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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울 밑에선 봉선화야

등록일 2026-06-14 15:39 게재일 2026-06-1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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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현 시민기자

봉숭아, 정식 이름은 봉선화. 원산지는 인도라지만, 우리 마을 뒷산이며 개천가, 닭장 옆까지 안 핀 데가 없다. 아무리 봐도 토종이다. 작고 얌전한 얼굴이지만 성질은 불같다. 괜히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겠는가. 익은 꼬투리를 살짝만 건드려도 톡 하고 터지며 씨앗을 튕긴다. 참다 참다 폭발하는 성격이라, 사람으로 치면 ‘속은 활화산형’이다.

이름도 묘하다. 봉선화(鳳仙花), 봉황을 닮은 꽃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닭벼슬 쪽에 가깝다.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겹겹의 꽃잎이 치맛자락처럼 아기자기해 봉황이 춤추는 듯 보이기도 하다. 우리말 ‘봉숭아’는 어감부터 정겹다. 담장 밑에서 햇살을 쬐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옛날엔 귀신과 뱀을 쫓는다며 장독대 옆에 심었는데, 요즘 같으면 ‘귀신 퇴치 오일’로 팔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뱀이 봉숭아 향을 싫어한다니 조상님들 안목은 과학보다 한 수 위였다. 그래서 봉숭아를 ‘금사화(禁蛇花)’, 즉 ‘뱀을 금하는 꽃’이라 불렀단다. ‘금’자만 붙어도 왠지 기운이 번쩍하지 않은가.

봉숭아 하면 역시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이 노래엔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움이 서려 있다. 꽃에게 처량하다 한 그 마음이 오히려 더 처량했을 것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봉숭아 피고 지는 걸 보며 인생을 견디고, 손톱에 물들이며 첫사랑을 꿈꿨다.

나는 봉숭아 하면 지금은 작고하신 두 살 위 고모가 떠오른다. 방학이면 담 밑 봉숭아를 따와 백반과 함께 절구에 찧고, 내 손톱 위에 얹어 실로 돌돌 감아주던 고모. “첫눈 올 때까지 안 지워지면 첫사랑 만난다”는 말에 혹했다. 기실 첫사랑이란 말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지냈다. 그래도 첫눈이 와도 첫사랑은커녕 손톱만 허옇게 변했을 뿐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때의 첫사랑은 바로 고모의 다정한 손길이었다.

봉숭아는 ‘손톱에 물들이는 꽃’이라 하여 지갑화(指甲花)라고도 불린다. 요즘 젊은이들은 젤 네일로 손톱을 치장하지만, 우리는 천연염색으로 멋을 냈다. 게다가 귀신도 쫓고 뱀도 물러가게 하니, 기능성 화장품이 따로 없었다.

이제는 봉숭아를 길가에서 보기 어렵다. 아파트 담벼락엔 국화도 조화요, 사람 마음도 그만큼 말랑해진 듯하다. 요즘 아이들은 손톱 물들일 시간도 없이 카톡으로 고백하고, 이별도 메시지로 한다. 그런 세상이라 그런지, 나는 더더욱 봉숭아가 그립다.

여름 끝자락, 계절의 문을 닫듯 피는 봉숭아. 한철 피고 지는 그 모습이 꼭 인생 같다. 이제는 실로 손톱을 감싸기엔 눈도 침침하지만, 그 붉은 물감 같은 기억만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짙게 남아 있다.

봉숭아, 그건 내 유년의 화양연화다. 

/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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