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서원은 이예 선생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넓은 들을 품어 안고 고즈넉하게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오래 된 모과나무이다.
족히 300년은 되었을 고목은 겹겹이 갈라지고 줄기 가운데 부분이 움푹 패어 비어있다. 그것이 오래 버텨온 나무의 시간을 말해준다. 가끔 오래 된 절이나 산에서 가운데가 뚫린 고목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 나무가 그 날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모과나무는 어릴 때에는 비교적 곧은 줄기를 가지고 있다. 세월을 겪으며 나무껍질이 조각조각 벗겨져 울퉁불퉁하게 된다. 벚꽃처럼 한 번에 활짝 피어나는 화려함과 화사함은 적지만 연분홍꽃이 피는 봄의 모과꽃은 그 자체로 충분히 단정하고 은은하며 아름답다.
원래 이 노목은 반대편에 서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 한다. 지금보다는 훨씬 매끈했을 시절에 옮겨지면서 꽤나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굽어지고 가운데가 비어 있는 모습에서 골다공증으로 등이 굽은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나 십 대 초반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노래를 잘 한 덕에 방과 후 자주 강당으로 불려 가 선생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외삼촌은 크면 꼭 음대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방을 맞으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엄마는 바뀐 여러 가지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열 식구가 넘는 대가족이 외삼촌 단 한 사람의 수입에만 의존해야 했으니 그런 환경에서 자신의 뜻을 고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타이피스트로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며 하고 싶은 공부와 꿈은 멀리 사라졌다. 접어 버린 음악에 대한 미련은 마음속에 내내 갖고 계신 듯 했다. 지금도 가끔 일본에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 내게 묻기도 한다.
서원의 모과나무는 등이 굽고 비어있는 모습과는 반대로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꽃이 진 흔적이 보였다. 시멘트를 발라주던가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일행의 말에 서원을 관리하는 분은 꽃이 피고 모과를 맺는데 큰 문제가 없으며 아직도 가을이면 제법 많은 모과를 수확할 수 있다고 했다.
젊은 날 노래를 좋아하고 춤을 즐기던 엄마는 그 호방함도 곧았던 기품도 사라지고 골다공증으로 인해 등이 많이 굽었다. 나보다 한 뼘쯤은 더 컸던 키가 이제는 한 뼘 정도 더 작아진 아주 자그마한 구순의 노인이 되어버렸다.
몇 달에 한 번씩 서울을 방문하면 딸이 오는 시간쯤엔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손에 꼭 비가 들려 있다. 골목을 쓸고 계신 것이다. 굽은 등의 작은 몸으로 집 앞과 골목을 쓸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울컥 한다. 이제는 그런 일은 하지 말라고 해도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거라고 하신다. 골다공증으로 내려앉는 뼈가 주는 고통과 탈장으로 늘 통증을 달고 살면서도 말이다.
모과나무는 오랜 시간을 겪으며 곧게 자라지 못하고 속을 비워내며 지금의 모양에 이르렀을 것이다. 굽고 속이 텅 비어버린 것이 그간의 사정을 무언으로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비어 있다는 것은 상실이기도 하지만 버텨낸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굽어 있고 거칠어져 볼품은 없어졌지만 가을이면 향기를 진하게 품어내는 열매를 아직도 맺고 있단다. 이 나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다.
일본의 작은 도시에서 꿈을 키워나가던 묘목 같은 소녀는 이제 노목이 되었다. 엄마의 시간도 모과나무처럼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꿈을 접고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무수히 많이 했을 것이다. 그건 엄마의 꿈을 잃어가는 상실이기도 했지만 자녀를 키우며 버텨나간 엄마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굽은 등 역시 가족과 세월의 무게를 지탱해 온 거룩한 곡선임을 믿는다. 엄마의 그 버팀으로 우리 삼남매는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가을이 되어 모과의 향기가 짙게 배어 나올 때 서원의 모과나무를 다시 보고 싶다. 멀리 계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엄마의 향기가 거기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
/전영숙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