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반쯤 도착한 것 같다. 잠실 올림픽 공원 핸드볼 경기장 1-2번 출입구쪽이다. 가장 뜨거운 1-3 출입구 바로 옆이다. 휴대폰 충전을 무상 서비스해 주는 차량이 눈에 보인다. 그 뒤로 대형 리무진 버스 네 대가 섰는데, 모인 사람들에게 냉난방 휴식을 제공한다고 했다.
사태는 6월 3일 오후에 벌어진 것이었다. 잠실 제7투표소, 그러니까 정신여고 근처 투표소에 난리가 났다. 투표용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의 항의는 투표시간 종료후 투표함이 옮겨간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옮겨붙었다. 누군가 장소를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다. 넓은 공원이니 소음 피해 민원이 생길 수 없어 안성맞춤이라는 것이었다.
1987년의 6월 10일,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왜 그런지 나는 그날을 수십년 동안 일요일로 기억해 왔다.) 시청 앞에서 신세계백화점으로 통하는 주요 대로마다 빌딩숲에서 티슈들이, 화장지 뭉치들이 함박눈 내리듯 쏟아져 내렸다. 최루탄을 맞는 학생들·시민들을 위해 빌딩 각층의 사무실들에서 던져주는 용품들이었다.
2026년 6월 14일, 일요일 늦은 오후의 핸드볼 경기장 앞은 다시 태극기 물결이다. 천으로 그린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는 젊은이들도 있고, 손으로 손수 그리고 그려준 태극기를 든 사람들도 있다. 원형의 핸드볼 경기장 각 문마다 빼곡히 들어선 청년들의 외침, “부정선거·재선거, 당일 투표·수개표”가 압도적인 가운데, 국제적인 부정선거를 한·미 수사 공조로 전면적으로 조사하냐는 외침도 작지 않다.
이번 청년·학생들의 ‘일떠섬’을 무엇이라 부를까 할 때 여러 의견들이 제시된다. 잠실항쟁. 이 말은 장소성에 주목한다. 시청 앞이나 광화문이 아니라 올림픽 공원 있는 잠실에서 일어난 항쟁이라는 것이다. 항쟁이란 부당한 권력이나 억압에 저항하여 집단적으로 일어난 싸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잠실항쟁이 1987년 6월 항쟁과 다른 것 하나, 이른바 보수적인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 가장 기본적인 민주화 의제를 들고 일어섰다는 것이다.
다음, 자유민주혁명. 이 말은 싸움이 지향하는 한국 사회체제의 성격을 가리킨다. 잠실 공원에 모인 이들은 한국 사회가 자유민주 체제에서 일탈하여 좌익 전체주의로 기울어 버렸다고 분석·진단한다. 국민의 자유민주적 각종 권리가 박탈되는 중이다. 투표 용지 부족이라는 표면의 현상은 이면에서 작동해온 국민 주권 박탈의 한 현상일 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자유민주 체제 수호를 위한 마지막 방위 수단이었다.
마지막으로, 도화지 혁명. 이 말은 싸움, ‘시위’의 특징적 양상을 가리킨다. 청년들은 처음부터 기성 정치인을 거부했다. 모든 구태의연 요소들을 버리고 처음부터 자신의 힘으로, 날것 그대로의 싸움을 지향했다. 그 극적인 표현이 도화지로 그린 태극기, 엠프와 확성기 없는 외침, 장황한 연설을 거부하는, 리드미컬한, 선명한 요구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순수만을 무기로 내세웠다.
텅 빈 흰 공백에 태극기 하나를 그려 넣는 단심, 그 붉고 뜨거운 에너지. 이것이 이 혁명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