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법 개정 ‘경자유전’ 원칙의 부활
국회가 지난 5월 7일 본회의에서 농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전국의 농지 시장이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이번 개정은 단순한 법률 보완을 넘어, 농지는 투기 대상이 아닌 농업 생산수단이라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헌법적 원칙을 국가가 강력히 강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매우 크다.
△ 처분명령의 ‘재량’에서 ‘의무’로
가장 큰 변화는 지자체의 행정 조치 강화다. 기존에는 불법 농지 소유가 적발되더라도 처분명령 여부가 지자체의 재량사항이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를 ‘의무 규정’으로 명시했다. 이제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지자체는 반드시 처분명령을 내려야 하며, 이를 어길 시 강력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또한 조사원의 토지 출입 근거가 명문화되면서 육안 확인에 의존하던 부실 조사의 시대가 가고, 현장 중심의 강제 조사가 가능해졌다.
△ 195만ha 전수조사, 포항 지역 ‘긴장’
정부는 1996년 이후 취득 농지 115만ha를 포함해 총 195만ha에 달하는 농지에 대해 전국 단위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1단계 기본조사를 거쳐 오는 8월부터는 투기 위험군과 장기 미경작 농지를 대상으로 현미경 심층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특히 수도권 신도시 예정지나 광역 교통망 개발 호재가 집중된 지역은 물론, 지방의 산업단지 예정지와 관광개발 예정지까지 조사 범위가 확대되면서 전국 농지 시장 전체가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최근 수년간 도시 개발 기대감과 외지인 투자 수요가 몰렸던 포항의 흥해읍, 청하면, 장기면 일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농취증만 받아두면 장땡”이라는 식의 해묵은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 불법 임대차와 편법 우회 차단
그간 음성적으로 이뤄졌던 불법 임대차 문제도 정조준했다. 정부는 ‘임차농지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동시에 불법 임대차 신고 시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마을 주민들이 사실상 감시자가 되는 구조다.
또한 처분명령을 피하려 배우자나 친인척에게 땅을 넘기는 편법 증여를 차단하기 위해 특수관계인 거래 제한 규정을 신설했으며, 지자체가 미온적으로 대응할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직접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도 대폭 강화했다.
△ 상속농지 관리와 농촌 소득의 다변화
상속 농지에 대해서는 보유 상한 규정을 폐지하는 대신 농지은행 등을 통한 의무 위탁 임대 방식을 택했다. 땅을 놀리는 행위 자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만 규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산어촌 체험시설이나 영농형 태양광 설치 등 농지의 타용도 일시 사용 범위를 일부 확대해 농민들의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번 개정은 농지를 ‘자산 투자 상품’으로 보던 시각을 ‘공공적 생산 기반’으로 되돌리는 국가적 방향 전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항의 한 농민은 “진짜 농사짓는 사람은 땅 구하기가 별 따기였는데 이제라도 제대로 정리되어야 한다”며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급격한 규제 강화가 재산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특히 정부가 투기 세력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분과 행정 제재를 예고하고 있지만, 수도권 개발 예정지처럼 시세 차익을 노린 조직적 투기와 달리 산촌·오지 지역의 고령농이나 생계형 소유자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산간 지역은 경작 여건 악화와 고령화로 인해 일시적인 휴경 상태인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개정안의 성공 여부는 투기 목적의 농지 보유와 장기 미경작 투기 세력은 엄단하되, 고령농·상속농·생계형 소유자 등 선의의 피해 가능성이 있는 계층은 정밀하게 구분해내는 행정의 균형감에 달려 있다.
아울러 농지은행과 공공 위탁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작동하느냐가 이번 농지 개혁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