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만8000명 고용창출·17조원 경제효과에 고무돼 주민 식수의 중요성 간과…'최소한의 생명선' 도외시 불가능한 지역에 산단 조성을 밀어붙인 배경 궁금
경북 울진군이 죽변면 후정리 일원에 추진 중인 152만㎡(46만 평) 규모의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장밋빛 청사진에 가려진 채 법적 기준과 환경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본지가 국가 전략 산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입지 부적절성’과 ‘막무가내식 행정’의 실태를 추적한 결과, 이번 사업은 시작부터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울진군의 야심작 원자력수소산업단지
2022년 7월. 울진군은 새 민선 군수 체제가 들어서면서 100년 먹거리 사업 발굴에 나섰다. 이때 등장한 아이디어가 울진 원전과 연계한 청정에너지 수소 산업단지 조성이었다. 무공해 산업인 원전과 꿈의 에너지 수소가 결합한 국내 최고의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프로젝트로, 계획대로만 조성되면 연 3만8000명의 고용창출과 17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무원들과 용역업체가 힘을 모아 계획서를 만들었고 2022년 10월 국토교통부에 사업 승인 신청을 했다. 주민 서명 운동과 후보지 선정 절차도 병행했다. 미래 울진 먹거리라는 청사진에 찬성이 주류를 이뤘다.
국토부도 화답했다. 이듬해 3월 수소산단 공식 후보지로 발표했다. 또 국토부 산하 정부투자기관인 LH가 사업자로 참여를 결정했다. LH가 사업참여자가 된다는 건 성공 보증수표, 즉 국가가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관련 업계로부터 폭발적 관심을 모았다. 한발 더 나아가 기획재정부는 예비타당성 면제까지 해줬다. 사업이 날개를 달았고, 울진군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산단
그런데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이었다. 수도법(제7조2)과 수도법시행령(제14조2)에는 상수원 보호구역에서의 공장 설립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강행규정으로 예외가 없다. 최소 10km가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산단에서의 거리는 5.9km로 기준대비 4.1km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이유에 대해 “오염 사고 발생시 상수원으로 유입되는 시간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수소 산업은 친환경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생산 과정에는 다양한 화학 공정이 포함된다. 내부 자료에서도 “폐수·화학물질·사고 유출물이 하천을 따라 상수원을 오염시킬 가능성”을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지 선정 단계에서 수계 영향은 후순위로 밀렸다. 산업 육성 논리가 환경 안전 논리를 압도한 전형적인 사례로 지목되는 이유다. 애초부터 이 지역에는 수소산업화 시설이 들어서면 안 되는 곳이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인가
울진군은 후보지 선정 당시 대 주민 서명운동을 통해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정상적인 행정이라면 법적 제한과 환경 수용성을 먼저 검토한 뒤 입지를 선정해야 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산단 필요성’을 먼저 못 박아두고, 그에 맞춰 법적 해석을 끼워 맞추는 ‘목표 맞춤형 행정’의 전형을 택했다. 입지가 법에 맞지 않으니 법을 우회하는 편법을 택한 것, 다시 말해 교묘하게 법령을 비껴간 수법이 적용됐다.
이런 울진군의 행정 행위에 대해 경북도는 물론 중앙정부 어느 곳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보증을 하고, LH가 사업시행자가 됐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시장 재임시절 대구공항 후적지 개발을 위해 LH가 시행기관으로 나서달라고 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동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만 봐도 LH 등장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또 그 까다롭다는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해 줬다.
지자체들이 통상 국책 사업을 하려면 예타를 먼저 통과해야 한다. 공무원들은 이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들 입을 모은다. 대부분 지방 사업들은 이 단계에서 주저앉기 일쑤다. 실제 중앙정부에 머물다시피 하면서 애원하고 사업을 설명해도 권한을 쥔 기획재정부 실무자를 만나기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사업은 군에서 추진된 지 1년 반 만에 예타 면제 대상이 됐다.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은 이래서 나온다.
◇설계 전문가인 굴지의 용역업체는 왜 간과했나
이 수소산단 조성 사업의 용역은 국내 굴지의 엔지니어링업체 D컨소시엄이 수행했다. 조사설계 용역 당시 금액은 약 78억원.
이 업체 종사자들은 산업단지 관련 법령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왜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어서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땅에 수소산단을 지으려는 설계를 맡았는지도 의문이다.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어서 몰랐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상수원 보호구역 용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사업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나쁜 선례 남기지 않아야
전문가들은 국가 전략 산업이라는 이유로 상수원 보호 기준이 무너진다면, 향후 다른 지역의 환경 규제 또한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한다.
“지역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환경 안전망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도구라는 지적도 있다. 한 번 오염된 수계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어도 되돌릴 수 없다. 경제 논리가 생존의 근간인 물 안전을 압도하는 순간, 국가의 존재 이유는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울진군은 이 사업이 성공하면 3만 8000명의 고용 창출과 17조 원의 경제 효과를 장담하며 인구 10만의 에너지 도시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 기반이 되는 것은 원전 사고의 위험과 식수원 오염의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의 희생이다. 산업단지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지만, 수만 명의 식수원인 상수원은 대체 불가능하다. 울진 수소산단은 법 위에 정책이 서려 하는 데서 출발한 오만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법은 존재하고 기준은 명확하며 위험성은 이미 예고됐음에도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정책 실패를 넘어선 의도된 판단이다. 행정이 스스로 정한 법을 어기면서 군민에게 신뢰를 바랄 수는 없을 터다.
울진군 주민 A씨는 “군민의 생명줄인 상수원 보호라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대한 행정적 의무조치마저 유기한 채, 오직 치적 쌓기 용 산단 조성에만 혈안이 된 울진군의 행태는 사실상 군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