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공선사’라는 법명을 들어보셨는지요? 불가(佛家)에는 대사나 선사가 있지요. 대사란 말 그대로 “큰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교학(경전 연구), 수행, 포교 등 전반적으로 업적이 큰 인물에 종파와 관계없이 사용하지요. 대표적인 예가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이죠.
선사는 “선(禪·명상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선종(禪宗) 계통에서 깨달음을 중시하는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참선, 좌선 등 직접 체험을 통한 깨달음 강조주로 선종 계통에서 제자들에게 수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혜능선사, 지눌선사가 있지요. 위대한 스승 원효대사나 초의선사는 익히 아시겠지만, 지공선사는 아마 생소하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은밀하고도 영광스러운 법명은 제가 명명하여 저만 알고 있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신비로운 ‘지공선사’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잠시 우리네 술자리 풍경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단합의 상징인 건배사에도 시대의 결이 묻어납니다. 5·16 직후엔 투박하게 “재건합시다!”를 외쳤고, 요즘은 암호같은 삼행시가 대세지요. “변함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는 ‘변사또’,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라는 ‘개나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등 이 모든 수다를 한데 버무려 결국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하여!”라는 우렁찬 외침으로 밤은 깊어가지요.
자, 이제 제가 만든 지공선사(地公善士)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눈치 빠른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지하철 표를 공(空)짜로 선물받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만 65세라는 고개를 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자격이지요. 그런데 왜 하필 ‘선사’일까요? 스승 사(師) 자를 쓰기엔 제 삶이 그리 거창하지 않아, 그저 선비 사(士) 자를 빌려왔습니다. 평생을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노년의 품격을 기리고자 ‘착할 선(善)’ 자를 보탰지요.
청춘을 다 바쳐 일군 이 나라가 이제야 노병(老兵)의 노고를 알아보고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하며 건네는 따뜻한 예우표 같아 마음이 뭉클합니다. 덕분에 저도 오래전 이 영광스러운 지공선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법명을 얻고 보니, 인생길이 어느덧 황혼이 지는 마루턱에 서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제는 서서히 산을 내려가야 하는 하산(下山)의 시간이지요.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지만, 짐짓 모른 척 허허 웃어넘길 뿐입니다. 다만 침침해지는 눈과 어두워지는 귀, 예전 같지 않은 근력 앞에 자꾸만 마음이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얼마 전, 저의 ‘할망구’가 발바닥에 가시가 박혔다며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할망구’란 표현이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나, 본래 망구(望九)란 아흔(90세)까지 장수하기를 바란다는 귀한 뜻이 담겨 있지요. 저는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가시를 찾아보았지만, 희미한 형체만 보일 뿐 도무지 잡히질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둥지를 틀어 떠나고, 휑한 큰 집에 노부부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눈 밝은 구원 투수가 없더군요. 며칠을 씨름하다 결국 주말에 이웃 동네 딸아이를 찾아갔습니다. 딸애가 뾰족한 바늘로 몇 번 툭툭 건드리더니 단숨에 가시를 뽑아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젊음이 좋구나, 밝은 눈이 참으로 부럽구나’ 싶어 코끝이 찡했습니다.
지공선사가 되어 지하철을 마음껏 누비게 된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니 문득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귀야 좀 어두워지면 어떻겠습니까. 골치 아픈 세상사 안 들으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눈만은 부디 조금만 더 버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망구’ 발바닥에 박힌 가시라도 직접 뽑아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공선사의 혜택은 달콤하지만,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은 참으로 야속합니다. 오늘도 저는 공짜 지하철 표 한 장을 손에 쥐고, 노을 비치는 차창 밖을 보며 이 아름다운 하산길을 음미해 봅니다.
/방종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