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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포비아

등록일 2026-04-12 17:20 게재일 2026-04-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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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딸아이와의 사소한 말다툼은 아주 평범한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어른들께는 톡 말고 전화로 해야지.” 무심코 꺼낸 말이었는데, 딸은 곧바로 되물었다. “왜 꼭 전화여야 해?”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서로의 말이 엇갈리면서 대화는 금세 기 싸움처럼 변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 듣는 말을 알게 됐다. ‘콜 포비아(call phobia)’.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그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전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약속을 잡을 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할 때도,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늘 전화였다. 목소리의 떨림, 잠깐의 침묵, 말끝의 뉘앙스까지도 다 의미 있는 소통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딸에게 전화는 오히려 부담이라고 했다. 예고 없이 울리는 벨소리가 사적인 공간을 깨뜨리는 느낌이고, 바로 반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싫다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그 안에도 나름의 질서와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짧은 문장 하나, 이모티콘 하나에도 아이의 기분이 묻어 있었다. 답장이 늦어도 예전처럼 서운해하기보다 지금은 바쁜가 보다 하고 기다리는 법도 배우게 됐다. 전화처럼 즉각적이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호흡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딸이 말한 콜 포비아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감정,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식이었다. 전화는 예상하지 못한 반응과 감정을 바로 마주해야 하지만, 메시지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다듬고, 때로는 미룰 수도 있다. 그 차이가 아이에게는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전히 전화의 가치를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처럼 마음의 무게가 실린 순간에는, 여전히 목소리가 더 깊이 닿는다고 믿는다. 실제로 얼마 전, 딸에게 짧은 전화를 건 적이 있다. 별다른 말은 아니었지만, “괜찮냐”는 한마디에 아이가 잠시 말을 고르던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문자로는 느낄 수 없는 온기가 전해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예전처럼 방식을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상황에 따라, 그리고 서로의 마음에 따라 방식을 건너간다. 아이가 편안해하는 메시지로 시작해, 필요할 때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건다. 예전 같으면 설득하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함께 맞춰 가려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화 또는 메시지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가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전화가 더 익숙한 사람이고, 딸은 메시지가 더 편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조금씩 건너가 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방식은 다르더라도 관계는 이어진다.
 

그날의 작은 말다툼 덕분에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관계는 옳고 그름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깊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어른이 할 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한 걸음 건너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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