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갤러리분도, 청년작가 장미 개인전···공간 연출 덜어내고 ‘평면 회화’로 내면 응시 고(故) 박동준 대표 뜻 이어···신진 작가 지원 ‘단독 프로모션’으로 확대 후 첫 무대
말과 글이 닿지 못하는 아득한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감각이 있다.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이 아련한 지각의 경험들이 캔버스 위에서 아늑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사)박동준기념사업회(이사장 윤순영)와 갤러리분도는 오는 6월 15일부터 7월 3일까지 대구 중구 갤러리분도에서 청년작가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장미(42) 작가의 개인전 ‘Warm Greetings, My(···.)/다정한 인사’ 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청년 미술인을 발굴하고 후원해 온 고(故) 박동준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아, 기존의 지원 프로그램인 ‘카코포니 플러스’를 보다 깊이 있는 단독 프로모션 형태로 발전시킨 첫 무대다.
올해의 주인공인 장미 작가는 그동안 회화, 설치, 영상 등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인간이 마주한 다면적인 상황과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2016년 대구 ‘올해의 청년작가상’을 시작으로 2021년 ‘아트체인지업상’, 2025년 ‘하정웅청년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미술계에서 탄탄한 역량을 인정받은 작가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주로 외부 세계와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했다. 2016년 회화 설치작업 ‘Dear my friends’를 통해 경험 공간을 재구성했고, 2019년 ‘Trauma Trickster’에서는 난민 문제를 통해 타자 인식의 한계를 짚었으며, 2022년 영상작업 ‘SAY’에서는 언어가 지닌 무게감을 시각화했다. 이전 작업들이 관람객의 직접적인 공간 참여와 소통을 유도하는 무대 같았다면, 이번 개인전은 그 감각의 발생 지점을 철저히 작가의 깊은 내면세계로 돌렸다는 점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장미 작가는 공간 중심의 연출을 절제하고, 오롯이 ‘평면 회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전시작들은 외부 사건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 축적된 감각과 기억의 파편들을 정교하게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화폭 속에 등장하는 터널, 길, 자동차, 나무 등의 모티프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이동과 변화, 그리고 감정의 전환을 매개하는 상징체로 기능한다. 특히 어둠과 빛을 연결하는 ‘터널’은 내면의 감정이 변화하는 핵심 통로가 된다. 화면은 인물이 배제된 채 낯익으면서도 어딘가 어긋난,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묵직하고 어두운 색조 속을 가로지르는 빛의 변주에 대해 작가는 ‘깊이 따뜻한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표현 방식에서도 작가는 붓질의 궤적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노출하며, 단단하게 채색된 부분과 그리다 만 듯한 미완의 형상을 한 화면에 공존시킨다. 완결된 결과물보다 형상이 구현돼 가는 역동적인 과정을 관람객과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다. 이러한 화법은 ‘얼마나 채웠는가’보다 ‘어디에서 멈추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의도적인 여백을 남겨둔다.
정수진 갤러리분도 큐레이터는 “장미의 작업은 명확한 서사적 메시지를 주입하기보다 감각을 통해 정서를 환기하는 일종의 ‘조형적 마음사전’과 같다”라며 “언어나 학구적인 화법으로 재현할 수 없는 마음의 표정과 질감이 관람객에게 스며들어 깊은 시적 정화를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북대 미술학과와 동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장미 작가는 대구, 베를린, 중국 등 국내외에서 6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대구미술관 ‘새로운 연대’전 등 여러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독일 베를린 다베네트워크 레지던시와 중국 항주 중국미술학원국가대학과학기술원 레지던시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한편,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청년 미술인을 발굴하고 아낌없이 지원해 온 고(故) 박동준 갤러리분도 대표의 숭고한 유지를 이어받아 기획됐다. 생전 “역량 있는 청년 작가들이 흔들림 없이 예술에 정진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사)박동준기념사업회는 젊은 작가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이에 2008년부터 이어온 기존의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 ‘카코포니 플러스’를 올해부터 보다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성장을 돕는 ‘연 1회 단독 개인전 프로모션’ 형태로 전격 확대 발전시켰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