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한국수필 추천으로 등단…지금도 읽고 쓰고 배우고 있다
허정자 수필가는 해방둥이다. 대구여성문인협회장(2013년)을 역임했으며, 대구수필가협회 초대 부회장과 국제펜클럽 대구지역위원회 창립 멤버로 지역 문단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원로 문인이다. 그는 미당 서정주 시인과 고전수필의 대가인 이병주 교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으며, 양주동·조연현 교수 등 한국 문단의 거목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으며 평생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문학 인생은 1980년 대구 KBS 주최 ‘엄마와 함께 주부백일장’에서 차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서막을 열었다. 글 쓰는 이가 드물었던 시절이라 수상자에 대한 예우도 남달랐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글 한 편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깊은 기쁨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984년에는 수필 ‘강물에 비친 얼굴’로 문예지 ‘한국수필’의 추천을 완료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당시의 추천 제도는 매우 엄격하여 첫 추천 후 최종 완료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와중에 허정자 수필가는 대구지역 여성 문인 중 ‘추천 완료 1호’라는 값진 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의 뛰어난 문학적 역량과 성실한 창작 활동을 증명하는 상징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개인적인 작품 활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구여성문인협회장 재임 시절에는 지역 문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동구 아양공원 일대에 ‘시와 산문이 있는 아양기차길’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공간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동료 문인들과 뜻을 모아 끝내 이 사업을 현실로 일구어냈다.
지금도 2014년 가을의 제막식 날을 잊지 못한다는 그는 오랜 시간 흘린 땀방울과 숱한 난관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고백했다.
현재 그는 비교적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근면 성실한 남편(김장환 이비인후과의원 원장)과 든든한 가정을 이루었고, 1남 2녀의 자녀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문학을 향한 뜨거운 갈증이 자리한다.
“더 좋은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대체 언제쯤 마음에 온전히 흡족한 글이 나와 줄까요.”
원로 문인의 고백은 도리어 문학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대변한다. 수십 년간 수많은 명작을 발표했음에도 스스로를 완성된 작가라 자만하지 않는 엄격함이다. 요즘도 마음이 허전하거나 막막할 때면 그는 대형서점을 찾는다. 새로 나온 책들을 살피고 젊은 작가와 중견 작가의 신간을 비교해 읽는다. 그에게 서점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 에너지를 수급하는 문학의 광장이다.
허정자 수필가는 여전히 읽고, 배우고, 쓰고 있다. 흐르는 세월은 그의 머리를 하얗게 변화시켰지만, 문학을 향한 열정만큼은 조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시민기자는 허정자 수필가를 대면하며 문학의 본질은 결국 ‘끝없는 그리움과 배움’에 있음을 실감했다. 좋은 글을 향한 갈망, 더 깊은 문장을 향한 도전, 그리고 문학으로 세상과 교감하려는 열정이야말로 그가 오늘날까지 펜을 놓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노년에 이르러 더욱 찬연하게 빛나는 문학적 열정, 그것이 바로 허정자 수필가가 몸소 보여주는 진정한 노당익장의 귀감이다.
/방종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