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개인전 대구문화예술회관서 열고 호평 “군자의 뜻 새기며 작품 활동 계속할터”
문인화는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시·서·화에 능한 선비들이 취미나 수양의 일환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양반 사대부 계급에서 발전한 화풍으로 그림의 기술보다 그린 사람의 정신과 교양을 더 중시하는 그림이다.
문인화 작가로 잘 알려진 천곡 문영삼 화백의 문인화전이 지난달 21일부터 26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경남 합천 출신의 문 화백의 천곡갤러리는 경남 합천군 묘산면 가산 2길 56-3에 자리하고 있다. 문인화의 관록 작가 문영삼 화백을 만나보았다.
이번 개인전은 2009년 대구미술인상 수상기념 문인화전과 2022년 대구아트페스티벌에 이어 세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가 서화에 관심을 두고 시작한 것은 70여 년 전이다. 그는 “유년기 한학자인 조부 밑에서 '명심보감' ‘천자문’ 등 한문을 공부하면서 붓글씨를 배운 것이 이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라고 했다. 청년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를 연마하면서 필력을 더욱 견고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지역에서 내노라 하는 대가들을 역방하며 다양한 서체를 익혔다. 서예를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 운필 능력이 향상되자 어깨너머로 봐왔던 문인화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절 대구 문인화단은 학습 자료가 매우 부족하던 시절이라 어렵게 판교(板橋) 정섭(1693~1765)의 도록을 구하여 독습하기도 하고, 난초는 원정(園丁) 민영익(1860~1914)의 화집을 구해 독학했다고 했다. 포화(1832~1911)와 오창석(1832~1911)의 화집도 구해 사숙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어느 집 담장 너머로 난초가 보이자. 하차해 눈으로 익히다가 다음날부터 다시 그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난초를 익혔다고 한다. 나중에는 작가가 직접 난초를 재배했던 일화도 있다. 그는 지금은 정신집중을 위한 명상(冥想)을 통해 문인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열정을 쏟는다고 한다.
그는 2009년 한국문인화협회전(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등 단체전에도 40여 회에 걸쳐 참여했다. 또 전국 문인화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으로 활약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문 화백은 한국문인화협회 부이사장과 대구지회장을 역임했고 죽농사단자문위원, 22대, 23대 대구미협 부회장도 역임했고 대구대학교 교육원의 강사로도 지냈다.
수상 경력도 다양하다. 2009년 대구미술인상, 한국예단 초대작가 초청전, 우수작가상, 한국예총회장상, 친환경미술협회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군자의 뜻에 누가 될까 두렵기도 하지만 이 길이 나의 소명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번 전시회에 9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권정태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