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主屹山) 케이블카
경북의 주흘산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소백산을 지나 문경의 황장산, 대미산,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한 축이다. 문경읍에서 바라보면 12폭 병풍처럼 펼쳐지는 산세는 골마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보는 이마다 새로운 기운을 느끼게 한다. 태고의 시간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올랐겠지만, 그 누구도 같은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남으로는 삼강 천마산, 상주 갑장산, 구미 금오산, 의성 태조산, 대구 팔공산과 서로 호응하며, 낙동강 너머 상주평야에서도 그 위용을 드러낸다. 해발 1108.4m의 이 산은 문경새재와 함께 수많은 역사와 전설을 품은 문경의 진산이다. 이름 그대로 ‘우두머리처럼 우뚝 선 산’이라는 뜻을 지닌 주흘산은 예로부터 나라의 큰 산으로 여겨져 조정에서 제사를 올리던 영산이었다. 사람들은 이 산을 단순한 자연이 아닌, 삶과 운명을 품은 존재로 받아들여 왔다.
주흘산은 지리적 의미에서도 특별하다. 조령을 경계로 남쪽을 ‘영남’이라 부르고, 주흘산 남쪽을 ‘교남’이라 칭한 기록이 전한다. 결국 이 산은 영남이라는 지역 개념의 중심에 서 있었던 셈이다. 옛 문헌에서는 주흘산을 두고 “기세가 웅장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산천”이라 평가했다. 산세의 깊이와 물길의 흐름, 그리고 그 아래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질이 맞물려 하나의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산의 동서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들며 곳곳에 폭포를 만든다. 여궁폭포와 팔왕폭포가 대표적이다. 비가 내린 뒤 물줄기가 힘을 얻으면, 그 낙수의 소리는 골짜기를 울리고 보는 이의 가슴까지 시원하게 씻어낸다. 산은 이렇게 물과 바람을 통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산 중턱 해발 520m에는 혜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문성왕 때 창건된 이 절은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간직한 고찰이다.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산은 피난처가 되었고, 사람의 삶을 지켜주는 품이 되었다. 오래된 절집의 마당에 서면,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공기가 조용히 흐른다.
주흘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코스는 문경새재 제1주차장에서 출발해 여궁폭포, 혜국사, 대궐터, 약수터를 거쳐 주봉에 이르는 길이다. 왕복 11.3km, 약 4시간이 걸린다. 이 길은 단순한 산행을 넘어 몸과 마음이 산에 스며드는 여정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초입을 지나 혜국사에 이르면 어느새 몸은 산의 리듬에 맞춰진다. 바위와 흙길, 나무와 바람이 어우러진 그 길 위에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가 된다.
정상에 서면 문경읍과 마성면이 한눈에 들어오고, 소야천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새재들과 들판이 넓게 펼쳐진다. 계절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들녘과 멀리 이어지는 산줄기는 한 폭의 산수화처럼 다가온다. 봄에는 연둣빛이 번지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깊어지며,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산을 물들이고, 겨울에는 설경이 고요함을 더한다. 주흘산은 사계절 내내 다른 표정으로 사람을 맞이한다.
주흘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오랜 논쟁 끝에 케이블카 설치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자연 보존과 개발 사이의 갈등 속에서 20년 넘게 미뤄졌던 사업이다. 산지가 대부분인 문경에서 산을 활용해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추진됐다. 관광객 유입과 지역 활성화라는 기대가 그 배경에 깔려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자연 훼손을 우려하는 시선과 지역 생존을 위한 개발 논리가 맞서고 있다. 산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제는 산을 통해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 인식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어느 한쪽이 쉽게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공사에는 약 2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케이블카를 타고 주흘산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땀 흘려 오르던 길 대신 편안한 이동 수단이 생긴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산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그때 다시 정상에 서게 된다면, 젊은 날 땀으로 올랐던 기억을 온전히 떠올릴 수 있을까. 숨이 차오르던 고통과 정상에서 느끼던 환희, 그 모든 과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산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인간이 하는 일에는 늘 명암이 엇갈린다. 소금장수와 우산 장수처럼 한쪽이 좋으면 한쪽이 나빠지기도 한다. 그 속에 갈등하고, 그 갈등을 조정하면서 세상은 변하고 발전해 왔다. 주흘산 케이블카도 그런 인류 현상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발을 내딛고 있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