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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시간이 스며 있는 산성을 찾아

등록일 2026-04-12 15:31 게재일 2026-04-1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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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진례토성과 양동산성, 마현산성 둘러보고
위태로운 시기 견뎌낸 선조들의 삶의 자취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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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생림면 무척산 산봉우리에 자리한 마현산성의 모습. 둘레가 약 600m에 이른다.

가락국 시대에 축조된 여러 산성이 오늘날까지 그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산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자연의 지세를 최대한 활용한 방어 유산이자,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삶의 흔적이다.

우리나라 산성의 기원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등장하는 강화도 삼랑성은 그 시원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2300여 년 전 단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성은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제천의 자취를 전한다.

따스한 봄 햇살이 내려앉은 날, 가락국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산성들을 찾아 나섰다. 성곽은 흙으로 쌓은 토성과 돌로 축조한 석성으로 나뉜다. 먼저 찾은 곳은 김해시 진례면의 진례토성이다.

수로왕이 쌓았다고 전해지며, ‘진례면지’에는 신월리·신안리·송정리를 감싸던 토성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산월마을 중심에 성벽 일부만 남아 있고, 주변이 밭으로 개간되어 보존이 절실해 보였다.

조상들은 ‘판축’ 기법으로 서로 다른 흙을 층층이 다져 성을 쌓았다. 무너져 드러난 흙층을 보며, 먼 곳에서 흙을 실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진례토성을 뒤로하고 양동산성으로 향했다.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해발 333m 정상부에 자리한 이곳은 테뫼식으로 축성된 석성이다. ‘가곡산성’ 또는 ‘내삼산성’이라 불리며, 둘레는 약 860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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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주촌면 양동리에 있는 양동산성은 경상남도 지정 기념물이다. 이곳에서는 삼한시대 토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동쪽과 남쪽 성벽 일부가 남아 있고,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삼한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삶터였음을 보여 준다.

양동산성에는 동·남·북 세 방향에 문터가 남아 있다. 줄이나 도르래로 여닫는 ‘현문식’ 구조는 신라의 특징이고, 문터 바깥 벽의 곡선은 백제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요소가 함께 드러나는 이 모습은 경남 지역에서도 드문 사례라 한다.

성 위에 오르자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가 한눈에 펼쳐졌다. 이곳에서 사방을 살피며 외적의 동태를 헤아렸을 사람들의 긴장감이 아득히 전해지는 듯했다. 바람은 땀을 식혀 주고, 눈앞에 열린 풍경은 산성이 지닌 자리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마현산성이었다.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무척산 서쪽 해발 215m의 독립 산봉우리에 자리한 이 산성 역시 수로왕이 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둘레는 약 600m이며, 고려시대의 보수 흔적과 조선 후기까지의 사용 흔적이 남아 있다.

‘김해읍지’에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번 답사에서 서쪽 능선 일대에 비교적 잘 남은 성벽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현산성은 가파른 지형에 맞춰 보조 성벽을 세워 2단으로 쌓았고, 자연 암반을 활용해 방어력을 높였다. 동·서·북 세 곳에 성문을 두었으며, 특히 북문은 내부가 곧장 드러나지 않도록 곡선 형태로 처리되어 있었다. 지형을 읽고 그에 맞춰 성을 쌓은 세심한 고려가 엿보인다.

마현고개는 예로부터 밀양과 김해를 잇는 관문이었다.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피해 피난처로 쓰였다는 전설은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산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위태로운 시대를 견디고 삶을 지켜 내려 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배어 있다.

가야 시대의 산성은 대부분 산지에 자리하며, 전시에는 방어의 전초기지로, 평시에는 행정과 통치의 중심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성벽의 흔적은 오래된 돌과 흙의 자취에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는 가야의 시간이 스며 있고, 그 시간을 지켜 낸 사람들의 삶이 함께 남아 있다. 

/김성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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