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 ‘추사의 그림 수업’, 7월 5일 전시 종료 전 ‘불이선란도’ 등 추사의 대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상설전- 김홍도· 장승업 등 조선 거장들의 작품으로 만나는 여름의 정취
조선 문인화의 극치로 꼽히는 추사 김정희의 말년 걸작 ‘불이선란도’(보물)가 대구에서 처음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대구간송미술관(관장 전인건)은 기획전 ‘추사의 그림 수업’과 상설전시를 전면 개편하고, 시대를 호령한 거장들의 작품으로 채워진 새로운 라인업을 공개했다. 이번 개편은 거장의 내밀한 철학을 마주하는 기획전과 조선시대 선조들의 피서 지혜를 담은 상설전이 어우러져 한여름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과 청량함을 동시에 선사할 예정이다.
△기획전··· 70대 추사의 철학, 묵란의 정점 ‘불이선란도’ 최초 공개
그동안 ‘세한도’(국보), ‘난맹첩’(보물)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며 주목받은 기획전 ‘추사의 그림 수업’이 이번 개편의 하이라이트인 ‘불이선란도’를 6월 2일부터 7월 5일까지 공개한다. 추사가 70대 말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최소한의 형상만으로 문인의 높은 이상을 구현해 내 문인화의 궁극적 경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년 시절의 교본인 ‘난맹첩’이 정교한 묵란의 정석을 보여준다면, ‘불이선란도’는 노년의 깨달음과 우주적 철학이 응축된 추사의 마지막 난 그림으로 추정된다. 특히 학계와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난맹첩’과 ‘불이선란도’를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추사 묵란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한층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야간 연계 프로그램 ‘밤의 미술관’도 마련된다. 오는 24일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정규 관람 종료 후 전시 기획자의 깊이 있는 강연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참가 신청은 6월 12일부터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상설전··· 김홍도·장승업 등 거장 26점이 그려낸 조선의 ‘피서법’
상설전시실은 지난달 28일부터 회화 중심으로 옷을 갈아입고 선조들의 여름 향유 지혜가 담긴 작품 26점을 새롭게 펼쳐 보이고 있다.
전시의 첫 축을 담당하는 회화 섹션에서는 심사정과 이인상, 김득신, 장승업, 안중식 등 조선 후기부터 말기를 호령한 거장들의 여름 풍경이 펼쳐진다. 청량한 산수와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며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했던 선조들의 일상이 생생하다. 윤두서·이경윤이 그린 고기잡이의 즐거움, 심사정·김양기가 포착한 여름날 모임의 풍경 등 진솔한 삶의 단면들이 화폭 위에 살아 숨 쉰다.
더위를 식히는 도구를 넘어 선조들의 미의식을 담았던 부채 그림(선면화) 10점도 눈길을 끈다. 단원 김홍도의 ‘기려원유’는 나귀 탄 노인과 버드나무, 물새가 어우러진 한적한 강변의 정취를 고스란히 전한다. 이외에도 심사정, 이인문, 신위, 조희룡 등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작은 부채 위에 펼쳐낸 산수와 사군자는 더위마저 멋으로 승화시킨 옛 선인들의 풍류를 보여준다.
화폭마다 들어찬 여름의 생명력도 가득하다. 선조의 둘째 딸 정혜옹주가 비단에 색실로 수놓은 연꽃과 원앙의 맑은 자태를 비롯해, ‘나비 그림의 명수’ 이경승이 부채 위에 묘사한 풀밭의 나비들이 생동감을 더한다. 왕우중의 탐스러운 해당화, 한용간·장한종이 섬세한 필치로 포착한 고목 위 매미 그림은 자연이 뿜어내는 여름의 숨결을 그대로 전한다.
생명의 생동감도 가득하다. 선조의 둘째 딸 정혜옹주가 비단에 색실로 수놓은 연꽃과 원앙, ‘나비 그림의 명수’ 이경승이 부채에 그린 세 마리 나비, 왕우중의 탐스러운 해당화, 한용간과 장한종이 묘사한 고목 위 매미 등 여름의 생명력이 섬세하게 묘사됐다.
△명품전···한여름에 만나는 차가운 눈발, 유덕장의 ‘설죽’
이번 상설전의 숨은 백미는 명품전시실(전시실2)에 단독으로 걸린 수운 유덕장의 ‘설죽’이다. 하얀 눈발이 내려앉은 대나무를 그린 이 작품은 놀랍게도 겨울이 아닌 한여름에 그려졌다. 유덕장이 그림으로나마 타인의 더위를 식혀주고자 했던 따뜻한 배려가 담긴 작품이다. 대형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한기는 관람객들을 한순간에 시원한 대나무 숲으로 이끌며 무더위를 잊게 만든다.
대구간송미술관 관계자는 “전시 종료를 한 달여 앞두고 대구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공개되는 ‘불이선란도’의 관람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며 “새롭게 단장한 상설전에서 옛 선인들이 계절을 즐기던 지혜와 풍류를 배우고 일상의 더위를 시원하게 잊어보시길 권한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