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자신을 내려놓거나, 대상을 존경하거나, 신을 섬길 때나. 감사의 표시를 할 때 보통 행하여진다. 수양, 존경, 신앙, 감사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고귀한 행위이다. 절에 대한 4가지 앙꼬를 떠올리면, 절은 아무 곳에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구걸을 위하여 절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몇 년에 단 한 차례.
‘선거철 절’이 그것이다. 이런 귀한 절이 선거철이 되면 마냥 넘친다. 평소에는 절을 받는 자들이 이때는 절을 하는 자들이 된다. 그들은 나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한 표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내가 가진 ‘한 표라는 대단한 권력’ 앞에 잠시 무릎을 꿇는 것이다. 받고 싶지 않은 절이지만, 그것도 나를 향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들은 나를 통하여 자신을 수양할 이유도 없고, 나를 존경할 턱도 없고, 나를 신처럼 경배할 리는 더욱 없다. 감사의 절은 내가 그들에게 한 표를 던져주었을 때 사후에 받는 것이므로, 표를 던지기 전이라 감사의 절을 받을 수도 없다. 설혹 절하는 그들에게 나의 한 표를 던졌더라도, 선거판이 끝나면 그들의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절을 받은 사후의 대가는 특이하다. 당선된 자들은 임기 내내 절을 돌려 받아 수십 배로 회수한다. 남는 장사다. 낙선된 자들은 다음 절판이 벌어질 때까지 자신이게 표를 주지 않음에 대한 서운함으로 원망의 세월을 보낸다. 괜히 찜찜하다.
사실 나는 그들의 절을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다. 받을 마음이 없다. 아니 받기도 싫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은 그들의 절의 각도, 절의 횟수, 눈물의 양이 아니라, 정책의 내용, 문제 해결 능력, 도덕적 책임, 공적 기록이다. 평소에는 ‘내가 옳고, 내가 최고요, 내가 적임자’라고 외치는 그들이, 선거철만 되면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읍소한다. 말투도 ‘내’에서 ‘저’로 바뀐다.
그들의 절은 자신을 내려놓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더욱 올려놓기 위함이다. 평소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조차도 한 표를 준다면 부처님 저리 가라다. 절의 방향은 아래인데, 그들의 마음은 위를 향한다. ‘한 표라는 신’을 경배하는 그들이 벌이는 사거리 신전은 수행자들로 넘쳐난다. 그들의 가사 장삼은 붉은색, 파란색, 하얀색 등등으로 형형색색이다. 교차로 신호의 색깔이 바뀌면 그들의 절의 방향도 달라진다. 언제 이러한 일사불란한 예의와 존경의 파티가 있었던가! 참으로 대단한 수행도량이다. 공자님께서 이 광경을 보면 ‘참으로 예가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하실 일이다. 공자님의 지고지선인 인의 결정판 극기복례의 생활 현장이다.
설날 세배를 드리던 순간의 절, 자신을 내려놓기 위하여 구슬땀을 흘리는 절, 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몸을 낮추는 절은 신호등이 지휘하는 사거리 판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가짜 수행자들에게서 절 한번 받았다고 나의 소중한 권한을 허투루 행사할 일이야 없겠지만, 인공지능이 인류를 이끌고 갈 이 시대에 벌어지는 사거리 광경은 참으로 가관이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도 모르고···.
/공봉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