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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행정통합에서 드러난 ‘TK정치의 고립’

속도를 낼 것 같던 대구·경북(TK)행정통합이 난기류에 빠졌다. 정부가 특별법 특례조항에 대해 대거 ‘불수용’ 방침을 밝힌데다, 여야 정치권 움직임도 TK행정통합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주최로 열린 행정통합 관련 입법공청회에서는 정부가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 제출한 특례조항 검토의견서가 쟁점이 됐다. 정부가 TK뿐만 아니라 광주·전남, 대전·충남 특별법의 특례조항에 대해서도 대거 불수용 입장을 밝힌 탓이다. 국민의힘 이달희(비례대표) 의원은 공청회에서 “TK통합 특별법의 경우 정부로부터 100여 개 특례에 대해 불수용 통보를 받았다”면서 “이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TK행정통합 특별법 335개 조항 중 불수용 대상은 130개가 넘는다. 대표적인 게 TK신공항 건설이나 항만조성 등에 필요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국제학교 및 영재학교 설립, 경북 북부지역 국립의대 및 부속병원 설립, 카지노 개발 등이다. 이런 특례조항이 삭제되면 행정통합 특별법은 그야말로 ‘껍데기 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 불만은 TK지역 뿐 아니라 타 시·도에서도 분출됐다. 정부가 통합특별시에 연간 5조원씩 4년간 20조원을 지원한다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를 특별법에 명시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기다려 달라”며 미적대는 데다, 중앙정부 권한 이양에 대한 중앙관료들의 저항이 만만찮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니 이날 공청회 여기저기서 중앙정부가 기존의 통제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속셈이 보인다는 비난이 나온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행안위가 12일 전체회의에서 TK행정통합만 본회의 상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점이다. TK행정통합은 광주·전남, 대전·충남과는 달리 민주당 당론이 아닌데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반발도 심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과정에서 TK지역이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얼마나 따돌림당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2026-02-10

역대급 N수생 양산, 교육 근간 흔들려선 안 돼

2026학년도 정시모집 인원의 감소와 정시 지원 건수 증가로 올해 정시 탈락자가 42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규모 N수생 양산이 우려된다는 입시계의 분석이 나왔다. 입시계는 정시 탈락자의 상당수가 N수생에 가담할 것으로 보고 2027학년도 수능에서는 그 규모가 16만명 이상 될 것이 예상된다고 했다. 따라서 현역 수험생은 역대급 N수생과의 치열한 입시경쟁을 벌여야 하는 등 N수생 양산에 따른 교육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내년도 예상되는 N수생 규모 16만여 명은 최근 22년 동안 두 번 밖에 없었던 규모여서 현역 고3 수험생은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N수생이 늘어나는 것은 상당수 수험생이 불합격 때문이 아니라 합격한 대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위권 대학이나 의약계열 진학을 희망한 때문이다. 또 작년에는 수능이 어려워 올해는 다소 쉽게 출제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반수에 도전하는 학생과 의대 모집 인원 확대와 지역의사제 도입도 N수생 증가의 요인으로 보인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대입 N수생 증가 실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23년 수능부터 N수생 비율이 30%를 넘어 수능 응시자 3명 중 1명이 졸업생이라 밝히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 중 재수생 이상이 57.4%를 차지했고, 의대는 더 심해 정시 합격자의 79.3%가 N수생이라 했다. N수생은 재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에 있어 입시의 본질을 왜곡할 우려도 있다. 특히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져 부모의 경제력이 대입 성공의 중요 변수로 등장하는 문제가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커지는 것도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 취업에 유리한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나 삼수를 감수하는 수험생도 적지 않은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학령인구 감소로 고3 수는 줄고 반면 졸업생이나 검정고시생은 증가하는 추세다. 현역 수험생이 중심이 되는 대학입시의 근간이 N수생으로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과 입시의 바른 방향을 촉구한다.

2026-02-10

기업 미래, 인재육성이 결정한다

기업의 건강한 체질과 미래 경쟁력을 향한 인재육성은 단순히 교육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고, 사람의 사고·역량·행동을 바꾸는 활동을 의미한다. 특히, 제조기업에서는 설비나 기술만으로 한계가 있어, 혁신 성패는 ‘사람이 얼마나 바뀌느냐’에 달려 있다. 글로벌 기업경쟁력을 선도하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우리는 일하러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러 간다’라는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입사를 하면, 개인의 성장 비전을 직속 상사가 수립하고, 현장 ‘문제를 보는 눈’과 ‘문제 발굴력’을 길러주고, ‘더 나은 일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활동 성과는 인사와 연계하여 동기부여 한다. 기업에서 인재육성의 의미는, 첫째, 변화 대응 능력 확보다. 시장, 기술, 고객 요구는 계속 변하고, 인재육성은 직원이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주도하게 만드는 과정에 있다. ‘현재 일 잘 하는 사람보다 진화하는 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기업 미래를 가름하게 된다. 둘째, 문제 해결형 조직 전환이다. 지시 중심이 아니라 현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조직이다. 문제 발견 능력, 데이터 기반 분석 능력, 개선 실행 능력, 협업 능력 등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조직문화 변화 수단이다. 교육은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도전 문화, 학습 문화, 개선 문화, 소통 문화를 만드는 도구이다. 기업의 인재육성은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조직체질개선 활동’이기 때문이다. 혁신 인재 육성의 성패는 경영진의 의지와 참여에 있다. 혁신 인재육성 실패의 대부분은 경영층 관심 부족 때문이다. 성공 기업의 특징을 보면, 솔선 활동 등 CEO의 직접 참여, 교육과 혁신 성과를 승진과 연계한다. 또한, 현장 중심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 강의실에서 끝나면 효과는 없다. 현장 문제 해결형으로 교육하고, 개선 과정에서 코칭과 피드백으로 실행에 직접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 모든 교육을 동일하게 하면 실패한다. 경영층은 전략·혁신 리더십, 중간관리자는 실행·코칭 능력, 현장직은 개선 활동 능력 등으로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일관성을 가지고 최소 3~5년 이상 필요하다. 단기 교육으로 끝나면 지식만 남고, 장기 교육은 일하는 사고와 행동을 바꿔 개선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교육과 실행의 결과는 부서 지표와 연계하는 운영시스템이 중요하다. 가령, 설비 장애 문제를 발굴해서 개선하면, 공장 지표 ‘설비장애율’이 줄어들고 생산성을 높이게 된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P사는 개선 활동중심 교육과 실행 속의 현장에 강한 인재 양성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일반 직원 ‘즉실천’, 핵심 인재 ‘개선리더’, 중간 관리자, 코칭과 변화 관리의 조력자(Facilitator· FT), 컨설턴트 양성 과정이 있다. 이를 통해, 공정 개선, 안전 역량을 갖추어 지속 가능 경영을 만들어 간다. 결국, 기업 경쟁력은 설비가 아니라 사람에서 나온다. 성공하는 기업은 교육을 비용이 아닌 미래 투자로 바라본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6-02-10

6년의 여명

수줍게 건네준 노란 봉투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 위를 조심스럽게 지키고 있는 사과 모양의 캐릭터 스티커는 아이의 취향과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고 귀여운 인장이 오늘따라 유독 묵직한 작별의 무게로 다가온다. 6년이라는 시간, 한 아이의 유년이 저물고 청소년기라는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기까지 우리는 이 좁은 방에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해 왔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아이는 낯선 세상을 경계하는 어린 짐승처럼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스승과 제자라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지식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어느덧 서로의 사소한 일상과 깊숙한 사생활의 편린까지 공유하는 해후로 변모해 갔다. 아이는 성적표의 숫자로 고민했고 그 숫자보다 더 치열했던 사춘기의 고민을 내어 놓았다. 나는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삶의 고단함을 털어놓고 아이의 순수한 시선에 기대어 위로받곤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훈습(薰習)되어 갔다. 향기가 옷에 배어들 듯, 아이의 싱그러운 에너지는 나의 무채색 일상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나의 신중한 언어들은 아이의 거친 감정들을 다듬어주는 정원이 되었다.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누군가와 이토록 순수하게 마음을 겹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축복이었다. 때로는 작은 초콜릿 하나로, 때로는 아이의 어머니가 구운 정성스러운 빵으로, 작은 소품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그 시간들은 단순한 물질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편이라는 이심전심의 의식 같은 거였다.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좀 더 큰 도시로 이사를 갔다. 현실적 이별을 앞두고 내 손에 이 편지를 쥐어주었다. 6년의 세월을 종이 한 장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터다. 하지만 봉투를 열기 전에 전해오는 아이의 감정은 우리가 함께 건너온 시간이 값지고 소중했음을 증명했다. 누군가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영혼의 문턱을 함께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숭고했다. 나도 아이를 위해 손글씨로 편지를 적었다. 지난 6년, 아이의 키가 한 뼘씩 자랄 때마다 내 마음의 부피도 함께 커졌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작은 선물과 함께 나의 진심을 담은 문장들을 봉투에 담았다. 수필의 행간마다 아이의 이름을 새기듯, 그동안 갈피에 숨겨두었던 문장과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많은 길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건넸다. 아이가 나를 통해 세상이 조금 따뜻하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각박한 세상의 파고를 견뎌낼 수 있는 작고 단단한 방패를 만들었기를 기대했다. 마지막 수업이 마쳐야 할 시계의 숫자가 바뀌며 우리는 책을 덮었다. 방문을 나서는 아이를 불러 세워 가만히 안아 주었다. 여리던 어깨가 어느덧 듬직해졌다. 나는 이 아이의 청소년기라는 거대한 숲을 함께 산책했음을 깨달았다. “잘 지내, 언제든 전화하고, 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울지 말고’라고 말했지만 정작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은 건 나였다. 아이 앞에서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나왔다. 다시 가다듬고 아이를 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아이의 잔상을 바라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긴 시간을 공유한 우리가 나눌 수 있었던 정직한 인사였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밀물처럼 떠나가는 이 학습 공간에서 왜 유독 이 아이에게 나의 마음은 정박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아이가 나에게 내비친 영혼의 투명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을 전달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일상에서 굽은 이야기까지 나누며 서로의 고독을 어루만지고 인간적인 온기를 수혈받았던 평등한 교감이 있었기에 이 아이의 부재가 그토록 아쉬웠음을 확신했다. 이제 아이는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가 나눈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들은 아이의 마음 속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아이와 내가 교환했던 이 편지는 안녕의 종착역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삶에 심어둔 다정한 씨앗이 어디서든 꽃 피울 것임을 약속하는 쉼표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내 책상 위에는 아이가 남기고 간 노란 봉투만이 윤슬처럼 남아있다. 돌아보면 6년은 시험의 터널이나 막막한 사춘기의 방황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서로의 앞날을 비추어주던 여명의 시간이었다. 물리적 동행은 이제 멈췄지만 우리의 여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찬란한 아침을 향해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을 것이기에 나는 또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김경아 작가

2026-02-10

피의 평원과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태동 ②서유럽 문화권으로 흡수

13세기 중반, 헝가리는 몽골의 침략에 노출되면서, 크로아티아 영주들은 기세를 올렸다. 반대로 억압이 가중된 계층도 있었다. 봉건왕조 압제가 농민을 괴롭혔고, 설상가상 전염병이 돌면서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자 농민항쟁을 불러왔다. 교회 개혁을 약속했던 프라하 카를대학 학장 얀 후스가 오히려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화형을 당하고 만다. 권력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않으려는 봉건영주 반들의 승리였다. 교회가 부패하면서 수도원은 물론 수사들까지 탐욕에 물들자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취급했던 보고밀교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설상가상, ‘검은새의 들녘’ 코소보에서 승리한 오스만트루크제국은 비잔티움제국을 점령하면서 파죽지세로 서진을 이어갔다. 1463년 보스니아 점령에 이어 세르비아 마지막 수도 스메데레보를 차지하고 크로아티아를 넘보았다. 헝가리와 함께 힘을 합친 크로아티아의 귀족들은 요새를 만들어 최후의 방어막을 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으나, 오스만제국은 마을을 약탈하는 등 주변을 공격하면서 이들의 힘을 소진시켰다. 1493년부터 대치상태로 수십 년간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크로아티아는 그야말로 황폐해져갔다. 주민이 떠난 자리엔 잡풀만 무성하게 자랐고, 일부 수비병력 역시 의욕을 상실했다. 결국 미르코 데렌친을 중심으로 한 크로아티아방위군은 ‘피의 평원’, 즉 크르바브스코평원(지금의 우드비나Udbina) 전투에서 8천 여 오스만제국의 기병들에 의해 도륙 당한다. 훗날 세르비아에 코소보 ‘검은 새의 들녘’이 있다면, 크로아티아 사람들 가슴에 ‘피의 평원’이 대크로아티아 민족주의로 살아나 가슴을 쿵쿵 두드리게 된 것이다. 뒤이어 1526년 8월 29일 헝가리 러요시 2세가 오스만제국 쉴레이만 대제와 ‘모하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헝가리 왕조 대가 끊어지자 러요시 2세의 여동생(신성로마제국으로 시집간)을 빌미로 신성로마제국황제이자 합스부르크왕가 카를 5세에게 흡수된다. 이는 헝가리로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위협을 합스부르크왕가 우산 속에 몸을 숨기며 살아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크로아티아 역시 합스부르크왕가에 편입되면서 카를 5세의 동생인 페르디난드 1세가 헝가리 왕과 크로아티아 왕으로 추대된다. 헝가리가 합스부르크제국에 들어가면서 크로아티아도 따라들어 갈 수밖에 없었지만, 세르비아나 보스니아처럼 오스만트루크제국 하에서 암울한 세기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할 수 있을 법하다. 이로써 합스부르크왕가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 보헤미아, 북이탈리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내륙까지 지배하면서 거대제국을 형성했다. 이때부터 서방정벌을 이어가던 오스만트루크제국과 본격적인 양대 산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발칸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대각선 그으면, 위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제국, 아래는 오스만트루크제국에 편입이 되면서 앞서 거듭 언급한 것처럼 20세기 폭력의 경계가 그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크로아티아는 점차 합스부르크왕가 아래에 놓이게 되고, 가톨릭문화권에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크로아티아 땅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왕가는 오스만트루크제국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지금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사이에 최전방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때 이슬람제국을 피해 북쪽으로 이동한 세르비아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남슬라브민족정착촌’을 형성하면서 국경 수비대를 만들어 실전에 배치했다. 세르비아인들은 일거리를 찾아 방황하던 중이라 몸 바쳐 충성을 다했다. 오스트리아제국이 오스만트루크와의 잦은 충돌 속에 세르비아인은 최전선에서 인간방어벽이 되어주었다. 또한 헝가리 봉건 영주에게 반기를 드는 토착세력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이들 세르비아인들을 ‘하이두끄(Hajduk)’라고 불렀는데 이를 직역하면 ‘산적’, 좋은 말로는 ‘의적’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합스부르크제국은 세르비아 용병들이 승리를 거두면 토지로 보상해 주었다.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 영주 반들이 토지를 빼앗을까 오스트리아에 충성해야 했다. 이 일로 인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세르비아인들이 크로아티아 국경에 몰려 살게 된 것이다. 중간 방어선은 18세기까지 이어지면서 대략 10만 여명의 군인들이 주둔했던 적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에 가톨릭 열기가 급격히 퍼지면서 정교회 세르비아인에 대해 반감이 고조됐고, 정교도 세르비아인을 개종키 위한 정책을 폈다. 따라서 세르비아 용병들 지위가 하락하고, 숫자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도 세르비아인은 낙후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훗날 이들의 후손들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대부분 크로아티아 괴뢰정부 우스타샤에게 학살을 당하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2-10

행정통합 특별법에 ‘교육계 요구’ 적극 반영을

대구·경북을 비롯해 대전·충남, 광주·전남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교육계의 걱정이 많다. 행정통합이 자칫 자치단체 덩치만 키울 경우 오히려 교육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장)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3개 지역 행정통합 특별법에 교육계의 핵심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런 상태로 시·도 교육청 통합이 이뤄지면 통합특별시 출범과 동시에 교육 현장은 심각한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교육계 시각에서 보면, 행정통합 목적이 비수도권 교육경쟁력을 높여 학생들의 외지 이탈을 막고 인구가 유입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인데, 국회에서 논의되는 특별법을 보면 이에 대한 재정적·제도적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3곳의 특별법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교육계가 그동안 요구해 온 주요 법안 내용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검토의견을 보면, 교육재정 추가 지원은 통합 이후 재정지원 TF에서 논의하고 부교육감은 국가직 2명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리고 쟁점인 교원 정원 권한 이양과 교육장 권한 확대, 교육과정 운영 자율권 등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교육계는 이런 내용의 특별법으로는 교육자치 권한이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면서 교육재정 확대에 대한 법적 보장, 초광역 교육사업 추진을 위한 통합특별교육교부금 신설,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중장기 국고 지원 체계가 반드시 명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행안위는 10~11일 특별법안 심의를 한 뒤, 12일 의결 절차를 거친다. 강 교육감이 지적한 것처럼, 통합특별시가 예정대로 7월 1일 출범하면 각 시·군 간 교육 격차, 교육 환경 차이, 교육복지 혜택의 불균형, 교직원 인사 제도의 이질성 등 복합적인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될 것이다. 국회는 행정통합이 교육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특별법 심사과정에서 교육계 요구 사항을 가능한 한 최대한 반영할 필요가 있다.

2026-02-09

대구안경산업 국가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야

안경산업은 대구의 대표적인 전통산업이자 특화산업이다. 1946년 한국 최초의 안경공장인 국제셀룰로이드 공업사가 대구에서 출발한 것이 국내 안경산업의 태동이 됐고, 대구가 안경산업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 대구는 안경사업이 이어져 60년 동안 안경산업의 메카로 인정 받는 곳이다. 안경태의 경우 한때는 전국 생산의 80% 이상을 대구에서 감당했다. 국내 수출의 90%가 대구에서 생산된 제품이었다. 그럼에도 안경산업이 긴 역사만큼 성장을 하지 못한 것은 기업의 영세성, 자체 브랜드 개발 부진, 낮은 인지도, 연구개발 및 디자인 전문인력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중국의 저가제품이 밀려오고 프랑스 등 브랜드 제품에 밀려 지역 안경산업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2006년 정부는 대구안경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대구 노원동과 침산동 일원을 안경특구로 지정한 바 있다. 신소재, 디자인 연구 개발, 정보시스템 구축, 안경거리 조성, 국제광학전 개최 등 각종 정부 지원으로 대구안경산업의 도약을 시도했으나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기업의 영세성과 인력 양성 및 부족 등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구안경산업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우재준 의원(국민의힘)이 지난주 개최한 “안광학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 토론회”에서는 안광학산업이 독립 진흥법률의 부재로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K-아이산업은 K-컬처와 결합한 한류 소비재로 성장 가능성이 높고, 의료·헬스케어 등의 기술과 융합해 산업의 확장성이 있음에도 법률적 바탕이 없어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경업계에서도 안경산업이 고부가가치 품목인 만큼 기존의 단순 제조 중심에서 벗어나 고도화 할 수 있도록 국가의 주력산업으로 전환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안광학산업은 제조와 디자인, 의료, ICT가 융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다. 지방시대를 이끌 국가전략 산업으로도 적합하다.

2026-02-09

동묘 스토리 헌팅

청계천. 물들면 안 되겠다고 염려하면서도 다시 간다. 동묘시장은 이효석 소설 ‘도시와 유령’의 배경 공간, 그의 창작의 ‘시작점’은 동반자 작가였다. 나도 이 동묘를 소설적으로 ‘소유’해 보겠다고 마음 먹은 지 오래, 하지만 쓰고 싶은 것과 능력은 별개의 것. ‘스토리 헌팅’은 쉽지 않다. 어슬렁거리기, 떠돌아다니기, 힐끗거리기는 쉽지만은 않다. 뭔가 목적이 있어야 좋다. 동묘 헌팅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얻은 좋은 소재가 하나 있다. ‘윙컷’(wing cut)이라는 것. 앵무새 날개를 잘라주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날개를 자른다기보다 깃털을 잘라주는 것이다. 청계천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고사가 얽힌 영도다리(永渡橋) 옆으로 조류 시장이 있고, 여기 앵무새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회색앵무(african grey parrot), 에메랄드 빛으로 예쁘기는 사랑앵무, 화려하기는 오색앵무, 스킨십 좋아하기는 코뉴어 앵무···. 슬프게도 윙컷을 당한 앵무는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할까? 나의 이야기 속에서 베카는 자신이 날개 잘린 앵무새 같다고 생각한다. 베카는 어쩌면 코뉴어 앵무를 닮은 것도 같다. 사람 옷에 파고드는 친화력 만점에, 애교 있고, 아, 장난기가 가득하다. 누워서 발을 흔들기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고, 공도 굴릴 줄 알고, 호기심도 많다. 이 베카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동묘 사람, 내력 있는 사람, 앵무에 홀린 사람을 만나도록 할까, 노점에서 휴대폰 파는 사람? 베카는 동묘 골목의 빈티지 가게에서 미국 서부의 ‘러그하우스’에서 들어온 옷가지들을 판다. 베일(bale)이라는 옷 묶음이 있고, 이걸 풀어놓는 걸 ‘깐다’고 한다. 탈북해서 이곳에 온 춘희가 어떻게 베카가 되고, 또 어떻게 ‘루스(ROOS)’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느냐가 포인트의 하나, 그러고도 베카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 아, 루스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 요즘엔 ‘실물’을 잘못 옮기면 문제되기 일쑤다. 이 베카는 어디 살아야 하나 할 때 보이는 건물, 세창빌딩, 그 안에 세 평짜리 쪽방이 있고, 좁은 데 비해 남쪽으로 난 창문이 하나 있고, 그 3층 쪽방에서 계단을 내려와 코너를 돌 때 ‘키노 커피’ 맛있는 집이 있고, 그 건너편에 열쇠 집이 있다. 인생의 과제를 풀어야 하는 베카는 열쇠집 아저씨를 좋아한다. 뭐든 그의 손에 들어가면 없는 열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베카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 이 한국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안심하고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 베카, 춘희는 어떻게 미국으로 가버릴 수 있나? 가뜩이나 이주민을 쫓아내는 이 판국에? 윙컷 당한 것 같은 인생의 해결점을 선사해야 한다. 빛과,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는 자유와, 영원히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글쎄, 베카는 이 땅을 떠날 수 있을까? 떠나지 않고도 그는 삶의 안정을 누릴 수 있을까? 나는 베카의 눈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분석해 보고 싶다, 아니, 살갗의 실감으로 느껴 보고 싶다. 지금 이 세계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 같다. 이것은 너무 ‘하이퍼’한 감각인 것일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6-02-09

침묵이라는 말

침묵은 들리지 않는 말이다. ‘침묵은 금’이라는 그럴싸한 경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언제나 의심받아 왔다. 대화 중 침묵은 단순한 소리 없음이 아니다. 침묵이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 이해되는 순간, 침묵 속에는 질적으로 다른 두가 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독백적 침묵’과 ‘대화적 침묵’이 그것이다. 독백적 침묵은 상대의 말에 대한 회피, 무관심, 무책임의 태도이고, 대화적 침묵은 상대의 말에 대한 경청, 숙고, 책임의 태도이다. 독백적 침묵은 대화를 단절하는 침묵이다. 이 침묵은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미 결론을 내린 주체가 더 이상 응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 나타난다. 겉으로 보면 말이 없지만, 실제로는 내면에서 독백이 멈추지 않는다. 상대의 말은 이미 무효화 되었고, 응답은 예정에 없다. 이 침묵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말 없는 선언이다. 더 들을 것도, 더 바뀔 것도 없다는 확신 위에서 유지되는 무거운 고요함이다. 이러한 침묵은 숙고의 시간이 아니라, 배제의 기술이다. 질문 앞에서 답을 말하지 않으며, 호소 앞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방패로만 사용한다, 단순히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응답 가능성 자체를 제거하는 행위이다. 독백적 침묵은 대화의 거부이며, 언어의 윤리를 포기한 상태이다. 대화적 침묵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이 침묵은 말의 실패가 아니라, 말의 책임을 자각한 결과이다. 아직 충분히 듣지 않았음을, 아직 응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나의 말이 상대방에 의하여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선언이다. 대화적 침묵은 열려 있는 상태다.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더 듣기 위해, 더 숙고하기 위해, 그리고 내 말이 불러올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한 선택된 침묵이다. 소위 ‘대화주의’의 창시자 바흐친(Mikhail Bakthin·러시아 철학자·1895-1975)은 “하나의 목소리는 아무것도 종결시키지 않으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최소한 두 개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말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는 인식 속에서 생겨난 절제의 기술임을 통찰한 것이다. 거울 없이는 그 잘난 콧잔등 하나 몰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말은 언제나 타자의 응답을 전제로 할 때 의미를 갖게 된다. 타자의 응답을 전제하지 않은 말이 의미를 잃듯 침묵이란 말 또한 마찬가지다. 대화란 어떤 주제에 대한 결론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이다. 나의 침묵이 상대의 응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응답을 상상하지 않는 침묵은 대화를 파괴한다. 사적 대화 중에서, 공적 담론의 장에서 끝까지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말하지 않을까. 금과 돌이 쉽게 구분되듯 침묵의 정체 또한 쉽사리 들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침묵을 금으로 만들지 돌로 만들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공봉학 변호사

2026-02-09

공짜에 길들여지면

입춘 다음날, 볼 일로 시내버스를 탔다. 지난해 6월,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어르신 통합 무임교통카드’를 받았다. 7월부터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사용처가 ‘시내 마을버스(포항), 시내버스(경주, 영덕)’이다. 세 지역의 시내버스요금이 공짜다. 해당 지자체가 세금으로 대신 낸다는 증표다. 카드 받고 한 달쯤 된 날 퇴근 무렵, 갑자기 비가 왔다. 사무실에 보관하던 우산을 쓰자고 맘먹을 때, 무임교통카드가 떠올랐다. ‘맞아. 오늘 그 카드를 써보자’라고 생각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난생처음 무임 교통카드를 쓴다. 앞사람처럼 카드를 단말기에 댔으나 반응이 없다. 기사가 ‘더 아래에 카드를 대라’하여 따랐다. 승차 성공이다. 다음 순간, 처음 듣는 “사랑합니다!”라는 전자 음성 멘트가 울렸다. 그때, 미안함, 고마움, 이질감 같은 느낌들이 뒤섞이며 미묘하고도 좀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유임 승차처럼 “감사합니다!”가 낫다는 생각도 났다. 어떤 자식이 “나는 부모께 이렇게 효도를 합니다.”하고 떠드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내도 처음 무임카드승차 때 나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포항시가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지금 정부의 ‘민생지원금’보다는 훨씬 낫다. 혜택이 필요한 이에게 가는 비율이 더 높을 테니까. 문재인 정부 첫해. 추석 때 고향길 고속도로 출구에서 요금을 내려는데, ‘정부 지원으로 안 받는다’라는 근무자의 말에 황당했었다. 돈 몇천 원에 자존심을 빼앗긴 것 같았으니까. 더욱이, 모든 차량의 통행료 공짜는 자유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전체주의적 발상 같은 생각도 들었었다. 한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다. 네이버 AI는 “자유민주주의는 권력분립·법치·시민권·표현의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 시장경제는 사유재산·경제활동의 자유·사적 이익 추구를 바탕으로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시장경제는 완전 자유로운 시장은 없고, 대부분 사회적 시장경제를 유지한다.”라고 풀었다. 그렇다면, 전 국민 공짜 복지지원은 우리나라 국가 정체성에 반(反)한다. 소설가 이문열은 2022년 월간조선과의 대담에서, “지난 5년 동안 이루어진 전체주의화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부지불식간에 전체주의로 상당히 진행했어요. 사람들이 지금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심각하죠.”라고 말했다. 근거로 이천 시골에 37년을 살면서 ‘집단화 덜 된 동네인데도 동원이 많다’라며, 이틀에 한 번 정도 공짜 공동 식사나 행사를 하는 것 같다 했다. ‘관에서 자유로운 민간 부분이 적다’라고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화, 전체주의화를 개탄했다. 속담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했다. 정치가 던져 주는 공짜에 국민이 맛 들이고 길들여지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자유가 없는 나라는 경쟁력이 떨어져 국민은 가난의 나락으로 구를 위험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체주의적 공짜 보편복지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귀환해야만 한다. 일자리가 최대 복지이자 자유민주주의 사회안전장치이므로···. /강길수 수필가

2026-02-09

상속세 탓에 한국 떠난다?

국가가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에게 부과해 거둬들이는 세금을 ‘상속세’라 한다. 이 세금은 나라마다 세율이 다르고, 일부 국가의 경우엔 상속세가 없는 경우도 있다. 부모에게 동산과 부동산을 물려받은 이들이 “상속세가 너무 많다. 세율이 너무 높다”며 불평해온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많은 재산을 상속 받은 사람에게 많은 상속세를 부과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한계가 없는 것이라 상속세를 ‘억울한 세금’이라 느끼는 이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의 백만장자 2400명이 상속세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이는 즉각적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상속’과 ‘상속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서민들의 박탈감은 컸다. 사회적 보호와 배려 아래 재산을 축적해놓고 사회적 약속이라 할 세금은 회피하려 하는 일부 부자의 행태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다. 이 발표가 나온 후 국세청이 “백만장자들의 탈한국이 가속화되는 원인을 상속세 제도와 결부시켜 국민께 왜곡된 정보를 제공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지속되는 형국. 9일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까지 나서 한국 고액 자산가 해외 유출 관련 보도자료의 작성과 검증, 배포 과정에 대한 감사 착수를 알렸고, 이번 논란을 촉발한 대한상공회의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의 축적은 개인적 역량에 더해 안정적인 사회제도와 타자의 도움 속에서 이뤄진다는 게 보편적 상식이다. 이 상식을 인정한다면 책임을 방기하고 세금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2-09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 영일민속박물관

지난 수요일 오랜만에 영일민속박물관을 찾았다. 늘 지나치곤 했지만 요즘 박물관의 높아진 인기를 생각하며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아이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해서 겸사겸사였다. 문으로 향하니 입구에서는 이제 막 관람을 마친 어린이집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같은 관람객들을 먼저 맞이하는 건 수령이 600여 년이나 된 회화나무다. 보통 시골 동네 입구에서 자주 보던 나무지만 수질 정화에 도움을 받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그러했듯 앞으로도 든든하게 이곳을 지켜 주고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민속박물관은 우리의 예전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정면에서 보이는 제남헌은 흥해군의 동헌으로 쓰였던 곳이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 문 앞에 놓인 절구 세 개를 놓아 먼저 구경할 수 있게 했다. 예전에 어렸을 때 본 것이기도 해서 반갑기도 하다. 몇 년 전에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과 절구에서 사진 찍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맷돌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믹서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제남헌이 있는 곳은 일상에서 실제로 쓰인 농기구나 어구류를 전시해 놓았다. 전시된 물건들을 보니 지금도 쓰이고 있는 물건들이 있어 생생한 느낌을 주었다. 낫과 톱, 대패, 송곳, 지게 등이 그러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지금도 쓰이는 물건을 보면서 예전의 농촌이나 어촌의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유산이 양반들이 쓰던 화려한 것들이라고 한다면 민속박물관에 모인 물건들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거라 더 친근감이 생긴다. 예전 TV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 한 할아버지가 자신이 사용하던 농기구를 모아서 집 한 켠에 전시를 해두고 집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구경하게 했는데 멋져 보였다. 언제라도 버릴 물건을 찾으려 애쓰지만, 추억이 있는 물건을 어딘가에 저장해둔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있어 보였다. 두 번째 전시실은 생활용구들과 관혼상제와 관련된 것들을 전시해 놓았다. 예전의 부엌과 서당, 예전의 돈, 자수품과 안경집, 다양한 떡살 무늬도 보였고 담배쌈지도 오락기구 중에는 마작도 볼 수 있다. 서당의 모습과 여성들이 어떻게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전시는 흥해군수가 재판과 형벌을 집행한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곤장과 주리 틀리는 현장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세 개의 전시실을 거치고 나오면 야외 전시장도 구경할 수 있다. 제남헌 왼쪽에는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있고 초가와 말을 이용해 곡식을 찧는 연자방아도 전시되어 있다. 그중 초가를 둘러보는 게 제일 기대가 되는데 예전과는 다르게 닭이 없어 아쉬웠다. 초가에서는 탈곡기기와 가지런하게 정돈된 장독대가 있다. 영일민속박물관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예전 생활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도록 보존과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는 학교 숙제를 위해 찾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좋은 장소다. 흥해환승센터와 접해 있어 찾기도 어렵지 않다. 오며 가며 가볍게 버스를 기다리다가 잠깐 들르기도 좋다. 환승센터 옆에 주차할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고 관람료도 무료다. 넓지 않아서 1시간 정도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2-09

철강을 다시 세우는 것이 포항을 다시 세우는 길입니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었다. 영일만의 바닷바람과 제철소의 열기가 만나 ‘영일만 기적’을 만들었고, 그 기적은 곧 포항 시민의 일자리와 삶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지금 포항의 심장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중국의 저가 공세, 탄소중립 규제 강화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철강 산업은 전례 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철강의 위기는 특정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포항의 위기이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제조업 기반의 위기다. 포항이 재도약하려면 답은 분명하다. 철강 산업 재건이 제2의 영일만 기적의 시작이다. 철강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협력업체의 생존이고, 하도급 노동자의 생계이며, 골목상권의 매출이고, 도시 전체의 체온이다. 제철소 가동이 주저앉으면 지역 중소기업과 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철강을 살리는 일은 ‘특정 산업 지원’이 아니라 ‘도시 생존 전략’이다. 첫째, 철강 산업 고도화는 더 늦출 수 없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고부가와 친환경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수강 분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비중은 12% 수준이지만, 일본은 17%, 독일은 38%에 달한다. 경쟁력 격차를 줄이려면 고부가 특수강 핵심 기술 연구개발(R&D)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전기강판 등 경쟁력 유지 품목에 대한 선제 투자도 필요하다. 수출 공급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금리 우대, 보증 한도 확대 등 금융지원 역시 확대되어야 한다. 철강을 버티는 산업에서 다시 뛰는 산업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철강 재건의 가장 시급한 해법은 산업용 전기요금 개혁이다. 철강은 전기 집약형 산업이다. 전기요금이 곧 원가이며, 원가가 곧 경쟁력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요 경쟁국보다 높은 구조에서 수출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기요금 문제를 외면한 채 철강 재건을 말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가 된다. 분산 에너지 특화 지역 규모 발전소 건설, 해상 풍력 발전단지 조기 완공, ‘K-스틸법’에 근거 한 우대요금제와 고정요금제 도입을 병행해야 한다. 전기요금 결정권의 지방정부 이양, 지역 차등 요금의 즉시 실행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값싼 에너지가 있는 곳에 기업이 모인다. 에너지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지방의 내일도 없다. 셋째, 포항은 철강 생산도시를 넘어 철강 수요 모델 창출 도시로 확장해야 한다. 만들기만 하는 도시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공공사업에 강재 사용 기준을 명시하고, 기술개발 제품이 실제 납품 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테스트베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공공주택 강구조 모듈러 시범단지를 만들고, 모듈러 건축 기업을 유치·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할 필요도 있다. 공원과 버스 쉼터 등 공공시설에도 저탄소·고내식 강재 적용 모델을 개발·보급해야 한다. 철강 소재 기반의 2차 경공업 유치로 산업 사슬을 포항 안에서 완성하는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과 행정의 협업을 총괄하는 시장 직속 ‘철강 산업 지원 전담 부서’ 설치와 같은 실행 체계가 꼭 필요하다. 포항은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를 관리하는 도시에 머물 것인지, 다음 성장을 준비하는 도시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철강을 다시 세우는 것이 포항을 다시 세우는 길이다. 포항이 다시 뛰어야 대한민국이 다시 뛴다. 제2의 영일만 기적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에서 시작된다. /박용선 경북도의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6-02-09

건조한 겨울철 설마 하는 방심이 재앙 부른다

지난 주말 경주와 포항 등 경북 도내 3곳에서 연이어 산불이 발생, 비상이 걸렸다. 7일 오후 9시40분쯤 경주시 문무대왕면 입천리 일원에서 산불이 일어나 이틀째 진화작업을 벌였다. 이보다 약 10분 앞서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야산에서도 산불이 일어났고, 8일 새벽에는 포항 죽장면 지동리 야산에서도 산불이 났다. 양남면 산불은 다음날 오전 9시 52분쯤 가까스로 주불을 잡았고, 포항 죽장면 산불은 2시간 20만에 진화했다. 그러나 경주 문무대왕면 산불은 8일 오후 늦게까지 강한 돌풍 등으로 진화를 못해 애를 먹었다. 주말에 일어난 산불로 수많은 소방인력과 헬기 등이 동원돼 밤새 진화작업을 벌이고 불이 난 지역 인근 주민들은 대피 소동까지 겪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처럼 밤새 걱정을 해야만 했다. 작년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경북 북부권 5개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역대급 피해를 냈다. 28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 피해가 무려 1조원을 넘었다. 아직도 이재민 생활을 하는 이가 있나 하면 농업 기반을 잃어버려 실의에 빠져버린 농민이 하나둘이 아니다. 산불을 막지 못하면 산림 훼손뿐 아니라 목재나 임산물의 생산이 줄고 문화재 피해도 심각하다. 엄청난 산림 복구 비용도 문제다. 국가데이터처에 의하면 지난 30년 동안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산불 피해 지역이다. 최근 10년간 경북의 한해 평균 피해 면적은 2107ha로 전국 면적의 52%를 차지한다. 올 겨울은 평년보다 훨씬 적은 강수량과 낮은 습도로 인해 전국적으로 건조 특보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중 경상권은 건조함이 더 심각하다고 한다. 1월 중 산불 발생 건수도 이곳은 평년의 3배나 된다. 건조한 기후는 작은 불씨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 소각이나 흡연, 라이터 휴대 금지 등 철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산불 발생의 주요 원인이 입산자의 실화나 논밭 두렁 소각 등에 있다. 작은 불씨 하나가 무서운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각심을 높여야 할 때다.

2026-02-09

장동혁 지도부, ‘반대파’ 모두 징계할 것인가

국민의힘 내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당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 6일 배현진 의원이 한동훈 전 대표 제명 과정에 서울시 당원 의사와 상관없이 성명서 등을 냈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절차가 시작된 만큼 추후 회의를 통해 징계 수위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윤리위의 판단 결과에 따라 당은 또 한번 흔들리게 생겼다. 정말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제 당 윤리위는 장동혁 대표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 같다. 최근 당에서 제명된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윤리위가 정적 제거를 위한 사설 기관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공감 가는 말이다. 당 대표를 향해 쓴소리한다고 해서 ‘조자룡 헌칼 쓰듯’ 마구 징계 카드를 꺼내 들면 과연 그 당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국민의힘 지도부를 보면, 마치 ‘자해행위’를 하는 집단 같다. 당 지지율은 바닥을 치는데 넉 달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 민심을 도외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은 41%, 국민의힘은 22%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전 연령대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을 앞질렀고, 지역별로도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국민의힘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도 민주당이 41%, 국민의힘이 25%를 기록했다. 또 지방선거와 관련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4%인 반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32%에 그쳤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지방선거 민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여론조사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지낸 김용태 의원도 최근 “윤어게인, 계엄 옹호, 부정선거를 이야기하는 분들을 끊어내지 못하면 선거에서 100전 100패”라고 했다. 당 지도부가 뼈아픈 자책을 하며 당을 개혁해도 모자랄 판에, 당내에 비판 목소리만 나오면 ‘비수’를 들이대고 있으니 정상적인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2026-02-08

불안한 핵무기 협정

1947년 핵물리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지구종말시계는 인류가 핵의 위협으로부터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계다.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미핵과학교육재단 회보 표지에 매번 게재되는 이 시계는 맨 처음 밤 12시 7분 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7번 수정됐다고 한다. 핵 위협이 커지면 앞당겨지고 핵 위협이 줄어들면 시간은 다시 뒤로 늦춰진다. 핵 전쟁의 가능성은 수도 없이 제기됐지만 실제 상호간에 핵을 사용한 전쟁은 역사상 한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면서도 인류 모두가 가장 죄악시하면서 공포스러워하는 전쟁이 바로 핵 전쟁이다. 한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핵전쟁이 발발하면 지구촌 인구는 모두 사망하고 살아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구 종말을 의미한다. 전 세계 핵탄두의 90%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핵 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 감축조약(뉴스타트·New START)이 지난 2월 5일 종료됐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미·러 간 핵 군축 체제가 일시에 사라지면서 세계는 핵무기 보유국 간 군비경쟁 과열이 일어날까 우려하는 상황이다. 뉴스타 조약에 의하면 미국과 러시아는 실전배치 핵탄두는 1550기 이하로, 운반체는 700기 이하로 제한하고 핵시설을 주기적으로 상호 시찰토록 약속했다. 두 나라 간의 조약은 반세기 동안 인류를 핵무기로부터 지켜주는 사실상 안전핀 역할을 했다. 추가 연장은 상호 간 입장이 달라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지구촌 인류가 핵무기 앞에 통제 불능의 상태로 노출된 상황이 사실상 도래한 꼴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은 과연 불가능 한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2-08

그림으로 보는 조선 풍속도

지난 연말 ‘청도 인문학’ 종강하는 자리에서 어느 수강생이 툴툴거린다. 방학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12월 하순에 종강해서 2월 하순에 개강하는 것이니, 두 달 남짓한 기간이 방학이다. 이것은 여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한겨울과 한여름의 휴식은 필요하다지만, 그 기간이 유독 길게 여겨지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필시 열렬한 수강생 아닐까?! 잠시 생각을 고른 나는 방학 중에 두 번 정도 인문학 특강을 함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반색하며 ‘청도 인문학’ 수강생이 아닌 일반 군민들에게도 청강의 기회를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듣고 보니 아주 생산적인 발상이다. 그리하여 청도 도서관장과 과장, 그리고 실무자와 협의한 끝에 1월 20일과 2월 3일 오전에 도서관 강당에서 특강이 이뤄졌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동서양 그림에 얽힌 이야기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선지 그림과 관련한 서책을 조금 읽은 편에 속한다. 한겨울에 열리는 인문학 강연 주제로 지나치게 무겁지 않지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림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그런 연유로 혜원 신윤복과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의 글과 그림을 대상으로 강연하기로 한다. 1970년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 전신첩’에 실린 30점 풍속화 가운데 8점을 준비한다. 언젠가 큰아들 덕분에 읽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는 긴 제목의 서책에서 나는 신윤복의 그림에 담긴 조선 후기의 풍속과 만났다. 아주 평이하고 곡진한 글월로 부산대 강명관 교수는 독자들에게 날로 어지러워지는 조선 하대(下代)의 풍정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월하정인’이 눈길을 잡아맨다. 한여름 달밤에 두 남녀가 양반댁 담장 앞에서 은밀하게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 그림이다. 문제는 야삼경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의 형상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초승달도 그믐달도 아닌 기묘한 모습의 달이 하계에서 희롱하는 남녀의 통정(通情)을 굽어보는 것이다. 저 달의 본령은 뭔가, 하는 궁금증이 찾아든다. 처음 ‘월하정인’을 보았던 당시 나는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원근법(遠近法)도 없고, 정체 모를 달은 떠 있고, 한문이 보란 듯 찍혀 있는 생소한 그림. 1793년 8월 21일 한양에서 일어난 부분월식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란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낯이 화끈거린 기억이 새롭다. 원근법이 금과옥조도 아니고, 그림과 화제(畫題)가 어울리는 전통 역시 나의 무지를 확인해준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고는 하나, 혜원이 활동했던 시기의 조선은 그야말로 무너져가는 나라였다. 일반 백성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지만, 풍족한 양반들의 법도는 나날이 어지러워진 세월이었다. 자유분방한 혜원은 그런 양반들과 기생들의 한바탕 풍류를 가감 없이 그려냄으로써 18세기 후반의 조선 생활상을 곡진하게 그려낸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담대한 구도, 적나라한 시선을 감추지 아니하는 정직한 화가의 시선을 유지한 혜원 신윤복. 그의 화첩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적잖은 가르침을 준다. 제한된 시공간과 인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넌지시 귀띔하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08

속기록이 남긴 책임

의회에서 ‘속기록’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얼마 전 동료의원이 만난 한 민원인이 “건설 쪽에 그 여자 의원이 지역 업체에도 공정하게 수의 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분의 말이었기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속기록을 꼼꼼히 챙겨 보는 시민들이 계신다는 사실에 책임감이 더해졌다. 의회에서 한 말 한마디, 남겨진 기록 한 줄이 시민의 판단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지난주 금요일 포항시의회 본회의장은 바로 그 ‘속기록’이 던진 파문으로 크게 흔들렸다.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연구모임의 세미나 비용 76만 원을 전액 회수 조치한 것이 논란의 출발점이었다. 연구모임 ‘블루오션’이 애초 사업계획서에는 환경과 기후 정의를 주제로 활동하겠다고 제출해 놓고, 실제로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초과이익 환수와 관련한 세미나를 진행한 것이 계획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회의의 내용은 속기록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몇 장의 속기록만으로 회의 전체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속기록을 살펴본 다수 의원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라는 것이었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민간공원 특례사업 초과이익 환수’ 문제는 이미 건설도시위원회에서 중간보고까지 진행된 환호공원 타당성 용역이 출발점이다. 현재 포항에는 상생공원, 환호공원, 학산공원 등 3개의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이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제도 취지상 공공성을 전제로 하지만, 실제로는 비공원 지역의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개발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초과이익을 환수해 공공기여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블루오션 연구모임이 진행한 세미나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초과이익 환수를 통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해당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변호사를 초청해 제도적 쟁점과 정책 대안을 논의한 것이다. 만약 시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해당 세미나가 연구모임의 애초 취지인 환경·기후 정의, 시민 삶의 질 향상과 전혀 무관하고 부적절했다면 환수 조치는 정당할 수 있다. 문제는 운영위 속기록을 살펴볼 때, 그 엄격함의 잣대가 모든 연구모임에 동일하게 적용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국민의 힘 연구모임에는 관대하고, 민주당에는 엄격했다”라는 정치적 공방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과연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정하고 엄격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날 본회의장에서 한 선배 의원의 제안처럼 10대 의회에서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모임 심의위원회를 두어 ‘셀프 심사’의 한계를 보완하고, 특정 사안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의원은 제척과 회피를 통해 심의의 공정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정을 말한다면, 그 말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속기록은 결국 기록이지만, 동시에 책임이다. 의회가 시민 앞에서 지켜야 할 책임은 ‘말의 기록’이 아니라 ‘원칙의 일관성’이어야 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2-08

골목길

1970년 초 나에게 동네 골목길은 지금 축구장의 절반 크기였다. 또래 아이들과의 모든 놀이가 거기에서 이루어진 기억으로 가득하다. 반골 축구, 자치기, 마리, 구슬치기, 연탄 던지기 심지어 야구까지 안되는게 없던 공간이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보다도 동네 골목길에서 어울린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얼마 전 옛 생각에 동네 골목길을 찾았다. 어른 두 명이 지나가면 꽉 차 보이는 이 좁은 길을···. 그때는 그렇게 작은 몸이었던가. 이제는 보기 힘든 흙투성이 골목길에서 친구, 동생 그리고 형들과 함께 밤늦도록 누비던 그 길에서 나는 우리 동네 어른들과 집마다 키우던 강아지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그때의 부모님 모습이 그리워진다. 차 몇 대 다니지 않는 70년대의 2차선 도로는 한참을 걸어야 건너는 대로였다. 그 길 건너 골목길 한쪽 편 우리 집 마당 작은 꽃밭의 한가운데 풍성히 그리고 담벼락에 잔뜩 기울어 뾰족이 담 밖을 내다보는 검붉은 장미와 조금조금 경계 지어진 꽃밭 돌 틈 사이로 소담소담 올라온 노랑 빨강 채송화가 한창일 때의 향기로운 기억의 냄새가 나를 감싸며 옅은 미소를 배어나오게 한다. 길지 않는 좁다란 골목길에서의 추억들이 지금보다도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으로 남아있다니 행복했던가 보다. 옛 모습과 비슷이 남아있는 큰길 건너 첫 번째 모퉁이 돌아 세 번째 집 그리고 딱딱한 회백색 시멘트 깔려진 그때와 다른 골목길은 아쉬움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공간에 오롯이 남아있는 골목길은 여전하다. 골목길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었다. 그곳은 삶이 이루어지는 가장 낮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자,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던 생활의 무대였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놀이터이자 교실이었고, 어른들에게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마을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계획되거나 설계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관계와 이야기를 품을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문화의 핵심은 ‘우연한 만남’에 있다. 약속하지 않아도 마주치고, 의도하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쌓인 관계가 동네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규칙을 만들고, 다툼을 해결하며 사회를 배웠다. 경쟁보다 어울림이 먼저였고, 효율보다 관계가 우선이었다. 골목은 삶의 속도를 여유롭게 늦추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골목은 점점 사라지거나 기능을 잃었다. 흙길은 시멘트로 덮였고, 놀이는 위험과 소음으로 규정되었다. 골목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실내와 조그마한 화면 속으로 옮겨갔고, 이웃과의 관계는 점점 느슨해졌다.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편리함이었지만, 그만큼의 공백도 함께였다. 이제 다시 골목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다. 골목은 지역 문화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이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의 골목은 변했을지라도, 기억 속 골목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기억은 한 개인의 추억을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싶은지를 이야기한다. 골목길 문화는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다시 회복해야 할 삶의 감각이자 특별한 공간이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2-08

날뛰는 시처럼, 말 달리는

책만 한 함선은 없다 우리를 먼 땅으로 데려다주는 시 한 편처럼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 여행은 가장 가난한 자도 통행세 없이 갈 수 있도다 얼마나 검소한 마차인가 인간 영혼을 실어 나르는 이 전차여. There is no Frigate like a Book To take us Lands away, Nor any Coursers like a Page Of prancing Poetry ╾ This Travel may the poorest take Without offence of Toll ╾ How frugal is the Chariot That bears the Human soul. ―Emily Dickinson, ‘There Is No Frigat Like a Book’ 전문 (ALLIE ESIRI, A POEM FOR EVERY DAY OF THE YEAR) 1455년 2월 23일은 구텐베르크 성경의 첫 인쇄일로 여겨진다. 대량 생산된 최초의 책으로 약 180부가 인쇄되었다. 따라서 이날은 책의 탄생일이다. 인쇄기를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세상을 바꾼 날이기도 하다. 스스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 그것은 중세 성직자의 왜곡으로부터 본질을 회복하는 혁명의 서막이었다. 미국의 위대한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책과 문학을 기리며 이 짧은 시를 썼다. 비록 그녀 생전에는 단 일곱 편의 시밖에 발표하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책은 우리를, 우리의 영혼을 먼 세계로 실어 나르는 함선이라고 했다. 이 기세를 몰아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는 한 소년을 향해 좀 더 먼 곳으로 말을 달려보자. 곧 초현실주의 스페인의 국민 시인으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를 만날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기묘하고 종종 꿈결 같은 이미지를 탐구한다. 스페인 내전 초기에 정치적 견해 차이로 암살을 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반지로 만들어 그가 내 침묵을 새끼손가락에 끼게 하리라.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포로가 된 목소리는 멀리서 귀뚜라미 옷을 입었다. “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king of the cricktes had it.)/ I do not want itn for speaking with; I Will make a ring of it/ so that he may wear my silence/ on his little finger/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captive voice, far away, put on a cricket’s clothes. (‘The Little Mute Boy, Federico Garcia Lorca, translated by w.s. Merwin’)”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혹은 우리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비극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로르카에게 있어서는 침묵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마저 중요했을 것이다. 먼 데 시인 아니어도 가까운 동네 프리미엄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시인 김수영이 순경을 보자마자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라며 절을 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문제는 시인이 술이 깬 다음 날 불안했다고 하는 고백에 있다.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불신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때 느끼는 공포를 실감할 수 있으리라.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혁명은 가르시아 로르카와 김수영을 경유해 이곳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어떤 권력의 장이든 다르지 않다. 최근 항일운동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박열’에서 하네코 후미코의 마지막 변론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는 박열의 본질을 알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이 대사는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우리가 나눈 모든 것들이 우리를 증명한다”라고 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암투하는 비본질이 본질을 흐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희정 시인

2026-02-08

환각 현상의 메커니즘 - 믿되 확인하라

인공지능(AI)의 환각 현상 즉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과 관련된 실험 결과를 발표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MIT 그리고 보스턴 컬설팅 그룹(BCG)이 함께 진행한 연구 내용이다. 보스톤 컨설팅 그룹 소속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신사업 제안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실험 결과였다. 실험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그룹과 AI를 사용하는 그룹, 그리고 AI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교육을 받은 그룹 등 세 그룹으로 나뉘어 수행되었다. 결과를 살펴보면, 창의적 아이디어 과제에서는 AI를활용한 그룹들의 성과가 40% 높게 나타나 AI 활용의 효용성을 확인했지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략을 도출하는 과제에서는 AI를 사용한 컨설턴트그룹의 정답률이 오히려 19%포인트나 떨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 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AI가 언급한 ‘그럴듯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AI는 잘못된 재무 데이터를 바탕으로 너무나 유려하고 논리적인 보고서를 썼고, 엘리트 컨설턴트들조차 그 완벽해 보이는 문장에 속아 검증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이것이 바로 AI의 ‘환각 현상(Hallucination)’이다. 마치 사람이 환각을 보듯, AI가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생성하는 현상이다. 문제는 AI가 거짓말을 할 때 전혀 망설임이 없고, 오히려 전문가조차 속을 만큼 자신감 있게 답한다는 점이다. △환각 현상(Hallucination)의 유형 환각 현상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사실 왜곡형으로서 존재하는 정보를 틀리게 전달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례 : 세종대왕은 1418년 즉위했고, 훈민정음을 1443년 반포했다. 여기서 “세종대왕은 1418년 즉위했다”는 맞지만, “훈민정음을 1443년 반포했다(실제 1446년)”고 하면 틀린 것이다. 둘째는 정보 날조 형이다. 즉, 없는 정보를 만드는 경우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통계를 진짜처럼 꾸며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맥락 오류형이다. 정보는 맞지만, 맥락이 틀린 경우다. 사례 :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맞지만, 수상은 광전효과로 받은 것이었다.” △왜 AI는 자신감 있게 거짓말하는가? 환각 현상의 원인은 AI의 작동 방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Chat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사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다음에 올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기계라는 말을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확률 기반 토큰 예측의 함정으로 인하여 AI에게 “세종대왕은 무엇을 만들었나?”라고 물으면, 다른 여러 가지 발명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습 데이터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훈민정음’을 선택한다. 문제는 AI가 이것이 ‘진실’이라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통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결된 단어이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를 ‘패턴 매칭’이라 한다. AI는 특정 질문에 대하여 “~일지 모른다”라고 답하기보다, 부족한 정보를 비슷하고, 그럴듯한 정보를 채워 넣고, “아마도” 같은 표현보다는 학습된 단정적인 표현에 근거하여 거짓말을 아주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이다. 실제 피해 사례들을 살펴보자. “판사님, AI가 진짜라고 했습니다.” 환각 현상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알아보자. 30년 경력의 베테랑 법조인을 무너뜨린 사건을 그 예이다. 2023년 6월 미국 뉴욕 연방지방법원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스티븐 슈워츠라는 변호사는 아비앙카 항공을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하며 ChatGPT를 활용했다. 그는 AI에게 사건과 비슷한 “항공 사건 판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AI는 ‘바르기스 vs. 중국 남방항공’, ‘샤브리안 vs. 이집트 항공’ 등 그럴듯한 사건 판례 6건을 제시했다. 문제는 판례들이 모두 가짜였다는 점이다. 슈워츠 변호사도 의심을 안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AI에게 질문했다. 당시 대화 내용 중 AI의 확신에 찬 거짓말은 충격적이다. 변호사: “이 판례들(바르기스 사건)이 진짜 존재하는 거야?” ChatGPT: “네, 그렇습니다. 웨스트로(법률 DB) 및 렉시스넥시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변호사: “다른 판례들도 가짜가 아니지?” ChatGPT: “물론입니다. 제가 제공한 판례들은 실제 존재하며, 주요 법률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AI의 너무나 확신에 찬 대답(“네,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에 변호사는 의심을 거두고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상대측 변호사와 판사가 아무리 찾아도 해당 판례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이 AI의 창작 소설임이 밝혀졌다. 슈워츠 변호사는 AI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국 벌금(5000달러)을 물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그렇기에, 우린 환각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줄이는 프롬프트 활용의 구체적 예시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당분간 환각을 완벽하게 막을 순 없지만, 질문을 정교하게 다듬으면 거짓말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지난주 배운 프롬프트 기법들을 활용해 환각 현상을 없애는 질문을 만들어보자. ▲첫 번째 질문 전략 : 불확실한 표현을 못 하도록 하라. AI는 스스로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억지로 답을 만들어내려는 성향을 억제해야 한다. [나쁜 질문] “조선시대 15세기 화폐 개혁의 성공 요인을 알려줘.” [AI의 환각 답변] “1450년 세종은 ‘조선통보’ 사용을 의무화하며 성공적인~” (사실 여부가 섞여 있어 구분이 어려움) [좋은 질문] “조선시대 15세기 화폐 개혁에 대하여 설명해 줘. 단, 역사적 사료로 확실히 검증된 내용만 포함하고, 불확실하거나 이견이 있는 부분은 반드시 ‘학계의 이견이 있음’ 또는 ‘확인이 필요함’이라고 명시해 줘.” [개선된 답변] “조선 초 화폐 개혁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실물 경제와의 괴리로 인해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됩니다(이견 있음). 태종 때 저화(楮貨), 세종 때 조선통보가 발행되었으나~” (신중하고 객관적인 서술) ▲두 번째 전략 : 출처(Source)를 확실하게 언급하도록 요구하라. 출처를 요구하면 AI는 답변 생성 과정에서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한 번 더 검증하게 된다. [나쁜 질문] “2024년 한국 이커머스(e-commerce) 시장 시장 점유율 순위 알려줘.” [AI의 환각 답변] “1위 A사 40%, 2위 B사 35%~” (학습된 데이터나 임의의 추정치를 섞어서 답함) [좋은 질문] “2024년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을 알려주되, 공신력 있는 기관(통계청, 공정위, 주요 연구(Research)센터)의 발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해 줘. 각 수치 옆에 [출처: 기관명, 연도]를 표기하고, 정확한 최신 데이터가 없다면 ‘최신 데이터 없음’이라고 솔직하게 말해 줘.” [개선된 답변] “정확한 2024년 확정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2023년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A사와 B사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전략 : 단계별 검증(Chain of Verification)을 유도하라. 한 번에 결론을 내라고 하면 AI는 성급해진다. 사고의 과정을 나누면 거짓말할 확률이 줄어든다. [나쁜 질문] “이 계약서 독소조항 찾아줘.” [AI의 환각 답변] “제5조 2항은 불공정합니다.” (근거 없이 무작정 지적하거나, 멀쩡한 조항을 트집 잡음) [좋은 질문] “너는 전문 법률 검토 AI야. 이 계약서를 제시하는 단계에 따라 분석해 줘. 1 단계: 계약서의 모든 조항을 요약한다. 2 단계: 현행 상법 및 표준계약서와 비교하여, 계약자에게 불리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다. 3 단계: 2단계에서 찾은 내용이 왜 위험한지 법적 근거와 함께 설명한다. 근거가 불확실하면 제외한다.“ [개선된 답변] “단계별로 분석하겠습니다. 1단계 요약~ , 2단계 불리한 조항 발견: 제10조 ‘계약 해지 시 즉시 전액 배상’ 문구는~ , 3단계 법적 근거: 이는 약관 규제법상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 부과’에 해당할 소지가 있습니다~“ ▲응답 검증 및 확인 방법, 이중 확인을 생활화 하자. AI의 답은 ‘초안(Draft)’일 뿐, 결코 ‘최종안(Final)’이 아니다. 다음 3단계 검증을 습관화해야 한다. ·원문 대조(Source Check) : 숫자가 나오면 무조건 의심하라. 통계청, 국가법령정보센터, 다트(DART) 등 원천 데이터가 있는 사이트에 접속해 인공지능(AI)이 말한 숫자가 맞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교차 검증(Cross Check) : 하나의 AI만 믿지 말라. 예를 들면, ChatGPT 에게 물어본 내용을 Gemini나 Claude 등에게 똑같이 물어보라. 세 AI의 답변이 일치한다면 신뢰할 수 있지만, 서로 딴소리를 한다면 셋 다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 확인(Expert Check): 스티븐 슈워츠 변호사의 사례를 잊지 말자. 법률, 의료, 세무, 안전 설계 등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AI)의 답변을 참고만 하고, 반드시 인간 전문가의 최종 검토를 거쳐야 한다. ▲믿되 반드시 확인하라. BCG의 유능한 컨설턴트도, 30년 경력의 베테랑 변호사 슈워츠도 AI의 ‘자신감 있는 거짓말’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는 AI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언어의 확률’을 계산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AI는 진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말을 잘하는 기계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용운 계명대 교수·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2026-02-08

‘윤 어게인’도 모자라 ‘도로 민정당’인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좌우에 세워놓고 민주자유당(민자당) 창당을 발표했다. 5공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민정당)과 두 야당의 ‘3당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민정당은 궁지에 몰렸다. 1985년 2·12 총선에서 참패했다. 야당까지 정보기관이 만들어준 1, 2, 3중대 체제가 무너진 건 물론이다. 제1당 프리미엄 덕분에 겨우 과반을 유지했다. 서울에서 민정당이 27.3%를 얻은 데 반해 신민당은 43.9%를 얻었다. 거센 민주화 요구에 몰려 1987년 직선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양 김 씨가 표를 쪼개면 민정당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해 대선에서 조직과 돈을 모두 동원한 노태우 후보가 36.64%로 당선했다. 그러나 국회는 달랐다. 이듬해 4월 총선에서 민정당이 33.96%를 얻어 사상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만들어졌다. ‘5공비리조사특위’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 등이 설치됐다. 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 불려 나온 뒤 백담사로 쫓겨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됐다. 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이 확정됐다. 김 대통령은 하나회를 숙청해 쿠데타 가능성을 봉쇄했다. 까마득한 과거사가 된 그 시절을 돌아본 것은 최근 국민의힘 정체성 때문이다. 신군부 주역이었던 전·노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자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친위쿠데타에 실패했다. 법 규정을 따질 것도 없다.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은 정치학의 기초만 배우면 안다. 히틀러나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경험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고 한다. ‘패군지장 불어병’(敗軍之將 不語兵). 패배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말라고 한다.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느니, 국회의 횡포 때문이라느니, 우매한 국민을 깨우기 위한 ‘계몽령’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구질구질한 변명이다. 신군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격하 운동을 벌였다. “정당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 불신을 초래한 체제”라며, ‘유신잔당’이라고 비판했다.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으로 정의의 사도 행세를 했다. 5공을 청산한 이후 보수 정당은 참회와 변신의 노력을 해왔다. 민주화 세력을 수혈하고,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었다. 천막당사의 고난도 견뎠다. 그런데 다시 전두환을 복권하자는 소리가 나오니 어리둥절하다. 경제민주화를 빼고, 반공을 넣는다는 말도 나온다. 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중심에 모시자는 ‘윤 어게인’이 주류가 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윤 전 대통령을 비판한 죄를 물어 제명하고, 그 징계를 반대하면 같이 자리를 걸고 당원 투표를 해보자고 겁박했다. 윤 전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잘못됐다는 데는 장 대표도 동의했다. 해제 투표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갑자기 ‘윤 어게인’으로 치닫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정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소명을 잊으면 안 된다. 친위쿠데타를 했어도, 정권을 지키기 위해 탄핵하면 안 된다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YS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국민의힘 당사에서 YS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과거 군사정권 후예라고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더 이상 그곳에 걸어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 대표와 가까운 최고위원이 최근 영입한 한 유튜버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논의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반윤은 자리를 걸고 응징하면서, 극우 목소리에는 관대하다. 보수 정당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들게 노력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은 5·18 묘지에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사람이 재판과 수형 생활을 거쳤다. 그런데 모든 걸 다시 되돌리자는 세력이 있다. 민정당의 34%로 돌아가자는 건가. 그보다 더 쪼그라들어도 당권만 쥐면 된다는 건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2-08

[역사 에세이] 공신(功臣)인가 공신(空臣)인가, 임진왜란 원균을 둘러 싼 논쟁

임진왜란을 떠올릴 때 원균(元均)이라는 이름은 거의 반사적으로 ‘칠천량의 패장’ ‘무능한 장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기억된다. 반면 이순신은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너무도 익숙해, 그 이면을 의심하는 일 자체가 불경(不敬)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조선 수군을 사실상 붕괴시킨 장수가 어째서 이순신·권율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에 책봉되었을까.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원균의 모습이 전부일까. 통설에 원균의 1등 공신 책봉은 선조의 편향과 정치적 계산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다. 선조는 백성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이순신을 경계했고, 왕권을 보완할 균형추로 원균을 띄웠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논공행상 과정에서 원균을 1등으로 격상시키는 데 선조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설명이 끝날까. 당시엔 ‘공신도감’(功臣都監)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 심사에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전쟁 직후의 조정이 ‘허위(虛僞) 공’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역사학자 백승종의 연구는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선조실록’ ‘난중일기’, ‘징비록’, 각종 장계와 상소문을 치밀하게 대조하며, 원균이 단순한 무능한 장수가 아니라 왜란 초기 조선 수군을 지탱한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1592년 왜군이 2000척의 함대를 이끌고 부산포에 상륙했을 때, 경상우수사 원균에게 주어진 전력은 고작 10여 척뿐이었다. 그는 진주와 호남을 잇는 해로(海路)를 사수하기 위해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이순신과의 연합함대가 구성되기까지 약 20일 동안, 원균은 거의 소모전에 가까운 전투를 이어갔다. 연합이 성사됐을 무렵 그의 가용 전력은 4척에 불과했다. 한산대첩은 이순신이 총지휘한 연합수군의 승리가 맞다. 하지만 원균의 역할도 분명히 있었다. 경상우수사였던 원균은 전력 열세 속에서도 선봉에 나서 왜군을 자극하고 외해(外海)로 유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투 초반 교전을 담당해 본대가 진형(陣形)을 갖출 시간을 벌었고, 조정 기록에서도 그의 공은 공식적으로 언급된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칠천량(漆川梁) 해전이다. 이 전투는 원균을 ‘패장의 대명사’로 만든 결정적 사건이다. 그러나 실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무리한 출전을 강요한 조정의 판단과 육전(陸戰) 논리를 해전(海戰)에 적용한 권율의 압박이 참사의 원인이었음이 드러난다. 피해 규모 역시 후대 기록에서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원균은 그저 조정의 명을 받고 출전했고, 전투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원균은 400년 동안 ‘절대악’의 자리에 고정되었을까. 정치적 당쟁의 소멸, 살아남은 자의 기록, 그리고 국가적 위기 속에서 요구된 ‘완벽한 충신 서사’가 겹쳐진 결과다. 이순신은 영웅으로 필요했고, 원균은 그 대척점으로 기능했다. 기억은 그렇게 단순화된다. 원균을 명장으로 예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 인물을 완전히 무능한 장수로, 다른 한 인물을 무결점의 성웅으로 만드는 방식이 과연 역사에 정직한가를 묻자는 것이다. 원균의 1등 공신 책봉은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기억이 어떻게 엇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는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해석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통설(通說)을 잠시 의심해 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역사 읽기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2-07

AI에게도 헌법이 필요할까

인공지능에게도 헌법이 필요할까. 이 질문은 감정도 의지도 없는 기계에게 헌법을 적용해야 하냐는 뜻이 아니다. AI를 통해 행사되는 권력과 판단에 대해 우리가 어떤 헌법적 기준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AI 기술이 일상과 사회 전반을 구성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요즘, 더욱 깊이 되새겨야 할 근본적 물음이 아닐까. 헌법의 본질은 국가와 같은 남용될 수 있는 거대한 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 균형을 도모해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을 지키는 데 있었다. 과거에는 국가 권력의 힘이 가장 컸다면 오늘날에는 기업과 사인의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헌법이 쓰였다. 그리고 이제는 AI와 로봇, 알고리즘의 판단이 또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AI는 미디어와 광고, 금융,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AI 시대엔 판사와 변호사, 의사가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이라고 하는 걸 보면 AI가 사법부의 대행이 되고 국민 보건소의 대행이 될 날도 머지않았나 보다. 하지만 AI의 판단이 제한과 검증 없이 그저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위협당할 위험도 커지게 된다. AI 기술의 발전이 그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약칭 ‘AI 기본법’)이 시행되었다. 세계 최초로 AI 전략, 산업 진흥, 규제를 하나의 법률로 통합한 기본법이라고 한다. AI 기본법의 주요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 AI 경쟁력 강화와 산업 진흥이다. 연구개발, 표준화, 데이터 인프라, 전문 인력 양성과 스타트업 지원 등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게 했다. 둘째, AI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 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고영향 인공지능(High-Impact AI)’과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나누어 정의하고, 이들 AI가 인간의 생명·안전·기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는 투명성 확보 의무, 안전성 확보 의무, 영향 평가 의무 등을 부과했다. 이제 AI로 만든 결과물에는 워터마크 등 AI 생성이라는 표시를 해야 하고, 고영향 AI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위험 식별과 완화 조치, 사용자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AI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다. AI 기본법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AI 위원회를 명문화하고, AI 안전연구소 등 전문 기관을 설립해 정책과 안전기준 연구를 수행하도록 했다. AI 진흥과 규제의 기본 골격이 될 AI 기본법이 제정된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그 규제 기준이 모호하고 개인정보 침해나 딥페이크 등 새로운 유형의 AI 범죄 피해에 대한 보호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계속해서 법을 수정하고 추가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부분이다. AI에게도 헌법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AI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헌법적 기준을 대입해 보아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명제보다 앞설 수 없음을 잊지 말자.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2-05

‘영포티’의 과거

어느 시대에나 세대론은 제출된다. 특정 연령대를 단일 집단으로 묶어 사고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각 세대의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특정하는 명명이 요청될 때가 주로 그렇다. 대개의 세대론은 해당 시대의 청년 계층을 지시하기 위해 마련되곤 한다. 물론 세대론이 형성되는 맥락과 양상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령 1990년대의 ‘신세대’나 ‘X세대’는 해당 세대에 속한 청년 자신들이 이전 세대와의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스스로가 자임한 개념이었다. 반면 2000년대에 주로 호명된 ‘88만원 세대’는 세대 바깥에서 어른들에 의해 규정적으로 공표된 것이었다. 세대 명칭이 사회변화나 역사 발전의 반영이 아니라 무력(無力)의 실태나 조건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에 유행한 ‘삼포세대’나 ‘N포 세대’는 또 달라서, 이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는 물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겠다는 자조적 선언에 가까웠다. ‘3포’에서 ‘5포’로, ‘7포’에서 ‘N포’에 이르는 과정 모두는 사회가 특정 세대의 현실을 재단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가 자신의 비참을 전시하기 위해 동원한 유희적 언어 표출에 가까웠다. ‘헬조선’과 ‘수저론’이란 말이 함께 운위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영포티’는 어떠한가? ‘영포티’ 역시 세대론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영포티’는 그 자신들에 의해 자임된 개념도 아니며 어른들에 의해 규정된 관념도 아니다. 아랫세대가 자기 윗세대를 멸시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꼰대’로 대표되는 (추상화된) 부모 세대 일반을 지칭하고 있지도 않다. 즉 시공간의 분리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오히려 사회의 지근거리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선배’ 정도 되는 이들에 대한 원망에 기초해 있는 세대 개념인 것이다. ‘젠지’에게 ‘영포티’는 학교(대학)에선 비교적 젊은 선생(교수)에 속하며 직장에선 ‘상사’이기도 하다. 이들 간에는 지식이나 교양 수준, 가치관, 역사의식, 문화적 취향과 기술 향유의 정도에서 대단한 차이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작은 격차에 입각하여 ‘영포티’는 바로 아랫세대가 보기에는 사회적 기득권으로 군림하고 있기도 하다. 실력에 비해 소득·수입의 갭은 너무 크고, 상대적으로 그러한 지위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했다고 의식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영포티’에 대한 경멸에는 어른 같지도 않은 이들의 어른 행세라는 인식이 선재해 있다. ‘영포티’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포티’는 ‘N포’를 자임했던 세대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던 사회의 모순과 적극 대결하기보다는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변화에 대한 모색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던 그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N포’에서 ‘영끌’로의 이행으로부터 젠지 세대의 원망이 비롯된 것이기에 그렇다. ‘영포티’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겼나? 집단적 저항이 아니라 개별적 체념에 몰두했던 우리가 누굴 탓하겠나? ‘영포티’라면 우선 이 점에 천착해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2-05

공자님 말씀은 아닌데

서원과 절의 공통점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친 현대인이 힐링할 곳을 찾는다면 절이나 사원 쪽으로 가면 거의 틀림없다. 내가 여행지를 정할 때 유독 그쪽으로 택하는 이유이다. 서원에 가면 육십이 훌쩍 넘은 듯한 중년 단체 방문객들이 열심히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본다. 주위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다. 그저 사진이나 찍으면서 희희낙락이다. 마루에 신발 벗고 올라가지 않고 걸터앉아 해설사 이야기 듣는 중년들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이다. 마루에 걸터앉는 것은 예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인이 도산 서원에 다녀왔다기에 물었다. 마당 앞에 큰 나무 두 그루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도동 서원에 갔다 온 분에게 물어도 서원 앞쪽 큰 은행나무 이야기만 한다. 4변(籩) 4두(豆)나 축(畜)과 생(牲)의 이야기는 머리만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 그냥 입을 다문다. 서원에서 조상들이 던지는 말이 한가지가 아닌데 안타깝다. 한 2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중문과 전공인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펴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교의 도(道)는 윗사람에서 유리하고 아랫사람에게 불리하며, 윗사람에게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것 같으며, 아랫사람에게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 같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난리가 날 줄 알았건만, 예상외로 유학자분들의 저항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세상은 그때부터 변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당시 젊은 사십 대가 지금 육십 대이다. 그 속에 내가 속해있다. 요즘 서원 같은 곳을 다니면서 그동안 몰랐던 것을 배우곤 한다. 젊을 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눈에 보인다. 나이 먹은 탓일까. 문제는 공부하면 할수록 여태 내가 알고 있던 유교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우물안에 개구리란 말뜻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본 갓 쓴 선비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부모들이 자식에게 과한 기대치를 내걸며 부담시킬 것을 염려해서 교육은 주로 조부모가 맡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제사도 과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가정 형편에 맞게 올렸으며, 평소 먹던 반찬을 그대로 올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우환이 있으면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다. 남자들이 직접 음식을 하고 제사상을 차렸으며 그 집안 후손이 아닌 며느리들은 원래 시가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 알고 있었고 변질된 듯하다. 언제부터 강한 남존여비의 사상이 우리 몸에 스며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첫 손님이 여자이면 재수 없다는 말을 듣고 컸다. 어릴 때 남자들은 상에서 밥을 먹었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먹었다. 요즘도 장례식장에 가 보면 딸만 있는 집은 사위가 상주이다. 여자는 상주도 될 수 없다는 전통이 이어져 온다. 안경 쓴 여자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쓴 채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 화제가 됐다는 말을 듣고 픽 웃음이 나온다. /노병철 수필가

2026-02-05

대기업 투자에 지방정부 혁신 노력 더해져야

국내 대기업들이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에 호응해 5년간 약 300조원의 지방투자를 약속했다. 4일 재벌 총수들은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한 ‘지방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인공지능 반도체와 조선, 원자력, 방산 등을 중심으로 거둔 역대급 실적을 지역균형 발전과 고용 확대라는 사회적 책무 수행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지방투자는 이 대통령이 정부가 지역발전 축으로 추진하는 5극 3특 체제에 보조를 맞춰 달라는 당부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나왔다. 5극 3특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넘어서 5개 초광역권과 3개의 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국토를 재편하고, 지역중심으로 균형성장을 추진하겠다는 새정부의 국가 전략이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생존전략이라 하겠다. 정부가 대기업의 지방투자를 유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나 300조라는 투자 규모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렇지만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생리상 국가의 권유나 강요로 쉽게 투자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력 구하기 어려운 지방소재 산업단지에 투자하는 것은 특별한 매력이 없으면 어렵다. 수도권에 투자가 집중되었고 과밀화된 것도 인재 구하기와 유관한 때문이다. 대기업의 지방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선 과거처럼 단순히 인허가 협조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원스톱 행정서비스는 기본이고 지방정부가 투자기업의 비즈니스 파트너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수도권보다 유리한 물류비나 인프라 비용을 제시하는 등 기업 환경부터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기업의 지방투자는 국토균형 발전뿐 아니라 대기업의 새로운 성장거점 확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특히 권역별로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시기여서 대기업의 지방투자가 갖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정부의 독려든 아니든 대기업의 지방투자 약속이 나온 것은 고무적이다. 이를 계기로 지방정부는 대기업이 투자에 매력을 느낄 혁신적인 기업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26-02-05

TK 행정통합에 브레이크 건 장동혁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대구·경북, 대전·충남, 전남·광주 행정통합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재명 정부에서 내놓은 행정통합 방식은 선거공학적 졸속 방안”이라면서 “행정통합 TF를 만들어 합리적인 방안을 찾자”고 했다. 현재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인 3곳의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를 중단하라는 얘기로 들린다. 지난달 어렵게 경북도의회 동의 절차를 거쳐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한 대구·경북으로선 갑자기 행정통합에 제동을 건 장 대표에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장 대표의 이날 발언은 지역구(보령·서천)인 충남도의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4일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 ‘대전·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김태흠 충남도지사(국민의힘)는 “행정통합 특별법은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는 형태의 법안”이라고 비난했고, 최정 충남공무원노조위원장은 “행정 통합으로 인한 근무지 강제 이전, 인력 감축 가능성 등 공직 사회에 불안감이 많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는 행정통합 특별법이 대전·충남 통합단체장 후보로 거론되는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위한 ‘맞춤형 법안’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대전·충남과는 달리 TK 행정통합 특별법은 주민 대의기관인 시·도의회 동의 절차를 거쳐 국회에 발의됐다. 시·도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장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당장 10일부터 상임위 심사가 시작되는 3곳의 특별법 처리를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대구·경북에서는 여권이 TK특별법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여서 속이 부글 부글 끓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TK는 지역 주민 의사를 더 파악할 대목이 있다”고 했고,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TK 특별법은 합의 처리될지 국민의힘이 반대할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대표가 TK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해 원활하게 처리되도록 지원해주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고 있으니 혀를 찰 일이다.

2026-02-05

더 벌어진 양극화 사회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최대 난제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양극화 문제다. 중간계층이 줄고 상·하위 계층에 쏠리면서 소득, 고용, 교육 등의 기회가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이런 양극화 문제는 궁극적으로 빈부격차나 분배의 불평등을 초래해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경우 상위 10% 집단이 미국 소비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양극화 현상이 국가 정책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빠르게 진행됐다. IMF로 인한 실업과 고용불안이 만연하면서 고용없는 성장 속에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갈수록 깊어졌던 것이다. 최근 KB금융 연구소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가 2011년 전 보다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1%도 안되는 이들 부자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이 국내 전체 금융자산의 60%나 된다고 하니 우리 경제의 양극화도 심상치가 않다.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기울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양극화의 원인은 다양하다. 특히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주범이다. 서울로 인구와 산업이 쏠리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지방의 수십 배로 폭등했다. 서울과 지방간 양극화는 이제 손 쓸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최근 데이터처 발표에 의하면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중장년층은 집값이 오르면서 자산 가치가 더 커졌고, 그로 말미암아 집 없는 청년층과의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장담했다.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 문제의 해법이 나올지 주목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2-05

‘니파 바이러스’ 공포

2019년 시작돼 몇 년 동안 한국을 포함 전 세계를 공황과 공포에 빠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급박하게 만들어낸 코로나19 백신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사람이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괴이한 사회 분위기가 오래 지속됐다. 학자들은 이를 ‘현대의 흑사병’이라 불렀다. 그런데, 최근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니파 바이러스’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치사율이 훨씬 높은 니파 바이러스는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호흡기와 신경계에 치명적인 증상을 유발해 뇌염을 발생시키는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최고 75%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까지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았다. 감염되면 바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현재까지 니파 바이러스가 확인된 국가는 말레이시아와 인도,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등이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과일박쥐의 서식지라는 것. 의료계는 이 동물과의 접촉을 피하고, 먹이가 되는 과일의 오염 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니파 바이러스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감염된 환자와의 접촉을 피하고, 손 소독을 자주 하는 정도의 예방법만이 알려진 상태.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질병은 인간에게 패닉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의학계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동하는 중국 춘절에 니파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에 관광이 주요 산업인 동남아 국가들에선 방역을 강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같은 공포가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