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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비처럼 걷기

이원만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나비가 백송이의 꽃을 기웃거린다면 그 중 아흔아홉 송이는 ‘그냥’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기웃거린다. 그래서 나비의 비행은 요리조리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풍경을 ‘저기를 사서 어떻게 하면 이익이 될 것이다’며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다. 나비처럼 ‘그냥 즐기지’ 못한다. 우리의 감수성은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 경쟁에 익숙해졌고 느림, 유연성, 대화, 호기심, 무용성, 우정 같은 것에 무감각하다. ‘어디로 가기위해서가 아니라 걷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식의 말을 들으면 뭔가 뒤쳐진 자의 핑계 같아서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얼마 전 소설을 쓰는 친구가 찾아왔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지역의 어느 작은 도시에 방을 얻고 틈만 나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걸어 다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도시의 가로수 한 그루, 골목 한 귀퉁이도 다 아름답고 길에서 만나 인사하는 사람들의 친절함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감수성의 근육이 다시 생겨났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다니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게 느긋한 시간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공간을 제공하는 중이고 한 동안은 ‘자기 자신에게 윤리적인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고 했다. 니체도 지팡이 끝에 잉크를 넣어 다니며 걷기가 주는 생각들을 그때마다 휘갈겨 책을 썼다. 빅토르 위고는 걷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벌떼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찼다.’고 했으며 평생 도보 여행자였던 릴케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산책은 ‘살아있는 책을 읽는 것’이고 산길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여 그어놓은 ‘자연에 친 밑줄’이라는 것을 많은 예술가들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 걷기는 쇼핑과는 다르다.프랑스의 비행청소년들을 감옥대신 걷게 함으로서 사회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단체인 쇠이유협회에 따르면 걷기는 내면의 여정 즉 ‘활기-존재감 높이기-신뢰를 쌓는 능력-연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오래 걷다보면 결국 자신에 대해 감탄할 만한 일을 발견해 낼 수 있어서 감옥보다 훨씬 교정효과가 높다고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음식, 햇볕에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 등을 밀어주는 바람, 더운 몸을 식혀주는 명랑한 계곡물소리, 힘들 때 함께 부르는 노래. 상상해보면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상큼하고 향기로운 공기처럼 내면으로 들어와 우리 안의 퀴퀴하고 어두운 것들을 함께 뱉어내게 만든다.유럽을 가보면 한적한 공원에 사람들이 의자와 담요를 들고 모여들더니 제각기 의자를 펴고 담요를 무릎위에 올리고 바로 책을 펼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에 있는 가장 평화로운 모습이라 부러워하며 바라본 적 있다. 그리고 오래 지켜보고 있으면 책을 덮고 공원을 산책하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산책을 하거나 혼자 빠져나가 걷는다. 걷다가 들고 있던 책을 친구들에게 낭송하거나 홀로 암송하다가 잊어버린 듯 자주 펼쳐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펼쳐진 일이라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본 일상적인 풍경이다. 저 여유로움과 그냥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의 걷기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날며 꽃을 읽는 나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느림이란 더 빠른 박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느림은 시간을 성급히 다루지 않겠다는 의지,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살지 않겠다는 의지, 세상을 넉넉히 받아들이며 인생길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을 키워가겠다는 의지의 확인이다” 프랑스의 수필가인 피에르쌍소의 말이다.한가롭게 걷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면서 영혼의 숨쉬기를 하라는 말이다. 그런 소소하고 작은 일상을 삶의 리듬으로 만들어 지속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말이다. 우연히 만난 들꽃 한 송이에도 우리는 변화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장은 더 나은 인간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끊임없이 해낼 때 선물처럼 주어진다. 더 적게 소비하고 더 풍성하게 누리는 ‘대안적 쾌락’은 이제 시대의 요구이다. 그래서 ‘빨리 도착하기’가 아니라 ‘나비처럼 걷기’다.가을이다. 많은 이들이 가을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산길을 걷는다. 나무라는 책을 읽으러 간다. 바람이 책장을 넘겨주고 새들이 끼어들어 ‘이 구절 어때?’ 암송도 해 줄 것이다. 산길을 걸으며 ‘저 풀은 허리에 좋고, 위에 좋고’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솔바람소리에 바람을 꿰어서 헤진 마음 한 구석을 바느질하는 것은 어떤가. 먹과 종이를 들고 소나무 숲에 부는 솔바람소리를 듣기위해 만나고 물감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김치 국물로 단풍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낸 조선선비들의 풍류모임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짧은 가을, 혼자서 하루를 길게 늘여 쓸 수 있는 느리게 걷기를 권한다. 나비처럼 걷기를 권한다.

2022-11-13

밀지 마라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 만약의 경우에 대한 대비가 있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공영방송에서조차 주의나 경고는커녕 오히려 부추겼다고 하니, 결국 일어날 사고가 일어난 셈이었다. 이번 참사의 특징은 위급상황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연장 같은 곳에 화재나 테러가 발생했다거나, 운동경기장에서 흥분한 관중들의 집단소요사태로 생긴 인명사고와는 다른 것이다. 그냥 놀러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길이 막혀 난 사고다. 다급한 사정이 아닌 만큼 길이 막히면 멈추어서 기다리거나 다른 곳으로 돌아서 가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앞의 사람들이 백 수십 명이나 압사를 했다는 것은, 뒤로부터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밀어붙이는 힘이 작용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다.한 마디로, 뒤에서 밀었기 때문이 일어난 사고였다. 고의로 밀었건, 장난삼아 밀었건, 별 생각 없이 밀었건, 민다는 행위들이 합쳐져서 대형 참사를 빚은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몰려 길이 막혔을 때는 절대로 뒤에서 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이 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설령 위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아니 위급한 상황일수록 더더욱 밀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좁은 골목일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으로 화재나 지진의 대피요령과 함께 필히 학교 교육과목에도 넣어야 할 것이다.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군중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다.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자제력을 잃고 다른 사람의 언동에 휩쓸리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서 유래된 것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반면 나치의 파시즘 같은 엄청난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요즘은 SNS의 획기적인 발달로 실시간 비대면으로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새로운 양상의 군중심리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최소한의 신분노출도 필요 없는 익명성과 실시간 다중소통이 가능한 파급력으로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주동력이 된 것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어느 분야건 군중심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설 자리가 없을 정도다.핼로윈이라는 남의 나라 풍습을 좇아 젊은이들이 몰려든 것도 군중심리의 하나일 것이고,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다 군중심리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예상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이 지자체나 경찰 당국의 역할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계속 소를 먹이려면 외양간부터 고쳐야 한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철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시대현실에 맞는 공중질서의식을 학교 교육에서부터 길러야 한다. 군중심리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심도 있는 연구도 요구되는 현실이다. 교육을 통해서든 언론매체를 통해서든 사람이 운집한 곳에서는 절대로 남을 밀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쯤은 갖게 해야 선진국이다.

2022-11-10

개기월식을 지켜보았다

윤영대수필가 입동(立冬) 다음날 8일 저녁, 오후 6시경부터 개기월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두텁게 입고 해그름의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벌써 수평선 위로 보름달이 떠 있고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저녁 하늘이어서 보름달의 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월식은 해-지구-달이 일직선으로 있을 때 지구 그림자가 둥근 달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월식(月蝕)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몽땅 다 갉아먹는 개기월식이고, 또 가까이 지나는 천왕성을 덮어버린다는 ‘천왕성 엄폐’가 동시에 일어나는 희귀한 ‘우주 쇼’라는 것이다. 그래서 쌍안경까지 챙겨서 나갔었다. 넓은 바다를 향해 앉아 지구가 달을 갉아먹는 것을 보려니 6시8분48초에 시작됐다는 월식은 이미 상현달 모양이다. 조금씩 가늘어지며 거꾸로 초승달 모양으로 되어 가더니 7시16분경에 개기월식이 시작되어 서서히 검붉게 변하여 8시경에 절정을 이루어 핏빛의 블러드 문(Blood Moon)으로 변했다. 이때 붉은 달은 햇빛이 지구를 지나며 푸른빛은 산란하고 붉은빛만 굴절되어 달을 비추기 때문이다. 바닷가에는 조용히 흰 파도가 밀리고 해변 모래밭을 걷던 산책객들도 월식 현상을 폰카메라로 찍어댄다. 망원렌즈를 부착한 큰 카메라를 앞에 두고 앉아 촬영하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다음 개기월식은 2025년 9월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천왕성 엄폐 모습은 200년 후에나 다시 발생한다는 사실이 아쉬워 쌍안경으로 텅 빈 하늘을 이리저리 찾아봤으나 작은 렌즈 속으로 보름달을 끌어넣기가 쉽지 않았고 겨우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방아 찍는 모습이 불그스럼한 자국으로 보일 뿐….8시43분 경에 90여 분 정도의 개기월식이 끝나자 붉은 달 왼쪽이 하얗게 빛나더니 그믐달이 되며 지구 그림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영일대 누각에서 보면 어떨까 하고 장미원 광장으로 가는데 한 무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늘 무슨 축제인가?’하고 가까이 가봤더니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커다란 망원경도 4대나 놓여있었다. ‘2022년 개기월식 공개 관측회’라는 현수막도 낮게 걸려있었다. 알아보니 경북천문교육연구회와 포항고등학교 별바라기 모임에서 시민들에게 개기월식을 직접 관찰하게 하는 행사였다. 이날 전국적으로 30여 곳 천문대 등에서 별빛보기 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포항에도 이렇게 15명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천문연구 모임을 만들어 우주를 공부하고 있다니 자랑스럽다. 그때 막 개기월식이 종료되고 부분일식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줄 서서 기다렸다가 망원경 렌즈에 눈을 갖다 대었다. 붉은 보름달이 신비로운 우주의 모습을 대형 망원경으로 보는 것도 첫 경험이다. 행사 요원의 도움으로 그 영상을 휴대폰에 담아왔다. 달은 그믐달에서 서서히 빛을 찾아가며 하현달을 지나고 9시30분이 되어서 환한 보름달의 밝음을 되찾았다.하루 저녁 3시간 동안에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까지 모든 모습을 보여준 개기월식을 잘 보았다는 생각에 해변의 푸드트럭에서 블러드 문을 닮은 타꼬야끼 한 봉지를 사 먹으며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뇌리에는 아직도 개기월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2022-11-10

공감능력 없는 사회

홍석봉 정치에디터 나라 안팎의 중첩된 위기 속에 ‘개 소동’이 일었다. 이태원 참사의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청와대에서 키우던 풍산개 3마리를 양산 사저로 데려갔다. 김정은에게 선물 받은 개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더 못 키우겠다며 정부에 반납하겠다고 했다. 개 사료 값과 관리비 월 250만원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야 공방이 벌어졌다. 단초를 제공한 문 전 대통령은 의식수준을 의심 받았다. 개는 장난감이나 사진배경용 소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유야 어떠하든 국민과의 공감이 부족했다.대통령실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웃기고 있네’ 메모 파문은 더욱 가관이다. 이태원 참사의 진실규명 자리가 돼야 할 국감장이 희화의 장이 됐다. 당사자들의 변명과 사과가 이어졌지만 대통령 참모의 저급한 표현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대통령실의 현주소다.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의 부실대처가 드러났다. ‘선 수사, 후 책임’만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책임자 문책 등 선제조치를 않았다. 국민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는 모습은 없었다. 뒤늦게 사과했지만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재난 관리 주무부처 수장은 책임회피 발언으로 질타 받았다. 국무총리의 농담은 아예 상식밖이다.정부 대응도 수준 이하다. ‘이태원 참사’ 대신 ‘이태원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라고 했다가 야당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근조(謹弔) 글자 없는 검은 리본’ 패용 지시는 어안이 벙벙케 했다. 애도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경찰은 민간단체 반응 조사라는 케케묵은 수법을 꺼내들었다가 힐난 받았다. 상부 눈치보기 행정이다. 민심을 읽지 못했다.민주당의 행태도 오십보백보다. 민주당은 기회는 이때라는 듯이 정부를 물고 늘어졌다. 장외 촛불투쟁을 부추기며 윤석열 정부의 목을 죄고 있다. 전형적인 국면전환 수법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판을 뒤집어 보려는 것이다.정치권의 혐오와 증오는 자신의 정치 집단만을 추종하고 민심을 읽지 못한 탓이 크다. 국민들의 공감 범위에서 벗어났다. 민심을 우선하고 상식이 지배하는 정당의 지향하는 바와도 거리가 멀다.파업과 투쟁을 일삼는 민주노총과 참교육을 앞세운 전교조 등 진보 단체의 정치화도 국민들의 기대와는 어긋났다. 이들 단체의 종북 바라기는 북한 김정은의 핵위협에 치를 떠는 국민 정서는 안중에도 없다. 보수단체의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도 국민의 관심 밖이다. 공감능력 부재가 우리 사회의 현상이 됐다.국민들은 코로나19 속에 경제난과 북핵 위기로 몸과 마음이 지쳐 번아웃 상태다. ‘이태원 참사’는 국민들을 집단 트라우마에 빠뜨렸다. 국민들은 지도층이 생각 없이 불쑥불쑥 던지는 실언에 상처받고 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위안이다. 그런데 껴안아 주지는 못할망정 국민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다.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없어서다.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 교육이 절실하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2022-11-10

억대 부농

우정구 논설위원 월급쟁이한테 억대 연봉은 로망이다. 경제발전으로 국민의 소득이 크게 늘어났어도 개인 소득이 억대에 달하는 인구는 전체 월급쟁이의 3∼4% 수준에 불과하다. 수십년을 봉급생활하면서 억대 연봉을 못받고 퇴직한 월급 근로자가 대부분이다.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억대 수입을 올린다면 남다른 면모가 분명 있을 것이다. 부농(富農)의 기준이라고 특별한 게 있지 않으나 보통 부농이라하면 연 수입 1억원을 기준으로 한다.올해 경북 성주군에서 참외 농사를 지으면서 1억원대 수입을 올린 농가가 1천713호에 달했다고 한다. 작년보다 억대 농가가 101호가 더 늘었다.성주에서 생산되는 성주참외는 참외 가운데 전국 최고 브랜드다.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저장성도 뛰어나 신선도를 따라올 다른 참외가 별로 없다. 경북 성주하면 참외를 떠올린다. 올해 성주군 참외는 조수입이 5천763억원에 달했다. 4년 연속 5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면서 내년에는 6천억원대 돌파를 꿈꾼다고 한다.성주참외가 전국에서 독보적인 것은 고품질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데 있다. 이는 가야산을 배경으로 한 맑은물과 좋은 토양, 최고의 일조량 등 천혜적인 재배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과 더불어 70년 이상 축적된 재배기술이 더해진 탓이다.특히 성주 참외농들의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전략적 유통망 개척, 생산자와 유통단체 등의 단합된 노력의 결과다.부농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 부농의 성공비결을 조사했더니 꼼꼼한 영농활동과 근면, 성실 등이 최고로 손꼽혔다 한다. 경북 성주에서 억대 부농이 많이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10

놀거리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참담하다. 참혹했을 이태원 골목길의 토요일 저녁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 너무나 많은 청년들을 어처구니없이 하늘로 보낸 일은 우리 사회가 두고두고 곱씹어 돌아볼 일이다.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만큼 앞으로는 절대로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외국 풍습에 젖은 놀이문화를 탓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즐길 거리를 충분하게 마련해 주지 못한 문화의 척박함을 돌아볼 생각거리이다. 이 땅의 사람들을 일과 경쟁으로만 내몰아 온 우리의 허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제라도 누구라도 여유롭게 즐기고 누릴 놀이문화를 길러내야 한다.탈출구가 필요하다.누구든 삶의 긴장으로부터 다소간의 해방을 즐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치열한 일상의 연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만끽하는 기회가 허용되어야 한다. 경쟁의 악다구니뿐 아니라 공동체의 푸근함도 느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적자생존과 무한경쟁, 추격과 탈취의 목표만 떠오르는 곳에 여유로운 문화의 향기가 피어나지 않는다. 견제와 긴장의 차가운 다짐을 풀고 포용과 관용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경쟁적 이념구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조화로움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래문화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문화로도 충분히 즐거울 가능성을 개발해야 한다.돌아보면, 공동체적 놀이문화가 우리 문화에도 숨어있었다. ‘가무에 능한 민족’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있었는가 하면 함께 즐기는 놀거리가 우리문화 안에는 수다히 존재하였다. ‘우리의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어째서 사라진 것일까. 우리가 가진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까닭모를 자격지심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우리의 옛모습과 전통, 오늘 우리가 선 자리 등에 관하여 더욱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오늘보다 따뜻해져야 한다. 다툼과 질시, 경쟁과 추격의 대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포근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즐기고 누리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줄다리기와 쥐불놀이, 숨바꼭질과 땅따먹기에는 함께 누리는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혹 겨루고 다툴지언정 늘 서로를 인정하는 눈길이 숨어있었다. 의식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어 끊임없이 다투기만 하는 신자유주의적 긴장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당당히 맞서고 이기고 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함께 즐거운’ 공동체가 살아나야 한다. 사회가 문화로 강하려면, 그 문화가 공동체를 지지하는 지평을 품어야 한다.젊은이들이 일상의 긴장을 풀고 주말의 여유를 즐길 ‘우리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벗고 문화를 향한 자긍심도 길러야 한다. 문화를 전통과 구습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오늘을 사는 세대들이 모두 함께 누리는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가 일상이 되어 즐거운 놀거리가 우리 안에서 솟아올라야 한다. 남의 문화에 기대어 비극적인 결말을 보는 참담함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문화가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도록 가꾸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모두가 이긴다.

2022-11-09

트라우마의 시대

홍석봉정치에디터 이태원 참사 사상자와 가족들의 후유증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장 목격자와 구호활동자 등의 심리상담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다.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데다 SNS 등에서 여과 없는 정보가 전달된 탓이 크다. 의료계에서는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의료계는 또 ‘이태원 참사’를 ‘10·29 참사’로 명칭 변경을 건의하고 있다. 특정 지명이 들어간 표현이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켜 트라우마를 더 자극할 수 있고, 낙인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봉화의 광산 매몰사고 생환 광부들도 마찬가지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생환한 두 사람은 매일 밤 깊이 잠들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르거나 경련을 일으킨다고 한다.잇따르는 각종 재난과 사고로 전 국민이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트라우마’는 프로이드의 심리학 이론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개인의 심리적 외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간의 정신상태를 드러내는 단어가 됐다. 전쟁 및 재난에서부터, 성폭행과 학대 같은 개인의 삶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가 우리의 생활 속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정부는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를 개소, 재난이나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재난과 사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재난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 지인 등도 충격과 상실, 스트레스를 받는다.재난과 사고로 심적 고통을 겪는 이들의 회복을 돕는 치료는 필수적이다. 그 보다는 재난과 사고가 없는 사회가 우선돼야 한다. 안전사회는 희망에 불과할까./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09

국가란 무엇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또, 다시 상상하기 어려운 참사가 발생했다.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156명 중 10~20대가 116명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8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이들은 20대 중반 청년이 되어 다시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8년 전 참사를 겪으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던 국가는 왜, 다시 이런 사태를 막지 못했을까? 참담한 마음이 너무 커서 애도를 표하기조차 어려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당일 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서울 한복판에 늘어선 구급차와 길거리에 누운 사람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했다. 이후 보도를 종합하면 참사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지만, 무슨 이유인지 경찰은 신고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던 해경의 모습이 겹쳐지는 대목이다.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서 배운 탓일까? 참사 발생 이후에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당일 밤부터 대통령이 주재한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희생자를 위한 지원 대책이 발표되었다. 용산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국가 애도기간이 지정되었다. 대통령은 국가 애도기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우리는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믿음을 전제로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 따른다. 경제적 이익이나 권력자의 안위 따위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인지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권력을 손에 넣을 때 발생한다. 요컨대 8년 동안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권력자들의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용산구청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등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에 대한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그들은 곧 사과했지만, 그 사과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은 자신의 평소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글은 정제할 시간이 있지만, 말은 무의식이 매개 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참사 초기 이번 사태의 희생자를 ‘이태원 사고 사망자’로 명명한 것은, 이번 참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법적인 주최가 없다는 이유로 중립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무)의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놀러 나간 사람들에게 정부가 장례비와 위로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조직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법을 빌미로 참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정부와 대중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현장에서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대재해 처벌법’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대기업과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동일했다. 이제 다시,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11-09

어느 가을날의 사색

오낙률 시인·국악인 가을 단풍이 절정에 든 모습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커다란 축제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요즘처럼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사람들의 마음은 본능처럼 달아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붉은색 노란색에서 오는 따스한 느낌이 인간의 몸에 혈류 순환을 돕기 때문 아닐까 싶다. 단풍이란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산천에 나무들이 제 몸에 머금은 물기를 내리고 겨울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나무가 제 몸에서 물기를 내리고 나면 푸르던 나뭇잎에 남은 색깔은 흙의 색깔인 황색과 불의 색깔인 홍색뿐인데 이는 지상의 모든 생명 구조는 물과 불과 흙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자연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의 생이 그 명을 다하면 그 몸에서 물이 제일 먼저 떠나고 그다음은 불의 기운이 떠나고 마지막 남는 것은 흙뿐이라는, 오묘한 생명 구조의 원리를 암시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현란하게 불타는 산야의 단풍을 보노라면 지난 여름 어느 축제장에서 본 불꽃놀이가 연상된다. 화구를 벗어나 끝없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다가 그 여력이 다할 때쯤 큰 소리와 함께 현란한 빛을 발산하며 사라지던 그 불꽃은 온 계절을 푸르게 일하다가 그 본분을 다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며 떨어지는 저기 산천의 단풍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축제장에서 산화의 빛을 발하며 생을 마감하던 그 불꽃이나 저렇게 아름다운 회상으로 제 살던 나무와의 작별의 준비를 하는 단풍잎을 보며 우리네 인간의 생(生)이라는 것 또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화려한 빛을 발하며 산화되어가는, 그런 불꽃놀이나 단풍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대기권에 존재하는 세상 만물은 태양 볕에 노출되는 그 순간부터 급속히 혹은 서서히 산화되기 시작한다. 그 산화하는 속도가 매우 급속한 현상을 두고 우리는 그것을 불이라 이름 지어 부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느리게 산화되는 과정을 생(生)이라 이름 지었고 조금은 느리게 몇 달 혹은 며칠의 시간 안에서 산화되는 현상을 두고 썩는다거나 발효된다고 한다.산화하는 모든 생명은 탄소배출을 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가지는 것과 내어놓는 것에서 균형의 법칙을 적용받고 있다. 흔히 나무가 산소 배출을 많이 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나무가 수명을 다하여 산화될 때 그 크기와 삶의 무게만큼 탄소를 배출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연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해서 사람들이 탄소배출의 책임을 인간 혹은 소 등의 동물류에게만 떠넘기는 것에 조금의 모순이 느껴지기도 한다.가을이면 나는 늘 푸른 바다 그 아래 산다. 사람들이 하늘이라 부르는 저 푸른 수평선 위로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푸른 도시의 주인이 되고도 싶고, 가을 바다에서 만난 온기를 지닌 해양 생물과 함께 푸른 세상을 가꾸고도 싶다. 촌부의 능력으로 어디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 또한 이 계절이 주는 ‘꿈꾸는 특권’이어서 나는 살면서 만나는 여러 개의 가을 중에 하나쯤은 어떤 그리움에 젖어 사는 가을이어도 좋을 성싶다.

2022-11-09

단풍잎 손

정미영 수필가 쌀쌀한 가을비가 쏟아졌다. 한 차례 내린 비로 아파트 화단에 단풍잎이 떨어져 소복이 쌓였다. 비 그친 뒤에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아이들이 단풍잎을 두 손 가득 머리 위로 던지고는 환하게 웃었다. 흩어지는 웃음 방울을 따라 옛 추억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아들이 어렸을 때, 집 근처 해맞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옆에는 키 큰 은행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 달라붙던 은행잎, 그 한 잎을 손에 들고 신이 난 아들을 보니 내 기분마저 상쾌했다.멀리 인공폭포 물이 세차게 흘러 내렸다. 쏴아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물소리를 듣자, 아들은 단숨에 달음박질하여 폭포수 앞에 다다랐다. 거친 숨을 고를 틈 없이 아들이 돌에 엎드려 물속에 손을 담갔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연못가 돌 위에 그림을 그렸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 놓고 ‘엄마 얼굴’이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 얼굴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를 그렸다니 기뻤다.정자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폭포를 뒤로하고 난간에 걸터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래하듯 소리치며 이리저리 뛰어 놀던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참을 찾았는데, 어느 순간 저만치 나무 뒤에서 아들이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엄마, 선물.”불쑥 내민 손에 이름 모를 풀이랑, 단풍잎이랑, 나뭇가지가 한 움큼 들려 있었다. 예쁜 그 손!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아들이 선물한 아기단풍 잎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쫙 펼친 아들의 조그만 손을 닮았다. 갈바람과 뒹굴며 놀았던 탓에 잘 마른 단풍잎은 조금 까칠까칠했다. 문득 내 아이의 손을 만져 보았다. 부드러웠다. 엄마 손의 감촉을 느꼈는지 아이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법 세게 잡으며 ‘엄마’하고 불렀다.그 날 우리는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큰방에서 이불을 개키며 정리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외마디소리가 들렸다.“앗, 뜨거워.”부엌으로 달려가니 아들이 싱크대 앞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다.“주전자가 뜨겁다는 것 몰랐어? 괜찮아? 큰일 날 뻔했잖아.”“소리가 나서….”엄마의 걱정 반 다그침 반 외침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사리 같은 왼손으로 오른 손의 둘째, 셋째 손가락을 가리키며 아프다고 했다.아들의 손을 얼음물에 재빨리 담갔다. 주전자를 짚었던 탓에 발갛게 부풀었던 손가락 끝이 다행히 가라앉았다. 조금 전에 불을 끈 가스레인지 위의 주전자에서 보리를 담은 망이 ‘딸그락딸그락’ 소리를 낸 것이 원인이었다. 과연 호기심 왕성한 네 살이었다. 소리가 궁금해 뜨거운 주전자를 만졌다니….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였다. 안아달라고 칭얼대며 품에 안겼다. 저도 놀랐을 터이고, 하루 종일 공원에서 뛰어다니며 논다고 피곤했을 터라, 안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눕히고 난 뒤 새삼스레 아들의 손을 만져 보았다. 가슴이 찡했다. 이렇게 작을 수가!아들이 처음 세상에 얼굴을 내밀 때였다. 빛을 만난 순간에 두려워할까 봐, 안심하라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기쁘다고, 태어나자마자 손을 잡고 인사했었다. 그 사랑스럽고 귀엽던 아기 손이 해를 거듭할수록 장난이 심해졌다. 때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궁금증에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 미울 때도 있었다.해마다 이맘때쯤이다. 찬바람이 불어와 단풍잎들이 흩날릴 때면 지나온 일들이 떠올라 그립다. 아들이 엄마의 손길을 믿고 잘 자라주었듯이, 앞으로도 나는 아들이 살아가면서 삶의 고비를 겪을 때면 그의 손을 꼭 잡아 줄 것이다. 초록에서 빨강, 노랑으로 곱게 변하는 잎사귀처럼 때론 고맙기도, 때론 밉기도 했던 아들의 손을 기억하며, 나는 지금, 단풍잎 한 잎을 내 손바닥에 올려본다. 가을이 담겨 있다.

2022-11-09

갑신(甲申)

육십갑자 중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갑신(甲申)이다. 천간(天干)은 갑목(甲木)이고, 지지(地支)는 신금(申金)이다. 갑목은 양기를 가진 큰 나무요, 신금은 동물로는 원숭이다. 물상으로는 커다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다.갑신일주(甲申日柱)는 우두머리가 되려는 욕망이 있으며, 자존심이 세다.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강하여 자기를 소진하는 경향이 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다재다능하다. 그러나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원숭이처럼 재능이 무궁무진하나 집안에만 있기는 어렵고 밖으로 다니기를 좋아한다. 체면을 중요시하며, 품위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므로 돈을 모으기는 힘이 든다.중국 전국시대에 제(齊)나라 임금인 장공이 사냥을 하러 성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떤 곤충 한 마리가 조그만 발을 쳐든 채 장공이 타고 가는 수레의 바퀴를 향하여 덤벼들고 있었다. 장공이 마부에게 “저것이 무슨 곤충이냐”라고 물었다. 마부는 “사마귀라고 부르는 곤충입니다. 저놈들은 앞으로만 나갈 줄 알지, 뒤로 물러날 줄 모릅니다. 저놈들은 자기 능력만 생각하고, 겁도 없이 상대방을 가볍게 여기는 버릇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장공은 “저놈이 사람이라면 아주 용감한 용사가 될 텐데….”라고 말하고는 말머리를 돌려서 그 사마귀를 피해갔다.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그 일을 듣고 자신들도 그와 같은 자세로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회남자 ‘인간훈편’에 나오는 이야기다.용기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덕이다. 지나친 용기는 화를 자초하는 수가 있다. 일명 망신살이 끼었다고 한다. 사주에 망신살이 있는 사람은 과감하고 성급하며 노출이나 언행에 실수가 많다. 갑작스러운 일에 우왕좌왕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일에 망신을 당한다. 특히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망신당할 일이 없다.갑신일주 특징은 꿋꿋하고 강직하여 굽힐 줄 모르며 모난 것 같으면서도 모나지 않는다. 단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기에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고 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천성은 인정과 의리에 치중하다 보니 좋을 땐 한없이 좋으나, 자기의 체면이나 체통을 손상시키면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는 급한 성격이기도 하여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갑신일주를 바위 위에 있는 소나무로 비유한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만큼 인내력과 적응력이 뛰어나다. 인생에 굴곡이 많은 편이 단점이다. 인생의 고난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그 고난을 이겨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가을 산행을 할 때 절벽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석선 선생의 시 ‘바위 위의 소나무’의 한 구절을 음미해본다. “바위 위의 소나무야/ 외로운 한 그루 소나무야/ 너는 사철 무엇 먹고 산단 말이냐// 흙이 있어 먹겠느냐/ 물이 있어 마시겠느냐/ 흙도 물도 없으니 무엇 먹고 산단 말이냐.”시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소나무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무는 근심 걱정 없이 그냥 존재할 뿐이다. 하이데거는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존재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했다.그리고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근심의 존재요. 그 길 끝에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는 비극적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존재는 흔히 평균화된 익명의 존재로 자신을 위장함으로써 이 삶의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라고 말한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근심의 신, 쿠라가 흙을 가지고 놀다가 이상한 형상 하나를 우연히 만들게 되었다. 쿠라는 그 모양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이게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마침, 영혼의 신 제우스가 지나가고 있어서 그에게 부탁했다. 그가 숨결을 훅 불어넣으니 살아 움직이는 흙덩이 즉, 사람이 되었다.그러나 세 명의 신이 각각 그게 자기 것이라고 고집했다. 먼저, 흙의 신, 호무스가 내 몸으로 만들어냈으니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쿠라는 자신이 만들어냈으니 내 것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제우스는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그 주인은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우겨댔다. 류대창명리연구자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심판의 신, 사튀른에게 가서 판결을 부탁하였다. 한참 숙고하던 심판의 신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래가지 않아 죽을 것이다. 그때 가서 몸은 호무스에게서 온 것이므로 호무스가 가지고, 영혼은 제우스에게서 온 것이니 제우스가 가져라.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만들어낸 쿠라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근심의 신 쿠라에 종속된 존재가 되었다. 결국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근심과 염려 속에 허덕이게 되고, 그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인간이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임을 알 때 비로소 염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유한성을 말한다. 곧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미래를 기획하는 존재가 된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예기치 못한 재난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깝고 불안하고 걱정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쿠라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타자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듯이 나 역시 타인에게는 타자가 되는 것이다. 타자란 사회 안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 된다. 타자를 서로 돌보아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우리의 마음씀 즉, 배려와 사랑이다.

2022-11-09

핼로윈 문화

조현태수필가 핼로윈 문화는 까마득한 옛날에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일종의 종교적 의식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에 대응하는 풍속이 핼로윈데이로 정착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무렵 미국에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에서 핼로윈 축제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근래에 와서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삼겹살데이, 밸런타인데이 같은 신종 문화가 한국에도 유행하여 축제 행사처럼 열리고 있다.이렇게 외국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듯 한국 문화도 외국으로 많이 전파되고 있다. 이는 어느 한 국가라기보다 세계 모든 국가와 사람이 점차 어우러져 통합되어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핼로윈 문화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적인 핼로윈으로 즐기면 될 일이다.2022년의 핼로윈은 대단한 충격과 슬픔을 남긴 축제로 기록될 것이다. 과밀한 인파에서 발생한 압사사건으로 무려 343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냈기 때문이다.방송사나 신문사의 발표를 보면 원인을 규명하고 처벌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도하고 있다. 경찰의 대응이 늦었다는 둥, 골목에 무단점유물이 문제라는 둥, 좁은 길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둥….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딱 꼬집어 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자성하라는 큼직한 꾸중이 아닌가 싶다.이번 이태원 참사의 특징은 뚜렷하다. 첫째, 외국 문화가 물밀듯 밀려와도 거절할 수 없는 지구촌 시대이다. 특히 젊은 층이 향유하는 축제 분위기는 저지 억제한다고 수그러들지 않는다. 둘째, 한국 사회가 저질러 온 무분별한 행동에도 문제가 있다. 긴급전화 112 혹은 119에 재미삼아 전화하여 장난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래서 경찰이 전화를 받아도 어디냐고 자꾸 따지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참에 긴급전화만큼은 발신자 위치와 번호를 자동으로 체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면 어떨까. 그래서 장난전화에 대한 처벌도 따라야 할 터이다. 셋째,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억눌렸던 감정이 축제 분위기와 겹치면서 과밀한 군중이 참여함으로 통제가 어려웠다.이태원 참사 중에 경찰이 적극 개입했다면 사망자 수를 훨씬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판단으로 조사 중이라고 한다. ‘경찰이 다 잘 했다고는 할 수 없듯이 참여한 군중이나 현장 사정은 전혀 문제가 없는가? 외국 문화에 거침없이 반응하는 지금 시대는 다 잘 했는가?’라고 질문해 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이미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고 또 이러한 변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의 질서나 신뢰가 더욱 발전하여 아름다운 사회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 황망한 슬픔에 빠진 유족에 진심어린 위로와 사랑을 전한다. 마음이 많이 상하겠지만 처벌과 보상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다. 온 국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로의 기틀을 잡게 하는 긍정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22-11-08

이제 그들에게 서른 즈음은 없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십대에는 / 서른이 두려웠다 /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 마흔이 되니 /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박우현 시인의 시집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작은숲, 2014)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시 1연이다. 겪어보지 않은 앞날은 늘 두렵고 떨리지만 지나온 날들은 아름답게 기억되게 마련이다. 그때는 좋은 줄 몰랐어도, 어쩌면 힘들고 괴롭고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었다고 해도 돌아보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옛날의 그때 그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죽음 앞에서 /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라고 삶을 관조한다.모든 날들이 절정이고 모든 나이가 아름답다고는 해도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라 벨르 에포크(La Belle 00E9poque)’는 역시 이삼십 대 아닐까? 삼사십 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누구에게나 스무 살의 추억과 아프건 슬프건 스물을 건너간 흔적을 지니고 있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마흔도 쉰도 예순도 될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설령 치매가 와서 기억이 소멸해 간다 해도 젊은 날 그 시절은 가슴 속 어디엔가는 향기 짙은 꽃으로 피어 있을 것이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브리핑에 따르면 11월 7일 기준으로 10·29참사 희생자는 외국인 26명을 포함하여 모두 156명이다.(나는 ‘이태원’이라는 땅이름보다 사고가 난 날짜를 쓰는 것이 더 낫고, 객관적인 용어라는 ‘사고’와 ‘사망자’보다 ‘참사’와 ‘희생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심정적으로도 그렇고, 사고의 상황과 언어적 맥락으로 보아도 그렇다.) 희생자 중 이십 대가 104명으로 정확히 2/3이다. 십 대 희생자 12명과 삼십 대 희생자 31명을 포함하면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그리고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나이에 세상을 뜬 젊은이들이 희생자의 94%가 넘는다. 외국인 희생자 역시 대부분이 이삼십 대이다. 이들은 한국이 좋아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자신들이 좋아하던 이 땅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음유시인으로 불리웠던 1964년 1월생 김광석은 갓 서른이 된 1994년 6월에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로 알았는데 멀어지고 잊혀지고 이별하는 젊음을 허탄해 하였다. 그리고는 서른 즈음 젊은 날을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1996년 1월에 세상을 떴다. 그런데, 젊음을 누리러 이태원에 갔던 우리의 어리고 젊은 벗 백여 명에게 서른 즈음이라는 시간은 영원히 없다. 다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스물 즈음만이 버려진 가방과 신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십 대와 오십 대의 안타까운 희생자들에게도 이제 서른 즈음이 없기는 마찬가지. 살아 있어야 서른 즈음 젊었던 날을 돌아보고 때로는 후회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이들이 가져보지 못한 서른, 돌아보지 못할 서른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은 스산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2022-11-08

사고의 전환으로 미래 준비해야

‘축의 전환’은 2030년, 약 8년 후에 닥칠 우리 사회의 단기적 변화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 변화에 대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국가나 자치단체의 정책부터 개인적인 행동까지 모든 상황에 대해 변화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변화는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이미 진행되고 있던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고 블록체인을 비롯한 신기술의 신속한 도입, 인구 고령화의 급격한 심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의 지속적인 상승, 신흥 산업국의 성장 등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그 과정에서 우리는 변화의 물결을 이끄는 가장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국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며 한 때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국가들이 한국의 성장을 부러워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미래는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임기응변의 순발력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이와 같은 맥락으로 영양군도 다가올 2030년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단적인 예로 현재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이런 위기를 변화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예측하고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 대비하는 등 강점을 잘 살리면서 약점을 보완하는 정책들을 펼쳐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특히 이 책에서 우리가 미래에 직면할 변화는 출산율의 변화, 노년세대의 재발견, 새로운 중산층의 출현, 여성주도 세상의 도래, 도시의 재발견, 신기술의 확산, 탈소유 경제의 확산, 새로운 화폐의 도입 등 8가지로 나누고 있다.이러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수평적 사고’라는 기존의 주어진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자체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수평적 사고’의 핵심 원칙은 멀리보기, 다양한 길 모색하기,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막다른 상황피하기, 불확실한 상황에서 낙관적으로 접근하기,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기, 흐름을 놓치지 않기 등 7가지이다. 오도창 영양군수 이 원칙들은 언뜻 보기에도 평범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요구받던 태도다.그러나 현실의 변화를 바로 읽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렇게 평범한 덕목일지도 모른다.2030년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먼 미래가 아니다.우리는 7∼8년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기회와 도전을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미래에 다가올 기회를 잡고 도전할 시기에‘수평적 사고’는 대단히 중요하다.우리 영양군이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들에‘수평적 사고’를 접목시켜 기존에 없었던 획기적인 정책을 마련해 우리 영양군이 더욱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이를 통해 모든 군민들이 미래 2030년의 변화에 잘 대응해 한 단계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희망찬 영양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할 것이라 믿는다.

2022-11-08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이유

참담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는 요즘이다. /언스플래쉬 며칠간 참담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일어난 참사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유가족의 아픔에 어찌 비할 수 있겠느냐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느낀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 몇 줄을 쓰는 것이 위선적인 행위처럼 여겨진다. 애도 위로 쏟아지는 혐오와 무분별한 언어폭력에도,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지점을 개인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일에도 완전히 지쳤다. 자꾸만 무너지고 무력해진다.마음이 자꾸 극단적으로 치닫는 이유는 분명하다. 같은 슬픔을 같은 마음으로 몇 번이나 경험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우리는 여러 죽음을 겪었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의 죽음과 삽시간에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 한 사람들. 우리 사회를 비통함으로 물들게 했던 참사들. 그에 따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되었다.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참사 전후의 예방과 대처는 여전히 미흡하다. 세상은 얼마나 더 끔찍해질 수 있을까. 상상의 범주를 넘어선 죽음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터널 안을 헤매는 기분으로 맥없이 고개를 떨어뜨린다.이태원 참사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를 본다. 이것은 숫자 이상의 고통과 상실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다는 뜻이다. 내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하룻밤에 사라져버리는 일. 경험하지 않은 자들이 쉽게 재단할 수 없는 마음에 놓인 이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그러한 아픔을 마주하는 과정에 예의를 지키기는커녕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말이 있다. 춤추고 노래하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일.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던 공간을 순식간에 부패한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일. 사람 많은 곳에 간 것이 잘못이다. 놀러 나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다. 이러한 말은 상대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절대적으로 근거 없는 힐난의 말이다. 이런 말의 깊은 곳에는 비이성적인 혐오가 뿌리잡고 있으며 개인 존재의 존엄을 축소하는 태도가 내재하여있다.그러니까 이것은 책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민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 일을 결코 종결지을 수 없다. 쓰러진 친구의 호흡기를 누르며 무릎에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도 자기 탓이라며 울부짖는 청년에게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일. 사고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생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공동체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민중이 국가권력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그 무능과 안일함을 질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을 떠넘기는 공직자들의 발언을 보면서도 그랬다. 상실감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지 못한 채로 책임을 절감시키기에 급급한 태도는 국가에 대한 믿음을 지워버리는 것이다.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상자를 혐오하는 발언이나 자극적인 영상, 기사들 역시 자기 책임을 내버린 일이다.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가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행해지는 일들이 있다. 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식의 발화는 엄격한 법적 장치를 통해 통제되어야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단순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잘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당연한 일상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지금 발붙이고 있는 이 시간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기로 느껴진다.‘나는’보다 ‘우리는’이라는 주어가 더욱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각자도생을 권유받는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참사가 타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멀리 두는 순간 자기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동시대를 걸어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며 이 모든 일에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쓰기까지도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나 역시 아픔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막막한 무력함으로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가 마음을 다잡는다. 이 발화는 나를 깨우치는 기록이다. 절대 잊지 않기 위함이다. 누군가의 고통이 결국에는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함께 아파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이유다.

2022-11-08

당신의 믿음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근처의 신축 빌라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인부 여럿이 다치고 죽었다. 어린 나는 내 가까이서 사람이 죽었다는 게 딱히 실감이 나진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토요 미스터리 극장이나 이야기 속으로 같은 무서운 TV 프로그램, 혹은 경찰청 사람들이나 공개수배 25시 같은 수사 프로그램에서나 나오던 이야기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늦은 밤 부모님 몰래 TV를 보는 아이처럼, 나는 한동안 사고가 일어난 주변을 몰래 바라보곤 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사람이 저곳에서 죽었다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사고는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당시엔 그런 일들보다 재밌고 신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린 나의 마음은 그 일을 오래도록 담아둘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오래도록 그 일을 잊고 있다가 다시금 떠오른 건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수업 시간에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노년의 담임선생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직 국민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던 때의, 아직은 체벌이 익숙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 그날 화가 난 선생님은 9살짜리 아이를 오래도록 혼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너 같은 애는 나중에 커서도 뻔하다. 저기 공사장에서 사람 죽은 거 아느냐. 선생님 말도 잘 안 듣고, 하느님도 안 믿고, 성경 공부도 안 한 사람들이다. 하느님 안 믿으니까 공부도 안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공사장에서 험한 일만 하다 천벌 받은 거다. 그게 다 죄다. 너도 커서 똑같이 그렇게 될 거다.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건 처음이었기에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려워 나는 큰소리로 오래도록 엉엉 울었다. 결국 소리를 듣고 놀란 옆 반 선생님이 양호실로 데리고 갈 때까지도, 나는 계속 울었다. 죄라는 건 TV에 나오는 험악하고 무서운, 귀신이나 범죄자들이나 저지르는 건 줄 알았던 나에게 담임 선생이 한 말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뺨을 맞고 펑펑 운 탓에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집에 돌아온 나를 본 할머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고모와 함께 학교에 쳐들어갔다. 그 담임선생이 고모와 같은 교회의 신자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의 일이다.무섭고 두려웠던 그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건 많이 놀랐던 탓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단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던 질문이 해결되었기 때문도 있다. 좀처럼 알 수 없던 사실이 슬며시 “아, 그래서였구나.”로 바뀌는 기억은 좀처럼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왜 죽는 것인지, 왜 누군가의 죽음은 저처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에게, 그날의 기억은 세상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그렇구나. 죽는다는 건 죄에 대한 벌이구나. 하느님 믿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성경 공부 잘 하지 않으면 죄인인 거구나. 그러면 저렇게 죽는 거구나.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죽게 되겠구나. 무섭도록 유치하고 단순하기에 더 잔인한 이야기. 그래서 오래도록 마음에 새겨지고 마는 상처 같은 이야기.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죽은 건,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이교도의 축제를 즐기러 가서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죽은 건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참사는 북한 공작이며, 이게 다 지난 정부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참사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죽은 앞에서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 신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빌리고는 무엇으로도 갚지 않는 사람들. 무섭도록 유치하고 단순하기에 더 잔인한 이야기.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야기. 누군가는 진심으로 믿게 될 그런 이야기. 참사가 벌어질 때면 매번 나오는 이야기.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어릴 적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래서 매번 다시금 묻게 된다. 내가 저지른 죄는 정말 그렇게 큰 죄였나요? 그들이 죽은 건 그렇게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요? 우리의 가난과 우리의 삶과 우리의 슬픔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 탓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들의 죄만을 대속하셨을 뿐, 우리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던 것인가요? 우리를 죄인이라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요.만약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를 향해 말하고 싶다. 예수께서는 누군가의 죄를 짊어지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당신은 누군가의 죄를 탓하고 욕하고 벌하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군요. 그건 지옥의 일이에요. 당신은 지옥을 믿는 사람입니다.

2022-11-08

“문제는 경제”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혼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선거 승패를 가를 핵심쟁점으로 ‘경제문제’가 떠올랐다고 한다. 미국 언론 여론조사에서 투표에 미치는 영향의 요인으로 응답자의 81%가 ‘경제’를 꼽았고, 78%는 ‘인플레이션’이라 응답했다고 한다.정치가 자당의 이해득실을 따져 온갖 음모술수로 정치적 이슈를 쟁점화하려도 국민의 눈에는 경제만큼 중요한 이슈가 없다는 해석이다.“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구호로 유명하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걸프전 승리로 인기 절정에 있던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누르고 승리한 빌 클린턴은 당시 미국의 경제난을 국민에게 부각시킨 덕에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의외의 결과에 미국 정치계도 놀랐던 일이다. 국민의 관심은 그 어떤 것보다 경제문제 해결에 더 많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미 중간선거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우리나라도 아마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경제는 사면초가 상황이다. 경제 3요소인 생산, 소비, 투자가 트리플 감소하고 물가는 다락같이 올라 서민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팍팍해졌다.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영끌족과 빚투족은 물론 서민층까지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으로 밤잠을 설치는 지금이다.2천조원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가계부채가 폭발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그 어떤 정치적 이슈가 경제를 누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의 근본은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 있다는 선현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 민심이 경제다.정쟁에 중독된 듯 싸움판으로 변질돼 가는 우리 정치에 국민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 경제문제를 푸는 정치가 바로 이기는 정치가 되는 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08

“핵전쟁 공포에서 의지할 곳은 정부뿐”

심충택 논설위원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면서 지난주(2일)에는 북한이 울릉도를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울릉도에는 요격미사일도 없어 만약 북한이 실제 미사일을 쏘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이날은 북한이 동·서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지대공 미사일 25발을 연달아 발사했다. 6·25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북한은 최근 우리 주요 도시를 목표로 정해 발사시간과 장소, 비행거리를 수시로 바꾸면서 미사일 성능시험을 하고 있다. 부산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을 겨냥한듯한 거리만큼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백령도 부근 NLL을 북한 상선이 고의로 침범한 뒤 방사포를 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 우발적인 전선(戰線)이 형성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국제정세도 심상찮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우리를 콕 집어 위협했다.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푸틴이 전술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언급할 때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며 ‘아마겟돈’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인류 멸망을 의미하는 아마겟돈이라는 단어가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은 놀랍고 두려운 일이다. 최근 한·미 양국이 북핵 공격에 대비해 매년 ‘핵우산 훈련’을 하고 미국의 전략자산(핵추진 잠수함, 전략폭격기 등)을 한반도에 상시배치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전쟁위험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북한은 최근 한국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5가지 조건을 열거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야당은 이태원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며 내각 총사퇴를 거론하고,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에서는 대통령 퇴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국가가 마치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이 와중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한미 합동 공중 군사훈련을 당장 멈추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으니, 야당 정치인의 사고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조선이 일제의 침략에서 버티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대적(對敵)할 무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1884년 겨울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갑신일록’에서 “창덕궁 무기고를 열었을 때 총과 칼이란 죄다 녹슬어서 처음부터 탄환을 장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기록했다.북한이 만약 핵전쟁을 유발할 경우, 여기에 맞서 대응할 무기가 없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앞으로 북한의 도발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핵실험을 넘어 예상치 못하는 수위로 도발해올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입맛대로 우리 국토를 미사일과 방사포로 유린하는 것은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발해도 국제사회가 그들을 공격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지금 우리 국민이 핵전쟁 공포에서 의지할 곳은 오직 정부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쟁(政爭)에 휩쓸려 시간을 허비해선 절대 안 된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북한의 핵도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수단을 갖춰야 한다.

2022-11-08

군민과 공직자 행복 위한 안내서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묻는다면 대부분 ‘행복’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긍정 심리학 교수로 행복(Happi ness) 수업을 강의한 탈 벤 샤하르 교수는 “지속할 수 있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확하고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군정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가치는 군정의 주인인 군민의 행복이다. 민선 8기가 출범하고 4개월 동안 많은 곳을 둘러보고 군민들을 만나며 어떻게 하면 군민 모두가 행복하고 잘 사는 봉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이런 고민을 할 때면 오래전 감명 깊게 읽은 책 한 권이 떠오른다. 20세기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약속된 미래가 아니고, 노력해서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1930년 출간된 이 책은 러셀이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지혜와 행복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출판된 지 10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행복이 우리 곁을 떠난 이유를 설명하며 경쟁이 심화된 현대 사회,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권태, 걱정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우리가 행복을 느끼고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소개하고 있다.러셀은 행복을 방해하는 걱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렇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현명한 사람은 고민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때만 고민하고, 고민을 해도 효과가 없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한다. 특히 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박현국 봉화군수 한시도 쉬지 않고 고민하기보다, 꼭 필요한 때 적당하게 고민하는 침착한 태도를 길러야 행복과 능률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에게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동료인 인간을 향한 따뜻한 관심은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러셀은 또한 “당신이 잘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군민들의 행복을 위해 잘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면 나 스스로도 행복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개인이 행복해야 사회 전체가 행복하다. 공직자가 행복해야 군민이 행복하고, 군민이 행복하면 공직자에게 그 행복이 돌아올 것이다. 군민의 안녕과 행복을 군정 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민선 8기 봉화군을 이끌어 가는 우리 공직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2022-11-07

미래를 여는 혁신

정상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삶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사랑하며 내일을 희망한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삶의 비전과 지금의 생각과 습관이 내일을 결정한다. 미래를 여는 혁신은 개인과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꾀하는 일이다. 미래가 없는 기업은 구성원의 희망을 잃는 것과 같고 꿈과 희망을 잃은 사람은 도전적이고 역동적일 수 없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매일 새벽 전쟁이 시작된다. 생존을 유지하고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세계 굴지의 기업은 기술문명이 발전하는 흐름에 따라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선택과 도전의 혁신을 했다. 가령, 삼성은 2000년 최고 CEO의 결단으로 미래 먹거리는 반도체로 보고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라는 콘셉트로 프랑크푸르트를 선언했다. CEO 주도 선택과 집중전략으로 불과 5년만에 일본 소니를 추월하고 세계 최고로 우뚝 선 것은 미래를 여는 경영전략을 타이밍에 맞게 실행한 결과였다. 일본에서는 삼성을 연구하는 1천200명의 전문가가 있고, 앞으로 5년 내 소니가 다시 삼성을 추월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본 경제학자 연구진이 쓴 책 ‘삼성이 두렵다’를 보면 삼성전자 모든 기업의 경영 흐름과 CEO의 일거수일투족이 분석되어 있고 미래 전자기술특허도 5건 확보했다고 한다. 기업의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겉도는 혁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혁신은 ‘가치있는 새로운 변화’라고 정의하는데 제도에 허가 있으면 실행에 허가 생기고 기획과 실행이 매칭이 안 되면 성과 달성도 어렵고 실행의 주체들로부터 불신을 갖게 되어 소멸되고 마는 속성이 있다. 한 번 기획하는 혁신은 10년 이상 가는 제도가 되어야 하고 100년 기업문화로 가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세계 선진기업인 도요타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보완하고자 할 때 현장 부서 200인 위원의 1차 의견수렴을 하고 초안을 만들어 설명회를 갖고 보완한다. 최종안은 직접 직원 설명회를 하고 다시 의견수렴 후 반영하여 최종 공지한다. 한 번 만든 제도는 중도에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룰과 매뉴얼의 문화’를 보여주는 일본과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한 한국은 다른 면은 있지만 기업의 기획과 실행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혁신은 대내외 변화와 경영전략과 연계하여 실행되어야 한다.필자가 지도하는 P사는 스마트 팩토리의 장기 비전을 갖고 추진되고 있고 비전을 향한 생산프로세스 분석과 설비고도화를 근간으로 첨단 제어기술과 수작업을 기계화·자동화·지능화하는 등 기술적인 개선으로 가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로 성공한 독일 지멘스는 제품생산 불량률이 0.000021%라고 하고, AI를 적용한 주행자율자동차는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교통사고율이 현저히 낮다. 이렇듯 기업에서 미래를 여는 혁신은 스마트 팩토리로 가는 길이며, 이에 따른 기업 생산 흐름은 MG세대를 넘어 알파세대(2010~2024년 출생)가 주도하는 생산시스템으로 세대 변화에 맞게 진화 발전해 나가야 한다.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경영 비전이 설정되고 혁신을 통해서 실현시켜 나가는 것으로 결정된다.

2022-11-07

그립고 아름다운 울릉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난 2일 오전 울릉도 전역에 공습경보가 내려졌다. 북한이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3발 중 1발이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온데 따른 경보발령 조치였다. 비록 날아가다가 동해상 북방한계선(NLL) 이남 공해상에 떨어지긴 했지만, 1분만 그대로 날아갔더라면 울릉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평온한 섬 울릉도에 갑자기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주민 긴급대피령이 내려지자 당국과 주민, 관광객들은 놀라움과 함께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불과 1주일 전에 울릉도를 다녀오고 이번 주 또 다시 울릉도에 입도하는 필자 역시 당황스러움과 함께 일말의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울릉도는 필자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40여년 전 고교시절에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처음으로 가본 울릉도엘 몇 번 가족과 함께 들어가서 성인봉을 오르고 독도를 찾았는가 하면, 직장 동료들과는 자전거를 타고 섬 일주로를 따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내수전옛길 트레킹도 즐기는 등 과연 울릉도에 각별한 애착(?)이 있어 보이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한 관광이나 탐방을 위한 입도는 차치하고라도, 울릉도에는 인연따라 마음따라 이어지는 지인이 있고 애틋한 사연과 추억이 물결처럼 늘 가슴 속에 일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가운 울도(울릉도)엘 늦가을의 소슬바람따라 이번에 또 들어가게 된 것이다.울릉도는 찾으면 찾을수록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명소나 관광지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한 번 가보고서는 절대 다 보고 알거나 제대로 느끼기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울릉도는 더욱 그러하다. 풀꽃 하나라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듯이, 울릉도·독도 전역이 국가지질공원이니 적어도 수 차례쯤은 가봐야 절해고도의 지질과 자연,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섬사람들의 풍습과 애환을 느끼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울릉도는 구석구석 신비로움에 쌓여있기에 사시사철 매혹적이고, 골골샅샅 호기심이 묻어나기에 늘 가슴이 울렁거리는지도 모른다.“삐죽삐죽 구불구불 위태위태 난 길따라/도동에서 통구미로 설레여 밟는 페달/태고의 신비 벗기듯 한 꺼풀씩 저어가네//낙타등 같이 굴곡진 태하령과 현포고개/숨소리 거칠어도 구슬땀이 달가운데/마루턱 언저리에는 바람의 결 정겹기만//파도의 하얀 안부 갈매기의 추임새에/코끼리바위(孔岩)이 꿈틀대고 삼선암이 들썪이네/어느새 관음도 눈썹이 노을빛에 수줍은 듯/애환 서린 내수전 옛길 아슬한 걸음으로/휘청이며 비틀대도 끌고 들고 메고 가니/두 바퀴 펼치는 세상 봉래폭포 환호성” - 拙시조 ‘울릉도 라이딩’ 전문이렇게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울릉도에까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표적이 되고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갈수록 많아지고 과격화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단호한 응징과 안보태세를 굳건히 갖춰야 할 것이다. 울릉도에 현재 상대적으로 취약한 안보, 방공시설의 확충과 방위시스템 등을 단계적으로 보강해야 할 것이다.

2022-11-07

커피믹스의 재발견

홍석봉정치에디터 경북 봉화의 매몰된 광산에서 광부 2명이 221시간 만에 기적의 생환을 했다. 두 광부의 생환에는 작업 투입 때 챙겼던 커피믹스 30봉지가 양식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믹스커피는 칼로리가 높고 다양한 영양소가 포함돼 있다.최초의 인스턴트 커피는 미국의 남북전쟁 중에 탄생했다. 1차 대전 때는 인스턴트 분말 커피가 개발됐다. 2차 대전 중에 수혈을 쉽게 할 수 있는 혈장 동결 건조 기술이 개발됐다. 전쟁이 끝나고 이 기술이 커피에 적용됐다.세계 최초의 커피믹스는 1976년 12월 동서식품이 개발했다. 커피와 설탕, 프림을 일정 비율로 섞어 커피를 타는 고민을 없앴다. 커피믹스는 1980년대까지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당시 사무실에 커피를 타는 직원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1997년 IMF 외환위기가 전환점이 됐다. 구조조정으로 일손이 부족해진 사무실에서 커피는 각자 타 마시는 것이 원칙이 됐다.이후 커피믹스는 한국인의 애호식품이 됐다. 커피믹스는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귀국때 가장 많이 사가는 상품이 됐다. 지난 2016년 한 여행사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장 맛있는 한국 차’를 조사한 결과 커피믹스가 식혜, 수정과, 매실차 등을 큰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특허청의 ‘우리나라를 빛낸 발명품’ 투표에서도 커피믹스가 훈민정음, 거북선, 금속활자, 온돌에 이어 당당히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커피믹스는 해외에서도 인기다. 편리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 뛰어난 맛 때문이다. 한류 열풍은 커피믹스 수요를 크게 늘리고 있다. 1봉지에 100원에 불과한 커피믹스가 사람 생명을 구했다. 커피믹스가 이제 ‘비상식량’ 필수품이 됐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07

‘맑은물 하이웨이’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2일 안동댐 기념탑에서 대구시와 안동시는 안동·임하댐의 맑은물 공급과 상생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구시의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과 안동시의 ‘낙동강유역 광역상수도 구축’ 사업이 상호소통된 결과이다.1991년 낙동강 페놀사고 이후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구시의 상수원을 강물에서 댐물로 전량 전환하는 사업의 출발점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대구시는 안전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 취수원 다변화에 노력하여 낙동강 본류와 댐, 강변여과수 등 다양한 대상을 검토하였다. 최근까지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유량과 수질, 경제성 측면에서 유리한 낙동강 해평취수장 취수를 추진하여 왔으나 이해관계자 간 갈등으로 결국 안동·임하댐으로 선회하였다.영남권 시도연구원이 공동으로 ‘깨끗하고 안전한 영남권 물관리 체계 구축방안’ 연구의 목적으로 2021년 6월에 영남권 주민 약 2천500명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하였다. 주요 음용수 이용형태를 물어본 결과 정수기가 47.3%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병입생수 27.6%, 수돗물 23.2%, 지하수·약수 1.9%의 순으로 나타나 주민들은 주 음용수 이용에 안전성을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사자 지역 대비 수돗물 품질이 우수할 것 같은 도시를 선택하는 질문에서는 경북 안동이 35.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로 보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지역민의 수요에 매우 부합한다.그런데 위의 주민 의견조사에서 대구지역민에 대해 상수도 경영 개선 및 수돗물 품질 향상, 물 낭비 예방을 위해 수도요금을 인상하는 의견에 대해 물은 결과, 반대하는 응답 비중이 61.6%로 찬성(38.4%)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수도요금 인상 반대는 성별로는 여성(65.7%)이, 직업으로는 가정주부(65.7%)가 주택유형으로는 상가주택(85.7%)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물값 인상이 불가피한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값 상승을 억제해야 하고 수요자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낙동강 상류 댐 이전에 따른 본류 수질관리 약화에 대비하여야 하고 안동시를 비롯한 상류지역 주민과의 상생협력 사업으로 신뢰기반을 지속적으로 쌓아야 한다.대구시와 인구규모, 도시위상 등에서 공통점이 많아 자주 비교되는 일본 제3의 도시 나고야시가 상류 지자체와 맑은 물 확보와 경제협력 등에서 근래 10년 이상 협력해온 사례는 우리의 물 갈등 해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0년부터 나고야시는 상류의 4개 현소속 많은 기초 자치단체와 연대 강화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장회의, 특산물판매시장, 상하류기업간 상담회, 유역민연대심포지엄, 나고야의수원·기소삼강유역 연대사업기부금 등을 추진해 왔으며, 유역연대 모범지역으로 일본수대상 특별상을 수상하였다.안동시는 ‘낙동강유역 광역상수도 구축’ 사업을 통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부흥하고자 하는데, 우수 물기업 유치와 인재 양성을 통한 물산업 진흥이 필요하다. 대구시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통해 맑은 물과 이에 대한 대가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양 지역간 신뢰와 이해가 소통되도록 해야 한다.

2022-11-07

우리들의 마음속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을까

대학에서 학생들과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 도저히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던질 때가 종종 있다. 문학 전공의 소설론 수업에서 늘 그렇듯 진행되기 마련인, 소설의 플롯이나 시점 같은 이야기들에 학생들이 더 이상 눈을 빛내지도 않고, 선생 역시 슬슬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이 되면, 슬며시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흘러가고 있는가. 그것은 어떤 형태인가, 또 어떤 색깔인가. 그래, 지금 이 지루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너머에 있는 세계를 더듬으며 딴 공상을 하는 바로 이 순간.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물길처럼 흘러가고 있을까? 아니면 제멋대로 메모를 붙여놓은 메모판처럼 얼룩덜룩한 상상들이 겹쳐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을까? 세상 많은 것이 그렇듯, 이 질문에는 정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은 모두 제각각이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다만 이 물음은 어느새 지루해져 버린 소설에 대해 강의하는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어딘가 저 먼 상상의 세계를 떠돌고 있던 마음들을 끌어모아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우리의 마음속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정답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호기심이 사라지거나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 우리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지금 무심코 생각이 흐른다고 쓰긴 했지만, 생각이 흐른다고 하는 것도 인간 사고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제안했던 ‘의식의 흐름’ 같은 것이 그런 모델이었다. 생각이 흐른다고 한다면, 인간의 사고가 문장처럼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떠오르고 사라져 가는 장면이 상상된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인간의 마음속이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어로만 사고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희부윰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들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다. 그 이미지는 사진이나 영상처럼 시청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음악처럼 순수하게 청각적인 것이기도 하며, 때론 가려움 같은 촉각적 상상이나, 달콤함 같은 미각적 상상을 동반하기도 한다.인간이 꾸는 꿈이 그렇듯,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올리는 생각도 아마 제각각일 것이다. 내용에 따라,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받게 된다면, 불행하게도 인간인 우리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수단은 아직 언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치 인간의 마음이 온통 언어로 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지만, 대체 말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하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또 누군가의 책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나 역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인간의 마음이 언어로만 되어 있지야 않겠지만, 아직은 언어를 통해서만 우리가 타인의 마음속에, 혹은 자신의 마음속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이다.답이 없는 물음에 답하고 있자니, 잠시 모였던 학생들의 마음이 또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떠나고 있다. 나 역시 오늘의 강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급한 마음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11-07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Ⅷ>

-그렇구나. 알았다. 기분은 좀 어떠냐? 요즘은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느냐?영권이 인호에게 물었다.-아버님께서 말씀하셨던 운이라는 것을 시험해보고 있습니다.-내가? 내가 운을 이야기한 적 있느냐?-예. 저번에 남해에서. 이런저런. 아버님의 좋은 운이 지속되셨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고맙구나. 잘 다녀 오거라.인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갔다. 많이 섭섭한가 보군. 남해에서의 대화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 이 년이나 지난 일을. 영권이 혼잣말을 했다. 영권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딱히 달리 할 것은 없었다.전화가 왔다. 필립이었다.-웬일이신가? 우리 다음 주에 만날 텐데?-네. 만나야지요. 제가 차를 보내겠습니다. 공개된 곳에서 뵙기가 좀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마련해두었습니다. 편안히 오시면 됩니다.-알겠네.약속한 날 저녁 필립이 보낸 차가 왔다. 회사에 소속된 차는 아닌 듯했다. 나름 철저하군. 생각보다 믿음이 가는데. 어쩌면 제 아비보다 낫겠어. 영권은 뒷좌석에 기대 필립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차는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 쪽으로 향했다. 운전사가 운전석 창을 열었다. 무겁고 싸늘한 밤공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영권이 웃옷의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춥지 않은가? 나는 좀 추운데.-아, 넵. 차 안 공기가 탁한 것 같아서요. 곧 닫겠습니다. 죄송합니다.물어보지도 않고 문을 열다니 기본이 안 되어 있군.태극기를 들고 앞장서 걷고 있는 가이드 뒤로 시의원들이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따라가고 있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가이드의 음성이 들렸다.-지금 보고 계신 이 강의 이름은 네바 강입니다. 생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는 큰 강이죠. 강물의 색을 한 번 보시겠어요? 잘 보시면 강물의 색이 푸르지가 않고 검을 것입니다. 이건 강바닥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도시가 건설되기 전, 이 근처는 모두 늪이었다고 합니다. 도시를 건설하면서 강이 형성되었는데요. 그래서 늪의 검은 흙들이 강의 바닥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이 검은 것이 아니라 바닥이 검어서 강이 검게 보이는 거지요. 거꾸로 생각하면 물이 맑아서 그렇다는 뜻도 됩니다. 깊이가 이십육 미터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 깊지요?넓고 깊은 강의 표면이 바람에 흔들렸다. 흔들리는 표면은 파도가 되어 강 가장자리의 벽으로 와 부딪쳤다.-빠지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여기는 깊고 물살이 빨라서 사고가 잘 납니다.가이드의 주의가 있었다. 자유 시간 십오 분을 줄 테니 둘러보시라는 말과 함께 가이드의 음성은 사라졌다. 인호는 강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강물의 색을 보고 싶었다. 가이드의 말처럼 검었다. 검은 강 위로 은색의 물방울들이 튀었다.지금쯤이겠지. 깊고 검은 강을 바라보며 인호는 생각했다. 저 강 아래 깊은 곳에 검은 진흙들이 있을 줄 어찌 알겠어.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알 수가 없지. 이 강물을 모두 마셔버리거나, 전부 바다로 쓸어낸다면 몰라도. 아니면 강으로 들어가 바닥까지 내려가 보거나. 그렇지. 바닥은 아무도 몰라. 아버지,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이제 강바닥을 한 번 보셔야지요. 바닥에는 검은 진흙들이 있답니다.이번에는 떨리지 않았다. 물건을 들어낼 일이 없으니 지난번보다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직접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노마는 백미러로 영권을 보았다. 뒷좌석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저기, 의원님.-뭔가?-안전벨트를 매시겠습니까? 가는 길이 조금 험해서 그럽니다.-험한 길을 험하지 않게 가야 베테랑 운전사인 것 아닌가? 최필립 회장, 그래 이제는 회장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최필립 회장이 고용한 운전사면 베테랑일 텐데.-베테랑입니다. 이제 곧 베테랑에게도 험한 길에 들어설 것입니다.-알겠네.영권은 뒷좌석 안전벨트를 찾아 매었다. 딸칵 소리가 났다.운전하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야.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나와 그러면 돼. 필립이 말했었다.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왼편으로 검은 저수지가 보였다. 이윽고 무언가 수면을 흔들며 저수지로 들어갔다. 어둠 속 수면에 비친 달빛이 부서졌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이곳,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어. 부서진 가드레일이 말해주었지만 거들떠보는 이는 없었다.이틀 뒤 보좌관이 영권의 실종신고를 했다. CCTV를 분석한 경찰이 강원도의 한 저수지에서 영권이 타고 있던 차량을 건져냈다. 영권의 차가운 몸에서 오직 한 곳 왼쪽 가슴속 인공 심장만이 굳은 핏덩이를 애써 밀어내고 있었다. /김강 소설가

2022-11-07

울릉도대피소 지하주차장건설로…학교 운동장 등 활용 필요

김두한 기자경북부 울릉도에 2일 오전 8시55분 갑자기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울릉도 주민들은 이태원 사고 사망자를 위한 묵념의 사이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이렌이 1분을 넘기면서 계속 울리자 주민들은 불안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TV를 보던 중 북한이 울릉도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자막을 봤다. 그러나 사이렌과 어떤 관계인지 아무도 몰랐다. 미사일이 울릉도를 향해 날아오자 공습경보가 내려 사이렌이 자동으로 울렸다. 것 그러자 더 불안해졌다. 어떻게 하라는 메시지도 없고 사이렌만 3분 이상 울렸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공황상태에 빠졌다. 울릉군청에 문의해도 자신들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는 것. 사이렌 소리가 중단됐고 각 방송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속초 동쪽 57㎞ 지점 울릉도 서북쪽 167km 지점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제 발사할 우려가 있다며 집에서 대피소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대기하라고 자막을 통해 계속 공지했다. 공습경보 메뉴얼에는 대피소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릉도에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울릉도에서 70년 가까이 살고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한 필자도 모른다. 그래서 국민재난안전포털 등에 확인해 본 결과 대피소는 완전 엉터리다. 대피소에 대해 더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울릉읍 관내 지정된 대피소에 울릉군민들이 대피하면 이태원사고보다 훨씬 압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대피소라 할 수 없다. 여기에 관광객까지 겹친다면 이태원보다 몇 수십 배 위험하다. 또한, 이 대피소는 모두 큰 건물지하다. 만약 미사일을 큰 건물을 겨냥해 발사하면 대피한 주민들은 모두 지하에서 목숨을 잃을 밖에 없는 구조다. 대피소가 아니라 그냥 지하이며 현재 모두 다른 기능으로 사용되고 있다. 울릉도에 미사일이 날아오면 그냥 집 있는 게 더 안전하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과제다. 그대로 방치 울릉도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다. 현재 울릉도는 대형 여객선취항으로 관광객 크게 증가 주차난을 겪고 있다, 앞으로 비행기가 취항하면 주차난을 더욱 심각하다. 따라서 주차난과 대피소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 울릉읍 내에는 울릉초등, 울릉중, 울릉고등학교, 학생체육관이 있다, 이들의 운동장은 모두 지상에서 3~5m 높은 곳에 위치, 지하로 뚫지 않고 옆으로 파고들어가면 된다. 울릉도주차난은 무조건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따라서 정부의 예산을 투입 앞당겨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울릉읍 저동~도동~사동 간 터널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도 과거에 거론된 사항이다. 일주도로 구간 중 도동~저동, 도동~사동 간은 언덕을 넘어야 하므로 겨울철 차량의 스파크 타이어장착으로 도로가 파손이 심하다. 터널을 뚫으며 도로파손방지는 물론, 시간 단축과 원활한 차량흐름으로 울릉읍 도동항과 시가지 교통 혼잡완화 등 쾌적한 시가지를 조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울릉주민들은 위한 대단위 대피소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일거양득이 될 수 있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울릉도의 가장 큰 현안 사업이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2-11-07

은행나무 유감

강길수 수필가 가로수 은행나무잎들이 황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은행잎들은 노랗게 변신할 것이다. 샛노란 얼굴로, 새봄처럼 가을을 밝힐 은행잎….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은행나무낙엽이 노랑나비 되어 팔랑팔랑 추는 군무를 바라보는 가슴은 기쁨이자 슬픔이며, 멀고도 가까운 저 너머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자, 기대이기도 하다.은행 종자 떨어진 가을 보도(步道)엔 아슬아슬 인생길 곡예가 공연된다. 떨어진 은행을 요리조리 피하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공연이다. 실수로 은행을 밟으면, 신발 밑창에 그 외종피의 고약한 냄새가 착 달라붙는다. 한 번 뭍은 냄새는 그냥 두면 오래 가 사람 기분을 언짢게 한다. 악취를 없애려면, 신발 바닥을 꼼꼼히 씻어내야 하는 고역을 치러내야만 한다.수년 전 한 가을날, 아내가 비닐봉지에 껍질을 까지 않은 은행 두어 줌을 담아왔다. ‘가로수 은행은 중금속 오염으로 먹으면 안 될 거’라는 말에, 시골에 사는 이로부터 은행을 얻은 친구가 그 일부를 나눠준 것이란다. ‘냄새나서 어쩌려고’ 하는 내 걱정에, 다음 날 남편 출근 뒤 혼자 펜치로 작업하였단다.며칠 후, 펜치를 쓰려고 봉지에서 꺼내는데, 은행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펜치의 손잡이 수지(樹脂) 부분에 은행 냄새가 밴 것이다. 아내가 은행 외종피를 벗긴 고무장갑을 끼고 펜치로 중종피를 제거했나 보다. 펜치와 함께 들어있던 공구들의 손잡이에도 냄새가 났다. 퐁퐁 탄 물로 공구들을 꼼꼼히 씻었다. 냄새가 조금 줄었을 뿐, 없어지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펜치 손잡이는 은행 냄새가 제법 난다.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 한단다. 신생대에 번성했는데, 고생대인 2억 7천만 년 전 화석도 발견되었다니 말이다. 긴 세월, 많은 기후환경의 변화에도 살아남은 은행나무의 비결은 무엇일까. 연구자가 아니기에 과학적 추론은 어렵지만,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리라. 외종피의 악취나, 몸체에 다른 나무들보다 해충이 없는 점 등을 보면 은행나무는 자기 보호력 강화 쪽으로 진화한 지혜로운 나무다.인간이 개체로는 약하지만, 공동체가 되면 지구의 어떤 생물 종보다 강한 것은 은행나무를 닮아서가 아닐까. 천부적 지능으로 도구 만들고, 집 지으며, 옷 짓고, 문화와 과학기술문명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인간의 지능을 다른 생명이 본다면 은행의 외종피 같지 않을까. 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간 문명’이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맘대로 온갖 생명을 주무르고 재미로 죽이기도 하니까.사람은 떨어진 은행을 피할 수 있고, 줍거나 따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생명은 인간을 그리할 수가 없다. 이성(理性)보다 지능을 앞세워 물질문명에 치중한 인간의 생활 행태는, 기후변화를 불러와 지구촌 뭇 생명이 생존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은행나무는 생존에 필요한 진화만 한다. 반면 인간은, 생존을 넘어 욕망만 채우려 자연의 하소연을 외면해왔다. 이는, 인간이 지구촌을 공멸의 길로 떠밀고 있음이다.인간이 은행나무의 지혜라도 좀 닮아가면 좋겠다.

2022-11-06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고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10월 29일 서울 용산에서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정부는 발빠르게 여러 가지 수습책을 제시했다. 수습책에는 단어 사용을 제한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교통사고로 서너 명이 한꺼번에 죽어도 참사라고 하는데, 156명이 한 곳에서 갑자기 죽은 일에 참사를 쓰지 말고 사고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이런 정부가 정말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까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이태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변명처럼 보인다. 이태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을 정말 염려했다면, 맨해튼 테러가 아니라 9·11 테러라고 한 선례처럼, 이태원이라는 지명을 빼고 10·29라는 날짜를 써야 한다는 국어학자 신지영 교수의 지적은 백번 옳다. 많은 희생자를 내고 붕괴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는 새로 지으면 위험이 사라지지만, 이태원이라는 지역은 새로 만들 수 없으니 사건 이름에 지역을 넣은 것은 그 지역에 영원히 낙인을 찍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을 수도 있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자, 참사라고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한덕수 총리가 외신 기자 회견에서 이번 참사 원인이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의 부족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드론 등 디지털 역량을 개발하고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한 대목에서는 검고 끈적한 덩어리가 목을 누르는 것 같은 좌절감이 들었다.먼저 이번 10·29 참사가 디지털 역량 부족 때문이라는 분석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사건 발생 네 시간 전부터 신고 전화가 빗발쳤고,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당시 그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 시스템이 이미 지난 9월 1일 개발이 완료되어 있었다. 이 시스템은 서울시 여러 지역의 실시간 혼잡도를 5분마다 집계해서 바로 보여준다. 관심만 있다면 충분히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혼잡과 위험이 예상되는 그날 아무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임자의 안전불감증이 문제지, 디지털 역량이 부족해서, 드론이 없어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그러나 원인 분석과 대안의 부당함과 비현실성 때문에 좌절감이 든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를 힘주어 말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기막힌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당당함과 무감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죽다’나 ‘다치다’보다 ‘사망’이나 ‘부상’이라는 한자어만 써도 그것은 활자화된 표현이 되고 나의 삶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한자어조차 이렇게 생생함을 떨어뜨리는데, 영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이 참사의 책임은 기술에 전가되고 보호해야 할 시민은 관리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방법은 10·29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2022-11-06

땀 흘린 훈련이 생명을 지킨다

김진국 고문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댄다. 대포는 수백 발씩 쏘고, 군용기 180대를 출동시켰다. 곧 제7차 핵실험이 예상된다.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공동성명에서 ‘김정은 정권 종말’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공포로 주저앉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의 일처럼 여기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은 안 된다.지난 2일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하루 미사일 25발을 쏜 날이다. 북한이 6·25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너머 울릉도 방향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았다. 다행히 미사일은 속초 앞 바다에서 더 비행하지 않고 떨어졌다. 그렇지만 실전 경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설마 하는 마음에 민방위 훈련이거나 이태원 참사 추모 사이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업을 계속하는 학교도 있었다. 울릉군도 우왕좌왕했다. 공습경보를 발령한 지 24분이 지나서야 대피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재난 주관방송사인 KBS는 100분이 넘어서야 공습경보 자막을 내보냈다. 정해진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미사일이 실제로 육지까지 날아왔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2010년 연평도 포격에서 보았듯이 ‘설마’는 없다.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는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실전 배치 단계에 와서는 무신경하다. 북한이 연일 도발해도 전쟁은 없다고 믿는다. 왜 위기를 조장하느냐며 방어체계 구축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서울 이태원에서는 아까운 젊은이 156명이 사망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여기서도 ‘설마’ 하고 안이했다. 경찰은 훈련 없는 울릉도 주민만도 못했다. 관할지인 용산경찰서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50분이 지난 밤 11시 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소방 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경찰에 15번이나 지원을 요청했다. 요청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기동대 배치 지시가 떨어졌다. 사전 예방은커녕 사후 긴급 요청에도 먹통이었다. 나사가 풀렸다.112치안종합상황실에는 사고 3시간 전부터 시민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상황실장은 참사가 난 뒤에도 1시간 24분이나 상황실을 비웠다. 집에 있던 서울경찰청장은 이때 상황실장으로부터 처음 보고받았다. 경찰청장은 서울이 아닌 제천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전화도, 문자도 연락이 되지 않다 다음날 0시15분에야 전화를 받았다.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고향인 의령 축제에 갔다 돌아와 이태원에 인파가 많다고 걱정하면서도 지역구 의원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에게 알렸다. 구청이나 경찰, 소방 같은 공식 조직에 연락하고, 사고 예방에 나서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같은 당파끼리만 놀던 조선시대도 아니고….군의 준비 태세도 불안하다. 북한이 미사일 25발을 쏜 2일 대응 사격한 미사일 3발 중 2발이 실패했다. 패트리엇 1발은 발사에 실패했다. 천궁은 날아가다 자폭했다. 지난달 4일 밤에 대응 발사한 현무-2C 탄도미사일은 뒤로 날아가 군부대에 떨어졌다. 그다음 날 쏜 에이태큼스 미사일 2발 중 1발은 표적으로 가지 못하고 추적 신호가 끊어졌다.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이 훌륭해도 실전연습만 못 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수도 키이우에 핵 공격용 특별방공호 425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피 훈련의 땀이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 심폐소생술(CPR)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쓰러진 사람을 방치할 수는 없다. 적어도 공습경보가 울릴 때 내가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화생방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경북 봉화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두 명이 무사히 구조됐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최선의 조치를 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평소 매뉴얼을 잘 익히고, 그대로 한 덕분이다. ‘징비록’에 일본 사신이 기생을 동원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준 상주 목사를 이렇게 조롱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늙은이는 여러 해 전쟁을 치르느라 수염과 머리가 다 하얘졌지만, 귀공은 기생들의 춤과 노래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지냈는데 머리칼이 왜 하얘졌소?” 서애(西厓)가 남긴 충고대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1-06

인생이 뭔가 싶을 때 꺼내 보는 책

잊지 못할 한 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 책장 앞을 서성였다.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감명 깊게 읽었으나 한 번 읽고 나면 손이 가지 않는 책이 있고, 두고두고 곁에 두고 꺼내 보게 되는 책이 있다.나에게는 ‘니체의 말’이 그런 책이었다. 벌써 여러 번 읽고 있지만 당시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매번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니체의 말’은 20세기 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 철학자 니체(1844~1900)가 생에 남긴 말들을 엮은 잠언집으로 자신에 대하여, 기쁨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마음에 대하여, 사랑과 지성,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보이지 않는 미래가 불안한 젊은이도, 저물어가는 인생에 허무함을 느끼는 어른도 만약 지금 어딘지 모르게 답답할 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 이 책을 만난다면 좋겠다.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이에게는 “공포심의 정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기에”이라는 말로 용기를 전하고,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이에게는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는 단순하지만 묵직한 말로 큰 울림을 준다.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면 일단 과거 자신의 경험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하지만 인간의 경험이란 한계가 있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걸어온 과정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기도 한다.내적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겪어보는 것이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단연 독서가 최고의 방법이다.바쁜 일상에서 책을 가까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기에 일상에서 책 읽는 시간만큼은 꼭 필요하다. 박남서 영주시장 책 가운데서도 삶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고전은, 인류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사람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나 역시 독서 시간을 따로 내지는 못하더라도, 틈틈이 책을 가까이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나 행정의 일선에서 시민들의 삶을 살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에 나를 포함한 시청의 모든 공무원들이 독서를 통해 유연한 사고의 폭을 넓혀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사회를, 시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더 고민하게 되기를 기대한다.영주는 선비도시로, 독서의 중요성을 어느 곳보다 잘 알고 있는 지역이라 자부한다. 선비들이 글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은 그 속에서 지혜를 찾기 위함이었다. 선비들의 독서의 힘이 지혜로, 지혜가 통찰력으로, 통찰이 창의력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깊이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선비들의 글 읽기를 통해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길을 찾았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독서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정신’과 ‘지혜’를 찾게 되길 바란다.독서는 문화자본을 상속받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어려움에 부딪히는 순간, 나를 비추어보고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니체의 말’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보길 바란다. 그 어떤 멘토보다 확실하고 정확하게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줄 것이다.

202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