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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17층 누른 치매 할머니, 어떡할래?”⋯PPT 던져버린 교수님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6-05-18 17:02 게재일 2026-05-1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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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심규진 교수, 전면 프로젝트 수업 전환⋯“융합적 사고력이 미래 인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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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는 심규진 한동대 교수가 연구실에서 작업 도중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단정민기자

“지식은 AI가 더 잘 전달합니다. 이제 교수의 역할은 현장의 문제를 발굴하고 직접 부딪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강의실에서 PPT가 사라졌다. 한동대학교 심규진 교수 얘기다.

챗GPT가 논문을 요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0.1초. 심 교수는 교수가 미리 준비된 슬라이드를 읽어 내려가는 ‘지식 딜리버리’는 이미 생명력을 잃었다고 단언한다.

“1년 반 전의 핫했던 내용을 그대로 쓰는 건 의미가 없어요. 지금 시대에 맞는 소재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죠”

그의 목소리에는 지식 전달에만 안주하는 대학은 결국 도태될 것이라는 절박한 진단이 담겨 있다.

이러한 위기감은 수업 방식의 파괴적 혁신으로 이어졌다.

심 교수의 강의실은 이제 정교하게 설계된 ‘생존 현장’이다. 원칙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AI에게 물어봐서 답을 얻을 수 있는 숙제는 아예 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학생들을 날것의 문제 앞에 세운다.

“70대 치매 할머니가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17층 버튼을 누른다면 어떤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까?”

아파트인 줄 알고 집 층수를 누른 치매 노인의 실제 사례다. 학생들은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 실제 이용자를 만나고 현장에서 발로 뛰며 서비스의 실현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 평가는 오로지 교수와 마주 앉아 사고의 근육을 증명하는 ‘대면 구술’로만 이뤄진다.

그가 이토록 현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이론에만 머무는 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며 최근 AI 분야 박사 과정에 다시 뛰어들어 두 번째 학위를 따냈을 만큼 이 바닥의 생리를 깊게 파고들었다.

전문가로서 그가 정의하는 AI는 ‘함께 일하고 싶지만 때론 무서운 동료’다.

특히 출처까지 지어내며 그럴싸한 거짓말을 하는 ‘할루시네이션(환각)’은 그가 가장 경계하는 대목이다. 사고하기 전에 AI부터 켜는 다음 세대가 스스로 질문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여기서 나온다.

이에 대한 심 교수의 해답은 AI에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철저히 도구로 부리는 ‘소버린 AI(자주적 AI)’ 전략이다.

하지만 기술적 대응보다 더 중요한 해답으로 그가 꺼내든 키워드는 결국 ‘윤리’와 ‘인간의 양심’이다. AI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실제로 한동대는 내년부터 신입생 전원에게 ‘AI와 윤리’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친다. 시험지만 나눠주고 교수가 퇴실하는 ‘무감독 시험(아너 코드)’의 정신을 AI 시대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다.

심 교수는 강조한다. “AI는 인간처럼 거짓말을 하지만, 인간은 양심을 지킬 줄 압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수록 정직과 전인적 교육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더 빛날 수밖에 없다. 산재한 정보를 엮어 지식의 프레임을 새로 짜는 융합적 사고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정직함. 심 교수는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낼 인재의 진짜 척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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