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문화

베르테르와 닮았고 맥베스를 반추케 하는…

엘리자베스 라밴의 소설 `비극 숙제`(문학동네)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다가와 가슴 아픈 첫사랑과 어리숙한 시절의 실수, 그로 인해 피하지 못한 비극에 대해 속삭인다.엘리자베스 라밴은 이 소설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 시도하면서 거기에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들에서 받은 영감을 더하고 있다.주인공 팀 맥베스는 자기 확신 없이 스스로의 “비극적 결함”에 이끌리며 비극적 운명으로 내달리게 되는 베르테르와 닮아 있고, 그의 이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맥베스`에서 따온 것이다.주인공 팀 맥베스와 덩컨 미드가 “그날”의 비밀이 담긴 녹음 CD를 매개로 소통하게 되면서 두 인물의 이야기가 각자의 시점에서 교차되고, 거기에 셰익스피어와 괴테의 고전 속 비극의 원형이 어우러져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비극 숙제`는 팀 맥베스와 덩컨 미드라는 두 명의 소년을 앞에 내세운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팀이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의 일과 버네사와의 추억을 고통스럽게 복기하며 녹음해간 1인칭 시점의 CD 속 이야기와 그 CD를 들으며 비밀을 파헤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떨쳐나가는,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덩컨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흥미롭게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액자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진짜 비극의 주인공인 팀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속 맥베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인물이고, 덩컨 미드는`맥베스`의 덩컨 왕처럼 예민하고 섬세하다. 팀과 버네사의 첫 만남과 이후의 삼각관계는 구성에 있어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얼마간 빚을 지고 있다. 자신감의 결여, 의심, 죄책감 같은 일상적이고도 `비극적인 결함´ 탓에 작은 실수를 반복하다가 끝내 운명적으로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들에게서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들 속 비극적 인물들이 언뜻언뜻 비칠 때 그것을 포착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8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

소설가 김이설(41)씨는 소외되고 결여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 만한 곳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작가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열세 살`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은 김 작가는 그동안 첫 장편 `나쁜 피`와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중편 `선화` 등을 통해 사회의 최하층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생존의 몸부림을 처절하게 그리곤 했다.엄마와 노숙 생활을 하다가 아비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낳게 되는 소녀(`열세 살`), 외삼촌의 폭행과 주변 남성들의 성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된 삶을 살다 죽은 지적장애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슴 속 상처로 안고 사는 30대 중반 노처녀(`나쁜 피`), 빚 때문에 가족과 흩어져 대리모가 된 여대생 등 남루한 현실과 그 속에서 발버둥치면서 소진해 가는 사람들(`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화염상모반이라는 선천성 병으로 얼굴에 짙은 얼룩으로 생을 무겁게 누르는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처녀(`선화`)….작품마다 불편하고 어두운 사회문제를 파고들며 차세대 여성 소설가로 주목받으면서 동세대 작가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소설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2010년에 펴낸 첫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후 꼬박 6년 만에 펴낸 두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문학동네)가 출간됐다.“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집념 혹은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소설가 은희경)라는 평을 받으며 제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부고`와 201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빈집`을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을 통해 김이설은 폭력이 우글거리는 밑바닥 삶에 여전히 현미경을 들이대 그 세계의 진상을 선명히 감각하게 하면서 그 세계에서 한 발 떨어진 채 지켜온 우리의 평온함이라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되묻는다.그같은 벗어날 길 없는 세계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삶도 과연 지켜나갈 만한 것인가, 라는 둔중하고도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오늘처럼 고요히`라는 제목은 수록된 소설들의 전체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체득한 인물들이 내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이 된다.소설집 가장 처음에 자리한 `미끼`는 김이설 스스로 “그동안 보여준 소설의 정점 같은, 더이상 비슷한 작품을 쓸 수 없도록 여한 없이 쏟아부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폭력이 대물림되는 과정을 야성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아버지가 창고에 가둬놓고 물고기를 낚아채듯 함부로 짓이기던 여자를`엄마`라 부르던 `나`가 어느 순간 또다른 여자를 끌고 와 아버지보다 더 무자비한 방식으로 여자를 창고에 던져넣을 때, 우리는 폭력의 연쇄 속에서 증폭되는 것은 오로지 더 큰 폭력밖에 없다는 선뜩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이는 악몽보다 더 지독한 현실을 그려낸 `흉몽`을 통해서도 차갑게 전해져온다. 남편의 실직 후 불어난 빚을 갚고자 모텔에서 밤낮없이 청소 일을 하며 버텨가던 `나`에게 어느 날 남편이 찾아온다. 구취를 풍기는 돈가방 하나를 들고서. 출처가 미심쩍은 돈가방도, 횡설수설하는 남편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참담한 삶이나마 근근이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결말일 것이다. 그래야만 적당한 불편함을 잠시 느끼고 우리 역시 원래의 세계로 안전하게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이 작품들을 따라가다보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서로를 옭아매는 것 외에 서로에게 어떤 의미도 돼주지 못한다는 작가의 냉혹한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성폭행-친모의 죽음-애인과의 이별-중절 수술 등 끊임없이 바닥으로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나`를 위안해주는 사람은 아빠도 오빠도 아닌,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의붓엄마이며(`부고`),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왔다는 그 자부심 하나로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나`가 잠깐이나마 웃음짓는 순간은 동료들과 함께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이고(`한파 특보`), 가족 중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한 `나`가 연약하나마 어떤 희미한 연결감을 느끼는 대상은 국적도 다르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민호 엄마다(`비밀들`). 우리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가족 아닌 타인이라는 것은 엄정한 진단이지만 동시에 폭력이 휩쓸고 난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가져다준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8

하면될까? 젊음은 아프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로 한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31)의 데뷔작 `희망 난민`(민음사)이 출간됐다.이 책은 저자가 사회학을 선택한 이래 줄곧 천착해 온`젊은이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첫 결실이다. 그는 도쿄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연구물을 바탕으로`희망 난민`을 세상에 내놓았고, 주요 언론은 물론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희망 난민`이 화제에 오른 건 국제 NGO 단체 피스 보트(세계 평화 실현하는 세계 일주 크루즈)를 통해 현대 일본의 젊은이 문제를 절묘하게 규명해 냈기 때문이다.`희망 난민`이 출간될 당시만 해도 젊은이 연구는 학력, 노동, 범죄, 서브컬처 등의 문제와 얽혀 이뤄져 왔을 뿐 세계 평화나 환경 보호를 부르짖는 NGO 단체 등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젊은이는 사회 변혁의 주체로 받아들여져 왔고, 자기 찾기를 위한 방황은 당연한 미덕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저자는 근대 이후 경제 성장이 멈춰 선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쏟아지는 막중한 기대에 위화감을 느낀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의 기로에서 외딴 섬으로 변해 가는 젊은이들을 위로해 주는 돌파구로서 자주 거론되는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 운동 커뮤니티. 저자는 이런 것들이 오늘날 `젊은이 문제(빈곤과 고독)`를 해소해 줄 만병통치약처럼 거론되는 사회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희망 고문을 재생산하고 꿈만 좇게 하는 공동체가 노동 시장의 변두리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혜택을 줄 수 있을까? 피스 보트가 제공하는 세계 여행과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구호는, 현재 젊은이들의 목을 조이는 빈곤과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졸업, 취직, 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인생 경로에서 제 기능을 상실한 통과 의례와 자아성찰의 과정을 되짚어 보며, 오늘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공동체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한 사회의 축소판이자 더 나은 미래를 요구하는 피스 보트 커뮤니티에서 114일 동안 집요하게 파고든 현장 조사 끝에 저자가 마주한 진실을 적었다.오늘날 피스 보트와 같은 사회 운동 공동체는 물론, 극우 단체나 사이비 종교 단체마저도 `희망 난민`을 위로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회 구조 자체가 젊은이를 자립한 존재로 이끌 수 없다면 자기 계발을 강요하는 담론과 그럴싸한 외양을 지닌 `새로운 공동체`는 사회와 개인을 개선할 수 없다. 그곳은 단지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승인 욕구만 어루만질 뿐, 미래의 빈곤과 냉혹한 현실까지 껴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

2016-04-08

만주와 한국을 잇는 계보

1960년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을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부상하게 한 급속한 산업화, 건설과 정보 강국을 견인한 속도 추구, 나아가 개발 체제에 대한 향수가 일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는 오늘날의 한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대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1960년대 한국 사회를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을 제시하는 책`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만주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석정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가 1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로서, 한국의`재건 체제`혹은 불도저식 증산, 안보 체제의 원류를 만주국 체제(1932~45)에서 찾는다.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돼 있는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시공간이 바로 1930~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저자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국토개발, 반공대회, 대량 전단 살포, 표어 제작, 주민 점호 등은 모두 만주국 시대에 행해진 것이라고 말한다.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된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시공간은 1930~19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1장은 1930년대 부산에서 시작해, 만주행 엑소더스의 출발지인 영남 지역을 거쳐 만주 펑톈 등지로 갔다가 해방 후 귀환하는 기행 형식을 통해 재건 체제 형성의 역사를 추적한다.2장에서는 만주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던 부산을 중심으로 식민주의가 초래한 `확산`에 접근한다. 조선인의 만주 이주와 귀환, 조선과 만주의 관계, 조선인의 지위 등을 통해 1960년대 한국의 재건 체제에 이르는 개척의 흐름을 추적한다. 3장은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계보에서 만주국이 차지하는 위치, 만주국을 소환한 배경인 냉전과 한일 수교 등을 짚어보고 한국 발전국가의 역사적 맥락을 논의한다. 4장은 부정적 시각 일변도의 파시즘을 분해하고 파시즘과 근대의 관계를 살핀 후 생산과 안보에 주력한 한국판 국방국가의 형성을 살펴본다.5장은 온 국토를 뚫고 메우는 직선적 건설, 속도에 매몰된 건설 시대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6장은 신체를 통한 재건 체제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신체가 어떻게 제국, 민족, 냉전 경쟁에 헌신하게 되고 재건 체제를 형성했는지 논한다. 7장은 노래, 춤, 영화 등 예술 세계에서의 남북 대결, 만주국에서 비롯된 예술 세계를 추적한다. 8장은 결론으로서 재건 체제 형성을 되짚어보고, 만주 모던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생각해본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8

4월엔 삼국유사도 좋아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이기성)은 올해 `4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글쓰는 여자의 공간`(타이나 슐리·남기철·이봄) 등 10종과`4월 청소년 권장도서`로`삼국유사 어디까지 읽어봤니?`(이강엽 글·김이랑 그림·나무를심는사람들) 등 9종을 선정 발표했다.출판진흥원은 좋은 신간도서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좋은책선정위원회를 통해 문학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일반, 유아아동 분야의 책을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과 `청소년 권장도서`로 나눠 선정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진흥원 홈페이지(www.kpipa.or.kr)에서 볼 수 있다. 4월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다.□ 4월의 읽을 만한 책`4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는 35명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탄생시킨 그 은밀한 공간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글쓰는 여자의 공간`(사진·타이나 슐리·남기철·이봄), 농사 현장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우리 농기구들 안에 깃든 가치를 들려주며 우리 선조의 지혜를 엿보는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박형진·열화당), 각종 브랜드명을 비롯해 익숙한 단어들을 따라가며 세계 문화를 배우는`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이재명, 정문훈·미래의창) 등 10종이 선정됐다.□ 4월 청소년 권장도서`4월 청소년 권장도서`로는 삼국유사 원전에서 초중고등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주요 이야기들을 열 가지 주제로 나누어 들려주는 `삼국유사 어디까지 읽어 봤니?`(사진·이강엽 글·김이랑 그림·나무를심는사람들), 청소년들이 문자의 기원과 가치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10대에게 권하는 문자 이야기`(연세대 인문학연구원 HK문자연구사업단·글담출판),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아가는 우리 신화를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한`우리 신화 여행`(정해원 글·김종민 그림·우리교육) 등 9종이 선정됐다./윤희정기자

2016-04-01

어느날…예기치 못한 구덩이에 빠지다

편혜영의 네번째 장편소설 `홀(The Hole·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지난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편혜영은 빼어난 외모와 함께 매년 작품을 펴내는 성실성으로 유명한 작가다.밀도 높은 서사와 긴밀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선의 법칙` 등의 작품을 펴낸 그는 이효석문학상을 시작으로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연이어 거머쥐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작년 발표한 장편`선의 법칙` 이후 1년 만에 다시 펴낸 `홀`은 문예지`작가세계`에 발표했던 단편`식물 애호`에 살을 붙여 만들었다.소설은 느닷없는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진 오기의 삶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 장면 사이사이에 내면 심리의 층을 정밀하게 쌓아 올렸다. 또한 모호한 관계의 갈등을 치밀하게 엮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벌어지는 일들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 교차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일면이 서로 단단히 연결된 문장들로 기록됐다.특별한 일 없이 흐르던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과 고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편혜영은 그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를 당긴다. 이 책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 이 사고로 오기는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돼버린다. 의사의 말대로 `의지`가 있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상태에 처한 셈이다.“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는 오기의 독백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오기의 일상을 한순간 뒤흔든다.이 책 대부분의 사건과 이야기는 타운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오기 부부의 집에서 벌어진다. 정원을 갖춘 이 집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오기와 두 여자 사이의 관계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첫번째로 집은 사고 이전 오기와 아내 사이에 아무런 문제없던 시절 자유롭게 둘의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었다. 그들의 미래에 어떠한 균열도 예측할 수 없으리라는 믿음 아래 두 사람은 행복과 희망을 그려나갔다. 무리한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서서히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는 오기 부부에게는 그 정도 부담감은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이 공간이 갖는 이미지도 서서히 달라진다. 영국식 정원을 만들겠다며 정원 만들기에만 몰두하는 아내의 변화로 인해 정원은 곧 `아내의 공간`이 돼버리고 집이라는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오기의 사고 이후에는 완전히 제 역할을 탈바꿈한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오기에게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집은 마지막에 이르러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자 오히려 오기를 가둬버리는 공간으로 폐쇄적이고 황폐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아내와 평생 사용할 거라고 믿고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이튼알렌의 장미목 침대”와 “티크 책상”은 불구의 몸이 된 오기에게는 짐짝 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덩굴식물은 과거 “덩굴식물로 담벼락을 뒤덮지 말라”는 오기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 악착 같은 본성을 자랑하며 오기의 창을 잠식해오기 시작한다. 사실상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오기가 유일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로였던 창을 말이다. 작가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며 공간의 이미지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치밀하게 드러낸다.크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에의 불안과 공포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오기를 조여온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지난날의 삶이 덮쳐오면서 읽는 이들도 함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소설은 오기가 집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목처럼 걷잡을 수 없는`홀`에 빠진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1

현재의 우리와 닿아있는 도시의 역사

오늘 우리에게 `서울`은 무엇일까.`서울의 인문학: 도시를 읽는 12가지 시선`(창비)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인문학적 깊이를 더한다. 문학, 역사학, 사회학, 건축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들여다본 서울은 여러 겹의 시간과 공간을 품은 도시이자, 갖가지 욕망으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도시이다. 광화문, 남산, 종로, 홍대, 강남 등 서울의 여러 공간이 지닌 의미의 변화와 함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탐색하는 이 책은, 겉으로 보이는 풍경과 수치화된 자료 아래 감추어진 서울의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서울의 현재를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며, 이를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현재를 성찰하게 한다.`서울의 인문학`을 구성하는 12가지 시선은 서울의 특정한 장소 또는 특정한 현상으로부터 서울이라는 도시, 나아가 우리 사회의 현재에 대한 탐구와 성찰로 이어진다. 공간에 새겨진 정치사회적 기억을 발굴하고, 공간을 점유하는 각 세대의 삶의 양상을 탐구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인간의 욕망을 성찰하고, 나와 타자를 구별짓는 시선을 반성하는 이 논의들은 공간에 대한 탐구가 결국 우리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는 일과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류보선의 `광장의 꿈, 혹은 권력의 광장에서 대화의 광장으로`는 서울의 대표적인 광장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다룬다. 이들 두 광장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사회정치적 관계가 응축되어 드러나는 공간이었으며,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우리 사회의 상징적인 장소로 부상했다. 하지만 최근의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은 애도와 재생이 아닌 대립과 갈등의 공간으로 전락해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밀실`과 `광장`이 변증법적으로 지양되는 광장, `멈추어 서서 대화하는 곳`으로서의 광장이 필요함을 역설한다.염복규의 `서울 남촌, 100년의 역사를 걷는다`는 최근 북촌과 서촌이 문화적으로 부상하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이 덜한`남촌`을 중심으로 공간에 남아 있는 역사적 기억과 현재의 모습을 살핀다. 일제강점기`한적한 북촌` 대 `북적이는 남촌`의 대비에서 시작해 일제시기 일본인의 정착지이자 식민지배의 표상이었던 남촌에 새겨진 100년의 역사를 찾으며 그 현재적 의미를 읽어내는 이 글은 상처와 환희, 굴욕과 영광이 어우러진 남촌의 역사를 어떻게 마주하고 남촌의 장소성을 현재에 어떻게 되살려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조연정의 `이 멋진 도시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는 노량진과 고시원으로 상징되는 청년세대의 `유예된 삶`의 모습으로부터 우리 사회 청년 세대가 직면한 빈곤과 절망의 현실을 논의하며, 최근 젊은 세대의 소설을 통해 서울로부터 `거절`당한 이들이 현실에 대한 체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정조를 바탕으로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상상하고 소유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읽어낸다.정수진의 `청계천, 서울의 빛나는 신전`은 청계천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이어진 서울의 공간 디자인을 둘러싼 `서울의 꿈`, 혹은 `권력에의 의지`를 해부한다. 모더니티를 향한 꿈이 빚어낸 청계천 복개공사와 기능적 도시계획은 그 이면에 좁은 뒷골목으로 이루어진 모더니티의 그림자를 낳았음을 이야기 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1

우리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인가?

“헤세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찾는 여정이 삶의 공부라고 말한다.`안티고네`는 인간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들, 이것들을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공부를 통해 실천했다. 공부는 읽기와 글쓰기를 넘어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4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여행서`내가 사랑한 유럽`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여울(40)이 인문 에세이집 `공부할 권리`(민음사)를 펴냈다.정여울은 `공부할 권리`에서 공부를 “과거와 현재의 내 문제를 깨닫고, 미래의 내 삶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 인생 항로에서 배움을 꼭 붙들고 있어야 품위 있는 삶을 쟁취할 수 있고, 이는 모두에게 중요한 권리라는 것.`공부할 권리`는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리어 왕`에서`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고 있다.정여울은 이번 책이`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존엄을 지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는 삶의 작은 가치들을 창조의 힘으로 꽃피우려면 공부할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그는 인간의 고독할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 지그문트 바우만의`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칼 융의`원형과 무의식`, 아스트리드 리드그렌의 동화 `라스무스와 방랑자`를 끌어들인다. 문학, 철학, 미학, 문화비평 등을 넘나드는 그의 방대한 독서편력이 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시인 네루다의 질문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책은`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자의 분투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1부`인간의 조건`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처음부터 멋진 영웅이라기보다는 점점 성장하는 영웅의 내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점과 신데렐라는 남들이 아무리 자신을 초라하게 볼지라도 자신의 위대함을 끝내 믿는 인간의 신비를 증언한다고 쓰고 있다.2부`창조의 불꽃`에서는“외적인 성장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는`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잠시 트위터와 카톡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는 진정한 고독을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3부`인생의 품격`에서는“자기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것이 반드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임을 잊지 마라”고 말한 새뮤얼 존슨의 교훈을 전하고 4부`마음의 확장`에서는 그리스의 서사시`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분노를 침착하게 통제하고 전략적으로 이용해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오디세우스의 놀라운 이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를 파괴시키는 에너지로서의 분노`가 아니라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분노,`정의로운 분노`에 대한 공감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5부`가치 있는 삶`은 영국 대표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첫 소설`출항`을 출간하는 데 7년이나 걸렸을 만큼 느린 글쓰기에서 진정한 창작의 자유가 올 수 있었고 더 많은 돈, 더 큰 집, 더 멋진 스위트홈을 이루는 것이 현대인의 이상이 되었지만, 그것을 꿈꾸는 이상 자체가`커다란 감옥`일 수 있다는 점을 마르크스는 일찍이 간파했다고 전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25

“감정의 근대로의 이행 프랑스혁명을 낳았다”

최근“감정 연구에서 혁명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감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동안 감정은 이성 및 의지와 대립되는 육체적이고 주관적인 것, 공적·학문적 영역에서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얼마 전 한국에서도 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이 번역됐고, 여러 학문 분야에서 감정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감정사회학, 감정사 등 분과학문 이름 앞에 `감정`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역사학 분야에서 감정과 역사의 관계를 다루는 주목할 만한 저작이 출간됐다. 미국 듀크 대학의 역사학 및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인 윌리엄M. 레디는 `감정의 항해`(문학과지성사)에서 감정이`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진행돼 온 최근의 감정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뒤, 감정사를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틀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에 입각해 `감상주의`가 수백 배, 수천 배 증폭됐던 프랑스혁명 시기를 풍부한 역사적 사료를 활용해 흥미롭게 분석한다.윌리엄 레디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심리학·인류학자·역사 및 문예비평가들의 감정 연구가들의 감정에 대한 연구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 틀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재미있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제1부 `감정이란 무엇인가`는 인지 심리학·인류학의 감정에 대한 접근, 감정의 자유 등을 아우르며 인간 감정의 본질을 파고든다. 감정은 상황에 대한 인지이며 의식에 입장하지 못한 활성화된 생각 재료이기 때문에 감정이 공동체 및 그 구성원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질문한다. 감정은 개개인의 내밀한 속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사회적이라는 것. 나아가 감정에 역사가 구축되기 때문에 감정의 역사화에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감정체제에 대해 도덕적,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제2부 `역사 속의 감정: 1700~1850년의 프랑스`는 제1부에서 확립한 감정론을 자신의 주 전공인 프랑스 근대사에 적용시킨다. 그는 각종 연구자료, 문학작품, 편지, 재판기록 등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료를 동원해 감정이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사건인 프랑스혁명의 전개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주장한다.18세기 많은 프랑스인들이 감상주의가 그들을 전례 없는 새로운 종류의 감정의 자유로 안내해줄 것이라 믿었던 것과 달리, 당시의 감정체제는 감정에 경직된 규율을 요구했고, 그렇게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했다. 레디는 19세기 초에 와서야 비로소 감정에 자유가 부여됐고, 그로써 `감정의 항해`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해 감정의 의미 변화에 대한 해명에 대한 미결정성과 모순에 맞닥뜨린 자아가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조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감정의 항해`를 용이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의 항해 가능성 여부야말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던져야 할 보편적 질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25

나를 향한 지극히 위험한 사랑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즘(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자기애성 성격장애)이라는 거대한 질병이 인류를 휩쓸고 있다. 이 병은 아주 무서운 병이다. 정치판을 휩쓸고, 기업가의 오만한 언행을 묵인하게 만들며, 극단적으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기까지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어디에나 있다. 이들은 영화 스크린, 국회, 사무실, 이웃집,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잠드는 한 침대 속에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방심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자신이 나르시시스트일 수도 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나르시시스트가 참을 수 없이 유혹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우리를 매혹하고, 미치게 만들며, 마침내 모든 것을 파멸시킨 후에야 그 본질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들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정복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안타까운 것은 이 세상과 시대가 나르시시즘을 방조하고 심지어 부추기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2006년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며 디지털 민주주의를 이끄는 것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이 선정의 이유였지만 글쎄, 부정적인 측면에서조차 “나를 향한 사랑”은 너무 크게 번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시간으로 SNS에 오늘 먹은 근사한 저녁 메뉴 사진을 올리고, 어디에서나 기다란 “셀카봉”을 휘두르며 “셀카”를 찍어 공유하며 “좋아요” 수에 일희일비한다. 이 신풍속도 속에서 언제부턴가 겸손함은 자기 PR도 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음이 되고, 자기애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행위는 열렬히 찬양받게 됐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이제 너무 지나치다. 우리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옆집의 나르시시스트`(문학동네)는 타임의 수석 편집자이자 작가인 저자 제프리 클루거가 나르시시즘에 대한 광범위한 정신병리학적·심리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터에서, 나아가 정계와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서 어떻게 주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자신마저 파멸로 이끄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인류가 어떻게 나르시시즘을 극복해야 할지 통찰을 제공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25

수필집 `그게 바로 사랑이야` 출간

김국현(60·사진) 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이 수필집` 그게 바로 사랑이야`를 출간하고, 오는 27일 오후 서울 중구 NH아트홀에서 북콘서트를 개최한다. 음악회를 겸한 이번 북콘서트에서 김 작가는 그간의 노작(作)들을 엮은 수필집을 소개하고, 학창시절부터 유달리 문학과 글쓰기를 좋아 했던 60년 삶을 반추하며 독자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그의 대표작은`그게 바로 사랑이야`, `메밀밭에서`, `밤의 정적 속에서`, `아버지와 기차`, `노란 리본`, `이방인` 등이다.그를 수필가로 이끈 건 김진섭의 수필`백설부`와 천관우의`그랜드 캐니언`. 김 작가는“이들은 나에게 수필가의 꿈을 심어 주었다. 나이 들어 문단에 첫발을 내딛던 날, 어릴 때의 소망을 이룬 기쁨으로 잠을 설쳤다”고 했다.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어머니. 김 작가는 “대학교 때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추운 겨울날, 자식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그때의 감동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국현 작가는 이번 독자들과의 만남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두렵다. 그는 “가슴에 든 게 없고 읽은 글이 모자라는데 섣불리 책을 내는 건 아닌지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어느 선배 수필가가 말했듯이 값진 흔적이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이 될 것 같아 내 속에 있는 열정이 식기 전에 용기를 냈다”고 고백했다.수필 평론가인 이정림(에세이21 발행인 겸 편집인)은 김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철학을 까뮈의 소설을 소재로 한 수필`이방인`에서 찾는다. 그는`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뫼르소와 같은 인간형이 이방인이 아니라, 자신의 참된 자아를 감추고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바로 이방인`이라는 김 작가의 말을 빌어,“그야말로 자신에게 충실한 이방인, 분명한 철학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자유인”이라고 평가했다.문의 NH아트홀 (02)3143-5959./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23

`나는 누구인가` 자아를 좇는 한편의 누아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71)의 최신 장편소설`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문학동네)가 출간됐다. 모디아노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로,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거장이다. 프랑스 현대문학이 낳은 가장 탁월한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는 모디아노가 재작년 펴낸 최신작이다. 그는 같은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1968년`에투알 광장`으로 등단한 이래 2014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기까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파트릭 모디아노는 특유의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문체로 `기억의 예술`을 통해 인간의 불가해한 운명을 환기시키고 독일 점령기 프랑스의 모습을 그려왔다. “우리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평가를 받는`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는 작가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소설은 스탕달의 자서전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에서 비롯한“내가 사건의 실상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 그림자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라는 구절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암시하기도 한다.소설은 주인공인 작가 장 다라간이 사소해 보이는 한 사건으로 인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그는 과거의 공간을 집요하게 더듬어가며 자신의 기억과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려 애쓰지만, 서로 맞춰지지 않는 기억의 조각과 메워지지 않는 공백에 가로막힌다. 육십대가 된 작가 장 다라간의 현재와, 수상쩍은 사람들 틈에서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던 그의 유년 시절, 첫 소설을 써내려가던 청년 시절 등 세 시점으로 번갈아 서술되는 이 작품은 슬픔을 동반하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쓸쓸하면서 감미로운 한 편의 누아르”(`더 뉴요커`)를 연상케 한다.장 다라간은 어느 날 낯선 남자의 전화를 받는다. 남자는 잃어버린 수첩을 돌려주겠다며 그에게 만나자고 한다. 다라간은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첩 속 한 이름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오는 남자 때문에 모종의 불안을 느끼고, 그가 건넨 “자료”를 살피다가 그때껏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과, 한 아이가 찍힌 흑백사진을 발견하게 되는데….파트릭 모디아노는 이번 작품에서도 기억과 망각, 정체성이란 주제에 천착한다. 작가는 다라간의 현재와 유년, 청년 시절을 번갈아 서술하며 그가 슬프고 고독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홅는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18

`이야기`와 우리 삶의 연결고리 찾아가기

`멀고도 가까운`(반비)은 지난해 국내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출간되면서 이목을 끌었던 리베카 솔닛의 신간이다. 전미도서상 후보작, 전비비평가협회상 최종후보작으로 오른 주저다. 솔닛은 2010년 한 칼럼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로 21세기에도 만연한 젠더 불평등의 핵심을 명쾌하게 요약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 단어는 뉴욕타임스 `2010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고, 솔닛은 같은 해 `유튼리더 `선정`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로 선정됐다. 2015년에는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온라인판에 등재됐고, 이 글을 수록한 칼럼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한국에 소개돼 대부분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의 주요한 주제는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어머니와 딸, 아이슬란드와 극지방이다.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프로이켄의`북극 모험`, 체 게바라의`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백조 왕자``룸펜슈틸츠헨``눈의 여왕`같은 구전 동화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활용해 솔닛은 주변의 여러 삶들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마침내 이해한다.그것은 누군가를 변명하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 혹은 작가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이해이다. 작가는 이를 용서이자 사랑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이런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웅변하는, 솔닛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에세이이다.이 책의 다양한 주제를 하나로 엮는 큰 주제는 이야기하기의 힘이다. 우리는 이야기들을 엮어서 정체성을 형성해낸다. 솔닛의 말대로 자아는 우리의 삶이 만들어내는 중요한 작품이자, 만인을 예술가로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가령 많은 동화들은 문제 해결을 다루는데 동화 주인공들은 그 문제 해결 와중에 `자신`이 된다. 이것은 이야기하기의 기본 원칙이다.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넘어서며 또 다른 누군가가 돼간다.우리의 이야기들은 도중에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만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는`자아`를 만들어내는 일에 근본적으로`듣기`와 `읽기`의 능력, 타인에게 감정이입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에서는`프랑켄슈타인`같은 고전이나`백조 왕자`같은 원형적인 서사뿐 아니라 극한의 추위에서 남편과 아이의 시체를 먹고 살아남은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전 세계가 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우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고 그 후유증으로 자살한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북극곰을 잡아먹는 북극곰 이야기, 무엇보다`신데렐라`의 음울한 버전이라 할 법한 솔닛 어머니의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호출된다.이런 이야기들이 솔닛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다시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친다. 솔닛의 이야기인 이 책은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 그녀의 삶과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연결시킨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18

`詩` 어려운가요? 그저 차를 즐기듯이 편하게

“좋아하는 시 한 편쯤 있으세요? 시 읽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시를 같이 읽어보는 여유를 드립니다.”“여러분한테도 좋아하는 시 한 편쯤 생겼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한 이은직씨의`지금 당신에겐 시 한 편이 필요합니다`(휴먼큐브) 는 거창하지 않다.그저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있는 것처럼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좋아할 수 있는 시 한 편 같이 읽어보자는 생각에서 시를 소개하고 있다.시인이든 시 제목이든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듣고 보았을 30편의 시는 거대한 담론을 따르지도 않고, 확고한 목적을 주입하지도 않는다. 그저 저자가 좋아하는 시들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시 안에 담긴 시인의 정서를 느끼고, 표현을 즐길 수 있도록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다.시를 가르칠 수 있어서 국어 강사란 직업이 좋은 저자는 “선생님 때문에 시가 좋아졌어요”라는 학생들의 말에 힘을 얻는다.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시를 찾은 학생들의 해맑은 모습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제는 독자들에게도 시 한 편이 주는 즐거움을 알리고자`지금 당신에겐 시 한 편이 필요합니다`를 출간했다.`지금 당신에겐 시 한 편이 필요합니다`는 시의 대표적 특징 두 가지에 주목해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시는 정서의 예술이며 표현의 예술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반전에는 감정을 느끼기에 좋은 시들을 선정했다. 1부에서는 감정의 꽃이라 할 수 있는`상실감`을 다루는 시를, 2부에서는 현실 앞에 선 시인의 감정을 담은 시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감정을 담은 시들이 모여 있다.그리고 후반전에는 표현의 표미를 즐길 수 있는 시들을 소개한다. 4부에서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미있는 또는 더 슬픈 시들을, 5부에서는 표현이 독특해서 재미있는 또는 더 슬픈 시들을, 6부에서는 구성이 독특해서 재미있는 또는 더 슬픈 시들을 모았다.저자 이은직씨는“시는 읽는 것보다도 짓기가 쉽다”는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의 말은 그만큼 시를 읽기가 어렵다는 말이 될 것 같다”며 “그래서 이 책은 느리게, 그저 갑자기 찾아온 여유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 감정이 메말라 힘이 들 때, 바쁜 일상에서 잠시 숨을 크게 쉬어보고 싶을 때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 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18

행복전달 심리서 모든 고민은 인간에서 비롯

일본의 비즈니스 심리학자 와다 히데키(56)의 신간`아들러와 프로이트의 대결`(에쎄)은 현대인들에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전하기 위한 아들러와 프로이트의 지혜를 오롯이 담은 책이다.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와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칼 구스타프 융(1875~1961)과 함께 세계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운다.아들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서, 프로이트의 공동연구자였으나, 이후에 프로이트와 뜻을 달리해 완전히 새로운 이론인`개인심리학`을 창시했다. 아들러 심리학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보고, 프로이트의`원인론`을 뿌리부터 뒤집는`목적론`을 주창한다.예를 들어`그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어릴 때 학대를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프로이트의 원인론인 반면, `사회에 나와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서 어릴 때 학대를 받은 기억을 꺼내는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들러의 목적론이다.`아들러와 프로이트의 대결`은 20세기 심리학의 아들러와 프로이트, 그리고 카를 융의 이론을 비교하는 동시에 그들 이후 21세기 심리학을 이끌어온 세계적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일본의 정신분석학, 자기심리학 전문가이자 심리치료사로 수많은 사람을 상담해온 저자는 다양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현대 심리학의 여러 이론을 설명하며 그 이론을 뒷받침한 대표적인 실험들을 예로 든다.저자 와다 히데키는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와 하인즈 코헛의 이론을 바탕으로 열등감을 긍정적인 자기발견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시한 책`남과 비교하며 살지마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3-18

`다면체 돼지` 몸·입 빌려 이땅의 현실 거침없이 비판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 김혜순(61)이 열한번째 시집`피어라 돼지`(문학과지성사)를 발간했다. 제6회 미당문학상과 제16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김 시인은 독창적인 상상적 언술의 최극단으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끊임없이 갱신해 오고 있다.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한데 추동하는 김혜순의 시 세계는 시적 화자 스스로 몸이 부서지고 변화하며 격렬한 이미지의 연쇄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몸서리치는 파동으로서의 몸-리듬 혹은 몸-소리라는 새로운 시-언어를 발견·발명하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멈추지 않는 상상적 에너지로 좀처럼 자기 반복이라곤 허용하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매번 다른 목소리를 내온 김혜순은 이번 시집에서 “세상의 모든 약한 존재자들을, 죽음과 부활을, 사랑과 욕망을, 성과 식(食)을 제 몸에 구현한 다면체-돼지”(권혁웅, 문학평론가)의 몸과 입을 빌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 이 세계의 부패와 폭력, 비참과 오욕의 현실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붉은 물감처럼, 세계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돼지들의, 돼지들을 위한, 돼지들에 의한 장엄한 비창”(조재룡, 문학평론가)으로서, 시집`피어라 돼지`는 허섭스레기처럼 너덜너덜해진 우리 삶과 사회를 때로는 조롱과 유머로, 때로는 격렬한 아픔으로 통과하며 “시를 가동”한다.시집의 1부에 놓인 장시 `돼지라서 괜찮아`는 총 15편의 연작시를 한데 꿰어, 2011년 구제역 사태를 피비린내 진동하는 언어로 그리고 있다.“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재판도 없이매질도 없이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무덤 속에서 운다네 발도 아니고 두 발로 서서 운다머리에 흙을 쓰고 운다내가 못 견디는 건 아픈 게 아니에요!부끄러운 거예요!무덤 속에서 복부에 육수 찬다 가스도 찬다무덤 속에서 배가 터진다무덤 속에서 추한 찌개처럼 끓는다핏물이 무덤 밖으로 흐른다비오는 밤 비린 돼지 도깨비불이 번쩍번쩍한다터진 창자가 무덤을 뚫고 봉분 위로 솟구친다부활이다! 창자는 살아 있다! 뱀처럼 살아 있다! ―`피어라 돼지`부분분명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지고 종국에는 다시 돼지로 부활하는 무수한 돼지들의 징표를 시인은`부적, 시, 제문, 예언, 기념일, 알레고리, 동물들(분홍 코끼리, 파리, 쥐, 고래 등등) `과 같은 기호에 담는다(2부`글씨가 아프다`). 세상의 모든 약한 존재자들을, 죽음과 부활을, 사랑과 욕망을, 성과 식(食)을 제 몸에 구현한 다면체-돼지의 출현이 시집 곳곳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무리로 출현한 돼지들이 죽음, 슬픔, 불안의 춤의 여정-상승, 선회, 유전, 변신-을 거쳐(3부`춤이란 춤`) 각자 붉은 장미로 피어나듯 내 자신으로 전신(轉身)하는 순간, 시집`피어라 돼지`를 죽음과 생명이 어우러져 모든 이야기가 집약된 단 한 편의 시로 읽게 될 것이다.(4부`일인용 감옥`)/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11

“진정한 밥도둑은 역시 약간의 모자람”

“한끼 식사가 만들어내는 행복감이야말로 삶의 원천이며, 진정한 밥도둑은 역시 약간의 모자람과,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 맛이다!”소설가 황석영(73)이 음식을 모티프로 삼아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낸 에세이`황석영의 밥도둑`(교유서가)를 펴냈다.이 책은 작가가 걸어온 길에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웃고 울던 곡절 많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맛깔난 문장으로 풀어낸 음식회고록이다.책은 지난 2001년 출간된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의 개정판으로, 두 편의 글을 새로 더해 글의 순서를 다시 정리하고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전쟁을 피해 괭매이(경기도 광명)의 어느 외양간에서 한철을 보내던 어린 시절에 옆집 소녀가 쥐여주던 누룽지 맛에서 옛사랑을 떠올리고, 베트남전 참전으로 피폐해진 영혼을 치유해준 한 여인과 주고받은 편지 이야기, 출가하여 절집을 돌아다니다 어머니에게 붙잡혀 간 이야기, 군대 시절 닭서리를 하여 철모에 삶아 먹던 이야기,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함께 먹었던 언 감자국수에 얽힌 사연, 감옥에서 봉사원과 함께 만들어 먹던 부침개, 노티(평안도의 향토음식)에 얽힌 이산가족 이야기, 함께 먹거리 여행에 나섰던 사람들과의 이별 이야기 등 한 편 한 편이 저마다 각별하고 감동적이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굴곡진 한국현대사의 이면에서 묵묵히 살아온 우리네 이웃들과 노작가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노인의 고독사가 더이상 놀랍지 않은 뉴스가 되고 편의점의 인스턴트 식품과 패스트푸드 음식들로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이 흔한 이 시대에, 숟가락을 여러 개 꽂아 냄비째로 밥에 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던 가족 이야기며 방황하던 청소년기에 얻어먹은 들밥 이야기, 담장 너머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는 등 여럿이 함께 어울려 먹던 시절의 이야기들에서는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저자의 특별한 경험들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작가가 맛보았거나 직접 해먹었던 음식의 조리법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하게 소개한다. 군대식 콩나물국과 닭백숙, 야쿠르트나 포도주스로 만드는 감옥식 양조법, 개성의 장떡 만드는 법, 콩나물밥, 김치밥, 북한의 호박짠지지지개(충청도의 호박김치) 등 매 꼭지마다 각종 음식들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 실용적 재미를 더한다.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유배지에서의 한 끼니`는 군과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식재료를 구하고 조리하는지 저자 특유의 입담을 보여준다. 2부`흘러간 사랑`에서는 피란지에서 만났던 옛사랑, 자폐증을 치유해준 여인과의 편지 등 거장의 풋풋하고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3부`잃어버린 그 맛`에서는 김일성 주석과의 식사 등 특별한 체험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작가의 가족들이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을 추억하며 고향 음식을 찾고 그리워하는 대목이 애잔하고 애틋하다. 4부`나그네살이`에서는 음울하고 고독한 망명시절에 맛본 낯선 음식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5부`밥도둑, 토박이 음식`은 전국 각지를 떠돌며 맛본 산지 특유의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노년에 접어들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동료들을 추억한다.이 책은 초판(5천 부)에 한해 한 권 판매시 후원의 뜻에서 밥 한 그릇이 굿네이버스를 통해 결식아동들에게 전해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3-11

사랑과 수학사이

영국의 젊은 여성 수학자 해나 프라이가 펴낸`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문학동네)은 수학자의 눈을 통해 바라본 사랑 이야기다. 저자는 사랑의 각 단계마다 떠오르는 고민들에 `수학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수학자만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언제나 예측불가하며 우리로 하여금 수시로 설렘과 분노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드는 사랑. 저자는 사랑과 가장 동떨어져 보이는 수학이라는 필터를 통해 현대 사랑의 풍속도를 조목조목 들여다본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등록할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 방식부터 상대와 나의`케미(궁합)`를 알아보는 법, 결혼식 날 활용할 하객 배치도까지, `요즘`의 연애가 어떤 모습을 띠는지 수학자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성숙한 연애를 위한 유용한 조언을 건넨다.저자는`페르미 추정`(기초 지식과 논리적 추론만으로 짧은 시간 안에 대략적인 근사치를 추정하는 수학의 한 방법)을 활용해 괜찮은 상대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역설적으로 결국 본인의`눈높이`와 `기준`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 기준은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엉뚱하게 생겨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확률상으로 볼 때,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연애의 기회는 많을수록 좋다. 그럼에도 온갖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워 그런 기회를 스스로 내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만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 잠재적인 연애 상대의 수는 훨씬 많아진다.저자가 제시하는 이 똑똑한 사랑법은 데이트 앱을 통한 만남처럼 새로운 사랑의 풍속에도 적용된다. 프로필 사진으로 어떤 걸 써야 할지 고민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기 외모의 자신 없는 부분을 과감히 드러낸 사진을 프로필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연애에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덩치가 큰 사람은 전신사진을, 머리숱이 적은 사람은 과감히(!) 모자를 벗은 사진을 올리는 것이 실제 만남에서의 실패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11

“모차르트처럼 섬세, 베토벤처럼 냉철한 사유”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예를 들어 넌 꿈을 꾸는 데 한 푼도 지불하지 않지.환상의 경우는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대가를 치르고.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나가고 있어.그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지너는 표 값도 지불하지 않고, 행성의 회전목마를 탄 채 빙글빙글 돌고 있어.그리고 회전목마와 더블어 은하계의 눈보라에 무임승차를 해.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여기`부분노벨문학상의 몇 안 되는 여성 수상자이자 시인 수상자인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31~2012)의 마지막 작품들을 담은 시집 `충분하다`(문학과지성사)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충분하다`(문학과지성사)는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쉼보르스카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여기`와 그의 타계 2개월 후인 2012년 4월 출간된 `충분하다`를 묶은 책이다.쉼보르스카는 보통 스무 편 정도의 시를 묶어 정규 시집을 출간하곤 했는데, 숨을 거두기 전까지 완성한 시는 총 열세 편에 불과했고, 나머지 여섯 편의 시는 시작은 했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 여섯 편의 미완성 작품들은 동료 시인이자 편집자인 리샤르드 크리니츠키의 편집 후기와 함께 책의 말미에 별도로 수록돼 있다.또한 이 책에는 쉼보르스카의 육필 원고를 촬영한 사진도 함께 실려 있어, 시인이 삭제 또는 첨삭하거나 수정한 대목들, 혹은 몇 가지 버전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대목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섬세하고 정교한 시인 고유의 필체는 물론이고, 시어나 구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적나라한 흔적을 통해 창작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문에서 쉼보르스카의 시를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고 칭송했다. 쉼보르스카는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완성도 높은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역사와 문학에 대한 고찰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담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줬다.이러한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쉼보르스카 시의 구심점은 바로 존재의 본질과 참된 가치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심안(心眼)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작품 세계는 근본적으로`시선의 힘`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것, 사물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것, 그것이 쉼보르스카가 꿈꾸는 시인의 진정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세상 문물에 대해 호기심을 잃지 않겠다는 시인의 신념은 기존의 관습이나 편견을 깨끗이 비워낸 상태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직시하게 만들고, 상식이나 관습의 명목으로 지나쳐버렸던 생(生)의 수많은 이면들에 눈을 돌릴 수 있게 해준다.쉼보르스카는 이미 등단 초기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평생 일관되게 외길을 걸어온 시인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단정 짓지 않고 고정관념을 과감히 벗어 던진 채, 투철한 성찰의 과정을 거쳐 대상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던 시인의 고유한 개성은 이 시집에서도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3-04

진짜 나는 어디로 갔나 가짜가 된 피에로들의 이야기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문학동네)이 출간됐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됐던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돼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패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김명우가 `마마`의 제안으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입주하면서 피에로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곳에는 수난의 현대사를 외롭게 통과해온 마마(`대비마마`의 줄임말로 설명되지만, 상처 입은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거처 안으로 불러들인`어머니`로서의 마마이기도 하다)와 그녀의 조카로 생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남의 집 정원에 심어놓은 나무”처럼 위태롭게 살아가는 김현주가 입주해 있다.사랑했던 여자 난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후, 관계를 끝낼 수도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김명우는 일층에 위치한 북카페 `아몬드나무`를 운영하며 무너져버린 삶의 리듬을 차츰 되찾아간다. 또한 그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모인 존재들의 상처를 돌보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점차 “실제적인 감각으로 순수한 타인에 대한 감정을 회복”하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3-04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 인류의 미래는?

가계 부채 사상 최고치 경신, 잘못된 식생활로 인한 성인병 급증,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벌어지는 갖가지 범죄 등 최근 인간의 충동 조절 능력을 의심케 하는 뉴스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나중의 큰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과거의 우리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신중하고 계획적이었다. 새 운동화를 사기 위해 저금통을 채우고 친구가 보낸 편지를 기다리며 우체통을 서성였던 우리가, 어쩌다 망설임 없이 신용카드를 긁고 답장이 늦다고 친구를 다그치는 충동적인 인간이 돼버린 걸까?미국의 저널리스트 폴 로버츠의 신작 `근시사회-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인류의 미래`(민음사)는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갈수록 나빠지는 현대 사회의 모든 병폐를 설명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전작`석유의 종말`과`식량의 종말`에서 명쾌한 분석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폴 로버츠는 이 책에서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 불과했던 충동성이 사회 전체를 파괴적 결말로 몰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한다.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왜 막대한 가계 부채와 각종 중독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지, 기업 활동을 가능케 하던 주식 시장이 어떻게 시장 경제를 좀먹고 있는지,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망치는지를 고발하는 한편, 그것을 막을 현실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3-04

인간·인생 담백한 필체로

포항의 중견 시인 배동현(72)씨가 다섯번째 시집 `그래, 이놈아!`(한강출판사)를 펴냈다. 시사일보 경북취재본부장으로 재직 중인 배 시인은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문학가로서 시와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배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과 인생을 눈녹듯 담백한 필치로 담아냈다. 특히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따뜻한 시어에 담아내는 서정시들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매화송``강나루``춘래불사춘-백령도`같은 시들은 시인의 간결한 시심(詩心)으로 독자의 긴 여운을 이끌어내고 있다. 시적 대상의 서정적 정감을 간결하면서도 진솔한 시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은유와 비유를 시어에 잘 인용하는 유연성을 가졌다. 특히 간결하며 언지지장(言短志長) 같은 작품들은 시인의 연륜의 내공이 시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 밖에도 산문시 형태를 취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고 부딪치며 길어올린 육성 같은 서정시, 생명을 관찰한 시들도 많이 실었다.시집의 제목이 된 시`그래, 이놈아!`를 읽어보자.“세월이 가다 서서/날 한 번 쳐다보며/그래, 이놈아 욕질한다//또 가다 뒤돌아서서/ 한 번 더 째려보며/그래, 이놈아 또 욕한다//그래, 이놈아 하는 것은 분명히 욕은 욕인데/세월이 뭣 땜에 내게 욕할까//나야 별로 유명치도 못하고/탐탁지도 못한 인물일진대/행여 세월이 잘못 보시고/하신 말씀은 아닐는지//그래, 이놈아 하신 말씀은/분명히 성철 스님 말씀인데/곰곰이 생각하니 성철 스님 욕설은/욕이 아니라카던데.”시인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끝까지 다하는 뜨거운 휴머니스트다. 자아를 닦는 일상의 수행법과 물질만능 시대의 인간성 회복 문제 같은 것들을 선승 성철 스님의 설법을 인용해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진솔한 삶의 애환을 담은 자신만의 삶이 배어 있는 소중한 시편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는 시인의 말이 전해지는 부분이다. 배동현 시인은 “30여 년의 기자생활과 바다살리기 국민운동 활동 등 사회활동을 통해 삶에 대한 진실된 의미를 탐구한 것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이번 시집이 소박하지만 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진심 어린 기쁨을 안겨 주는 들꽃같은 아름다움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배씨는 2001년 해동문인협회에 입회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8월 문학공간 시 부문 문학상과 대통령상, 대한민국 환경대상, 자랑스런 경북도민상 등을 수상했고 2014년 시집`단기 4346년의 계사장초`로 `제20회 한국시인연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풍등`, `여울목` , `바람의 추억, 세월에 지다`, `단기 4346년의 계사장초` 등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3-04

사회를 담아 내는 문학 `사회와 문학의 접점`

문학평론가 김종회의 아홉 번째 평론집 `문학의 거울과 저울`(민음사)이 출간됐다. 김종회 평론가는 `디아스포라를 넘어서``문학과 전환기의 시대정신`등 문학과 사회의 접점을 탐색하며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문학 작품을 읽어 온 동시대적 평론가다.이 책의 제목 `문학의 거울과 저울`은 모방과 반영 그리고 수용미학의 문학적 논리와 함께 문학작품에 대한 관찰·분석·비평이 그 작품을 객관적으로 계량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던 저자의 시각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문학을 거울 또는 저울로 보는 시각을 운용하고 있는 이 책은 모두 세 단락으로 구성돼 있다.1부`동시대의 거울과 반사의 음영`은 근·현대 한국문학의 대표적 작가들이 그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소설로 반영하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읽는다. 개화세대의 이광수가 근대성을 넘어서는 지점을 그의 소설로 분석하는가 하면 이청준과 김준성의 문학 세계를 한국 현대사의 음영과 속살 역시 읽어 낸다.2부 `사회사의 저울과 계량의 척도`는 지금 활발하게 창작하는 동시대의 작가들이 어떤 공시적 인식으로 그 사회사적 사건들을 평가하며 또 소설화하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공지영의 `도가니`에서 수많은 대중의 공분을 촉발한 지점을 살펴보는 것부터 전성태와 정지아의 소설 등이 오늘날 사회 계급과 서민들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을 꼼꼼하게 살파고 그 함의를 추출해 낸다.3부 `산문적 현실의 감성적 발화법`은 당대 문학의 중심을 이룬 시인과 수필가들의 작품에서 그 비시적 현실이 어떻게 감성의 세계로 치환되는가를 공들여 살펴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2-26

순수청년 윤동주 그의 삶 들여다 보기

`별 헤는 밤``서시``참회록``쉽게 쓰여진 시`….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주옥같은 시들을 써낸 시인, 그리고 그 자신이 써낸 구절처럼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십자가`)며 신화가 돼버린 시인…. 윤동주의 71주기 기일을 맞아 그의 시와 삶을 섬세하게 복원해낸 평전이 출간됐다. 한국문학사를 넘어 한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윤동주이지만, 그가 남긴 시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풀어낸 책은 많지 않았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리더십교양학부)가 펴낸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문학동네)`는 윤동주의 시를 한 편 한 편 되짚으며, 그가 결국 세상에 남기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새로운 방식의 평전이다. 그가 태어난 만주 명동마을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절명해간 후쿠오카 형무소까지의 생애를 좇다보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서시`)하겠다던 순결하고 아름다운 청년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이 책은 기록상 윤동주가 남긴 첫번째 시인`초 한 대`부터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시에 주목하는 책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윤동주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이 착각인 경우가 많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책들도`별 헤는 밤``서시``참회록``쉽게 쓰여진 시` 등 이미 알려진 작품들에 한정돼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윤동주의 시를 소개하며, 그의 전 생애를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좇고자 했다. 특히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사촌형 송몽규의 신춘문예 등단에 자극받아 시작(詩作)에 더욱 몰두했던 윤동주의 모습 등을 생생하고 편안한 문체로 그리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되도록 했다.`동시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에 주목한 것도 이채롭다. 지금까지 거의 다뤄진 적 없는 동시인`조개껍질` `병아리``개``만돌이``거짓부리`등을 읽으며, 윤동주가 왜 동시 시인인지 논증한다. 그의 전체 작품 중 30퍼센트 가까이를 동시로 분류할 수 있으며, 동시를 발표할 때는 `동주(東舟)` 혹은 `동주(童舟)`라는 특별한 필명을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2-26

처음 시 쓰던 마음 오롯이 담아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태양에 쫓기어/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당신의 맑은 눈물/내 땅에 떨어지면/바람에 날려 보낼/기쁨의 꽃씨//흐려오는/세월의 눈시울에/원색의 아픔을 씹는/내 조용한 숨소리//보고 싶은 얼굴이여”(이해인 시 `민들레의 영토` 중)편안하게 다가오는 고운 시어를 통해 `국민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이해인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1976년 초판 발간) 출간 40주년을 맞았다.1945년 양구에서 태어난 이해인 수녀는 1970년`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민들레의 영토`는 1976년 2월 이해인 수녀가 종신서원(終身誓願·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하는 일)을 하며 일종의 기념시집 형태로 발간한 시집으로, 처음 시를 쓰며 가졌던 티 없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시`민들레의 영토`는 이해인 수녀가 수녀회에 입회한 해인 1965년에 태어났다. 수녀원 한 귀퉁이에 핀 민들레를 보고 쓴 이 시는 10년 후인 1975년, 같은 제목의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담겨 대중의 일상에 들어왔다. 이후 수많은 시집이 나왔지만 `민들레의 영토`가 날려보낸 홀씨는 우리네 일상에 깊이 뿌리내려 고유명사화 될 정도다.`민들레의 영토`는 한 일간지에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50쇄가 넘는 인쇄 기록을 남겼을 뿐 아니라 각종 시구절과 관련된 교과서 등 저작권만도 10여 종을 만들어냈다.이해인 수녀는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이후 현재까지 약 16종의 시집을 펴냈다. 시선집, 동시집, 동화집, 산문집, 역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집필했다. 현재까지도 부산 수녀원 해인글방에서 글을 쓰고, 피정 지도와 강연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편지에 감사드렸다는 이해인 수녀는 수술 이후 작은 것 하나에도 더 감사하며 살고 있다.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는 `민들레의 영토` 출간 40주년을 맞아 초창기의 표지를 재현한 특별판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이 수녀가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직접 쓴 글을 추가했고, 한정판 양장 노트도 함께 출시했다. 책에는 단편시 33편과 산문시 10편이 수록돼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2-26

“제발 날 데려가 주소” 분단현실과 부딪치다

분단 문학의 대표 작가 김원일(74)이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소설집`비단길`(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작가는 1966년 `1961·알제리`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이 책은 김원일의 여덟번째 소설집이다. 책은 단편소설` 어둠의 혼``미망`, 장편소설 `마당깊은 집``불의 제전``아들의 아버지`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과 맥을 함께하는 소설 7편으로 채워졌다.김원일의 소설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 그 뼈대 주위를 채우는 이야기들로 자신만의 삽화를 그리듯 한 장 한 장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잊히고 사라졌지만, 김원일은 그 시간에 머물며 기꺼이 그때 그 사람들의 증인을 자처한다.`6·25전쟁이 있었고, 남과 북이 갈라졌다`는 간단한 사실 주변에 놓인 많은 사람들, 그래서 비슷하면서 각각 그 결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작가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풀어온 것이다.특히 이번에 수록된 소설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미 성인이 된 그가 아버지의 행방을 추적하려 나서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소설을 통해 그는 자신의 평생 주제였던 `아버지`를 좀더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로 담아낸다. 작가는 특히 `아버지의 부재`라는 거대한 세계를 직접 대면하는 소설을 책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작가가 50년 동안 일궈놓은 문학 인생이 한 단락 매듭지어지는 듯한 겸허한 감상을 느끼게 한다.김원일이 소설을 통해 꾸준히 `비어 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말해왔다면, 소설 `비단길`은 `자리로 돌아온 아버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1950년 9월 인민군이 예천 지방에서 퇴각할 무렵 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고, 그 `존재`를 알리는 것으로 표제작`비단길`은 시작한다.`비단길`은 월북한 아버지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고, 남쪽 가족들이 그 소식을 전해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머니는 60여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 `여보 날 거기로 데려가주이소`라며 오열한다. 어머니는 이산가족상봉 후 완전한 치매 상태로 들어간다.1942년생인 작가는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어릴 적에 전쟁을 경험한 당사자다. 성인이 되어 6·25전쟁을 경험한 그의 윗세대 작가들과는 시선의 지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가 그려내는 전쟁의 이미지들은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을 보여준다.특히 동세대인인 김병익의 실제 경험담을 풀어낸 `형과 함께 간 길`은 김원일의 이 같은 시선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형이 휴가를 얻어 고향 집에 와서 벌어지는 이 짧은 이야기는 성인으로서 전쟁을 겪고 있는 형과 그런 형과 사회를 어린아이의 눈으로 관찰하는 동생에 관한 소설이다. 충격적인 역사를 함께 경험했지만 관찰자적인 입장(그러나 지금의 이삼십대처럼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에서 그려진 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되풀이되는 소소한 일상의 한 장면처럼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게 서술된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김원일의 소설은 한번에 모든 설움이 쏟아지는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곤 한다. 마음속에 품은 깊은 한을 쉽게 내보이지 않다가`비단길`에 이르러 “제발 날 거기로 데려가”달라는 날카로운 비명, 그 단 한 번의 울부짖음으로 이 책은 우리를 `분단`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한다. 이미 지나간 역사처럼 보이지만, 아직 생생하게 뛰고 있는 아픔은 김원일의 소설을 읽어가는 이들을 6·25의 비극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2-26

“엄마사람이자 회사사람이자 여자사람이 있다”

오늘도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회사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한다.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내일 아침 눈 뜨면, 또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해서 다시 집으로 출근한다. `전생에 일하다 지쳐 죽은 소`가 분명하다.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일 것이다.그런 대다수 사람 중 한 명의 “엄마 사람이자 회사 사람이자 여자 사람”이 있다.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다.연예인도 아니고 프리랜서도 아니고 전문직 종사자도 아닌 그녀는 세상의 알파걸들이 부러웠고 본인이 처한 현실에 낙담도 했다. 나보다 잘난 여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가 위로와 공감은커녕 오히려 역효과만 났기에 하루의 일상과 단상을 언젠가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은영의`여자는 아내가 필요하다`(휴번큐브)는그렇게 한 편, 한 편의 시들과 생각과 느낌이 만나서 출간된 책이다.`여자는 아내가 필요하다`책 속에는 70편의 시와 그에 얽힌 70가지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반은 엄마이고 반은 여자인, 반은 아내이고 반은 회사원인, 반은 딸이고 반은 며느리인 사람의 일상과 희로애락이 빼곡하게 기록됐다.아찔한 여자로 살다가 어쩌다 엄마가 되었으나 그래도 여자로 여전히 여자로 오늘도 묵묵히 출근길에 오르는회사 사람, 엄마 사람, 그냥 사람, 그런 보통 사람에게 이 책은 오래된 친구처럼, 아내처럼, 안식처 같은 깊은 울림과 공감으로 다가갈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