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대전 집에 계신데, 서울에 와 있다고 대전에 데려가 달라고 하셨다. 고모할머니가 조금 전까지도 계셨는데, 어디 갔느냐고도 하셨다. 과일을 사면서 아버지 드시기 좋은 것으로 사자고도 하셨다. 아버지는 3년 전에 세상 떠나셨건만.
두 주일 사이에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셨다. 언제까지 남의 집에 얹혀살아야 하느냐고 빨리 데려다 달라고도 하셨고, 아파트 12층에 내려가 전화해서 집을 잃어버렸다고, 데려다 달라고도 하셨다.
동생들 ‘압력’을 이기지 못해 이곳저곳 검색하고 전화를 해보니 6인 병실에 간병인 24시간 2교대가 200만 원이란다. 고민 끝에 요양 보호사를 파견해 주는 곳에 전화를 드려보니, 아직 어머니는 병원에 모실 상태라고 할 수 없고 정 그런 단계가 되면 집에서 요양보호사가 24시간 돌보는 쪽으로 가는 것이 환자 정서적으로나 자식들 ‘심리’ 면에서 낫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240만 원이라 하고, 24시간 요양보호사와 가정 전문 병원을 합쳐서 생각하면 그게 더 나은 선택 같기도 하다. 그래도 차마 마음을 정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대전 집에 계시면서도 대전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우성을 치신다. 하루에도 두 번씩 자동차를 타고 집에 가는 시늉을 하고, 집의 아버지 사진이며 오르간이며 아버지 환갑 때 어머니 스스로 쓰신 ‘白雲靑松’(백운청송) 액자도 가리키며 여기가 바로 집이라고 알려 드려도 ‘도로아미타불’이다.
혹시 드시는 약 때문일까? 챗지피티에게 어머니 약에 항우울제가 들어 있는데, 이게 혹시 착란 증세의 원인이 될 수 있느냐 묻는다. 아주 신중한 체 하면서도 챗지피티는 항콜린성(anticholinergic) 작용이 있는 약, 일부 삼환계 항우울제(TCA) 같은 것들은 착란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한다. 항콜린성이 뭐냐 하니, 어려워서 한숨이 나오는데, 일단 의사를 찾아가 부작용 여부도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토요일 일요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어머니 주민등록증 사진도 다시 만들고 모시고 산책 나가 붉은 꽃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고 빌린 차로 드라이브로 시켜드리고 하는 사이에 몸이 녹초가 된다. 이날 따라 KTX는 밤 열 시 반 넘어서까지 만석이다.
‘ITX 마음’을 타고 터덜터덜 서울로 향하는데 몸보다도 마음이 더 고단하다. 앞날은 막막하고, 자기를 잃어가시는 어머니가 한없이 가엾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홀연히 떠오른다. 나 또한 그 어렸을 적에 어디 ‘나’라는 걸 알고 살았었느냐는 것이다. 어머니가 혹여 ‘나’를 잃어버리며 사시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삶의 과정일 뿐 그것이 삶이 아닌 것은 아니리라. 삶을 시작할 때 ‘나’라는 걸 몰랐던 것처럼, 사물의 질서를 제멋대로 설정했던 것처럼 삶이 끝나갈 때도 아이처럼 그럴 수가 있고, 그것이 꼭 비극이나 슬픔은 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기차는 7분 연착으로 11시 반이 가까워서야 서울역에 닿았는데,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아직은 어머니를 내 힘으로, 함께, 돌보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