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감수성으로 물든 스크린··· 애니메이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개봉 김향기·박지후·이주영, 목소리로 완성한 빛나는 청춘의 서사 허평강 감독 “캐릭터와 배우 간의 진정성 있는 싱크로율이 핵심"
한국 SF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베스트셀러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수록작인 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마침내 감성 SF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극장가를 찾았다.
이번 영화의 원작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2019년 출간 이후 4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큰 사랑을 받은 동명의 단편소설이다. 스스로 완벽한 유토피아를 떠나 불완전한 세계를 선택한 이들의 아름답고도 독창적인 여정을 영상 언어로 새롭게 구현해 냈다.
포항공대(POSTECH)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의 김초엽 작가는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세계관 위에 인간 소외, 차별과 배제,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인문학적 시선을 녹여내며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아왔다.
이처럼 이공계적 상상력과 문학적 서정성을 겸비한 김초엽 작가의 원작 세계관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어떻게 재창조됐을지 문화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6월 3일 CGV 단독 개봉을 통해 관객들과 만남을 시작한 이 작품은 극장가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충무로가 주목하는 세 배우 김향기, 박지후, 이주영이 목소리 연기로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올여름 스크린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짙게 물들일 웰메이드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은다.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허평강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중심지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온 베테랑 연출가다. 성균관대 영상학과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는 와세다대 교환학생을 거쳐 일본의 유명 제작사인 ‘매드하우스’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데스노트’, ‘명탐정 코난’, ‘하이큐!!’,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 40여 편이 넘는 굵직한 작품들에 참여하며 스토리보드 작가와 연출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세계적인 거장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출 세계를 구축해 왔다.
허 감독이 2019년부터 대본 작업에 매진해 온 이번 영화는 본래 30분 분량의 중편으로 기획됐으나, 치열한 노력 끝에 러닝타임을 60분으로 늘려 공간의 시각적 디테일과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 넣었다. 이러한 완성도를 인정받아 오는 6월 21일 개막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제50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국내 첫 데뷔작을 선보인 허 감독은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정형화된 성우의 연기 톤 대신, 각 캐릭터가 지닌 내면의 결핍과 미묘한 감정선을 가장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실사 영화와 같은 담백하고 일상적인 호흡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룰 것이라 판단해 폭넓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캐스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낙점된 배우 김향기, 박지후, 이주영은 인물과의 놀라운 싱크로율은 물론이고 연기를 향한 깊은 진정성을 선보였다.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김향기(소피 역)는 소피 역의 구상 단계부터 허 감독의 ‘뮤즈’였다. 외유내강형 캐릭터인 소피의 작화 작업 과정에서도 김향기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투영됐다. 영화 ‘벌새’를 통해 사춘기 소녀의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해냈던 박지후(데이지 역) 역시 이번이 첫 목소리 연기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대본 분석과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제작진의 감탄을 자아냈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카리스마와 따뜻한 리더십을 동시에 지닌 올리브 역에는 이주영이 적임자였다. 특유의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캐릭터의 저항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극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허평강 감독은 “세 배우의 참여는 이 작품에 있어 가장 완벽하고도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며 강한 신뢰와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 속 지구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이 가득한 곳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불완전함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작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허평강 감독은 “원작이 가진 따뜻한 서사 위에 세 배우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더해져 작품의 깊이가 한층 더해졌다”며 “이 영화가 관객분들에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어떤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