경북도의 청사진은 정부 구상과 맞닿아 있지만, 핵심인 전공정 팹 유치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로드맵이 없다. 도민들이 “믿고 싶지만 미덥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정부와 기업의 의지가 어떻게 교차하는지가 관건이다.

경북도는 단순 제조 기반에서 벗어나 AI 반도체 혁신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HBM, 온디바이스 AI, 차세대 전력반도체 등 12개 세부 과제를 추진하며 질적 전환을 꾀한다. 이는 분명 미래지향적이다. 그러나 도민의 눈에는 여전히 ‘말뿐인 그림’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이 경북을 선택해 전공정 팹을 세우지 않는다면, 혁신 플랫폼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다. 비전은 매력적이지만, 성과가 없다면 신뢰는 흔들린다.

포항의 공정개발 역량과 부산의 사업화 인프라를 결합하는 전력반도체 협력 모델은 의미 있다. 정부의 대형 R&D 예산을 공동 선점하고, 남부권 밸류체인의 핵심 축을 담당하겠다는 전략도 설득력 있다.

다만 이는 전력반도체 중심이다. 도민들이 궁금한 것은 여전히 “전공정 팹이 구미에 올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동남권 연계가 아무리 성공해도, 전공정 유치가 불투명하다면 도민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협력 모델은 보완적일 뿐, 핵심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도민들은 도지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는 선언은 희망을 준다. 그럼에도 현실적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뿐인 그림이 될 수 있다”는 불안, “기업은 결국 수도권을 선택할 것”이라는 회의, “구체적 성과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뒤따른다.

경북도의 반도체 전략은 웅장하다. 인프라 경쟁력, 소부장 집적지, 혁신 플랫폼, 동남권 연계까지, 그림은 완벽하다. 문제는 진짜 전공정 팹이 구미에 들어올 수 있느냐는 도민들의 질문에 이제는 청사진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 투자 유치 성과가 필요하다. 

대구경북의 대다수 기업인들은 “도민을 안심시키는 길은 말이 아니라 실적”이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고, 경북도가 여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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