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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보다 정동

등록일 2026-05-20 18:42 게재일 2026-05-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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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인문학자

지난 5월 8일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정치인 세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눈물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순직 공무원 부모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연설하다가, 정청래 대표는 ‘노상원 수첩’에 기재된 연평도 수용소 현장 검증을 거론하며 분노하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헌법개정안 상정에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대하자 그들을 비난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같은 눈물을 보고도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히 달랐다. 누군가는 그 눈물에 공감했고, 누군가는 ‘정치적 연출’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뒤에 어떤 판단이나 해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들의 눈물에 공감하기도 하고 비난했을 것이다. 이렇게 감정은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화론적으로 보아도 감정은 생각을 뒷받침한다. 맥스 베넷은 ‘지능의 기원’에서 감정은 생존을 위한 방향 감각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약 6억 년 전 좌우대칭동물이 등장하면서 지능이 발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한 것은 ‘좋음’으로, 불리한 것은 ‘나쁨’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회피할지를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방향을 정하는 것은 생각이고, 그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감정인 셈이다.
 

문제는 자극에 대한 판단이 내 생존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감정은 모두 진실한 것이라 착각하며 기꺼이 몸을 맡긴다. 그러나 한번 자리잡은 감정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어떤 뉴스를 보고 감정에 압도되어 거칠고 부정적인 댓글을 달았다가 지운 적이 여러 번 있다. 물론 미처 지우지 못하고 남은 흔적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 생각과 다른 오피니언 리더의 견해를 보거나 인플루언서의 행태를 보다가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는 데도 분노에 쉽게 끌려들어갈 때가 많다. 
 

다만, 이런 감정이 일어나기 전에는 정동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정동이란 어떤 자극에 대해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몸의 동요 상태이다. 화병 같은 예만 보아도 우리는 어떤 강한 부정적인 자극이 오면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몸이 먼저 떨리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험을 한다. 이런 것이 정동이다. 자신의 정동을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면, 감정에 휩쓸릴 가능성도 줄어든다.
 

5월 8일, 세 정치인의 몸에는 어떤 정동이 일어났을까. 이들의 눈물에 공감하는 사람의 몸에는, 그리고 이들의 눈물을 비난하는 사람의 몸에는 어떤 정동이 일어났을까. 남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그때 나의 정동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가 자신의 정동을 조금이라도 더 잘 관찰할 수 있다면, 강한 감정에 휩싸일 가능성도 줄고, 반목과 갈등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요즘처럼 감정이 정치가 되는 시대일수록, 자신의 정동을 관찰하는 능력은 정치인은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중요한 교양이 된다. 

/유영희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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