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사거리에서 90도로 허리를 꺾던 그들이 허리를 펴는 시간이 왔다. 그런데 진짜 허리를 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누구일까? 선출된 적은 없지만 늘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옛적에는 마을의 어른이었고, 고을의 유지였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을 희생하며 앞장서 해결하던 분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덕망 높은 어른들은 인허가의 문지기, 예산의 분배자, 인맥의 중개상으로 진화했다. 이 시대에 부활한 봉건영주들은 각종 위원회와 단체를 거느리고, 말 대신 고급세단을 타고 성곽 대신 골프장을 드나든다. 도시개발 예정지가 발표되기 전에 이미 땅의 주인은 정해져 있고, 알짜배기 공사는 그들의 잔치다.
사거리 절판은 끝이 나고, 논공행상 파티장은 부활한 봉건영주들로 북적인다. 절을 한 적 없어 허리가 아플 일 없는 그들은 선출된 자 옆에서 자빠질 정도로 허리를 제쳐 파안대소하며 자신의 공에 대하여 너스레를 떤다. 선거기간 동안 후보의 당선을 위하여 자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당선인이 몰라주지 않을까 안달하기도 한다. 막걸리 대신 고급 샴페인으로 가득 채운 잔을 들고서, ‘자기 발전이 곧 지역발전’이라는 황당한 주장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건배사에서 샴페인처럼 넘쳐나는 단결력과 충성심은 스파르타 중장보병군 저리 가라다. 하늘 높이 잔을 치켜들고 건배사를 우렁차게 외쳐댄다. “우리가 남이가!!”
늘 웃으며 따뜻하게 악수하고, 행사마다 수려한 말솜씨로 애향심을 뽐내는 그들의 이름은, ‘선출되지 않은 군주들’이다. 단 한 줄의 괴테도 읽지 않았지만, 그들은 고을의 그림자 권력이요, 골프장 민주주의의 설계자이며, 늘 당선되어있는 자이다. 선출직들도, 당장은 기분이 나쁘지만 다음을 위하여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고급세단 뒷좌석의 비선출직 권력자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내가 왕이로소이다”
부패를 관습으로 만들고, 비리를 문화로 승격시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 “원래 다 그래”다. 쥐뿔 가진 것도 없는 불쌍한 민초들은 자신이 행사한 한 표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봉건영주들이 챙기는 커다란 선물 보따리에 대해서는 잘 안다. 그 보따리 선물이 불법과 반칙의 어둠 속에서 교환 되더라도 “원래 다 그런거 아닌가” 하면서 당연시한다. 당연시 정도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선물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선거 이후의 논공행상은 자고이래로 너무나 당연하며, 신세진 일은 갚아야 되는 것이며, 오히려 이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그들은 말한다. “원래 다 그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삶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처럼 전해온 말이다. 너무 튀지 말고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지혜다. 하지만 정의를 거꾸로 세우는 지혜는 마땅히 경계하여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조금은 모난 사람들이었다. 익숙한 길 대신 가보지 않은 길, 바른길을 선택한 이들이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 왔다. 갈릴레오는 하늘을 다르게 보았고, 반 고흐는 세상을 남들과 다른 색으로 그렸다. 모남은 시대의 정을 맞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세상을 넓히는 힘이 된다. 원래 다 그런 건 없다.
/공봉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