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포스텍 미래지성아카데미 연사로 나서 “AI 시대,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
“AI가 모든 것을 최적화하는 시대,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입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14일 포항 포스코 국제관을 찾았다. 포스텍 미래지성아카데미 ‘인문사회 마스터클래스’ 연사로 나선 그는 ‘Beyond Intelligence: What Matters?(지능 너머: 무엇이 중요한가)’를 주제로, 공학도에서 미디어아트의 새 지평을 열어온 자신의 지적 여정을 반추하며 디지털 시대 우리가 지켜내야 할 본질적 가치를 역설했다.
열띤 강연의 여운은 질의응답 시간으로 이어졌다. 객석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청중은 강연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이날 오간 주요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AI가 예술적 표현까지 모방하는 시대, 인간만이 남길 수 있는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마음’이다. 마음은 AI가 결코 대체하지 못할 영역이다. AI가 지능과 기술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완벽하게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고유한 마음과 그 울림은 대신할 수 없다. 효율성만을 따지는 기술 논리 너머에 있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공(공학·경제학)과 전혀 다른 예술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서울대 공대와 경제학(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학 등)을 공부하며 내 머릿속은 온통 ‘최적화’와 ‘효율성’의 문법뿐이었다. 당시에는 일반적인 직업적 궤도와는 다른 길을 걷는 예술가들의 삶이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나를 바꾼 것은 예상치 못한 삶의 시련이었다. 가정의 변화라는 큰 충격 앞에서 ‘왜 사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마주했고, 3년간 철학책에 침잠했다. 이러한 호기심과 질문들이 결국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로 나를 이끌었고, 오늘의 저를 있게 한 토대가 되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예술이 단순히 무엇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귀중한 창의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궁금하다.
△특별한 기준이나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일단 가보는 성격이다. 아트센터 나비를 시작할 때도 미디어아트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무대포(막무가내)’ 정신으로 가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요즘은 내가 그동안 무관심했던 ‘돈’의 본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내 안의 질문을 따라가는 직관이 가장 큰 판단 기준이다. 앞으로도 숲이나 책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가며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예술적 표현을 하다 보면 내 안의 무언가를 가감 없이 꺼내놓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칫 ‘천박함’으로 비쳐질까 봐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과 그저 ‘천박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 안의 본모습이 천박하게 여겨질까 봐 창작이 망설여진다.
△그 고민을 하시는 분은 아마 젊은 예술가이신 것 같다. 사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양면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속되고 거칠며(쌍스러우며), 또 어떤 면에서는 한없이 고상한 존재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보면 깨닫게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우리 모두가 그런 면을 감추고 살 뿐이구나’라는 사실을. ‘날것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나만 천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면의 모순을 정직하게 마주할 때 비로소 가식 없는 진짜 예술이 시작된다. 그러니 그 경계에서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라. 그 정직함이 바로 예술의 생명력이다.
-일상에서 즐기는 아날로그적 취미가 있다면.
△팬데믹 시절 뒷산의 소나무를 잠식하는 칡넝쿨이 미워서 칡을 캐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넘게 칡을 캤는데, 놀랍게도 불면증이 사라지고 건강이 회복되었다. 이유를 찾아보니 자연 산책이 주의력과 실행능력을 높인다는 실험 결과가 있더라. 단순히 이미지를 보거나 공원을 걷는 것보다 ‘야생의 숲’을 직접 체험할 때 주의력이 가장 크게 향상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자연의 ‘냄새’가 주는 치유의 힘에 매료되어 이를 ‘나비 에디션 굿즈’로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다. 칡넝쿨을 말아 나무에 걸어둔 것을 ‘교수형’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런 원초적인 감각이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내게 새로운 창의성을 준다.
-후배들과 자녀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아버지는 어릴 때 저와 많이 놀아주셨지만 평소 말씀은 참 없으셨던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평생 딱 하나 당부하신 말씀이 ‘비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씀이 늘 마음속 깊이 남아 지금도 비겁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사실 현실에서 이를 지키며 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비겁함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다. 후배들과 자녀들이 자기 영혼을 지키며 정직하게 마주하는 삶을 살길 응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