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다. 그 두 주 전이이었던가 석 주 전이었던가 이란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그때 이란 정권인지 혁명수비대의 소행인지 몰라도, 3만 명에서 4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 학살이 자행되었다.
그때 미국·이란 전쟁이 촉발된 것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 시작 단 하루 만에 이란 군대를 거의 완전히 무력화시켰는데, 이날 미국·이란 전쟁의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자 왜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느냐, 약소국가 자주권을 유린한 것이라는 일부 ‘여론’이 흘러다녔다. 세상을 보는, 다른 사고방식의 소산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치는 것을 두고, 또 그보다 먼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하마스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도 자못 거셌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할 수 없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한국의 일부 지식계는 일방적으로 팔레스파인 편을 든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유린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식인들의 선호는 오래되었다. 1980년대 전반기에 ‘제3세계연구’라는 게 두 권 나왔는데, 팔레스타인을 한국과 같은 제3세계로 보는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지금 이 제3세계론은 어떻게 되었나? 적어도 우리 학생들에게 한국은 제3세계냐고 물어보면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는다. 제3세계론은 ‘정태론’적이다. 제국과 식민지·신식민지의 중심·주변 관계가 불변한다고 보는 종속이론에 결부된다. 세계가 이렇듯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사 전개라는 것도 없어야 할 것이다.
이란이 약소국이냐 했을 때, 나는 쿠르드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란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아제리인들을 생각한다. 한국이 1945년 해방되었을 때, 소련과 이란 사이에 아제르바이잔 사태가 있ᅌᅥᆻ다. 이란은 유엔에 강대국 소련이 이란의 영토를 탐낸다고 호소했다. 페르시아적 사고다. 페르시아 제국은 많은 약소민족을 자기 내부에 거느렸다. 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 이란에게는 탐탁치 않았겠다.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이란의 신정일치 이념만큼이나 위험해 보인다. 그들이 과연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있나? 해방을 위한 통치고 신의 섭리라지만 극도로 무자비하기는 이란 신정일치 정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이란 국민의 피맺힌 자유의 요구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까? 왜 이스라엘의 무자비함만이 보이고 가자 정권의 위험성을 보이지 않을까?
베르트랑 웨스트팔의 ‘지리비평’을 읽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다. 담론은 담론 자체의 내적 요구 때문에 세계를 절대로 그대로 반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뻔한 말 같은데, 곱씹을수록 무서운 말이었다.
어떤 담론에 길들여지면 다른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자꾸 공부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면 그른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확신하게 된다. 그러면 마치 자신이 진리를 말하는 양 이스라엘은 나쁘다, 미국은 나쁘다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꾸 회의하게 된다. 아무래도 데카르트가, 파스칼이 좋아 보이나 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