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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원유 ‘싹쓸이’···빈 유조선 70척, 멕시코만으로 집결

김진홍 기자
등록일 2026-04-17 08:43 게재일 2026-04-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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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에 아시아 수요 급증···VLCC 평시 대비 2.6배
희망봉 우회 ‘60일 항로’···운임·공급망 부담 동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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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으로 인해 미국산 원유 확보를 위한 글로벌 쟁탈전이 심화되면서 에너지, 물류 등 공급망비용의 동반 상승우려가 커지고 있다. /클립아트 코리아 제공

이란 군사 충돌로 중동산 원유 공급이 막히면서 미국산 원유 확보를 위한 글로벌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빈 초대형 유조선(VLCC)들이 미국 남부 멕시코만으로 대거 몰리는 등 해상 원유 물류망이 급격히 재편되는 양상이다.

16일(현지시간) 선박 데이터와 업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으로 향하는 VLCC는 약 70척으로, 지난해 평균(27척) 대비 2.6배 수준으로 늘었다. 이들 상당수는 원유를 싣지 않은 ‘공선(空船)’ 상태로 미국으로 향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원유를 적재해 아시아로 되돌아오는 구조다.

유조선의 집단 이동은 중동발 공급 차질이 촉발한 수급 불안을 그대로 반영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원유 수출이 급감하자, 일본·한국·중국 등 아시아 수입국들이 대체 공급원으로 미국산 원유 확보에 나선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케플러에 따르면 3월 기준 미국산 원유의 아시아 수요는 전월 대비 8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항로 역시 비정상적으로 길어졌다. VLCC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어 아시아에서 출발해 말라카 해협과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미국으로 향하는 ‘서진 항로’를 택하고 있다. 편도 항해에만 약 60일이 소요돼 사실상 지구의 3분의 2를 도는 셈이다. 운송 기간이 늘어나면서 해상 운임 상승과 공급 지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부 물량은 파나마 운하를 통해 태평양으로 이동하는 중형 유조선(파나막스급)으로 보완되고 있다. 실제 최근 파나마 운하를 거쳐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원유 운반선은 4월 들어 하루 평균 8.7척으로, 3월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의 원유 수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4월 둘째 주 기준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522만5000배럴로 전주 대비 26% 늘어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출도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미국이 수요 증가에 맞춰 공급을 빠르게 늘리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 증산에는 시추 장비 확충과 인력 확보 등 준비 기간이 필요하고, 실제 신규 생산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미 석유 서비스업체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현재 가동 중인 시추 장비 수는 전년 대비 감소한 수준이다.

국내 연료 가격 상승도 부담이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수출 확대가 이어질 경우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정책적 제약도 존재한다. 과거 셰일 붐 시기의 과잉 투자 경험으로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공격적인 증산에 신중한 점도 변수로 꼽힌다.

결국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원유 가격뿐 아니라 해상 운임과 공급망 비용 전반이 동반 상승하는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로서는 조달 비용 증가와 물류 지연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할 전망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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